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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신비 (Mysterium Fidei)
조회수 | 2,535
작성일 | 05.02.12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 신앙의 신비 (Mysterium Fidei) / 1965. 9. 3.

거룩한 성체성사에 대한 교리와 흠숭 예배에 관하여 사도좌와 평화와 친교를 나누는 존경하올 형제들, 총대주교등, 수좌 대주교들, 대주교들, 주교들, 지역 교구장들, 전체 가톨릭 세계의 성직자들과 신도들에게 보내는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존경하는 형제들과 친애하는 자녀들에게 인사와 사도적 축복을 보내 드립니다.

서론

성체성사와 전례 개혁

1. 신앙의 신비(Mysterium Fidei)인 성체성사는 가톨릭 교회가 자기 신랑인 그리스도에게서 무한한 사랑의 담보로 받은 형용할 수 없는 선물입니다. 교회는 이 성사를 탁월한 가치의 보화로 여겨 계속 경외심을 가지고 간직해 왔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는 성사에 대하여 다기 신앙과 예배의 참신하고 가장 엄숙한 선언을 단행하였습니다.

2. 공의회의 교부들이 거룩한 전례의 개혁들 의제로 다루었을 때 그들은 전체교회를 위한 사목적 배려에서 신도들로 하여금 이 거룩한 신비의 거행에 정성 어린 신앙과 최고의 경건함 마음으로 적극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과제가 최우선권을 두기로 하였습니다. 신도들은 자기 자신의 구원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사로 사제들과 함께 성체를 봉헌하고 또 자신의 영적 양식인 성체로부터 자양분을 섭취하여야 했습니다.

3. 왜냐하면, 거룩한 전례가 만일 교회 생활에 있어서 주도적 위치를 자치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성체 신비가 그 핵심이고 또한 그것이 생활의 원천이므로 거룩한 전례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원칙에 의해 깨끗해지며 힘을 얻게 되는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하느님을 위하여 살며 또 우리는 애덕에 의해 서로 아주 긴밀하게 결합됩니다.

4. 공의회의 교부들은 신앙과 신심 행위의 분리될 수 없는 연관을 보여 주기 위하여 아래와 같은 진리의 개요와 더불어 성체성사의 거룩한 신비를 다루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의해 항상 가르쳐 왔고 견지되어 왔으며 또한 트리엔트 공의회에 의해 엄숙히 선언되었던 바를 재천명하였습니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 최후의 만찬 중에 당신의 살과 피로써 성체성사(미사 성제)를 재정하셨으니, 이는 당신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십자가의 제사를 세세에 영속화하고 또한 사랑하는 당신 정배인 성교회에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의 기념제를 위탁하시기 위함이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요 일치의 표징이요 애덕의 유대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게 하여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우리에게 장래 영광의 보증을 주는 빠스카 잔치이다." 1)

5. 이 선언문으로써 교회는 십자가상 제사와 성체성사에 찬양을 드립니다. 십자가상 제사는 매일 거행되는 미사 성제의 본질에 속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영성체로써 이 성자에 참여할 대에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며 "불사 불멸의 처방"인 은총을 박습니다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름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 6, 55).

6. 그렇다면 거룩한 전례의 개혁이 성체 신심 안에서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되리라고 나는 희망합니다. 그 결과, 구원을 가져다 주는 이 탁월한 신심이 거룩한 교회에 의해 가장 소중한 보화로 평가되어 왔으므로 교회는 완전한 일치에 도달하기(요한 17,23 참조)가지 매일 진보해 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부르고 또 한 하느님 은총의 작용에 힘입어 신앙과 사랑의 일치에로 차츰 이끌어야 합니다.

7. 가톨릭 교회의 신도들이「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과 그 개혁을 크나큰 기쁨으로 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서 우리가 은총의 수확과 첫 결실들을 맛보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확신입니다. 그 같은 수확은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의 교리에 대한 한층 더 통찰력 있는 탐구 및 더욱 깊은 이해에로 성큼 다가가려는 상당한 노고의 결실인 수많은 작품의 출판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러한 작품들은 특히 성체성사가 교회의 신비와 맺고있는 관계에 대하여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8. 이것이 나에게는 위로와 기쁨의 주요 원인입니다. 존경하올 형제들이여, 여러분들과 함께 이 위로와 기쁨을 나누어 여러분들이 나와 결합하여 당신 성령에 의해 교회를 다스리시며 덕의 성장 안에서 교회를 풍요롭게 하시는 모든 은총의 분배자이신 하느님께 감사 드릴 수 있는 것이 나의 크나큰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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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적 관심과 염려의 원인들

성체성사에 대한 오늘날의 우려되는 견해들

9. 존경하올 형제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주제 자체에 관해 우리가 신중한 사목적 관심과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는 데에는 몇 가지 까닭이 있습니다. 사도적 직분에 대한 나의 인식 때문에 나는 이 시급한 문제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 수많은 사람들이 말이나 글로써 이 거룩한 신비에 대하여, 신도들의 마음을 혼란시키고 신앙의 사항에 있어서 그들의 정신을 심각하게 현혹시키는 듯한 견해들을 퍼트리고 있음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그 같은 견해들은 백성 없이 사사로이 거행되는 미사, 실체 변화에 대한 교의, 성체 흠숭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그들은, 비록 어떤 교리가 교회에 의해 일단 선언되었을지라도, 그 교리를 언어의 본래 의미나 개념의 통용되는 뜻을 약화시켜 버리는 해석 방식에 따라 이해하거나 또는 그 교리를 아예 무시하는 것이 누구에게든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11. 여러분에게 몇 가지 예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사사로이 거행되는 미사를 무시하면서 이른바 '공동체' 미사만을 고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성체 안에 성사적 표징이 있음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마는 성사적 표징의 특징에 대한 고찰에 치중한 나머지 상징주의가 이 성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의 온전한 의미를 표현하고 완전히 설명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조장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빵의 전실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리고 포도주의 전실체가 그리스도의 피로 바뀌는 놀라운 변화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아니한 채 실체 변화의 의미를 다루면서, 트리엔트 공의회가 단언하고 있는 이 실체 변화를 "의미 변화(trans-signification) 또는 "목적 변화(trans-finalisation) 따위의 용어를 사용하여 이런 변화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끝으로 미사 성체가 끝났을 때에 남겨진 성체 안에 주 그리스도께서 더 이상 현존하시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견해를 표현하는 것도 부당합니다.

