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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라떼란 공의희
조회수 | 5,686
작성일 | 10.08.16
▲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이 이탈리아 수비아코 베네딕도 수도원에 준 증여 문서. 교황은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수도회 개혁과 쇄신을 위해 3년에 한 번씩 총회를 열도록 규정했다. 출처=한국가톨릭대사전

시기 : 1215년 11월 11-30일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소집한 제12차 세계 공의회

배경

이 공의회는 여러 그리스도교 왕국사이에서 발생한 분쟁들을 해결한 뒤에 그 일치를 도모하고, 이스라엘 성지회복을 위한 십자군 운동을 더욱더 효과적으로 추진하여 교회 전체의 개혁을 시도하려는 것이었고, 또한 청빈사상을 내세우면서 교회를 비난하던 알비파와 같은 교회내의 이단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열리게 되었다.

과정

중세 교황권의 절정기인 1213년 인노첸시오 3세가 동·서방 교회의 모든 총대주교와 대주교, 성직자, 그리고 그리스도교 국가의 제왕들에게 공의회 개최사실을 통보함 → 412명의 참석통보 → 2년간의 준비 → 1215년 11월 11일 전 세계 800명의 자치 수도원장과 수도회의 장상, 각국 대사들이 참석한 중에 공의회 개막 → 3회의총회 → 11월 30일 폐막.

결과 및 의의

① 개혁 - 정결에 위배되는 생활을 하는 성직자의 교회록 박탈, 술집 출입 및 향연장에서 밤을 넘기는 행위 금지, 평신도 권력자에게 했던 충성 서약금지, 사제가 비윤리적 관습에 젖어들지 않도록 권고하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를 막론하고 어떤 형태의 부도덕한 요소라도 과감한 개혁을 단행

② 성사 - 성사에 대하여 최선을 다해 가르치도록 함, 성체는 안전한 곳에 보존되어야 함, 부활대축일에 영성체는 의무, 고해비밀 누설 않되게 할 것, 주교는 적합하고 능력 있는 인물만 서품 되도록 선별할 것, 혼인에 있어서 서약의 중요성 강조, 혈족간의 결혼은 금지.

③ 교회 재산 - 사목 직무와 관련된 교회록 겸임을 금지, 교회록 상속을 금지, 교회의 평신도 소유주와 사제와의 재정관계, 십일조의 관리 및 이용, 성인의 유해 보관과 현시는 정해진 장소에서만 할 것, 자선모금은 교황이나 주교의 위임장에 따라 허가를 받은 곳에서만 하며 절제있게 할 것.

④ 수도회 - 수도회 3년에 한번씩 정기 총회 개최하여 장상 선출하고 개혁방안을 마련할것, 수도원 원장은 금전거래를 통해 주교직을 받을 수 없다.

⑤ 소송 - 범법행위 다각도에서 근절시킬 것, 이단 심문은 신중하게 처리할 것.

⑥ 형법 - 원칙적으로 고리대금행위 배척, 유대인은 그리스도인과 구별되는 복장을 해야 하고, 성주간 동안에는 외출을 삼가고, 그리스도인 위에 군림하는 공직 맡을 수 없음, 개종한 유대인은 그들의 관례를 포기할 것.

이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이미 파리 교회회의와 루앙 교회회의 등 여러 지역에서 열린 교회 회의에서 논의되었던 것들이다. 그러나 그 내용들이 기존 교회 교회회의에서 결의된 사항들의 반복이라고 하더라도 트리엔트 공의회 이전에 교회회의 규정들을 성문화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의, 윤리, 규정, 교회조직 등 전통적인 원리가 균형 있게 당시의 상황에 적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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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

교황권 확립하고 교회 개혁 불 지피고자

■ 배경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루카 22,15).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인노첸시오 3세(재위 1198~1216)가 공의회 개막 연설에서 인용한 복음 구절입니다.
 
