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회] 묵묵히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135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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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을 코앞에 둔 오늘 드디어 즈카르야도 입이 열립니다.
열 달 막혔던 말문이 열리는 것인데 그래서일까 찬미가 터져 나옵니다.

이를 보면 찬미가 터져 나오는 건
자기 말문이 막혀야지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 말문이 트여 있어 나불나불 얘기하던 입은 자기 얘기를 다 토해냈기에 답답한 것도 없을 것이고 그래서 말문이 트였을 때 기쁨도 없게 마련이지요.

저는 이번 성탄 대축일 강론의 주제를
'대전염병 시대의 성탄'으로 이미 주제를 잡았는데 내일 이 얘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아직 모르지만 오늘 독서와 복음과 관련지어서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며칠 전 티브이를 봤는데
울릉도에 가면 나리분지라는 곳이 있답니다. 그곳은 하도 눈이 많이 와서 겨울 몇 달은 아무 것도 못할 뿐 아니라 완전히 갇혀 지내야만 되는 곳이고 그래서 그곳을 완전히 떠나거나 한겨울만이라도 떠났다가 다시 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남아서 그 혹독한 겨울 몇 달을 견뎌내는 분들도 있답니다.

그분들이 얘기하기를
육지 사람들은 좀 쉬었으면 하지만 자기들은 봄이 오면 일을 할 생각으로 설레는 맘으로 봄을 기다린다고, 혹독한 겨울이 없이 어떻게 설레는 봄을 맞이할 수 있겠냐고 말합니다.

아무튼,
이분들은 인고의 겨울을 견뎌낸 분들이고, 그래서 찬란한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견뎌낼 수 있는 힘은 혹독한 겨울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싫어 봄의 나리분지를 떠난 사람들과 비교하면 이것을 알 수 있지요.

야성이 강한 고기나 동물은 수족관이나 우리에 갇히면 스트레스 때문에 바로 죽어버린다고 하지요.

그런데 스트레스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스트레스란 말 그대로 압박이란 뜻인데 같이 압박을 받지만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있지요. 그러니까 압박과 압박감 사이에는 사람 편차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압박감 또는 스트레스를 더 받겠습니까?
예를 들어 강아지가 목줄에 매였는데 목줄이 싫다는 강아지, 목줄이 싫으니 벗어나야겠다고 발버둥 치는 강아지입니까, 아니면 목줄을 받아들이고 의식치 않는 강아지입니까?

이런 비유가 인간에게 적절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이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즈카르야의 찬가가 즈카르야 입장에서는 열 달의 인고를 묵묵히 견뎌낸 뒤 터져 나온 것이고,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다윗왕 때부터 몇백 년을 묵묵히 기다린 찬가가 터져 나온 겁니다.

그렇습니다. '묵묵히'입니다.
'묵묵히'란 '아무 말없이'란 뜻이 아닙니까?즈카르야는 열 달을 아무 말 할 수 없이 묵묵히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즈카르야의 불신과 의심의 말문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즈카르야는 왜 자기의 말문이 막힌 것인지 하느님의 뜻을 알기에 열 달을 묵묵히 참았습니다.

우리도
이 코로나의 긴 스트레스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안다면 묵묵히 견뎌낼 것이고, 그렇게 견뎌낸 뒤에는 즈카르야처럼 구원의 찬가를 토해내게 될것임을 희망하며 이 답답함을 견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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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2020년 1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