이 견해들로부터 야기되는 위험들

12. 이 같은 견해나 그와 유사한 의견들을 퍼트리는 것이 성자와 성체와 그 흠숭에 대한 믿음을 트게 손상시킨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자명한 것입니다.

13. 공의회의 성실한 노력에 의해 전체 교회 안에 널리 확산되어 있는 성체 신심에 대한 새로운 안목이 형성되리라는 희망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릇된 견해의 유포로 인해 이 희망이 좌절되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존경하올 형제들이여, 그러므로 나는 사도적 권위로써 이 주제에 관한 나의 의견을 개진하고 나의 마음을 열어 부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4. 나는 그와 같은 주목할 만한 견해들을 유포시키는 자들의 열성이 칭찬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며 또 그 열성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열성은 이 위대한 신비를 깊이 탐구하고 또 아직 온전히 계발되지 아니한 그 풍성한 의미를 명확히 밝혀 현대인들에게 정확히 전해주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그들의 열성을 인정하고 높이 평가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제시하는 견해들을 도저히 승인할 수 없습니다. 나는 올바른 믿음에 대해 그들이 설정하는 한계의 심각한 위험을 여러분들에게 일깨워 주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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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성체는 신앙의 신비이다

교부들은 하느님의 계시를 이 신비에 대한 유일한 관건으로 제시한다

15. 우선 나는 성체성사가 아주 위대한 신비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거룩한 전례의 말씀을 빌어 정확히 말한다면 그것은 신앙의 신비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모든 유해한 합리주의를 배척하려는 목적에 근본되는 그것을 증거하였습니다. 교회의 출중한 교부들과 박사들이 그것을 끊임없이 계속 가르치고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전임자 레오 13세의 슬기로운 말을 인용한다면 "독특한 기적들의 풍부한 다양성에 이하여 보든 초자연적인 실제가 오로지 이 신비 안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은 의심 없는 사실이다."2)

16. 그러므로 나는 무엇보다도 인간적 논증을 따르지 않으면서 겸허한 존경심을 가지고 이 신비에 접근해야 해야겠습니다. 이 신비 앞에서 인간적 논증은 묵묵히 있으면서 하느님의 계시에 부단히 매달려야 합니다.

17. 여러분이 알다시피 성 요한 크리소스또모는 경건한 마음으로 성체 신비를 이해하였고 또 놀라울 정도로 품의 있게 그 신비를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이 주제에 관하여 신도들을 가르치면서 다음과 같은 적절한 경고를 발언하였습니다. : "우리는 어디에서든 하느님을 흠숭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우리의 이성과 지성에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분께 반론을 제기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과 지성보다는 그분의 말씀을 더 따라야 한다. 성체 신비 앞에서 역시 우리는 마땅히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한다. 우리는 감각이 체험할 수 있는 것들에 우리의 관심을 쏟지 말고 그분의 말씀을 받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의 말씀은 우리를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3)

18. 스콜라 신학자들은 적어도 한 번 이상 이 신비를 다루었습니다. 성 토마스는 그리스도의 실제적 몸과 실제적 피가 이 성사 안에 현존한다는 사실이 "감각-경험에 의해서는 파악될 수도 없고 하느님의 권위에 근거를 둔 신앙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계속 진술합니다. : "따라서 '이것이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라는 루가 복음 22장 19절의 말씀에 대하여, 치릴로는 '여러분이 이 말씀의 진실을 의심해서는 아니 되고 오히려 신앙 안에서 구세주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분께서 진리 자체이시므로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분이시다.'라고 말한다."4)

19.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 백성들은 '천사 박사'의 안내를 받아 입에 맛봄으로는, 주여, 나 너를 알 길이 없사오나 들음으로써 만은 믿어지며, 천주 성자의 말씀하신 것이 모두 진실하여 굳이 믿삽느니, 자연 진실함의 샘이로소이다."

20. 성 보나벤뚜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언합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표징인 성사 안에 계시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분께서 천국에 계시는 것과 같이 실제로 성사 안에 계신다는 것이 큰 어려움을 제기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믿는 것은 지극히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5)

21. 같은 진리를 가르치는 또 다른 증거는 거룩한 복음서의 보도 안에 나타납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많은 제자들이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서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하고 수근거리며 주님을 버리고 더 이상 따라다니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열두 사도들도 떠나가지 않을까 예수는 염려하시어 던지신 질문에 베드로는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요한 6, 61-69) 하고 자신과 나머지 사도들의 신앙에서 우러나온 확고한 신념을 고백하였습니다.

22.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신비를 탐구함에 있어서 신비를 어둠 속에 있는 우리를 비추는 별처럼 교회의 교도권을 따릅니다. 구세주께서는 기록과 전승 안에 보존되어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교회의 교도권에 맡기셨습니다. 이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을 보전하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 확신을 지녀야 합니다. : "초대 교회 이래로 교회 전체에 걸쳐 참된 가톨릭 신앙으로 선포되고 고백되어 온 바는 비록 이성적 탐구나 언어의 표현에 의해 설명되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진실된 것이다."6)

우리 신앙과 그 전통적 표현 양식문들 간의 긴밀한 연관

23. 그런데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온전성이 보존되면서 아울러 적절한 표현 양식도 보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부주의한 언어사용은, 우리가 비록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을지라도, 아주 심오한 사항들에 대한 ale음을 거스르는 그릇된 견해들을 야기시킵니다. 성 아우구스띠노가 철학자들이 활용하는 표현 양식과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취해야 하는 표현 양식 사이의 차이를 중시하면서 이 같은 심각한 경고를 발언하였습니다. : "철학자들의 언어는 거리낌이 없다. 이해하기가 극히 어려운 사항에 있어서 철학자들은 종교적 진리 이해에 가해지는 일종의 폭행에 과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신중히 검토되지 아니한 말들이 표현하는 사항들에 대한 사악한 견해가 그 말들로 인해 생겨나지 않도록 불변하는 규범에 따라 진술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다."7)

