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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 엘리어트
조회수 | 3,697
작성일 | 07.03.28
▶ 신앙 빠진 현대 사회의 공허함 서술  /   유럽 가톨릭 신앙 위기 묘사한 시 ‘황무지’  /  20세기 가장 주목할 작품으로 평가 받기도

베네딕토 16세라는 이름으로, 오랫 동안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던 요한 바오로 2세를 이어 교황으로 선출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재임하면서도 그러했지만 교황으로 즉위한 후에도 자주 언급했던 것이 바로 유럽의 신앙 문제이다.

그리스도교의 뿌리가 깊게 내려 있는 유럽 대륙. 그 모든 문화와 예술,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서 그리스도교, 특히 가톨리시즘의 뿌리는 유럽이라는 대륙 전체와 동일시된다. 유럽 대륙에서 가톨리시즘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얼마나 될 것인가.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자주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상실해가고 있는 유럽 대륙의 불신앙과 세속화를 깊이 우려해왔다. 그것은 비단 교황의 걱정일 뿐만 아니라 유럽의 그리스도교 교회의 가장 커다랗고 직접적인 신앙의 위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황무지, 논란에 휩싸이기도

이러한 유럽 대륙에 대한 신앙적 우려가 가장 잘 드러나 있는 문학 작품의 사례를 우리는 T.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荒蕪地, The Waste Land)에서 발견한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유럽 대륙의 신앙의 부재와 그로 인한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황폐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시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황무지 상태의 정신 상황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종교적 구원의 희망을 묘사한다.

이 시를 둘러싼 논란은 심상치 않을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1922년 자신이 편집, 창간한 문화평론지 ‘크라이티어리언’(Criterion)에 발표한 이 시는 총 5부, 433행으로 구성돼 있다.

시의 제목이자 동시에 배경인 ‘황무지’가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시가 출판되면서부터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현대사회의 공허함, 특히 신앙과 초월자가 빠진 현대 세계와 현대인의 공허를 모더니즘의 기법으로 표상하였다는 것이 통상적인 결론이지만 그가 시의 말미에 황무지에 비가 내리는 희망과 회복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 조차 여전히 진행 중인 논란이다.

또한 20세기 초반에 발표한 이 시가 표상하는 세계가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의 세계와도 연관성을 갖는지, 여전히 그 시가 유효한지에 대해서도 논의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에서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와 세계에 대한 지성인들의 일반적인 판단에 근거해 볼 때 시 ‘황무지’가 제시하는 공허한 세계의 표상은 오히려 오늘날 더욱 진한 공감을 준다.

▶ 국경 넘나들며 작품 활동

영국의 시인 겸 평론가이자 극작가로서 194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엘리어트(Eliot, Thomas Stearns, 1888. 9. 26~1965. 1. 4)는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스위스 아카데미를 거쳐 1906년 하버드대학교에 들어가 철학과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영국 옥스퍼드로 피난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평생 영국에서 살아간 그는 특정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 광범위한 교육을 받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황무지’의 발표로부터이다. 이 작품으로 종래의 미온적인 낭만주의는 자취를 감춰야 했고, 일부 보수적인 시인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20세기 시단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 인도철학, 불교도 배워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의 열쇠는 그의 종교관이다. 본래 유니테리언 집안에서 태어났고 하버드대학교 입학 당시만 해도 무신론주의는 아니었다고 해도 교회에 대한 관심은 별반 없었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며 ‘전통’과 ‘정통’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가장 오랜 그리스도교 역사를 지닌 가톨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유럽 유학을 마치고 와서는 인도철학과 불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1927년 영국에 귀화할 때에는 영국 국교회를 자신의 종교로 선택했는데, 이는 국교회가 배타적인 종교적 진리를 지닌다는 신앙심이라기보다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그리스도교적 전통이 자신에게 더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측면이 더 강햇다.

이후 1932년에는 미국에 돌아가 하버드대학교 시학 교수로 지냈고, 그후에는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문예서적을 전문으로 펴내는 출판사 ‘Favour & Favour’의 중역으로서 영국 문단의 중진으로 활동했다.

시 ‘황무지’는 현대사회의 공허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무미건조한 삶을 표상한다. 무의미하게 삶을 소진하는 현대인들의 황무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요의 신이 재생될 수 있는 기대를 품고 있다.

그런데 그 회복을 알리는 신호는 현대사회로부터가 아니라, 성당 묘지의 조용한 폐허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울림이 커지기를 고대하는 바람은 엘리어트의 것일 뿐만 아니라, 베네딕토 교황 성하의 것이기도 하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것이기도 하다.

▶ 가톨릭 신문 : 2007-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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