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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출신의 다미안(Damien de Veuster, 1840~1889)
조회수 | 2,895
작성일 | 06.10.05
1885년 어느날 밤, 다미안 신부는 언제나처럼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하루를 온전히 나환우들을 위해 바치는 그는 일과를 마치고 나면 항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피로를 느끼곤 하지만 이날은 유난히 무력함을 느꼈다.

피로가 풀릴까 하고 목욕물을 끓인 그는 실수로 뜨거운 목욕물을 양말도 신지 않은 발등에 쏟았다. 아차 하는 순간 그는 가슴이 덜컥했다. 덴 자리에 통증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감각의 상실, 그것은 나병의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엄청난 충격에 그는 옆으로 몸을 눕히면서 흉측하게 일그러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날이 올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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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마저 내놓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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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교수로 성공과 성취로 장식된 인생을 살아가다가 명성과 명예를 버리고 인생의 말년을 정박아 시설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보낸 헨리 나웬. 그가 펴낸 저서 중 하나는 <상처 입은 치유자>이다. 참된 치유를 위해서는 치유자 스스로가 상처를 입어야 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상처 입은 치유자의 최고의 모범이었다.

평생을 나환자들을 위해 살아가다가 급기야는 자기 자신도 나병에 감염된 다미안 신부 역시 그러한 예수의 모범을 따라 살아간 현대의 성자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버리는 일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 12)로 쓰여진 몰로카이섬의 기념비문은 그에게 참으로 적당한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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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환우의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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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 요셉 드 베스테르(Joseph de Veuster). 나환우의 사도이자 현대 구라 사업의 개척자로서 스스로 나병에 걸려 자신이 그렇게도 사랑하고 헌신했던 나환우들과 똑같은 고통을 겪으며 하느님께로 떠나간 다미안 신부는 1995년 6월 4일 벨기에 브뤼셀의 퀘켈베르그 대성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됐다.

그는 벨기에의 한 마을에서 1840년 성실하고 신앙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소박하게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갈 생각이었으나 앞서 수도회에 입회한 형의 영향을 받아 1859년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 수도회’에 입회한다. 회칙에 따라 의사로서 시칠리아섬의 주민들을 위해 살다가 4세기 초에 순교한 다미안으로 세례명을 바꾸었고, 입회 후 벨기에 루뱅과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했다.

그가 입회한 수도회는 주로 해외선교 활동을 해왔는데, 특히 1825년 이래 하와이 군도의 샌드위치섬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었다. 그는 같은 수도회의 형 팜필 신부의 와병으로 형을 대신해 하와이 선교단에 자원해 1864년 하와이로 건너 간 뒤 5월에 호놀룰루에서 사제로 서품된다. 그후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한 다미안은 1865년에는 코할라로 옮기게 된다.

바로 그해 하와이 군도에는 나병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감염된 환자들은 격리 수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거주 여건이 열악해 폭동을 일으키는 등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되고 이런 참상을 전해들은 다미안 신부는 1873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이곳에 가기로 결심한다. 천형의 땅에 도착한 그는 700명이 넘는 나환우들을 위해 그들의 집을 지어주고 의사의 도움도 없이 나환우들의 고름을 짜주고 환부를 씻고 붕대를 감아주면서 버림받은 이들에게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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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마음 열게 한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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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적대심과 경계심 속에서 다미안 신부에게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았던 나환우들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를 희생해가면서 봉사하는 그에게 신뢰와 존경심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와이 정부는 다미안 신부로 하여금 섬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누구도 이 섬을 드나들지 못하도록 했었지만, 차차 이들을 인간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그의 헌신을 통해 교회와 개인들의 정성과 관심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1881년, 하와이 정부는 나환우들을 위해 헌신한 그의 공로를 높이 사 ‘카라키우아’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1885년 자신이 나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이전과 똑같이 나환우들을 위한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거듭되는 과로와 나병의 진행으로 인해 그는 결국 건강을 잃어버렸고 병에 걸린지 불과 4년 남짓한 1889년 4월 14일 세상을 떠난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1893년에는 몰로카이섬에 기념비가 세워졌고, 1894년에는 벨기에 루뱅에 있는 성 야고보 성당에는 동상이 세워졌으며 유해는 1936년 몰로카이섬에서 조국 벨기에로 이장됐다.

그가 평생을 헌신한 몰로카이섬에는 이제 불과 수십명의 나환우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새로 발생하는 나환우들은 이곳으로 보내지지 않고 있으며, 현재의 나환우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 이곳은 역사적인 자연 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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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문 : 200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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