24. 이러한 표현 규범이 성령의 보호하심에 힘입어 수세기 동안 작업해 온 결과 교회 안에 도입되어 왔습니다. 교회는 여러 공의회의 권위로써 그 규범을 확증해 왔습니다. 그것은 여러 차례에 걸쳐 정통 신앙의 증거와 기준이 되어 왔습니다. 그것은 세심하게 준수되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임의대로 또는 새로운 지식의 구실로 그것을 주제넘게 변경시키려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공의회들이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의 신비를 다루면서 활용한 교의적 표현 양식문들이 그것들을 대체하기 위하여 경솔하게 도입된다면 이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성체 신비를 믿을 교리로 표현하기 위하여 제시한 양식문들을 누군가가 자기 멋대로 변형시키고자 한다면 이 또한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 양식문들 그리고 교회가 신앙의 교의들을 제시하고자 활용하는 다른 양식문들은 어느 특정 신학 학파에도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지성이 실재에 대한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체험으로부터 얻고 또 구어체나 문어체의 언어로부터 빌어온 적절하고 확실한 용어들의 활용에 의해 표현하는 인식 내용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의 모든 사람에게 이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5. 이 표현 양식문들은 더욱 명확하게 또 더욱 분명하게 개진될 수 있지만 - 그리고 이것은 풍성한 결실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일 수 있지만 -그것들이 채택되었던 당시에 표현하고자 하였던 똑같은 의미를 간직해야만 합니다. 이 때문에 신앙의 이해가 발전될 때에도 여전히 신앙의 불변하는 진리가 존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거룩한 교의와 관련하여 이 점을 천명하였습니다. : "성 교회가 한 번 선언한 그 의미는 언제나 보전되어야 한다. 한층 더 고차적인 일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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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신비는 미사 성제 때에 성립된다

성찬 제사에 대한 교리

26. 존경하올 형제들이여, 가톨릭 교회가 성체 신비에 관해 전승으로부터 충실히 받아들이고 또 합심하여 가르치는 교리를 상기해 보는 것은 나의 기쁨입니다. 이 전승에 관한 이 회고는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지니는 즐거움과 이해를 증진시켜 줄 것입니다.

27. 맨 먼저 상기해야 할 사항은 말하자면 이 교리의 개요이고 정점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성체 신비에 의하여 갈바리아에서 한 번 성취된 십자가상 희생 제사가 놀랍게 상징화되고 부단히 기념되며 또 그 구원 능력이 매일 우리가 범하는 죄의 사함을 실재로 초래한다는 내용입니다.

28. 왜냐하면 새 계약의 중재자이신 주 그리스도께서 성체 신비를 제정하실 때에 모세가 옛적에 수송아지의 피로써 옛 계약을 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사가들의 보도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 중에 빵을 들어 감사 기도를 바치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는 너희를 이하여 바칠 내 몸이니라. 너희는 이 예식을 행함으로써 나를 기념하라." 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찬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드시고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다."(루가 22,19-20, 마태 26, 26-28, 마르 14, 22-24 참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도들에게 당신 자신을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 명령하셨을 때 이 예식이 거듭 반복되기를 열렬히 원하셨습니다. 초기 교회는 이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신도들은 열심히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성찬 제사의 거행을 위하여 충실히 모였습니다. 성 루가의 면밀한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사도 2,42). 그들은 이와 같은 엄청난 영적 활력을 성체 신비로부터 얻었습니다. 루가는 그들의 신앙 생활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사도 4,32).

초기 교회의 실천

29. 사도 바오로는 주님으로부터 그 자신이 받은 것을 아주 상실하게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1고린 11,23 이하). 그는 성찬 제사에 관해 분명히 언급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으므로 이교들의 제사에 참석해서는 아니 된다고 말합니다. : "우리가 감사를 드리면서 그 축복의 잔을 마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가 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잔을 마시는 여러분이 마귀들의 잔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식탁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1고린 10.16). 새 계약의 새로운 봉헌은 말라기에 의해 예언된 것입니다.(말라 1,11참조). 교회는 항상 주님의 명령과 사도들의 지시를 따라 "여전히 살아 있는 자들의 속죄 또한 보속의 영적 이익을 위해서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하게 깨끗해지지 아니한 자들의 정화를 위해서도"10) 이 새 계약의 제사를 봉헌해 왔습니다.

30. 우리가 나머지 증언을 생략하고 한 가지 증언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족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가 새 영세자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르치면서 진술한 발언은 기억될 만합니다 : "피흘림 없는 흠숭 예배 즉 영적 제사가 봉헌될 때 우리는 교회의 전반적 평화를 위하여 속죄의 제물을 하느님에게 바쳐 드린다. 우리는 세상의 올바른 질서, 황제들, 군인들과 가족 친지들, 병고에 시달리는 자들, 간난 고초를 겪는 자들을 위하여 또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기 제물을 봉헌한다. 그리고 이제는 고인이 된 거룩한 교부들과 주교들 및 우리 가운데서 삶을 영위해 온 다른 범주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왜냐하면 거룩한 제물이 현존해 있는 동안 바쳐지는 기도로 말미암아 영혼들은 그것으로부터 가장 큰 도움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교부는 유배 가 있는 자들을 위한 용서를 청하기 위한 목적으로 황제를 위하여 엮어진 화환을 예로 들어 보충 설명한 다음 이런 말로써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 역시 죽은 자들이 죄인일지라도 그들을 위하여 화환을 엮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우리 자신들을 위하여 자비로우신 하느님으로부터 공로와 은혜를 얻기 위한 노력으로 우리 죄 때문에 희생되신 그리스도를 봉헌한다."11) 성 아우구스띠노는 죽은 자를 위한 우리의 속죄 제사를 봉헌하는 관습이 로마 교회 안에서 번창한 사실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보여줍니다.12) 아울러 그는 이 관습이 교부들로부터 전해져온 전승으로서 보편 교회에 의해 준수되었음을 지적합니다.13)

