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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의 신비와 흠숭에 대하여
조회수 | 2,641
작성일 | 07.05.27
요한 바오로 2세 서한 / 성체의 신비와 흠숭에 대하여 / 1980. 2. 24.

I.


경애하는 형제들에게

1. 금년도에도 성 목요일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는 작년 성 목요일에 사제들에게 보낸 편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성체와 사제직


2. 나는 이 편지에서 주로 성체께 대한 문제에 언급하고자 합니다.

특히 성체의 신비에 대한 뚜렷한 몇가지 문제와 성체가 그 예절을 집전하는 이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편지를 교회의 주교인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모든 사제들에게 그리고 부제들에게 보내려 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신품성사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존재이유 입니다. 사제직은 성체 성사가 제정되는 순간에 함께 이루어 졌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성체성사를 집전할 때 그의 기본적인 사명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왕다운 사제직, 크리스찬 생활의 근원과 정상을 최고의 양상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성체 신비의 예배


3. 성체를 통한 예배는 결국 성신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께 바쳐지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바치는 이 예배는 우선 성체성사의 전례안아서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미사때를 제외하고도 이 예배는 교회안에 충만하여야 합니다. 성체의 신비는 사랑에 의해서 제정되었고 그리스도를 성사적으로 현존케 하므로 우리는 이에 마땅한 감사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를 방문하거나 병자에게 봉성체를 시킬 경우에도 성체께 대한 예배를 소중히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랑의 성사안에서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행위는 여러 가지 형태의 성체 신심으로 표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체 앞에서 개인적인 기도를 바치거나 조배 시간을 오래 같는 것, 성체현시-짧거나 길거나 일년에 40시간-,성체강복, 성체 행렬, 성체대회, 등이 있습니다. 성체께 대한 예배를 장려하고 돈독히 하려는 것은 공의회가 목표로 삼는 진실한 쇄신의 증거입니다. 교회와 세계는 오늘날 성체께 대한 예배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성체와 교회


4. 공의회 덕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 교회가 성체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체는 교회를 건설한다 이 진리는 바로 성목요일의 신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도들이 하나가 되었을 때 교회는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백성의 일치, 성찬 잔치에 함께 참여한다는 형체적 체험만을 통해서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우리가 그러한 형제적 일치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제사를 거행하고 주께서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함께 우리 구원의 신비에 깊이 동참 하면서 주님의 식탁에 한 공동체로 닥아가 거룩한 희생제물의 열매를 섭취할 때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성체를 통하여 그리스도 자신을 받아 모시는 것이며 그 분 안에서 우리 모두가 서로 일치하는 것은 바로 교회인 그 분의 한몸 안에 친교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목활동이 여기서 영양을 얻어야 할것입니다. 이는 모든 주교들과 그 협조자인 사제들 그리고 그들에게 맡겨진 공동체 전체의 중요한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성체와 사랑


5. 크리스찬 생활은 최고의 계명인 사랑,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므로써 완성됩니다만 이 사랑은 성체안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사랑을 의미하며 그것을 다시 불러 일으키고 현존케 하며 새로 완성시킵니다. 성체를 의식적으로 배령할 때마다 우리 영혼에는 불멸의 사랑이 진실로 막을 여는 것입니다.

성체성사의 덕으로 우리 안에 솟아난 사랑은 발전해 나가고 더욱 깊고 굳센 것이로 자랍니다. 따라서 성체께 대한 예배는 크리스챤 성소의 진실된 특징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예배의 산 열매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안에 심어주신 하느님의 모상이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영과 진리로서 성부를 예배하게 될 때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더욱 증진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성체와 이웃


6. 또 우리의 성체께 대한 예배가 진실한 것이라면 우리는 주위 사람들의 인격존엄성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인식이 생기면 우리 이웃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 질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모든 인간적 고통, 비참, 불의, 부정에 예민해야 될 것이고 이를 효과적으로 시정하는 방법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내면에 대한 진실을 존경심을 갖고 발견해야 합니다. 성체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은 바로 그들의 이 내면에 와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성체와 생활


7. 성체는 애덕의 원천이 되어 있었으므로 자연히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있어 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성체께 근거를 둔 생활을 해 나간다는 것은 하느님이 그들안에 오시어 그들이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성령에 의해 획득하도록 간청하며 지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외적인 사건과 내적인 은총만으로 그들안에서 움직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성사를 통해서 보다 뚜렷하게 그들 안에서 행동 하시기도 합니다. 성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 성사적인 유형을 줍니다.

