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네 닭을 잊었느냐?”
작성자 : ocatholic 조회수 : 2376

고해소에서 교우들을 기다리다가 읽은 책 속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 문 앞에 섰는데, 우리의 수문장 베드로 사도가, “자네! 죄가 너무 커! 들어올 생각도 말게!” 하고는 문을 닫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죄인은 급히 한 손으로 그 문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뒤춤에서 뭔가를 꺼내 사도에게 보이며 말하였습니다. “사도님! 그 새 이놈을 잊으셨습니까?” 눈을 돌려 그것을 본 베드로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아무 말도 못하고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가 꺼낸 것은 바로 “닭 한 마리”였던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웃기는 했지만 속은 편치 못했습니다. 사실 죄로 따지자면 저도 만만치 않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면서도 그 은총을 자주 잊고 사는 것 역시 남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어떤 때는 제 알량한 지식의 틀 안에 주님을 가두기도 했으니,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요르단 강에서 몸을 씻으라는 엘리사의 말대로 하여 나병을 고치고, 물보다 앞서신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야말로 참된 주님이심을 깨닫고 믿음을 고백하며, 그 땅의 흙을 통해서나마 자신에게 베푸신 주님을 경배할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 납니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당신께서 사랑과 자비의 신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께 다가오며 자비를 청한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율법대로 사제들에게 가서 보이라는 말씀을 따릅니다. 그 모두가 말씀대로 하여 병이 나았지만, 정작 그분께 돌아와 하느님을 찬미한 이는, 율법과 상관없는 한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율법을 넘어서 계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깨닫고 믿는 것이 진정한 구원의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다윗의 후손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한 것도, 구원은 옛 문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성실하신 사랑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변함없음을 믿는다면, 우리도 자신의 “선하지 못한 온갖 틀”을 부술 수 있어야 합니다. 겉만 새롭고 속은 여전하다면, 주님 곁을 슬쩍 떠난 아홉 명의 나병환자나 “새벽 닭”을 잊은 베드로와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을 잊지 말고, 꾸준함과 인내로 그 은총을 이웃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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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강진구 야고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