교회사에서 12번째 세계 공의회로 기록되는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는 이처럼 인노첸시오 3세의 염원이 결실을 맺어 소집된 공의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노첸시오 3세가 공의회를 개최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역시 개막연설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악습을 뿌리 뽑고 덕행을 심기 위해, 오류를 교정하고 풍토를 개혁하기 위해, 이단을 척결하고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 불화를 가라앉히고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억압을 제거하고 자유를 증진하기 위해, 군주들과 그리스도 백성들이 성지에 가서 도움을 주도록 설득하기 위해…" 공의회를 소집했다고 교황은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를 탐색하기 전에 공의회를 소집한 인노첸시오 3세 교황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세기의 위대한 교황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인노첸시오 3세는 이탈리아 중부 라치오 지방 출신입니다. 세니 백작의 아들이자 교황 클레멘스 3세(재위 1187~1191)의 조카로, 원래 이름은 로타리오 데 세니였습니다. 어린 시절 로마에서 교육을 받지만 나중에 파리에서 신학을, 볼로냐에서 법학을 공부한 수재였습니다.
 
로타리오는 1190년에 부제 추기경에 임명됩니다. 그리고 교황 첼레스티노 3세(재위 1191~1198)가 선종한 1198년 1월 8일에 2차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교황에 선출되고 2월 22일 인노첸시오 3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에 즉위합니다.
 
37살(혹은 38살)의 젊은 교황은 재위 초기부터 공의회 개최에 뜻을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이 따라 주지 못했습니다. 세속 권력과의 관계에서 교황권은 불안정했고 많은 난제들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노첸시오 3세는 이를 현명하게 처리해 나갔습니다. 물론 실패도 겪었습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 곧 독일 황제는 교황권과 자주 대립했습니다. 인노첸시오 3세가 교황이 됐을 때는 마침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6세(재위 1190~1197)가 사망하고 후임 황제가 공석이었습니다. 이 기회를 절묘하게 이용한 교황은 황제를 선출하는 것은 제후들의 몫이지만 이를 검증하고 대관식을 수여하는 것은 교황의 배타적 권리임을 주지시킵니다. 마침내는 자신이 후견인으로 보호해온 프리드리히 2세를 황제로 앉힘으로써 교황권을 공고히 하지요.
 
교황은 또 예루살렘 성지 회복을 위한 제4차 십자군(1202~1204)을 조직합니다. 하지만 십자군은 실패하고 말지요. 베네치아 상인들의 농간으로 십자군은 성지를 탈환하는 대신에 동방 교회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해 약탈과 파괴를 자행합니다. 이로 인해 동ㆍ서 교회의 분리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치닫는 결과를 빚게 됩니다.
 
교황은 프랑스 남부 도시 알비를 중심으로 득세하고 있던 알비파 이단을 척결하기 위해 또 다른 십자군을 조직토록 합니다. 카타리파 이단의 추종자들인 알비파는 세상을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의 대결로 보면서 극단적 이원론을 펼쳤습니다. 물질세계를 모두 악으로 규정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인간성과 십자가 죽음, 육신의 부활을 부인했습니다. 결혼과 심지어 음식을 먹는 것도 죄악시했습니다. 오히려 굶어 죽는 것을 구원의 길로 여겼다고 하지요. 이 알비파 이단이 프랑스 교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뿐 아니라 교황 사절까지 살해하는 등 폐해가 심각하자 교황이 십자군 조직 명령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교황은 혼란에 빠진 프랑스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교황은 또 캔터베리 대주교 임명을 둘러싸고 영국 왕과 대립했지만 끝내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켜 스티븐 랑톤을 캔터베리 대주교이자 추기경으로 임명하고 존 왕의 굴복을 이끌어냅니다. 그러나 영국 귀족들이 존 왕에게서 '대헌장'(Magna Carta)의 서명을 얻어내자 교황은 자신의 동의도 없이 강요된 서명이라며 대헌장 자체를 무효로 선언하기도 합니다. 대헌장은 전제군주적 왕권을 제한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서입니다.
 
교황은 이 밖에도 아라곤(스페인 북부 왕국), 포르투갈, 헝가리, 폴란드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 대해서도 교황권을 적절히 행사하여 분쟁을 조정하고 평화를 도모합니다.
 
이런 일련의 난제들을 수행하면서 교황권을 다지고 교회의 자유를 도모해온 교황은 마침내 재위 초기부터 뜻을 둔 교회 개혁을 위한 공의회를 개최하기로 결심합니다. 인노첸시오 3세는 1213년 4월 19일 칙서를 통해 세계 공의회를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소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공의회 소집일은 1215년 11월이었습니다.
 
