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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설교자여, 먼저 회개하라!
조회수 | 794
작성일 | 13.06.24
그 무렵에 요한 세례자가 나타나 유다 사막에서 선포하여 “회개하시오. 하늘나라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했다. 이 사람을 두고 이사야 예언자를 시켜 말씀하셨다. “사막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닦고 그분의 길을 고르게 하라.”

그런데 요한은 낙타 털로 만든 옷을 걸치고 그 허리에는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양식은 메뚜기와 산꿀이었다. 그때 예루살렘과 유다 전체와 요르단 부근 전체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가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요한은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의 세례 때문에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했다. “독사의 족속들이여,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당신들에게 누가 일러주었습니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시오. 여러분끼리 ‘우리는 아브라함을 아버지로 모신다’는 말은 아예 할 생각도 마십시오. 사실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하느님은 이 돌에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바야흐로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질 것입니다.

나는 회개시키려고 여러분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강하십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당신 타작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당신 밀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입니다.” (마태 3,1-12)

해설

예수 유년기에서 30여 년 건너 예수가 공식 등장하는 30대 초반 시점에 대한 이야기다. 예수의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은 성서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12살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람들과 토론하는 장면이 루카 복음에 나오긴 한다(루카 2,41-52).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최근 저서 <나자렛 예수> 서문에서 7페이지에 걸쳐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논하고 있다. (루카 복음을 해설할 때 다루기로 하겠다.)

예수의 유년기 성장, 교육, 교우관계, 청년기 사생활 등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 시절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과 관계없다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예수의 그 시절에 대한 각종 소설이 등장했다. 예수가 인도에서 공부했다는 소설도 있었다. 추측은 자유지만 그 타당성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30대 초반에 예수는 세상에 비로소 등장한 셈이다. 당시 평균 수명과 결혼 연령을 고려할 때 요즘 한국에서 50대 연령대에 예수는 공식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는 청년 시절에 세상에 나타났다거나 젊은 나이에 사망한 분이라고 보기 어렵다. 예수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셨다는 설교가 요즘도 드물지 않다. 성서를 잘 모르는 탓에 생기는 실수다.

그런데 예수의 활동에 앞서 먼저 세례자 요한이 소개된다. 예수 운동이 세례자 요한 운동과 공통점이 많다는 뜻이다. 예수는 한때 세례자 요한 동아리에 속했다고 보인다. 예수는 그 문하생으로 출발하여 나중에 그와 결별하고 독자적 운동을 시작한다. 예수와 세례자 요한은 그후 각자 운동을 계속한다.

세례자 요한 사후에 그 제자들은 예수와 관계없이 계속 활약한 듯하다. 예수 사후 예수 제자들과 요한 제자들은 경쟁 관계의 활동을 한 것 같다. 예수 제자들에게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는 고뇌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예수의 12 제자 중 몇 사람은 예수에게 오기 전 요한의 제자들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을 때 이미 예수가 알던 사람들이겠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 무리에서 사람을 빼내온 셈이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를 예비한 역할로 그리스도교는 해석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에 어울리는지 논란의 대상이다.

“그 무렵에”는 마태오 복음서에서 유일한 단어로서 메시아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뜻으로 이해된다(70인역, 예레 38,29). 세례자 요한은 예루살렘이나 성전에서 보이지 않고 사막에서 등장한다. ‘사막’은 단순한 장소 제시가 아니라 세례자 요한의 신학적 입장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하늘나라”는 마태오에게 독특한 단어로서 회개의 근거이자 목표이다. 유다교에도 하느님 나라 대신 하늘나라 개념은 있었다. 유다교는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삼가는 탓에 하느님 나라로 부르지 않고 하늘나라라고 부른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아무리 하느님을 친근하게 생각하고 호칭한다 하더라도, 하느님에 대한 유다인들의 진지한 경외감을 존중할 필요는 있다. 하느님이 그리스도교에선 인플레 상태이고 유다교에선 디플레 상태다.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유다인들의 그런 부담을 마태오는 느끼지 않았다.

