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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창설자 | 로베르토
조회수 | 2,127
작성일 | 07.03.28
▶ 이상적 수도회 건설 위해 일생 바쳐  /   청빈 침묵 육체 노동 강조한 ‘시토회’ 창설  /  복음정신, 시대 변화 반영한 개혁 위해 노력

11세기와 12세기 초에 걸쳐 서양 수도원 제도의 동요와 부흥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시토회를 창설한 몰렘의 로베르토(Robertus Molesme, 1027~1111)이다. 그는 15세에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해 물질적 풍요로움에 수도생활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수도회들이 이상적인 수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평생을 수도원 개혁에 매진했다. 그리고 시토회는 그러한 그의 노력이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됐던 수도회이다.

▶ 개혁 향한 식지 않는 열정

시토회의 설립은 클뤼니(Cluny) 수도원의 개혁운동에서 비롯됐다. 당시 많은 수도회에서는 규칙이 지나치게 남용됐고 성 베네딕토가 제시했던 수도원의 생활 형태 역시 충실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수도원의 재산은 늘어나 부유한 생활에 수도자들이 물들어 있었고 이는 당연히 수도정신의 해이를 야기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개혁을 원하는 수도자들은 번잡한 마을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은둔 생활을 하곤 했으며 평판이 높은 은수자들 주위로 제자들이 모여들어 이들은 일종의 수도원 조직을 형성해 4세기경의 수도생활을 재현하려 했다. 시토회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설립됐던 것이다.

로베르토는 1027년경 프랑스 중부 트로와(Troyes)에서 태어나 15세 때 디종(Dijon) 근처의 무티에 라 쎌(Moutier-la-Celle)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했다.

수련기가 끝난 1053년 바로 무티에 수도원 원장에 임명됐다가 1070년경 욘느(Yonnes) 지방 톤네르(Tonnerre)의 베네딕토회 수사들이 그를 수도원장으로 추대함에 따라 이를 수락했다. 하지만 수사들의 생활이 아주 해이해졌고 더 이상은 그러한 생활 자세가 개선될 수 없다고 생각해 무티에로 돌아왔다.

1072년 그는 다시 일단의 은둔 수도자들과 함께 몰렘에 있는 한 숲으로 거처를 옮겨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초기 수도자들의 생활 방식을 구현했다.

이에 따라 몰렘 수도원은 클뤼니 수도원에 직접 소속되지 않고 성 베네딕토의 규율을 충실히 따르는 전통 수도원으로 여겨졌다.

그후 이 수도원은 크게 번창해나갔는데 차츰 각지에서 지원자가 늘어나고 기부금이 쇄도하면서 부유해졌고 이에 따라 다시 수사들은 편안하고 안일한 수도생활에 빠져들게 됐다.

결국 로베르토는 기존의 수도회에서는 성 베네딕토의 규칙을 따르는 올바른 개혁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보고 자신을 추종하는 20여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1098년 몰렘을 떠나 코트 도르 지방의 시토라는 곳에 정착했다.

바로 이곳에서는 그는 시토 수도회를 창설하고 자신이 이상적인 수도 생활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을 실천에 옮겼다.

▶ 1222년 성인으로 선포

이들은 성 베네딕토의 규칙을 온전하게 준수하면서 일상 생활은 물론 전례와 예술에서도 단순함을 추구했고, 동시에 세속적인 것과 단절된 상태에서 청빈과 침묵, 육체 노동을 중시했다.

이러한 수도생활은 결국 초대교회 때의 사막 교부들의 생활 방식과 규율을 충실하게 본받으려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1년 이상 머물며 수도회의 기초를 닦은 로베르토는 그러나 교황 우르바노 2세가 교서를 통해 몰렘 수도원을 정상화시키라고 지시한데 따라 다시 몰렌으로 돌아가 수도원 지도를 맡았다.

수도원 정상화에 힘쓰며 수사들을 영적으로 감화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던 로베르토는 1111년 4월 17일 몰렘에서 세상을 떠났고, 1세기가 지난 1222년 성인으로 선포됐다.

한편 그가 세운 시토회는 두 번째 원장이었던 알베릭이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고, 세 번째 원장 스테파노 하딩에 의해 조직이 완전히 정비됐다. 이들은 봉토의 수입을 받지 않고 수도자들의 노동으로 살림을 꾸려나갔고, 복잡한 수도원의 전례를 단순화시켰으며 가구들을 위시해 여러 가지 물품들을 엄격할 정도로 단순화시켜 수도자적 청빈을 강조했다.

종말론적 특성을 강조하는 한편 피조물에도 관심을 잃지 않았으며 늘 기도하고 열심히 육체 노동에 종사하면서 단순한 수도자의 삶을 살았다. 세월이 지나 속화의 경향도 보였지만 16세기와 17세기를 거치면서 종교개혁과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시대를 지나면서 다시금 쇄신의 길을 걸었다.

수도회는 교회의 모든 영성의 원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수도회의 개혁과 쇄신은 당대 교회의 영성과 신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곤 했다. 시토 수도회의 창설을 통해 이상적인 수도 생활의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했던 로베르토의 삶은 바로 이러한 수도회 혁신의 노력을 그대로 드러낸다.

평생을 통해 하느님의 뜻에 맞갖는, 복음정신에 투철하고 초대교회 수도생활의 모범을 구현하며, 시대적인 요청에 가장 효과적으로 부응할 수 있도록 수도생활을 쇄신하고 개혁하려 했던 로베르토는 따라서 오늘날 모든 수도자들에게 하나의 표양이 된다.

나아가 수도생활 자체가 하느님께 봉헌된 삶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평생의 노력은 하느님을 삶의 근거로 삼아 살아가야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커다란 영성적 보화를 주고 있다.

▶ 가톨릭 신문 : 2006-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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