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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독신생활에 관한 회칙
조회수 | 2,895
작성일 | 06.01.26
교황 바오로 VI세 회칙사제 독신생활에 관한 회칙 / 1967. 6. 24.

서론

오늘의 거룩한 독신생활

1. 사제의 독신생활(Sacerdotalis Coeibatus)은 교회가 수세기 동안 빛나는 보석같이 지켜 온 것이며 환경과 정신상태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오늘에 있어서도 그 가치는 조금도 감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동요 속에서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고유한 이 독신제도를 재검토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경향을 보이며 이것을 직접 요망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에는 독신제도를 고수한다는 것이 현대에 있어 매우 어려운 일이며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 날의 나의 약속

2. 이렇게 일부 환경이 사제들과 사제직 후보자들의 양심을 흔들어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여 많은 평신도들을 놀라게 하므로 이미 공의회 교부들에게 약속했던 바를 지체없이 이행해야 하겠다는 의무를 느낀다. 나는 오랫동안 열심히 필요한 성령의 빛과 도움을 청하면서 특히 교회의 목자들이 각지에서 보내 온 의견과 소청을 하느님 앞에서 세밀히 검토하였다.

문제의 범위와 중대성

3. 성직자들의 독신생활에 관한 교회의 이 중대한 문제가 오랫동안 내 마음을 괴롭힌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스스로 물어 보았다. 대품(大品) 후보자들이 과연 아직도 이 엄격하고 고상한 허원(許願)을 발할 의무가 있을까? 이 허원을 지킨다는 것이 과연 오늘도 적당하고 가능한가? 교회에서 사제직과 독신생활을 묶어 놓은 끈을 풀어야 할 시가가 온 것이 아닌가? 이 어려운 규율을 지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완전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사제직 수행에 도움을 주고 비가톨릭 신자들의 접근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길이 아닌가? 만일에도 이 거룩한 독신생활의 값진 법이 앞으로도 남아 있어야 한다면 오늘 무슨 이유를 들어 그것이 적절하고 거룩한 법이라고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또 무슨 방법으로 이 법을 지켜야 하며 또 어떻게 이 무거운 짐을 사제생화에 도움이 되도록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다.

현실과 난제

4.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거룩한 독신생활의 보존을 반대하여 사람들이 이미 지적하였고 아직도 지적하고 있는 여러 가지 근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문제의 중대성과 복잡성은 내게 맡겨진 사도적 임무를 위해서 현실과 현실에 내포된 여러 가지 문제를 충실히 검토하는 동시에 맡겨진 직책과 사명의 요구를 따라 그리스도의 빛으로 이 현실을 밝혀 주도록 나를 강박하는 것 같다. 이 점에 있어서 나는 나를 이 직책에 불러 주신 그분의 뜻을 온전히 따르며 또한 교회에서 불러 주듯이 "하느님의 종들의 종임"을 보여 주고자 한다.

사제들의 독신생활을 반대하는 근거

독신생활과 신약성서

5. 교회의 독신제도를 오늘과 같이 예리하게 각 방면으로 검토해 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교의적, 역사적, 사회적, 심리학적, 사목적 각 입장에서 검토되었다. 때로는 용어의 왜곡이 없지도 않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올바른 지향으로 검토되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사제직과 결부된 교회의 독신제도를 반박하는 이유 중에서 중요한 것 몇 가지를 선의로 살펴 보고자 한다.

첫째 반박은 가장 거룩한 원천인 신약성서에 근거를 두고 이렇게 주장한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교훈을 담고 있는 신약성서를 보면 성직자들의 독신생활은 명백한 명령이 아니고 하느님의 특별한 성소와 특은을 받아서 택하는 자유행위로 제시되었다. 또한 예수 친히 12사도 선발에 있어서 독신생활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하신 일도 없고 사도들 자신도 초기 신자 단체를 사목할 사람들에게 그런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다.

독신생활과 교부들

6. 어떤 사람은, 서로 별개의 것인 사제 성소와 동정 생활을 옛적에 교회의 교부들과 저술가들이 서로 밀접히 결부시켜 놓은 것ㅇ,s 오늘과는 전혀 다른 당시의 심리상태와 역사적 환경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교부들의 글을 보면 사제들에게 독신생활을 하라는 권고보다 혼인의 권리 행사를 절제하라는 권고를 더 자주 발견할 뿐 아니라 교부들이 성직자들의 완전한 정결을 요구하는 이유가, 가끔 육체 정욕에 관하여 인간의 현세 상태를 사실 이상으로 나쁘게 보거나 성물을 취급하는 사람은 반드시 정결해야 한다는 그들의 그릇된 견해에 바탕을 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가 사제들을 통해서 활동해야 할 무대인 현대 세계의 사회적 내지 문화적 환경에는 이미 옛 저술가들의 이론이 적합하지 못하다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다.

성소와 독신생활

7. 또 어떤 사람은, 현행법 대로 사제 성소의 은혜와 하느님의 봉사자로서의 지위에 결부된 완전 정결의 은혜를 동일시해야 한다는 데서 독신생활의 문제점이 생긴다고 말한다. 따라서 사제직 수행에 적합한 청년에게 독신생활에 적격자가 아니란 이유로 사제직을 거절하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일이냐고 그들은 반문한다.

독신제도와 사제들의 부족

8. 또 어떤 이는 교회에서 지켜 온 독신제도가 사제들이 부족한 지역에 있어서 적지 않은 손실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사제들의 부족을 걱정하며 크게 한탄하고 있는 바이지만- 사제들의 부족이 인류 구원에 관한 하느님의 계획을 방해하며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시작조차 못하도록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비참한 사태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은 사제들의 부족이 독신생활이란 어려운 의무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신생활의 어려움

9. 만일 사제들이 결혼을 한다면, 교회에 심한 상처를 입히거나 교회를 괴롭히는 불충, 탈선, 불행한 실수 등의 기회는 이미 그들에게 있을 리 없고, 현재의 생활 조건 때문에 소외당한 것처럼 여기는 그들의 결혼을 한다면 오히려 가정생활을 통해서 보다 충실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연에 대한 모독(冒瀆)

10. 또 어떤 이의 주장을 들어 보면, 독신생활로 사제는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자연을 거스를 뿐 아니라 자신의 인격적 균형과 성숙을 해치게 된다. 이런 사제는 또한 인간의 온정을 잃고 이웃 형제들과의 공동생활이나 공동운명에 참여할 의욕을 상실하여 마침내 소외된 생활을 강요당하게 된다. 거기서 숱한 괴로움과 실의의 결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보면 독신 사제는 자연에 분명 부당한 폭력을 가하며 조물주로부터 부여되어 구세주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된 인간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균형잃은 교육

11. 마침내 어떤 사람은, 신학생이 독신생활의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과정을 보면 실제로 개인적인 결정으로써가 아니라 수동적 자세로 수락할 뿐이라고 공격한다. 그것은 그들이 받는 교육이 때로는 불충분할 뿐 아니라 정당한 자유를 무시하는 일방적 교육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독신생활을 수락하는 청년들이 참된 자유로 행동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며 그들의 지성이나 결정능력이나 생리적 내지 심리적 성숙이 독신생활의 의무와 거기서 오는 불편과 그것의장기화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올바른 인생관

12. 물론 독신제도를 반대하는 이유는 이외에도 아직 많을 줄 안다. 그러나 문제가 복잡할 뿐 아니라 인생관에 직접 관계되는 것이며 올바른 인생관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야만 완성될 것이므로 "이 말씀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하느님의 선물도" 모르고 혹은 잃어버려 이 새로운 인생관 속에 과연 얼마나 고상한 이유와 얼마나 신비로운 효력과 얼마나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는지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한 없는 공박의 종목을 나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과거와 현재의 증거

13. 이 같은 반대이론은 옛 교회의 목자들과 영신 지도자들의 위대한 증거를 무시할 뿐 아니라 오늘도 거룩한 충실한 하느님의 봉사자들의 무수한 무리가 우리 눈 앞에서 보여주고 있는 산 증거들을 무시하는 것 같다. 충실한 성직자들은 기꺼이 그리스도 신비에 자신의 온전힌 바치게 한 은총의 원인과 표지는 바로 거룩한 독신생활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훌륭한 모범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위대한 증언을 하고 있다. 따라서 현실을 지켜보고 있는 나로서는 위대하고도 놀라운 이 진리 앞에 눈을 감을 수 없다. 지금도 하느님의 교회 안에는 전세계 어디서나 무수한 차부제, 정부제, 사제, 주교 등 성직자들이 자원으로 하느님께 봉헌한 독신생활을 정결하게 완전히 지키고 있다는 이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밖에도 하느님께 정성을 바치는 남녀 젊은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이 완전한 정결의 허원을 충실히 지키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들은 하느님의 선물인 자기 생명을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부어진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로 태어난 새 생명을 따르려고 정결을 지키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극기의 용기와 정신적 기쁨으로 충실히 또 비교적 용이하게 독신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장한 광경은 인간 사회의 품속에 이미 천국이 임하여 있음을 실제로 보여 주는 것이며 "세상의 빛과 땅의 소금"으로서의 봉사를 증명하는 것이다. 나도 그들의 정결을 크게 감탄하는 바이니 거기 분명 그리스도의 성령이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독신생활의 재강조

14. 그러므로 독신생활은 오늘도 사제직과 결부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온전히, 영원히, 오로지 그리스도 사랑에 봉헌하고 하느님 공경과 교회의 이익을 위하여 진력해야 할 사제는 독신생활로 지탱되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독신제도로써 사제의 지위가 신자들과 세속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에서 구별되어야 하겠다.

