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교회법

교회사

공의회

문   헌

담화문

사목교서

♣ 현재위치 : 홈 > 문헌 자료 > 문 헌 > 교황 문헌

교황 문헌

교황청 문헌

주교회의 문헌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8 40.4%
가정 공동체
조회수 | 2,016
작성일 | 07.05.2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권고 / 가정 공동체 / 1981. 11. 22.

서론

가정에 봉사하는 교회

1. 현대 세계의 가정은, 다른 어느 제도만큼이나, 아마 그 이상으로,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끼친 깊이 있고 빠른 각종 변화의 여파를 벗어날 수 없었다. 가족제도의 기초를 이루는 제가치를 충실히 지키면서 많은 가정은 이 상황을 견디어 내고 있다. 그러나 다른 가정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하여 확신을 잃고 혼란을 느끼거나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의 궁극적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무지상태에 있다. 심지어는 각종 불의한 상황 때문에 기본 권리의 실현을 방해받고 있는 가정들도 있다.

교회는 결혼과 가정이 하나의 소중한 가치임을 알고 있는 관계로, 결혼과 가정의 가치를 이미 인식하면서 충실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 진리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하여 불안하게 찾아 헤매는 사람들, 가정 생활을 자유로이 할 수 없도록 부당하게 방해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하고자 한다. 첫째 부류의 사람들을 북돋아주고 둘째 사람들을 비추어주며 세째 부류의 사람들을 도와준다면, 교회는 결혼과 가정의 목표에 관하여 의문을 품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1)

특별히 교회는 결혼과 가정 생활을 목전에 둔 젊은 이들에게 말하고자 하며, 사랑의 소명과 봉사생활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발견하도록 그들을 도와주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자 한다.

선행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와 1980년도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2. 1980년 9월 26일에서 10월 25일 사이에 로마에서 열린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는 가정에 대한 교회의 깊은 관심의 징표를 보여주었다. 이 회의는 두 번의 선행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자연스러운 연속이었다.2) 사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성장 과정에 있는 인간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점진적 교육과 교리교육을 통해서 그를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적인 완전한 성숙에로 끌어올리도록 부름받은 첫번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근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는 또한 사제 직무와 현대 세계에서의 정의를 다룬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와 어떤 의미에서 논리적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 가정은 교육하는 공동체로서 인간들을 도와서 자신의 소명을 식별하여 더욱 완전한 정의를 추구함에 있어서 책임을 지게끔 하고, 정의와 사랑으로 가득찬 인간 상호 관계를 맺는 방법을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회의가 끝나면서, 주교들은 집중적 토의 과정을 통해서 무르익은, 자신들의 명상의 결실을 모은 장문의 건의서를 본인에게 제시하였는 바,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본인이 전인류를 향하여 가정을 위한 교회의 활기 있는 관심의 대변자가 되는 동시에, 인간의 삶과 교회생활의 이 기본적 영역에 있어서 사목 활동의 활성화를 위한 적절한 지침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 사도적 권고로써 그 사명을 완수하고 이 특수 문제에 있어서 본인에게 부여된 사도적 임무를 실현하려는 이 기회에,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모든 주교들이 건의서를 통해서 성취한 가르침과 체험에 관한 값진 기여에 대하여 감사하는 바이고, 그 건의서를 교황청 가정사목협의회에 전달하며 그 풍요로운 내용의 모든 측면을 발굴하기 위한 연구를 지시하는 바이다.

결혼과 가정의 소중한 가치

3. 교회는 결혼과 가정의 위대한 가치와 깊은 의미에 관한 모든 진리를 이해하게 하는 신앙의 조명을 받으면서, 예외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결혼의 소명을 받고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결혼한 부부와 온 세상의 부모들에게 복음을 즉 "기쁜 소식"을 선포할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인간이 당연히 결혼과 가정에 두고 있는 희망은 오직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채워질 수 있다고 교회는 확신하는 바이다.

창조 행위 안에서 하느님이 의도하셨던 결혼과 가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도록 내재적으로 질서지어졌고 죄의 상처를 치유받으며 "원상 상태"로, 즉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실현에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

역사의 이 시점에서 가정은 그것을 파괴하거나 혹은 어떤 모양으로 변태시키려는 다양한 세력의 표적이 되어 있으며, 교회는 사회와 교회의 안녕이 바로 건전한 가정과 밀접히 직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기 때문에, 결혼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할 사명을 절감하고 있다. 교회는 또한 결혼과 가정의 활력과 인간적이며 그리스도적인 발전을 확실하게 하고 사회와 하느님 백성의 쇄신에 기여하고자 한다.
448 40.4%
1. 현대 가정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상황을 이해할 필요성

4. 결혼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은 특수한 사회적 문화적 상황 하에서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을 사는 남녀에게 관련되는 까닭에, 교회가 자신의 봉사 임무를 완수하자면 오늘날 결혼과 가정이 놓여 있는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해는 복음화 활동의 필수적 요구 조건이다. 현대 세계의 조건 안에 놓인 가정들이 그들에 관한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듯이, .교회는 우리 시대의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불변하고 항상 새로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령의 부르심과 요구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서 울려퍼지기 때문에, 교회는 또한 젊은이들과 결혼 부부와 모든 부모들의 처지, 의문, 근심, 희망에서 도움을 받으며, 결혼과 가정의 끝없는 신비에 대한 더룩 깊은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에다 물론 오늘날에는 아주 중대한 깊은 사색이 첨가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매우 그럴듯하지만 다양한 정도로 진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흐리게 하는 발상과 해결책들이 온 정력을 들여 결혼과 가정생활에 영향을 및는 중대한 문제의 해결을 찾고 있는 현대의 남녀에게 제공되는 일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는 흔히 강력하고 거대한 대중 홍보 조직체의 지지를 받으며 객관적 판단의 자유와 능력을 교묘하게 약화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인간에 대한 위험을 감지하고 진리를 위해서 활동하고 있다. 복음적 식별력을 가지고 있는 교회는 그들과 합세하여 진리와 모든 남녀의 자유와 존엄을 위하여 봉사하고자 한다.

복음적 식별

5. 교회가 행사하는 식별이란 결혼과 가정에 대한 진리 전체와 온전한 존엄성이 보존되고 실현되도록 하나의 정향(定向)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식별은 성령이 모든 신자에게 주는 선물인 신앙심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고로, 다양한 은혜와 특은에 따른 교회 전체의 활동이다. 각종 은혜와 특은들은 각자의 적절한 책임에 따라서 하느님 말씀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와 실현을 위하여 공동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과 힘으로 가르치는 목자들을 통해서뿐 아니라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이 식별을 행사한다. 그리스도는 "평신도들을 증인으로 삼으시고 신앙의 이해와 말씀의 은총을 주시어(사도 2,17-18; 묵시 19,10), 그들 가정과 사회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복음의 힘이 빛나도록 하시었다." 그뿐 아니라, 평신도는 그들의 특수한 소명 때문에 시계 역사를 그리스도의 빛으로 조명받으면서 해석하는 역할을 지닌 것과 마찬가지로, 현세적 실재들을 창조주이며 구속자이신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서 비추어보고 조직할 소명을 받았다.

그러나 "초자연적 신앙심"은 오직 신자들의 합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를 따라서 교회는 다수의 의견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 진리를 추구한다. 교회는 힘이 아니라 양심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가난한 자와 천대받는 자를 옹호한다. 교회는 사회학적 통계 조가사 사목 활동이 이루어질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진리를 파악하는 데에 길잡이가 될 때에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조사 자체는 신앙심의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 머물도록 보호하고 그 진리를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사도직의 임무인 까닭에, 사목자들은 모든 신자 안에 신앙심을 촉진하고, 그 표현의 순수성을 고찰하여 유권적으로 판단하며, 더욱 성숙한 복음적 식별에로 신자들을 교육해야 한다.

그리스도인 배우자와 부모들은 남녀가 결혼생활과 가정생활을 살아가는 다양한 상황과 문화안에서 진정한 복음적 식별을 발전시키는 데에 특수하고 고유한 기여를 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특은인 혼인성사의 은혜로써 이 역할을 위한 자격을 받았다.

현대 세계의 가정 상황

6. 가정이 놓여 있는 상황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보여준다. 긍정적 측면은 세계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징표이고, 부정적 측면은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에 응압하기를 거절하는 징표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더욱 활기 있는 인식, 결혼에서 상호 관계의 질에 대한 더욱 큰 관심, 여성 존엄성의 촉진, 책임 있는 출산, 자녀의 교육 등에 대한 좀더 깊은 관심이 있다. 또한 가정간 상호 관계의 발전, 영적이며 물질면에서의 상호 협조, 가정의 교회적 사명과 더욱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가정적 책임의 재발견의 필요성이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는, 몇 가지 기본 가치가 붕괴되는 혼란에 빠져드는 징조가 없지 않다. 예를 들면, 배우자 생호 관계에 있어서 독립성에 대한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그릇된 개념, 부모와 자식 간의 권위와 관계에 관한 심각한 오해, 가치 전수에 있어서 가정이 체험하는 구체적 난관, 이혼의 증가, 인공 유산의 폐해, 불임수술의 증가, 피임 사고방식의 출현 등이다.

이상의 부정적 현상의 근저에는 관념의 타락과 더불어 자유의 개념이 결혼이나 가정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는 능력으로 체험되기보다는 흔히 타인에게 해로와도, 자신의 이기적 안녕을 위한 자기 주장의 능력으로 체험되는 경험이 깔려 있다.

우리의 관심 대상이 될 만한 또 다른 사실은 제 3세계의 여러 나라에는 많은 가정에 식량, 직업, 주책, 약품과 같은 생존의 필수 수단과 아울러 가장 기본적인 자유마저도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유한 나라에서는 과도한 풍요와 소비 풍조가 미래에 대한 약간의 불안과 걸맞지 않게 혼합되어, 새로운 인간 생명을 키우는 데에 필요한 관대함과 용기를 결혼 부부에게서 앗아가고 있다. 따라서 새 생명은 하나의 축복으로 파악되지 않고 자신을 보호해야 할 위험이라고 흔히 생각된다. 이렇게 보면 가정이 놓여 있는 역사적 상황은 빛과 어두움의 교차지점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역사란 단순히 좀더 나은 것을 향한 고정된 전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유의 사건 혹은 상호 충돌하는 자유들의 투쟁, 즉 성 아우구스띠노의 유명한 표현에 따라면 두 가지의 사랑, 자신을 무시할 정도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 간의 갈등이란 점을 말해준다. 신앙에 뿌리박은 사랑을 위한 교육만이 "시대의 징표" 즉 이 두 가지 사랑의 역사적 표현을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줄 것이다.

신자의 양심에 대한 환경의 영향

7. 대중 매체에서 오는 압력을 받으며 이러한 세계에 살고 있는 신자들이 언제까지나 어떤 기본 가치의 오염에 감염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면서 가정 문화에 대한 비판적 양심을 가지고 진정으로 인간다운 가정을 건설하는 데에 능동적인 역군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현상의 더욱 걱정스러운 징표 중에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주교들은 특히 다음 것들을 강조하였다. 신자들의 이혼과 재혼의 확대, "주님 안에서 혼인하라"는 신자들의 소명에 모순되는 순수 사회 결혼의 팽배, 산 신앙이 없이 다른 동기를 위한 혼인성사의 집행, 결혼자의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적인 성생을 촉진하고 지도하는 윤리 규범의 배척 등이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예지

8. 현재 출현하는 새로운 문화가 깊이 복음화되고, 참되 가치들이 인정되며, 남녀의 권리가 옹호되고 사회 구조 안에서 정의가 촉진되기 위해서는 온 교회가 깊이 사색하고 투신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인간주의"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사람들을 분리시키지 않고 더욱 완전한 관계에로 그들을 이끌 것이다.

과학과 과학기술의 응용은 이러한 인간주의를 건설하는 일에 새롭고 방대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연구와 응용 방향을 결정하는 정치적 선책의 결과 때문에, 과학은 본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발전에 해롭게 쓰인 적도 흔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가치인 도덕 가치의 우위성을 재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 사회의 쇄신을 위해서 수행되어야 할 중대한 일은 생명의 궁극적 의미와 기본 가치를 재인식하는 것이다. 이 가치들의 우위성에 대한 인식이 회복될 때에만, 인간은 온전한 진리와 자유와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인가늬 참된 진보를 가져오는 데에 과학이 제공하는 방대한 가능성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은 예지와 제휴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가정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인간이 발명하는 온갖 새로운 것들을 보다 인가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현대는 과거의 그 어느 시대보댜도 이런 예지를 요구하고 있다. 더 높은 예지를 갖춘 사람들이 출현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미래 운명은 위험을 면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양심의 육성은 무시될 수 없는 긴급한 조건이다. 도덕적 양심은 인간 본래의 진리에 맞추어 자기 실현을 성취하는 데에 적절한 방법을 판단하고 실별하는 능력을 모든 인간에게 준다.

현대 문화를 하느님의 예지와 좀더 깊이 맺어진 계약 관계에로 이끌어야 한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 행위를 통해서 이 예지의 한 몫을 맏았다. 이 계약에 충실해야만, 현대의 가정들은 더욱 정의롭고 형제적인 세계의 건설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위치에 머물게 될 것이다.

점진적 회개

9. 죄악에서 연유하고 현대 세계의 구조에 깊이 침투하고 있으며 가정 자체와 기본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자주 방해하는 불의 와 부조리에 대하여,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정신과 마음의 회개를 통해서 대항해야 한다. 이러한 회개가 사회 구조에도 유익하고 쇄신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지속적이며 항구적인 회개이고 이 회개는 모든 죄악에서의 내적 결별과 선에 대한 완전한 집착을 요구하는 동시에, 언제나 전진하게 하는 구체적 단계를 포함해야 한다. 이 렇게 해서 하느님이 주신 은혜와 인간의 개인생활과 사회생활 전반에 관련된 하느님의 확고하고 절대적 사랑이 요구하는 것 사이에 진보적 통합을 점차로 가져올 역동적 과정이 발전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 개인들, 가정과 민중들, 문명 자체까지도 그리스도의 신비에 관하여 이미 배운 것에서 시작하여 끈기있게 전진하고, 마침내 그들의 생활 안에서 이 신비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와 더욱 완전한 통합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성장 과정이 필요하다.

토착화

10. 교회는 오랜 전통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무한한 풍요를 더욱 잘 표현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나 여러 문화에서 받아들인다. 모든 문화의 도움이 있어야만, 그러한 풍요가 더욱 분명히 드러날 수 있을 것이고, 교회는 이미 주님에게서 전체로 받은 그 진리에 대한 더욱 완전하고 깊은 이해를 이해를 향하여 매일 맹리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과 여러 문화 사이의 적합성과 세계 교회와의 일치라는 두 원리를 고수하면서, 특히 각국 주교회의와 교황청 관계 부처의 더 많은 연구와 아울러 좀더 근면한 사목활동이 있어야지만, 그리스도적 신앙의 토착화가 결혼과 가정 문제에서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확대될 것이다.

토착화를 통해서만 하느님의 예지인 그리스도와의 결함 없는 계약을 향해서 전진하게 된다. 기술은 부족하지만 인간 예지로 가득차고 심오한 도덕 가치에서  ㄹ기를 얻는 제문화는 전체 교회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이 여정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따라서 방법을 명확하게 지적하기 위해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가 결론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본래 계획을 깊이 고찰하기 시작한 것은 잘한 일이다.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좇아 "처음으로 돌아갔다."
  | 05.29
448 40.4%
2. 결혼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

인간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상

11.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셨으며,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존재에로 부르셨고 인간에게 사랑의 소명을 주셨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은 자신 안에서 인격적으로 사상하는 일치의 신비를 살고 계신다. 인류를 당신의 모상댈 창조하시고 계속 존재케 하심으로써,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의 인간성 안에 사랑과 일치의 소명, 능력, 책임을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사랑은 모든 인간의 기본 소명이고 타고난 소명이다.

인간은 육화된 영, 즉 육체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영혼이요 불멸의 영을 부여받은 육체이기에 통일된 전체로서 사랑할 소명을 받았다. 사랑은 인간의 육체를 포함하고 육체는 정신적 사랑의 참여자가 되었다.

그리스도적 계시는 인간이 사랑의 소명을 실현하는 두 가지 구체적 방법, 즉 결혼과 동정 혹은 독신을 인정한다. 둘 중의 어느 것이다 적절한 형태를 유지하는 한, 인간의 가장 심오한진리의 실현이고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 존재의 실현이다.

그 결과로, 남자와 여자가 부부에게만 국한된 정당한 행동을 통하여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성(性)은, 결코 순전히 생물학적인 것만은 아니고 인간의 가장 깊은 존재와 관련되낟. 성(性)은 남자와 여자가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사랑의 일부일 경우에만 진정으로 인간적이다. 만약 현세적 차원을 포함해서 전인간이 걸려있는 완전한 자기 증여의 징표와 결실이 아니라면, 안약 인간이 완전히 바쳐지지 않은 행동을 통해서 어떤 것을 보류하거나 미래에 달리 결정할 가능성을 유보하는 경우라면, 온 몸을 내어준다는 것은 한갖 거짓에 불과하다.

부부애가 요구하는 이 전체성은 또한 책임있는 출산의 요청과도 부합한다. 출산은 한 인간의 생산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 본성산 순수한 생물학적 질서를 초월하며 일련의 인간 가치와 관련된다. 이런 가치가 조화있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끈기있고 일치된 기여가 필요하다.

모든 진시을 담아 자신을 주는 행위가 가능한 "장소"는 자유롭고 의식적으로 선택된 부부애의 계약인 결혼뿐이다. 결혼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 친히 의도하신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조명해 볼 때 결혼의 참된 의미가 나타난다. 결혼 제도는 사회와 권위에 의한 부당한 간섭이 아니고 형식을 외부에서 부과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계획대로 아주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 특유하고 배타적인 것으로 공인된 부부애의 계약이 본질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가 이 충실성으로 말미암아 제한되기는 고사하고 온갖 형태의 주관주의난 상대주의에서 보호되어, 창조적 예지에의 참여자가 된다.

결혼과 하느님과 사람들의 일치

12.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사랑의 일치는 계시의 일부이고 이스라엘의 신앙 체험이며,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맺어진 결혼 계약에서 적합한 표현을 발견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라는 계시의 중추적 말씀은 남자와 여자가 부부애를 표현하는 구체적인 말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로 선포된다. 부부간의 사랑의 유대는 하느님과 사람들을 일치시키는 계약의 모상이고 상징이다. 따라서 부부 계약을 해칠 수 있는 죄악은 하느님에 대한 사람들의 불충실의 상징이 된다. 우상 숭배는 매음 행위로, 불충실은 간음으로, 율법을 어기는 것은 하느님의 정배적 사랑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충실은 주님의 영원한 충실을 파괴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한결같이 성실한 사랑은 부부 사이에 있어야 할 성실한 사랑 관계의 본보기로 제시되었다.

교회의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성사

13.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일치는 인류의 구세주로서 사랑과 아울려 자신을 주었을 뿐 아니라인류를 당신 몸에 일치시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을 완성되었다.

그분은 결혼의 본재의 진리, "처음"의 진리를 밝혀주었고 굳어진 마음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면서 이 ㅈ니리를 완전히 실현하는 능력을 주셨다.

이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성을 취함으로써 인류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신부(新婦)인 교회를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감수하신 희생에서 결정적으로 완성되었다. 이 희생을 통해서 하느님이 창조 때분터 남자와 여자의 인간성 안에 부여해 놓으신 그 셰획이 완전히 드러났다. 세례받은 사람들의 결혼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맺어진 그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참된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이 내려주신 성령은 새로운 마음을 가져다 주어,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한다. 부부애가 내재적으로 자향하는 그 완성에 도달하면 부부 애덕이 되고, 이것은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주시면서 보여 주셨던 그 사랑을 부부가 살고 참여하는 적절하고 특수한 방법이다.

떼르뚤리아노(Tertullianus)는 그 유명한 문구에서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부부생활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였다. "교회가 맺어주고 제물이 강화하고 축복이 보증하고, 천사가 선언하며, 아버지가 인준하신 결혼의 행동을 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나의 희망, 하나의 송망, 하나의 준수, 하나의 봉사로 뭉친 두 신앙인의 유대는 얼마나 경탄스러운가? 그들은 둘 다 형제이고 절친한 봉사자이다. 그들사이에는 정신이나 육체에 있어 전혀 거리가 없다. 사실 그들은 진시로 한 몸 안에 둘이고 몸이 하나인 곳에 정신도 하나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정성되이 묵상하면서 교회는 세계받은 자의 결혼은 신약의 칠 성사 중의 하나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가르쳐왔고 계속 가르치고 있다.

세례로써 나맞와 여자는 진정 새롭고 영원한 계약, 그리스도와 교회의 부부다운 계약 안에 확실한 자리를 차지한다. 바로 이 불멸의 삽입으로 인해서, 창조주가 세운 부부생화과 사랑의 ㄱ오동체는 그리스도의 부부적 사랑에로 격상되고, 그분의 구원의 힘으로 유지되고 풍요롭게 되는 것이다.

결혼의 성사성의 덕분으로 부부는 결코 풀릴 수 없는 정도로 서로 매어지는 것이다. 그들의 상호 유대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자체에 대한 성사적 징표이고 진정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부부들은 십자가 위에서 일어날 일을 교회에게 계속 상기시킨다. 그들은 서로에게나 자녀들에게는 구원의 증인이고, 성사는 그들을 구원의 참여자로 만든다. 다른 성사와 마찬가지로 이 구원 사건에 대하여 결혼은 기념이고 실현이며 예언이다. "기념으로서, 혼인성사는 하느님의 위대한 사업을 기념하고, 자녀들 앞에서는 그 사업을 증거하는 은혜와 의무를 부부에게 부어한다. 실현으로서, 혼인성사는 용서와 구원을 가져온 위대한 사랑의 요청을 서로와 자녀들을 향하여 실천할 은혜와 의무를 준다. 예언으로서, 혼인성사는 앞으로 있을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대한 희망을 증거하며 살아갈 은혜와 의무를 주는 것이다.