■ 공의회 개최와 과정

공의회는 1215년 11월 11일에 개막했습니다. 참석 주교는 대주교 70명 이상을 포함해 400명이 넘었습니다. 대수도원장과 수도원장도 800명에 이르렀고, 주교좌성당 참사회 대표들도 처음으로 참석했습니다. 신성로마제국(독일) 황제를 비롯해 비잔틴 황제, 프랑스와 영국, 아라곤과 포르투갈, 헝가리, 시칠리아 왕들도 모두 사절들을 보냈습니다. 참석자로 보면 가장 규모가 큰 그야말로 총공의회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의 교황 개막 연설이 끝난 후에 예루살렘 총대주교가 성지의 비참한 상황을 설명했고, 프랑스 주교는 프랑스 남부의 알비파 이단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교황과 두 고위 성직자의 개막 발언은 공의회가 어디에 관심을 쏟을 것인지 가늠케 해주었습니다.
 
회의는 개막일인 11일에 이어 20일과 30일 3차에 걸쳐 열렸습니다. 회기 중에 몇 가지 정치적 사항을 결정합니다. 교황은 프리드리히 2세를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거듭 임명하고, 캔터베리 대주교 스티븐 랑톤 추기경에 대해서는 직무정지를 내립니다. 존 왕에게 대헌장에 서명하도록 강요한 영국 귀족들을 견책하지 않았고, 또 대헌장을 파기하라는 교황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공의회는 마지막 회기에서 모두 70개 조항에 이르는 법령을 낭독하고 승인합니다. 가톨릭 신앙에 관한 제1조와 요아킴 수도원장의 오류를 지적하는 제2조를 제외한 나머지 조항들은 모두 교회 생활과 규율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제도와 조직, 성직자 생활, 교회 재산 처리, 십일조, 교구와 수도회 관계, 평신도 생활 등 중세기 교회 생활과 관습과 관련된 전반적 사항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공의회 법령을 통해서 당시 교회 생활상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이 법령의 주요 내용들을 살펴봅니다.

평화신문 2011. 08. 07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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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

공의회 법령, 16세기까지 교회법전 역할

■ 공의회 결과 : 70개 조항의 공의회 법령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승인한 70개 조항의 법령 가운데 '가톨릭 신앙'에 관한 제1조와 요아킴 수도원장의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 2조를 제외하면 나머지 68개 조항은 모두 교회 생활과 규율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제1조에서는 몇 가지를 주목할 내용이 있습니다. 우선 "보편 교회는 오직 하나뿐이며, 그 교회 밖에서는 결코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다"는 대목입니다. 원래 이 표현은 3세기 카르타고 주교 성 치프리아노가 제도교회를 부정하는 이단을 단죄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도 같은 의미로, 곧 카타리파 이단을 단죄하기 위해 사용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표현은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이후에까지도 타 교파 및 타 종교 신자들의 구원 문제와 관련해 논란을 일으키는 신앙 정식입니다.
 
빵과 포도주가 미사 중 사제의 축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실체변화 교리와, 누구라도 교회가 정한 형식에 따라 세례를 주면 그 세례가 유효하다는 교리도 제1조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1조의 마지막 구절은 동정녀와 금욕의 삶을 사는 이들뿐 아니라 결혼한 이들도 올바른 신앙과 선행으로 영원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공의회 공식 법령에 이런 내용을 포함시켰다는 것은 결혼한 평신도들의 삶 자체가 동정녀 등 독신자들의 삶에 비해 열등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당시 교회 저변에 깔려 있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나머지 조항들을 주제별로 살펴보면, 우선 성사 생활과 관련해서 모든 신자들은 1년에 한 번 고해성사를 보고 적어도 부활절에 성체를 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교회법적 규정이 이미 13세기 초부터 공의회 법령으로 명시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고해사제들은 고해비밀을 지켜야 하며 이를 어기면 면직될뿐 아니라 평생 엄격한 수도원에서 평생 보속하며 지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21조).
혼인의 경우 종래 7촌 이내 혈족 간 혼인 금지 규정을 완화해 4촌까지로 제한합니다(50조).
또 혼인 공시를 의무화하고 비밀 혼인을 엄히 금하면서 비밀혼을 주선하거나 주례한 사제에게는 3년간 직무정지의 형벌을 부과합니다(51조).
 
