[마산] 왕이신 그리스도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3067

교회 달력으로 한 해가 끝나는 주일이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한다. 왕은 최고 권력자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평가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포악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선행보다 악행을 많이 남겼고 희망보다 억압을 더 많이 주었다. 예수님을 그런 왕으로 고백하자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이 사람이 정말 하느님이 택한 그리스도라면 어디 자기를 살려보라지.’ 반대자들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비웃는다. 처음부터 그들은 예수님이 버거웠다. 그가 지닌 기적의 능력이 두려웠고 민중들의 추종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저항 없이 비참한 죽음을 받아들이려 한다. 반대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능력을 가진 이가 그런 죽음을 받아들이다니, 속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신다. 그분의 침묵을 그들은 비웃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적의 자리에 함께 했던 그들인데도 결정적 순간에 스승을 떠나고 있다. 그들의 도피는 반대자의 비웃음보다 예수님을 더 아프게 했을 것이다. 마침내 여인들 몇몇만이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게 된다. 왕의 죽음으로선 초라한 죽음이다. 세속적 의미의 왕에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왕은 누구인가? 사람을 살리는 존재다. 왕이라고 해서 다 왕은 아닌 것이다. 자격을 갖추어야 참된 의미의 왕인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한다. 인류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셨기에 왕으로 고백한다. 반대자들을 살리고 자신을 떠난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 죽음의 길을 가셨기에 왕으로 고백한다. 고백뿐 아니라 그분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한다. 그러니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 누구를 살릴 것인가? 왕이신 주님 앞에서 묵상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 왕 축일의 가르침이다.

오늘의 사회는 갈수록 사람들의 기를 꺾고 있다. 가족 간의 애정을 단절시키고 이웃사랑을 메마르게 한다. 남을 죽여야 자신이 산다고 가르치니까 그렇다. 남은 죽든 말든 나만 살면 된다고 하니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수님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다. 그분의 뜻을 따르며 살아야 은총이 주어진다. 이 어려운 시기에 주님의 은총만큼 강한 에너지가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 당신이 왕이 되어 오실 때 저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십자가의 죄수는 이렇게 청했다.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답변에 그는 어떤 느낌이었겠는가? 아무 것도 부럽지 않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으려 했던 사람이 아닌가?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으로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을 받은 것이다. 누구도 이런 능력을 줄 수 없다. 왕이신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다.

계절은 바뀌고 있다. 예수님은 지나가는 시간의 왕이기도 하다. 그런 뜻에서 한 해가 마무리되는 주일을 그리스도 왕 축일로 지내고 있다. 지난 시간 동안 은총 주신 것에 감사 드리자. 그리고 새 마음으로 다가오는 계절을 맞이하자. “당신이 왕이 되어 오실 때 저를 기억하여 주십시오.” 얼마나 애틋한 기도인가? 성체를 모시면서 오늘은 이 기도를 바쳐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낙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을 살리는 길이다.

신은근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