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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위한 헌사
조회수 | 1,115
작성일 | 13.06.24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했는데, 그들이 동거하기 전에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롭고 마리아(의 일)을 폭로하기를 원치 않았으므로 남몰래 그를 소박하기로 작정했다.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마침 꿈에 주의 천사가 나타나서 그에게 말했다. “다윗의 아들 요셉, 두려워하지 말고 당신 아내 마리아를 데려가시오. 그 속에 수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당신은 그 이름을 예수라 하시오. 사실 그는 자기 백성을 그 죄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난 것은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으니, 그는 말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요셉은 잠에서 깨어나 주의 천사가 그에게 일러준 대로 자기 아내를 데려갔다. 그러나 그는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녀와 동침하지 않고 지냈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다.” (마태 1,18-25)

해설

예수 탄생에 대한 이야기다. 탄생 장소가 나타나지 않는데, 베들레헴(마태 2,1)을 전제하는 것 같다. 천사, 탄생, 이름 지음, 이름의 뜻에서 이스마엘 탄생(창세 16,11), 이사악 탄생(창세 17,19) 이야기와 비슷하다. 그러나 두 가지는 다르다.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으로 인한 것이고. 예수는 임마누엘이라 이름을 받았다.

유다인의 약혼(erusin)은 결혼의 시작이어서 배우자들의 법적 관계가 이미 시작된다. 그래서 마리아는 아내라고 불러진다. 약혼 나이는 여자는 보통 12~13세, 남자는 18~24세였다. 약혼 후 여자는 부모 집에서 부모 권한 아래 살다가 1년 후 결혼한다(nissuin). 그 기간에 약혼녀가 성관계하면 간음한 여인으로 여겨졌다. 마리아의 임신은 요셉과 무관한 것이다.

요셉의 반응에 대한 설명에서 성서학자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화가 난 요셉이 마리아와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그러나 공식적으로 두 명 증인 앞에서 이혼 서명하는 것은 생략하려 했다는 것이다. 주로 개신교 성서학자들이 이런 의견을 펼친다. 하느님이 마리아에게 큰 계획을 가지신 것을 알게 된 요셉이 영광에 대한 두려움 탓에 이혼을 결심했다는 해석도 있다. 주로 가톨릭 성서학자들이 이런 의견을 펼친다. 잉태 전에 요셉이 천사에게 말을 들었는지 여부가 해석의 관건이다. 본문에서 뚜렷하게 그 시점을 알기는 어렵다. 요셉의 태도는 율법에 대한 충실 또는 하느님 계획에 대한 존중으로 볼 수 있다. 두려워 말라는 천사의 말은 요셉의 태도를 하느님 뜻에 대한 존중으로 해석하게 한다.

(그리스도교에서 흔히 쓰이는 순종, 복종이라는 단어를 나는 사용하지 않겠다. 그 단어가 본래 의도와 다르게 잘못 쓰이는 경우가 흔하고, 노예 윤리를 훈육하는 듯한 연상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순종 대신 존중이라는 단어를 쓰겠다.)

Jehoschua의 약칭인 히브리어 Jeschua는 ‘하느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예수는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구절이 나온다. 백성들 사이에 있던 메시아 기대와 같지 않고 모세의 메시아 역할과도 다르다. 마태오는 여기 백성(laos)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새로운 백성, 즉 교회를 생각했을까. laos는 마태오에서 대부분 부정적인 경우(마태 13,15; 15,8; 27,25), 또는 예수와 거리를 두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마태 26,47; 27,1). 새로운 백성을 가리킬 때 마태오는 etnos를 쓴다(마태 21,43). 천사가 꿈에 나타나는 것은 독특하다. 이것은 이른바 꿈 심리학과는 관계없다. 마태오는 꿈을 선호한다. 그리스 문화에 영향을 받은 독자들을 위해서 그랬던 것 같다.

성령으로 인한 잉태는 요셉이 이미 알았던 사실이 아니라 마태오가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정보이다. 이것은 예수의 혼외 탄생에 대한 유다인들의 오해를 방지하려는 구절이다. 유다교 랍비문학에 예수는 판데라(pandera) 또는 판테라(Pantera)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있다. partenou(동정녀)라는 그리스어를 혼동해서 생겨난 것 같다. 예수는 로마 군인 판데라의 아들이라는 전승도 여기서 생겨난 듯하다. 오늘도 여전히 이런 입장을 고집하는 유다인 학자들도 있다.

‘성령으로’라는 단어에서 ‘~으로, ~에서’를 뜻하는 그리스어 전치사 ek는 물질적인 근원이나 출처를 연상케 할 수 있다. 성령이 마치 임신에 필요한 초자연적인 물질로 오해될 수 있다. 문법적 단어와 물리적 존재가 뒤엉키는 한 사례다. ‘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녀와 동침하지 않았다’는 문장에서 아들을 낳은 후 동침했다는 결론을 논리적으로 이끌어낼 수는 없다.

