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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빛낸 인물 안중근
조회수 | 2,103
작성일 | 07.01.06
주님! 나라를 위해 저를 바칩니다| “민족 살길은 교육 뿐”…자비털어 학교 설립 | 용맹한 행동으로 ‘한국의 모세’라 불리기도 | “코레아 후라! 코레아 후라! (대한국 만세)”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일본 군경의 삼엄한 경비 속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토마스) 의사는 대한국 만세를 외치고 당당히 죽음의 길을 걸어갔다. 거사에 앞서 그가 총알에 십자가 표시를 새겨 넣고 성공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감옥에서도 이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성호를 그으며 “하느님 감사합니다”며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한국의 모세’, ‘한국의 사도 바오로’라고도 불리는 안중근 의사는 이런 행보로 인해 한동안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엇갈린 평가를 받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나 신앙인으로 단편적으로만 알려져 있던 안중근 의사에 대한 논의가 교회 안에서 본격화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이로 인해 신앙인으로서 안의사의 면모에 대한 신자들의 지식은 교과서적 수준을 크게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 교회 안팎서 활발한 활동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안태훈의 3남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난 안중근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됐다.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빌렘 신부를 만나 교리를 받고 19살 때인 1896년 7월 황해도 안악군 매화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그는 1898년 4월 하순, 빌렘 신부가 청계동본당을 설립하자 교회 일에 투신했다.

당시 안의사는 빌렘 신부의 복사로 함께 공소를 방문하기도 하고, 비신자들에게 천주교를 안내하는 등 빌렘 신부의 선교활동을 도왔다. 1899년에는 청계동본당 총대(지금의 사무장직)에 추대돼 7년간 금광 감리사건 등 교회 안팎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등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안의사는 정약종의 ‘주교요지’ 등의 교리체계에 많은 영향을 받아 이를 신앙생활과 전교활동의 바탕으로 삼았다. 특히 그의 천주교 교리 설교는 깊이있는 동양철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접근으로 한국 교회사에서도 돋보이며, 그의 철저한 신앙관과 사생관(死生觀)을 엿보게 한다.

나아가 그의 순국 과정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신앙인의 모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 교리의 실천, 종말론적 순교영성을 찾을 수 있어 순교자적 용덕과 연결지을 수 있다.

안의사는 빌렘 신부 밑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교회의 앞날에 대해 많은 모색과 고민을 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빌렘 신부와 함께 뮈텔 주교를 만나 대학 설립을 요청하는 등 뮈텔 주교에게 여러 차례 대학 설립을 청원했으나 끝내 거절당하고 만다.

그 분함을 참지 못해 “서양의 교회(천주교)가 진리임에는 믿을지언정 서양 사람의 마음은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다”고 개탄하며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던 프랑스어를 더 이상 배우지 않았다. 이처럼 안의사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지만, 잘못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참된 용기도 함께 갖추고 있던 신앙인이었다.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해야겠다는 안의사의 의지는 대단해서 1907년 집을 평안도의 진남포로 옮기고 사재를 기울여 삼흥(三興)학교와 돈의(敦義)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교육에도 남다른 공을 기울였다.

안중근 의사의 국권 회복을 위한 전략이 독립전쟁이라면, 그의 기초적 배경이 된 사상체계가 동양평화론이다. 안의사의 순국 100주년을 앞두고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동양평화관과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이르는 독립운동 등은 모두 투철한 신앙의 힘이 바탕이 됐음을 보여준다.

▶ 사상의 기초 ‘동양평화론’

최근까지 수집된 빈약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의 전 사상 체계를 알아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각종 자료와 공판 과정에서 나온 그의 진술 내용을 종합해 보면 동양평화론의 개략적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안의사가 옥중 생활을 하며 집필한 동양평화론은 비록 미완성 원고이기는 하나 지식인이자 양심적이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탁월한 국제정세 감각과 해박한 역사 인식을 지니고 당시 한국과 동양 제국의 현실과 평화 유지 방략을 설파하려 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동양평화론은 동양의 여러 나라들이 인도주의적 가치 위에서 서로 연대하여 동양 평화를 지키는 것이고, 이러한 동양 평화는 궁극적으로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그의 평화론은 이토를 비롯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내세운 약육강식의 개념이 아닌 보편적 도덕을 목표로 하는 것이고, 각국의 독립을 이룩하고 서로 연계해 평화를 이룩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그의 깊이 있는 사상과 인도주의적, 보편적 가치에 일본인들도 존경을 표하고 있으며 일본 곳곳에서 일고 있는 안중근 추모운동 또한 이러한 의사의 사상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아직도 평화가 정착되지 못한 인류의 삶에 그의 평화론은 따뜻한 안내역을 담당하는 사상적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양의 평화를 위해 몸 던져 살신성인한 안중근 의사의 역사적 의거를 기리고 널리 알려야 할 하얼빈역 구내에는 기념비는 고사하고 아직 역사적 의거의 현장임을 알리는 표지판 하나도 찾아볼 수 없어 쓸쓸함을 더해준다.

▶ 가톨릭 신문 : 2006-10-15 서상덕 기자 sang@catholictimes.org
별이 [비회원]
도움을주셔서 고맙습니다^^
삭제 |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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