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이 시대의 괴물 '탐욕'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2436



긴 장마가 끝이 났습니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지난 2006년 여름 이맘때 ‘괴물’이라는 영화가 1,300만이나 되는 관객을 모았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화 속 괴물은 한강의 오염으로 태어난 돌연변이였습니다. 괴물은 결국 불화살을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만 따지고 보면 그 괴물은 환경파괴의 주범인 인간이 만들어 낸 생명체였습니다. 긴 장마 끝에 경험해 보지 못한 폭염과 예측할 수 없는 폭우를 경험하며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발명품 가운데 가장 파괴적인 것은 무엇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인간의 편리와 이기를 위하여 마구 쓰고, 버리고, 허무는 이 시대의 괴물, 가장 파괴적인 것은 바로 ‘탐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는 코헬렛의 이야기는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부정하는 허무주의, 얀세니즘적인 인상을 심어 줍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알아들어야 합니다. 왕조 시대에는 땅, 인간, 하느님의 창조물 모두가 하느님의 아들, 왕의 것으로 여겼습니다. 코헬렛이 쓰여진 기원전 3세기경에는 세금을 과다하게 매겼고 많은 사람들은 빚을 지거나 심지어 노예 살이로 전락해야 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소유로 여겨 골고루 나누고 서로를 섬기며 살았던 씨족 공동체가 왕조(권력)의 등장으로 파괴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코헬렛의 설교자는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가지고 애쓰고서는 애쓰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사람,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도 그의 마음은 쉴 줄을 모르는 이”(코헬렛 2장21절-23절)들을 향해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렛 2장21절)하며 한탄합니다. 세상의 것(권력, 물질, 명예)이라 해서 모두 무조건 허무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조직이나 단체 개인이라도 나눔과 섬김이 필요한 사람들을 잊거나 외면하고 사는 바로 그 순간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오늘 제2독서는 사도 바오로가 거짓 가르침과 환상에 현혹되어 살던 콜로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는 고대 근동에서 자주 사용되던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린다”(10절)는 표현을 빌려 원래의 모습과는 달리 왜곡되고 변질된 삶을 버리고 본래의 모습, 새로운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온갖 욕망(콜로새 3장5절)을 버리고 비워야 그리스도를 닮은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콜로새 3장10절). 하느님 앞에서 일으켜 지려거든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콜로새 3장5절). 그러나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죽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남을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세상은 초월적 세상, 유토피아, 피안의 세상, 저승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이미’ 시작 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늘 일구고 가꾸어 가야할 하느님 나라입니다.

오늘 복음이 담겨있는 루카 복음 12장은 주로 제자들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복음은 탐욕에 대한 경고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는 안중에 없으면서 오히려 형에게 받을 것만을 생각하며 재산의 분배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장15절)고 가르칩니다. 오히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장21절)에게 “오늘 밤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루카12장20절)이라고 경고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부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탐욕이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지 못하고 쌓아둔 부는 사람의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생명은 탐욕의 결과로 얻어지는 물질적 소유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만’의 창고에 몇 년 동안 실컷 먹고 마시며 즐길 만 하도록 “쌓아둔 재물로 인생을 만끽하더라도 하느님은 그를 비웃으신다”(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 되겠습니까?

------------------------------------------------------------------

안동교구 김영식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