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평화의 모후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2865



오늘은 우리 구원의 모델이시며 희망이신 마리아를 하늘에 오르게 하신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기리며 경축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또한 우리 민족이 억압과 압제의 굴레에서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된 것을 기념하며 경축하는 광복절, 곧 우리 민족의 해방절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오묘하게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에 감사드리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자 합니다.

마리아는 놀랍고도 엄청난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온몸으로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될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로 찬미합니다. 그 아름다운 내용이 오늘 복음에 기록되어 우리에게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마리아 개인에게 펼쳐진 해방과 구원을 노래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특별히 개입하신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과 구원, 나아가 당신이 낳고 기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장차 펼쳐질 하느님 나라의 평화도 함께 노래합니다. 이처럼 ‘마리아의 노래’는 마리아 개인의 노래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 곧 교회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단지 말마디만 고운 노래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하느님의 자비 안에 살도록 이끌어주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노래’는 사제들과 수도자들만이 아니라 성무일도를 바치는 모든 교우들이 매일 저녁기도 때마다 노래하는 뛰어난 찬미기도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마리아를 ‘평화의 모후(母后)’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바로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이 땅에서 이루신 ‘평화의 임금’ 예수 그리스도를 몸으로 낳으시고 기르신 어머니이시며, 그 평화의 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시는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모든 평화에 ‘장애가 되는 죄’에 물듦이 없이 잉태되신 분이기에 더욱 평화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평화를 이룩하신(에페 2,13) 그 십자가 아래 함께 하셨던 마리아(요한 19,25)는 특별히 당신 아들의 평화를 나누어 받으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자들까지 용서하는 아들의 조건 없는 용서와 화해를 똑같이 온몸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평화의 절정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첫 번째로 아들의 부활을 몸으로 누리는 기쁨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에페 2,14)를 최대로 누리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교회가 마리아에게 붙인 ‘평화의 모후’라는 칭호는 지극히 자연스런 호칭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우리 각자에게 구원과 위로의 희망이 되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가 함께 갈망하고 누려야 할 평화의 전형도 되시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노래’에서 마리아는 당신 자신이 얻어 누렸던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노래합니다. 마리아와 함께 교회 전체가 그러한 평화를 믿고 바라고 있습니다. 이 노래에 나타나는 두 부류의 사람들, 곧 교만한 자들과 겸손한 자들, 권세 있는 자들과 보잘것없는 자들, 배고픈 사람과 부요한 사람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라져서 살게 하시려는 것이 하느님의 의도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이들 사이에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키시고 하나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려는 것’(에페 2,14-15)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서 실현하시고자 하신 하느님의 구원계획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참 평화를 그리워하며 목말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폭력과 테러와 전쟁이 더욱 더 우리 주변을 위협하고 있고, 우리의 일상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지 못하거나 갈라져서 대립하는 문화에 심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평화의 모후’이신 마리아와 함께 상처입고 신음하는 이 세상이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평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에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을 조건 없이 포용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일, 온갖 폭력과 테러와 전쟁을 멈추게 하는 일,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만드는 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를 섬기는 일,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 병든 이를 돌보는 일,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는 일,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이를 일깨우는 일, 가는 곳마다 기쁨과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 그리고 모든 사물과 사람한테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일 등이 있을 것입니다. 최근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나는 어느 분야 어느 영역에서 평화를 만드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 각자가 위에서 말한 것 중 어느 하나라도 실천한다면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마태 5,9)’이 됩니다. 이런 실천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이 땅에 가져오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04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안동교구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