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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라떼란 공의회
조회수 | 1,735
작성일 | 10.08.16
▲ 로마에 있는 성 라테라노 대성전 전경.

시기 : 1139년 3월 4-9일 동안 교황 인노첸시오 2세가 소집한 제10차 세계공의회

배경

이 공의회가 개최되기 전 1130년 교황 선거에서 인노첸시오 2세와 아나글레토 2세가 이중으로 선출되자 분열·대립하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이 일은 결국 1138년에 아나글레토 2세가 사망함으로서 종결되었다. 그래서 인노첸시오 2세 교황은 분열로 인해 야기된 결과를 청산하기 위해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과정

1139년 4월 3일 개막 → 500-1000여명의 주교와 대주교, 대수도원장이 참석 → 4월 8일 교리와 교황의 권위, 주교, 성직자, 수도자, 교회의 권리 등의 제반 문제를 다룬 30개의 교회 법규 공포 → 4월 8일 폐막

결과 및 의의

① 성직 서임 - 성직매매의 금지, 그로 인해 성직에 오른 자는 박탈, 사제의 아들 서품 금지, 주교 선종 후 3개월 내에 교회법에 따라 선출할 것, 이교와 이단에 의한 성직임명은 모두 무효로 인정.

② 성직자 생활의 쇄신 - 주교와 성직자들은 하느님과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해야함, 성직에 서품된 자가 결혼이나 축첩 생활하는 것은 성직 박탈, 수도자와 의전 사제들은 민법와 의학을 배울 수 없음.

③ 교회 재산 문제 - 평신도의 교회 소유와 교회의 십일조에 대한 수입 갖는 것 및 고용된 사제에게 교회 맡기는 것 금지, 모든 교회 소속 사제 있어야 함, 교회록의 상속 금지, 평신도의 교회록 수여 금지.

④ 성사 생활 - 가식적인 참회금지, 성사를 인정하지 않는 자 제재 받아야 함, 견진성사, 병자성사, 장례미사의 경우에는 무료로 집전해야 한다.

⑤ 일상 생활에 관한 규정 - 한번 주교로부터 파문당한 사람은 다른 주교가 교회에 받아 들일 수 없음, 재산횡령 단죄, 성직자, 수도자, 순례자, 상인, 농부에 대한 안전보장, 신의 휴전준수 의무, 고리대금업 금지 등 사제, 수도자, 신자의 품행을 정화하고자 하는 법령.

제2차 라떼란 공의회는 새로운 규정을 공포하지 않았다. 제1차 라떼란 공의회에서 이미 공포된 규정 중에 사제들의 사치, 친족간의 결혼 문제와 같은 어느 정도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주의를 환기시켰다. 또한 지역 공의회에서 결의된 몇몇 규정들만을 첨가하였을 뿐이다. 사목의 중심인 본당을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교회의 소유물을 분배하는 것은 주교의 판단과 권한에 예속시켰다. 사실상 이 공의회는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개혁과 결말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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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1139)

이단 단죄하고 교회일치 개혁 굳건히

■ 배경

보름스 협약(1122)으로 성직자 서임권을 둘러싼 논쟁이 일단락되고 교회는 세속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듯했습니다. 나아가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1123)는 성직자 쇄신을 비롯해 교회 생활과 규율에 관한 다양한 조치들을 발표함으로써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의 교회 개혁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외부 위협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교회 내부에 잠재돼 있던 문제가 터져 나왔습니다. 개혁 노선을 달리 하는 추기경단 내부의 알력이 교황 선출 문제로 표출된 것입니다.
 
교황 호노리오 2세가 선종한 직후인 1130년 2월 14일이었습니다. 신진 개혁 세력으로서 교회의 사목적 쇄신을 강조해온 프랑스계 추기경들이 그레고리오 파파레스키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했습니다. 그가 인노첸시오 2세(재위 1130~1143) 교황입니다. 그러자 몇 시간 후 교황 선출에 따른 법적 하자가 있다고 반발한 다수의 다른 추기경들이 유다계로서 로마의 유력 귀족가문 출신인 피에트로 피레르레오니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했습니다. 그가 대립 교황 아나클레투스 2세(재위 1130~1138)입니다. 아나클레투스 2세 교황 지지자들은 사목적 쇄신보다는 세속 권력으로부터 '교회의 자유'를 더 중시한 이른바 정통 개혁 세력이었습니다.
 
