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2270



묵상길잡이: 그리스도교는 현실에 안주하는 종교가 아니라, 현실을 하느님의 뜻 아래 변화시키는 종교이다. 세상을 구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뛰어드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은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한 사람은 될 수 없는 것이다.

1. 이벽 성조의 신앙적 고뇌

우리나라의 천주교 신앙전래는 외국의 선교사가 오기 전에 우리 선조들이 스스로 학문을 연구하던 중 진리를 깨닫고 신앙의 길을 찾았다는데  그 특성이 있다. 천진암 주어사에 모여 강학회(講學會,요즘의 세미나?)를 하는 등 학문을 연구하던 선비들 중에는 권철신 권일신 정약전 정약종 김원성 이벽 이승훈 등이 있다. 이들은 이승훈을 북경으로 보내어 세례를 받아오도록 하였다. 이들 중 ‘광암’ 이벽은 ‘죽하공’ 이부만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유교를 숭상하는 선비 가문에 서양 오랑캐들의 학문을 하는 이단아(異端兒)가 생겼다고 하여 아들 이벽을 가문의 수치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아들을 누구를 만나거나 문밖출입 못하게 하였다. 아들 이벽이 방에서 단식하며 결심을 꺾지 않자, 이벽의 아버지는 스스로 목을 매 자살을 기도하기에 이르렀다. 이벽은 할 수 없이 하느님께 대한 스스로의 믿음은 어쩔 수 없으나, 다른 사람에게 천주교를 선전하지는 않겠다고 아버지께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벽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는 성서의 말씀을 생각하며 괴로워한 나머지 결국 건강을 잃고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그는 유교에서 말하는 상제(上帝)가 바로 천주님이라고 확신하였기에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으신 임금님을 모른다고 배신할 수 없었다.

2. 그리스도교는 세상을 바꾸는 종교이다.

일찍이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을 쓴 미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충돌 이론’을 말한 바 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의 이 혼란은 세상 종말의 징조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문명이 퇴조하고 새로운 문명의 물결이 들어옴으로 일어나는 과도기적인 혼란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사를 보면 그리스도교가 어떤 나라에 들어가면 항상 그 나라의 기존 문화와 충돌을 일으키며 갈등을 빚었고, 그것은 곧 박해로 나타났다. “짐(朕)이 국가다.”는 말이 있듯이, 황제나 왕이 절대권을 휘두르던 봉건체제 하에서 “황제나 왕도 하느님 앞에서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고 믿는 신자들은 임금을 우습게 보는 대역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자기 집 하인을 같은 하느님의 자녀로 생각하여 노비(奴婢)신분에서 풀어 자유를 주는 일 등은 반상(班常)의 신분 차가 뚜렷하던 그 당시로서는 사회의 근본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천주교를 뿌리 채 뽑아버려야 한다고 단정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뛰어드신 분이시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교는 계시의 빛 아래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키며 세상의 질서를 개편하는 종교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항상 박해를 면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순교의 피로 얼룩진 역사일 수밖에 없었다.

3. 하느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있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시며,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복음의 말씀을 흔히 ‘칼의 복음’이라고 한다. 얼핏 생각하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말씀으로 들린다. 그러나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본질적인 면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도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에 안주하였다면 결코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신자는 세상에 살면서도 참으로 세상에 속한, 세상에 안주(安住)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신자들도 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결혼하고 자녀 낳고 직장생활하며 같은 아파트에 살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인양 모든 희망을 세상 것에 두고 산다면 그는 참된 의미의 옳은 신자는 아닌 것이다. 그는 세속 사람과 꼭 같아져버렸기에 세상에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사람이며, 빛과 소금의 구실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만일 일상의 생활 안에서 신앙인으로, 신앙인답게 살기 위해 내가 겪는 어려움과 희생이 없다면 나는 이미 세상에 안주하며, 세상에 속한 사람이 되어버렸음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은 양다리 걸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완전한 결단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마산교구 유영봉 몬시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