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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요 스승 (MATER ET MAGISTRA)
조회수 | 2,257
작성일 | 05.02.12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 어머니요 스승 (MATER ET MAGISTRA) / 1961. 5. 15. / 강대인 번역

그리스도의 계명에 부합하여야 할 현대의 사회 발전에 관하여 사도좌와 더불어 평화와 일치를 누리는 존경하는 형제들인 총주교, 수석주교, 대주교, 주교, 그 밖의 지역 직권자들에게 가톨릭 세계의 모든 성직자와 신자들에게 보내는 회칙

서론

머리말

1. *(항 번호는 사도좌 관보(AAS) 53(1961), 401-464면의 단락을 따르고, 소제목은 영어 번역문을 따랐다.) 어머니요 스승(Mater et Magistra)인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만민의 어머니요 스승인 가톨릭 교회를 세우시어, 모든 시대에 그 사랑의 품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더 더욱 훌륭하고 풍요로운 삶과 더불어 구원을 얻게 하셨다.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1)인 이 교회에, 그 지극히 거룩하신 창설자께서는 두 가지 사명을 맡기셨다. 즉, 스스로 자녀들을 낳고, 그 낳은 자녀들을 가르치고 다스리라는 것이다. 교회는 어머니다운 배려로써 개개인과 민족들의 삶을 이끌어왔으며, 그 드높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언제나 최대한 존중하여 왔고 이를 철저하게 수호하여 왔다.

2.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자리다. 인간 전체 곧 영혼과 육체, 지성과 의지 등 전인을 다 포용하는 그 가르침은 인간 정신을 이 변화하는 실존 상황으로부터 언젠가는 끝없는 행복과 평화를 누리게 될 천상 생활의 영역으로 들어높이도록 촉구하고 있다.

현세와 영원

3. 그러므로 거룩한 교회는 그 무엇보다도 영혼을 성화하여 천상 은총에 참여하도록 이끌어야 하지만, 또한 인간의 일상 생활의 요구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은 생계나 교육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이든 그 어떠한 것이든 인간의 모든 복지와 번영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4. 이러한 모든 관심에서 거룩한 교회는 그 창설자이신 그리스도의 계명을 받들어 실천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2)하시고 또 "나는 세상의 빛이다"3)고 하실 때 그분은 먼저 인간의 영원한 구원을 두고 말씀하셨으나, 굶주린 군중들을 둘러보시고 불쌍히 여겨 "군중이 측은하다"4)고 탄식하실 때에는 인간의 지상적 요구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하느님이신 구세주께서는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이러한 관심을 표명하셨다. 그분은 군중들의 굶주림을 덜어주시기 위하여 여러 차례 기적으로 빵을 많게 하셨다.

5. 육신의 양식으로 주신 이 빵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수난 전날 저녁에 인류에게 주실 저 영혼의 천상 양식을 예고하고자 하셨다.

가르침과 표양

6.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스도의 명령을 이행하는 가톨릭 교회가 옛날의 부제 직무에서부터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2천년 동안 그 가르침만이 아니라 탁월한 표양으로써 끊임없이 사랑[慈善]의 횃불을 드높이 밝혀왔던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그 실천을 조화롭게 결합시켜, '주라'는 이중 계명을 놀라운 방법으로 지켜온 그 사랑은 또한 교회의 사회 교리와 사회 활동을 모두 다 포함하고 있다.

회칙 「새로운 사태」의 영향

7. 가톨릭 교회가 모든 시대에 걸쳐 가르쳐온 사회 교리와 사회 활동에 관한 가장 빛나는 문헌은 분명코 저 유명한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5)이다. 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인 레오 13세는 70년 전에 발표한 이 회칙에서 노동자들의 상황에 관한 문제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규범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였다.

8. 교황의 권고를 이처럼 전세계가 긍정하여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 주장의 무게와 그 넓이와 그 호소력에서, 레오 13세의 이 회칙에 필적할 만한 가르침은 거의 없다. 참으로 그 회칙의 규범과 권고는 후세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될 극히 중요한 것이다. 그로 인해 가톨릭 교회의 활동에는 더욱 폭넓은 지평이 열렸다. 그 최고의 목자는 비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고통과 탄식과 갈망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최우선적으로 그들의 권리 추구와 회복에 헌신하였다.