교회의 권한

15. 사제성소는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느님의 백성을 사목하는 봉사를 위한 것이고, 독신생활의 성소는 거룩한 생활 방법을 택하여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기 위한 것이므로 사제성소의 은총과 독신생활의 은총이 서로 다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사제 성소가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고 해서 그 성소 자체로써 무슨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무엇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백성을 사목할 의무와 권리를 향유할 후보자의 성소를 시험하고 확인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영혼들과 교회를 돌보게 할 후보자들이 어떤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어야 할 것인지는 지방의 실정과 시대의 요구를 따라 교회의 권위가 이것을 결정해야 한다.

회칙의 목적

16. 하느님께서 섭리해 주신 이 기회를 신앙의 정신으로 이용하여 현대인이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들어 거룩한 독신생활의 정당하고도 중대한 이유를 다시 한 번 밝히고자 하는 바이다. 무릇 신앙을 거스르는 반대 이론은 오히려 "신앙의 정신을 자극시켜 보다 명백하고 보다 높은 신앙의 이해를 촉진시킬 수 있는 것이니" 그리스도교 생활을 규정하는 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사실 나는 이 기회에 기꺼이 천상 능력의 풍요함과 그리스도 교회의 아름다움을 깊이 고찰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의 아름다움이 사람들 눈에는 언제나 직접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교회를 세우신 하느님의 사랑이 낳아 주신 결과이며 또한 절대적인 성덕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성덕을 감탄하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인간의 힘이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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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룩한 독신생활

Ⅰ. 독신생활의 이유

공의회와 독신제도

17.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인정하였듯이, 초대교회의 실생활이나 동방 교회의 전통을 보아서 사제직 자체가 본질적으로 동정생활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의회는 오래되고 거룩하고 사리에 맞는 현재의 독신제도를 성대히 확인하기를 주저치 않았다. 동시에 믿음의 정신과 마음의 기쁨으로 하느님의 선물을 귀히 여길 줄 아는 그들의 독신생활을 택하는 이유도 공의회가 함께 설명하였다.

옛 근거를 비추는 새 빛

18. 독신생활이 성직자들에게 "여러 모로 타당한 것"이라는 견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역사와 문화의 환경을 따라 제시된 근거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그리스도교 진리에 입각한 것이었으며 그것을 깊이 살펴보면 훨씬 더 깊은 근본적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날로 영신사정을 상세히 깨닫게 됨으로써 독신생활의 이유도 날로 더욱 자명해질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감도를 받아 이렇게 되는 것이니 하느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미래 사정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신비와 교회의 신비를 깨닫게 하실 성령을 예수 친히 일찍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였던 것이다.

a. 독신생활의 그리스도론적 의의

그리스도의 새로움

19. 그리스도교적 사제직은 새로운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새로운 빛을 받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유일한 대사제시오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제직을 마련하심으로써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의 유일한 사제직에 실제로 참여하도록 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신비를 관리하는 그리스도의 협조자는 그리스도를 직접 본받을 모범으로 삼고 그리스도를 자기 생활의 완전한 이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죄와 죽음에 속해 있는 인류를 재생시키시고 이로써, 천국에 들게 하시려고 하느님의 외아들 주 예수께서 성부께로부터 세상에 파견되셨고 사람이 되셨다. 예수께서는 성부의 뜻을 완전히 따르시며 부활의 신비로써 이 새로운 창조사업을 완성하신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 속에 들어온 새로운 모습의 생명은 지극히 고상한 생명이 요 하느님의 생명이며 이로써 인간의 상태는 온전히 변하였다.

그리스도의 새로움 속의 결혼과 독신

20. 하느님의 뜻을 따라 결혼은 첫 창조사업을 계속하는 것이며, 구원의 전체 계획 속에서 결혼은 새로운 의의와 가치를 획득하였다. 과연 예수 친히 혼인의 본연의 존엄성을 회복시키셨고 혼인을 성사 지위에 승격시키시는 신비로운 상징으로 삼으셨다. 이리하여 신자 부부는 서로 사랑하며 맡겨진 특수 임무를 다하고 고유의 성덕을 힘쓰며 함께 천국 본향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한층 고상한 계약의 중재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인생항로를 개척하시어 이 항로를 택하는 사람은 온전히 하느님께만 집착하고 하느님과 하느님에게 관한 사정만을 걱정하며 살도록 하셨다. 이로써 신약에 고유한 새 힘을 보다 명백히 보다 완전히 보여 주신 것이다.

중재자 그리스도안의 독신생활과 사제직

21. 하느님의 외아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화신(化身=Incarnatio)으로써 하늘과 땅, 성부와 인류 사이의 중재자가 되셨다. 중재자 임무에 가장 알맞도록 그리스도께서는 일생 독신 상태로 머물러 계셨다. 이로써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쳐 하느님과 인류에게 봉사하신 것을 드러내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동정과 사제직의 밀접한 결합은 또한 중재자이시오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품위와 임무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성직자가 혈육의 인연에서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더욱 완전히 참여하게 된다.

독신생활과 천국

22. 예수께서는 당신이 뽑으신 구원의 첫 봉사자들에게 "천국의 신비를 알리려" 하셨을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을 특별한 명칭으로 하느님의 협력자(Adiutores) 되게 하시고 당신의 대사로 삼으시어 그들을 친구라 혹은 형제라 부르셨다. 그들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성화하시어 그들도 진리로써 성화되게 하셨다. 또 천국을 위하여 집과 가정과 아내와 자녀을 떠난 모든 이에게 풍부한 상급을 언약하셨다. 더구나 신비롭고 희망에 넘치는 말씀으로써 권고하시며 천국을 위하여 특별한 선물인 동정으로 자신을 더욱 완전히 봉헌하라 하시었다. 이런 선물을 받고 그것을 지키는 이유는 바론 천국이다. 마찬가지로 이 천국과 복음과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예수께서 어려운 사도적 활동을 요구하셨으며 많은 불편을 자원으로 참아 받으며 당신 운명에 더욱 깊이 참여하기를 요구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독신생활

23. 이렇게 예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의당 자원으로 동정생활을 택할 충동을 받는다. 동정생활은 그리스도의 새로움의 신비요,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어떤 분인가를 설명해 주는 신비요, 복음과 천국의 최고 이상의 종합이며 마침내 구세주의 부활 신비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의 특수표현인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만 참여하려 하지 않고 그분의 생활 방법까지를 본받으려 하는 것이다.

넘치는 사랑

24.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지극히 높으신 사랑에 응답하는 길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따르라고 엄숙히 권고하시면서 그들을 특별히 사랑하시므로 그 특별한 사랑 속에 이미 우리의 응답은 신비롭게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은총은 하느님의 힘으로 사랑의 실천 범위를 한없이 확대시킨다. 사랑이 진실하기만 하다면 모든 것을 감싸 주고 변할 줄도 모르고 항구하며 온갖 영웅행위를 성취하려는 충동에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법이다. 따라서 자유로이 선택한 독신생활은 언제나 "사랑의 표요, 사랑의 자극제"라 여겨 왔다. 즉 아무 예외도 두지 않는 사랑의 표요 누구나를 감싸 주려는 충동으로 여겨 왔다. 위에서 말한 동기에서 자신을 온전히 남들에게 바친 독신생활은 아주 드문 모범이 아닐 수 없으며 인생의 의의를 가장 뚜렷이 표현할 뿐 아니라 인간의 위대함을 말해주는 사랑으로 움직이고 사랑으로 자라는 생활인 것이다. 이런 생활 속에서 어찌 마음의 옹졸함이나 이기심의 그림자인들 발견할 수 있겠는가? 또 독신생활은 아무 일을 위해서나 바쳐진 것도 아니요 인간적인 최고 이상을 위해서 바쳐진 것도 아니라 오직 언제나 어디서나 인류를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해서 봉헌된 생활인 것이다. 이런 생활이 윤리적 내지 영신적으로 극치에 달한 생활이란 것을 누가 감히 의심할 수 있겠는가?

