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내 믿음의 정도는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2363

찬미 예수님!
형제 자매님, 한 주간 동안 주님 사랑을 많이 느끼면서 행복하게 잘 지내셨죠? 날씨도 가을을 느끼게 하는 좋은 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태풍 '크로사'가 올라온다는 뉴스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제발 한반도를 비켜가기를 모두가 한 마음으로 바라겠죠. 우리의 바람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면서 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의 전례 독서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새롭게 점검해보길 권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큰 위기가 닥치면 하느님을 원망하고 신앙에 회의를 느끼면서 믿음이 흔들림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하바쿡 예언자를 통해서 나의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이라 하더라도 당신이 우리 위에 세우신 계획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믿으라고 촉구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적인 판단을 접어두고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복음에서 사도들은 예수님께 믿음을 더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선문답 같은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의 뜻은, ‘믿음은 우리가 지닐 수 있는 인간적인 어떤 능력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바다에 심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하느님께서는 이루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어지는 종의 비유에서는 종이 주인을 위한 일을 먼저 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우리도 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일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행하는 것이 믿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우리가 하는 당연한 일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인간적인 눈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삶의 새로운 깊이와 의미를 깨닫고 참된 기쁨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지금 우리의 가정생활을 돌아봐도 금방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스럽던 아내가 언젠가부터 세상에서 가장 보기 싫은 사람으로 변해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스럽던 남편이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었고 앞으로 기쁨만 주리라고 믿었던 자식이 나의 가장 큰 슬픔의 원인이 되어있습니다. 나의 삶에 있어서 가장 튼튼한 버팀목이라 여겼던 부모님이 내 행복의 걸림돌이라 여겨집니다.  

세월이 상대방을 변화시켜놓았을까요? 아닙니다! 상대방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바뀌었고 내 기대치가 달라진 것입니다. 처음에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고자 했을 때는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내가 채워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단점까지도 좋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한 가족으로 묶어주시면서 가지셨던 뜻입니다.  

가족은 완전한 사람들 끼리 모여서 사는 이상적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서로 부족한 사람들이 함께 서로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상대방을 앞세워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자 노력하면서 하느님의 뜻, 곧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또 상대방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뜻이고 사랑하는 시선이 바로 예수님의 시선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우리 마음에서 꺼져가는 사랑의 불길을 다시 지펴야 합니다. 그러면 쳐다보기도 싫어진 아내가 다시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나의 분신으로 보이고, 무능하게 보이던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듬직한 후견자가 될 것입니다. 말썽꾸러기로 변했던 자식이 다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로 변할 것입니다. 부모님은 더 이상 내 행복의 걸림돌이 아니라 여전히 내 인생의 선생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이렇게 함께 생활하고 있는 가족들, 우리 주변의 형제들은 내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문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나의 모난 면이 깎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흙 속에 묻혀 있는 돌은 모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닷가의 돌들은 모두 동글동글 합니다. 하루에도 수천 번 몰려오는 파도에 휩쓸릴 때마다 서로 부딪혀서 깎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이런 기사를 봤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때려주세요." 이란 테헤란의 한 여성이 법정에서 남편에게 '일주일에 한 번만 때려 달라'는 특이한 요구를 했다고 인도 언론 <익스프레스 인디아>가 보도했다. 이 여자는 신체적 학대를 받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마조히즘적 성향을 가진 변태로 오해받았지만 이 요구 뒤에 숨겨진 뒷이야기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마르얌 제이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남편이 매일 밤 폭력을 행사해 견딜 수 없다. 제발 매일 때리지 말고 일주일에 한 번만 때렸으면 좋겠다."고 증언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으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남편의 폭력이 점점 심해졌다"며 남편을 법정에 세울 수밖에 없었음을 밝혔다.이 여성이 '때리지 말라'가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만 때리라'는 요구를 한 이유는 남편의 폭력 성향이 선천적이라 고칠 수 없다고 믿기 때문.  그녀는 "이혼은 원하지 않는다."며 "일주일에 한 번 맞는 것은 참을 수 있으니 남편이 그것만 지켜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남편을 용서할 것이다"고 말했다. 남편은 끝까지 관용을 베풀어준 아내에게 감동해서 법정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결국 사랑이 폭력을 이겼음을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그 부인이 “나는 더 이상 같이 살 수가 없다. 그러니 이혼을 허락해 달라.”고 청원을 했다면 결론은 전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 남편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모욕했다고 그 부인에게 더 심한 폭력을 행사했을 것입니다.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금 행복하십니까?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시는 분은 신앙생활을 잘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우리 신앙생활의 척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당신의 뜻을 이루면서 행복을 누리도록 우리를 지금의 가정으로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행복을 누리도록, 바오로 사도는 2독서에서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가르침을 정리하시면서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미움과 저주, 시기나 질투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지 말고 사랑의 눈으로 바라봅시다. 그리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입시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의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행복해지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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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박영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