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신앙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2231

오늘은 전교주일이다. 온 세계 교회가 '선교가 교회의 근본 존재사명 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복음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마련된 주일이다.“신앙은 자유인데, 남에게 나의 신앙을 권하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인가?”아무도“나에게 신앙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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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가?.

동물은 자기에게 주어진 본능에 따라 행동하기에 어떤 갈등이나 고뇌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를 지닌 존재이기에 매 순간 갈등과 번민을 할 수밖에 없다. 멀리 계신 부모님께 자주 연락을 하고 찾아보아야 하는데, 자녀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씀씀이를 줄이고 좀더 검소하게 살아야 하는데, 이런 저런 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잘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아는 것만큼 살 수 있으면’ 다 성인이 될 것이다. 아는 것을 사는 힘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고해소에서 고해를 듣다보면, “신부님, 저는 주일도 계속 빠지고, 아침저녁 기도도 하지 않고 너무나 하느님과 멀어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하고 고백한다. 이 다음에 반드시 따라오는 말은“집사람과 자주 싸우고, 아이들에게 야단만 치고, 대인관계에서 자꾸 실수를 하고, 생활이 무질서해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하는 고백이다. 모르긴 뭘 모르는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주일 미사도, 아침저녁 기도도 하지 않고 살다보면, 자신을 하느님 앞에 비춰보며 반성하고, 잘못을 제때에 뉘우치고, 새로운 결심을 하며 살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마치 낙엽이 물에 떠내려가듯이 시간 속에 그냥 떠밀려 가는 삶이기에 생활이 엉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를 하느님 앞에 새롭게 바로 세울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음미되지 않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

자유를 지닌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을 다스리는 힘을 가진 사람만이 인간다울 수 있다. 자신을 다스리는 힘이 한번의 결심으로 어느 순간에 생기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것은 오랫동안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신앙 안에서 길러지고 강화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요즘 자살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가난을 비관한 자살도 있고, 재벌 2세의 자살도 있다.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때로는 정말 “모든 것이 끝장이다.”싶은 절망의 순간, 희망이라고는 바늘구멍만큼도 없어 보이는 경우를 누구나 당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게 될 때, 신앙이 없는 사람은 대개는 자살을 하거나 머리가 뺑 돌아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리고 기적처럼 회생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참으로 신앙은 강한 것이다.

암환자는 대개 죽는 순간까지 정신이 초롱초롱하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옴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환자들을 가까이에서 돌보며 죽음을 지켜보는 호스피스들은 신앙이 있는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비 신앙인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너무나 다르다고 말한다. 비 신앙인에겐 이 세상이 전부이기에 죽음은 절망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새로운 세상에로 옮아가는 과정이며 진통인 것이다. 그래서 죽음의 고통 그 자체도 자신의 일생의 죄와 허물을 속죄하고 정화하는 마지막 세례로 받아들인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제사와 합쳐 바칠 수 있는 향기로운 제물인 것이다.

2. 신앙보다 더 큰 유산은 없다.

우리는 이상에서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신앙이 얼마나 큰 힘을 주는 것인지를 잘 보았다. 사실 자녀들에게 돈을 몇 억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보다 어디 내 놓아도 혼자서 반듯하게 살 수 있는 신앙을 길러주는 것이 훨씬 더 큰 선물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웃에게 “신앙생활을 한번 해보시지요" , “함께 성당에 가봅시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한다. 왜인가? 괜히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아니면 “남 걱정말고 당신이나 열심히 다니시오.”“성당 다니는 당신이나 안 다니는 나나 뭐가 다른데!”하며 무안을 줄까봐?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신앙 같은 것, 하느님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항상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달리 말하면 인생을 살면서 신앙만큼 누구에게나 필요한 상품(?)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설령 내가 "당신도 신앙을 가져보시지요" 하고 권했을 때, 당장은“필요 없다.”고 거절하더라도, 언젠가 인생의 어느 고비에서는 내가 뿌린 신앙의 씨앗이 싹을 틔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언제나 복음을 전해야 하는”(2디모4,2) 것이다.“새 순이 돋아나지 않는 가지는 죽은 가지이다.” 선교를 통해 새로운 신앙의 싹을 틔우지 못하는 신자는 죽은 신자라 할 수 있다. 지금부터 미리 미리 많은 공(功)을 들여야 한다. 갑자기 예비자를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앙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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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유영봉 몬시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