세례자 요한의 옷과 음식은 은둔자의 모습이다. 낙타 털옷은 가난한 사람들의 복장이다. 왕이 입던 옷과 대조적인 옷으로 예언자의 옷이다(즈카 13,4). 가죽 띠는 사막에 사는 베두인에게 흔한 모습이다. 가죽 띠는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 직전에 나타난다는 엘리야로 표현하려는 마태오의 의도가 담긴 언급이다.

당시 유다교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 지배체제 아래 활동공간을 찾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요즘 쓰이는 정치적 분류를 빌리면, 유다교 좌파에 독립운동계 제로데파, 유다교 우파는 로마에 적극 협조하던 사두가이파가 위치해 있었다. 그 사이에 은둔파 에세느파, 중도노선 바리사이파가 있다. 사두가이나 바리사이에 가난한 사람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사두가이에서 갈라진 에세느파에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던 유다교 운동으로 사실상 제로데가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유다교 운동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문호를 거의 개방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예수 당시 통계는 없지만, 유다인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고 추측된다. 바빌로니아가 유다 왕국을 정복했을 때(기원전 586년) 유다인 중 90%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고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세례자 요한 운동은 주로 세 가지 관점에서 다루어졌다. 첫째, 반(反)유다교적 운동으로 해석되었다. “유다 사막”을 세상의 사막에서 사는 이방인 구원의 암시로 여기고, 유다교 율법과 제례의 폐지라고 해설했다(히뽈리트). 둘째, 오늘날에도 널리 퍼져있는 ‘세상에서 떠남’이라는 은둔적 해설(그레고리오 대교황)도 사막의 의미와 거리가 한참 멀다. 테르툴리아누스 이래 세례자 요한은 독신자로 규정되어 버렸다. 그가 독신이었는지 여부를 우리는 알 수 없는데 말이다. 셋째, 수도자 생활을 반대해온 개신교는 세례자 요한의 옷과 음식 등 금욕주의가 못마땅하였고, 반대로 가톨릭은 수도회 운동의 근거로 세례자 요한을 긍정적으로 주목하였다. 세례자 요한은 수도원 운동과 아무 관계없었으니, 둘 다 의아한 주장이다. 위 세 가지 관점 모두 세례자 요한 운동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한 것은 아니다.

세례자 요한의 운동은 어떤 주목할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예수가 가담했을까. 첫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권력에 대한 저항. 유다인은 오랫동안 예루살렘을 유다교 본산으로 여겼다. 세례자 요한은 수도권 중심의 종교권력에 반대하여 사막에서 깃발을 내걸었다. 로마 제국에 협조하는 예루살렘 종교권력층에게서 하느님을 찾을 수 없다는 선언이다. 사두가이파와 적대적인 입장이 나타난다. 둘째, 모든 유다인을 초대한 그 개방성.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 입회 가능했던 바리사이나 에세느파와 다르다. 셋째, 자기 개혁에서 종교운동의 시작을 선포함. 로마에 대한 무력투쟁을 우선한 제로데파와 다르다. 저항정신, 개방성, 자기 개혁이 세례자 요한 운동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된다.

오늘 이야기 후반부는 세례자 요한의 설교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오늘 그리스도교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설교는 왜 그리 설득력이 적을까.

첫째, 성서의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설교자 자신의 소감을 전하려 애쓰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성서 지식이 낮고 명예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에 그런 설교가 생긴다. 설교자는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둘째, 설교자 대부분이 개혁 대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설교를 먼저 들어야 할 사람이 남에게 설교하는 모양이니 그 설교가 공감되지 않는 것이다.

셋째, 죄 많은 사람들, 즉 권력자와 부자들에게 너그러움을 전하고, 반면에 소시민 신자들에게 가혹한 심판을 전하기 때문이다. 죄의 경중을 구분하지 못하는 설교는 부당하게 여겨진다.

넷째, 개인의 죄를 지나치게 강조하지만 사회악과 구조문제를 소홀히 취급하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정치적 처신이 정의롭지 못한 상태에서 하는 설교는 부당하게 여겨진다.

다섯째, 예수의 핵심 주제인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란 주제가 설교에서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설교자 자신이 가난하게 살지 않는 탓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설교자의 삶이 흐트러져 있고 성서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설교가 무의미하게 들리는 것이다. 남에게 설교하려는 자는 먼저 스스로 회개할 일이다. 설교를 먼저 자기 자신에게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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