연구의 촉구

25. 성경과 신학을 바탕으로 한 이와 같은 고찰은 우리의 사제직을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결합시켜 주고 온전히 당신 구세사명에만 전념하신 그리스도의 생활에서 모범을 보여 주고 구세주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모습을 닮도록 충동하는 이유를 밝혀준다. 이러한 고찰은 이론과 실천의 풍부한 진리를 밝혀주는 아주 깊은 고찰로 여기는 바이다. 그러므로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들과 영신 지도자들과 초자연의 빛을 받아 맡겨진 사명을 다하기에 적합한 모든 사제들에게 권고하는 바이니 이러한 연구를 항구히 계속하여 거기에 내포된 깊고 풍부한 내용을 밝혀내기 바란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제직과 독신생활의 관계가 날로 더욱 분명해질 것이며 그것을 강한 마음의 지표로 삼아 오로지 끝없이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만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b. 독신생활의 교회론적 의의

독신생활과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사제의 사랑

26. 사제는 "그리스도께 잡히고" 그리스도께 끌리어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바치며 그리스도를 닮게 된다. 영원한 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인 교회를 사랑하시어 교회를 위하여 당신의 희생하시고 교회를 당신의 영광스럽고 거룩하고 티없이 깨끗한 아내로 삼으신 그 사랑도 사제는 본받는다. 하느님께 봉헌된 성직자들의 독신생활은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처녀다운 순정을 보여 주며 하느님의 자녀들이 "피에서 나거나 육신의 원욕에서"나지 아니하고 오직 특수한 혼인에서 났다하신 그 혼인의 처녀다운 초자연적 다산력을 보여 주고 있다.

말씀에 대한 봉사

27. 그리스도와 그 신비체에 봉사하기 위하여 봉헌된 사제는 자신을 온전히 바침으로써 얻어지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며 사제생활의 단일성과 조화를 완전히 실현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열심히 기도할 능력이 날로 증가되어 간다. 교회가 보존해 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그대로 살며 그것을 교우들에게 전하는 사제의 마음을 하느님의 말씀이 깊이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성무일도와 기도

28.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그의 협조자도 하느님과 교회에 관한 사정만을 마음에 두고,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 대전에서 항상 중재 역할을 맡고 계시는 대사제를 본받아 착실하게 열심하게 성무일도를 외움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간구하는 교회의 기도 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며 거기서 기쁨과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된다. 또한 항구히 기도하는 것이 사제의 고유한 사명임을 깨닫게 된다.

은총과 성체의 봉사자

29. 여기서 사제생활 전체가 보다 크고 보다 충분한 힘과 성화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자신의 성화 노력에 매진해야 한다는 사제의 의무는 은총에 봉사하고 "교회의 영신적 재화가 전부 내포되어 있는" 성체께 봉사한다는 새로운 동기로써 더욱 강조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는 봉헌된 제물에 자신을 밀접히 결합시켜 전생애를 제단 위에 바침으로써 속죄의 제물임을 표시하는 것이다.

결실 풍부한 생명

30. "밀씨가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그 하나만 남을 것이나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하시며 그리스도 친히 당신 자신에게 대해 말씀하셨으니, 사제의 능력과 봉사와 사랑과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희생 노력의 증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무엇을 더 고찰할 것이 또 있겠는가? 사도 바오로께서도 교우들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영예를 차지하기 위하여 날마다 다시 죽기(극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제도 날마다 극기함으로써 아내와 자녀들에게 대한 정당한 사랑마저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결실 풍부한 생명의 영광을 얻어 누리는 것이다. 사제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자신을 바치기 때문이다.

독신 사제와 교우 단체

31. 사제는 자기에게 맡겨진 교우단체 속에서 그리스도를 재현해야 하므로 사제는 모든 일에 있어서, 개인생활에 있어서나 사목생활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고 그분의 모범을 낱낱이 본받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사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자녀들에게 천국이란 새롭고 고상한 사실의 표시와 보증으로 나타나 천국의 현실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며 스스로 더욱 완전히 소유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 사제는 모든 교우들의 신앙과 희망을 길러 주며 교우들도 그들대로 각기 신분에 알맞는 정결의 법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독신생활의 사목적 효과

32. 사제는 독신이란 새롭고 고상한 이름으로 그리스도께 봉헌되었으므로 실생활과 대인관계에 있어서 심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완전한 애덕을 항구히 실천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과 최선의 준비를 갖춘 것이 분명하다. 이 사랑으로 사제는 모든 이를 위하여 보다 폭넓게, 보다 결정적으로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고 보다 자유롭게 보다 효과적으로 성무를 집행할 수도 있으며 그리스도의 파견을 받아 세상을 활동과 사랑의 무대로 삼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의당 갚아야 할 빛을 완전히 갚을 수 있을 것이다.

c. 독신생활의 종말론적 의의

천국을 동경하는 하느님의 백성

33. 천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며" 이 세상에 있으나 신비에 싸여 숨어 있고 주 예수께서 개선자로 재림하시기까지는 완전한 상태를 갖추지 못한다. 이 천국의 씨앗이며 시작인 교회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자라고 천국의 완성을 동경하며 온갖 노력을 기울여 천국의 왕과 영광스러이 결합되기를 바라고 있다.

하느님의 백성은 나그네 같이 인류 역사를 통해서 천상 본향을 향하여 여행하고 있다. 거기서 구원된 사람들이 영원하신 하느님의 자녀로 밝히 드러날 뿐 아니라 또한 천상 어린양의 신부로서 기묘히 변화된 미모를 끝없이 빛낼 것이다.

천상 보화의 상징인 독신생활

34. 우리 스승이신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부활 때에는 시집도 가지 않고 장가도 들지 않을 것이니 하느님의 천사같이 되리라"하시었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 있어서는 대부분이 지상 걱정에 사로잡히고 너무나 자주 육욕의 노예가 되는 것이므로 천국을 위한 완전한 정결은 참으로 고귀한 천상 선물이며 새 세상이 올 때에 있을 마지막 시기가 이미 이 세상에 와 있음을 알려 주고 후일에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 가운데서 빛날 천국의 최상 보화를 천국의 완성을 앞서서 확인해 주는 "천상보화의 독특한 상징"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정결은 종착역을 향하여 여행하는 하느님의 백성이 지상에서 계속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밝히 증명해 주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정결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실 뿐 아니라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때까지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그 천국을 열렬히 동경하게 하는 자극제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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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룩한 독신생활

Ⅱ. 교회생활 속의 독신생활

옛 제도

35. 교회의 독신제도에 관한 역사적 문헌을 낱낱이 연구한다는 것은 유익한 일이기는 하겠지만 너무 장황할 것이 분명하다. 이제부터 서술하려는 간단한 내용만으로 만족하기 바란다.

초세기부터 교부들과 저술가들이 증언하는 바와 같이 동방 교회에 있어서나 서방 교회에 있어서나 성직자들이 자발적으로 차차 독신생활을 하였으며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에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기에 가장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서방교회

36. 이런 풍습을 서방교회에서는 벌써 4세기 초에 여러 지역 교회회의와 교황들을 통해서 확인하고 확대시키고 인정하였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고귀한 신앙의 재산과 거룩한 그리스도교 윤리를 보호하고 해석하고 가르치는 임무를 가진 교회의 목자들과 스승들이 독신생활의 풍습을 장려하고 변호하며 복구하였다. 시대의 변천을 따라 때로는 성직자 자신들이나 퇴폐한 인간 풍습이 반대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들은 양보하지 않았다. 드디어 성직자들의 독신제도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성대히 입법화 되어 마침내 교회법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현대 교황들의 교훈

37. 최근의 선임 교황들은 뜨거운 열성과 훌륭한 학식으로 사제들에게 독신생활을 가르치고 이 제도를 충실히 지키도록 권장하였다. 이 점에 대해서 나는 아직도 사람들 기억에 생생한 전임자에게 존경을 금하지 못한다. 그는 로마 교회회의에서 성도에 모인 모든 이의 동이를 얻어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수세기 동안 사제직의 화려하고 빛나는 영광이었고 현재에도 변함없이 그러한 독신제도를 가톨릭 교회가 폐지하려 한다거나 혹은 페지하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여긴다고 일부에서 꿈꾸고 있다는 사실은 심히 마음 아픈 일이다. 독신제도와 그것을 지키기에 필요한 노력은 언제나 우리 머리 속에 지난날의 영광스러운 투쟁을 기억나게 한다. 그때에 하느님의 교회는 치열하게 싸워야 했으며 드디어 세 가지 개선을 쟁취하였으니 그리스도의 교회는 자유롭고 정결하고 공번되다는 이것이 빛나는 승리의 금자탑이다."

동방 교회

38. 동방교회에 있어서는 독신제도에 관한 법이 전혀 다르다. 그것은 692년에 드룰란 교회회의에서 법제화되었고 최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식으로 인정되었다. 이 제도상의 차이는 가톨릭 교회의 가장 귀한 부분의 하나인 동방교회의 지방적 내지 역사적 배경이 다른 데에 기인한 것이며 그 환경 속에서도 성령께서 하늘로부터 섭리하시고 도와주셨을 줄 믿는 바이다.

그뿐 아니라 나는 이 기회에 동방교회들의 모든 성직자들에게 나의 관심과 존경을 표시하며 그들의 충실과 사목적 열성의 모범을 기쁘게 상기하는 바이다.

