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수원/의정부] 예수님을 간절히 사랑했던 여인, 부활의 증인이 되다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2012



오늘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입니다. 막달레나는 성녀의 고향을 딴 이름입니다. 갈릴래아 서쪽에 위치한 막달라 지방 출신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처음 만나는(마르16,1-8) 큰 은총을 받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척 죄가 많은 여인으로 전해집니다. 얼마나 죄가 많았으면 루카복음 저자는 그녀 몸 속에 마귀가 일곱 마리나 들어 있었다고 전합니다.(루카8,2)

그런데 이렇게 손가락질 받던 죄 많았던 여인,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몰라보게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바쳐 예수님을 섬기는 제자가 되지요.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는 일생을 예수님에게 헌신하며 살기를 결심하였고, 자신의 전 재산은 물론 목숨을 바쳐야 하는 위험 앞에서도 예수님 곁에 머물렀습니다.(루카8,3)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무덤을 지키며 죽기까지 예수님께 대한 존경과 믿음을 버리지 못했던 여인이었습니다.

복음서를 읽다보면 인물 때문에 종종 헷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마리아󰡑라는 인물이 6~7명이 등장하기에 오늘 기념일로 지내는 이 분이 어떤 분이신 지 명확히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요.

「교부들의 증언과 전승에 따르면 오리게네스와 그 밖의 초기 성경학자들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를 눈물로 예수의 발을 적시고 향유를 발라 드린 죄인으로 소문난 여인(루카7,36-50)과, 마르타와 자매지간인 마리아(루카10,38-42), 베타니아 마을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요한11,1-12)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604)은 이들을 모두 동일 인물로 간주하였고 그 후부터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성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한국 가톨릭 대사전 제4권 󰡐마리아, 막달라의󰡑참조)」

우리는 교회의 이러한 가르침을 기억하며 오늘 복음을 통하여 마리아 막달레나의 삶을 묵상하도록 합시다.

오늘 복음에 따르면 그렇게 그리던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눈앞에 나타나셨을 때 마리아 막달레나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동산지기인 줄만 알았지요. 많은 제자들이 스승을 버리고 도망가 버렸지만 다른 두 여인과 함께 예루살렘뿐 아니라 스승의 십자가 죽음 끝까지 따라 갔으며(마태 27,55-56),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예수를 장례 치르는 동안 줄곧 스승을 잃은 슬픔에 눈물을 흘렸던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마태 27,61; 요한 20,11) 그토록 예수님을 추종하였으며, 사랑과 투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예수님의 임종을 지켜보았지만(마르15,40) 마리아 막달레나는 막상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나셨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나셨지만 마리아 막달레나는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마리아가 찾아 헤맨 것은 돌아가신 예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예수님만을 찾았기 때문에 살아 계신 예수님이 바로 옆에 서 계셔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어떤 한 곳으로만 관심을 쏟으면 다른 것은 놓치고 맙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 이웃의 안타까운 점, 잘못된 점만 보고 있으면 그에게 있는 좋은 점들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크면 상대방의 좋은 모습은 놓치게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아주 잘해주고 싶고 사랑해주고 싶은 이웃이 있다면 그가 무슨 일을 해도 무조건 좋아 보이는 것이 우리들 마음입니다. 내 주변의 모든 이웃을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과 열린 눈으로 보고 맞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뿐만이 아니지요. 한가지 일에 몰두하고 집착하면 우리는 중심을 잃고 표류하기가 쉽습니다. 예를 들어 요즈음 참으로 불행하게 보이는 것 중의 하나가 돈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입니다. 돈에 욕심을 부리고 집착하면 부모도 형제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고 형제간에 의를 끊으면서까지 오로지 내 욕심만 채우고 싶어합니다. 돈만 보이고 부모도 자식도 부부도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누구에 대해 미움이 내게 있으면 그가 아무리 좋은 언행을 보여도 나에게는 안보이고 무엇이든 그에 관한 것은 곱게 보이지가 않습니다.

모든 관계는 사랑으로 출발해야합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야 잘못을 덮어줄 수 있고 미운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칫 한쪽으로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생각이 기울어져서 보여도 못 보는 잘못을 범할 수가 있습니다. 바른 눈과 바른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시대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돈이나 건강, 명예 등 보여지는 것에 치중하여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정작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고, 눈 뜬 장님이 되어 잘못된 길을 걸어가느라고 헛된 노력들을 하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에 나는 내 옆에 계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잘 알아보고 있는지 한번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면, 이웃 사람의 좋은 점도, 또 간절한 갈망도 알아볼 수가 없고 오로지 이웃도 나의 필요 대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요즈음 세상의 불행이고 비인간화의 모습이지요.

오늘 하루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는 바른 눈과 바른 마음을 위해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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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