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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신앙이란 무엇인가? 1
조회수 | 1,890
작성일 | 10.02.01
우리말에 ‘믿는다’는 말은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어떤 사람의 성실성을 인정하여 그를 신뢰한다는 신뢰 개념이고, 또 하나는 인간과 절대자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종교적 개념이다. 2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내가 너를 믿고 보증을 선다”는 신뢰 개념밖에 없었다. 천주교가 들어오면서부터 비로소 “하느님을 믿는다”는 개념이 생겨났다.

신앙을 말할 때에는 우선 먼저 ‘무엇을’ 그리고 ‘무엇 때문에’ 믿느냐? 그리고 ‘어떻게 믿느냐? 라는 질문에 부딪힌다. 이것은 신앙의 객관적 요인과 주관적 요인에 관한 질문과 통한다. 신앙의 객관적 요인은 신앙의 대상과 궁극 목적 그리고 신앙의 근거를 말하며, 신앙의 주관적 요인은 인간의 응답이라는 인간행위를 말한다.

신앙의 대상은 자명성(自明性)이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 진리이고 궁극적으로 말하면 하느님 자신이다. 우리가 믿어야 할 신앙의 대상을 조목별로 집약한 것이 사도신경이다. 그러나 인간이 신앙으로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신앙조목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다. 13세기의 대 신학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년)에 의하면 인간의 행복은 신앙의 대상이자 목적인 하느님을 뵈옵는 데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인간의 목적으로 설정하셨으므로 하느님과 합일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요 목적이다. 그러나 이 목적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므로 하느님께서 먼저 길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 바로 여기에 계시와 은총의 필요성이 있으며, 그 계시와 은총을 받아들이는 신앙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신앙의 근거 역시 하느님 자신이다. 즉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앙의 객관적 여건은 삼위이신 하느님 자신이다. 이것이 ‘무엇을’ 그리고 ‘무엇 때문에’ 믿느냐?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을 믿게 되는 것인가? 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정신작용을 지성과 의지의 활동으로 규정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신앙은 하느님 은총으로 움직여진 의지의 명령에 의하여 지성이 하느님의 진리를 믿는 행위이다. 지성이 자명성을 통하여 대상을 파악할 때 지식이 된다. 그러나 자명성이 뚜렷하지 않는 대상을 의지의 가담으로 지성이 받아들이는 경우를 신앙이라고 한다. 지성이 추구하는 대상은 진리이고 의지가 추구하는 대상은 선인데, 자명성이 없긴 하지만 무언가 좋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의지가 강력히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좋은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생명이다. 즉 하느님을 믿는 신앙행위는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초자연적 진리를 비록 인간의 미약한 지성으로 다 알아들을 수 없다 해도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 인간의 의지를 충동하여 결단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요인은 그 신앙진리와 그 ‘좋은 것’을 제시하는 하느님의 진실성과 권위이다. 즉 하느님의 진실성과 권위를 인정하기 때문에 자명성이 없는 진리를 지성이 받아들여서 믿는 것이다. 이처럼 신앙의 동기는 신앙진리를 제시하는 분의 진실성과 선하심에 이끌리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행위를 의지의 충동으로 성립되는 지성의 인식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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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신앙이란 무엇인가? 2

신앙행위를 독립적인 지성과 의지의 작용으로 설명했지만 사실 그것은 한 인격체의 행위이다. 신앙은 일종의 잉ㄴ식이지만 공허한 주관적 사색이 아니다. 한 인격체인 하느님의 부르심에 한 인격체인 인간이 응답하는 행위가 신앙이다. 신앙은 두 인격의 만남이기에 제시된 이론이 참이라고 인정하는 메마른 두뇌활동이 아니라, 자기의 전 인격을 온전히 바치는 결단이요 사랑을 동반한 자기봉헌이다. 이처럼 신앙의 결단은 내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심으로써 가능하다.

“인간은 신앙을 통해서 온전히 자신의 지성과 의지를 하느님께 순종시킨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전체로,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동의를 드리는 것이다. 성서는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이러한 인간의 응답을 ‘신앙의 복종’이라고 부른다. 신앙의 복종이란 자신이 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자유로이 복종하는 것이며, 이것은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그 말씀이 진리임을 보증하시기 때문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 1편, 제 143항.144항).

신앙심은 종교심과는 다르다. 종교심은 모든 인간의 본능이다. 모든 인간은 행복을 갈망하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상위의 존재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이 있다. 이런 마음이 종교심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신앙심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참된 신앙심은 종교심을 가진 인간을 절대자이신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데서 시작된다.

신앙심의 내용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외적인 부르심을 계시, 내적인 부르심을 은총이라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진리를 계시해 주시는데, 하느님의 공적인 계시를 전달해 주는 공적인 기관이 바로 교회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담당했던 이 역할을 신약에서는 주님께서 직접 세우신 교회가 담당한다. 은총은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업적이다. 따지고 보면 신앙은 인간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요 선물이다. 즉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계시고 인간이 자유로이 응답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인간이 응답하는 과정이 신앙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겸손과 신뢰가 필요하다. 교만한 사람은 신앙심을 가질 수 없다. 인간이 피조물로서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게 되면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이 생기고 그분의 자녀된 심정으로 그분께 의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앙은 무엇보다도 자아의 결단이다. 안심입명(安心立命), 자포자기 혹은 불행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결단의 행위가 신앙이다. 그리고 신앙은 회개를 동반한다. 지금까지의 생활과 인생목표를 버리고 방향전환을 해서 하느님께 돌아서야 한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위하여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여기서 계시와 신앙의 밀접한 관계를 생각해보자. 만일 하느님의 계시가 없다면 우리의 신앙도 없다.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 자신을 열어 보이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없고 하느님을 믿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하느님께서 먼저 스스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순서로 보면 하느님의 계시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인간 측의 응답인 신앙이 뒤따라 온다. 마치 부모 사랑이 먼저고 자식의 효(孝)가 뒤따라 오는 것과 같다. 이처럼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신앙의 선물을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을 받아들이거나 믿을 수 없다.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께서 불어 넣어 주시는 초자연적인 덕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 1편, 제 153항).

믿는다는 것이 성령의 은총과 내적인 도우심에 의해서만 가능하지만 신앙은 참으로 인간의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유로운 응답도 필요하다. 마음이 완고해서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억지로 당신께 대한 믿음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그런데 구원받기 위하여 신앙은 꼭 필요한가? 우리가 자유로운 응답으로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은총을 받기 어렵다. 신앙이 없이는 아무도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다.”(히브 11,6). 신앙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다. 신앙은 우리가 하느님의 신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구원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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