동방 교부들의 소리

39. 그러나 동방 교부들이 동정생활을 찬양하였다는 사실에서 나는 독신제도를 고수해야 하겠다는 고무적인 이유를 발견한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그레고리오 니체노의 말이다. 그는 "동정생활은 후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그 행복의 상징"이라하며 우리를 권고하였다. 또 지금도 내가 가끔 묵상 재료로 삼고 있지만 사제직에 관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강론에서도 적지 않은 힘을 얻는다. 거기서 밝히려고 한 것은 제단에서 봉사하는 사제의 개인 생활과 성무를 집행하기 위하여 받은 품위가 서로 조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제직에 오르는 사람은 마치 하늘 나라에 살 듯이 정결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동방교회 전통에 나타난 특징

40. 그 밖에 동방교회에서는 독신 사제들만이 주교위에 오를 수 있고 사제직을 받은 다음에는 결혼하는 것을 금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도 전혀 무익한 일이 아니다. 즉 동방교회에서도 적어도 지방적으로는 사제직과 독신생활을 결부시킬 이유를 인정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더구나 그리스도교 사제직의 절정과 완성은 주교직에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사제직과 독신생활의 결부가 타당하다는 것을 그들도 인정하는 셈이다.

서방교회의 전통

41. 어찌되었든지, 서방교회가 전통적 풍습의 보존을 약화시킬 수는 없다. 더구나 서방교회가 오랜 세기를 두고 내려오면서 때로는 개인의 영혼이나 하느님 백성의 성덕과 덕행의 진보를 두둔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했다거나 혹은 멋대로 반갑지 않은 입법조치를 함으로써 자연과 은총의 재화가 자유로이 융성하는 것을 방해했다거나 하는 따위의 생각은 전혀 용납할 수 없다.

특수한 경우

42.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가톨릭 교회 행정의 근본법규를 따라 두 가지 규정을 여기서 확립해야 할 줄로 생각한다. 한편으로, 성품에 오르려는 사람은 독신생활을 자유로이 또 영구히 선택하기를 명하는 법규는 확고한 규정으로 남아 있어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미 혼인한 성직자가 아직 가톨릭 교회와 갈려 있는 교회나 그리스도교 단체에 살고 있으면서 가톨릭 교회와 완전한 일치를 바라며 동시에 그 후에도 성무집행을 원한다면 그들을 사제직분에 부를 경우 그들의 특수사정을 고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규정된 성직자의 독신제도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만 허용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장상들은 여기에 관하여 권리 행사를 주저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지난 공의회에서 지혜롭게도 나이 많은 사람이나 혼인한 사람에게도 부제품을 줄 수 있다고 결정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될 것이다.

독신제도의 재확인

43.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벌써부터 있는 규율의 완화를 뜻하는 것도 아니려니와 독신제도를 미구에 폐지하려는 전주곡도 물론 아니다. 따라서 독신생활의 기쁨과 안전을 지켜 주는 마음의 용기와 사랑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독신생활의 존재 이유와 그 고귀함을 밝혀 주는 진리를 애매하게 만드는 그 따위 가설에는 귀를 기울이지 말기 바란다. 모름지기 동정생활과 독신제도의 고상한 영신적 의의와 높은 윤리적 가치를 어떠한 공격 앞에서도 변호할 수 있도록 깊은 연구가 있기를 바란다.

교회의 신뢰

44. 동정생활은 한 가지 특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거룩한 직무를 충분히 의식하고 있는 모든 목자들로 구성되어 합법적으로 현존하는 현대의 온 성교회는 이미 말한 동방교회의 풍습을 인정하면서도 성령께 온전히 신뢰하는 바이니 "누가 신품성사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신약 사제직에 이렇듯 도움이 되고 타당한 독신생활의 은총을 성부께로부터 너그러이 내려주실 것을 믿으며 온 성교회가 또한 겸손되어 이런 은총을 간구하는 바이다."

하느님 백성의 기도

45. 나는 하느님의 백성 전체를 가까이 불러 뜻을 같이 하여 사제성소에 관한 그들의 의무를 다하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모든 이의 아버지이신 성부와 교회의 신랑이신 성자와 교회의 "영혼"이신 성령께서 성자의 모친이시오 교회의 모친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특히 이 시대에 천상 은혜를 내려주시도록 빌고 탄원하기를 부탁한다. 성부께서도 절대로 거절치 않으실 것이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마음이 그 은혜를 깊은 신앙과 너그러운 사랑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스스로 갖추도록 열심히 기구해야 하겠다. 이리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잃은 현대 세계에 있어서 사람들이 유일하신 대사제의 모습을 날로 더욱 완전히 본받아 세상을 비추며 그리스도께 영광이 되고 온 세상에서 하느님의 "은총의 영광을" 크게 찬양하게 될 것이다.

현대 세계와 독신생활

46. 존경하며 친애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사랑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세게는 진보와 변화 때문에 참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사람들의 노력으로 마련된 좋고 고상한 가치도 자랑하고 있다. 현대는 또한 가장 높은 정신적 가치를 발사하는 신묘한 빛을 잃지 않기 위해서 고상하고 성스러운 영신적 가치에 온전히 바쳐진 사람들의 증언을 요구한다.

사제들 수의 부족

47. 우리 주 예수께서는 누구나 다 수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보잘 것 없다고 판단할 수 있는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만방에 복음을 전하라는 끔찍한 사명을 주저치 않고 맡기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적은 무리에게 겁내지 말라고 명하셨다. 당신을 통해서 당신과 함께 당신의 변함없는 조력으로 세상을 이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천국은 숨은 내적 능력으로 자라서 사람들이 모르는 사시에 많은 수확을 거두리라는 것도 그들에게 알려 주셨다. 이 천국에 "추수할 것은 과연 많으나" 지금도 처음과 같이 "일군은 적다" 사실 인간의 판단으로 말하면 넉넉한 숫자는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천상 임금께서는 "추수 주인에게 당신 추수 밭에 일꾼을 보내시도록" 열심히 기구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이 점에 있어서 인간의 지혜나 의견이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지혜를 당할 수는 없다.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예수께서는 오히려 어리석음과 약점이라 보시며 업신여기셨다.

신앙의 용기

48. 이제 신덕에서 용기를 얻어 이 점에 대한 교회의 주장을 천명하는 바이다. 보다 기꺼이 보다 항구히 하느님의 은총에 순응하고, 보다 솔직히 보다 폭넓게 높으신 전능에 희망을 걸고,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욱 완전히 공적으로 증거한다면 인간의 이론이나 사태의 그릇된 판단이 공격하듯이 교회가 세계의 구원을 위한 막중한 사명완수에 실패하는 일은 도무지 없을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홀로 영혼을 견고케 하시고 홀로 당신 교회를 성장케 하시는 그분 안에서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문제의 근원

49. 뿐만 아니라 교회의 독신제도를 폐지한다고 해서 당장 그 때문에 성직에 불리우는 사람의 수각 격증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현대에 있어서 성직자들에게 결혼을 허용하고 있는 교회나 종교단체의 실정은 오히려 반대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사제직 성소가 감소된 이유를 다른 데서 발견해야 하겠다. 에컨대 개인이나 가정생활이 하느님과 성스러운 것에 대한 사상을 상실하여 아주 사라져 버릴 정도로 되었고 신앙과 성사를 통해서 인류의 구원을 도모하고 있는 교회의 사명을 경시하거나 전혀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 참된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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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룩한 독신생활

Ⅲ. 독신생활과 인간의 가치

독신생활과 사랑

50.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거룩한 독신생활을 선택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심각하고 많은 희생을 바쳐야하므로 중대한 문제점과 난관에 봉착하며 특히 현대에 있어서 이런 점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매우 예민하다는 것을 교회가 모르는 바 아니다. 과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성대하게 인정한 광범위한 인간가치에 독신생활이 오히려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한다면 결혼한 사람들이 가정에서 누리는 인간적인 사랑을 사제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희생한다는 것은 이 사랑을 오히려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바와 같이 사람은 선사하는 사람에게나 받는 사람에게나 다 같이 값진 것만을 하느님께 드려왔다.

은총과 자연

51. 또 한편 인간적이며 그리스챤적인 지혜와 책임감에서 본다면 독신생활의 선택은 은총에 의거한 것이며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거나 자연에 강제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완성하고 자연에 초자연적 능력과 힘을 준다는 것을 교회가 모를 리도 없고 또 몰라서도 안 된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무슨 일을 맡겨야 할 것인지 잘 알고 계시므로 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신 당신이 요구하시는 것을 사람이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필요한 도움도 주신다. 스스로 괴로운 인가나 본성을 완전히 체험한 성 아우구스티노는 외치기를 "명하시는 것을 주시고, 원하시는 것을 명하소서"(Da quod jubes, et jube quod vis!)하였다.

