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회] '착해빠져' 탈인 사람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1985



한스 발둥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

------------------------------------------------------

자금 압박으로 인해 사면초가에 놓여 있던 친구의 절박한 상황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 대출보증을 섰던 '착해빠진' 한 형제님을 알고 지냅니다. 오래 가지 않아 상황은 최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잘 풀릴 것 같았던 친구 사업은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곤두박질쳤고 그 와중에 친구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낯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고, 보기에도 끔찍한 통지서, 경고장, 출두명령서들이 연이어 날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한두푼도 아니고 몇년간 뼈빠지게 모은 상당한 '거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 형제님은 속상한 것은 둘째 치고,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었습니다.

잠적해버린 친구 생각만 하면 울화가 치밀어올라 병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배신감을 겨우 달랜 형제님은 상황이라도 파악하기 위해 친구 집을 찾았습니다.

친구 집 상황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금융회사에서 이미 다녀간 뒤였습니다. 곧 비워줘야 할 썰렁한 아파트 거실 한 구석에는 부인과 어린 자식들이 끼니조차 잇지 못한 채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즉시 분위기를 파악한 형제님은 말 한마디 제대로 붙여보지 못하고 돌아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아파트 상가를 지나쳐가던 때였습니다. '착해빠진' 형제님의 발길이 자신도 모르게 친구네 집을 향해 되돌려졌습니다.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돈을 모두 털어 친구 부인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힘 내시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되겠죠. 우선 거처하실 만한 곳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이것 얼마 되지 않지만 우선 아이들하고 식사라도 하세요."

착하기만 한 형제님, 그 착한 심성을 죽었다 깨어나도 바꾸지 못해 아직도 고생하고 계십니다. 주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나 불행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 형제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평생 기반 못 잡고 죽을 고생만 거듭하겠지요.

너무 '착해빠져' 탈인 형제님 모습에는 평생 남 좋은 일만 하다가 결국 목숨까지 내어놓으신 예수님 향기와 자취가 그대로 스며들어 있음을 봅니다.
 
이 세상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복음적 길을 걷고자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고통과 괴로움, 박해와 시련이 따릅니다. 결국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길은 이 세상에서 손해 보는 길, 이 세상에서 바보처럼 사는 길입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인 오늘, 교회는 고뇌와 비장함으로 가득 찬 예수님 얼굴을 기억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모두가 가기 싫어하는 길, 그러나 그 누군가가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외롭게 걸어가십니다.

그 길은 고통과 번민으로 가득 찬 가시밭길이었지만,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길이었기에 두말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십니다. 그 길은 처절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 길이었지만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길이었기에 기꺼이 걸어가십니다.

길가에 줄지어선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환호성을 올리며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환호 뒤에 숨겨있는 비수같은 생각들을 이미 다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웃는 표정 뒤에 감춰진 사악하고 탐욕스런 마음들을 다 꿰뚫고 계셨습니다. 머지않아 저들의 환호는 돌팔매질로 바뀌고, 저들의 박수소리는 야유와 침 뱉음과 조롱으로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향기로운 꽃길만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길은 고난의 가시밭길, 조소와 야유로 가득 찬 슬픔의 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죽음의 길이기도 합니다. 진정 되돌아가고픈 길입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걸어가십니다. 십자가 길 그 너머에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용기를 내어 걸어가십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인 오늘은 우리 역시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 언덕길을 올라가는 날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의연하게 주님의 길을 따라가도록 합시다. 고통과 십자가 그 이면에 감추어진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면서 또 다시 길 떠나는 은총의 성주간이 되길 빕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1 고린 1,18).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