"인간의 구원자"회칙에서 나는 고백성사와 성체성사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고백성사가 우리를 성체 성사로 이끌 뿐 아니라 성체성사도 우리를 고백성사로 이끕니다.

우리가 영성체를 할 때에 누구를 받아 모신다는 것을 진실로 깨달으면 스스로가 이에 합당치 못하다는 느낌과 우리 죄에 대한 뉘우침과 내적인 정화가 필요하다는 느낌이 함께 우리 안에 솟아 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이 위대한 만남을 이룩하는 것을 단순한 습관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자격도 없으면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는 것 즉 대죄의 상태에서 영성체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상의 문제들을 짧게 언급하고 이를 바탕으로하여 이제부터 이 거룩한 희생제자의 집행과 관련되는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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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성체와 희생제사의 거룩함


거룩함


8. 성목요일 이후 성체성사의 거행은 긴역사를 가져 왔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역사와 맞먹는 것입니다. 이 긴 역사를 지내오는 동안 2차적인 요소는 변화되어 왔으나 세계의 구속자께서 최후의 만찬시에 세우신 신비의 본질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성찬전례에 본질적이고 불변의 것인지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체성사의 이러한 요소와 성체성사의 거룩함, 즉 거룩하고 성스러운 행위라는 측면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성체성사에는 "하느님의 거룩한 이", "성령으로 축성된 이", "성부의 축성을 받은이"라고 불리우는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존재와 행위가 있기에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내 놓으시고 그것을 다시 찾으신 분이며 새로운 계약의 대사제 이십니다. 바로 이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대리하는 전례 집전자를 통해 성소에 들어오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봉헌을 하시는 분이고 또 봉헌물이며 이를 축성하시는 분이고 축성받는 분입니다. 성체성사가 거룩하고 성스럽다는 것은 그것이 거룩한 것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사제가 하는 말과 행동은 성찬에 모인 모든 회중의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의 응답으로 성 목요일의 말씀과 행동을 메아리 치게 하는 것이 됩니다.

사제는 거룩한 희생제사를 in persona Christi봉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든지 "그리스도 대신에"라는 뜻이 아닙니다. In persona라는 말은 이 희생 제사의 저자이시고 또 주체이신 영원한 대사제와 성사적 일치를 특유하게 이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죄와 전 세계의 죄에 대한 효과적인 보속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 분의 희생제사만이 하느님 대전에 화해의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예절은 비록 여러 가지 전례 형태로 다르게 나타나고 2차적인 요소에 있어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그 근본적인 거룩함과 성사성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이를 전수 받아 관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한 예절을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예절에서 그 고유한 희생제사적, 성사적 성격을 분리 시키면 성체성사의 신비는 사라지고 맙니다. 이를 세속적으로 모방하면 그것은 성스러운 것을 모독하는 모방이 되어 버립니다. 이를 세속적으로 모든 것을 거룩한 것으로부터 속화시키려는 경향이 많고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의 구분을 없애려하는 시대에서는 이 점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희생제사


9. 성체성사는 다른 무엇보다 희생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 속의 희생제사요 새로운 계약의 희생제사 입니다. 이 구원의 희생제사를 오늘 다시 구현하므로 인간과 세계는 구속의 새로운 파스카를 통해 하느님께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집전하는 사람은 거룩한 신품성사의 고유한 능력에 힘 입어 피조물을 하느님께 되돌리는 진실된 제사적 행위를 수행하면서 참된 사제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사제가 하듯이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역시 빵과 포도주를 제단에 봉헌하는 순간 그것을 통해서 그들 자신의 영적인 희생제사를 바치는 것입니다. 빵과 포도주는 성체성사에 모인 회중이 하느님께 제물로서 바치는 모든 것의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성찬 전례의 이 첫째 부분은 엄밀한 의미에서 참석자의 태도안에 구체적으로 잘 표현되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최근의 전례 개혁에서는 봉헌을 위한 행렬을 하고 행렬 동안에는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전통에 따라 시편과 성가를 부릅니다. 이 행위는 어느 정도의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이루어져 그 의미를 모두가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봉헌물을 바친다는 행위의 인식은 미사전체를 통해 유지되어야 합니다.