어려움의 정도

52. 사제는 독신생활의 참된 어려움을 솔직히 인식하고 독신생활이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혜롭게 알아내며 독신생활이 자신과 타인에게 유익한 참 덕행임을 알아두는 것이 도움이 될뿐더러 필요한 것이다.그러나 동시에 인간적 내지 종교적 환경으로 보아 실질적인 어려움 이상으로 지나치게 중시하거나 전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독신생활과 자연

53. 현대 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독신생활은 인간의 정당한 생리적, 심리적, 정서적 요구에 위배되는 것이며 인간의 인격적 성숙을 위해서는 이런 정상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하느님과 비숫하게 창조된 인간은 온전히 육체만으로 구성된 것도 아니요 성욕이란 본능이 인간 본능의 전부도 아니다. 인간은 또한 지성과 의지와 자유를 갖추었으며 이런 능력들을 갖추었기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영장으로서의 자존심도 가져야 한다. 이런 능력들로써 인간은 자신의 생리적, 심리적, 정서적 욕구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독신생활의 깊은 이유

54.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거룩한 독신생활의 깊고 참된 이유는 사제직 후보자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에 보다 밀접히 보다 완전히 결합되어 전 인류에 봉사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생활의 선택으로 인간의 최상 가치가 드러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인간을 승화시키는 독신생활

55. 따라서 거룩한 독신생활의 선택은 성욕이나 애정의 능력과 감정을 전혀 알지 말라거나 무시해 버리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 그것은 아마 육체와 정신의 규현을 손상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명확한 인식과 조심스러운 자제와 보다 높은 것으로 향한 심리적 승호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거룩한 독신생활은 인간의 품위를 높혀주고 인격의 완전한 성숙과 수덕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독신생활과 인격계발

56.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자녀를 두려는 자연적이고 타당한 욕망을 독신자가 희생하는 것은 사실이나 결혼과 가정만이 완전한 인간성숙에 요구되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사제의 가슴 속에도 사랑의 불꽃은 꺼질 줄을 모른다. 가장 깨끗한 원천에서 흘러 나오는 사제의 사랑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닮아 실천에 옮겨지며 다른 모든 사랑과 마찬가지로 사제를 재촉하여 실천하도록 요구한다. 이 사랑은 사제에게 끝없이 넓은 실천의 광장을 제공하고 성숙된 인격의 증거를 맡겨진 사명의 책임감을 더욱 깊게 하고 넓혀 주며 높고 큰 부성의 표로 보다 완전하고 보다 부드러운 감정을 길러 준다. 이러한 감정의 순화로써 사제는 정서 풍부한 사람이 된다.

거룩한 독신생활과 결혼생활

57. 하느님의 백성 전체가 그리스도의 신비와 그의 왕국을 증거해야 한다. 그러나 이 증거의 방법은 서로 다르다. 한편으로 교회는 결혼한 자녀인 평신도들에게는 그리스챤 이름에 어울리는 충실한 부부생활과 안락한 가정생활로써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사명을 맡겼고, 또 한편, 사제들에게는 새롭고도 감미로운 천국 사정을 탐구하고 알려 주는 데에 전생애를 바침으로써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사명을 맡겼다.

사제들이 비록 직접 결혼생활을 체험하지는 못한다 해도 받은 교육과 맡은 직무와 그 지위에 허락된 천상 은총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깊이 통찰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 관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교우 부부나 교우 가정에 도움이 되는 의견을 줄 수도 있다. 사제들은 거룩한 독신생활을 통해서 마음 넓은 생활 태도를 보여 줌으로써 인간다운 사랑의 영신적 힘과 의의를 강조하며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결혼한 교우들에게 진실한 결합의 은총을 얻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독신 사제의 고독

58. 사제는 독신생활 때문에 고독한 사람임을 속일 수 없다. 그러나 사제의 고독을 헛되고 허황한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그의 고독은 하느님과 풍부한 천상 재화로 메꿔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제는 깊이 생각한 다음에 이 고독을 선택하였으니 이 고독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사랑으로 충만해야 할 것이며 사제에게는 이 고독을 참아 견딜 만한 준비가 갖추어 있을 것이다. 사제가 이 고독을 선택한 것은, 교만한 생각에서 다른 사람들을 떠나려하거나,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중책을 기피하려 하거나 다른 형제들에게서 구별되어 세상을 천시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사제는 세속에서 구별되지민 하느님의 백성을 떠날 수는 없다. 사제는 사람들을 위하여 임명되어 사랑을 실천하며 주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하기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사제의 고독

59. 때로는 사제가 고독에 고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너그러이 스스로 선택한 이 생활을 절대로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 친히 가장 우울하실 때 홀로 계셨다. 당신 생애의 증인이 되라고 벗으로 뽑아 끝까지 사랑하신 그들한테서마저 버림을 당하셨다. 그래도 그는 "나는 홀로 있지 않고 성부 나와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자유로이 자신을 온전히 그리스도께 바치기를 원한 사람이면 그리스도와 가까이 사귀며 그분한테 은총을 받아 마음을 굳게 하고 우울증을 몰아 내며 마음의 나약과 낙담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동정 성모의 따뜻한 보호와 그들의 봉사하고 있는 교회의 모성적 배려도 없지 않을 것이다. 또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사명을 맡은 주교의 돌보심과 이웃 형제 사제들의 미더운 사랑과 마침내 온 하느님 백성의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위로가 될 것이다. 혹시 사람들이 사제를 배척하거나 불신하거나 무관심함으로써 사제의 고독을 지나치게 괴롭힌다면 사제는 이로써 그리스도의 운명을 실제로 함께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해야 한다. 자기를 보내신 그분보다 더 나을 수 없었던 사도들과 같이 되었고 천상 친구이신 그리스도 친히 고통과 즐거움의 내심마저 보여 주시며 죽음같이 여겨지는 생활을 통하여 생명의 신비로운 열매를 맺도록 불러 주신 그리스도의 벗과 같이 되었음을 의식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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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신생활의 실천

Ⅰ. 사제 양성

알맞은 교육

60. 우리는 이제까지 아름답고 중대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에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거룩한 동정생활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여기서 교회의 스승과 목자들의 중책이 생긴다. 그것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 귀중한 선물을 받겠다고 마음먹는 그 순간부터 정결의 덕을 실제로 닦기 시작하도록 지도하는 데에 목자들은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사제들의 독신생활을 어렵게 만들거나 혹은 전혀 불가능하게 만드는 난관과 번뇌는 가끔 알맞지 않은 교육의 결과인 것이다. 급변하는 최근 환경에 비해 신학생 교육이 이미 타당한 "하느님의 사람"을 바로 훈련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이런 결과가 오는 것이다.

공의회 원칙의 실현

61. 그러므로 벌써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이 지혜로운 원칙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심리학과 교육학의 진보를 고려했을 뿐 아니라 또한 현대에 와서 급변한 개인과 사회의 조건들에 적응시킨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의 협조를 얻어 이 교육문제를 광범위하게 또 깊이 연구할 수 있는 특별 기구를 되도록 속히 마련하기를 바라며 그것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내일의 사제를 양성하는 중책을 맡은 이들에게 시대에 알맞은 도움을 제공하기 바란다.

개인 성소

62. 사제직은 그리스도 신비체인 교회에 봉사하도록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자격 있는 사람들만을 골라서 사제직에 올리는 것은 교회의 권리이다. 자격 있는 사람이란, 성소의 다른 증거 외에 거룩한 독신생활의 은총도 아울러 받은 사람을 말한다. 교회법이 확인한 이 동정의 은총으로 개인이 불리워 자유로이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부르시는 하느님께 순종하고 그 권위에 자신의 마음과 양심을 온전히 맡겨 드리는 것이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온전히 자유로운 개인을 부르시는 것이므로 천상 은총이 그를 압박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사제직 후보자들의 마음을 잘 가꾸어 천상 사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 곧 순응하여 천상 도우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길 수 있도록 길러 내야 하겠다.

은총의 계획과 자연의 계획

63. 그러나 높은 사제직 절정에 도달하도록 올바로 지도하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신학생의 생리적 조건과 심리적 조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먼저 신학생의 심리 상태와 능력을 파악한 후, 자연의 성장과 은총의 진행이 완전한 조화를 이루도록 보살펴 주어야 한다. 성소의 표징이 나타나자마자 곧 심리상태부터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하겠다. 요란스럽고 조급한 판단은 믿을 수 없다. 의사나 심라학 권위자의 도움을 받아서 조심스럽게 조사해야 한다. 또한 유전학적 입장의 조사도 빠뜨리지 맡아야 한다. 생리적 내지 심리적 부모의 유전은 매우 중대한 것이므로 이 점에 있어서도 후보자가 사제직에 적합한지 알아 보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부적격자

64. 심신과 행실을 살펴 보아 적격자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곧 사제직 지망을 포기하도록 권면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자는 이 중대한 책임을 절감하며 스스로 헛된 희망과 위험한 기대를 가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동시에 신학생 자신도 자신과 교회에 손해가 될 이런 헛된 희망을 갖지 말도록 힘써야 한다. 독신 사제의 생활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오로지 하느님 사정에만 전심해야 하며 따라서 훌륭한 지혜가 요구되므로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필요한 자질을 갖추지 못한 후보자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또 이 점에 있어서 자연적 결함을 하느님의 은총이 보충하리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인격의 성장

65. 어떤 후보자가 자격을 갖추었음이 확실하여 사제직을 위한 학습 과정에 들어서면 적당한 교육을 통해서 점차로 인격의 성숙을 완성할 수 있도록 그를 알뜰히 보살펴 주어야 한다. 육체와 정신과 도덕 각 방면의 교육을 통하여 타고난 성격과 감정과 본능을 억제하고다스릴 수 있도록 길러 내야 한다.