모든 미사의 공적 성격

31. 교회의 신비를 밝히는 데에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주요 사실에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제의 역할을 수행할 때 교회 전체가 미사 성제를 봉헌하며 그 성제 안에서 봉헌됩니다. 이것이 교회의 교부들이 일찍이 가르쳤고,14) 또 나의 전임자 비오 12세에 의해 수년 전에 자세히 설명되었던 훌륭한 교리입니다.15) 최근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의 하느님 백성에 관한 대목16)에서 그 교리를 개진하였습니다. 정도의 차이로 뿐 아니라 본질적 차이로도 구별되는17) 공통의 사제직과 교계적 사제직 간의 구별이 정당히 인정되어야 할지라도 이 교리가 신도들의 마음 안에서 거듭 명확히 이해되어 깊이 새겨지기를 나는 열렬히 바랍니다. 이 교리는 세 가지 목적에 비추어 상당한 가치를 지닙니다. 그 것은 성체 신심을 고무시키고, 신도들의 품위를 드높여 주며 그들이 높은 경지의 성덕에 도달해야겠다는 마음을 같게 해줍니다. 물론 가장 높은 수준의 성덕은 하나이며 같은 것으로서 너그러운 자아 봉헌에 의해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거룩한 영역에로 온전히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32.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미사의 공적 또는 사회적 성격"18)에 대한 이 교리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에 관한 언급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미사가 사제에 의해 사사로이 집전될지라도 사적인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와 교회의 행위인 것입니다. 교회는 참으로 그 자신이 봉헌하는 제사 안에서 그 자신을 보편적 희생으로 바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즉 교회는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유일하고 무한한 십자가상 제사의 구원 효력을 세상에 가져다 줍니다. 거행되는 모든 미사는 특정 사람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도 봉헌 됩니다. 그 결과는 이중적입니다. 즉 많은 사람의 참여와 능동적 참여가 그 본질상 성찬 제사에 요구되는 것처럼 미사 거행에 가장 적합한 요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당한 까닭으로 인해 거룩한 교회의 규범들과 합법적 전통들에 따라 사사로이 거행되는 미사의 경우에 비록 한 사람이 미사 경문에 응답하면서 복사하는 경우일지라도 합법적이고 유효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미사는 은총을 전해 주지 않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사제 자신과 신도들 및 전체 교회 그리고 광범위한 세상을 위하여 풍성한 은총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총 오로지 영성체에 의해서만 일률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33. 축성하는 주교의 안수로써 사제들이 받게 되는 능력을 소중히 여길 것을 나는 부성적이고 열렬한 마음으로 권장하며 또한 그것은 나의 특별한 기쁨이고 주님께 대한 영광입니다. 사제는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하고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미사 성제를 거행하는 능력을 지닙니다.19) 그들은 그 자신과 신도들이 십자가의 희생 제사로부터 풍성히 넘쳐흐르는 결실들이 실효를 거두도록 매일 합당하게 또 열심히 미사를 집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인류의 구원에 가장 탁월하게 공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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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미사 성체 안에 성사적으로 현존하신다

교회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다양한 현존

34. 나는 미사 성제에 관하여 몇 가지 사항들을 지적해 오면서 성체성사에 대한 몇 가지 요점들을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요컨대 희생 제사와 성사는 같은 신비에 속합니다.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미사 성제 때에 피흘림 없이 이루어지는 주님의 봉헌은 그분의 십자가상 제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그분의 구원 능력을 현실화하는 것으로서, 이 모든 것이 그분께서 축성의 말씀에 의해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신도들의 형상 안에 신도들의 영적 음식으로서 성사적으로 현존하기 시작하실 때에 발생합니다.

35. 그리스도께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당신 교회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이 간략하게 설명한 것으로서 기쁨을 주는 진리입니다. 여기서 이 진리를 약간 길게 고찰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기도 중에 당신 교회 안에 현존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사제로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머리로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며 또한 우리의 하느님으로서 우리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는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라고 친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 교회가 애덕의 행위를 실천할 때에 그 안에 현존하십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에게 베푼 선행은 그분 자신에게 행한 것(마태 25,40 참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 자신이 교회를 통하여 이 일들을 실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분으로 하여금 당신 사랑으로써 사람들을 부단히 도와주시도록 선행을 실천합니다. 교회가 영원한 생명의 항구에 도달하려는 열성을 가지고 순례의 길을 걷고 있을 때에도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교회 안에 현존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신앙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마음 안에 거처하시며(에페 3,17 참조) 또 그분께서 몸소 주시는 성령에 의해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시기(로마5,5참조) 때문입니다.

36.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 안에 아주 실질적으로 현존하시게 되는 또 다른 방식이 있습니다. 즉 교회가 말씀의 선포에 전념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선포되는 복음은 하느님의 말씀이고 또 이 복음은 '살'이 되신 하느님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분의 권위에 의해 선포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선포될 때에 그분은 현존하십니다. 이로써 교회는 "한 목자 밑에 모이며 그분의 아낌없는 보살핌을 받는 유일한 양떼"가 되는 것입니다.

37.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을 통솔하고 다스릴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교회 안에 현존하십니다. 교회의 거룩한 능력은 그리스도로부터 오며 또한 목자들 중의 위대한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주교들이 교회의 그 권능을 행사할 때에 그분이 몸소 사도들에게 하신 약속에 따라 주교들과 함께 계십니다.

38. 더욱이 교회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미사 성제를 봉헌할 때 그분께서는 더욱 고귀한 방식을 현존하십니다. 즉 교회가 성사를 집행할 때에도 현존하십니다. 미사 성세의 봉헌 때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 문제에 대해서는 성 요한 크리소스또모의 경탄 할 만한 말을 상기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가 발언한 말의 진실은 상당히 설득력 있습니다 : "나는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진리를 거듭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놀라워해서도 당황해서도 아니 됩니다. 그 진리는 무엇인가? 봉헌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베드로이든 바오로이든 누구이건 상관없이 그것은 똑같은 봉헌입니다. 사제들이 지금 수행하는 봉헌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봉헌이며, 그것은 결코 그리스도 자신의 봉헌보다 못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제의 봉헌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최초의 봉헌을 거룩하게 하신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제가 말하는 말씀이 주께서 하신 말씀과 똑같은 것처럼 봉헌 그 자체도 동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사가 그리스도의 행위이고 그리스도께서 대리자인 사제를 통하여 성사를 집전하신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성사가 근본적으로 거룩하며 또한 그것이 몸과 접촉하는 동안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 영혼에 은총을 부어 줍니다. 이 같은 현존 방식들은 마음을 경탄으로 가득 채우며 교회의 신비에 대한 깊은 반성의 적절한 주제가 되게 해줍니다. 그런데 또 다른 방식 즉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서 현존하시게 되는 가장 고귀한 방식이 있습니다 성세성사 안에서의 현존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현존으로 인해 성사들 가운데서 성체성사가 신심에는 "가장" 감미로움을, 깨달음을 통해서는 가장 아름다움을, 내용상으로는 가장 성스러움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이 성사의 내용은 그리스도 자신이며 또한 그것은 말하자면 "영적 생활의 완성이고 모든 성사의 목표"입니다.