성찬식에 믿음을 갖고 참여하는 모든이는 그것이 희생 제사임을 깨닫게 됩니다. 즉 축성된 봉헌임을 알게 됩니다. 제대에서 바쳐지는 빵과 포도주는 참석자들의 신심과 영적인 희생제물과 함께 봉헌되어 참으로, 실로, 내용적으로 그리스도 자신의 몸과 피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빵과 포도주는 축성에 힘입어 세상 구원을 위해 십자가 상에서 자신을 성부께 봉헌하신 분의 피로서 이룩된 화해의 제사를 성사적인 방법으로 피를 흘리지 않고 제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 전례에 포함된 풍성한 내용을 발견하기 위해 새롭고 알찬 교육을 계속 실시 하여야 합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이루어진 전례 쇄신은 성체성사의 희생제사에 새로운 면모가 부가 하였습니다.

성찬 기도 특히 축성 부분의 기도문을 집전하는 큰 소리로 말하고 회중이 함께 환호로서 응하는 것도 그 한 예입니다.

이 모든 것은 기뻐 해야할 사실이지만 이 변화를 이룩하는 데는 집전자와 신자들 양측의 영적인 인식과 성숙이 동시에 이루어 져야 합니다.

성체께 대한 예배가 성숙하는 것은 성찬기도의 내용을 지극한 겸손과 단순함으로 기도 드릴 때 비로소 가능 합니다. 또 그 성스러움에 합당한 방법으로 서두르지 않고 기도드릴 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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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주님의 두 식탁과 교회의 공통된 소유


주인 말씀의 식탁


10. 우리가 다 잘 아는바와 같이 성체성사의 집전은 기도문 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봉독과 회중 전체의 성가 합창이 곁들여져 왔습니다. 그 결과로 교회는 교부들이 하신 것 처럼 오랜 시일 동안 미사를 두 종류의 식탁에 비유해 왔습니다. 즉 교회는 그 자녀들을 위해 하느님의 말씀과 성체 즉 주님의 빵을 준비하는 두가지 식탁을 가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매일 읽는 성서 구절은 공의회시에 새로운 기준과 요구에 의하여 재편성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성격 봉독의 체계가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텍스트의 흐름을 어느 정도까지 지켜 나가면서 성경 전체를 훑어 나갈 수 있도록 정비 되었습니다. 신자들의 응답으로서 시편을 전례에 삽입한 것은 신자들에게 구약성서의 기도와 시가 지니는 풍성한 내용을 접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텍스트가 각 나라 말로 읽혀지고 노래 불리워 진다는 사실은 그 만큼 참석자의 보다 완전한 이해를 증진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라틴어로 된 옛 전례를 바탕으로 교육받은 이들 중에는 전세계 교회의 일치를 표현해 주고 특유한 품위로 성찬의 신비의 깊은 의미를 나타내 주는 라틴어 즉 공용어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느낌과 소망에 대해 우리는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충분한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로마 교회는 고대 로마의 훌륭한 언어인 라틴어에 대해 특별한 의무를 지닙니다.

공의회 이후에 전례 쇄신은 우리가 하느님 말씀의 진실된 잔치에 참여하고 증거할 수 있도록 마련하여 줍니다. 전례 집전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 성서 봉독자, 성가대 등의 숫자가 많이 늘어 났고 그들은 모두 열심히 봉사합니다.

이 모든 점은 참으로 바람직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나 완전한 쇄신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러 언어의 전례를 통해 전달된 하느님 말씀에 대하여 새로운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예술적 원칙에 부합하는 전례 행위를 수행하는데 있어서도 역시 이러한 책임감을 가질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미사때의 독서는 하느님 말씀에 한 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종교적 도덕적가치가 풍부히 들어있다 하여도 성서 이외의 텍스트를 독서에 대치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텍스트는 강론때에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빵과 식탁


11. 성찬 신비의 또 하나의 식탁은 주님의 빵의 식탁으로서 이것도 오늘날의 쇄신된 전례 정신에 입각하여 논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교님들은 사제직 안에서 여러분의 형제인 분들의 도움으로 성체성사의 사도직이 갖는 성스러운 품위와 성찬의 일치에서 오는 깊은 정신을 지켜 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주님의 빵의 식탁으로서 끊임없는 초대의 성격을 지녔습니다. 이것은 집전자가 "보라 천주의 어린양,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라고 말 할 때 나타납니다. 이는 혼인 잔치에 초대되는 손님들에 관한 복음의 비유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이 비유에서 많은 이들이 초대를 받고도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응하지 않았던 것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 공동체에는 영성체 할 수 있고, 양심상 별로 심각한 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영성체 하지 않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가 영성체하기에 자격이 없다는 의식보다는 영성체에 대한 내적인 의욕, 즉 성체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이 부족함에서 오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성사에 대한 올바른 감수성과 그 본질에 대한 이유가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근래에는 또 다른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성찬 전례에 참석하는 회중의 거의 대부분이 영성체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성찬 전례에 참석하는 회중은 거의 대부분 이 영성체를 하는 것을 흔히 볼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 양심을 정화하기 위하여 고백성사를 가까이 하도록 하는 배려가 부족한 것이 보통입니다. 물론 그들이 그리스도와 성사적으로 일치하는 이 기쁜 행위를 중단해야 할 정도로 하느님의 객관적인 율법에 비추어 양심상 거리낌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미사를 단순히 형제적인 일치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시는 잔치로서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현상에 대해서 우리는 막중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신학적 사목적 분석과 주의 깊은 관찰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문제는 고백성사의 실천뿐 아니라 모든 윤리규범, 선악의 명확한 구별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 구분을 통해서 성체성사에 참석하는 이들은 자신의 양심 밑바닥에서 스스로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릴 근거를 찾는 것입니다.