규율의 필요성

66. 알맞은 교육을 받았다면 사제생활이 요구하는 개인생활이나 공동생활의 일정한 규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용기가 뒤따를 것이다. 이런 규율의 결핍은 큰 위험을 초래함으로 이런 규율은 외적으로 지워진 짐이 아니라 내적으로 마음 속에 깊이 뿌리박혀 내적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일부분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개인의 노력

67. 교육자는 복음적 순진성을 길러 주며 젊은이로 하여금 무엇이든지 바잘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젊은이가 자신을 알고, 자신의 능력을 올바로 평가하고, 의식적으로 자기의 책임을 맡으며, 사제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자제력을 기를 수 있는 개인적인 계획과 시도를 최대한으로 북돋아 주어야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교육과 권위

68. 권위의 최고원리는 굳게 보존되어야 하겠지만 권위의 행사는 지혜롭게 조절되고 목자답게 관대해야 한다. 대화의 형식으로 단계적으로 권위를 행사하며 교육자는 젊은이의 심리를 깊이 파악하고 젊은이로 하여금 마음으로부터 납득하고 능동적으로 실행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의식적 선택

69. 사제직 후보자의 완전하고 충족한 교육은 후보자로 하여금 후일에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성대히 수락할 그 중책을 평온한 마음으로 자유로이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음의 정열과 너그러움은 청년들의 놀라운 자랑거리이다. 이것을 바로 가꾸고 견고케만 한다면 천상적 보호뿐 아니라 교회와 모든 사람들의 감탄과 신망을 받게 될 것이다. 젊은 마음의 정열이 경솔하고 허무한 것이 되지 않으려면 젊은이들 자신이 이런 생활을 선택함으로써 후일에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체험하게 될 난관을 낱낱이 알아 두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자는 이러한 난관을 인식시킴과 동시에 독신생활의 우월성도 사실 그대로 밝히 알려 주어야 한다. 독신생활이 한편으로 생리적 혹은 심리적 공백을 동반하는 것이 사실이나 또 한편으로는 내적 영신생명의 풍부함을 주어 사제생활 전체를 향상시키며 완덕의 절정에까지 높여 줄 수 있는 것이다.

인격의 성숙을 위한 극기

70. 젊은이들이 이 항로를 무사히 계속하려면 특수한 극기의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안됨을 알아야 한다. 보통 신자들의 의무를 넘어서 사제 후보자들에게만 고유한 특수 규율을 지켜야 한다.

극기 규율은 엄격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심리적 억압을 주어서도 안 된다. 이런 규율 밑에서 사제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시키는 여러 가지 덕행들을 의식적으로 항구히 닦아야 하겠다. 즉 자신을 희생하려는 최선으 노력,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에 절대적 조건이기도 하다- 내적 진리와 잘 정돈된 자유의 상징인 겸덕과 순명, 고상하고 진실한 신심생활의 절대 조건인 지혜와 정의, 용기와 절제, 직무에 대한 높은 책임감, 직무 수행의 충실성과 성실성, 활동생활과 관상생활의 적절한 조화, 복음적 자유에 힘이 되는 청빈 정신과 현세 사물을 끊는 초연한 마음, 다른 윤리덕과 초성덕에 어울리게 부단의 노력으로 닦은 정결 등이 필요하며 마침내 사제는 후일에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그리스도께 봉헌하겠기에 대인 관계에 있어서 마음의 명랑성과 안정성이 또한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길을 통하여 신학생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균형 잡히고 용감하고 성숙한 어른이 된다. 그때에 그의 타고난 능력에, 노력으로 얻은 덕행이 결합되고 모든 능력이 놀라운 조화를 이룰 것이며 그를 당신과 인류구원의 봉사자로 선택하신 그리스도와의 일치와 그의 신앙이 그의 모든 능력을 비추어 줄 것이다.

수련기

71. 그러나 젊은이가 사제직에 적합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간적 성숙과 초자연적 성숙을 성취하였다는 증거를 얻기 위하여, 외적 위험 때문에 사목수행이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해서 신품성사로 독신생활이 항구히 확정되기 전에 먼저 일정한 기간 동안 독신생활의 가능성을 실제로 시험해 보아야 한다.

독신생활의 선택은 사제의 선물

72. 사제 후보자가 자신의 능력이 넉넉하다는 것을 힘대로 증명하였으면, 무겁지만 유쾌한 정결의 의무를 수락하고 그리스도와 교회에 바치는 자신의 완전한 선물로 봉헌할 수 있다.

이렇게 신학생은 교회의 뜻을 따라 신품성사와 결부된 독신제도를 하느님의 은총으로 명백히 의식하며 자유로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지혜로운 영신 지도자의 의견도 들어야 하니 그들의 의무는 독신생활의 선택을 명하는 데에 있지 않고 자유로운 선택을 보다 의식적인 것이 되게 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생에 관계되는 사정을 결정하는 이 중대한 순간에 사제 후보자는 밖으로부터 지워지는 의무만을 느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이런 생활을 원하였다는 데서 큰 희열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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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신생활의 실천

Ⅱ. 사제 생활

끝없는 정복

73. 사제가 신품성사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쉬워졌다든지 온갖 유혹과 위험에서 영원히 안전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결의 덕행은 한번에 영구히 완전하게 얻어지지는 않는다. 많은 노력과 그날 그날의 수련으로 얻어지는 덕행이다. 현세대는 이성간의 사랑을 진실한 보배라고 찬양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방면에 있어서 난관과 위험을 격증시켰다. 그러므로 정결의 가치를 성실히 지키고 고상한 정결의 의의를 공적으로 증거하기 위하여 사제는 조용히 또 솔직히 자신의 입장을 생각해야 하겠다. 즉 세속과 자신 속에서 체험하는 사욕의 유혹은 거슬러 계속적인 내적 투쟁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자신의 선물을 날로 더욱 완전케 하려는 결심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며 이 결심에 완전하고 성실한 충실을 바쳐야 할 것이다.

초자연적 의의

74. 사제는 날마다 기도하고 묵상하며 자신을 선물로 바친 이유를 더욱 깊이 알아내고 자신이 가장 좋은 몫을 택하였다는 것을 날로 더욱 확신하게 된다면 새로운 힘과 기쁨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제는 겸손되이 항구히 충실의 은총을 청할 것이며 진심으로 간구하면 언제나 이런 은총을 받을 줄로 믿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가능한 모든 자연적 방법과 초자연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특히 교회에서 체험을 통하여 확인한 금욕의 법을 지키도록 힘쓸 것이다. 극기의 법은 과거만 못지 않게 현대에도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내적 생활

75. 무엇보다도 먼저 사제는 가능한 한 최고의 사랑과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와 더욱 친밀히 결합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한 없고 행복 지극한 신비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회의 신비도 더욱 밝히 알아 듣도록 힘쓸 것이다. 교회의 신비를 떠난 사제생활이란 허무하고 모순 투성이처럼 보일 만큼 위태로와질 것이다.

그러나 사제다운 신심이 말씀과 성체의 깨끗한 샘에서 영양을 섭취하고, 전례행위로서 그 생명에 결합되고, 영원하신 대사제의 모친이시며 사도들의 모후이신 동정 마리아를 열심히 공경한다면 사제는 내적 생활의 원천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만 거룩한 동정생활이 든든한 기초 위에 서게 될 것이다.

사제다운 봉사정신

76. 하느님의 은총과 내적 평화를 누리는 사제라야 사제직의 여러 가지 직무를 감당할 수 있다. 신앙과 열성으로 그 직무를 수행해야만 자신과 이웃의 성화를 위하여 자신이 온전히 그리스도와 그 신비체에 속하여 있음을 증거하려는 새로운 기회들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제를 재촉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사제의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다 고상하고 보다 높은 것이 되도록 도와 줄 것이며 사람들과 함께 친밀히 사귀시고 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을 위하여 수난하신 대사제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봉헌하기로 노력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이리하여 사제는 또한 사도 바오로처럼 모든 사람의 걱정을 나눔으로서 하느님의 은총에 관한 복음의 빛과 힘을 세상에 증거하게 될 것이다.

위험의 예방

77. 그리스도께 봉헌한 자신의 선물을 손상없이 보존하기로 노력하는 사제는, 지성의 빛과 통솔을 벗어난 감정을 일으킬 수 있는, 온갖 심리적 충동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필요한 영신 지도나 사도직 수행을 핑계 삼아 실제로 위험천만인 성향을 변호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용감한 금욕

78. 열성 지극한 사제생활은 진실하고 성실한 신심의 노력을 요구한다. 성직자는 신심생활에서 성령의 생명을 받고 성령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제들은 특수한 명칭으로 그리스도께 봉사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때문에 "그 육신을 욕정과 원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고되고 오핸 투쟁도 주저하지 않는 것이니 사나이답게 금욕의 규율을 지켜야 하겠다. 이렇게만 한다면 사제는 그리스도의 조력자로서 성령의 열매를 더욱 분명히 세상에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니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너그러움, 선심, 관용, 양순, 성실, 중용, 절제, 정결 등이다.