9. 저 위대한 회칙이 발표된 다음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그 회칙은 여전히 수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즉, 레오 13세를 계승한 교황들의 어록에 그 힘을 미치고 있다. 여러 교황들은 경제 및 사회 문제를 다룰 때, 언제나 레오 13세의 그 회칙에서 무엇인가를 인용하여, 그 가르침을 분명하게 밝히고 설명하거나 가톨릭 신자들의 정신에 새로운 자극을 주기도 한다. 그 회칙은 특별히 여러 나라의 법규와 제도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모든 것으로 보아, 본인의 선임자의 위대한 회칙에 담겨 있는 확고한 기반을 가진 원리와 행동 규범 그리고 어버이다운 사랑의 호소가 오늘날까지도 여전한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 회칙으로부터 사람들의 구원에 유익한 새로운 판단 기준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그 기준에 따라 현사회 문제의 성격과 규모를 판단하게 되고 사회 문제에서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책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주석

1. 1디모 3,15 참조. [△]
2. 요한 14,6. [△]
3. 요한 8,12. [△]
4. 마르 8,2. [△]
5. 「새로운 사태」:Acta Leonis XIII, 11(1891), 91-144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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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회칙「새로운 사태」와 그 이후

10. 저 지혜로운 교황님이 전세계 인류 사회에 선포한 가르침은 참으로 그 시대가 어두움에 휩싸여 있었기에 더 더욱 찬란한 빛으로 빛났다고 여겨진다. 그 당시에는 한편으로 정치, 경제 상황이 급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분쟁과 폭동이 빈발하였다.

레오 시대의 사회 상황

11.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 당시 널리 만연되어 경제 문제에서 맹위를 떨치던 경제관은 자연주의적 견해로서, 모든 것은 완전히 자연의 필연적인 힘에 귀속되어야 하며 도덕 법칙과 경제 법칙 사이에는 어떠한 상호 관계도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경제 주체들의 상호 관계를 규정하는 최고의 법칙은 오로지 무제한의 자유 경쟁이었다. 자본의 이자, 재화와 용역의 가격, 이윤과 임금 등이 오로지 시장의 법칙에 의하여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필연이며, 국가 권력이 어떤 형태로든 경제 활동에 개입하는 일은 최대한 피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는, 나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노동자들의 단체가 전혀 허용되지 않거나 묵인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적인 규범으로 인정을 받기도 하였다.

12. 그 시대의 경제계에서는 강자들의 오만한 명령이 합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명령이 사람들의 경제 관계를 온전히 지배하였으며, 그리하여 경제계 전체의 질서가 그 밑바탕에서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13. 소수의 사람들이 막대한 부를 차지해 가는 동안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날마다 더욱 극심해져 가는 빈곤 속에서 노동을 하였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생활 필수품을 구입하기에도 불충분하고 때로는 굶주림 그 자체를 해결하기에도 부족한 것이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조건들 속에서 무산자들은 노동의 희생을 강요당하였으며, 거기에는 자신의 건강과 완전한 도덕성과 종교적 신앙을 해치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이와 여성의 노동 조건은 흔히 비인간적인 것이었다. 고용인들의 눈앞에는 날마다 실업의 유령이 나타나 위협을 하였으며, 가정 생활은 점점 해체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14. 그 자연적인 귀결로서, 바로 자신들의 처지에 불만이 쌓인 노동자들은 그러한 상황을 공공연히 거부하여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또한 마찬가지 결과로서,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개선해야 할 해악보다 더 나쁜 해결책을 권장하는 극단론자들의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재건의 길

