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회]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2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들 작은 양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루카 12,32-­48)

묵상

조카의 대부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또 길을 가던 대학생이 이야기 중에 친구를 한 대 쳤는데 맞은 사람이 넘어지면서 뇌를 다치는 바람에 숨졌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침에 건강하게 나갔던 사람을 시신으로 맞아들여야 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을 사고 순간에서 5분만, 아니 단 1초 만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래서 사고를 피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간절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서쪽으로 달려가서 지는 해를 붙들어도 되지 않는 일입니다.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루카 12,39)

만약 내가 언제 세상을 떠날지 안다면, 그래서 내게 단 하루 24시간이 남아 있다는 걸 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소중한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분도 있겠지요. 이 세상을 떠날 사람은 남아 있는 가족이 너무 상심하지 않도록 해주고, 남아 있는 가족은 떠날 사람이 마음 편히 갈 수 있도록 해주면서 서로에 대한 용서와 사랑,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관계가 ‘만약’이라는 가정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관계 면에서 깨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루카 12,40ㄱ)

그런데 집주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올까요? 김수환 추기경은 ‘새벽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이웃 사람의 모습이 예수님의 모습으로 보일 때’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무지막지한 직장 상관의 모습으로, 일을 제대로 못해 애를 먹이는 동료의 모습으로, 지성·감성·의지·외모·부까지 다 갖추어 질투 나게 하는 잘난 사람의 모습으로, 출근길에 마구 끼어드는 얄미운 운전자의 모습으로, 마주쳐도 인사 한번 하지 않는 이웃 사람의 모습으로, 불친절한 점원의 모습으로, 피곤한 아내(남편)의 모습으로, 말썽 피우는 자식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볼 눈이 있다면 ‘생각지도 않은 때’에 ‘생각지도 않은 모습’으로 오시는 주인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을 때 만났던 한 자매님의 나눔이 떠오릅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저녁, 기도모임에 참석한 뒤 고속도로로 한 시간 정도 가야 하는 집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답니다. 비는 이미 그쳤지만 시멘트 계단은 아직 축축하게 젖어 있었는데, 한 멕시칸 노숙자가 15달러만 주면 어디 가서 잠을 잘 수 있겠다며 구걸을 했습니다. 자신의 주머니에는 50달러짜리 지폐가 한 장 있었지만 그 돈은 꼭 쓸 데가 있어 줄 수가 없고, 잔돈은 하나도 없어 난감해하다가 내려오던 교우들에게 그 사정을 말했답니다. 3명이 5달러씩 내면 되겠다 싶었지요. 그리고 5달러를 빌려 달라고 했는데, 교우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저런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서둘러 가버렸답니다. 자매님은 순간 화가 났답니다. 기도모임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자기 식구들을 위해서는 미사예물 20달러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자매님은 그만 앞뒤 생각지 않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노숙자 손에 50달러를 꼭 쥐어주면서 ‘이런 대접받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오늘 밤 따뜻한 곳에 가서 쉬라.’고 사과했답니다. 노숙자는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돈을 받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자매님은 그에게 억지로 돈을 쥐어주고는 차를 타기 위해 황망히 물기 젖은 마당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얼마 안 가 바닥에서 100달러 지폐를 주운 자매님은 그것마저 그 사람한테 주기 위해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더군요. 그날 그 자매님에게 예수님은 분명히 노숙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 12,37ㄱ)

어떤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일까요? 저는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2독서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났습니다.”(히브 11,8) 아브라함은 오랜 기다림 끝에 사라한테서 약속의 아들 이사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10여 년 후에 그는 기쁨의 아들, 약속의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을 당했습니다. 믿음이, 기다림이 최고의 시련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시련을 즉각적인 순종으로 통과했습니다.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히브 11,9)에서 보듯 아브라함의 삶의 자세는 언제나 하느님의 부르심과 요구에 즉시 응답할 태세를 갖춘 준비된 자의 모습입니다. 그의 순종은 하느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주인이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듯 주인의 목소리가 들리면 즉시 문을 열어드립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 12,37ㄱ)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