실제적 현존과 성체성사의 상징주의

39. 성체 안에서의 현존이 '실제적인 것'이라 불리우는 것은 마치 다른 현존 방식이 '실제적'이 아닌 것처럼 배타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그것이 탁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의심없이 총체적으로 또 온전하게 하느님이요 인간으로서 현존하시게 되는 즉 본체적 현존 방식입니다. 누가 만일 오늘날의 용어를 사용하여 이 현존의 방식을 마치 그리스도의 영광스럽게 된 몸이 '영적'(pneumatic) 본성으로서 어느 곳에든 현존하는 것으로 알아듣는다면 이는 잘못 이해한 것이 됩니다. 또한 그것을 상징주의의 테두리 안으로 한정시켜 이 존엄한 성사가 다만 그리스도의 영적 현존의 효과적 상징일 뿐이라 여기며 그리고 그분의 신비체에 속하는 지체들인 단신 신도들과 맺고 있는 관계가 그 성사의 구성 요소라고 가정하는 것도 역시 그릇된 설명입니다.

40. 사실 교부들과 여러 신학 학파의 신학자들이 특히 교회의 일치에 관련하여 성체성사의 상징주의에 관해 많이 진술하였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그들의 가르침을 개괄하면서 우리 구세주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결합시키시는 애덕과 일치의 상징으로서" 또한 그리하여 "그분 자신이 그 머리이신 유일한 몸의 상징으로서" 성체성사를 당신 교회 안에 남겨 주셨다고 가르치셨습니다.

41. 그리스도교 문학이 생겨나기 시작할 때에 「디다케 또는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이라는 작품의 익명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이렇게 적었습니다. : "(주님), 성체성사는 당신의 감사 제사임이 명백합니다. …… 이 빵이 쪼개어지고 무수한 많은 조각으로 나누어졌다가 하나로 결합되었던 것과 같이 당신의 교회도 이 땅의 끝에서부터 당신 왕국에로 결집되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42.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성 치쁘리아노는 교회가 분열되지 말고 일치되어야 함을 촉구하면서 이렇게 진술합니다. : "그리스고인들의 일치는 꾸준하고 확고 부동한 애덕에 의하여 다져져야 한다고 주님의 희생 제사 자체가 선포한다. 왜냐하면 주께서 당신 몸을 빵이라고, 즉 많은 낟알이 합쳐져서 만들어 진 것이라 말씀하실 때 이는 그분이 몸소 성취하시는 백성인 우리의 일치를 가르켜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께서 당신의 피를 포도주, 즉 많은 포도 낟알에서 짜내어져서 만들어진 한 모금의 액체라는 말씀하실 때 그분은 똑같은 방식으로 양떼인 우리가 한데 모여 결합된 다수의 혼합에 의해 일치된 무리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43. 그 밖의 요점에 대해서는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서보낸 편지에서 그 모든 진술에 앞서서 단언하고 있습니다.: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Ⅰ고린 10, 17).

44. 성체성사의 상징주의는 확실히 신비체를 일치시키는 이 성사의 특별한 효과를 이하는 데에 적절한 길잡이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성체성사의 두드러진 특징을 완전히 설명하는 것도 해석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의 지속적인 가르침, 세례 지망자들에게 가르쳐지는 전통 가르침, 트리엔트 공의회에 의해 확정된 교리, 그리스도께서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를 제정하실 때에 몸소 하신 말씀,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다음과 같이 고백하기를 촉구합니다 : "성체는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 곧 우리 죄 때문에 고난을 겪었고 또 성부께서 당신의 자비로 인해 다시 살리신 살이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가 한 이 말에 덧붙일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주제와 관련된 교회의 믿음을 충실히 증거하는 말로서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가 백성들에게 진술한 말입니다.: "주께서 '이것은 나의 몸의 상징이고 또한 이것은 나의 피의 상징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것은 나의 몸이고 또 나의 피다.'라고 단언하셨다. 그분은 우리 오관(五官)에 나타나는 대상의 본성에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 대상의 본질이 그 위에 발설된 말씀과 감사 행위로 인하여 살과 피로 변화되었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45. 교회의 이 믿음에 의지하여 트리엔트 공의회는 숨김없이 또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참 하느님이시고 참 사람이신 우리 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축성 이후 거룩한 성체의 복된 성사 안에 지각할 수 있는 대상물들의 외양 하에 참으로, 실제로, 실체적으로 현존하신다. " 그러므로 우리 구세주께서는 당신의 본래 존재 방식을 취하여 하늘에 계신 성부 오른편에 오르신 당신의 인간성에 따라 이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실 뿐 아니라 동시에 "우리가 말로써 거의 표현할 수 없을지라도 하느님에게 가능한 존재방식에 의해서도 현존하신다. 신앙에 의해 얻어진 이해력으로써 우리는 이 성사에 이를 수 있으며 또 가장 뛰어난 항구심으로써 그것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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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그리스도께서 실체 변화로 인해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신다

빵과 포도주 안에 일어난 변화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

46. 자연 법칙의 한계를 뛰어 넘고 온갖 종류의 모든 기적들 중 가장 출중한 기적을 이루는 이 현존 방식을 그릇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유순해야 하고 또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과 기도를 통하여 교회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교회의 소리는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꾸준히 다시 들려줍니다. 교회의 진술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빵의 전실체가 그분의 피로 변화됨으로써 분명 이 성사 안에 현존하시게 됨을 가르쳐 줍니다. 이것은 명백히 놀랄만한 유일무이한 변화이고 도 가톨릭 교회는 이 변화에 실체 변화라는 적절하고 정확한 이름을 부여합니다. 실체 변화가 발생할 때 의심없이 빵과 포도주의 외형은 새로운 표현과 새로운 목적을 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더 이상 보통의 빵과 보통의 포도주가 아니며 성스러운 요소의 표징과 영적 음식의 표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가 마땅히 존재론적이라 불러야 하는 새로운 실재를 내포한다는 이 이유로 말미암아 새 표현과 새 목적을 취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외형 하에는 그 이전의 것이 없어지고 그것과 전혀 다른 어떤 것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교회의 믿음에 의해 내려지는 평가 때문에 그렇게 될 뿐 아니라 그 사실 자체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방과 포도주의 실체 또는 본질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될 때 다만 빵과 포도주의 외형들 안에 그리스도는 온전히 총체적으로, 육체적으로도 즉 당신의 육체적 '실재'로서 현존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육체가 어떤 장소에 현존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의 현존은 아닌 것입니다.

47. 이런 연유로 교부들은 신도들이 이 장엄한 성사에 과해 고찰할 때 빵과 포도주의 특성들을 지각하는 감각의 차원에만 머물지 않도록 빈번하게 경각심을 일깨워야 했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찬동해야 한다고 신도들에게 독려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빵과 포도주를 당신 몸과 피로 바꾸어, 변형시키고, '성분변화(trans-element)를 시킬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까닭에 대하여, 교부들은 이 행위를 수행하는 능력이 태초에 온 우주를 무에서 창조하신 전능한 하느님의 똑같은 창조 능력이라는 사실을 들어 수차 단언하였던 것입니다.