모든 칠 성사가 그러하듯, 결혼은 고유한 양식으로 구원 사건의 참된 상징이다. "부부는 함께 구원 사건에 참여하기 때문에 결혼의 우선적 직접적인 효과는 초자연적 은혜가 아니고 그릿도인 부부의 유대, 두 사람의 그리스도적 일치이다. 결혼은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와 계약으리 신비르 ㄹ표출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내용도 특수하다. 부부애는 인간의 모든 요소, 육체의 매력과 본능, 감정과 애정의 힘, 정신과 의지의 소망 등이 담겨지는 전체와 관련된다. 부부애는 깊은 인간적 일치, 육체의 일치를 넘어, 한 마음과 한 영혼을 이루는 일치를 목표로 삼는다. 그것은 서로 결정적으로 줌으로써 갈리지 않음과 충실을 요청한다. 그리고 부부애는 출산의 문을 열어 놓는다(회칙, 인간생명, 9항 참조). 한 마디로 이것은 모든 자연적 부부애의 정상적 특성들이지만 그 특성들을 정화하고 강화할 뿐 아니라, 끌어올리어 그리스도적 자치의 표현이 된게 한다는 새로운 의미가 첨부된다."

자녀는 결혼의 소중한 선물

14. 하느님의 계획에 따르면, 결혼은 가정이라는 더욱 넓은 공동체의 기초이다. 결혼 제도와 부부애는 그 절정이라고 보여지는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한다.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사랑은 본질적으로 하나으 선물이다. 그리고 부부애는 "한 몸"이 되게 하는 상호 "인식"에로 부부를 이끌어가지만 부부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부부애는 그들에게 가장 위대한 선물을 갖게 하며, 부부는 새로운 인간에게 생명을 전달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협력자가 된다. 이렇게 해서 부부는 서로에게 자신을 부면서도 자신들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도 주는 것이다. 자녀들은 부부애의 살아있는 표상이고 부부 일치의 영원한 징표이며,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그들 존재의 생생하고 불가분한 종합이다.

부부는 부모가 되면서 하느님에게서 새로운 책임의 은혜를 받는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들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보이는 징표가 되어야 하며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의 이름이" 하느님에게서 나온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출산이 불가능한 경우에라도, 그 이유 때문에 부부생활이 가치를 상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육체적 불임은 사실 붑에게는 인간의 생명을 위한 다른 중요한 봉사의 기회, 예를 들면 양자, 각종의 교육 활동, 다른 가정, 가난한 자나 불구 아이들에 대한 봉사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

15. 결혼과 가정 안에서 복잡한 인간 관계-결혼생활,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형제 관계 등-가 수립된다. 그 관계를 통해서 각 사람은 "인간 가족"과 교회인 "하느님의 가족"에로 돌아온다.

그리스도인의 결혼과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교회를 건설한다. 가정 안에서 인간이 존재를 얻고 교육을 통해서 인간 공동체에로 서서히 들어올 뿐 아니라, 세례의 재생과 신앙 교육을 통해서 아이는 교회인 하느님의 가족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죄악으로 인해서 분열되었던 인간 가족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구원하시는 힘으로 말미암아 일치되었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이 사건의 구원적 효과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이 교회의 위대한 가족에로 들어오는 자연스러운 발판이 된다. 맨처음 남자와 여자에게 내려진, 성장하고 번식하라는 명령은 결혼을 통해서 완전한 진리와 실현에 도달한다.

그래서 교회는 성사로써 탄생한 가정을 보금자리와 발판이라고 생각하며, 이들을 거쳐서 교회는 인간의 새 세대로 들어가고 새 세대는 교회에로 들어온다.

결혼과 동정 혹은 독신

16.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동정 혹은 독신은 결혼의 존엄성을 위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전제하고 강화한다. 결혼과 동정 혹은 독신은 하느님과 사람들의 계약의 신비를 표현하고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이다. 결혼이 존중되지 않으면, 성화된 동정이나 독신ㅇ 존재할 수 ㅇ벗다. 인간의 성(性)이 창조주가 주신 중대한 가치로 인정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성의 포기도 의미를 상실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도모의 말씀은 진정으로 옳다. "결혼을 모욕하는 사람은 동정의 영광도 감소시킨다. 결혼을 찬양하는 사람은 동정을 더욱 장하고 빛나는 것으로 만든다. 악과 비교해서만 좋게 보이는 것은 특별히 좋은 것은 못된다. 가장 훌륭한 것은 좋다고 인정되는 것보다 더욱 좋을 것이다."

동정 혹은 독신을 살면서, 인가는 육체적으로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종말론적 결혼을 기다리며, 동시에 그리스도가 영생의 진리 안에서 자신을 교회에게 주실 것을 희망하면서 동정인은 자신을 완전히 교회에 바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독신자는 다가올 부활의 새로운 세계에 육체적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이런 증언을 통해서 동정 혹은 독신은 결혼 신비에 대한 의식을 교회 안에서 살아있게 하고, 감소되고 허약해지지 않도록 교회를 보호한다.

동정 혹은 독신은 특유한 방법으로 인간의 마음을 해방시키고 "더욱 더 하느님과 모든 사람에게 대한 사랑으로 불타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와 정의는 아무리 큰 다른 모든 가치보다도 더 훌륭한 값비싼 진주이며, 따라서 단 하나의 결정적 가치로서 추구되어야 할 진주임을 증언한다. 동정과 하느님의 나라 사이에는 전적으로 특유한 연결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결혼에 비한 이 특은의 우월성을 항상 주장해왔다.

독신자는 육체적 출산력을 포기함에도 불구하고 영성적으로는 결실을 많이 내어, 많은 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고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가족을 현실화하는 데에 협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부부는 좋은 모범과 죽을 때까지 자기 소명에 충실하게 사는 증언을 독신자에게서 기대할 권리를 갖는다. 충실성은 때때로 결혼자들에게 어려운 문제여서 희생, 극기, 자기 부정을 요구하듯이, 같은 문제가 독신자들에게도 있을 수 있으므로 독신자의 충실성은 시련 중에 있는 결혼 부부의 충실성을 강화해야 한다.

동정이나 독신에 관한 이상의 숙고는 본의와는 무관한 이유로 셜혼하지 못하였으나 그 상황을 봉사의 정신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빛과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05.29
448 40.4%
3.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

가정은 본연의 것이 되어라

17. 가정은 창조주이고 구속자이신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그 정체(Idenytity)뿐 아니라 사명을 발견한다. 하느님의 소원에 따라 가정이 역사에서 수행할 역할은 가정의 됨됨이에서 연유한다. 가정의 역할은 결국 가정의 됨됨이의 역동적이고 실존적 발전을 의미한다. 각 가정은 자신 안에서 무시될 수 없고 동시에 자신의 존엄서오가 책임을 규정해 주는 부르심을 발견하다. 가정은 본연의 것이 되어라.

따라서 가정이 자신의 됨됨이뿐 아니라 역사적 활동의 내재적 진리에 부합하게 자기 인식과 자기 실현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하느님의 창조 행위의 "시작"에로 돌아가야 한다. 가정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부부생활와 부부애로 깊이 맺어진 공동체"로서 설립되었기 때문에, 본연의 됨됨이에 더욱 가까운 것 즉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가 될 사명이 있으며, 창조되고 구원된 모든 것이 그러하듯,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완성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뿌리에 도달하게 위해서 이런 식으로 조명해 보면, 가정의 본질과 역할은 결국에 가서 사랑으로 규정된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가정은 사랑을 보호하고 드러내며 전달해야 할 사명을 지닌다. 이것이 인류에 대한 하는님의 사랑과 아울러, 신부(新婦)인 당신 교회를 위한 주 그리스도의 사랑을 활기있게 반영하고 진정으로 나누는 것이다.

가정의 모든 특수 임무는 이 기본 사명의 표현이고 구체적인 실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가정의 특별히 풍요한 사명에로 깊이 파고들어, 다양하고도 통일된 그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

사랑을 출발점으로 하고 그것을 변함없는 참고점으로 삼으면서 최근의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는 가정의 제 가지 일반적 임부를 강조하였다.

1) 인간 공동체의 형성
2) 생명에의 봉사
3) 사회 발전에의 참여
4) 교회의 생활과 사명에의 참여

I. 인간 공동체의 형성

사랑은 일치의 원리이고 힘

18. 사랑에 의해서 세워지고 생며을 받는 사정은 인간들의-즉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친적들의-공동체이다. 가정의 첫째 임무는 진정한 인간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계속적 노력을 쏟으면서 일치의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 임무의 내적 원리, 영원한 원동력, 최종적 목표는 사랑이다. 사랑이 없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 없이는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다. 본인이 회칙「인간의 구원자」에서 말한 것은 일차적으로 특별히 가정에 적용된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때, 사랑에 깊이 참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도 불가해(不可解)한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生)은 무의미하다.

남편과 아내의 사랑, 파생적이고 더 넓게는 같은 가정의 성원들 간의-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 가정의 친척과 성원들 간의-사랑은 가정을 더욱더 깊고 강렬한 일체에로 이끌어가는 끊임없는 내적 역동성에서 생명과 보조를 받는다. 이 일치는 결혼과 가정 공동체의 기반이고 영혼이다.

부부 공동체의 불가분적 일치

19. 첫째 공동체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설비되고 발전하는 공동체이다. 결혼생활의 계약으로 말미암아 남자와 여자는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한 몸이고" 그들은 상호적 자기 봉헌의 결혼 약속에 대하여 매일매일 충실하면서 일체에 있어서 계속 성장할 소명을 받는다.

이 부부의 일치는 남자오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자연적 본성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전체적 생활 계획, 가진 것과 됨됨이를 나누려는 부부의 인격적 노력을 통해서 성장한다. 이 때문에 이 일치는 인간의 깊은 요구의 결실이고 징표이다. 그러나 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은 이 인간적 요구에 유의하여 그것을 확인하고 정화하시며 들어올리사, 혼인성사를 통해서 완성에로 이끄신다. 그 성사 집행에서 오시는 성령은 그리스도인 부부에게 사랑의 새로운 공동체의 은혜를 주신다. 이 공동체는 교회를 주 예수의 신비체로 만드는 저 특수한 일체에 대한 살아있는 진실된 모상이다.

성령의 은혜는 그리스도인 부부에게 내려진 생활의 계명이며 동시에 자극적 충동이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차원에 있어서-육체, 성격, 마음, 지성과 의지, 영혼 등-더욱 풍요로운 일치를 향하여 진보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받은 사라으이 새 고동체를 교회와 세계에 드러낼 수 있다.

이 공동체는 일부다처제와는 극단적으로 대립된다. 일부다체제는 결혼 안에서 온전하고 그러기에 특유하며 배타적인 사랑과 함께 자신을 바치는 남자와 여자의 동등한 존엄성에 위배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계시된 하느님의 계획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말씀과 같이 "서로의 완전한 사랑 속에서 남편이나 아내에게 평등하게 인정해야 할 인격적 존엄성은 주계서 확인하신 혼인의 단일성(一夫一妻制)을 밝혀준다.

불가분의 일치

20. 부부의 일치는 단일성만 아니라 불가해소성으로도 특징지어 진다. "이 깊은 일치는 인격과 인격의 상호 교환이므로, 자녀의 행복이 요구하듯이, 부부의 완전한 신의와 그 일치의 불가해소성을 강요한다."

교회의 기본 의무는,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가 그러하였듯이, 결혼의 불가해소성 교리를 강력하게 재확인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일생 동안 한 사람에게 매여있는 것은 너무 어렵다거나 불가능하다고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결혼의 불가해소성을 배척하고 부부가 정절에 투신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비웃는 문화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그 기반과 힘을 발견하는 부부애의 뚜엿한 본성에 대한 복음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결혼의 불가해소성은 부부의 인격적이고 완전한 자기 봉헌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자녀들의 행복이 요청하는 것일 뿐 아니라, 계시에서 나타난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궁극적 진리를 발견하다. 하느님 자신이 인간에 대하여, 또한 주 예수님이 교회에 대하여 품으신 절대적으로 충실한 사랑의 징표, 결실, 요구 조건으로서의 결혼의 불가해소성을 하느님은 원하셨고 선포하셨다.

그리스도는 창조자가 남자와 여자의 마음에 새겨놓은 최초의 계획을 재생시키고 혼인성사의 집행에서는 "새로운 마음을" 주신다. 그래서 부부는 "굳은 마음을"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무엇보다도 새롭고 영원한 계약에서 사람이 된,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사랑을 나눌 수도 있다. 주 예수는 "진실하신 증인"이시고,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응답"이며 따라서 하느님이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보이셨던 조건 없는 충실성의 최고의 실현인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 부부는 끝까지 사랑을 받은 신부(新婦)인 교회와 그리스도를 매어놓는 취소될 수 ㅇ벗는 불가해소성에 진정으로 참여할 소명을 받았다.

혼인성사의 은혜는 그리스도인 부부에게 소명인 동시에 명령이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시련과 곤란을 넘어, 주님의 뜻에 관대하게 손종하면서 언제나 서로에게 충실해야 한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결혼의 불가해소성과 정절의 무한한 가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은 현대 그리스도인 부부의 가장 값지고 긴급한 임무이다. 그래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에 참석하였던 모든 형제들과 함게, 본인은 적지 않은 곤란의 당하면서도 불가해소성의 가치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많은 부부들을 찬양하고 격려하는 바이다. 그들은 겸손하고 용감하게 자신들에게 부여된 역할,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을 사랑하면서 보여준 틀림없는 충실성의 징표-때때로 유혹을 당하지만 언제나 이겨내는 작고 소중한 징표-가 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배우자의 배반을 받고도 그리스도적 희망과 신앙의 힘을 가지고 재혼을 하지 않은 배우자들의 증언의 가치도 인정 해주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배우자들도 오늘의 세계가 극히 필요로 하는 충실성에 대하여 진정으로 증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의 목자와 신자들의 격려와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가정의 폭넓은 일치

21. 부부 일치는 가정의 보다 폭넓은 일치,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 친척과 가족의 다른 성원의 일치를 이루는 기초가 된다.

이 일치는 혈육의 자연적 유대에 뿌리를 박아, 더욱 깊고 풍요한 정신의 유대가 이어지고 성숙하면서 특별히 인간적 완성에로 성장한다. 가족의 여러 성원들 간의 상호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랑은 가정의 일치와 공동체를 구체화 시키고 활력을 불어넣는 내적인 힘을 이룬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일치를 보강하고 완성하는 새롭고 독창적인 일치를 체험하는 소명도 받았다. 사실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름 지은 것처럼, 본성적이고 내재적인 역동성으로 말미암은 "형제애의 은혜"이다. 혼인성사의 집행시에 내려오시는 성령은 신자들을 모으고 하느님의 교회의 일치 안에서 그들을 그리스도뿐 아나라 서로에게 연결시키는 초자연적 일치의 살아있고 끝없는 원천이고 협조자이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교회적 일치(Ecclesial Communion)의 특수한 표출이고 실현이기 때문에, 이것은 "가정 교회"(the Domestic Church)라고 불릴 수도 있고 불려야 한다.

가정의 모든 성원은 각자의 고유한 특은에 따라, 매일매일 인간들의 일치를 건설할 은혜와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 가정을 "보다 풍요한 인간성을 길러내는 학교"로 만들 책임도 있다. 어린 아이들, 병자들, 노인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곳에서, 매일 서로 봉사하는 곳에서 가진 것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의 나눔이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읽치를 건설하는 기본적 기회는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주고 받는 교육적 교환으로 마련된다.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순종함으로써, 자녀들은 참으로 인간다운 그리스도인 가저을 건설하는 데에 특수하고 고유한 기여를 제공한다. 만약 부모들이 자기들의 정당한 권위를 진실되고 적절한 "직무"답게. 즉 자녀의 인간적이며 그리스도적인 행복을 위한 봉사답게, 특히 자녀가 책임있는 자유를 습득하는 것을 도우려는 봉사답게 행사한다면, 또한 만약 부모들이 자녀에게서 받는 "은혜"에 대하여 생생한 인식을 유지한다면, 자녀들의 기여는 훨씬 용이할 것이다.

가정의 일치는 지대한 희생 정신으로써만 보존되고 완성될 수 있다. 사실상 그것은 무든 가정 성원들에게 인해, 인내, 용서, 화해에 대하여 신속하고도 관대한 개방성을 가질 것을 요청한다. 이기심, 불화, 김장, 갈등이 얼마나 심하게 가정의 일치를 침해하고 때로는 치명적으로 상처를 입히는지를 모르는 가정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가정생활에서 수없이 다양한 형태의 분열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가정은 즐겁고 참신한 화해의 체험, 즉 회복된 일치의 체험을 맛볼 소명은 평화의 하느님께로부터 받고 있다. 특히 화해의 성사와 그리스도의 몸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모든 분열을 극복하는 은혜와 책임,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주님의 열절한 소망에 응답하면서 하느님이 원하신 완전한 일체에로 다가가는 은혜와 책임을 그리스도인 가정에 준다.

여성의 권리와 역할

22. 가정은 사람들의 일치이며 공동체이고, 또 언제나 그래야 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즉 하느님의 살아있는 모상으로서 고상한 존엄성을 지닌 모든 성원들을 환대하고 존경하며 키워줄 근원과 계속적 동기를 사랑 안에서 발견한다.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가 올바르게 주장하였듯이, 진정한 부부 관계와 가족 관계의 도덕적 기준은 성실한 자기 봉헌으로써 완성을 성취하는 개인들의 존엄성과 소명을 육성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전망에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는 가정과 사회 안에서 여성의 권리와 역할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같은 전망에서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남성과, 어린이와 노인도 또한 고찰되어야 한다.

우선 여성의 존엄성과 책임은 남성의 것과 동등하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동등성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특유한 양식으로 자기 봉헌을 하고, 둘이 결환과 가정에 의당히 있는 자녀에게 자기 봉헌을 하는 데에서 실현된다. 인간의 이성이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인정한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완전히 계시되었다. 사실 구원의 역사는 여성의 존엄성을 계속애서 밝게 증언한다.

인류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실 때에,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한 인격적 존엄성을 주시고, 인간에게 적합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와 책임을 부여하셨다. 그리고 하느님은 교회가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새로운 하와라고 부르며 구원된 여자의 본보기로 내세우는 동정 마리아에게서 인간 육체를 취하셨을 때, 여자의 존엄성을 가장 높이 드러내셨다. 예수님을 따르고 친절을 베풀었던 여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민감한 존경, 부활날 아침에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 한 여자에게 나타나심, 부활의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하는 사명을 여자에게 주심-이 모든 징표는 여성에 대한 예수님의 특별한 존경심을 확증해 준다.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삶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여성과 사회

23. 여성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방대하고 복잡한 문제의 모든 측면을 취급할 의도를 두지 않고 몇 가지 본질적인 점에 언급을 한정시키고자 하면서도, 일반적 사회문화의 전통이 여성의 역할은 가정생활의 특수분야에서 단지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에 국한되고, 보통으로 남성에게 지정되어 온 공적 기능에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자와 여자의 동등한 존엄성과 책임이 공적 기능에 대한 여자의 진출을 충분히 정당화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반면에 다른 모든 공적 역할과 직업에 비해서 모성적이고 가정적인 역할의 가치가 분명히 인정을 받아야, 여성의 참된 진출이 가능하다. 또한 사회와 문화의 인간적 진화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과 직업이 조화있게 짜여져야 한다.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소망에 따라서, 만약 참신한 "노동 신학"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노동의 의미를 조명해 주고 깊이 연구하며, 노동과 가정의 기본 유대와 가정에서나 자녀 양육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의 본래적이고 고유한 의미를 규정한다면, 조화있는 짜임새가 용이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여자의 가정적 노동의 고유한 가치를 모든 이가 인정하고 존경해야 한담고 계속적으로 주장함으로써 현대 사회를 도울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은 배우 중요하다. 일단 여러 형태의 노동과 직업 간의 차별이 그 근본에서부터 제거되면, 모든 사람은 각 분야에서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에게서 하느님의 모상이 더욱 밝게 보일 것이다.

각종의 공적 기능을 이행하는 데에 여자와 남자가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고 인정해야 하지만, 아내와 어머니들이 실제로 집 밖의 노동에 강요되지 않고 그들이 전적으로 가정 일에 전념함으로써 그들의 가정이 품위있게 살고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그러한 사회가 건설되어야만 한다.

더 나아가, 가정내의 노동보다는 가정 밖의 노동 때문에 여자를 더 인정하는 정신은 극복되어야 한다. 남자는 인격적인 존엄성을 근거로 진정으로 여자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사회는 가정내의 노동을 유리하게 하는 조건을 창조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남자와 여자의 상이한 소명르 적절히 존중하면서, 교회는 자신의 생활 안에서 남녀의 동등한 권리와 존엄성을 가능한 한 촉진해야 하며 이것은 모든 사람, 가정, 교회, 사회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여자들이 여성다움을 포기하고 남성의 역할을 모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완전하고 충분한 여성적 인간성이 관습과 문화의 차이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가정에서나 밖에서 행동으로써 표현되어야 한다.

여성의 존엄성 침해

24. 불행히도, 인간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이기심과 순수한 쾌락에 봉사하는 물건으로나 거래 대상으로만 보는 정신이 끈질기게 여자의 존엄성에 관한 그리스도교 메지시에 대립하고 잇다. 이 정신의 첫째 희생자는 여성이다.

