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그리스도 신앙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2567

“많은 사람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 하여라.” (루가 1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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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집주인이 문울 닫아버리면 열어달라고 애원해도 소용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집주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을 열어 달라는 사람들은 주인을 안다고 주장합니다. 주인과 함께 먹고 마셨고 자기들의 동네에서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주인은 그 사람들을 모른다고 말합니다. 주인이 사람을 알아보는 기준은 그 사람이 자기를 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인은 사람의 삶의 빛깔을 보고 그 사람을 알아봅니다. 보지는 못하였어도 삶의 빛깔이 같은 사람들은 “사방에서 모여들 것”이라고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인류역사가 있으면서 사람들은 신(神)에 대해 줄곧 상상하였습니다. 유능한 인간이 행세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신을 모든 일에 유능한 분, 그래서 전능한 존재라고 상상하였습니다. 높은 사람이 군림하는 것을 보고 신을 높은 분, 곧 지고(至高)한 존재라고 상상하였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가 법을 주고 그 법에 따라 심판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신이 법을 주고 법대로 심판하고 벌 줄 것이라 상상하였습니다. 높고 강한 사람에게 사람들이 공물(供物)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를 바치는 것을 보고 신에게도 제물을 봉헌해야 한다고 상상하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런 신을 가르치면서 그 그늘에서 신의 이름으로 법을 주기도 하고 제물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느님은 인간 상상이 만들어낸 그런 신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가르쳤습니다. 하느님이 사랑하고 자비로우신 분이라 그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여 하느님의 질서가 살아 있는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실현되도록 하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2세기 어느 신앙인 한 사람은 하느님 나라의 실천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습니다. “이웃을 탄압하며 약한 자를 짓밟고 재산을 축적하며, 아랫사람들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행위 등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도 않고, 하느님을 본받는 행위도 아닙니다. 이웃의 짐을 대신 지는 자, 이웃에게 베푸는 자, 자기가 받은 것을 이웃이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내어주는 자, 이런 사람은 그 혜택을 받는 사람 앞에서 하느님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진실로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입니다”(「디오그네토스에게」,10,6). 그런 본받음이 있는 곳에 하느님의 질서가 실천되는 하느님 나라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이 베푸시듯이 우리도 이웃에게 베풀어서, 하느님이 사랑하시듯이 우리도 사랑해서, 하느님의 일이 우리의 삶 안에 살아있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주인이 사람을 알아보는 기준도 바로 이 본받음이 보이는 삶의 빛깔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인류가 상상하는 신을 믿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높고 지엄하신 하느님이 계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서 그 아들을 통해서 빌면 하느님으로부터 더 많은 은혜를 얻어 낼 수 있다는 신앙이 아닙니다. 각자가 하느님으로부터 재주껏 혜택을 받아내어 자기 한 사람 잘 되겠다는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느님의 나라에 매료된 사람입니다. 그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사랑과 자비가 우리의 삶 안에 살아 있게 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본받음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얻어내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물을 얻고, 지위를 얻고, 건강을 얻는 것이 구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실(失)이 아니라 득(得)이 구원으로 보입니다. 오늘 복음은 많은 사람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 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실이 아니라 득을 주는 구원을 찾아 나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노력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소수의 사람이 그 의미를 알아듣고 찾을 수 있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좁은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재물과 지위를 잃을 수 있는 것은 아무나 알아듣고 행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많은 사람이 들어가는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사랑과 자비는 자기 스스로를 잃으면서 실천 가능합니다. 소수의 사람이 들어가는 좁은 문입니다.  

우리는 재물과 지위를 하느님과 혼동합니다. 그런 것을 하느님이 주시는 특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잃었을 때 하느님이 거두어가셨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는 좁은 문은 재물과 지위와 혼동되지 않은 하느님에게로 통하는 문입니다. 그런 것과 혼동되지 않는 하느님을 택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문입니다. 사랑하고 자비하신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 문은, 우리가 쉽게 탐내는, 재물과 기적으로 통하는 문이 아닙니다. 보잘 것 없는 이, 그러나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면서 들어가는 문입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신앙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면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운동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도 사랑하고 자비를 때때로 실천합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를 배워 실천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교회 제도 안에 몸담는 일도 아니고 기적을 얻어내는 일도 아닙니다. 하느님께 빌어서, 좀 더 잘 살아보겠다는 길도 아닙니다. 사랑과 자비는 자기 스스로를 잃게 합니다. 득이 아니라 실을 갖다 주는 길입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의미와 보람을 깨닫는, 좁은 문이 열어주는 길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특혜를 받아내는 길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를 위해 자기 스스로를 잃을 줄 아는 사람들의 길입니다. 득을 찾지 않고 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좁은 문이 열어주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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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서공석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