로마에서는 다수의 추기경들과 유력 가문의 지지를 얻고 있는 아나클레투스 2세 교황이 우세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을 지지했던 프란지파니라는 로마 유력 가문이 변절하는 바람에 인노첸시오 2세는 로마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는 인노첸시오 2세의 지지세력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프랑스 왕과 주교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당대의 뛰어난 영성가이자 교회학자인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1090~1153)가 가장 큰 힘이 됐습니다. 스페인 주교들과 영국 왕의 지지도 얻었습니다. 독일에서는 마그데부르크의 성 노르베르토(1080~1134) 대주교의 지지를 받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로타르 3세의 지지를 얻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마침내 인노첸시오 2세는 로타르 3세와 함께 1133년 로마로 입성해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로타르 3세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관식을 집전합니다. 하지만 바티칸에서 버티고 있던 아나클레투스 2세를 몰아내지는 못합니다. 황제가 철군하자 다시 로마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인노첸시오 2세는 이번에는 피사에서 지내다가 1137년 여름에 황제 군대와 함께 로마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여전히 바티칸에서 요지부동이던 아나클레투스 2세는 1138년 초에 선종하고 맙니다. 지지자들은 후임 교황으로 빅토리오 4세를 선출합니다. 그러나 빅토리오 4세는 베르나르도 성인의 간곡한 권유 등으로 대립 교황직을 내놓고 인노첸시오 2세에게 순명을 서약합니다. 이리하여 대립 교황으로 10년 가까이 계속된 교회 분열이 자연스럽게 정리됐습니다.
 
인노첸시오 2세 교황은 대립 교황으로 인한 분열의 잔재를 청산하면서 일치와 개혁을 도모하고 아울러 교회 안에 새롭게 대두하고 있던 이단 문제를 처리하고자 공의회를 소집합니다. 이것이 10번째 세계 공의회인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입니다.
 
■ 공의회 개최와 결과 

공의회는 1139년 4월 4일(8일이라는 주장도 있음) 개막해 4월말까지 계속됐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 스페인과 영국 등 서방 거의 모든 나라에서 대주교, 주교, 대수도원장 등 500~1000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인노첸시오 2세는 개막 연설에서 대립교황 아나클레투스 2세가 제정한 모든 법령을 무효화하면서 그의 추종자들을 파직했습니다. 아나클레투스 2세가 서품한 주교들에게는 주교직을 박탈했습니다. 아나클레투스 2세 편에 서서 끝까지 반기를 든 시칠리아 왕국 로제르 왕에 대해서는 파문 조치를 내렸습니다.
 
공의회는 또한 당시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던 대표적인 두 이단 페트로브루스파와 헨리코 파를 단죄하면서 교회 생활과 규율에 관한 30개 조항으로 된 법규를 제정했습니다. 대립교황 및 이단들에 관한 조항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1123년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 결정 사항들 및 그 이후에 열린 교회회의들의 결정 사항을 반복하고 재확인하는 내용들입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성직자ㆍ수도자 생활과 관련, 차부제 이상의 성직자는 결혼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그런 결혼은 불법이자 무효라고 규정합니다(6조).
성대서원한 수도자들의 결혼 역시 불법이자 무효입니다(7~8조).
성직자들은 화려한 복장으로 물의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검소하고 단정한 차림을 해야 하며(4조),
성직록의 상속은 금지됩니다(16조).
성직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독성죄로 자동 파문의 벌을 받습니다(15조).
수도자들과 주교좌 참사들은 민법과 의학을 배우는 것이 금지됩니다(9조).
견진성사와 병자성사, 장례미사는 돈을 받고 집전하는 것이 금지됩니다(24조).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사회 교리 혹은 사회 윤리에 해당하는 규정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리대금이나 혈족간 혼인이 금지되고(13, 17조),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마상 무술경기가 금지됩니다. 어기면 교회 묘지에 묻힐 수 없습니다(14조). 교황 우르바노 2세가 1095년에 공포하고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도 확인한 '신의 휴전' 규정이 그리스도교 세계 전체에 확대 적용됩니다(12조). 상인을 비롯해서 시골 농부ㆍ순례자ㆍ성직자들을 괴롭히는 행위는 특별히 금지됩니다(11조). 방화도 엄격히 금지되며 방화범은 1년 동안 십자군에 참여하거나 산티아고 혹은 성지 순례를 통해 참회해야 사면받을 수 있습니다(18~20조). 거짓 참회 또한 엄중 경고를 받습니다. 그런 이들은 바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22조).
 
■ 이단 단죄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득세하던 두 이단을 단죄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브레시아 출신의 아르놀드(1100~1155)가 있었습니다. 브레시아의 수도원 원장인 그는 급진적 교회 개혁을 주장한 나머지 이단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는 성직자의 절대적 가난을 요구하면서 교회 또한 현세 권력과 재산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공의회에서 단죄받고 이탈리아 밖으로 추방당합니다.
 
프랑스 남부에서는 피에르 드 브뤼스가 이단 주장을 내세우다 파문을 당했습니다. 순회 설교가 사제인 그는 성직자의 태만과 속화를 비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교도권과 성사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복음서만을 받아들이고 다른 성경을 배척했으며 스스로 믿는 믿음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유아 세례를 배격했지요. 그뿐 아니라 미사와 실체변화도 부인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또 십자가는 수난의 상징이기에 공경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이단 추종자들을 그의 이름을 따서 페트로브루스파라고 불렀습니다.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피에르와 페트로브루스파 이단을 파문하면서 성체성사와 유아 세례, 사제직, 혼인을 배격하는 이들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강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23조). 말하자면 공권력을 통해 이단을 단속토록 한 셈입니다.  

평화신문 2011. 07. 17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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