사제들과 형제 관계

79. 하느님의 협조자들의 생활양식과 사회환경이 고유한 것이기에 그들의 정결이 꽃피고 지켜지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제들이 신품성사를 받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친밀한 성사적 형제관계"를 최대한으로 강화해야 하겠다. 주 예수께서는 사랑의 새 계명을 강조하셨고 특히 성체성사와 가톨릭 사제직을 위한 신품성사를 세우실 때에 놀라운 모범으로 그 사랑을 증명하셨으며 당신이 영원으로부터 받으시는 성부의 사랑이 제자들 사이에 머물고 당신도 제자들 사이에 있게 해 달라고 당신 성부께 간구하셨다.

사제들의 마음과 생활의 일치

80. 그러므로 사제들의 마음이 완전히 결합되어 기도와 친목과 협력의 상호관계를 자주 도모하기 바란다. 또 사제직 수행을 날로 더욱 신심생활과 결합시키기 위하여 사제들의 공동생활을 아무리 권장하여도 만족치 못할 것이다. 혹은 적어도 자주 모여서 형제답게 사랑과 충고와 경험을 서로 나누는 일도 찾아야 하겠다. 마침`내 사제들의 성화를 도모하는 단체들이(consociationes) 많이 조직되기를 바란다.

위험 중에 있는 형제들에게 대한 사랑

81. 사제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훈을 깊이 명심해야 하겠다. 서로 친목을 도모하며 특히 어려움 주에서 하느님께 받은 선물이 위태로와졌을 때 그 형제들의 운명은 바로 내 자신의 운명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공의회는 권고하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이런 형제들에게 대하여 사랑이 불타 올라야 하겠다. 이런 형제들이야말로 동료들의 사랑과 이해와 기구와 지혜롭고 효과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며, 이런 형제들이야말로 동료들의 끝없는 사랑에 의탁할 정당한 권리를 가졌으며, 과연 이런 형제들이야말로 다른 형제들에 앞서서 우리의 진실한 친구이며 또 반드시 진실한 친구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택의 갱신

82. 나의 서면대화를 보충하여 기억에 남겨두기 위해서 존경하는 형제 주교들과 제단에 봉사하는 사제들에게 권고하는 바이니, 해마다 사제서품 주년일을 맞이하거나 혹은 신품성사를 세우신 거룩한 날, 주의 만찬 성 목요일을 맞이하면 모든 이가 뜻을 합하여 일찍이 주 그리스도께 봉헌한 자신들의 완전하고 충성스러운 선물을 다시 바치도록 뜻을 세우고 성직에 불리웠음을 새로이 의식하며 겸손과 용기를 다하여 오로지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리스도께 바친 깨끗한 선물에 항구히 충실할 것을 그리스도께 다시 맹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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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신생활의 실천

Ⅲ. 슬픔을 주는 실수

참된 책임성

83. 이제 나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마음의 튼 동요와 고통을 느끼며 불행하게 된 형제 사제들을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나는 그들을 사랑하며 아끼고 있다. 그들도 신품성사로 거룩한 표를 가슴에 새겼건만 가련하게도 사제품에 오를 때에 받은 직무를 떠나고 말았다.

눈물겨운 그들의 상태와 거기서 초래된 개인적 내지 공적손실을 보고 어떤 이들은 이런 불행한 현실과 하느님의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악한 표양의 탓이 독신제도에 있는 것 같이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거룩한 독신생활을 탓할 수는 없다. 이 모든 불행의 탓은 적당한 시기에 사제 후보자의 자질에 관해서 지혜롭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거나 아니면 성직자 자신의 생활 태도가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된 생활에 전혀 맞지 않았다는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의무 면제의 이유

84. 교회는 이런 아들들의 불행한 운명을 힘껏 보살펴주고 그들의 실수로 받게 되는 온갖 상처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책임을 느낀다. 전임 교황들의 선례를 따라 사제 서품에 관한 판단을 위하여 마련된 조사방법이 현행 교회법에 명기되지 않은, 다른 중대한 사정과 이유에도 적용되기를 결정하는 바이다. 사제직 후보자가 그 의무를 수락할 때에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었는가, 또 완전히 의식적이었는가, 혹은 사제생활을 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는가 하는 중대하고도 진실한 의심이 생길 수 있으니 이런 경우에 합법적인 판단으로 적격자가 못된다고 선언된다면 그들을 모두 사제 의무에서 면제해 주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정의와 사랑

85. 이 점에 있어서 면제조치(관면)가 없을 수는 없겠다. -물론 건전하고 자격있는 많은 사제들의 수에 비하면 이런 면제조치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이로써 개인의 구원을 도모해 주는 동시에 거룩한 독신제도를 확고히 보존하며 모든 성직자들로 하여금 온전히 또 충실히 그것을 지키도록 하는 교회의 노력이 드러나는 것이다.

교회는 이런 면제조치를 할 때마다 깊은 근심에 잠긴다. 특히 어떤 사제가 신앙의 위기나 윤리적 타락으로 신자들에게 스캔들을 주며 고의로 그리스도의 단(甘) 멍에를 합당히 메기를 거부하는 쓰라린 경우에 교회는 더욱 깊은 수심에 빠진다.

비통한 호소

86. 이런 사제들이 하느님의 교회를 얼마나 괴롭히고 얼마나 망신시키며 얼마나 끔찍한 손해를 교회에 끼치고 있는지를 알아 준다면, 그들이 일찍이 받은 직무가 얼마나 중하고 얼마나 고상한 것인지를 생각만이라도 한다면, 또 그들의 현세와 후세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깨달아 준다면 일정코 그들은 자기 뜻을 결정함에 있어서 좀 더 조심하고 좀 더 지혜로울 것이며, 하느님께 기도할 생각도 좀 더 간절하고 이런 영신적 내지 윤리적 변질의 원인을 방지하는 데에 보다 용감해 질 것이다.

교회의 모성적 배려

87. 자모이신 교회는 꽃다운 청춘 사제들의 불행을 특별히 걱정하고 있다. 한 때는 비록 뜨거운 열성과 항구한 노력으로 성무를 맡았지만 그 후에 기쁨의 원천이어야 할 성직 수행에 있어서 실망과 의혹과 정욕과 광증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는 이 형제가 자신을 가지고 마음의 평화와 신뢰와 회개의 길을 찾아 옛 기쁨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을 위하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인들 거절하겠느냐? 그러나 섭섭하게도 이런 사제를 개과천선케 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진다면 그 때에 비로소 하느님의 불행한 봉사자를 맡겼던 직책 수행 의무에서 면제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직무 수행 면제(관면)

88. 이런 사제를 사제직에 다시 불러 들일 수는 없지만 그가 만일 평신자로 신앙생활을 계속하겠다는 성실한 원의를 표시한다면 성좌는 모든 환경을 참작하고 그의 소속 교구장이나 수도원장과 상의해서 고통과 더불어 큰 사랑으로, 청한 관면을 때로는 허락한다. 그러나 동시에 적당한 선행과 속죄의 의무를 지워준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언제까지나 교회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가련한 사제의 마음 속에 자모이신 성교회의 근심 걱정이 새겨져 구원에 도움을 주고 또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자비가 모든 이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생생하게 그 마음 속에 박혀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격려와 경고

89. 엄격하면서도 부드러운 이 규율이 언제나 정의와 진리에 입각하고 극도로 지혜롭고 조심스럽게 적용된다면 정결하고 거룩하게 살려는 착한 사제들의 결심을 더욱 굳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신학생들에게도 교훈이 되어 스승들과 장상들의 지혜로운 지도를 받아 미구에 맡으려는 직무를 충분히 인식하며 자신의 편의를 잊어버리고 천상 은총의 충동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성의와 교회의 뜻을 순히 받들려는 노력으로 제단에 오르게 될 것이다.

위안

90. 마침내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은, 불행하게도 잠시 직무에 불충실하였지만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바른 길에 돌아와 다시 모범적 목자가 됨으로써 모든 이에게 기쁨을 준 사제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요긴한 모든 방법을 충실히 사용했다. 특히 간절한 기도와 겸덕의 실천과 항구한 노력과 잦은 고백의 성사로 다시 새 사람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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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주교들의 부덕

주교와 사제

91. 친애하는 우리 사제들이 보다 쉽고 보다 기쁘게, 맡겨진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주교들의 필요한 도움을 최대한으로 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들을 신학생으로 선택한 사람이 바로 주교들이요 그들을 사제직에 부르고 그들 머리 위에 손을 덮은 사람이 바로 주교들이므로 그들은 사제의 품위와 신품 성사의 힘으로 주교들과 밀접히 결합되고 맡겨진 교우들 가운데서 주교들을 대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충실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각 계층을 따라 주교들의 직책과 걱정을 나누어 가진다. 그들이 거룩한 독신생활을 수락한 것도 옛부터 동서양 교회에서 지켜 온 주교들의 모범을 따른 것이니 이로써 주교와 사제들 사이에는 새로운 관계가 맺어졌고 이 새로운 관계는 충분히 실생활에 옮겨져야 하겠다.

