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동정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5497

마리아를 "평생 동정"이라고 부르는 성전(聖傳)은 마리아가 예수를 동정 잉태하신 후에도 항상 동정으로 남아 있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물론 모든 부부관계도 없었음을 포함한다. 또한 평생 동정이란 말은 예수의 잉태가 당신 모친의 동정을 손상하지 않았다는 뜻도 들어 있다.

1. 복음서

복음서에는 이 가르침에 반대되는 증거들이 없다. 루가는 이렇게 말한다: "마리아는 첫 아들을 낳았다"(2,7). 이것은 다른 자녀들이 전혀 없더라도 집안의 첫 아기에 관한 법률적 규정을 암시한다. 또 마태오는 이렇게 선언한다: "아들을 낳기까지 그와 동침하지 않고 지냈다"(1,25). 셈족의 어법에서 "...전에 혹은...까지"라는 말은 장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사울의 딸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다"(2사무6,23).

복음서는 몇차례에 걸쳐서 "예수의 형제들"에 대하여 특히 야고보와 요셉을 언급한다(마태13,55). 그러나 이들은 예수의 어머니와 동일 인물일 수 없는,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마태27,56)라고 일부러 이름까지 지적한 다른 마리아의 아들들이다.

셈족의 세계에서 형제들이란 말은 가끔 친척과 동맹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형제지간이다"(창세13,8).

따지고 보면, 성전에서 예수를 찾는 기사와 특히 예수께서 당신 어머니를 사랑하던 제자에게 맡기시는 갈바리아 기사는(요한 19,25-27) 마리아에게 다른 아들이 없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어쨌든,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관한 오래된 성전들은, 비록 "예수의 형제들"에 관한 언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 역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2. 성전

150년 내지 20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야고보의 원복음서"는 요셉이 마리아의 남편이 되었을 때에는 이미 그가 나이 많은 홀아비로서 여러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 기사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에 대한 믿음이 이미 널리 전파되어 있었고 또 적어도 "예수의 형제들"에 대해 반대를 제기하는 시도임이 분명하다.

오리게네스(+254년)는 예수의 탄생 전과 후에도 마리아의 동정을 강력히 옹호한다. 그는 마리아가 영보 순간에 성령께 아낌없이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그 후에 다른 자녀를 가질 수 있었다는 주장을 배격한다. 오리게네스에 의하면, "예수는 남자들을 위한 정결의 시작이고, 마리아는 여자들을 위한 정결의 시작이다."

떼르둘리아노(+220년/230년)는 예외이다. 비록 예수의 동정 잉태는 주장했지만, 그는 영지주의에 반대하는 자신의 논증에 따라 문제를 풀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예수의 출생은 정상적인 사건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여러 자녀들을 두었다고 하였다.

350-375년경, 베로나의 제노는 교회의 전통적인 믿음을 자신의 수덕적인 저서에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얼마나 놀라운 신비인가! 동정녀 마리아는 더럽혀지지 않고 잉태하였다. 잉태한 후, 동정녀는 출산하였다. 출산 후에도 그녀는 동정으로 남아 있었다."

성 암브로시오, 성 예로니모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의 열렬한 옹호자들이다. 그 뒤로는 평생 동정에 관한 성전이 확고부동하게 되었는데, 교황 시리치오가 보노수스 주교를 반박하는 편지는 평생 동정에 대한 교회의 공식 가르침이 되었다. 이 때 교황은 이렇게 반박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탄생하신 동정녀의 같은 태에서 다른 자녀가 태어날 수 있다는 근거없는 모든 이설을 단호히 거부한다."

또 막스 투리언이 말한 그대로, 16세기에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인 루터와 쯔빙글리 그리고 칼빈 등이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주장하고 가르쳤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닌 것이다.

3. 가능한 해석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리아가 영보 이전에 이미 동정 서원을 발했다는 이론을 전개한 첫 번째 인물이다(401년). 그러나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죤 맥휴의 설명은 이렇다. "마리아와 요셉이 기적적인 잉태 후, 동정 생활을 결의했을 때, 그들의 동기는 예수에게 전적으로 봉사하기 위해 자신들을 바쳐야 하며, 또 아들이 사명을 완수함에 있어 장애가 될만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도였다. 그들의 동기는 결혼생활의 가치를 가볍게 본 것이 아니라 결혼보다 더 높은 이상을 구현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선택은 분명히 동정 잉태 사실 자체가 자극했을 것이다... 동정 잉태 그 자체는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로 부르는 하나의 초대장이다 소명이었다. 마리아가 할 수 있는 대응 자세는 자신에게 위대한 일을 해주신 전능하신 분의 사업에 온전히 헌신하는 길밖에 없었다. 교회는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는 육체적 동정 때문만이 아니라 마음의 헷갈림 없이 온전한 사랑을 평생 동안 성자께만 살았기 때문에 "공경하올 어머니" "성실하신 동정녀" "찬송하올 동정녀"로 부르며 찬미한다."

교회의 성전과 교도권의 가르침은 마리아의 육체적 동정이 예수의 탄생에서 보전되었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그리고 이 육체적 동정은 임마누엘이 가져다 주신 완전한 기쁨과 마리아의 자발적인 동정 봉헌의 구체적인 표시로 보아야 한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의 깊은 이유를 이해하려면,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신 말씀에 대해 전인적인 응답을 하셨던 마리아의 위대성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마리아 사전』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