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주교회의 담화문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1346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창세 50, 20)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모든 인간은 삶에서 동료들로 인해 상처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상처들 중에 형제들 간의 다툼으로 생긴 상처는 가장 크고 오래갑니다. 그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갈등과 미움도 큰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은 자신을 이집트에 팔아넘긴 형제들을 보며 주체할 수 없는 미움에 사로잡혀 복수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느님의 공의를 생각하며 눈물로써 형제들을 용서합니다. 요셉의 용서는 대기근의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했고 큰 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었습니다. 요셉은 용서를 통해서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입니다. 어렵고도 힘든 일이지만 이제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을 통해서 남북 간의 갈등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잘못된 북한의 행동

최근에 북한은 주변국을 위협할 수 있는 로켓을 발사하고 2차 핵실험을 실행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단지 남북 간의 갈등을 넘어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해치는 행동입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겪고 있는 어려움을 개선하려는 노력보다 군사력 강화와 권력 승계에 치중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항상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을 내세우며 정작 한반도의 문제는 미국과의 관계 진전을 통해서 풀어가려 합니다. 동족 간 전쟁의 참화로 지난 60년간 얼마나 아픈 시간을 보냈는지 잘 알고 있다면 무모한 핵개발을 통해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은 군사력에 의존하는 권력을 선택하지 말고, 정치적 민주주의와 개방을 통한 경제발전, 그리고 시민의식의 성숙을 통한 사회발전을 통해서 창출되는 권력을 지향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평화는 무력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며 대화하는 가운데 정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와 자신의 내면 의식에 대한 성찰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놓고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는가 하면, 북한당국의 태도 변화가 선행되지 않는 한 북한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목소리의 이면에는 몇 가지 기본적인 인식이 우리 사회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째, 북한정권의 잘못된 행태를 다루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북한주민들의 희생은 감수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입니다. 둘째, 북한체제는 실패한 국가이며, 북한정권은 도덕적으로 나쁜 집단이기 때문에 버릇을 고쳐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때로는 물리적 충돌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채찍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 사회가 모든 면에서 북한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함께 살기 위해서는 북한이 우리에게 맞추어 일방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내적 의식은 ‘남과 북이 다르다’는 현실을 ‘북한은 잘못되어 있다’는 쪽으로 인식하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편협한 인식을 가지고 북한 사회 및 주민들과의 ‘화해와 일치’는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에, 우리 교회에, 그리고 나 자신에게 북한은, 북한 주민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사람들인지 성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과연 그들은 우리가 외면하거나 버리고 갈 수 있는 사람들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돌발적 상황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과 정책 수렴 없이 내리는 결정은 자칫 남북관계에 커다란 어려움을 줄 수 있으리라 염려됩니다.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로 인한 위기는 세계적 경제 위기에 비해 더 큰 어려움을 가져올 것입니다.

화해는 평화공존의 첫걸음

지난 부활절에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화해는 어려운 일이지만 세계안보와 미래 평화공존의 필수조건”이라며 전 세계 분쟁지역의 화해를 촉구하셨습니다. 교황님의 부활절 메시지는 북한의 2차 핵개발과 로켓발사를 계기로 긴장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 한반도에도 절실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교만과 욕심을 버리고 북한의 형제·자매들에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세상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으며, 우리끼리 원수가 되게 만들었던 모든 요소들을 없이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소서 2, 14)

평화를 위해 노력합시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일에 더욱 열심해야 합니다. 새터민들을 돌보고, 식량과 생필품과 의약품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에게 인도적인 지원을 계속하며,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깨어있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 13)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통일의 순간은 도둑처럼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갑자기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조건 없는 사랑을 절실하게 깨닫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사랑의 실천은 언젠가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에로 승화될 것입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우리 민족에게 매우 절실한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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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8일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운회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