15. 이처럼 어려운 시대에, 레오 13세는 빛나는 회칙 맛새로운 사태맜를 발표하여, 인간 본성 그 자체의 요구에서 이끌어내고 거룩한 복음의 원리와 정신에 부합하는 사회적 가르침을 제시하였다. 늘 그러하듯 일부의 이론이 제기되기도 하였지만, 그 가르침은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져 대단한 찬탄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사도좌가 현세사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옹호하였던 것이 그때가 처음은 아니다. 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인 바로 레오 13세도, 어떤 의미에서는, 앞서 언급한 그 회칙의 길을 열어놓은 다른 문헌들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회칙에서 처음으로 사회 원리의 체계화가 이루어졌으며, 그 탁월한 통찰력은 후대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 회칙은 경제, 사회 문제에 관한 가톨릭 교리의 대요(summa)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해결책이 없다

16. 이 회칙은 참으로 커다란 확신을 보여주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사회 문제와 관련하여 불경스럽게도 교회를 비난하며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통의 인내를 설교하고 부유한 사람들에게 관용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면 다른 어떠한 일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할 즈음에, 레오 13세는 주저없이 노동자들의 신성한 권리를 천명하고 옹호하였다. 그는 사회 문제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원리와 규범을 제시하는 첫머리에서 분명히 말하였다. “본인은 분명히 본인에게 속한 권한으로 확신을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신앙과 교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결코 그 진정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6)

17.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들은 저 유명한 교황님이 분명하고도 권위 있게 전해준 근본 원리들을 참으로 잘 알고 있다. 경제, 사회 문제와 관련된 인간 생활의 모습은 바로 그 원리에 따라 재건되어야 한다.

인간의 노동

18. 그는 맨 먼저 노동에 관하여 이렇게 가르친다. 노동은 바로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므로, 이 노동은 결코 상품으로서만 취급될 수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노동이 생계 유지의 유일한 소득원이므로, 그 보수는 시장의 관행이 아니라 참으로 정의와 형평의 법칙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비록 쌍방이 자유롭게 맺은 노동 계약이라 할지라도 정의에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다.

사유 재산과 그 사회적 측면

19. 둘째로, 생산재까지 포함한 사유 재산권은 모든 사람이 지닌 자연권이며, 이는 결코 국가도 박탈할 수 없다. 그런데 재산의 사적 소유권은 자연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 권리는 자신의 이익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누리는 것이고 또 반드시 그렇게 하여야 한다.

국가의 역할

20. 국가는 현세 질서에서 공동선의 실현을 그 목적으로 하므로, 국민 경제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국가는 먼저 풍부한 재화가 생산되도록 적절히 배려하여야 한다. “재화의 사용은 덕행에 필요하다.”7) 또한 모든 국민의 권리, 특히 노동자들과 같은 약자, 여성과 어린이들의 권리를 맨 먼저 보호하여야 한다. 국가는 또한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여야 할 의무를 결코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21.. 더 나아가서, 노동 계약이 정의와 형평의 규범에 따라 이루어지게 하고, 노동 환경에서 영육간의 인간 존엄성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보살피는 것이 국가의 임무다. 이를 위하여 레오 회칙은 인간 생활 조건에 관한 정의롭고도 타당한 원리를 광범위하게 제시하였다. 이 원리들은 여러모로 현대 국가의 법률에 도입되었으며, 본인의 선임자인 비오 11세가 회칙 「사십주년」8)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새로운 법률 분야인 노동법의 제정과 발전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결사의 권리

22. 그리고 레오 회칙에서는 노동자들의 단체 가입을 자연권이라고 천명하였다. 노동자들만으로 이루어졌든 노동자들과 고용주들로 결성되었든, 그러한 단체들은 그 직업 분야에 더욱더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조직을 갖출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노동자들은 또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그러한 단체 안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주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연대와 그리스도교적 형제애

23. 끝으로, 노동자와 고용주는 인간 연대의 원칙과 그리스도교적 형제애의 규범에 따라 그들의 상호 관계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이른바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선전하는 무제한의 경쟁이나 마르크스주의적인 의미의 계급 투쟁은 모두 그리스도교 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바로 인간의 본성과도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24.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이러한 원리들이 바로 경제, 사회 질서의 바탕이 되어야 할 근본이다.