이 정신은 남자와 여자에 대한 멸시, 노예 제도, 약자 억압, 도색 인쇄물, 특히 조직적인 매춘 행위와 같은 매우 쓰라린 결과뿐 아니라, 교육, 취업, 임금 등의 제분야에서 발견되는 여러 형태의 차별 대우를 창출한다. 그 외에도, 우리 사회에 오늘날 아직도 널리 존속하는 많은 종류의 치욕적인 차별은 특수 부류의 여자들, 예를 들면 자녀 없는 여자, 과부, 별거 중이거나 이혼한 여자, 미혼모들에게 심각한 침해를 가하고 있다.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는 이런 형태의 차별 대우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므로 본인은 그 차별 대우를 말끔히 극복하기 위하여 모든 이가 힘차고 단호한 사목 활동에 착수하라고 요청하는 바이고, 그래서 모든 인간에게서 빛나는 하느님의 모상이 충분히 존중되기를 바란다.

남편과 아버지로의 남성

25. 부부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 안에서 남자는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은혜를 살아갈 소명을 받았다. 남자는 아내를 가짐으로써 하느님의 의도를 채우는 것이다. "아담이 혼자 이쓴ㄴ 것이 좋지 않으니, 그으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 그리고 남자는 첫번째 남편이었던 아담의 외침을 반복하게 된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가 자기 아내의 동등한 존엄성을 깊이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부부애에서 전제되고 요구된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서술하였다. "당신은 그녀의 주인이 아니라 남편이다. 그녀는 당신의 종이 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아내가 되어야 한다. 당신에 대한 아내의 관심에 보답하라. 그리고 그녀의 사랑에 대하여 감사하라." 남자는 자기 아내와 더불어 "인격적 사랑의 특수형인 부부애"를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남자는 새로운 사랑의 태도를 발전시키고, 그리스도가 교회에 대하여 가지신 것과 같은 인내롭고 열렬한 사랑을 아내에게 표시할 소명을 받고 있다.

남자가 자기 자녀의 어머니인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부성을 이해하고 수행하는 잔연스러운 길이다. 특히 사회 문화적 조건의 요청 때문에, 아버지가 가족에 대하여 관심으 덜 갖고 혹은 무슨 이유로든 교육 활동에 덜 관여하게 되는 지역에서는, 가정내에서 아버지의 위치와 임무는 특수하고 고유한 것이란 확신이 사회적으로 회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아버지의 부재는 가족 관계 안에서 심리적 도적적 불균형과 더불어 주목할 말한 곤란의 야기시키고, 반대로 특히 강한 "남성 의식"(Machismo)의 현상이 아직도 우세한 곳에서, 혹은 여자를 모욕하고 건전한 가족 관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그릇된 남성 특원의 우월성이 있는 곳에서, 억압적으로 아버지의 존재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한다.

남자는 지상에서 하느님의 부성을 드러내고 되살리며, 가족의 모든 성원의 조화있고 일치된 발전을 도모할 소명을 받았다. 어머니의 마음 속에서 잉태된 생명에 대한 책임을 관대하게 행사혹, 아내와 나누어가며 자녀 교육에 더욱 적극적으로 투신할 뿐 아니라, 가정내에 결코 분열을 초래하지 않고 오히려 일치와 안정을 도모하는 활동을 통해서, 또한 자녀들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산 체험에로 효과적으로 끌어들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보여줌으로써만, 남자는 자기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자녀의 권리

26. 인간들의 공동체인 가정에서는 특별한 관심이 자녀에게 집중되고, 그들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존경과, 그들의 권리에 대한 지대한 존경과 관심이 발전되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자녀에게 해당하지만, 자녀가 어릴수록 그 요청은 더욱 절실하며, 병들어 고통을 당하거나 불구자일수록 모든 것에 대한 요청은 더욱 커진다.

교회는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어린이들에 대한 부드럽고 강력한 관심을 촉진하고 행사함으로써 하나의 기본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교회가 어린이를 하느님의 나라의 복판에 앉힌 주 그리스도의 본보기와 계명을 역사 안에서 맑히고 새롭게 제시할 소명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하느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979년 10월 2일 본인이 유엔 총회에서 말한 것을 다시 반복하고자 한다. "본인은 우리 모두가 어린이들에게서 발견하는 기쁨, 생명의 봄, 현재 우리 조국에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함께 환기하고 싶습니다. 지상의 어느 국가나 어느 체제도 이 새로운 세대들의 모습에서가 아니면 자기네 미래를 생각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무모들의 뒤를 이어 소속된 국가와 전체 인류 가족의 가치와 본분과 염원을 계승하는 이 세대들에게서만 그 국가와 체제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데 대한 매려, 그러나까 출행 전부터라도 수태된 첫 순가부터 유아기와 아동기를 통해서 어린이들의 사정을 바려하는 일은 인간이 타인과 맺는 관계를 저울질할 수 있는 초보적이고 근본되는 시금석이 됩니다. 본인이 각국과 전체 인류 그리고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축원이 있다면 다가오는 제 3 천년대에는 인권 존중이 완전히 실현되는 보다 나은 세계가 되기를 비는 것이겠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어린이에 대한 받아들임, 사랑, 존경, 갖가지의 물질적, 정서적, 교육적, 영적 관심은 언제나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히 그리스도인 가정의 뚜렷하고 본질적인 특성을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어린이들은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맏아" 성장할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가정 공동체의 건설과 나아가서는 부모들의 성화에도 소중한 기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의 노인들

27. 노인에게 대하여 특별한 존경과 큰 애정을 갖는 문화들이 있다. 그런 문화에서는 노인들이 가정을 떠나서 살거나 혹은 쓸모없는 부담으로만 취급되기는 고사하고, 그들은 젊은 가정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가정생활에서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은 우선 과거의 증인이 되고 젊은이와 미래를 위해서 예지의 원천이 되는 중대한 사명을 이행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문화에서는, 특히 무질서한 산업 발전과 도시화를 뒤따라, 과거와 현재에, 노인들이 부당하게 소외되고 있다. 이 현상은 노인에게 극심한 고통을 야기하고 많은 가정을 정신적으로 가난하게 만든다.

교회의 사목활동은 모든 이들을 도와가며 사회와 교회공동체에서, 특히 가정 안에서 노인의 역할을 개발하고 잘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사실 "노인의 생활은 인간 가치의 폭을 명백히 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세대들의 연속성을 보여주며 하느님 백성의 독립성을 드러낸다. 노인들은 흔히 세대 격차를 메우는 특은을 가진다.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노인들의 눈과 말과 그 어루만짐에서 이해와 사랑을 발견하였던가!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자손은 늙은이의 면류관이다"(잠언 17,6)란 계시된 말씀에 자진해서 수긍하였던가!"
  | 05.29
448 40.4%
II. 생명에의 봉사

1. 생명의 전달

창조주 하느님의 사랑에 협력

28.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를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심으로써 당신의 활동에 면류관을 씌워 완성하셨다. 그분은 인간들이 인간 생명의 은혜를 전달하는 데에 자유롭고 책임있게 협력함으로써 창조주요 아버지인 당신의 사라오가 능력에 특별히 참여하도록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그러므로 가정의 기본 임무는 생명에 봉사하는 것, 창조주의 첫 축복을 역사안에서 실현하는 것, 즉 출산을 통해서 하느님 모상을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달하는 것이다.

출산력은 부부애의 결실이고 징표이며, 아울러 부부 상호간의 완전한 자기 봉현의 산 증거이다. "참된 부부애의 실천과 그로써 형성되는 가정생활 전체는, 혼인의 다른 목적들을 경시함 없이, 부부로 하여금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가족들을 날로 자라게 하시며 풍요케 하시는 창조주와 구세주의 사랑과 협력하기위하여 용감한 마음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부애의 결실은, 특별히 인간적 차원에서 이해된다 할지라도, 단지 자녀의 출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자녀들을 통해서 교회와 세계에 건제주는 도덕적, 영신적, 초자연적 생활의 결실로써 확장되고 심회되는 것이다.

교회의 가르침과 규범은 옛 것이며 새 것

29. 남편과 아내의 사랑은 하느님 자신의 생명과 사랑의 신비에 특수하게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 자신은 결혼의 높은 존엄성과 인간 생명 전달의 가장 중대한 책임을 지키고 옹호할 특수 사명을 받았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다. 역사를 꿰뚫는 교회 공동체의 산 전통에 이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회칙 「인간 생명」에서 표현된 본인의 선님자 교황 바오로 6세의 가르침은 진정으로 예언적 선언을 우리 시대에까지 전달해 주었다. 그 선언은 결혼과 인간 생명의 전달에 관한, 항상 옛 것이면서 항상 새로운 교회의 가르침과 규범을 명백히 재확인하고 재천명하였다.

그렇게 때문에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주교들은 마지막 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신앙의 일치 안에서 베드로의 후계자와 함께 모인 이 신성한 회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사목 헌장, 50항 참조)와 회칙 「인간 생명」에서 선포된 것을, 즉 남편과 아내의 사랑은 전적으로 인간적이고 배타적이며 새로운 생명에 대하여 개방적이여야 한다는 점을 굳게 지지한다(인ㄱ나 생명, 11항; 9항, 12항 참조)."

교회는 생명을 지지한다

30. 오늘날 교회의 가르침은 그것이 놓여있는 사회 문화적 상황 때문에 잘 이해되지 못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참된 행복을 위해서는 더욱 절실하고 필요하다.

자연을 지배하면서 현대인이 계속적으로 확대해가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새롭고 더욱 좋은 인간성을 창조할 희망을 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더욱 큰 불안도 야기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살아간다는 것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태어나지 않는 편이 오히려 좋지 않았을까 하고 질문하다. 그들은 만일 예측할 수 ㅇ벗는 공포를 느끼면서 잔인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을 저주한다고 할 때 타인을 생명에로 끌어들이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심한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만이 기술의 편익을 누려야 한다고 보고 피임법이나 더욱 가증한 수단을 강요해서 타인들을 제외시킨다. 또 다른 람들은 소비 풍조의 포로가 되어 끊임없이 물질적 재산을 늘리는 데에만 몰두하여, 새로운 생명의 정신적 풍요함을 이해하기를 그만두거나 거절하고 있다. 이런 정신 상태의 궁극적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 데에 있다. 하느니므이 사랑만이 세상의 모든 공포보다 강하고, 그분 사랑만이 세상의 모든 공포를 정복할 수 있다.

이러한 많은 쟁점에서 나타나듯이,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생명을 반대하는 정신이 탄생하였다. 예컨대, 삶의 질(質)에 대한 인구 증가의 위험을 때때로 과장하는, 인구 증가에 관한 환경론자와 미래학자들의 연구에서 유추되는 일종의 공포심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인간 생명이 나약하고 고통을 당할지라도 언제나 선하신 하느님의 훌륭한 선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세계 위에 그늘을 지게 하는 염세주의와 이기주의에 대항해서 교회는 생명을 지지한다. 교회는 개개인의 생명에서 그리스도 자신인 "그렇다"와 "아멘"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세계를 괴롭히며 가해하고 있는 "아니다"에 반해서 교회는 "그렇다"라고 대답하며, 생명에 대하여 해악과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로부터 인간과 세계를 보호한다.

교회는, 인간 생명이 어떠한 조건과 발전 단계에 놓여있든지, 명백하고 굳은 신념을 가지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인간 생명을 촉진하고, 모든 공격으로부터 인간 생명을 보호할 의지를 모든 이에게 새롭게 보여주는 사명을 받았다.

따라서 자녀수를 정하는 데에 있어서 부부의 자유를 어떠한 형태로든 제한하려는 정부나 기타 공권력의 모든 활동을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보고 단죄하는 바이다. 산아 제한이나 더욱 나쁘게는 불임 수술과 낙태를 유도하기 위하여 공권력이 사용하는 폭력은 일체 단죄되고 단호히 배격되어야 한다. 국제 관계에 있어서 산아 제한, 불임 수술, 낙태 등의 계획을 실시한다는 조건 하에 사회 개발을 위한 경제 원조가 제공되는 사례들도 마찬가지로 중대 불의로 비판받아야 한다.

하느님 계획이 더욱 완전히 실현되도록

31. 말할 나위 없이, 교회는 많은 나라의 부부들이 오늘날 책임있게 생며을 전달하는 임무 수해에것 당면하는 복잡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교히는 또한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나타난 인구 증가 형태의 심각한 문제와 그것의 도덕적 결과를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모든 측면에 대한 심층 고찰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회칙 「인간 생명」에서 제시된, 출산 조절에 관한 정통적 가르침의 중요성을 힘있게 재확인한다고 교회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주교들과 일치하여, 본인의 의무는 신학자들을 긴급히 소집하여, 위계적 교도권과 협력하기 위해서 노력을 합류하고, 이 교리를 뒷받침하는 성서적 기반, 도덕적 근거, 인격적 이유 등을 좀더 분명히 밝히는 임무에 투신하라고 그들에게 요청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근본 문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유기적으로 조직하여,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 잘 이해할 만하게 제시하고 좀더 각성되고 깊은 이해를 돕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구원과 창조주의 영광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점점 더 완전하게 실현될 것이다.

이에 관한 신학자들의 일치된 노력과 하느님 백성의 진정한 지도자인 교도권과의 확신에 찬 합심이 특별히 요청되는 이유는 이 문제에 관한 가톨릭의 가르침과 교회가 제시하는 인간관의 연관성이 밀접하기 때문이다. 결혼과 가정 분야에 대한 의심과 착오는 이미 혼돈되고 모순된 문화 상황에서 인간에 대한 통합적 진리를 심각할 정도로 흐릴 것이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은 자기들의 특수 임무 완수에 있어서 각성과 더욱 깊은 이해를 주선할 소명을 바았고, 그들의 기여 ㄴ 월등한 가치를 지니며 가정과 인류에 대한 매우 공적 높은 봉사이다.

인간과 소명의 통합적 안목

32. 인간적 성(性)의 참된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하거나 크게 잘못 해석하는 문화는 성과 인간의 본질적 관련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교회는 성이란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전인간의 중요한 임무라고 가르치는 자신의 독특한 사명이 더욱 절실히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안목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분명히 다음과 같이 확언하였다. "부부의 사랑과 생명 전달의 책임을 조화시키는 인간 행위의 윤리성은 의행의 순수성이나 동기 평가에만 달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 행위의 본성에 바탕을 둔 객관적 기준으로써 결정되어야 한다. 이 기군은 상호 헌신과 인류 번식의 온전한 의의를 참 사랑에 곁들여 보전하는 것이라야 한다. 이것은 부부로서의 정결을 지키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인간의 임무는 자연적이며 현세적인 것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이며 영원한 것에도 관계되는 것"이라는 안목에 출발점을 두고서 이렇게 선언하였다. 교회의 가르침은, "일치의 의의와 출산의 의의를 결부시키는 불가분의 연관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두 가지 의의는 모두 부부행위 속에 내표되어 있으며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므로 인가닝 고의로 이것을 파괴할 수는 없다." 그리고 교황은 결론적으로 "부부 행위에 선행하거나 동반하거나 그 필연적인 결과로서 피임을 목적하거나 방법을 강구하는 모든 행위는" 내재적 부도적 행위로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재삼 강조하였다.

부부가 산아 제한의 방법을 사용해서 창조주 하느님이 남자와 여자의 됨됨이와 성적 일치의 역동성에 박아주신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분리한다면, 그들은 하느님 계획에 대한 "조정자" 역할을 하고, "완전한" 자기 봉헌의 가치를 변조시킴으로써 인간의 성(性)과 더불어 자신들과 결혼 동반자를 "조작하며" 실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 상호간의 완전한 자기 봉헌을 표현하는 본래이 언어가 산아 제한이라는 객관적으로 모순된 언어, 즉 자신을 상대방에게 완전히 바치는 것을 거부하는 언어로써 덮어 씌워진다. 이것은 생명에 대한 개방성을 적극적으로 거부함과 아울러 인간 전체를 바치도록 되어있는 부부애의 내적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와는 달리, 부부가 불임 주거법을 사용해서 성행위가 가지는 일치와 출산의 의미 사이에 불가분적 연루를 존중한다면, 그들은 하느님 계획의 "집행자"(Ministers)의 역할을 수행하고, 조작이나 변조 없이 완전한 자기 봉헌의본래적 역동성에 따라 성에서 "혜택"을 받을 것이다.

수많은 부부의 경험과 다양한 인간 과학이 제공하는 자료에 비추어 신학적 사색을 통해서 출산 주기법과 산아 제한법 간의 인간학적 내지 도덕적 차이점을 파악하고 더욱 연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차이점은 보통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깊은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인간 인격과 인간의 성이란 두 개의 융화하기 어려운 개념에 관련된다. 자연적 주기의선택은 인간, 즉 여자의주기를 받아들이고 다라서 대화, 상호 존중, 책임의 나눔과 자제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주기를 받아들이고 대화하는 것은 부부 일치의 영신적 육체적 성격을 인정하는 것이고 충실의 요구대로 인격적 사랑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부는 부부 일치가 육체적 차원을 포함한 인간적 성의 내적 요체를 이루는 부드러움과 애정의 가치로써 풍요롭게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이 참되고 완전한 인간의 차원에서 존중되고 촉진되며, 결코 "대상"으로서 "이용"되지도 않을 것이고, 인간은 자연과 인간의 가장 깊은 상호 행위의 지평에서 하느님의 창조를 침해하면서 영혼과 육체의 인격적 일치를 파괴하지도 않을 것이다.

교회는 난관에 처한 부부들의 스승이요 어머니

33. 부부 도덕의 분야에서 교회는 스승이고 어머니이며 그렇게 처신하고 있다. 스승이기에, 교회는 생명의 책임있는 전달을 지도해야 하는 도덕 규범을 선포하는 데에 결코 지치지 않는다. 교회는 이 규범의 제정자나 조정자가 결코 아니다.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에 그 모습이 반영된 그리스도 자신인 진리에 순종하면서, 교회는 도덕 규범을 해석하고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 제시하며 그 철저하고도 완벽한 요구를 숨기지 않는다.

교회는 어머니이기에 도덕 생활의 이 중대한 문제와 관련해서 난관에 봉착한 수많은 결혼 부부들에게 가까이 서있다. 교회는 흔히 매우 고통스럽고 때때로 개인적이고사회적인 각종 난관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겪는 그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교회는 또한 수많은 부부들이 도덕 규범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나 나아가 규범의 내재적 가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유일하고 동일한 교회는 스승인 동시에 어머니이다. 그래서 교회는 끊임없이 어떠한 부부간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진리를 부정하거나 타협함이 없이 해결하라고 모든 이들을 부추기고 격려한다. 교회는 생명의 전달에 관한 하느님의 법과 진정한 부부애의 육성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구체적 교육은 언제나 교리와 일치해 있고 결코 교리에서 동떨어질 수는 없다. 본인의 선임자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본인은 "영혼들에게 대한 사랑의 최고 형태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가르침을 절대로 손상시키지 말라"고 반복하는 바이다.

다른 한편, 교회의 정통적 교육이 현실성과 예지를 보여주는 길은 도덕적 가치와 규범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모든 인간 조건들-심리적, 도덕적, 영신적 조건들-을 창조하고 유지하기 위해 끈질기고 용감한 노력을 하는 것뿐이다.

의심 없이 이런 조건에는 꾸준함과 인내, 겸손과 강한 마음, 하느님과 그 은혜에 대한 자녀다운 신뢰, 잦은 기도와 성체성사와 화해의 성사(고백성사)를 자주 받음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렇게 굳건해진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는, 혼인성사의은혜가 성생활을 포함한 결혼생활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인식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의 은혜는, 남편과 아내들이 받아들이고 응답하기만 하면, 그들을 도와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특유하고 결실 많은 사랑의 징표답게 인간의 성(性)을 살게 할 것이다.

그러나 필요한 조건에는 또한 육체와 육체의 출산 주기에 대한 지식도 포함된다. 따라서 결혼 부부, 의사,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명료하고 적시적이며 깊이있는 강의와 교육을 통해서 모든 결혼 부부와 결혼 전 청년들에게도 이런 지식이 전달되도록 모든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식은 자제(自制) 교육을 가져와야 하므로, 정결의 덕과 그것을 위한 계속적 교육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볼 때, 정결은 결코 인간의 성에 대한 배격이나 멸시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결은 이기심과 공격성의 위험에서 사랑을 보호하고 사랑의 완성을 촉진할 수 있는 영신적 힘을 의미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자신의 회칙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할 때에 수많은 결혼 부부의 체험을 깊은 예지와 사랑의 직관을 가지고 대변할 뿐이었다. "지성과 자유 의지의 힘으로 본능을 지배하는 데에는 부부생활에 고유한 사랑의 표현도 바른 질서에 알맞게 하려는 수덕이 필요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특히 일정한 기간 동안 절제를 지키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런 규율은 부부의 정결을 빛내는 것이며, 부부애를 해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부부애를 보다 높은 인간적 가치로 충만케 해준다. 이런 규율이 비록 항구한 노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러나 그 덕분에 부부의 인격이 풍부한 결과를 가져오며 또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규율은 또한 배우자끼리의 배려와 존경을 북돋아주고 참된 사랑의 원수인 이기주의를 몰아내며 사로의 책임감을 깊게 한다. 이로써 또한 부모는 자녀 교육에 깊고 효과적인 영향력의 권위를 마련한다."

결혼자들의 도덕적 진보

34. 도덕 질서와 그것의 가치와 규범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갖는다는 것은 언제나 매우 중요하다. 그것들을 존중하는 길에 놓인 난관이 더욱 많고 심각할수록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도덕 질서란 창조주 하느님의 계획을 드러내고 제시하는 것인 까닭에, 인간을 해치는 것, 비인격적인 어떤 것일 수는 없다. 반대로, 도덕 질서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가장 심층적 요구에 대응함으로써, 하느님이 모든 피조물을 행복을 향하여 고무하고 유지하며 기도하실 때 보여주시는 섬세하고 일치시키는 사랑을 동원하면서 인간의 완전한 인간성에 봉사하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예지와 사랑에서 나온 계획을 책임있게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인간은, 무수한 자유로운 결정을 통해서 자신을 매일매일 쌓아올리는 역사적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성장단계를 따라 도덕적 가치를 알게 되고 사랑하며 성취하는 것이다.