책임과 사목적 사랑

92. 그렇기 때문에 당신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사랑도 제자들을 당신 신비체의 봉사자로 세우실 때에 가장 뚜렷이 드러났다. 따라서 "주교들을 통해서 대사제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이들 가운데 현존하시니" 주교들도 사제들과 사제 후보자들을 특별히 사랑하고 돌보아 줄 줄을 알아야 하겠다. 과연 주교들은 직무상의 책임과 진실하고 변할 줄 모르는 사랑으로 신학생들을 기꺼이 교육하고 하느님의 성소와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사제들을 힘껏 도와 주는 것만이 주교들의 이러한 신념을 드러내는 가장 알맞은 길이다.

주교들의 친절

93. 주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제들의 인간적 고독을 덜어 주도록 사제들의 형제가 되어 주고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한다. 흔히 인간적 고독 때문에 사제들의 마음이 약해지고 유혹에 끌리우는 것이다. 주교들은 사제들에게 대해서 장상이요 판관이기 전에 인자하고 자비하고, 관대히 용서하며 도와주는 스승이요 아버지며 친구요 형제이어야 한다. 맡겨진 사제들로 하여금 서로 우정을 맺고 주교들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며 동시에 주교들에게 대한 합법적인 순명의 관계가 파괴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보다 즐겁고 보다 진실하고 보다 안전한 순명의 관계가 거룩한 목자의 사랑에서 꽃피게 해야 할 것이다. 사제들이 주교의 충실한 친구가 되고 주교들에게 자식다운 충성을 바치게 된다면 사제들은 적당한 시기에 주교들에게 마음을 열어보이고 어려움을 고백할 기회와 자신을 가지게 될 것이며 언제나 주교의 보호를 받으리라는 확실한 희망을 품고 혹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면 노예같이 처벌의 위협을 느끼는 대신에 아들같이 충고와 용서와 도움을 받으려는 기대를 가지고 주교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기서 새로운 신뢰와 용기를 얻어 앞으로의 어려운 인생항로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권위와 부성

94.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사제에게 옛 직무의 기쁨과 정열을 회복시켜 주거나 혹은 마음의 평화와 구원의 희망을 되찾아 주거나 할 때마다 여러분은 가장 요긴하고 가장 고상하며 무수히 많은 영혼들에게 가장 유익한 직무를 수행하였다는 것을 확신하기 바란다. 때로는 여러분의 관대함을 거절하고 하느님의 백성에게 스캔들을 주는 소수의 사제들에게 대해 권위를 행사하며 엄격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안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없이 이런 제재를 가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여러분은 언제나 그들의 개과천선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여러분의 영혼을 돌보아 주시는 목자이시며 감독이신" 주 예수를 본받아 "부러진 갈대도 꺽지 말고 연기나는 심지도 아주 끄지 말아야"한다. 오직 예수님처럼 상처를 낫게 하고, 잃어버린 것을 찾아 주고, 잃어버린 양을 애써 찾아 아늑한 우리로 인도하며 또한 예수님처럼 불충실한 친구를 회개시키도록 끝까지 힘쓸 것이다.

지도와 감시

95.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학식과 지혜와 사목적 열성으로 여러분의 사제들에게 거룩한 독신생활의 높은 이상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해 보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 줄로 확신한다. 또한 제 집인 하느님의 집을 떠나 버린 사제들을 돌보지 않는 일이 절대로 없으리라고 믿는 바이다. 그들의 운명이 아무리 불행하다 해도 그들은 영원히 여러분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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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신자들의 역할

하느님의 백성 전체의 책임

96. 그러나 사제들의 덕행은 온 교회의 재산이며 하느님의 백성 전체에게 모범이 되고 유익을 주는 빛나는 보화요 영광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친애하는 자녀들인 모든 교우들에게 다정하게 그러나 다급하게 권고하는 바이니 사제들의 덕행을 보존하는 것은 또한 모든 교우들의 의무라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사제들은 영원한 구원을 위하여 교우들에게 봉사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가 하느님께 기도하며 하느님께로부터 사제직에 불리운 그들을 애써 도와 드리기 바란다. 자녀답게 정성을 다해서 사제들을 도와 드리며 기꺼이 협력하여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사목활동에 즐겨 순응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하여 교우들은, 모든 사람에게 최상의 모범이 되려고 맡겨진 직무를 충실히 완수하는 사제들의 온갖 어려움을 제거해 드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사제들을 아버지로 알아 모시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 드려야 하겠다. 마침내 모든 교우들은 신앙과 그리스도적 사랑으로 하느님과 교회에 온전히 봉헌된 사제들의 고유한 품위를 깊이 인식하고 높은 존경심과 조심성을 사제들에게 보여 드리기 바란다.

평신도들을 향한 호소

97. 특별히 남보다 열심히 하느님을 찾으며 세속생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교적 완덕에 힘쓰는 평신도들에게 나는 한마디 하고자 한다. 여러분은 충실하고 진실한 우정으로 성직자들을 크게 도와 드릴 수 있다. 평신도들은 현세적 사업에 정열을 기울이면서도 동시에 성세성사의 사명을 다하도록 노력해야 하므로 가끔 사제들에게 빛을 제공하고 힘이 되어 드릴 수 있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봉사하는 사제들이 환경이나 세속의 혼란 때문에 성소 보존에 손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도와 드릴 수 있다. 이리하여 하느님의 백성 전체가 그리스도를 대행하는 사제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뵈옵고 마땅한 공경을 드리게 될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 친히 말씀하시기를 "여러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 하셨고 또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들을 어떤 모양으로든지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협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확실한 상급을 약속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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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성모의 전구

98.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세상 어디든지 살고 있는 하느님의 양무리를 다스리는 목자 여러분, 그리고 내 형제요 아들들인 친애하는 사제 여러분, 나는 이 글을 마치기 전에 새로운 신뢰와 새로운 희망으로 눈과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께로 향하여 가톨릭의 사제직을 위한 어머니의 간절한 전구를 간청하자고 여러분께 호소하는 바이다. 하느님의 백성은 신앙과 사랑과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에 있어서 성모를 교회의 모상과 모범이라고 감탄하며 공경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정녀이시며 어머니이신 복되신 마리아께서도 동정이요 어머니라 자칭하며 기뻐하는 교회를 위하여 전구해 주실 것이다. 이리하여 사제들이 거룩한 동정의 고상한 선물을 완전무결하게 보존하고 거룩한 독신생활이 날로 더욱 꽃피며 날로 더욱 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독신생활을 선택하여 마침내 하느님의 "어린 양이 어디를 가든지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수가 날로 증가하는 것을 항상 겸손되이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거룩한 동정의 고상한 선물을 완전무결하게 보존하고 거룩한 독신생활이 날로 더욱 꽃피며 날로 더욱 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독신생활을 선택하여 마침내 하느님의 "어린 양이 어디를 가든지 따라 다니는" 사람들의 수가 날로 증가하는 것을 항상 겸손되이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희망

99.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신뢰하는 교회는 큰 희망을 품는다. 전 인류의 영신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겠다는 사명감 앞에서 사제들의 결핍을 심히 걱정하면서도 은총의 신비롭고 무한한 힘으로 성직자들의 위대한 영적 생활이 그것을 보충할 수 있으리라 굳이 믿는 바이다. "하느님은 못하실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굳게 믿고 바라며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과 여러분에게 맡겨진 사제들과 교우들에게 천상 은총을 보증하며 아버지다운 사랑을 증거하는 사도적 축복을 마음으로부터 보내는 바이다.

로마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재임 제5년 1967년 6월 24일
세자 성요한 축일에
교황 바오로 VI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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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자비로우신 하느님 (DIVES IN MISERICORDIA / 1980.11.30)  [10] 3863
25   가정교서 Gratissimam Sane  [5] 3899
24   베네딕토 16세 : 교황들(Summorum Pontificum)  5958
23   베네딕토 16세 : 교황 선출 규정의 일부 변경에 관하여  3956
22   베네딕토 16세 : 1970년 개혁 이전의 로마 전례 사용에 관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  [2] 2785
21   베네딕토 16세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DEUS CARITAS EST)  [3] 3114
20   구원에 이르는 고통 (Salvifici Doloris)  [7] 2283
19   가정 공동체  [11] 2016
18   노동하는 인간 (Laborem Exercens)  [5] 1947
17   성체의 신비와 흠숭에 대하여  [3] 2530
16   그리스도교적 지혜 (Sapientia Christiana)  [3] 2209
15   인간의 구원자 (Redemptor Hominis)  [3] 2597
14   현대의 복음선교 (Evangelii Nuntiandi)  [9] 2342
13   마리아 공경 (Marialis Cultus)  [5] 4434
12   팔십주년 (Octogesima Adventiens)  [4] 2276
  사제 독신생활에 관한 회칙  [9] 2895
10   민족들의 발전 (POPULORUM PROGRESSIO)  [5] 2425
9   신앙의 신비 (Mysterium Fidei)  [7] 2441
8   지상의 평화 (PACEM IN TERRIS)  [5] 2505
7   어머니요 스승 (MATER ET MAGISTRA)  [7]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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