48. 예루살렘의 치릴로는 신앙의 신비들에 관한 설교를 마치면서 이렇게 진술합니다. : "여러분들이 이 가르침을 듣고 또 빵처럼 보이는 것이 비록 빵의 맛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방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고 포도주처럼 보이는 것이 비록 그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지라도 포도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라는 것을 온전히 또 확고히 믿음으로써...... 이방을 영적 음식으로 취하여 여러분의 마음을 강하게 하며 여러분의 영혼을 빛나게 하시오"

49. 성 요한 크리소스또모는 단호히 선언합니다. :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 제물의 봉헌을 책임맡은 사람은 인간이 아니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눈에 뜨이는 형상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발설하는 사제에게 속하는 것이지만 능력과 은총은 하느님에게 속한 것이다. '이는 내 몸이니라.'고 사제가 선포하는 하느님 말씀이 봉헌물을 변화시킨다."

50. 요한은 콘스탄티노블의 주교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치릴로는 마태오 복음서를 해석하면서 요한의 견해와 놀랍게 일치되는 의견을 피력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하나의 형상이라고 여러분이 생각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 '이는 내 몸이니라.', '이는 내 피니라.'는 명시적 표현 양식을 사용하셨다. 이로써 그분께서는 실제 봉헌되는 것이 전능하신 하느님에 의해 감추어진 방식으로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어 먹고 마시게 될 때에 우리는 생명을 주고 거룩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입게 된다."

51.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오는 성체 변화에 대하여 명쾌하게 해설합니다. :"이것은 자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산물이 아니라 축복이 거룩한 것으로 변화시킨 것이고 또한 자연까지도 축복에 의하여 변화되기 때문에 축복의 능력이 자연의 능력보다 더 출중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 그는 신비의 진리를 성실히 입증하기 위하여 성서 안에 묘사되어 있는 무수한 기적의 예들을 제시합니다. 그 가운데서 그가 인용하는 한가지 사실은 그리스도의 동정녀 마리아로부터의 참된 탄생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창조 사업에 관심을 돌려 결론을 이렇게 단언합니다 :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무에서 창조할 수 있었다면,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그 이전에 존재하지 아니하였던 것으로 변화시킬 수 없겠는가? 존재하는 것들에게 새 본질을 부여하는 것은 그것들의 본체를 변화시키는 것에 못지 않게 대단한 일이다."

같은 주제에 관한 교황들과 공의회들의 가르침

52. 여기서 많은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 이성이 겪는 난관들에 봉착하여 맨 처음으로 성체변화를 부인한 베렌가리오를 거슬러 교회가 합심하여 논박한 신앙의 확고한 신념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그가 자기의 그릇된 견해를 철회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교회는 서너 차례 그를 단죄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나의 선임자 성 그레고리오 7세는 아래의 말로써 서약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 "성스러운 기도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신비가 제단 위에 놓여져 있는 빵과 포도주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참되며 생명을 주는 몸과 피의 실체로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것을 나는 내 마음으로 믿고 또 나의 입으로 고백합니다. 또한 그것들이 성변화 후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시고 세상의 구원을 위한 봉헌 재물로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참 몸이고 그 옆구리 흘러나온 그리스도의 참 피이며 그리고 그것들이 단순히 성사의 상징주의와 능력 때문이 아니라 본체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서 또 참된 실체로서 그리스도의 참 몸과 참 피라는 것을 나는 시인합니다.

53. 라테란, 콘스탄츠, 피렌체, 트리엔트 등 세계 공의회들이 성체의 실체 변화에 관하여 부단히 가르치는 바는 교회의 교리를 개진하든지 이단들을 단죄하든지 간에 모든 경우에 있어 실체 변화라는 말마디를 한결같이 사용합니다. 이 같은 사실은 가톨릭 신앙의 확고 부동성을 입증하는 놀라운 증거입니다.

54.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나의 선임자 비오 6세는 삐스또이아 시노드의 이단들을 논박하였습니다, 그는 교구 사제들이 가르치는 직무를 수행할 때에 신앙의 조목들 가운데 수록되어 있는 실체 변화에 대한 언급을 삼가는 일이 실제로 생겨나는 사례를 엄중히 경고하였습니다.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나의 선임자 비오 12세는 실체 변화의 신비에 관한 신중한 토의에 참가하는 자들에 의해 간과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설정한 합법적 한계들을 상기시키는 담화문을 발표하였습니다. 나 자신은 이탈리아의 국내 성체 대회가 최근에 피사에서 개최되었을 때 나의 사도적 권위 임무 수행으로써 교회의 신앙을 공적으로 또 엄숙하게 증거하였습니다.

55. 가톨릭 교회는 가르침으로써뿐 아니라 생활로써도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현존에 대한 믿음을 견지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느님에게만 합당한 경신례로써 이 위대한 성사를 받들어 모시지 아니한 적이 결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점에 관하여 성 아우구스띠노가 진술합니다 : "(주께서는) 이 땅 위에서 당신의 몸으로 걸어 다니셨고 도한 우리가 구원을 위하여 먹을 음식으로 그 몸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렇지만 이 몸에 대해 먼저 흠숭을 드리지 아니하고 그것을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리고 죄짓지 아니하는 것이 우리의 흠숭일 뿐 아니라 우리가 흠숭을 드리지 않는다면 죄를 범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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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성사에 바쳐져야 할 흠숭 예배

성체를 존경심으로 보존하는 오랜 관습

56. 성체성사에 바쳐져야 할 이 흠숭 예배는 미사 예식 동안에는 물론이고 미사 끝난 후에도 교회에 의해 실천되어 왔습니다. 교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체를 아주 신중하게 보존하고, 장엄한 흠숭을 위하여 백성들에게 현시하며, 백성들의 기쁨에 찬 행렬 중에 함께 모심으로써 이 흠숭 예배를 실천합니다.

57. 교회의 오랜 문헌들은 이 성체 흠숭에 대하여 많은 증거를 제시합니다, 교회의 사목자들은 신도들에 이 성체를 자기 집에 모실 때에 가장 신중한 배려를 쏟도록 항상 조처를 취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은 신도들에게 무시되어서는 아니 되고 음식으로 먹혀야 할 것이기 때문" 이라고 성 히뽈리또는 간곡히 당부합니다.