결혼한 사람들도 하느님의 계율이 간직하고 육성하는 가치들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얻으려는 성실하고 적극적인 소망을 유지하면서, 도덕 생활에 있어서 끝없이 진보할 소명을 받고 있다. 그들은 또한 이 가치들을 자신의 구체적 결정 안에서 구현하려는 꿋꿋하고 관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도덕률을 단지 미래에서나 성취될 이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난관을 간단 없이 극복하라는 주 그리스도의 명령이라고 간주해야 한다. "마치 하느님의 법에는 다양한 개인과 상활을 위해서 다양한 정도나 형태의 계율이 있기나 하듯이, '점진성의 법률'이라고 혹은 단계적 전진이라고 알려진 것을 '법률의 점진성'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는, 모든 남편과 아내가 결혼생활을 거룩하게 하도록 불린 것이고, 이 고상한 소명은 인간이 하느님의 은혜와 자신의 의지에 대한 참신한 신뢰심을 가지면서, 하느님의 계명에 응답하는 정도로 완수될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무엇보다도 먼저 회칙 「인간 생명」의 가르침을 성생활을 위한 규범으로 분명히 인정하고, 그것을 준수하는 데에 필요한 조건들을 구비하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도 같은 노선에 놓여 있는 것이다.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가 주목한 바와 같이, 이 가르침은 결혼생활 전반을 거론한다. 따라서 생명을 전달하는 기능은 십자가 없이 부활에 도달할 수 없는 교회생활의 전체 사명에 통합되어 야 한다. 희생은 가정생활에서 제거될 수 없는 것이고, 오히려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심화되고 친밀한 기쁨의 원천이 되려면 희생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은 이러한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부부 공동의 진보에는 가정 사목 활동에 전념하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의 연구와 훈련과 적절한 교육이 요청된다. 그들은 인간적 영성적 진보에 있어서, 죄의 인식, 도덕 규범에 대한 진정한 투신, 화해의 직무를 요청하는 진보에 있어서, 부부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마음에 간직할 것은 부부 친밀함에는 서로의 정신과 행동을 조화해야 하는 두 사람의 의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많은 인내, 이해, 시간을 요구한다. 이 방면에서는 사제들의 일치도니 도덕적 사목적 판단, 신자들이 양심의 불안으로 고통당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달성되어야 하는 사제들의 일치된 판단이 특히 중요하다.

만약 결혼 부부가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존경심과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또한 영혼의 목자들 교회 공동체 전체의 도움과 지지를 받으면서, 복음과 주님의 계명이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사랑은 우리를 해방시키고 고무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체험한다면, 그들의 진보는 더욱 용이할 것이다.

확신과 실천적 도움을 주는 것

35. 합법적 출산 조절 문제와 고나련해서, 오늘날의 교회 공동체는 부모로서의 삶을 책임있게 살고자 원하는 이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실천적 도움을 제공하는 임무를 이행해야 한다.

교회는 여자의 출산 주기에 대한 더욱 정확한 지식을 추구하는 과학 연구가 성취한 결과를 만족스럽게 보고, 연구의 더욱 과감하고 폭넓은 확대를 종용하는 한편, 모든 이의 책임, 즉 결혼자들을 도와서 사랑을 표현하는 부부 행위의 구조와 목적을 존중하면서 사랑을 살게 할 수 있는 의사, 전문가, 결혼 상담자, 교사, 결혼 부부들의 책임을 좀더 강하게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자연적 출산 주기의 방법이 알려지고, 존중되며 사용되도록 더욱 과감하고 조직적인 노력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합심해서 주기 절제법을 사용함으로써 사랑과 생명에 관한 좀더 성숙하고 책임있는 인격에 도달한 남편과 아내들이 매우 값진 증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이렇게 말씀하였다. "주께서 이런 임무를 부부들에게 맡기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 법의 신성성과 감미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도록 하시기 위해서이다. 하느님의 법은 부부의 협력과 함께 부부애를 인간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사랑과 밀접히 결합시킨다."
  | 05.29
448 40.4%
II. 생명에의 봉사

2. 교육

교육에 관한 부모의 권리와 의무

36. 교육시키는 임무는 하느님의 창조 활동에 참여할 결혼 부부의 일차적 소명에 뿌리를 박고 있다. 부모는 성장과 발전의 소명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새로운 인간을 사랑 안에서 낳음으로써, 그 인간이 완전한 인간생활을 효과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임무도 맡게 된다.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양친은 자녀에게 생명을 주었으니 자녀를 교육해야 하는 중대한 의무를 진다. 그러므로 양친은 자녀의 첫째이며 주되는 교육자로 인정되어야 한다. 교육의 이 의무는 이렇듯이 중대한 것이므로 그것이 결핍될 때 그것을 보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자녀의 개인적 사회적 전교육을 촉진할 수 있는 바 하느님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신심으로 찬 가정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양친의 의무이다. 따라서 가정은 모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회에 있어서의 제덕행을 가르치는 최초의 학교이다."

교육에 대한 부모의 권리와 의무는 인간 생명의 전달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본질적인 것이다. 부모의 교육 권리와 의무는 부모와 자녀 간의 특유한 사랑의 고나계 땜누에, 타인들의 교육 역할과 비교해 볼 때, 본래적이고 일차적이다. 그것은 대치되거나 양도될 수도 없는 것이므로, 타인이 완전히 위임받거나 빼앗을 수도 없다.

이러한 특성 외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부모의 교육 임무를 성격지우는 가장 기본적 요소는 부모의 사랑이라는 점이고, 이 사랑은 생명에 대한 봉사를 완수해 가는 교육의 임무 수행에서 완성을 발견하다는 점이다. 그와 더불어 부모의 사랑은 하나의 원천이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원리이기도 하며 따라서 모든 구체적 교육활동을 고무하고 지도하며, 사랑의 가장 소중한 열매인 친절, 항구함, 선함, 봉사, 공평, 자기 희생으로써 교육 활동을 풍요롭게 하는 규범이다.

인간 생명의 기본 가치 교육

37. 교육 활동의 다양한 어려움, 오늘날에는 더욱 커진 어려움 중에서도, 부모는 신뢰와 용기를 가지고 인간 생명의 본질적 가치에 관하여 자녀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어린이들은 물질적 재산에 얽매이지 않는 올바른 태도를 갖고, 단순하고 검소한 생활 양식을 취하며, "인간의 가치는 무엇을 가졌느냐에 있지 않고 어떤 인간이냐에 있다"는 충분한 확신을 가지고 성장해야 한다. 개인주의와 이기심의 극심한 충돌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으로 인해서 흔ㄷ르리고 갈라진 사회에 살아야 하는 어린이들은, 각 개인의 인격적 존엄성에 대한 존경심에로 이끌어가는 참된 정의감으로 무장되어야 할 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특히 가난하고 곤궁한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염려와 공평한 봉사와 통하는, 참된 사랑의 마음으로 단단히 채워져야 한다. 가정은 사회적 삶을 위한 첫 번째이고 기본적인 학교이다. 가정은 사랑의 공동체이기에 자신의 성장을 가져오고 지도하는 법칙을 자기 봉헌에서 찾는다. 남편과 아내 상호간의 사랑을 고무하는 자기 봉헌은 형제 자매의 관계와 가정에 함께 살고 있는 여러 세대 간의 관계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자기 봉헌의 본보기이고 규범인 것이다. 즐거울 때나 어려울 때나, 가정내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기도한 일치와 나눔은 사회의 넓은 지평에서 어린이들이 적극적이고 책임성 있으며 결실 있게 참여하기 위한 가장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이다.

사랑과 자기 봉헌에 대한 교육은 자녀에게 명확하고 섬세한 성 교육을 시켜야 하는 부모들이 빼버릴 수 없는 전제조건이다. 현대의 어린이는 인간의 성을 일상적인 것으로 끌어내리는 문화 안에 살고 있고, 이 문화는 인간의 성을 단지 육체와 이기적 쾌락에만 연관시키면서 축소되고 빈약한 양식으로 성을 해석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교육 활동은 성 문제에 있어서 진정으로 완전한 인격적 훈련을 꿋꿋하게 지향해야 한다. 성은 전체 인간을, 즉 육체와 감성과 영혼을 풍요하게 하며, 인간을 사랑의 선물로 만드는 데에서 그 가장 심오한 의미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성 교육은 부모의 기본 권리이고 의무이기 때문에, 집에서나 부모가 선택하고 통제하는 교육기관에서나, 언제나 그들의 주의 깊은 지도 하에서 실시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교회는 보조성의 법칙(the Law of Subsidiarity)을 재확인하는 바이고, 학교는 부모 안에서 생동하는 같은 정신을 가지고 성 교육에 협력할 때에, 이 법칙을 준수해야 한다.

이 맥락에서 정결 교육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정결은 인간의 진정한 성숙을 개발시키고 육체의 "결혼 의미"를 존중하고 육성하게 하는 미덕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부모는 하느님의 부르심의 징표를 식별하면서, 인간의 성이 의미하는 최상 형태의 자기 봉헌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동정 혹은 독신에 대한 교육에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쏟을 것이다. 인간의 성적 차원과 도덕적 가치관의 밀접한 관련성으로 보아서, 교육은 도덕 규범에 대한 지식과 존경심을 어린이에게 전수해야 한다. 도덕 규범은 인간의 성과 관련하여 책임있고 인격적 성숙을 달성하는 데에 필수적이고 가치있는 보장이라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도덕 원리와는 무관하게 성 지식을 널리 보급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한다. 이런 행동은 아직도 순진한 나이의 어린이들에게 단순히 죄악의 길을 열어주고, 침착성의 상실을 가져오는 쾌감과 충동의 체험에로 그들을 인도할 것이다.

교육의 사명과 혼인성사

38. 그리스도인 부모의 교육 사명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하느님의 창조 활동에의 참여에 뿌리 박고 있는 그 사명은 혼인성사에 새롭고도 특별한 원천을 두고 있다. 그리고 혼인성사는 자녀의 그리스도적 교육을 위해서 그들을 축성한다. 다시 말하면, 혼인성사는 아버지 하느님과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권위와 사랑에, 더 나아가 교회의 모성적 사랑에 참여하도록 부모들을 부르는 것이고, 인간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녀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 이 성사는 성령의 예지, 분별력, 용기와 기타 은혜들로 부모들을 풍요케 할 것이다.

혼인성사는 교회 성원을 육성하는 데에 봉사하면서 교회의 진정한 "일꾼"(Ministry)이 되는 위엄과 소명을 교육적 역할에 부여한다. 그리스도인 부모의 교육 임무는 위대하고 훌륭한 것이기 때문에 성 토마스는 그것을 사제의 직무와 비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영신적 직무를 통해서 단지 영신적 생명을 낳고 보호하는데, 이것은 신품성사의 역할이다. 다른 이들은 영신적 생명과 육체적 생명을 둘 다 낳고 보호하는데, 이것은 자손을 낳고 하느님을 예배하도록 그들을 기르기 위해서 남자와 여자를 결합시키는 혼인성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혼인성사를 통해서 받은 사명에 대하여 생생하고 주의 깊은 인식을 유지하면,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깊은 침착성과 진실성을 가지고 또한 그들을 부르시어 자녀들 안에다 교회를 건설하는 사명을 주시는 하느님 앞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자녀 교육에 봉사하는 일에서 도움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세례받은 사람들의 경우에 가정 교회가 되도록 말씀과 성사로써 부름을 받은 가정은 세계 교회와 마찬가지로 스승인 동시에 어머니이다.

교회의 첫경험

39. 교육의 사명이 요청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부모가,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관점에서 보아, 성격의 점진적 성숙에 필요한 모든 주제들을 자녀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위에서 언급된 교육 노선을 따르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신앙과 사랑을 보여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느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 성령의 궁전, 교회의 성원의 성장을 주님이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의식한다면,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의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은혜를 강화하는 임무에 있어서 힘을 얻을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적 교육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이 그리스도교적 교육은 인간의 완성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주로 다음과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 즉 성세를 받은 사람이 차차 구원의 신비를 인식하도록 인도되면서 받은 신앙의 은혜를 나날이 더 잘 의식하게 한다. 특히 전례 행위에 있어서 영과 진리로써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예배하는 것을(요한 4,23 참조) 배우는 것과 자기 생활을 정의와 참된 성덕 안에 조성된 새로운 인간을 따라(에페 4,22-24) 형성하게 한다. 이렇게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여 (에페 4,13 참조) 완전한 인간이 되며, 신비체의 발전에 진력하며, 더욱이 자기의 소명을 자각하여 그들 안에 있는 희망(1베드 3,15 참조)을 증거하고 동시에 세상의 그리스도적 변화를 돕는 데 익숙되게 한다."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는, 공의회의 정신을 받아 발전시키면서, 그리스도인 가정의 교육 사명을 진정한 직무라고 보았고, 그 직무를 통해서 복음이 전달되고 빛을 발산하게 되며, 가정생활은 그 자체로 신앙의 여정(旅程),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적 입문 교육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학교가 된다고 보았다.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씀대로, 이런 은혜를 의식하는 가정에서는 "모든 가족이 복음 선교를 하는 것이고 동시에 복음화되고 있는 것이다."

부모는 교육 직무의 이행과 생활의 증언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복음의 첫 번째 전달자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과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하느님의 말씀을 읽으며, 그리스도적 입문을 통해서 자녀들을 그리스도의 몸-성체와 교회- 속으로 깊숙이 인도함으로써, 부모들은 육체적 생명뿐 아니라 성령의 쇄신을 통해서 십자가와 부활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출산자가 된다는 의미에서 완전한 부모가 된다.

그리스도인 부모가 교육 임무를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주교들은 적절한 가정 교리서, 분명하고 간결하며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가정 교리서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표시하였다. 이 교리서의 저작에 각국의 주교회의가 기여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다른 교육자와의 관계

40. 가정은 첫 번째 교육 공동체이지만 유일하거나 배타적인 교육 공동체는 아니다. 인간의 공동체 측면은-사회적 내지 교회적- 다양한 교육자들 간의 잘 정돈된 협력에서 연유하는 광범위하고 더욱 계획된 활동을 요청한다. 이 교육자들은 모두 필요하지만, 각자는 자기의 특순한 능력과 그 고유한 기여에 따라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가정의 교육 역할은 유기적 사목 활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부모와 그리스도인 공동체 사이와 각종 교육기관과 사목자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런 뜻에서, 가톨릭 학교를 재정비할 때는, 학부형과 완전한 교육 공동체의 형성에 특별한 배려를 해야 한다. 종교적 신앙에 맞추어 교육을 선택할 부모의 권리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국가와 교회는 가정에 모든 도움을 제공하여 가정이 교육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도울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교회와 국가는 가정이 정당하게 요청하는 기구과 활동을 창조하고 육성해야 하며, 도움은 가정의 요구에 비례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 운영의 책임을 진 인사들은 부모가 하느님의 임명을 받은 자녀의 첫 번째이고 주된 교육자이며 그 권리는 결코 이양될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부모는 자기들의 권리에 상응하게, 교사들과 학교 당국자들과 진심에서 나오는 적극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완전히 투신할 중대한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적 신앙과 반대되는 이데올로기가 학교에서 가르쳐진다면, 가정은 가능하면 가정 단체들을 통하여 다른 가정들과 합세하고, 능력과 예지를 총동원해서 젊은이가 신앙을 상실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이런 경우에, 가정에는 영혼의 사목자의 특별한 원조가 필요할 것이고, 사목자는 자녀를 교회 공동체에 맡길 불가침의 권리가 부모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생명을 위한 다양한 봉사

41. 결실 많은 부부의 사랑은 여러 가지 양식으로 생명에 봉사하면서 표현된다. 그 양식 중에서 자녀의 출산과 교육은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며 특유한 양식이다. 사실 인간을 위한 모든 참된 사랑의 행위는 가정의 영신적 출산력을 증언하고 완성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자신을 바치는 행위인 사랑의 심층적 역동성에 순종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망은 누구에게나 충만한 가치와 투신을 지니는 것이고, 특히 육체적 불임증으로 고민하는 부부에게 하나의 고무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 가정이 신앙적 차원에서 모든 인간은 동일한 천상 아버지의 자녀라고 인정한다면, 다른 가정의 자녀들에게도 관대하게 대해주고, 외부인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 구성된 한 가정의 성원으로서 지지해주며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부모는 혈육의 유대를 초월해서 사랑을 실천하고, 정신에 뿌리박은 결속을 다져가며, 흔히 최소한의 필수품도 갖지 못한 다른 가정의 자녀를 위한 구체적인 봉사를 통해서 발전적인 유대를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부모를 잃었거나 부모의 버림을 받은 어린이들을 양자로 받아들일 자세를 더욱 쉽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어린이들은 한 가정의 따뜻한 애정을 다시 발견하고, 그리스도인 부모가 증거하는 하느님의 사랑과 배려로 가득찬 부성을 체험할 것이며, 생활에 대한 침착성과 심뢰심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가정 전체가 넓어진 형제애의 영신적 가치로 인해서 풍요로와질 것이다.

가정의 출산력은 하느님 성령의 신기한 결실인 끝없는 "창조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은 마음의 문을 열어 사회의 새로운 요구와 고통을 발견하게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응답할 용기도 건네준다. 아주 넓은 활동 분야가 가정에 열려있다. 오늘날 유아 유기보다도 더욱 시급한 문제는 노인, 환자, 불구자, 약물 중독자, 출감자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문화적 격리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인 가정의 어버이로서의 지평을 굉장하게 확대한다. 이러한 문제들과 우리 시대의 다른 많은 긴급한 요구는 그리스도인 가정의 정신적으로 풍부한 사랑에 대하여 도전이 되고 있다. 주님은 그 가정들과 함께 그리고 가정을 통해서 무수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동정을 표시한다.
  | 05.29
448 40.4%
III. 사회 발전에의 참여

가정은 사회의 기본적 활력 세포

42. "만물의 창조주께서 결혼생활을 인간 사회의 원천과 기초로 삼으셨기" 때문에, 가정은 "사회의 활력있는 기초적 세포이다."

가정은 사회의 기초이며 생명에 봉사하는 역할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사회를 육성하기 때문에, 사회와는 활력적이며 유기적인 연관성을 맺고 있다. 사회인은 가정을 통해서 출생할 뿐 아니라 가정 안에서 사회 자체의 존재와 발전의 활성 원리가 되는 사회적 미덕의 첫 번째 학교를 발견한다. 따라서 가정은, 자신 안에 폐쇄되어 있기는 고사하고, 본성과 소명에 의해서 다른 가정과 사회에 대하여 개방되어 있고 사회적 역할을 담당한다.

정생활은 일치와 나눔의 체험

43. 바로 일치와 나눔의 체험은 가정의 일상생활을 성격지어야 하고 사회에 대한 가정의 일차적이고 기본적인 기여를 대표한다.

가정공동체의 성원들 사이의 관계는 "거저 줌"의 법칙을 따른다. 이 거저 줌(Free Giving)은 각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가치의 유일한 기반으로서 존중하고 육성할 뿐 아니라, 진심으로 받아들임, 만남과 대화, 이해를 따지지 않는 협조자세, 관대한 봉사, 깊은 유대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내 성원들 간의 진정하고 성숙한 일치를 육성하는 것은 사회생활의 기본적이며 특수한 교육이고, 정의, 존경, 대화, 사랑으로 특징지어진 보다 넓은 공동체 관계를 위해서도 본보기와 자극이 된다.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주교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가정은 사회를 인간화하고 인격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고 원초적인 장소이다. 가정은 특히 미덕과 가치를 보호하고 전수함으로써 인생을 진정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세계 건설에 창조적 기여를 하는 것이다.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가 주장하였듯이, "가정은 여러 세대가 모여 보다 깊은 예지를 얻고 개인의 권리를 사회생활의 다른 요청과 조화시키기 위하여 서로 협력하는 곳이다."

따라서 가정은 점점 더 비인격적이고 규격화되고 비인간적인 사회, 그리고 많은 부정적 형태의 도피주의를-알콜 중독, 약물 중독, 폭력주의 등- 산출함으로써 비인간화시키는 사회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은 아직도 인간을 비정상에서 이끌어내는 거대한 힘을 소유하며 방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의식하게 하고, 깊은 인간성으로써 인간을 풍요롭게 하며 독특한 방법으로 인간을 사회의 조직 안에 안치시키고 있다.

사회적 정치적 역할

44. 출산과 교육은 가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초적이고 특유한 표현 양식이지만 그것에서 끝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가정은 단독으로나 다른 가정과 연합해서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에, 특히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나 정부의 복지 조직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사람들의 처지와 안녕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고 헌신해야 한다. 가정의 사회적 기여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는 것이며, 자녀들이 성장하고 되도록 많은 성원들이 관여함에 따라서 더욱 확실한 인정과 더욱 뚜렷한 장려를 받아야 한다.

자기 집의 문을 열어놓는 것과 형제 자매의 애원에 대하여 마음을 여는 것에서부터 모든 가정이 보존되고 성장하는 데에 필요한 자연적 환경이라고 보이는 집을 소유하도록 하는 구체적 노력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친절 행위의 ㅈ우요성에 대하여 더욱 큰 주목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특히 "나그네를 후히 대접하십시오"라는 사도의 권고를 경청할 소명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고 그의 사랑에 참여하면서 곤궁에 처한 형제 자매를 환대할 소명도 받고 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보잘 것 없는 사람 중 하나에게 그가 내 제자라고하여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그 상을 받을 것이다."

가정의 사회적 역할은 정치적 개입에서도 표현될 수 있다. 가정들은 국가의 법률과 제도가 가정의 권리와 의무를 침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옹호하는지 감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데에 있어서 첫째여야 한다. 이 방면에서 가정들은 "가정 정치"라는 것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더욱 의식하고, 사회 개혁에 있어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은 무관심하게 관망하기만 해온 죄악의 첫째 희생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주의적 윤리를 탈피하라는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의 호소가 가정을 위해서도 역시 적합한 것이다.