성체성사의 집전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사항을 요구합니다.

성체성사를 집전하는 우리 모두는 제단에서 행하는 우리의 행동을 주의 깊게 성찰 하여야 합니다. 특히 하느님이신 주의 몸과 피를 취급하는 태도를 잘 반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너무 세심한 동작은 피해야 하겠으나 너무 급히 서두르거나 참을성이 없는 태도를 보여 충격을 받는 신자들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손으로 영성체하는 방법을 도입하였습니다. 이 방법은 각 나라의 주교회의가 요청하여 성청이 인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 실시 후 지금까지 성체께 대한 결례가 안타깝게도 많이 보고 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잘못도 있으나 성체께 대한 신도들의 태도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목자들 탓도 있습니다.

또 손으로 하는 영성체가 공인된 곳에서는 입으로 성체를 모시기를 자유로이 선택하고자 하는 이들의 의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서품식을 통해 사제이신 그리스도를 대리 하도록 축성된 사제들로서 그 첫째 임무가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 사제들의 손도 그 말과, 의지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성체를 만지고 이를 손으로 분배하는 것은 서품된 자의 특권입니다. 물론 교회는 사제, 부제외의 사람들, 시종직에 있는 이들이나 특별히 선택된 평신도 들에게도 이 권한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만 그러한 경우 항상 적절한 준비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교회의 공동 소유


12. 성체성사는 일치의 성사로서 전 교회의 공동 소유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그 성사의 집행 과정에 내포되는 모든 것에 대해 세칙을 규정할 의무를 지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공의회가 제시한 원칙과 성청과의 일치하에 각교구의 주교와 주교회가 부여하는 의무 사항을 잘 준수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다양한 성체 흠숭의 양상 안에서 성체가 일치의 상징이며 근원이라는 것이 항상 뚜렷하게 드러나도록 노력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제는 신도들의 성찬 전례를 주재하고 집전하는 봉사자로서 교회의 공동선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사제는 자신이 거룩한 예식과 전례의 텍스트를 마치 자신의 소유물 처럼 자유로이 자기 개인적인 스타일로 바꿔 사용할 수 있는 주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이 만든 스타일이 훨씬 더 효유적이고 개인 신심에 접합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이는 일치의 성사가 지니는 특유의 일치를 저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단순히 한가지 형태에만 집착하는 것치라고 간주하는 것은 진정한 일치의 객관적 요구를 무시하는 행위이며 해로운 개인주의의 증상이 될 것입니다.

사제는 교회가 전 하느님 백성의 이익을 위해 그에게 위탁한 신비에 종속하고 있는자로서 거룩한 희생제사의 전례적 요구사항을 잘 지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복장에 관하여 특히 집전자가 입는 복장에 대하여 그렇습니다. 규정을 그대로 실행할 수 없는 특별한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또 있어 왔습니다. 우리는 강제 수용소에 수용된 사제들이 아무런 제의나 제단도 없이 미사를 집전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는 그것이 영웅적 행동의 증거가 되고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일이지만 정상적인 상황에서 전례의 지침을 무시하는 것은 성체께 대한 존경심의 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주의에서 비롯하거나 유행하는 사조에 대해 비판적인 감각을 갖지 못하거나 믿음의 정신이 부족한데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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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13. 교회는 전례를 통해 행동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표현합니다. 또 전례에 의해 살아가고 전례로부터 생명력을 공급 받습니다. 이 서한문에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입각하여 수행되는 전례쇄신은 어떤 의미로는 우리가 깊은 마음으로 받아 들이려하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형제적 사랑으로 주님과 또 같은 사제직에 종사하는 모든 형제들에게 교황 강복을 드리고자 합니다.

1980년 사순 첫째주일 2월 24일 바티칸에서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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