58. 만일 신도들이 온갖 정성과 존경심을 다하여 주님의 몸을 먹고 또 보존할 때에 그 부분을 소홀히 다루어 바닥에 떨어지게 되면 실제로 죄를 범하는 것이라 생각하였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오리게네스는 기술합니다.

59. 노바씨아노는 신도들이 탈선하여 합당한 존경심을 드리지 못할 경우에 이 사목자들이 심하게 질책하였던 사실을 증거합니다. 이 점에서 그는 우리의 신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 미사의 집전이 끝나자마자 통상 하는 대로 자기 자신 안에 여전히 주님의 거룩한 몸을 모시고 다니면서도 신도들의 집으로는 모셔가지 않고 그 대신 현시해 주기만 하였던 사람들을 그가 높이 평가한 데에 대해서는 그는 마땅히 단죄받아야 합니다.

60.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는 이에 대해 더욱 상세히 증언합니다. 그는 성체의 일부가 다른 날에까지 남아 있다면 그것이 성화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고 발언한 자들의 견해를 어리석은 짓으로 배척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변하시지도 않으며 그분의 거룩한 몸도 변화되지 않고 축복의 권능과 능력과 생명을 주는 은총이 그 몸 안에 영원히 존속하기 때문" 이라 그는 진술하였습니다.

61. 우리는 초대 교회의 관습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왜냐하면 성체 보존의 관심에 힘입어 신도들이 혹심한 박해의 고초에 시달리거나 수도 생활을 원하여 고독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동안에 매일이라도 성체로부터 새로운 활력을 얻어 누릴 수 있게 때문입니다. 사제나 부제가 없을 경우에 신도들은 그 자신의 손으로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의 실천과 신심 행위들

62. 교회법은 그 결과 성체의 보존 관습과 현재 시행 중인 영성체의 관습을 명시해 왔습니다. 내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행 실천에 있어서 어떤 변화를 제안하려는 것이 이 서한의 목적이 아닙니다. 이 문헌의 의도는 언제나 하나이며 동일 한 교회의 신앙 안에서 누리는 나의 기쁨을 전달해 주려는 데에 있습니다,

63. 이 같은 신앙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최초로 리에즈 교구에서 거행되었던 - 최초의 발기인은 하느님의 복된 종 몽 꼬르니옹의 율리안나 였습니다. - 이 축일이 나의 선임자 우르바노 4세에 의해 전체 교회의 관습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성체 신심의 많은 관습이 이 신앙으로부터 생겨났으며 또 하느님의 은총으로 영향을 받아 그 관습들이 매일 증진되었던 것입니다. 이 성체 신심의 관습들로부터 고움을 받아 가톨릭 교회는 앞을 다투어 경쟁하듯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고 이 위대한 천상 선물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그분의 자비를 간청하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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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흠숭을 진작시키려는 권고

성체 신심의 중요성과 표현과 결실들

64. 그렇다면 이 신앙의 유일한 관심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말씀을 온전하게 준수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존경하올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들이 그릇되고 파괴적인 온갖 견해들을 전적으로 배격하고 여러분들이 주의 깊게 보살펴야 할 사람들 즉 하느님 백성들 가운데 이 신앙을 순수하고 온전하게 보존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합니다. 나는 또한 여러분들이 종국에는 모든 형태의 신심을 집결시키는 집합점이고 또 그 신심이 지향하는 목표이어야 할 성체 흠숭을 촉진시키는 데에 말과 수고를 절대 아끼지 말아 달라고 부탁 드립니다.

65. 여기에 수반되는 것으로서 여러분의 끈덕진 주장에 힘입어 그리스도교 신도들에게 꾸준히 알려지고 명확히 밝혀져야 할 기본 사실이 있습니다. : "살려고 하는 사람은 삶의 장소와 방도를 가지고 있다. 그가 생명을 누려야 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그들을 믿고 조직체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그는 구성원들 간의 긴밀한 일치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말아야 한다. 그는 그 자신을 공동체 밖으로 뛰쳐나가게 하는 수치스러운 짓을 법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공명 정대 하고 건전하고 건실해야 한다. 그는 하느님께 의지하고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살기를 조직체에 굳게 매달려 있어야 한다. 그는 사후에 천국에서 다스리기 위하여 지금 이 땅위에서 수고해야 한다.

66. 되도록 많은 신도들이 또 가능한 한 매일 미사성제에 적극 참여하고 순수하고 거룩하게 영성체 함으로써 새 힘을 얻어 누리며 주 그리스도의 이 위대한 선물에 대하여 감사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말이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모둔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거룩한 잔치에 나아가기를 바란다. 이같이 염원하는 까닭은 그들이 이 성사에 의해 하느님과 결합되고 또 탐욕을 억제하고 매일 발생하는 가벼운 과오들을 씻어 버리고 인간의 나약함으로 말미암아 범하게 되는 더욱 중대한 죄를 피할 수 있기 위하여 이 성사로부터 힘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전례법은 성체가 성당 내에서 최대의 존경심으로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위치에 보존되어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신도들은 기회 있는 대로 성체조배를 해야 합니다. 조배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 그리스도께 대한 합당한 흠숭의 실천, 감사의 뚜렸한 표시, 사랑의 보증입니다.

성체의 보존과 그 혜택

67. 그리스도의 성체가 그리스도교 백성들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자존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찬 제사가 봉헌되고 성사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만 그리스도께서 진정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 되시는 것은 아닙니다. 성사의 거행, 희생 제사의 봉헌 이후에 성당과 기도소 안에 보존되어 있는 동안에도 역시 그러합니다. 밤낮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거처하십니다.(요한 1, 14 참조). 그분은 우리오 하여금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덕을 행하게 하시며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시고 허약한 자를 강하게 하십니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본받으려고 당신에게 가까이 오는 모든 사람들을 자극하시어 이들이 당신을 본받아 온유하고 마음으로 가난한 자가 되고 또 그 자신의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배울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흠숭하올 성체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실천하고 우리들을 무한히 사랑하시는 그리스도께 신속하고 고결한 사랑을 되돌려 드리려고 애쓰는 사람은 누구나가 마음의 크나큰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즉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생명(골로 3,3 참조)의 위대한 가치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대화에 전념하는 기도의 효력을 경험으로 배우고 또 충분히 이해하게 됩니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을 주는 것, 성덕에로의 길을 걸어가는데 있어서 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이 땅 위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68. 존경하올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더군다나 성체가 수도 공동체와 본당 공동체의 영적 중심으로서 또한 보편 교회와 전인류 공동체의 영적 중심으로서도 성당과 기도소 안에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외양상 가리어져 있는 그 내용이 교회의 볼 수 없는 우두머리, 세상의 구세주, "만물과 우리 모두를 창조하신"(1고린 8,6) 주님,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69. 결과적으로 천상 성체께 대한 예배는 '공동체적' 사랑의 완성을 향한 강력한 추진력으로 영혼에게 작용합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사사로운 이득보다는 공동 이익을 중요시하게 하며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들이 어느 곳에서든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을 전세계의 영역에까지 확산되게 해주는 사랑입니다.