가정에 봉사하는 사회

45. 가정과 사회의 밀접한 관계가 가정이 사회에 개방되어 있고 사회 발전에 참여하기를 요청하듯이, 그 같은 관계는 사회가 가정을 존중하고 육성하는 기본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가정과 사회는 개개인과 모든 인간의 선익을 옹호하고 육성하는 데에 있어서 보완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는, 좀더 구체적으로 국가는, "가정이 고유의 원천적 권리를 가지는 사회"임을 인정해야 하며, 그래서 사회는 가정과의 관계에 있어서 보조성의 원리를 준수할 중대한 임무를 지닌다.

이 원리가 요청하기 때문에, 국가는 가정이 단독으로나 다른 가정들과 연합해서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을 가정에게서 빼앗을 수는 없다. 대신에 국가는 가정의 책임있는 창의를 가능한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장려해야 한다. 공권력은 가정의 선익이 시민 공동체의 불가결하고 본질적인 가치라는 확신을 가지고서, 가정이 자신의 모든 책임을 인간적 양식으로 완수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보조-경제적, 사회적, 교육적, 정치적, 문화적 보조-를 가질 수 있도록 온갖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가정 권리 헌장

46. 가정과 사회 사이의 상호 지지와 개발에 대한 이상(理想)이 현실적인 분열과 반대와 심각하게 충돌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가 수차 단죄하였듯이, 여러 나라에서 무수한 가정이 체험하는 상황이 전적으로 부정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제도와 법률은 가정과 인간의 권리를 부당하게 무시하고 있다. 사회는 가정에 봉사하기는 고사하고, 가정의 가치와 기본 요구를 격렬하게 공격하고 있다. 따라서 가정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사회의 기본 세포이고 국가나 기타 다른 공동체보다 우선하는 권리와 의무의 주체이면서도 사회의 희생물, 자연과 지체의 희생물, 더 나아가서는 현저한 불의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사회와 국가의 참기 어려운 침해 행위에 대항하여 가정의 권리를 공개적으로 강력히 옹호하는 바이다. 특히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주교들은 다음과 같은 가정의 권리를 지적하였다.

- 가정의 존재 권리와 발전 권리, 즉 모든 인간은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가정을 건설하고 생계 유지에 적적한 수단을 소유할 권리.

- 생명의 전달과 자녀 교육에 관한 책임을 이행할 권리.

- 친밀한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의 권리.

- 안정된 유대와 가족 제도의 권리.

- 각자의 신앙을 가지며 전파할 권리.

- 필요한 도구, 수단, 제도의 도음을 받으며, 가정의 전통과 종교적 문화적 가치에 따라 자녀를 양육할 권리.

- 가난하고 병든 자가 육체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얻을 권리.

- 적당한 가정생활에 필요한 주택의 권리.

-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공권력자와 하급 권력자 앞에서 단독으로나 연합해서 표현하고 대표할 권리.

- 가정의 역할을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다른 가정이나 집단과 연합체를 형성할 권리.

- 적절한 기구와 법률의 보조를 받으며 마약, 도색물, 알콜 중독에서 미성년자를 보호할 권리.

- 가정의 가치를 육성하는 데에 적합한 오락 시설에 대한 권리.

- 노인이 가치있는 삶과 죽음을 가질 권리.

- 더욱 윤택한 생활을 찾아 이주할 권리.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분명한 요청을 받아들여, 교황청은 이와 같은 제안을 깊이 연구하고, 가정 권리 헌장(Charter of Rights of the Family)을 준비하여 관심있는 인사들과 당국자들에게 제시할 목적으로 신속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은혜와 책임

47. 모든 가정이 가지는 사회적 역할은 혼인성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그리스도인 가정에도 새롭고 본래적 권리로써 부여된다. 혼인성사는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지니는 인간적 현실과 그것에 따르는 함축적 의미를 고려하면서, 평신도인 그리스도인 부부와 부모에게 자신들의 소명대로 살아갈 힘과 투신을 부여하고, 동시에 현세적 업무에 종사하며 그 업무를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할" 힘과 투신도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 부부가 혼인성사로 말미암아 참여하게 되는 봉사 사명에는 사회적, 정치적 역할도 포함되는 것이고, 그들은 무시할 수 없는 명령과 아울러 지지와 자극을 제공하는 은혜도 받는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가정은 가난한 자와 천대 받는 자들을 "우선적으로 선호함으로써" 사회 문제에 대한 관대하고 공평한 헌신을 증거할 소명도 받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가정은 모든 가난한 자를 특별히 사랑함으로써 주님을 따르는 데에 매진하고, 배고픈 자, 가난한 자, 노인, 병든 자, 마약 희생자, 가정 없는 자들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새로운 국제 질서

48. 오늘날 각종 사회 문제의 세계적 차원을 고려하면, 사회 발전에 관한 가정의 역할은 전례 없이 확대된다고 보인다. 세계적 결속을 통해서만 세계정의, 민족의 자유, 인류의 평화와 같은 거대하고 극적인 쟁점들이 다루어지고 해결될 수 있을 것이므로, 새로운 국제 질서를 위한 협력도 가정의 역할에 속한다.

그리스도인 가정들 간의 영신적 일치는 공동 신앙과 희망에 뿌리를 내리고 사랑에서 생명을 얻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에 정의, 화해, 형제애, 평화 등을 생산하고 확장하며 발전시키기 위한 내재적 원동력이 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소규모의 교회"인 이상, "대규모의 교회"와 마찬가지로 세계적 일치의 징표가 되고, 전세계가 목표로 삼고 전진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나라와 평화를 증거함으로써 예언적 역할을 수행할 소명도 받고 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교육 활동을 통해서, 즉 진리, 자유, 정의, 사랑 등의 가치에 바탕을 둔 생활 모형을 자녀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역할을 할 수 있고, 또한 사회와 제도들의 진정한 성ㅈ아에 적극적으로 책임있게 관여함으로써, 국제 문제에 특별히 몰두하는 협의체를 다방면으로 지원함으로써 그 같은 역할을 이행하는 것이다.
  | 05.29
448 40.4%
IV. 교회의 삶과 사명에 참여

교회의 신비 안에서의 가정

49. 교회적 임무도 그리스도인 가정의 기본 임무 중의 하나이다. 가정은 교회의 삶과 사명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봉사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참여의 기초, 내용, 특성을 좀더 잘 인식하자면, 교회와 그리스도인 가정을 연결하고, 가정을 "소규모의 교회"(가정 교회)로 설정하는 여러 가지 깊은 유대를 고찰해야 한다. 이 유대로 인해서 가정은 독특한 방법으로 교회의 신비의 산 모상이요 역사적 표현이 된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로서의 교회는 주님에게서 받은 구원의 사명을 실천하면서 그리스도인 가정을 출생시키고 교육하며 키워간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그리스도인 가정의 참된 정체를, 즉 주님의 계획 안에서 가정운 무엇이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밝혀준다. 교회는 성사의 집행을 통해서 그리스도인 가정을 그리스도의 은혜로써 풍요롭게 하며 보강하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성화시킨다. 교회는 사랑의 새계명을 꾸준히 선포함으로써 사랑에 봉사하도록 장려하고 그리스도인 가정을 지도하며, 주 예수님이 전인류에 대하여 가지셨던 자기 봉헌과 희생적 사랑을 본받고 실천하게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 나름대로 교회의 고유한 구원의 사명에 참여하는 만큼 교회의 신비에 접목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부부와 부모는 성사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서 그들의 신분과 역할에 고유한 은혜를 받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구원받은 공동체가 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녀들에게 전달하며 구원하는 공동체가 될 소명도 갖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은 교회가 지닌 초자연적 출산력의 결실이요 징표가 되는 동시에, 교회의 모성의 상징, 증인, 참여자도 되는 것이다.

특수하고 독창적인 교회 역할

50. 그리스도인 가정은 독창적이고 특수한 양식으로 교회의 사명에 적극적이며 책임있게 참여할 소명과 아울러,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로서의 됨됨이와 기능을 활용하며 교회와 사회에 봉사할 소명을 받고 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 내부의 관계를 그리스도가 신앙과 성사를 통해서 활성화시키는 공동체인 까닭에, 가정이 교회의 사명에 참여하는 양식은 공동체의 유형(Community Pattern)을 따를 필요가 있다. 부부인 배우자들과 가정을 이루는 부모와 자녀는 함께 교회와 세계에 봉사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활력을 주는 사도적 열성을 나눔으로써 또한 교회와 시민 공동체에 대한 봉사에 공동으로 투신함으로써 신앙 안에 "한 마음과 한 뜻"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외에도 자신의 생활 상태에 관련되고 특징지우는 매일의 행실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를 역사 안에 건설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예언적, 사제적, 왕적 사명에 대한 그리스도인 가정의 참여는 남편과 아내의 사랑과 가정 성원들 간의 사랑-전체성, 일치성, 충실성, 결실과 같은 비범한 가치와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실천된 사랑- 안에서만 비로소 표현되고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인 가정이 갖는 구원 사명의 핵심은 사랑과 생명인 것이다.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의 진술에서 이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가정들은 사로 영적 보화를 후히 나눔이 마땅하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으로 맺어진 계약을 표상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혼인성사로 이루어졌으므로, 부부애와 풍부한 자녀 번성과 단합과 충실로써뿐 아니라 가족 전원의 사랑의 협력으로써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세상에 현존시켜 드리며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줄 것이다."

교회의 사명에 대한 그리스도인 가정의 참여의 기초를 다졌으니, 이제 할 일은 예언자, 사제, 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한 가지 실재의 세가지 측면-와 관련지으며 참여의 내용을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가정이 1) 믿고 복음 선포하는 공동체, 2) 하느님과 대화하는 공동체, 3) 인간에게 봉사하는 공동체라는 점을 제시함으로써 가능해진다.

1. 그리스도인 가정은 믿고 복음 선포하는 공동체

신앙은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의식하는 것

51. 그리스도인 가정은 하느님의 말씀을 존경스럽게 듣고 그것을 자신있게 선포하는 교회의 삶과 사명에의 참여자이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환영하며 선포함으로써 자신의 예언적 역할을 완수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정은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점점 더 믿고 복음 선포하는 공동체로 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부부와 부모는 "신앙에 순종"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 친히 성스럽게 하였고 성덕의 원천으로 만든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에 대한 기묘한 소식을 그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주님의 말씀을 즐거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신앙 안에서만 하느님이 결혼과 가정을 끌어올리려고 하셨던 그 위엄을 발견하고 기쁨에 찬 감사의 정으로 경탄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들을 하느님과 인간 사이와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신부(新婦)인 교회 사이에 맺어진 사랑의 계약의 징표이고 접촉점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결혼을 위한 준비 자체가 일종의 신앙 여정이다. 그것은 약혼자들이 세례에서 받은 신앙과 그리스도적 교육으로 육성된 신앙을 다시 발견하고 심화하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결혼한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며 하느님 나라에 봉사할 소명을 인정하고 자의로 수락하게 된다.

혼인성사를 받는 시간은 부부의 신앙의 기본적 시점이다. 이 성사는 본질에 있어서 부부 사랑에 관한 기쁜 소식을 교회 안에서 선포하는 것이다. 결혼 부부에 대한 하느님의 지혜로운 계획을 드러내고 오나성할 뿐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에게 대하여 품으셨던 그 사랑에 부부들이 신비스러우나 진정한 몫을 차지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혼인성사의 집행 그 자체가 하느님 말씀의 선포인 까닭에,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혼인성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믿는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와 함께 한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한다.

이 신앙 고백은 결혼 부부와 가정의 생애를 통해서 지속될 필요가 있다. 부부를 결혼에로 불러들인 하느님은 그들이 계속 결혼 안에 머물도록 부르신다. 매일매일의 사건, 문제, 어려움, 상황을 통해서 하느님은 그들에게 접근하시고, 그들이 놓인 특수한 가정, 사회적 교회적 상황에서도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참여하라는 구체적 요청을 하시는 것이다.

부부와 가정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시는 남편과 아내의 사랑과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을 인간적으로 체험하면서, "함께" 하느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런고로 대규모의 교회와 마찬가지로, 소규모의 가정 교회는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복음화되어야 하고 신앙 교육에 관한 가정의 의무는 끝이 없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복음화 직무

52. 그리스도인 가정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 안에서 성숙하는 만큼 복음화하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씀을 다시 들어보자. "가정은 교회처럼 복음이 전달되는 곳이요 거기서 복음이 빛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명을 의식하고 있는 가정에 있어서는 모든 가족이 복음 선교를 하는 것이고 동시에 복음화되고 있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고 그 생활의 체험을 통해서 자녀들로부터 복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가정은 다른 많은 가정과 이웃에게 복음 선교자가 되는 것이다."

본인이 푸에블라(Puebla)에서 부르짖은 호소를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가 반복하였듯이, 복음화의 장래는 대체로 가정 교회에 달려있다. 가정은 이 사도적 사명을 세례성사에서 처음 받고, 혼인성사의 은혜에서는 신앙을 전달하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서 사회를 성화하며 변형하기 위한 새로운 활력을 받는다.

특히 오늘날에는, 그리스도인 가정이 그리스도의 빠스카 계약을 증거하고, 그것에 대하여 결산서를 제출해야 하는, 사랑의 기쁨과 확실한 희망을 꾸준히 방출할 특수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하느님 나라가 현재에 가지고 잇는 힘분 아니라 행복한 미래 생명에 대한 희망까지를 소리 높이 선포한다."

몇몇 지역에서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어떤 불행한 상황 하에서는 가정 교리서의 절대적 필요성이 특별히 표출되고 있다. "반종교적 법률이 심지어 신앙교육까지 금지하고 있는 지역에서나, 불신앙이 널리 퍼지고 세속주의가 깊이 침투하여 종교적 성숙이 사실상 불가능한 지역에서는, '가정 교회'야말로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본격적인 교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교회적 봉사

53. 그리스도인 부모가 이행하는 복음화의 직무는 본래적인 것이라 대치될 수 없다. 그것은 사랑, 순박함, 실천성, 매일매일의 증거와 섞여져야 하는 가정생활의 전형적 특성의 일부이다.

가정은 자녀 각자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소명에 따라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자녀들에게 생활 교육을 시켜야 한다. 초월적 가치에 대하여 개방되어 있고, 형제 자매에게 기쁘게 봉사하며, 자신의 의무를 가장 충실하게 완수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신비에 매일매일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가정이야말로, 진정 하느님 나라에 봉헌된 생활을 위한 성소의 일차적이고 가장 훌륭한 못자리가 된다.

복음화와 교리교육에 대한 부모의 직무는 자녀들의 생애 중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바와 같이 자녀들이 유년기에 받은 그리스도적 신앙에 도전하거나 나아가 배척하는 청소년기에도 수행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복음화의 활동은 사도의 수난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에 대한 복음화의 직무를 수행하다가 가끔 만나게 되는 어려움을 용기와 지대한 내적 침착성을 가지고 처리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 부부와 부모가 복음을 위해서 바치는 봉사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교회적 봉사라는 점이다. 가정은 전체 교회의 맥락 안에서 복음화되고 복음화하는 공동체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정 교회의 교리교육과 복음화의 직무가 교회의 사명에 뿌리를 박고 있고 그것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가정은 교구와 본당 차원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타 모든 복음화 활동이나 교리교육 활동들과 협력하고 긴밀한 일치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전인류에게 복음을 전함

54. 억누를 수 없는 선교열의 자극을 받은 복음화는 국경을 모르는 보편성의 특성을 가질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하여라"라는 그리스도의 분명하고 의미가 확실한 명령에 응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신앙과 복음화 사명도 역시 이러한 보편적 선교를 고무한다. 혼인성사는 신앙을 옹호하고 전파하는 임무, 세례와 견진성사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임무를 들어올리어 다시 부과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부부와 부모를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며 동시에 참된 의미에서 사랑과 생명의 선교사로 만들고 있다.

가정 안에서도 한 가지 형태의 선교활동을 할 수 있다. 이것은 가정의 어떤 식구가 신앙이 없든지 혹은 줄기차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을 경우에 가능하다. 이런 경우에, 다른 가족들은 그에게 신앙의 산 증거를 보여주어,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그를 이끌고 지지해 주어야 한다.

선교의 열성이 그 내적 생활에 활기를 넣기만 하면, 가정 교회는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나, 아직도 믿지 않는 가정들에게, 전에 받아들인 신앙을 더 이상 실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가정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현존과 그의 사랑에 빛나는 징표가 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진리를 찾는 이들을 모범과 증거로써" 비추어 줄 소명을 받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여명기에 아퀼라(Aquila)와 부리스킬라(Priscilla)가 선교사 부부로 나타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생애의 일부를 선교 지역에서 활동하는 데에 바치고 복음을 선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동료에게 봉사하는 그리스도인 가정과 부붇르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언제나 새롭게 보이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아들과 딸들에게서 선교사 성소를 육성하고, 좀더 넓게는 "자녀들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교육함으로써" 교회의 선교 임무에 특별하게 기여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인 가정은 하느님과 대화하는 공동체

집안에 있는 교회의 지성소(至聖所)

55. 신앙심을 가지고 복음을 선포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성사를 받는 데에서 완성된다. 믿고 복음화하는 공동체인 교회는 품위를 가지며,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위력에 참여하는 사제적 백성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교회라고 하는 이 사제적 백성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것에 뿌리를 박고 있고 그것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는 혼인성사를 받음으로써, 주 예수님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활성화되고, 성사와 생활의 봉헌을 통해서, 그리고 기도생활을 통해서 하느님과 대화할 소명도 받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가정이, 전체 교회와 긴밀한 일치를 유지하는 가운데, 매일매일의 결혼생활과 가정생활의 현실을 통해서 수행해야 하는 사제적 역할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인 가정은 스스로 성화될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세계를 성화할 것이다.

결혼은 상호 성화의 성사이고 예배 행위

56. 혼인성사는 그리스도인 부부와 기능을 위해서는 성화의 특수 원천이며 본래의 수단이다. 이 성사는 세례의 성화 은총을 끌어올리어 특수한 것으로 만든다. 부부가 결혼함으로써 새로이 참여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는 부부 사랑을 순수하고 성스럽게 만든다. "주께서는 이 사랑을 당신 은총과 특별한 은혜로 고쳐주시고 완성하시고 높여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은 혼인성사의 집행 중에 탕진되는 것이 아니라, 전생애에 걸쳐 결혼 부부를 동반하는 것이다.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에 이 사실을 명백히 들추어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과 함께 계시며 당신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부부도 역시 서로의 애정과 변치 않는 충실로 서로 사랑하도록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부부는 그 신분의 의무와 존엄성을 위하여 특수한 성사로 견고케 되는 것이니, 말하자면 축성되는 것이다. 이 성사의 힘으로 그리스도인 부부는 혼인과 가정의 임무를 수행하며 그들의 전생애를 믿음, 희망, 사랑으로 채워주는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날로 더욱 자기 완성과 상호 성화에 전진함으로써 공동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된다."

누구에게나 부여된 성덕으로의 부름은 그리스도인 부부와 부모에게도 해당한다. 그들에 관해서라면, 이 부름은 그들이 받은 혼인성사로써 구체화되고,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의 현실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이 부름은 진정하고 심오한 부부와 가정의 영성에 대한 은총과 요구를 불러 일으킨다. 이 영성은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가 수차에 걸쳐 강조하였던 창조, 계약, 십자가, 부활, 징표 등과 같은 주제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다른 여러 성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성화와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 또한 하느님께 대한 흠숭을 목적으로 하며," 동시에 그 자체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전례 행위이다. 그리스도인 부부는 혼인성사를 받으면서 자기들에게 주어진 고귀한 은혜에 대하여 하느님께 사례를 표시하는 것이고, 그 은혜는 그들이 결혼생활과 가정생활 안에서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신부인 교회에 대한 주 예수님의 사랑을 살 수 있게 한다.

남편과 아내가 자기들에게 내려진 성덕을 매일의 삶에로 옮기는 은헤와 책임을 혼인성사에서 받는 한편, 이 성사는 생활 전체를 "영신적 희생"으로 바꾸어 놓는 은혜와 도덕적 의무를 그에게 부과한다. 공의회가 평신도에 관하여 말한 것은 역시, 특히 그들의 생활을 특징지우는 현세적이고 속세적 사물에 관하여, 그리스도인 부부와 부모에게 적용된다. "평신도들은 이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결혼과 성체

57. 그리스도인 가정의 성화 역할은 세례성사에 그 기반을 두고, 그리스도인의 혼인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성체성사에서 최상의 표현을 발견한다.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가 "일반적으로 혼인성사는 미사 중에 집전되어야 한다"고 요청하면서 성체와 결혼 사이의 특유한 관계에 주목하였다. 그리스도인 결혼과 가정생활의 은총과 책임을 더욱 잘 이해하고 더욱 집중적으로 살자면, 이 관계를 재발견하고 강화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성체는 그리스도인 결혼의 원천이다. 성체성사는 사실, 십자가 위에서 그분의 피로 낙인 직인찍힌, 교회와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약을 대표한다. 이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제물에서, 그리스도인 부부는 자신들의 결혼 계약이 흘러나오고 그 계약을 내적으로 조직하고 계속해서 새롭게 하는 근원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교회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는 것처럼, 성체는 사랑의 샘이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사랑의 선물인 성체에서 자신의 "일치"와 "사명"의 기초와 아울러 영혼을 발견한다. 가정의 여러 식구들은 성체성사를 나누어 먹음으로써 한 몸이 되고, 교회의 보다 넓은 일치에 참여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주어진" 그리스도의 몸과 "흘려진" 그분의 피를 나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 가정에게는 선교적이고 사도적 원동력의 끝없는 원친이 된다.

