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하느님의 방식으로 ‘깨어 있는’ 것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771



[인천] 하느님의 방식으로 ‘깨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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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가돼서 느낀 것은 신자분들이 너무도 극진히 잘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모두 맨바닥에 앉아도 저는 방석을 주시고, 식사라도 하게 되면 가운데 상석에 앉히십니다. 더구나 식사 때에 앞자리는 어렵다고 다들 피하십니다. 그래서 신자분들에게 “아유~ 저도 다를 것 없어요. 자, 함께 하세요. 여기 앉으세요.”라고 말씀드리면, 할머니들은 깜짝 놀라시며, 어떻게 같을 수 있냐고, 다르다고 하십니다. 물론 교회 내에서 삶의 모습으로 신부와 신자가 다를 수 있지만, 하느님 보시기에는 신부나 신자나 차이가 있다한들 얼마나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얼마나 겸손한지가, 낮은 자를 높이시는 예수님의 시선에서는 더 나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도 신부와 신자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부가 신자보다는 빨리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잘못을 해도 저는 신부가 빨리 회개한다고 생각합니다.

회개를 빨리 할 수 있는 이유는 기도와 성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잘못을 저지르고 하는 행동이 정당화와 합리화입니다. 나는 잘못이 없다 이거죠. 하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잘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잘못한 것이야 당연히 부끄러운데, 기도하고 성찰하다보면 정말 부끄러울 때가 많은 것은 당연하겠지요. 나를 좀 정당화하고 싶어도 그래도 그분께서 좀 더 노력하길 원하시는데, 매일 ‘저 이렇습니다. 그냥 인정하세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는 “제가 부족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게 됩니다.

바로 이처럼 하느님 앞에서 나를 바라보는 기도와 성찰이 바로 ‘깨어 있음’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내 시선으로 보면 받아줄 수 있지만, 하느님의 시선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때 우리는 좀 더 노력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시선 앞에 나선다는 것은 나를 그분께 열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저 살아오던 내 방식대로, 누구나 인정하는 세상의 방식대로가 아닌 하느님의 방식으로 ‘깨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깨어 있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제가 청년들과 함께 창세기 성서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몇 달이 지났는데, 한 청년이 “신부님, 저 이제 성서공부 그만 할래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니, 갑자기 왜? 힘드니? 뭐가 문제니?” 라고 물으니 “성서공부 하니까 착하게 살아야 될 것 같아요.”라고 답을 합니다. 이 친구의 대답은 하느님의 뜻에 대해 자꾸 알게 되니까 지금의 자신의 삶의 모습이 보이고, 내가 회개해야 할 듯한데, 회개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니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여러분도 ‘깨어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것은 여러분을 귀찮고 힘들게 합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종이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루카 2,35) 있듯이, ‘슬기로운 처녀들이 등잔과 함께 기름도 준비하듯이’(마태 25,4) 구체적인 노력들이 필요하고, 이는 성가신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예수님과의 만남의 순간을 행복한 때로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7)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행복이 늘 하던 대로가 아닌 회개하는 순간에 또 변화하는 순간에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회개와 변화는 ‘깨어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행복해지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이제 ‘깨어’ 자신을 살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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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최인비 유스티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