25. 그러므로 훌륭한 가톨릭 신자들이 이러한 호소에 고무되어 그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전세계 도처에서 선의를 지닌 많은 사람들이 인간 본성 자체의 요구에 따라 같은 길을 추구하고 있다.

26. 이러한 까닭에, 매우 당연하게도, 그 회칙은 오늘날까지 새로운 경제, 사회 질서의 구축을 위한 “대헌장”9)으로 불리고 있다.

회칙「사십주년」

27. 저 빛나는 원리집이 나온 지 40년이 지난 다음, 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인 비오 11세는 자신의 회칙 「사십주년」10)을 발표하였다.

28. 그 문헌에서 교황님은 모든 사람들의 공동 노력을 촉구하는 중대한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가톨릭 교회의 권리와 의무를 확인하였다. 그는 시대 상황에 적합한 레오 회칙의 원리와 지침들을 강조하고 보존하는 한편, 그 기회를 이용하여, 가톨릭 신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리의 일부 측면을 분명하게 밝히고, 사회 질서에 관한 원리와 지침은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맞게 제시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29. 그 당시 의문시되었던 것은 특히 사유 재산, 임금 제도, 일종의 온건 사회주의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사유 재산, 임금 제도

30. 무엇보다도 먼저, 사유 재산권은 바로 자연법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본인의 선임자는 천명하고, 사적 소유의 사회적 측면과 그 사회적 책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또 강조하였다.

31. 임금 제도와 관련하여, 위대한 교황님은 그 제도 자체가 본질적으로 불의하다는 견해를 배격한 다음, 흔히 드러나는 비인간적이고도 불의한 임금 제도를 개탄하였다. 그는 또한 임금 제도가 정의와 형평에 벗어나지 않도록 준수하여야 할 규범과 조건들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32. 이와 관련하여, 본인의 선임자가 명확하게 가르친 것과 같이, 현재의 상황에서, 노동 계약은 어느 면으로 동반자 계약의 관점에서, 다시 말하면 “노동자와 관리직 종사자들이 소유나 경영에 공동으로 참여하고 어떻게든 이윤의 분배에 참여하도록”11) 조절되어야 할 것이다.

33. 비오 11세의 가르침 가운데서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만일 인간 노동의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성격이 간과된다면, 노동은 정의에 따라 평가될 수 없고 형평에 따른 보수도 받을 수 없다”12)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의 결정에서 정의가 요구하는 바는 노동자 자신과 그 가족들의 필요를 고려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일하는 기업의 생산력과 “공공의 경제적 복지”13)를 다같이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34. 더 나아가서 그 위대한 교황님은 이른바 공산주의의 관점과 그리스도교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상반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다소 온건한 견해를 지닌 것 같은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이라 하더라도, 가톨릭 신자들은 결코 이를 지지할 수 없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사회 생활의 질서는 현세에 국한된 것이어서 오로지 사멸할 현세 생활의 복리만을 지향하는 것이 되고, 인간의 공동 생활과 사회 관계는 외적 재화의 생산에 매여 있어서 인간의 자유는 극도로 위축되고 사회 권위에 대한 진정한 개념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다른 문제들

35. 비오 11세는 레오 회칙이 발표된 후 40년 동안에 역사적 조건과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상 무제한의 자유 경쟁은 그 본질이나 속성으로 말미암아 경쟁 그 자체가 소멸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거대한 부가 축적되고 그 과정에서 소수의 수중에 권력이 집중되었다. “그 소수의 사람들도 대개는 소유주가 아닌, 투자된 자본의 위탁이나 관리를 맡은 사람들로서 그들 마음대로 자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14)

36. 그러므로, 교황님이 사려 깊게 경계하였듯이, “경제 권력이 자유 시장을 뒤덮고, 이윤 추구의 욕망은 고삐 풀린 지배의 야망으로 이어져 전반적인 경제 생활은 끔찍할 정도로 어렵고 잔인하고 불안정하게 되었다.”15) 이리하여 국가의 공권력은 한층 더 부유한 사람들에게 예속되었고, 축적된 부는 어느 면에서 전세계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해결책