회개와 화해의 성사

58. 그리스도인 가정이 지니는 성화 역할의 본질적이고 변함없는 한 부분은 회개하라는 부름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고, 복음은 그들을 "성자"로 만들어주는 세례의 "참신함"에 늘 충실하지 못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데게 회개를 요청하고 있다. 그리스도인 가정도 때때로 혼인성사에서 갱신되고, 세례성사가 요청하는 은혜와 거룩함에 있어 불충실하게 된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품안에서 일상생활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 참회와 서로의 용서는 그리스도적 화해의 성사에서 특별한 표현을 만나는 것이다. 회칙「인간 생명」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결혼 부부에 관하여 이렇게 말슴하셨다. "만일 아직 죄의 멍에를 벗어버리지 못했다면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겸손되이 또 항구히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은 고백성사를 통하여 당신 자비를 풍부히 베푸시는 것이다."

화해의 성서를 받는 것은 가정생활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들은 죄라는 것이 하느님과의 계약뿐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계약과 가정의 일치에도 반대된다는 것을 신앙 안에서 발견하는 동시에, 결혼 부부와 가정의 다른 가족들도 "무한히 자비로우시고" 죄악보다 더욱 강한 사랑을 그들에게 주시며, 결혼의 계약과 가정의 일치를 재조직하고 완성하시는 하느님과 만나게 될 것이다.

가정 기도

59. 교회는 그리스도인 가정을 위해서 기도드리고,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사제적 은혜와 역할에 부합하게 생활하도록 가정을 교육시킨다. 결국, 세례성사에서 나오고 혼인성사에서 수행되는 신자의 사제직은, 부부와 가정이 가지는 사제적소명과 사명의 기초가 되는 것이며, 그들의 그 소명으로 말미암아 매일의 삶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로 변형된다. 성체성사와 다른 성서를 받고 하느님의 영광에 자신을 봉헌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도의 생활과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아버지와의 기도 어린 대화를 통해서 이 변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정 기도에는 그 나름대로 특성이 있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가 함께 공동으로 바치는 기도이다. 기도에서의 일치는 세례성사와 혼인성사가 부여한 일치의 결과인 동시에 요청이다. 자신의 현존을 약속하시던 주 예수님의 말슴은 그리스도인 가정의 가족들에게 특별히 적용될 수 있다.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기정 기도는 가정생활 자체를 그 목표로 삼고, 가정생활은 아무리 상황이 상이해도 하느님의 부름으로 파악되며 그 부름에 대한 자녀다운 응답으로써 사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출생과 생일 잔치, 이별과 돌아옴, 중요하고 장기적 결정,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것들은 가정의 역사 안에 하느님의 사랑 어린 개입을 표시해준다. 그것들은 감사와 간청의 적합한 시기, 하늘에 계신 공동의 아버지의 섭리에 신뢰하며 가정을 맡기기에 합당한 시기로 파악되어야 한다. 가정 교회인 그리스도인 가정의 품위와 책임은, 겸손과 신뢰 어린 기도 중에 간청되기만 하면 분명히 내려질, 하느님의 한없는 도움이 있어야만 달성될 수 있다.

기도의 교육자

60. 그리스도인 부모는, 그들의 품위와 사명 때문에, 자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책임과, 자녀들이 하느님의 신비를 점차로 발견하며 그분과 개별적 대화를 하도록 인도할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혼인성사의 은총과 의무를 갖는 그리스도인 가정에 잇어서 자녀가 성세로 말미암아 받은 신앙에 따라 벌써 유아기부터 하느님을 알고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다."

부모의 구체적 모범과 산 증거야말로 자녀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데에 기본적이고 필요한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들과 함께 기도함으로써만, 자신의 왕적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자녀들의 마음의 심층에 파고들 수 있고, 그들의 생애에서 일어날 미래의 사건들로 지워질 수 없는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교황 바오로 6세가 부모에게 한 호소를 다시 들어보자. "어머니들이여, 당신들은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가르칩니까? 당신들은 자녀들이 어릴 때에 고백, 영성체, 견진 등의 성사를 받도록 준비시킵니까? 당신들은 자녀들이 병났을 때에 그리스도의 고통을 생각하고 동정 성모와 성인들의 도움을 청하도록 그들을 격려합니까? 당신들은 묵주의 기도를 가족과 함께 바칩니까? 그리고 아버지들이여, 당신들은 가끔이라도 자녀들과 전체 가정공동체와 함께 기도합니까? 당신들의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 정직한 모범은, 약간의 공동 기도와 합쳐지기만 하면, 생활을 위한 교훈이며 매우 가치있는 에배 행위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당신들은 집안에 평화를 가져오고 교회를 건설한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전례 기도와 개인 기도

61.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가 분명히 확인한 바와 같이, 교회의 기도와 개개인 신자의 기도 사이에는 깊고 긴밀한 유대가 있다. 가정 교회의 기도의 중대한 목표는 어린이들을 전체 교회의 전례 기도에로 자연스럽게 인도하는 데에 봉사하고, 전례 기도를 위하여 준비시키며 그것을 개인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에로 연장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가정의 모든 가족들이 특히 주일과 축일의 미사 성제와 다른 성사, 특히 어린이들의 그리스도적 입교 성사-세례와 견진-에 점차로 참여하는 것은 필요하다. 공의회의 지침이, 성무 일도를 공동으로 바치기를 권장한 집단들 중의 하나로 가정을 열거하였을 때에, 그리스도인 가정을 위한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가정은 집에서 가족들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전례력의 시기와 축일을 지키도록 노력할 것이다.

성당에서 바치는 예배를 준비하고, 그것을 집에서 연장하는 방법으로, 그리스도인 가정은 다양한 형태의 개인 기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다양성은 성령이 그리스도인 기도에 불어놓는 풍요함이 비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한편, 주님께 기도하려는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필요와 생활상황을 채우는 데도 쓸모가 있다.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와는 별도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주교들의 지적에 따르면, 다른 일정한 형태의 기도, 예컨대 하느님 말씀의 봉독과 묵상, 성사 배령의 준비,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 동정 마리아에 대한 각종의 공경, 식사 전후의 기도, 대중 신심이ㅡ 준수 등이 분명히 권장될 것이다.

하느님의 자녀들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교회는 일정한 신심의 관습을 특별히 신자들에게 항상 제안해 왔다. 그것들 중에는 묵주의 기도가 언급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선임자들의 생각을 이어가며 가정적 묵주의 기도를 강력히 권장하고자 한다. 의심 없이 묵주의 기도는 가정이 공동으로 바치도록 권장될 가장 좋고 효과적인 기도 중의 하나라고 인정되어야 한다. 가정이 기도의 시간을 갖기 위하여 모일 때, 묵주의 기도가 자주 선호되는 기도 양식이라고 생각하고 싶으며 진심으로 원하는 바이다. 이렇게 하면, 영성적 태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철저한 모방으로 표현될 뿐 아니라, 가정 안에서 사랑의 일치를 육성하고 부부의 영성과 가정의 영성을 발전시키는 데에 특수한 도구가 된다. 그리스도의 어머니이고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특별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 가정과 가정 교회의 어머니가 되기 때문이다."

기도와 생활

62. 충분하고 핵심적으로 이해된다면, 기도가 그리스도인 생활의 본질적 일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정 기도는 인간성의 하나의 중요 부분이다. 그것은 "인간의 내적 진실의 첫째가는 표현이고, 정신의 진정한 자유를 위한 첫째가는 조건이다."

기도는 매일의 투신에서의 도피 형태이기는 고사하고, 그리스도인 가정이 인간 사회의 기초적이고 기본적 세포로서 자신의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충분히 완수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유인(誘因)이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가정이 교회 생활과 사명에 실제로 참여하는 정도는, 기도에 충실하고 열중하는 정도, 기도로써 주 그리스도이신 열매 많은 포도나무와 일치하는 정도에 정비례하는 것이다.

세계의 변형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인간의 발달을 위한 봉사에 있어서, 그리스도인 가정의 열매는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전례와 자기 봉헌과 기도로써 보강된 삶에서만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부부와 부모에게도 진실이다. 그들의 삶의 지침과 법칙은 혼인성사를 받을 때에 그들의 마음에 부어진 예수의 성령이다. 물의 세례와 성령의 뒤를 이어, 결혼은 사랑의 복음적 법칙을 새롭게 제시하고, 성령의 은헤와 더불어 그것을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의 마음 속 깊이에 밀어 넣는다. 정화되고 구원된 그들의 사랑은 신자들의 마음 안에서 활동하는 성령의 열매인 동시에, 책임지는 자유 안에서 살아야 할 도덕적 생활의 기본 계명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인 가정은 성령의 새로운 법칙에 의해서 고무되고 지도되며, 왕적 백성인 교회와의 긴밀한 일치 안에서 하느님과 동료 인간들을 향한 사랑의 봉사를 실천할 소명을 받고 있다. 마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봉사함으로써 자신의 왕적 위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인간에 대한 봉사의 정신과 실천을 나누는 가운데, 주님의 왕직에 참여하는 것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권한을 당신 제자들에게 주시어, 그들도 왕다운 자유를 누리며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써 죄가 자신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고(로마 6,12),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경손과 인내로써 자기 형제들을 그리스도왕에게로 인도하게 하셨다. 그런데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것은 바로 왕권으로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주께서는 당신 왕국을 또한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확장시키고자 하신다. 그 나라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요,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인 것이다. 이 나라에서 모든 피조물이 부패의 예속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로마 8, 21)."

형제 자매 안에서 하느님 모상을 발견

64. 그리스도인 가정은 사랑의 새 계명으로 고무되고 유지되어 모든 인간은 환영하고 존경하며 봉사할 뿐 아니라, 인간이며 하느님의 자녀인 각자 안에서 존엄성을 인정한다.

사랑의 내적 일치에서 출발하고 육성되었으며, 매일매일의 노력으로 진정한 인간 공동체를 촉진해야 하는 가정 안에서와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는 특히 그 점이 모여야 한다. 이런 생활 양식은 그리스도인 가정이 한 부분으로서 속해있는 교회 공동체의 보다 넓은 범위에까지 연장되어야 한다. 교회는 가정 안에 있는 사랑에 감사하면서, 좀더 가정적 차원을 지니고 더욱더 인간적이고 형제적 관계 양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각 사람은 내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에," 사랑은 같은 신앙을 나누는 형제와 자매의 한계를 넘어가야 한다. 각 개인 안에서, 특히 가난한 자, 병약자, 고통을 당하거나 불의하게 취급당하는 사람들 안에서, 사랑은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을 줄 알고, 사랑받고 봉사 받을 동료 인간을 발견하는 법도 알고 있다.

가정이 진정한 복음적 방법으로 인간에게 봉사하고자 하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지침이 조심스럽게 실천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사랑의 실천은 아무런 의혹도 자아내지 않는 순수한 것이어야 하며 몇 가지 기본 조건을 준수해야 한다. 우리 이웃은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되었고,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은 무엇이나 다 실제로는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이다."1)

그리스도인 가정은 사랑 안에서 교회를 건설하면서 동시에, 인간과 세계에 봉사하게 되는 것이고, 가정에 대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메시지에서 그 내용이 요약된, "인간의 개발"을 실질적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가정의 다른 과업은 사랑 안에서 인간을 형성하고 또한 그 모든 관계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여 가정 그 자체에 폐쇄되지 않고 공동체를 향해 개방되어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 의식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정의감에 따라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2)

주석

1. 평신도 교령, 8항 [△]
2. 제 6차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메시지(1980. 10. 24.), 12항 참조 [△]
  | 05.29
448 40.4%
4.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 단계, 구조, 행동인, 상황


I.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의 단계

교회는 그리스도인 가정의 동반자

65. 살아있는 다른 모든 실재와 마찬가지로, 가정도 발전하고 성장해야 한다. 준비 단계로서의 약혼기와 혼인성사를 포함한 혼인식이 지나면, 부부는 결혼의 가치와 의무를 점차로 실현해 가는 매일의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신앙의 조명을 받으며 희망을 갖고서, 교회와 일치하는 가운데 하느님 나라의 완전한 계시와 표출을 목표로 세우고 현세적 순례의 체험을 나눈다.

그러므로 가정을 보조하기 위한 교회의 사목적 개입은 긴급한 문제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한다. 가정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강화하고 개발하는 데에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미래의 복음화는 대체로 가정 교회에 달려있다.1)는 확신 하에, 가정은 최우선 순위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 교회의 사목적 관심은 단지 목전에 있는 그리스도인 가정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조화를 이루면서 지평을 확대하고, 모든 가정들과 특히 어렵고 비정상적 상황에 놓인 가정들을 위해서 더욱 활동적임을 보여줄 것이다. 모든 가정을 향해서, 교회는 진지, 선함, 이해, 희망의 말을 하고, 그들의 비극적 난관을 깊이 동정할 것이다. 교회는 모든 가정에 공평한 도움을 제공하여, 그들이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의도하셨고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속 은총으로 갱신하신 가정의 모형에 접근하게 한다.

교회의 사목 활동은, 가정의 형성과 발전의 여러 단계에 있어서 발걸음을 맞추어 동행하면서 가정을 따라야 한다는 뜻에서, 점진적이어야 할 것이다.

결혼 준비

65. 어느 때보다도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결혼과 가정생활을 위하여 젊은이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아직도 가정이 스스로, 오랜 관습에 따라서, 결혼생활과 가정생활에 관한 가치를 젊은이들에게 확실하게 전달하고, 그 일도 교육이나 입문식의 과정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현대 사회에서 일어난 변화가 요구하기 때문에, 가정만이 아니라 사회와 교회도 그들의 장래 책임을 위하여 젊은이들을 적절히 준비시키는 노력에 관여해야 한다. 오늘날 애석하게도 가정생활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수많은 부정적 현상은, 새로운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가치의 올바른 서열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행동의 확고한 기준이 없어서 새로운 문제를 대면하고 처리하는 방법을 모르는 데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결혼생활을 잘 준비한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이들보다 더 잘 성공할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남자와 여자의 성덕에 영향을 미치는 그리스도인 가정에 더욱 절실히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많은 젊은이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가능한 한 제거하기 위하여, 나아가서 성공적 결혼의 시작과 성숙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하여 더욱 적합하고 더욱 집중적인 결혼 준비 과정을 촉진해야 한다.

결혼 준비는 점진적이고 계속적 과정이라고 파악되고 그렇게 실천되어야 한다. 그것은 먼 준비, 중간 준비, 가까운 준비 등 세 가지의 단계를 포함한다.

먼 준비는 일찌기 유년기에서 출발하고, 어린이들이 자신들을 풍요하고 복잡한 심리를 부여받은 존재로, 또한 장점과 약점을 겸비한 특수한 성격을 가지는 존재로 보도록 이끌어주는 좋은 가정 교육에서 시작한다. 이 시절에, 성격의 형성과, 각자의 서향을 통제하고 잘 이용하는 것과, 이성을 만나고 대하는 방법 등에 관한 모든 것과 더불어, 인간의 상호 관계와 사회 관계에 필요한 진정한 인간 가치에 대한 존경심을 심어 주어야 한다. 그 외에도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사제 성소나 수도자 성소 안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가능성을 제외시키지 않으면서도, 결혼은 참된 성소이고 사명임을 보여주는 영성 훈련과 교리교육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 시간이 흐르면서 중간 준비가 서서히 쌓아 올려져야 한다. 이것은, 예비자 교육 과정에서처럼, 연령이 따라 적절한 교리교육을 시키면서 성사의 재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칠 성사에 대한 교육을 더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연수 교리교육은 그리스도인 결혼을 준비하는 젊은이들과 다른 이들이 올바른 도덕적, 영성적 준비 자세를 가지고 혼인성사를 받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절대로 필요하다. 젊은이들의 종교 교육은 여러가지 구체적 요구 조건을 참작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부부생활을 위한 준비와 잘 통합되어야 한다. 이 준비는 결혼을 계속적으로 발전해야 하는 남자와 여자의 인격적 관계로 파악되게 하고, 관련자들이 필요한 의학적, 생물학적 지식과 함께 부부의 성(性)과 책임있는 부성의 본성을 연구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이 교육은 관련자들이 자녀 교육의 올바른 방법을 배우게 하고, 꾸준한 노동, 충족한 재정적 자원, 합리적인 가사 관리, 살림 정리와 같은 질서있는 가정 생활의 기본 조건을 구비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끝으로, 가정 사도직, 다른 가정들과의 형제적 유대와 협력, 가정의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적 혜택을 위해서 착수된 집단, 협의체, 운동, 기타 활동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위한 준비도 소홀히 되어서는 안된다.

혼인성사의 가까운 준비는 결혼 직전 수 개월 혹은 수 주내에 이루어져야 하고, 교회법이 요구하는 결혼 전 조사의 의미와 내용과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다. 이 준비는 모든 경우에 필요할 뿐 아니라, 교리와 신앙 실천에 있어서 결함이나 문제점을 보여주는 약혼자들에게는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예비자의 교육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신앙 교육에서 주입될 요소 중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에 대한 깊은 지식, 은총의 의미와 그리스도인 결혼의 책임에 대한 지식과 아울러 혼인 전례의 예식에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준비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리스도인 가정과 전체 교회 공동체는 지금까지 개괄적으로만 서술된 결혼 준비의 각 단계에 마음으로 관여해야 한다. 각국 주교회의는, 약혼자들이 자신들의 결단의 중대함을 더욱 잘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고, 영혼의 목자들이 약혼자들의 적절한 준비 자세를 확실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필요한 조치를 위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듯이, 「가정 사목 지침서」가 출판되기 위한 절차를 밟아주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이러한 식으로 각국 주교회의는 우선 "준비 과정"의 내용, 기간, 방법을 규정해야 하고, 결혼에 관한 다양한 측면 - 교리적, 교육학적, 법률적, 의학적 측면의 균형을 유지하며,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이 지적 훈련만을 받지 않고 교회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원의를 갖도록 그 내용을 구성해야 한다.

결혼의 가까운 준비의 필요성과 의무를 과소 평가하지 않아야 하지만 - 그 관면을 쉽게 주면 그렇게 될 것이다 - 이 준비의 생략은 혼인성사의 조당이 된다는 식으로 항상 설명하고 밀고 나갈 것은 아니다.

결혼식

67.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영세자들이 맺는 부부계약이 본질적으로 교회적이고 성사적 본성을 사회적이며 공동체적 형식을 따라 표현하는 전례 집행을 보통으로 요구한다.

결혼식이, 교회의 행위의 절정이고 성화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한,2)

전례와 함께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하나의 성사적 성화 행동인 까닭에 유효하고 가치가 있으며 를 맺어야 한다. 성사의 지위로 끌어올려진 부부 계약의 본성에서 나오는 모든 요구가 충분히 채워지고, 자유로운 동의, 여러가지 조당, 교회법적 형식, 혼인식의 실제 예식에 관한 교회의 규정이 충실히 준수되도록 하자면, 사목자의 관심 분야가 넓어진다. 결혼식은 교회 유권자의 규정에 따라서 간소하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 구체적 시기와 장소적 환경이 요구하고, 교황청의 규정에 부합하기만 하면,3)

결혼 계약의 깊은 인간적이고 종교적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표현하면서도, 그리스도적 신앙과도덕에 위배되는 것을 아무 것도 내포하지 않는, 각 문화의 일부를 혼인 전례 집행에 포함시켜도 무방하

전례 집행은 하나의 징표인 까닭에, 외형적으로도 신자 공동체의 편에서 볼 때 하느님 말씀의 선포이고 신앙 고백이 될 수 있도록 진행되어야 한다. 말씀의 전례에 대한 명석하고 신중한 준비와 결혼에 참여하는 특히 이들과 결혼하는 부부를 위한 신앙 교육은 사목자의 투신도를 잘 나타내 줄 것이다.

혼인 전례의 집행은 교회의 한 가지 성사적 행위인 까닭에, 각자의 위치와 임무에 따라서 모든 참석자, 예컨대 신랑, 신부, 사제, 증인, 친척, 친구, 기타의 신자, 교회와 그리스도의 신비를 살고 드러내는 회중의 모든 성원들의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참여를 포함하는 그리스도적 공동체의 행사가 되어야 한다. 조상의 문화와 전통을 따르는 그리스도인 결혼식에서도 이상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혼인성사와 냉담 신자의 복음화

68. 혼인성사를 집행할 때는 결혼하는 이들의 도덕적, 영성적 자세, 특히 그들의 신앙 상태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두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세속화된 사회의 맥락에서 교회의 사목자들이 직면할 수 있는 흔한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사실, 교회에 결혼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신앙 상태가 다양할 수 있으므로, 목자들의 일차적 의무는 그 신앙을 재발견하도록 이끌고, 그것을 육성하며 성숙에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완전한 신앙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도 교회가 혼인 성사를 허용하는 이유를 사목자들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혼인성사에는 그것을 다른 모든 성사에서 구별짓는 특별한 요소가 있다. 혼인성사는 창조의 섭리의 한 부분인 어떤 것의 성사라는 점이고, 그것은 "처음에" 창조주가 제정하신 부부 계약 자체이다. 그러므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결혼하려는 결정은, 즉 취소할 수 없는 부부의 동의를 통해서 자신들의 전생애를 끊어질 수 없는 사랑과 조건 없는 충실 안에 투신하려는 결단은, 충분히 의식하지는 못한다 해도, 하느님의 의지에 깊이 순종하는 태도, 하느님의 은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태도를 실제로 내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참된 의미에 있어서 구원을 향한 여정을, 혼인성사와 가까운 준비가 보충할 수 있고, 올바른 지향만 있다면 완성할 수는 있는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한편, 어떤 곳에서는 약혼자들이 진정으로 종교적 동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동기 때문에 성당에서 결혼하기를 원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결혼은 실제로 결혼하는 사람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 사회적 사건이고, 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결혼자들은 투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식은 언제나 가족과 친구를 한데 모으는 즐거움의 기회인 것이다. 따라서 성당에서 결혼하려는 요청에는 사회적이며 개인적인 동기가 개입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약혼자들은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미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맺어진 결혼 계약의 진정한 참여자이고, 또한 올바른 지향을 통해서 그들은 결혼에 관한 하느님의 계획을 수락하였으며, 그 결과로 혼인성사 때 교회가 의도하는 것에 함축적으로라도 동의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회적 성격의 동기가 혼인성사의 요청에 끼어 든다는 사실은 사목자가 혼인성사를 거절하는 행동을 정당화하기에는 넉넉한 이유가 못된다. 더군다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르치는 것처럼, 성자는 말씀과 예식을 통하여 신앙을,4)

결혼 부부가 올바른 지향을 가짐으로써 이미 목표로 삼고 있는 신앙을, 그리스도의 은혜가 틀림없이 돌보고 지지해 줄 신앙을 육성하며 강화하는 것이

결혼하려는 사람들의 신앙 상태와 관련해서, 혼인성사의 허용에 대한 더 많은 기준을 정하는 것은 여러가지 중대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로, 근거 없으면서 차별 대우하는 판단을 내릴 위험이 있다. 둘째로, 이미 맺어진 결혼의 유효성에 대한 의문을 야기하여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많은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고, 결혼 부부의 양심에 쓸데없는 불안을 새삼스러이 야기할 위험도 있다. 더 나아가서, 가톨릭 교회와의 완전한 일치를 유지하지 않는, 갈려진 형제들이 맺은 많은 결혼의 성사성을 의심케 하여 교회 전통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게 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모든 노력을 하였는데도 약혼자들이 영세자들의 결혼시에서 교회가 의도하는 것을 분명하게 또한 정식으로 배척한다면, 영혼의 사목자는 그들에게 혼인성사를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거절하면서도, 사목자는 상황을 파악하고 그런 상황에서는 약혼자들이 요청하는 혼인성사의 집행을 막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 자신이란 점을 관련자들에게 분명히 해명할 책임이 있다.

