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하늘나라엔 어떤 기득권도 인정되지 않는다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2372

묵상길잡이 :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선택된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가 참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많은 이방인들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었다. 하늘나라엔 어떤 기득권도 인정되지 않는다.


1. 연옥에서 만난 주교님

본당에서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는 한 아주머니는 본당신부님을 항상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본당 신부도, 그 아주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연옥에서 그 신자가 본당신부님을 만났다. 그런데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높고 먼 곳에 계셨던 본당신부님을 연옥에서 만나다니, 한동안 정신이 멍하였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본당신부님께 달려가서 “신부님, 저는 신부님 본당의 신자였는데, 신부님이 이곳에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잘 아는 신자 방문이라도 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신부님은 “쉿! 조용히 하세요. 저기 우리 주교님도 계셔요.”하였다고 한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주교님도 아직 연옥에 계셨다.

이 이야기는 물론 꾸르실료 교육 때 할법한 우스개 소리지만,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없지 않다. 인간 세상에서는 신분과 직책의 고하(高下)나 빈부귀천(貧富貴賤)에 따라 사람대접도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어떤 기득권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2. 꼴지가 첫째 되는 이변

이 세상에도 예상을 뒤엎는 사태들이 많다. 선거 때마다 모든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의 투표소 출구조사에서조차 당선이 확실시된다는 후보가 의외로 고전하고 낙선하는가 하면, 가망이 없어 보이던 후보가 의외로 민심의 지지를 얻어 당당히 당선되는 예를 많이 본다. 불교의 역사를 보면, 불교의 여러 종파 중에서 선종(禪宗)은 깨달음을 얻은 큰스님이 조사(祖師)로 추대되고, 방장(方丈)이 되어 대대로 전수되어 왔다. 그래서 「달마」 대선사(大禪師)로부터 시작하여,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 「마도조일」 등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과연 누가 다음 대를 잇는 조사(祖師)로 추대되어 방장이 될 것인가?」하는 것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조사(祖師)는 수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깨달음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공안(公案)을 내걸고 선문답(禪問答)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평소에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부엌에서 불이나 지피던 화부(火夫)나 주방장들이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인정받아 조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통해 무욕(無慾) 무념(無念)의 경지를 얻고, 진정한 혜안(慧眼)을 갖는 득도(得道)의 길은 세상의 출세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은 얼마 안 되겠지요?”하는 질문에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쉽고 편하여 많은 사람이 택하는 길보다는, 어렵고 힘들어 사람들이 외면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선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13,30)고 말씀하신다.

인간 사회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학벌, 재산, 사회적 지위, 가문, 미모 등등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사람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비굴하게 행동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자신에게 남보다 나은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나는 너와 다르다.”를 강조하며 “네가 감히 나와 맛 먹으려고?” 하는 자세로 얼마나 으스대고 잘난 체 하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하느님께 선택받은 민족임을 내세우며 비뚤어진 선민(先民)의식으로 꽉 차 있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자렛 촌놈’으로 여겨 배척하였다. 결국 첫째는 꼴찌가 되고, 이방인들이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던 것이다.

하늘나라에서는 인간 세상의 어떤 기득권도 인정받지 못한다. 오래된 구교우 집안이라고, 집안에 신부 수녀가 많이 났다고, 재산이 많다고, 본당 간부나 직책을 오래 역임했다고 하늘나라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주님께서는 “동녘이 서녘에서 사이가 먼 것처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참으로 구원될 사람들 중에 들기 위해서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철저히 하느님의 뜻을 받들며 살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죽는 십자가의 길 , ‘좁은 문’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쉽고 편한 것이 = 좋은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마산교구 유영봉 몬시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