성직자 생활과 관련해서는,
성직자들은 음행에 빠져서는 안 되며(14조)
폭음과 주취를 해서도 안 됩니다. 새 사냥이나 짐승 사냥을 해서는 안 되며 따라서 사냥개나 사냥용 매를 소유하는 것도 금지되지요(15조).
세속인들과 달리 성직자들은 상행위를 해서도 안 되며, 어릿광대나 연극배우의 공연 관람을 피해야 합니다. 또 검소한 복장을 해야 하며 붉은 색이나 녹색 옷을 입어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을 해서도 안 됩니다(16조).
사형 판결이나 집행에 관여해서도 안 되며 결투를 해서도 안 됩니다(17조).
법령은 주교좌 성당이나 수도원 성당들은 3개월 이상 공석으로 놔둬서는 안 되며(23조),
축성된 성유와 성체는 반드시 자물쇠로 채워서 보관해야 하고(20조),
수도회들은 쇄신과 개혁을 위해 적어도 3년에 한 번 총회를 열어야 하고(12조),
이미 수도회들이 너무 많아졌으므로 새로운 수도회 설립을 금하며(13조), 수도원장들은 주교직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60조)고 규정합니다.

조세 및 재산 문제와 관련,
성직자들에게는 세금을 징수하지 못하며(46조),
십일조는 세금을 내기 전에 바쳐야 하고(54조),
십일조를 회피할 목적으로 토지를 남에게 소작으로 내줘서는 안 되며(55조), 교황이나 주교의 위임에 따라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자선 모금을 할 수 있다(62조)고 규정합니다.
 
법령은 특히 성인들의 유해는 성골함 속에 보관해서 전시해야 하며, 새로운 유해들은 로마 교회의 허가 없이는 공경하지 말도록 하면서 무분별하고 과도하게 대사를 남용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62조).
 
관구장 주교들은 해마다 관구 공의회를 열어 이 모든 규정들이 특히 성직자들과 관련해서 제대로 지켜지는지 확인하고 감독함으로써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개혁하도록 해야 합니다(6조).
 
이단 및 유다인과 관련되는 조항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단자들은 단죄되며 이단자들에 대한 형벌은 세속 관리들이 적절하게 집행하도록 합니다. 또 이단 혐의를 받은 이들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야 하며 입증하지 못하면 파문됩니다. 파문 후 1년 이내에 회개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단죄를 받습니다(3조).
 
유다인들과 관련해서는 유다인들의 고리대금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해야 하며(67조), 유다인과 사라센들은 그리스도인들과 구별되는 복장을 해야 하며 특히 성주간에는 공공장소에 나다녀서는 안 됩니다(68조). 또 유다인들은 공직을 맡아서는 안 되며(69조) 세례를 받아 개종한 유다인들은 그들의 옛 예법을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70조).
 
이 70개 조항의 법령 외에 교황은 제5차 십자군 원정에 관한 교령을 발표합니다. 이 교령을 통해 교황은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에 참여할 사람들은 1217년 6월 1일까지 시칠리아 왕국에 집결하라고 촉구합니다. 십자군 원정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성직자들은 수입의 20분의 1을 3년 동안 바치도록 했습니다.
 
■ 공의회 의의 

첫 번째 천년기 공의회들은 황제가 주도한 공의회들이었습니다. 이와 달리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1123)를 시작으로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까지 두 번째 천년기의 네 차례 세계 공의회는 교황이 주도한 공의회였습니다.
 
그런데 1~3차 라테라노 공의회가 나름대로 구체적 현안이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된 공의회였다면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필적할 만한 현안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세 최대 규모의 공의회가 열리고 70개 조항이라는 방대한 양의 법령이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은 공의회를 통해 교회 쇄신과 개혁을 추구하고자 한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의도와 역량이 그만큼 인정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교황권의 절정기에 열린 공의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의회에서 발표한 70개 조항의 법령은 그 실제 준수 여부와는 상관없이 16세기 중반 트리엔트 공의회(1545~63년) 이전까지 성문화된 교회법전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의 의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십자군 원정을 준비하던 중 1216년 7월 16일 열병으로 페루지아에서 선종하고 맙니다. 제5차 십자군은 모병에는 성공했으나 원정은 대실패로 끝났습니다.

평화신문 2011. 08. 14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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