이런 모든 긴급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나는 것은 전체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참여하는, 결혼 전후의 복음화와 교리교육의 필요성인 것이고, 그것이 있어야만 결혼하는 모든 남자와 여자가 혼인성사를 유효하게 박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결혼 후의 사목적 배려

69. 정식으로 출발한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란 실제에 있어서 부부가 자기들의 새로운 성소와 사명을 인식하고 생활화하도록 돕기 위해서, 지역 교회 공동체의 모든 성원들이 투신하는 것을 말한다. 가정이 점점 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 가자면, 모든 가족들이 새로이 발생하는 문제를 책임있게 처리하는 것이나, 서로 봉사하는 것과, 가정생활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데에 있어서 훈련과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이 필요성은 특히 새로운 가치와 의무의 맥락 안에 놓이게 되는 젊은 가정에 절실하며, 그들은 결혼 후 수 년 동안에는 공동생활에의 적응이나 자녀 출산이 야기하는 제문제로 말미암아 특히 상처받기 쉬운 것이다. 젊은 부부들은 결혼생활과 가정생활에 관하여 더 많은 경험을 이미 쌓은 다른 부부들이 줄 수 있는 분별력 있고, 재치 있으며 관대한 조언을 즐거이 받아들이고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인 가정들로 구성된 큰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현존이 서로 교환될 것이고, 모든 가정들은 생활 체험뿐 아니라 신앙과 은총의 은혜를 다른 가정에 봉사하는 데에 바치기 때문에 서로간의 협조가 이루어질 것이다. 가정 대 가정의 이러한 협조는 진정한 사도직 정신에서 발로하기 때문에, 모든 사목적 배려의 출발점이면서 목표이기도 한 그리스도적 가치를 서로서로 전달하는 데에 가장 단순하고 가장 효과적이며 가장 손쉬운 수단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젊은 가정들은 받기만 하지 않고, 이렇게 도움을 받은 후에는 그들 나름대로 생활의 증거와 실천적 기여를 통해서 더욱 오래된 가정에 대하여도 풍요로움의 근원이 될 것이다.

교회는 젊은 가정에 사목적 배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일치의 요구와 생명에의 봉사와 관련해서 부부의 사랑을 책임 있게 살도록 돕는 데에도 특별한 관심을 두어야 한다. 교회는 또한 젊은 가정들이 친밀한 가정생활과 교회와 사회를 건설하는 일에 남김없이 참여하는 활동을 조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녀가 생기고 결혼 부부가 와전한 의미에서 가정이 되는 때에도, 교회는 부모와 친밀한 유대를 갖고, 부모들이 자녀들을 생명의 주님에게서 오는 선물로 받아들이며, 자녀의 인간적 성장과 그리스도적 서장에 봉사하는 임무를 즐거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한다.
  | 05.29
448 40.4%
4.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 단계, 구조, 행동인, 상황
II. 가정 사목의 구조

1. 사목 활동은 어느 때나 교회가 구원 사명에 투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가정 사목은 일반 사목 활동의 한 가지 특수 형태이기에, 조직과 일꾼을 겸비하고 있는 교회 자체를 작동 원리와 책임 있는 행동인으로 삼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와 본당

70. 구원받은 공동체이며 동시에 구원하는 공동체인 교회는 두 가지 측면에서, 즉 보편적 측면과 특수적 측면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두번째 측면은 좀더 작은 공동체들로 나누어지는 교구 공동체 안에서 표출되고 실현되며, 그 작은 공동체 중에서 본당은 매우 중요하다.

보편적 교회(세계 교회)와의 일치가 각종 특수 교회들의 내용과 창의성을 방해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보장하고 촉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수 교회들은 가정 사목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좀더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행동 주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지역 교회, 더욱 구체적으로는 모든 본당 공동체는 가정 사목을 촉진하기 위해서 주님에게서 받은 자신의 은혜와 책임을 더욱 생생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조직적 사목 활동 계획은, 어떤 수준의 것이거나, 틀림없이 가정 사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책임에 비추어 볼 때 가정 사목에 특별히 종사하게 될 모든 일꾼을 위한 적절한 준비의 중요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사제들과 남녀 수도자들은 가정 사목의 각종 임무를 위해서 수련기 대부터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점차로 받을 것이다. 여러가지 창의적 조처 중에서도 로마에 있는 라떼란 대학교 내에 가정문제 연구소가 최근에 개설된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와 유사한 연구소가 몇몇 교구에도 설치되었다. 많은 사제들이 본당 책임을 맞기 전에 되도록 많은 특수 과목을 듣도록 조치하는 것은 주교의 책임에 속한다. 다른 곳의 대학 부설 사목신학 연구소에서는 가정 사목 강의들이 정기적으로 개설되고 있다. 이런 노력은 장려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수적으로 증가돼야 할 것이고, 가정을 돕기 위해서 자신의 전문 지식을 - 의학, 법률, 심리, 사회 교육 등 - 사용하고자 하는 평신도에게도 개방되어야 한다.

가정

71. 가정 사목의 분야에서는, 결혼 부부와 그리스도인 가정이 혼인성사에서 받은 은혜로 인해서 가지게 된 사명의 고유한 위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사명은 교회의 건설에, 하느님의 나라를 역사 안에 설립하는 데에 봉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 그리스도께 대한 고분고분한 순종의 행위로서 요청된다. 그리스도가 바로 영세자들의 결혼을 성사의 지위로 끌어올리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결혼 부부에게 사도로서의 특별 사명을 부여하시고, 그들을 당신의 포도밭에서, 특히 가정 분야에서 일할 일꾼으로 보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 활동에 있어서, 결혼 부부는 자신들의 재주와 직무를 바쳐가면서 가정을 위해서도 수고하는 교회의 기타 성원들과 일치하며 협조하는 가운데 활동하는 것이다. 가정 사도직은 우선 당사자의 가정내에서 실천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법규에 완전히 부합하게 사는 생활의 증거를 보여 주는 것, 자녀의 그리스도적 교육, 자녀의 신앙 성숙을 돕는 일, 정결 교육, 생활의 준비 교육, 그들에게 자주 위협을 주는 이념과 도덕적 위험에서 자녀룰 철저히 보호하는 것, 그들을 교회 공동체와 시민 공동체에 점차로 참여시키는 일, 성소를 결정하는 데에 조언하며 돕는 것, 가족들의 인간 성숙과 그리스도적 서장을 위하여 서로 돕는 일 등은 가정 사목을 실천하는 방법들이다. 그리고 가정 사목의 범위는 다른 가정들, 특히 도움과 후원을 가장 필요로 하는 가정들, 가난한 이들, 병약자, 노인, 불구자, 고아, 과부, 버림받은 배우자, 미혼모, 곤란한 처지에서 인공 유산의 유혹을 받고 있는 임신부 등을 위한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애덕을 실천함으로써 확장될 수 있다.

가정 협의체

72. 가정 사목에 대한 책임을 질 주체인 교회 안에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신비를 어느 정도로 드러내고 살아가는 각종 신자 단체를 언급하고 넘어가야 한다. 여러가지 양식으로 다양한 이유를 위해 여러 차원에서, 가정 사목에 전념하는 각종의 교회 공동체, 단체, 운동 등을 그들의 특성과 목적과 효율성과 방법을 고려하면서, 인정하고 이용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하여,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는 영성과 교육과 사도직을 위한 이상의 협의체들의 가치 있는 기여를 명백히 인정하였다. 그들의 임무는 신자들 안에 활력 있는 유대감을 육성하는 것, 복음과 교회의 신앙으로 고무된 생활 양식을 장려하는 것, 여론의 기준이 아니라 그리스도적 가치에 따라 양심을 형성하는 것, 사람들을 자극하여 활짝 열린 정신으로 서로를 위해서나 타인을 위해서 사랑의 일을 하게 하는 것, 그리스도인 가정이 다른 가정들에 대하여 참된 빛의 원천이 되고 찌꺼기 없는 누룩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가정이 공동선에 대한 생생한 의식을 가지고서 모든 차원의 일반 사회 협의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이 협의체 중 상당수는 각 민족의 훌륭한 도덕 가치와 문화적 가치의 보존과 전달과 보호, 인간 개발, 의료와 법률과 사회 문제에 있어 어머니와 어린이의 보호, 여성의 정당한 진출과 그들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에 대한 투쟁, 상호 유대의 증대, 인간의 존엄성과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한 자연적 출산 조절 방법에 관한 지식의 개발과 전파 등을 위해서 활약하고 있다. 다른 협의체들은 좀 더 정의롭고 인간적인 사회 건설, 개인과 가정의 존엄성과 합법적 자유를 충분히 존중하면서 올바른 사회 질서를 세우기 위한 정의로운 국제법과 국가법의 촉진, 어린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나 기타 기관과의 협조 등을 위해서도 일한다.
  | 05.29
448 40.4%
4.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 단계, 구조, 행동인, 상황

III. 가정 사목의 행동인

1. 가정 사목의 대상이며 주체이기도 한 가정을 제외하고도, 이 특수 분야의 다른 중요 행동인에 대하여 언급해야 한다.

주교와 사제

73. 교구내에서 가정 사목에 대한 책임을 주로 지는 이는 주교이다. 주교는 아버지이며 목자로서 이 최우선적 사목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는 이 문제를 위해서 개인적 관심, 배려, 시간 외에 인력과 재력을 투자하고, 특히 교구내 각종 조직체 안에서 가정 사목에 협조하는 많은 사람들과 가정에 대하여 개인적 후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주교는 교구를 진정한 "교구 가족"으로, 교구내 많은 가정의 본보기이고 희망의 원천으로 만들기 위하여 특별히 애써야 한다. 교황청 가정사목협의회의 설치를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하고, 그것은 본인이 세계적 가정 사목을 중요시한다는 징표로, 동시에 가정 사목을 모든 차원에서 돕고 촉진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로 보아야 한다.

주교들은 특히 사제들을 언제나 후원할 자세를 지녀야 하고, 사제들의 임무는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가 확실하게 강조하였듯이, 결혼과 가정에 대한 교회 직무의 본질적 부분을 담당한다. 가정 사목의 일부를 맡을 수도 있는 부제의 직무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책임은 도덕적 문제와 전례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사회적 문제에도 연장되어야 한다. 그들은 어려움과 고통 중에 있는 가정을 후원하고 그 가족들을 돌보아주며, 그들이 복음의 조명 아래서 살도록 도와야 한다. 교회의 일꾼들이, 적절한 분별력과 참된 사도직 정신으로 수행하기만 하면, 이 사명의 수행 과정에서 자신의 성소와 직무의 이행에 도움이 되는 참신한 격려와 영성적 원동력을 얻는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지나친 것은 아니다.

사제와 부제들은 이 사목을 위해서 시대에 맞고 깊이있는 준비를 한 후에는 가정을 위해 아버지, 형제, 목자, 스승으로서 간단없이 활동해야 하고, 은총으로 그들을 돕고 진리의 빛으로 그들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그들의 가르침과 조언은 그래서 항상 교회의 정통 교도직과 전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이 신앙의 참된 뜻을 이해하고 그것을 추후에 실생활에 응용하도록 도와야 한다. 교도직에 대한 이러한 중성은 사제들이 일치된 판단을 내리는 데 온갖 노력을 하도록 하며, 신자들의 양심을 흔드는 일을 피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교회 안에서 사목자와 평신도는 교회의 예언적 사명을 나누는 것이다. 평신도는 자기들의 말과 그리스도적 생활로 신앙을 증거함으로써 그 일을 하는 것이고, 사목자들은 진정한 신앙을 표현하는 것과 신앙의 빛과는 더 부합하는 것을 구별해서 증언으로서 예언적 사명을 수행한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가정은 신앙에 대한 특별한 나눔과 증언으로써 그 일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사목자와 가정 사이에도 대화가 시작된다. 신학자들과 가정 문제 전문가들은 교회 교도직의 내용과 가정 생활의 경험 내용을 정확하게 설명해 줌으로써 이 대화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교도직의 가르침이 더욱 잘 이해되고 그 가르침의 점진적 발전의 길이 열릴 것이다. 그러나 가정 문제를 포함해서 신앙을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 구체적이고 의무적 규범을 정하는 것은 주교 교도직에 속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학자, 가정 문제 전문가, 교도직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해두는 것은 신앙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와 신앙의 경계 안에서 합법적 다원주의를 촉진하는 데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남녀 수도자

74. 남녀 수도자와 축성된 사람들이 가정 사목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기여의 일차적, 근본적, 본래적 표현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봉헌에서 나타난다. 그 봉헌 때문에, "그리스도의 충실한 모든 수도자는 하느님께로부터 제정되었고 내세에 있어서 명백히 나타날 혼인 즉 교회가 그 유일한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차지하는 저 경탄스러운 혼인을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환기시키기 때문이고"5)

수도자들은 그들이 하늘 나라를 위해서 끌어안은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께 대한 봉사와 사도직 활동에 더욱 관대하게 자선을 봉헌하게 하는 저 보편적 사랑을 증거하기 때문이

여기에 바로 남녀 수도자와 완덕을 추구하는 재속회(Secular Institutes)와 기타 회의 회원들이 개별적으로나 단체적으로, 버려졌거나 미움 받는 어린이, 고아가 되었거나 불구 된 어린이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서 가정을 위한 봉사를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가정을 방문하고 병자를 돌봐줄 수 있고, 외짝 부모의 가정이나 곤경에 놓였거나 별거하는 가정과는 사랑과 존경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들은 결혼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교리교육이나 상담을 주며 참말로 책임있는 부모가 되도록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집을 개방하여 간단하나마 진심으로 우러나는 대접을 제공함으로써, 가정들이 그곳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기도와 묵상에 대한 맛을 터득하며, 하느님의 큰 가정의 가족들이 사랑과 형제적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실례를 보게 할 수 있다.

본인은 축성된 생활을 하는 여러 회의 장상들이, 각자의 적절하고 고유한 특은을 충분히 존중하면서도, 가정 사목을 최우선적 임무의 하나로, 현대 세계의 상황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된 임무로 간주하기를 간절히 촉구하는 바이다.

평신도 전문가

75. 의사, 변호사, 심리학자, 사회사업가, 상담가와 같은 평신도 전문가들은 개별적으로나 혹은 각종 협의체와 활동 단체의 회원으로서 계몽, 조언, 지향성의 제시, 후원 등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가정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본인이 '그리스도적 가정상담소 연맹' (Confederation of Family Advisory Bureaux of Christian Inspiration)에서 연설할 때 하였던 격려를 이 사람들에게 반복할 수 있다. "여러분의 투신은 사명이란 명칭을 의당히 받을 만하고,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는 지극히 고상하며, 그 결과는 사회와 그리스도적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서 아주 결정적입니다. 가정을 후원하면서 여러분이 성취하는 모든 실적은 그 분야의 한계를 초월하여 다른 사람에게도 미치고 사회에도 영향을 발휘하게 마련입니다. 세계와 교회의 장래는 가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6)

사회 홍보의 수용자와 전달자

76. 현대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하나의 현상인 사회 홍보에 관하여 한 마디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 홍보 수단이 "수용자의 마음에, 특히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정서적 측면과 지성적 측면뿐 아니라, 도덕적 종교적 측면에도 흔히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7) 그들은 가정의 생활 습관과 어린이의 교육에 유익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무시할 수 없는 함정과 위험을 배태하기도 한다."8) 그것은, 불행하게도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때때로 교묘하게 조직적으로 조종되어, 분열적인 이데올로기, 삶과 가정과 종교와 도덕에 대한 비뚤어진 견해, 인간의 진정한 존엄성과 목표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현대의 생활 양식이 - 특히 선진 산업국가에서는 - 자녀를 교육하는 책임을 포기하도록 너무 흔하게 가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이런 위험은 훨씬 더 큰 것이다. 집에는 텔리비전과 많은 유인물이 있고 그들은 어린이들의 시간과 정력을 점령해 버리기 때문에, 가정의 자녀 교육 의무가 쉽게 회피되고 있다."9) 따라서 "대중 홍보 수단에서 받는 여러 형태의 폭력에서 청소년을 보호할 의무"와, 가정에서 홍보 수단의 사용을 조심스럽게 조절할 의무가 따르는 것이다. 가정은 자녀들에게 좀더 유익하고 건전한, 다른 종류의 오락을 찾아야 하며, "청소년의 자유 시간을 잘 이용하고 그들의 정력 소모를 지도하는 동시에,"10) 육체적, 도덕적, 영성적으로도 교육적인 오락을 개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회 홍보 수단은, 학교나 환경과 마찬가지로, 어린의 교육에 보통으로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치는 까닭에, 수용자인 부모는 적당하며 비판적으로,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홍보 수단을 사용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고, 그들이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지 알아내고, "방송되는 프로그램 선정에 있어서 길잡이가 되어야 하는, 조용하고 객관적 판단을 내리도록 자녀의 양심을 훈련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홍보 수단의 사용을 통제해야 한다."11)

부모는 비등한 열성을 가지고서, 텔리비전 프로그램의 선정과 제작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 노력하고, 정당히 선수를 쓰면서 여러 단계의 제작과 방송 실무자들과도 접촉을 유지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진정으로 좋은 사회의 일부가 되는 기본적 인간 가치가 무시되거나 의도적으로 공격받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가정 문제와 그것의 적절한 해결을 올바로 비추어 주는 프로그램의 방영을 유도하게 될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 교황 바오로 6세는 아래와 같이 말씀하였다. "제작자들은 가정의 요청을 파악하고 존중해야 하며, 이것은 그들 안에 참된 용기와 높은임감을 항상 전제한다. 사실 그들에 대한 기대는 가정의 존재, 안정, 균형, 행복을 해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나 피하는 것이다. 가정의 기본 가치에 대한 모든 공격은, 즉 에로티즘, 폭력, 이혼 옹호나 젊은이의 반사회적 태도의 옹호 등은 인간의 선익에 대한 공격이나 마찬가지이다."12)

본인도 비슷한 기회에 가정은 "상당한 정도로 출판인, 문인, 제작자, 감독, 극작가, 기자, 해설자, 배우 등과 같은 홍보 전문가의 선의와 성실성과 책임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13)고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교회의 의무는 이 문제에 관하여 모든 노력을 계속해서 경주하고, 동시에 소명을 느끼며 필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신자들이 이 감수성 높은 직업을 갖도록 격려하고 후원하는 것이다.
  | 05.29
448 40.4%
4.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 단계, 구조, 행동인, 상황

IV. 어려운 경우의 가정 사목

특수 환경

77. 자신의 소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여러가지 종류의 압력 때문에, 객관적으로 봐서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 가정들의 경우에는, 착한 목자 예수님을 본딴 매우 관대하고 지능적이며 현명한 사목 활동이 요청된다.

어떤 특수 집단에 대하여는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데, 그들은 보조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그들의 결핍의 심층적 원인을 가능 한 제거하려면 여론과 특히 문화적, 경제적, 사법 구조에 대하여도 좀더 결단성 있는 조치를 필요로 하는 집단들이다.

그 사례들은 이민 노동자의 가정, 군인과 선원과 기타 모든 유동인들처럼 장기간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가정, 죄수와 피난민과 망명자의 가정, 대도시에서 실질적으로 버림받은 사람처럼 생활하는 가정들, 집 없는 가정, 불완전하거나 외짝 부모인 가정, 불구자나 약물 중독자 자녀를 둔 가정, 알콜 중독자의 가정, 문화적 사회적 환경에서 뿌리가 뽑혔거나 뽑힐 위기에 놓인 가정, 정치적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는 가정,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는 가정, 본당과의 접촉을 쉽게 가질 수 없는 가정, 종교 때문에 폭력이나 부당한 처우를 받는 가정, 십대 결혼 부부, 생활 필수품이 부족한 가운데 홀로 살아야 하는 노인 가정 등이다.

