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깨어 있기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2315



학창시절에 시험 때가 되면 밤잠을 포기하고 공부를 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을 제대로 실행한 적은 없고,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들어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무언가에 몰두하며 며칠씩 밤낮으로 깨어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복음 말씀을 포함하여 오늘의 모든 성경 말씀들이 우리들에게 ‘깨어 있기’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깨어 있기는 영적으로 잠들어 있지 않음으로써 눈앞에 다가온 ‘현실’의 이면까지도 꿰뚫어 보고 올바르게 대처함을 의미합니다. 제1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로부터 해방되었던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그 밤”(지혜 18,6)에 모든 것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의 지시에 따라 떠날 준비를 하였던 것은, 파라오라고 하는 절대 권력자의 지배 하에 강요되던 노예생활이 ‘현실’의 전부가 아님을 분명히 인식함으로써 ‘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훼 하느님만이 참된 ‘현실’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제2독서(히브 11,1-2.8-19)는 깨어 있는 삶은 혹독한 시련의 삶이기도 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미래의 것을 약속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하느님의 말씀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히브 11,8) 길을 떠나야 했던 아브라함은 늘그막에 어렵사리 얻은 외아들을 봉헌하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처럼 깨어 있는 삶을 살았던 구약의 수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고 믿음만으로 살다가 죽어갔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히브 11,13)처럼 살다가 떠난 이들이지만 이들은 결코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현실의 전부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복음 역시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이야기를 통해서 또 다른 관점에서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더 많은 은사를 받아 교회 안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크고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하는 말씀도 있습니다(루카 12,41-48).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언젠가 돌아오실 주인 앞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 셈을 바쳐야 합니다. 우리 삶의 바탕인 시간은 어느 순간이나 하느님의 영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복음은 이 사실을 “도둑이 언제 올지 모른다”, “준비하고 있어라”,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라는 표현을 통해 설명합니다(루카 12,39-40). 하느님은 언제라도 우리의 시간 안으로 들어와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시고 우리의 잘잘못에 대해 판결하실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섬세한 감각’을 통해 세상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약속을 희망하며, 영적인 긴장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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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 요셉 신부·서울대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