태어난 아기 예수가 중심이 아니라 어떻게 탄생했느냐라는 의학적 관심이 갑자기 사람들에게 등장했다. 마리아 처녀탄생도 이와 같은 불필요한 곡절을 겪고 있다. 성서 본문이 말하려는 의도와 신자들이 성서에서 받아들이는 것 사이의 차이가 이처럼 크게 드러난 성서 구절도 드물다.

성령 잉태와 처녀탄생이라는 본래 서로 연관될 필요가 없는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학자들은 종교역사를 살펴보곤 하였다. 이집트에서 연유한 처녀탄생 설화가 그리스 문화에 영향 받은 예수 추종자들에 의해 그리스도교에 흘러들었다는 설명도 있다. 당시 위인들은 처녀에게 탄생한다는 신화가 흔했다. 플라톤이나 알렉산더 대왕 같은 위대한 사람은 모두 육체적인 아버지 없이 탄생했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여인들이 신들과 성관계를 가져 잉태했다는 것이다. 그런 설화에 보면 예수는 위대한 남성들 틈에 편입될 따름이다. 마리아 처녀탄생 경우는 그런 설화와 다르다. 성령은 히브리어에서 여성이고 그리스어로 중성이다. 여성인 마리아와 여성 또는 중성인 성령이 생물학적으로 임신을 위해 협조한다는 설명은 아예 불가능하다.

마태 1,23에서 그리스어 성서는 처녀를(Jungfrau) 가리키지만 히브리어 성서 원문은 젊은 여인(junge Frau)을 가리킨다. 마태오는 공동성서(구약성서) 그리스어 번역본을 참조하였다.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고백이 중요한데도 사람들은, 특히 현대인들은 처녀탄생이 의학적으로 가능한지를 아직도 묻고 있다. 천지도 창조하신 하느님이 그런 정도 기적도 못하실까.

진짜 고뇌어린 문제는 처녀탄생에 대한 성서의 근거가 희박하다는 사실이다. 처녀탄생에 대한 역사적 질문보다는 그 신학적 의미를 밝히려는 성서학자들이 대부분이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을 존중하여 예수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 마리아 동정 교리의 참뜻이다. 마태오에게 처녀탄생은 신앙의 핵심 요소가 아니라 예수는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을 고백하기 위한 하나의 기초였다.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개입과 참여를 깨닫는 사람에게 처녀탄생은 하나의 생생한 체험 계기로 여겨진다. 하느님의 창조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마리아 처녀탄생을 신학적으로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처녀탄생을 종교 설화로 이해하는 사람이나 의학적으로 질문하는 사람은 아직 마리아 처녀 탄생의 의미를 오해하는 것이다. 마태오는 의학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성(性)노동자 여성(매매춘 여성)이 하느님 뜻을 받아들이면 신학적으로 처녀다. 성 경험이 없는 사람이 하느님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는 신학적으로 처녀가 아니다.

마리아 처녀탄생은 적지 않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고뇌를 안겨주는 주제이지만, 정작 마태오는 이런 모습에 의아할 것이다. 가톨릭의 마리아 동정교리는 예수에 대한 가르침이나 교회론에서 중심 내용에 속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리아 동정교리가 뜻하지 않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분야가 따로 있다. 죄의 문제를 성 문제와 재빨리 연결시키는 가톨릭교회의 모습이 그것이다. 혼전 성관계를 죄라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는 형편이다.

성 문제와 죄를 연관시키는 의도와 마리아 동정교리는 아무런 관계없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금욕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기혼자들보다 더 거룩한 것처럼 자주 오해된다. 그런 불필요한 연상이 사실 큰 문제다. 성직자 우월주의에 대한 근거 없는 토대로 마리아 동정이 언급되기도 한다. 마리아 동정에 대한 잘못된 신학적 이해가 낳은 어색한 풍경이다. 개신교 형제자매들이 마리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존중심을 마리아에 대한 지나친 과장이 방해하기도 한다. 마리아를 과장하기 쉬운 가톨릭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분별력과 자제심을 발휘해야 한다. 지금 가톨릭교회의 마리아 신심은 전반적으로 보면 적절한 정도를 훨씬 넘어섰다.

13~14세, 요즘 중학교 1학년 정도의 어린 소녀가 본인도 모르는 임신으로 얼마나 두려웠을까. 아내가 간음녀로 몰려 돌에 맞아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 요셉은 또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느님의 뜻을 존중하여 인간적 두려움을 이겨낸 두 사람 덕분에 인류는 예수라는 희망을 얻게 되었다. 그들뿐 아니라 용기 있게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헌사를 바친다. 용기가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다기보다 하느님 뜻을 알면 용기가 생기는 법이다.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 뜻을 알기 쉽고 받아들이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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