이민 가정, 그 중에서도 특히 육체 노동자와 농업 노동자의 가정은 어디에 가나 교회 안에서 고향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다양성 안에서 일치의 징표인 교회의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임무이다. 가능한 한, 이 사람들은 같은 예식과 문화와 언어권에 속하는 사제들의 보조를 받아야 한다. 여론에 호소하고 사회, 경제, 정치계의 모든 인사들에게 호소하여, 그 노동자들이 자기 지역과 고향에서 취직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도록 하는 것, 그들의 가정이 되도록 빨리 합쳐지고 그들의 문화적 정체가 존중되며 타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하는 것, 그들의 자녀가 기술을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또한 노동과 생활에 필요한 토지를 소유할 권리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교회의 임무에 속하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는 이념적으로 갈라진 가정의 문제이다. 이 경우에는 특수한 사목적 배려가 요청된다. 우선 이런 가정들과는 재치있는 개인 접촉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믿는 가족의 신앙과 그리스도인 생활은 강화되고 후원을 받아야 한다. 가톨릭 교회에 충실한 쪽이 굴복할 수는 없다 해도, 다른 쪽과의 대화는 절대로 끊어지지 말아야 한다. 일치가 이루어질 것이란 굳은 희망을 가지는 가운데 사랑과 존경을 표시하는 데에 인색하지 말 것이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많은 것이 달려있다. 신앙을 배격하는 이념이라도 가정의 믿는 가족을 자극하여 신앙과 사랑의 증언에 있어서 성장하게 할 수 있다.

가정이 교회 공동체와 사목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기타의 어려운 경우는 대개 다음과 가다. 혼란되고 반항적이며 때로는 풍랑이 심한 자녀의 사춘기, 분가를 가져오는 자녀의 결혼, 가장 가까운 사람의 사랑과 이해 부족, 한 배우자가 상대방을 버리는 것, 과부나 홀아비에게 쓰라린 경험을 가져오는 배우자의 죽음, 본래의 가정 핵심을 파괴하며 깊은 변화를 가져오는 한 식구의 죽음 등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는 노년기를 간과할 수 없다. 노년기에 부부의 사랑은 더욱 정련(精鍊)되고 길며 단절 없는 충실로써 고양되어 더욱 깊어질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형태의 친절과 수십 년 간 쌓인 예지와 나머지 기력을 남에게 제공할 기회가 마련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녀와 친척의 소홀함이나 돈담무심에서 발생하는, 육체적이기 보다는 흔히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고독의 부담도 있다. 병환, 기력 쇠진, 남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비굴함,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나 하는 처량함, 생명의 종말이 온다는 것 등에서 야기된 고뇌도 있다.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주교들이 제안한 바와 같이, 이런 환경에서는 결혼과 가정의 고상한 영성적 측면을 성화와 일상 생활의 깊은 행복의 원천이 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영감을 받는 측면을, 영생의 위대한 종말론적 현실에 비추어서 이해하고 생활하도록 돕는 것은 비교적 용이히다. 이렇게 다양한 상황에서 빛과 힘의 원천이며 그리스도적 희망의 양식인 기도가 결코 소홀히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혼종 결혼

78. 가톨릭 신자와 다른 교단의 세례 신자 사이에 맺어진 혼종 결혼의 수가 증가하고 있어서, 교황청의 최근 문헌들에 포함된 지침과 규정 외에도, 각국 주교회의가 채택한 지침을 여러가지 상황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하여는 특별한 사목적 관심이 요청된다. 혼종 결혼을 한 부부에게는 특수한 요구가 있고 그것은 세 가지 대목으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로, 자유로운 신앙 생활과 가능한 한 자녀들이 가톨릭 신앙에 따라서 세례받고 성장하게 할 후속 책임과 관련해서,14)

신앙이 가톨릭 신자 쪽에 부과하는 의무에 관하여 주목해야 한다.

명심할 것은, 신앙 자유를 존중하는 데 있어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는 특별한 어려움이 필연적으로 따른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신앙을 바꾸도록 과도한 압력을 가하거나, 그 신앙을 실천적 행동을 통해서 자유로이 표현하지 못하도록 억제함으로써 신앙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

결혼에 대한 전례와 교회법 규정에 관해서는, 교구장이 다양한 필요성에 대응하기 위해서 자신의 권한을 널리 사용할 수 있다. 이런 특별한 요구를 다루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명심할 것이다.

- 이러한 형태의 결혼은 제대로 준비하자면, 결혼의 성격과 의무에 관한 가톨릭의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게 하고, 위에서 언급한 압력과 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 가장 중요한 것은 가톨릭 신자 쪽이 공동체의 후원을 받으면서 신앙을 강화하고, 그 신앙의 이해와 실천에 있어서 성숙하도록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생활 양식이나 배우자와 자녀에게 보여주는 질이 높은 사랑을 통해서 가정 안에서 신임받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와 다른 교단의 세례 신자의 결혼은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는 그 내재적 가치와 일치 운동에 대한 기여를 위해서 개발될 수 있고 이용될 수도 있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다. 양쪽이 자기의 종교적 의무에 충실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들의 공동 세례와 은총의 힘은 이렇게 결혼한 부부에게 도덕적 영성적 가치의 영역에서 일치된 입장을 표현할 기반과 동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나 두 사람의 그리스도인 부부가 훌륭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혼종 결혼의 교회 일치적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하여는, 언제나 용이한 일은 아닐지라도, 결혼과 혼인식을 준비하는 당시부터 가톨릭 사제와 비가톨릭 교직자 사이에 진실한 협조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비가톨릭 측과 성찬을 나누는 문제에 관해서는 교황청 그리스도교 일치사무국이 발표한 규정을 따를 것이다.15)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는 가톨릭 신자와 세례 받지 않은 비신자의 결혼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대부분의 결혼에서 비신자 배우자는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데, 그의 신앙이 존중되어야 하며, 비그리스도교와의 관계에 대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에서 제시한 원칙을 따를 것이다. 특히 세속화된 사회에서는 이런 결혼의 많은 경우에, 비신자는 전연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다. 이런 결혼의 경우에 각국 주교회의와 각 주교는 가톨릭 신자의 신앙과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치를 취하고, 자녀의 가톨릭적 세례와 교육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온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가톨릭 신자는 가정내에서 가톨릭 신앙과 생활에 대한 참된 증인이 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받아야 한다.

비정상적 상황에서의 사목 활동

79. 종교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차원에 있어서 가정을 보호하려는 열의를 가졌기 때문에,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주교들은 종교적 의미에서와 흔히 사회적 의미에서도 비정상적인 상황 몇 가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고찰을 잊지 않았다. 오늘날의 급격한 문화 변동의 결과로, 이러한 상황은 불행하게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 도 널리 전파되고 있고, 가족 제도와 가정을 기본 세포로 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손해는 적지 않다.

가. 실험 결혼

80. 비정상적 상황의 첫째 사례는 "실험 결혼"이라고 불리는 것이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는 어떤 가치가 있다고 들이대면서 실험 결혼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인간을 가지고 "실험"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고, 인간의 존엄성이 요청하기 때문에, 결혼이란 시간과 기타 상황의 제한을 받지 않고, 언제나 자기 봉헌의 사랑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을 밝혀줌으로써, 실험 결혼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보게 한다.

교회는 교회대로 신앙에서 연유하는 본래의 이유와 또 다른 이유 때문에 이런 결혼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첫째로, 성 관계에 있어서 육체의 선물은 전인간을 바치는 행위의 참된 상징이며 이 바치는 행위는 현재의 인간 조건에서는 그리스도가 보여준 사랑과 합류하지 않고는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두 신자의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의 참된 상징이며, 이것은 일시적이나 "실험적" 결합이 아니라 영원한 충실한 결합이다. 그러므로 두 신자 사이에는 단지 해소될 수 없는 결혼이 있을 뿐이다.

인간이 어려서부터 그리스도의 은총의 도움을 받고 공포에서 해방된 채 정욕을 처음부터 제압하는 것을 배우고 타인들과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을 배우지 않고는, 이런 상황은 보통 극복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교육과 성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교육 없이는, 즉 육체까지도 포함해서 인간의 모든 측면을 그리스도의 전체적 신비에 통합시키지 않고는 이런 훈련이 보장되지 않는다. 적절한 치료법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적 원인과 사회학적 원인을 포함해서, 이 현상의 모든 원인을 탐색하는 것이 매우 유익할 것이다.

나. 자유 결혼

81. 자유 결혼은, 사회적이거나 종교적인 유대를 막론하고 공적으로 인정된 제도적 유대 없이 이루어진 결합을 의미한다. 이 현상은 점점 더 흔해지고 있어서 영혼의 사목자의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고, 적절한 조치를 위하면 그 결과를 한정할 수 있을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은 어려운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상황 때문에 자유 결혼을 하도록 강요받는다고 생각하며, 만약 정규 결혼을 하면, 자기들은 어떤 종류의 손해를 보게 되거나, 경제적 이득을 상실하거나 차별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이유를 댄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사회, 가족 제도, 사회적, 정치적 질서를 비난하고 거슬러 반항하거나 배척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혹은 순전히 쾌락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극단적 무지와 가난 때문에, 때로는 진정으로 불의한 상황 때문에, 혹은 안정되고 한정된 결혼을 하는 것을 자신 없어 하거나 무서워하게 만드는 어떤 심리적 결함 때문에 이런 상황에로 몰리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일정한 동거 기간이 지나고 첫아이가 출생한 후에야 정식 결혼을 하는 것이란 전통적 관습이 있다.

이러한 현상 하나하나는 교회에 난처한 사목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것에서 파생하는, 하느님과 백성 간의 계약에 비추어 본 결혼의 종교적 의미의 상실, 성사적 은혜의 결여, 심각한 추문과 같은 커다란 종교적, 도덕적 결과들만이 아니라, 가족 개념의 파괴, 정절심(貞節心)의 약화, 자녀들의 심리적 타격, 이기심의 증대 등 사회적 결과도 있기 때문이다.

사목자와 교회 공동체는 이런 상황과 그들의 원인을 하나하나 파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목자들은 해당 부부들과 재치있고 존경스러운 접촉을 맺고, 그들을 차근차근 계몽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교정해 주고, 그리스도인 가정생활의 증거를 보여주면서 그들이 자신의 상황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도록 길을 터주어야 한다. 청소년의 도덕 교육과 종교 교육 전반에서 정절심을 육성하고, 참된 자유를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이 정절을 우호하는 조건과 구조에 관하여 교육함으로써 예방 운동을 벌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영성적 성숙에 도달하고, 인간적으로나 초자연적으로 풍요로운 성사인 결혼의 내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하느님의 백성은 또한 공권력자들에게 제언하여 이들이 사회 분열을 가져오고 시민의 존엄성, 안전, 복제에도 해로운 이 경향들을 제지하게 할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은 여론이 결혼과 가정의 제도적 중요성을 평가절하하는 쪽으로 이끌려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많은 지역에서는 젊은이들이 불의하거나 불합리한 사회 경제 구조에서 파생하는 극단적 가난 때문에 제대로 결혼할 수 없는 실정이므로, 사회와 공권력자들은 가정 수입을 보장하는 일련의 사회 정치적 결단을 취함으로써, 가정생활에 적합한 주택을 마련하는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취업과 생활의 기회를 창출함으로써 합법적 결혼을 두둔해야 한다.

다. 사회 결혼만 하는 가톨릭 신자

82. 이념이나 실천적 이유로 단지 사회 결혼식만을 선호하는 신자, 교회 결혼을 배척하거나 적어도 미루는 가톨릭 신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아무런 제도적 유대 없이 단순히 동거하는 사람들의 상황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회 결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흔히 장래의 이혼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이 경우에는 적어도 적절히 한정되고 안정될지도 모를 생활 상태에 대한 어떤 투신이 보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인정하는 공적인 유대를 맺음으로써 이런 부부는 이 유대의 이점과 아울러 의무도 수락할 준비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상황까지도 교회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사목 활동이 지향할 것은 이들이 선택하는 생활과 고백하는 신앙 사이에 획일성이 있어야 함을 이해시키고, 그들이 그리스도적 원칙에 비추어 자신들의 상황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들을 깊은 사랑으로 대하고 관련되는 공동체의 생활 안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교회의 사목자들은 마음이 아프더라도 그들에게 성사를 허용하지 말 것이다.

라. 별거하거나 이혼하였으나 재혼하지 않은 사람들

83. 불행하게도 다양한 이유는 흔히 유효한 결혼의 치료할 수 없는 파괴를 가져온다. 그 이유 중에는 상호 이해의 부족과 상호 인격적 관계를 맺는 능력의 부족 등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별거는 화해를 위한 모든 타당한 시도가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 확인된 연후에 최후의 수단으로만 고려될 것이다.

별거 부부의 대부분은, 특히 무죄한 쪽의 경우, 흔히 고독과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교회 공동체는 이런 사람들을 특별히 후원해야 한다. 교회는 그들에게 존경, 유대, 이해, 실천적 도움을 풍부히 제공하여, 그들이 어려운 처지에서도 충실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회는 그들이 그리스도적 사랑의 본질인 용서하는 힘을 키워가고, 결혼생활에로 복귀할 준비를 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혼은 하였지만 유효한 결혼 유대는 갈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재혼을 거부하면서 가정의 의무와 그리스도인 생활의 책임을 수행하는 데에만 전심하는 사람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이 경우에 그들의 충실한 모범과 변함없는 그리스도인 생활은 세계와 교회 앞에서 커다란 가치를 가진 증언으로서 나타날 것이다. 이 때에는 교회가 성사를 허용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를 두지 않고 계속적 사랑과 보조를 주는 것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마. 이혼한 후 재혼한 사람

84. 불행히도 매일의 경험이 보여주는 바는 이혼한 사람들이 보통으로 가톨릭 종교 예식이 없는 재혼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이나, 점점 많은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불상사인 까닭에, 단호하고 지체 없이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의 주교들은 이 문제를 드러내 놓고 연구하였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 특히 신자들을 구원에로 인도하기 위해서 설립된 이산, 혼인 성사를 한 번 받았다가 재혼을 하려는 사람들을 재주껏 하라고 내버려둘 수는 없다. 그래서 교회는 자신의 구원 방법을 그들이 자유로이 사용하도록 끝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목자들은 진실을 알기 위하여 상황 파악을 조심스럽게 해나갈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첫째 결혼을 구제하려고 진정으로 노력하였으나, 부당하게 버림받은 사람들과 자신의 중대한 잘못으로 교회법상 유효한 결혼을 파괴한 사람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끝으로, 자녀의 양육을 위해서 재혼한 사람도 있고, 이미 치료될 수 없게 파괴된 처음 결혼을 결코 유효한 것이 아니라고 양심상의 확신을 때때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본인은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와 함께, 이혼자들을 돕고 그들이 자신들은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염려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사목자와 전 신자 공동체에 호소하는 바이다. 그들은 세례를 받은 자들로서 교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고 진정 참여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미사 성제에 참여하며 기도에 항구하라고 격려를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역시 사랑의 사업과 정의를 위한 공동체의 노력에 기여하고 그리스도적 신앙에 따라 자녀들을 키우며 참회의 정신과 실천을 연마하면서 매일매일 하느님의 은혜를 간청하라고 격려 받아야 한다. 교회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격려하며 인자한 어머니답게 행동함으로써 그들의 신앙과 희망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성서에 기반을 두고 있는 관습, 이혼 후에 재혼한 이들에게 영성체를 허용하지 않는 관습을 재확인한다. 그들의 상태와 생활 조건이 성체가 의미하고 결과하기도 하는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사랑의 일치와 객관적으로 반대되기 때문에 그들은 영성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외에, 다른 특별한 사목적 이유가 있다. 만약 그들의 영성체가 허용된다면, 결혼의 불가 해소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에 대하여 신자들은 오해와 혼란을 갖게 될 것이다.

성체성사에로의 문을 열어주는 고백성사의 사죄는, 그리스도에 대한 계약과 충실의 징표를 깨뜨린 것을 통회하는 동시에, 혼인의 불가 해소성과 더 이상 반대되지 않는 생활을 시작하려는 진정한 각오를 하는 사람들에게만 줄 수 있다. 이것은, 실제로 자녀의 양육과 같은 중대한 이유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갈라져 의무를 채울 수 없는 경우에는, 그들은 "완전한 절제 가운데, 즉 결혼 부부의 성행위를 포기하면서 살아갈 의무를 채운다는 것을"16)의미한다. 또한 혼인성사, 부부 자신과 그들의 가정, 신자 공동체에 합당한 존경을 표시하기 위하여, 모든 사목자는 사목적 성격의 어떠한 이유나 핑계가 있더라도 재혼하는 이혼자를 위하여 어떤 종류의 예식도 집행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이러한 예식은 성사적으로 유효한 새로운 혼인성사를 준다는 인상을 줄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유효하게 맺어진 결혼의 불가 해소성에 관한 오해를 갖도록 할 것이다.

교회는 이런 식으로 행동해야만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에 대한 충실을 고백한다. 동시에 교회는 그 자녀들, 특히 아무런 자기 잘못 없이 합법적 배우자의 버림을 받은 이들에 대하여 어머니다운 관심을 보인다.

교회는 굳은 신뢰를 가지고, 주님의 계명을 배척한 후에 아직도 이 상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기도와 참회와 사랑에 항구하기만 한다면, 회개와 구원의 은혜를 하느님에게서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가정이 없는 이들

85. 본인은 또 하나의 부류의 사람들, 흔히 자신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들이 살고 있는 실제 상황의 결과로, 본인의 생각으론, 그리스도의 마음에 특히 가깝고 교회와 사목의 애정과 적극적 염려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에 대하여 한 마디 더 첨부하고자 한다.

세상에는 불행히도 정식으로 가정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의 가족이라고 도저히 주장할 수 없는 사람들이 무수하다. 인류의 상상 부분이 극단적인 가난 속에 혼음, 무주택,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한 관계, 극단적 무지 때문에 진정한 가정이라고 할 수 없는 조건 안에서 살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세상에 홀로 남게 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가정의 기쁜 소식"은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있는 것이다.

극단적 가난 속에 사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본인은, 정치 차원의 해결책이라도, 그들을 진정으로 돕고 이 비인간적인 비하의 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발견하기 위하여 용감하게 노력할 긴급한 필요성에 대하여 이미 언급하였다.

이것은 사회 전체가 당면한 문제이지만 그들의 지위와 거기서 나오는 책임 때문에 당국자가 특별히 당면한 문제이며, 깊이 있는 이해와 도우려는 의지를 보여야 하는 가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가정이 없는 이들에게는 커다란 가정인 교회의 문이, 교구 가정과 본당 가정에서, 교회 기초 공동체와 사도직 운동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교회의 문이 활짝 열려야 한다. 세상에서 아무도 가정 없이 살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모든 이들의 집이고 가정이며, 특히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17)의 집이고 가정이다.

주석

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제 3차 중남미 주교회의 연설(1979. 1. 28. ), Ⅳ a 참조 [△]
2. 전례 헌장, 10항 참조 [△]
3. 혼인예식서, 17항 참조 [△]
4. 전례 헌장, 59항 참조 [△]
5. 수도생활교령, 12항 [△]
6.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Confederation of Family Advisory Bureaux of Christian Inspiration dustjf (1980. 11. 29. ), 3-4 Insegnamenti di Giovanni Paolo Ⅱ, Ⅲ, 2(1980), 1453-1454 [△]
7. 교황 바오로 6세의 제 3차 사회 홍보의 날 메시지 (1969. 4. 7.); AAS 61 (1969), 455 [△]
8.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80년 세계 홍보의 날 메시지(1980. 5. 1.): Insegnamenti di Giovvani Paolo Ⅱ, Ⅲ, 1(1980), 1042 [△]
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81년 세계 홍보의 날 메시지 (1981. 5. 1.), 5항: L'Osservatore Romano (1981. 5. 22) [△]
10. 상동 [△]
11. 교황 바오로 6세의 제 3차 사회 홍보의 날 메시지 [△]
12. 상동 [△]
13.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80년 세계 홍보의 날 메시지 [△]
14. 교황 바오로 6세의 자의 교서, Matriminia Mixta, 4-5 : AAS 62(1970), 257-259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리스도교 일치사무국 전체회의 연설(1981. 11. 13.) : L'Osservatore Romano, (1981, 11. 14.) 참조 [△]
15. 훈령, In Quibus Rerum Circumstantiis(1972. 6. 15.) : AAS 64(1972), 518-525 [△]
16. 제 6차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 폐막 연설, 7항 [△]
17. 마태 11,28 [△]
  | 05.29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26   자비로우신 하느님 (DIVES IN MISERICORDIA / 1980.11.30)  [10] 3863
25   가정교서 Gratissimam Sane  [5] 3899
24   베네딕토 16세 : 교황들(Summorum Pontificum)  5958
23   베네딕토 16세 : 교황 선출 규정의 일부 변경에 관하여  3956
22   베네딕토 16세 : 1970년 개혁 이전의 로마 전례 사용에 관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  [2] 2785
21   베네딕토 16세 :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DEUS CARITAS EST)  [3] 3114
20   구원에 이르는 고통 (Salvifici Doloris)  [7] 2283
  가정 공동체  [11] 2016
18   노동하는 인간 (Laborem Exercens)  [5] 1947
17   성체의 신비와 흠숭에 대하여  [3] 2530
16   그리스도교적 지혜 (Sapientia Christiana)  [3] 2209
15   인간의 구원자 (Redemptor Hominis)  [3] 2597
14   현대의 복음선교 (Evangelii Nuntiandi)  [9] 2342
13   마리아 공경 (Marialis Cultus)  [5] 4434
12   팔십주년 (Octogesima Adventiens)  [4] 2276
11   사제 독신생활에 관한 회칙  [9] 2896
10   민족들의 발전 (POPULORUM PROGRESSIO)  [5] 2425
9   신앙의 신비 (Mysterium Fidei)  [7] 2441
8   지상의 평화 (PACEM IN TERRIS)  [5] 2505
7   어머니요 스승 (MATER ET MAGISTRA)  [7] 2245
1 [2]
 

 

교황 문헌

교황청 문헌

주교회의 문헌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