70. 존경하올 형제들이여, 따라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결합시키는 일치의 표징이고 원천인 것입니다. 뜨거운 열성을 가지고 이 성사에 경의를 표하는 자들 안에서 이 성사는 오늘날의 용어를 써서 표현한다면 적극적인 교회적 정신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신도들이 성체신비에로 가까이 나아가고 또 그리하여 교회의 목적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배우도록 꾸준히 격려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끊임없는 간절한 염원을 열심히 실천하고 교회의 평화와 일치를 위한 향기로운 희생물로 자기 자신들을 바쳐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자녀들을 위하여 얻어지는 결과는 그들이 하나가 되고 같은 마음을 지닐 수 있게 되며, 그들 가운데 불목이 전혀 없게 되고 사도 바오로가 명령한 대로 모든 의견을 통일시켜 갈라지지 아니하고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굳게 단합하게 되는 것(1고린 1,10 참조)입니다.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갔으므로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가톨릭 교회와 온전하게 결합되지 아니한 자들을 위하여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이 누리기를 절실히 원하신 신앙과 친교의 일치 안에 들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체와 교회의 일치

71. 남녀 수도자들은 교회 일치를 위하여 하느님께 열렬히 간청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봉헌하는 것이 자신의 주요 임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지극히 거룩한 성체께 흠숭을 드려야 합니다. 그들이 발한 서원들은 말하자면 그들로 하여금 여기 이 땅 위에서 영광을 누리게 해줍니다.

72.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한 기도가 가장 중요하며 그 자신이 가장 우선적으로 기꺼이 수행해야 할 과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트리엔트 공의회가 「거룩한 성체에 관한 교령」의 말미에 선언한 말로써 교회 일치의 중요성을 한번 더 촉구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 거룩한 공의회는 자부적인 사랑으로써 '우리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를 통하여'(루가 1,78)그리스도인이 된 모든 사람이 각자 이 일치의 표징 안에서, 이 사랑의 유대 안에서, 이 화합의 상징 안에서 만나 궁극적으로 한마음이 될 것을 호소하고 당부하며 간절히 바란다.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위엄과 탁월한 사랑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구원의 대가로 당신의 귀중한 목숨을 내어놓으시고 당신의 몸을 먹을 음식으로 우리에게 내어 주셨다(요한 6,48 이하). 공의회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이 거룩한 신비에 믿음과 존경심을 표명하면서 열성껏 실천하는 신심과 예배 및 굳건하고 항구적인 신앙을 갖고 또 하늘로부터 내려온 실제적 양식(마태 6,11)을 자주 먹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들은 자기 영혼의 생명과 지속적 건강으로서 그 양식을 진정으로 소유해야 한다. 그들은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1열왕 19, 8) 이 고달픈 순례 여정을 마친 후 천상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도록 양육되어야 한다. 그들은 거룩한 가리개 안에 감추어진 "천사들의 양식"(시편 77,25)을 먹기 때문에 그들의 천상 나라에서는 가리개가 전혀 없는 그 양식을 먹기로 예정되어 있다."

73. 구세주께서는 당신 죽음이 임박하였을 때에 당신 자신을 믿는 모든 이들이 당신과 당신 성부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성부께 기도하셨습니다.(요한 17, 20-21 참조) 나는 구세주께서 나와 전체교회의 이 같은 열렬한 바람을 당신자비로써 가능한 빨리 충족시켜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즉 우리 모두가 한 목소리와 신앙으로 성체 신비를 거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1고린 10,17 참조) 한 몸이 되고 그리스도께서 성취되기를 원하신 그 유대에 의해 굳게 결속되기를 바랍니다.

74. 이 밖에도 나는 형제적 사랑의 정감을 표명하면서 훌륭한 동방 교회에 속해 있는 모든 분들에게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이 교회의 배경으로부터, 내가 이 서한에서 큰 기쁨을 가지고 인용하였던 성체께 대한 증언의 장본인들인 탁월한 교부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성체께 대한 우리가 가진 신앙과 똑같은 여러분의 신앙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여러분이 이 위대한 신비를 거행하면서 바치는 전례 기도를 우리가 듣게 될 때에, 이 흠숭하올 성사를 해설하고 옹호한 신학자들의 증언을 듣고 성체 흠숭 예배를 우리가 보게 될 때에 크나큰 기쁨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75. 주 그리스도께서는 복되신 동정녀로부터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 이 성사 안에 "담겨지고 봉헌되고 고취하셨습니다. 마리아와 모든 성인들이, 특히 천상 성체께 대하여 특별한 열정으로 불타는 신심을 보여준 그들이 자비로우신 성부께, 그 자신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성체 흠숭과 신앙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완전한 친교의 일치를 실현할 수 있고 또 일치가 갈수록 강해질 수 있도록 간구해 주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순교자 성 이냐시오가 필라델피아인 들에게 한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분열과 불목의 악을 피하도록 강렬히 촉구하면서 성체가 그 악의 치유책이라 단언합니다. : "그러므로 여러분은 한 감사 제사를 봉헌하기를 애써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그분의 피를 담은 한잔, 한 제단, 한 주교가…… 있습니다."

76. 나의 마음은 전체 교회와 전세계를 위한 이익, 즉 성체 흠숭 예배가 증진됨에 따라서 생겨나게 될 이익에 대한 부푼 기대감으로 설레입니다. 존경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들과 사제들과 수도자들 또한 여러분의 직무를 성실히 도와주는 모든 이들 그리고 여러분이 보살펴 주는 모든 신도들에게, 나는 사랑 넘치고 열려져 있는 마음으로 천상 은총들 중 가장 주요한 은총인 사도적 축복을 보내 드립니다.

로마의 성 베드로 좌에서 교황 제위 제 3년, 1965년 9월 3일, 성 비오 10 교황의 축일에 교황 바오로 6세
  |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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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베네딕토 16세 : 1970년 개혁 이전의 로마 전례 사용에 관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  [2] 2985
21   베네딕토 16세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DEUS CARITAS EST)  [3] 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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