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그레고리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그분에 대해 말하는 데에 내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2201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그분에 대해 말하는 데에 내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주님이 이 말씀에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파견하시는 사람들을 파수꾼이라고 일컬으시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파수꾼은 접근해 오는 것을 먼 데서 보기 위해 늘 높은 곳에 서 있습니다. 백성의 파수꾼으로 세워지는 사람도 자기의 열심한 생활로써 높은 데에 서 있으면서 모든 것을 살피고 다른 이들에게 유익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이 말은 나에게도 정말 마음을 찌르는 말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내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힙니다. 내 입은 설교의 직분을 제대로 이행치 못하고 또 내 생활은 내 입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실행치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죄과를 부인하지 못하겠습니다. 내 게으름과 등한함을 시인합니다. 이렇게 내 죄과를 인정함이 자비로우신 판관 앞에 아마도 내 죄에 대한 용서의 청원이 될지 모릅니다.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내 입에서 쓸데없는 한담을 막을 수 있었고 또 내 마음을 거의 계속적으로 기도의 정신 안에 몰두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어깨에 사목직이라는 짐을 메게 된 후부터는 내 마음을 잡아당기는 일들이 많아서 그것을 내 안에다 자주 집중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당과 수도원들에 대한 소송문제를 상의해야 하고 때로는 개개인의 생활 및 행위에 대해 생각해야 하며, 세속사에 관여할 때가 있는가 하면 야만인들의 침범을 우려하여 내 보호에 맡겨진 양 떼를 위협하는 늑대의 무리를 두려워할 때도 있습니다. 한편, 법의 통치를 유지시키는 이들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원조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는가 하면 약탈자들의 횡포를 참아내고 온갖 사랑 안에서 그들을 만나 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도 숱한 중대한 일들에 산산이 흩어져 갈갈이 찢어진 내 이 정신은 어떻게 내 안에 들어가 완전히 설교의 직분에다 바쳐져 그 직분에서 멀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 지위가 지니는 성격으로 인해 나는 자주 세상 사람들을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내 입을 통제하는 일에 소홀해지기도 합니다. 내 직분에 따른 근엄한 외적 자세를 취한다면 약한 이들은 나를 피해 버리어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그 목표에로 그들을 결코 이끌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 나는 자주 그들의 잡담을 인내심 있게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 역시 약한 자이기 때문에 차차 그 잡담에 끌리어 예전에 듣기조차 싫어했던 그런 것들을 즐겁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한때 넘어지기 싫어했던 곳에서 편히 누워 있기를 좋아하는 셈이 됩니다.

열심한 생활이라는 산 위에 서 있지 않습니다. 아직도 내 약점이라는 골짜기에 누워 있는 비참한 이 내 몸은 어떤 종류의 파수꾼이란 말입니까? 그러나 인류의 창조주요 구속자이신 분께서, 내 비록 부당하다 해도, 거룩한 삶의 정상에 서 있을 은총과 내 입이 효과 있게 설교할 능력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나는 그분께 사랑 때문에 그분에 대해 말하는 데에 내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에제키엘서에 대한 강론’에서  (Lib. 1,11,4-6: CCL 142,170-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