37. 이와 같은 경향을 적절히 바로잡고자, 그 교황님은 경제 질서를 도덕 질서 안에서 재건하여야 하며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은 공동선에 최대한 부합하여야 한다는 것을 근본 규범으로 제시하였다. 본인의 선임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첫째로 국가의 지시를 받지 않고 자주성을 지닌 소규모의 경제적 직업적 중간 단체들을 조직하여 사회 생활을 재건하여야 하고, 그 다음으로 국가 권력은 모든 사람들의 공동선을 증진하는 자신의 책무를 혁신하여야 하며, 마지막으로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각국은 상호 협력을 통하여 모든 민족들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여야 한다.

38. 비오 회칙의 고유한 가르침으로 보이는 요점은 먼저 이 두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 절대로 금지하는 것이 있다. 즉,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 무제한의 자유 경쟁, 부자들의 지나친 권력, 국가의 야심이나 지배욕,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을 경제의 최고 법칙으로 삼아서는 결코 안된다.

39. 모든 형태의 경제 활동은 반드시 사회 생활의 주요 법칙인 정의와 사랑이 지배하여야 한다.

40. 둘째, 본인이 비오 11세 회칙의 고유한 가르침이라고 보는 요점은, 개별 국가에서든 국제 사회에서든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공공 기구나 민간 단체들이 결성되고 사회 정의를 수호하는 사법 질서를 확립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질서 안에서 자신의 이익과 모든 사람의 공동선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비오 12세의 라디오 담화

41. 본인의 선임자인 비오 12세는 사회적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데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1941년 6월 1일 성신 강림 대축일의 거룩한 날, 그는 전세계 인류 공동체에 보내는 담화를 라디오 전파를 통해 방송하였다. “교회 역사에 금자탑으로 새겨질 사건, 곧 레오 13세의 극히 중대한 저 회칙「새로운 사태」반포 50주년 기념에 대한 모든 가톨릭 신자들의 관심을 촉구”16)하였다. 더 나아가, “지상의 대리자의 이 회칙을 통해서 교회에 베풀어주신 그토록 큰 은혜에 대하여 전능하신 하느님께 커다란 감사를 드리고, 그 회칙을 통하여 전인류가 새롭고 더 나은 더 더욱 많은 노력을 불러일으키도록 그 불을 밝혀주신 영원하신 성령께 불멸의 찬미를 드리기 위하여”17) 이 담화를 발표한 것이다.

교회의 권한

42. 그 라디오 담화를 통하여 위대한 교황님은 “한 사회 제도의 토대와 목적이 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신 하느님께서 자연법과 계시 진리를 통하여 정해주신 확고한 질서에 부합하는지 그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교회의 권리요 권한이다”18)고 선언하였다. 그분은 레오 13세의 회칙이 모든 시대에 걸쳐 영구적인 가치와 풍부한 유용성을 지녔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 기회를 이용하여 “사회 경제 생활의 세 가지 요체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설명하였다. “이 세 가지 요체란 물질 재화의 사용, 노동, 가정이다. 이 요체들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으며 상호 의존적이다.”19)

물질 재화의 사용

43. 물질 재화의 사용과 관련하여, 본인의 선임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계를 위하여 외적 재화를 사용할 권리는 다른 모든 경제적 권리에 앞서는 것이며 따라서 사유 재산권에도 우선하는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본인의 선임자는 사유 재산권 또한 분명히 자연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유 재산권은 “하느님께서 만민을 위해서 창조하신 이 물질 재화는 정의와 사랑의 요구에 따라서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소유하여야 한다”20)는 원리를 결코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 창조주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였다.

노 동

44. 노동과 관련하여, 비오 12세는 레오 회칙의 표현을 되풀이하여, 노동이 모든 인간의 의무인 동시에 권리라고 가르쳤다. 따라서 노동 관계를 결정하는 권한은 일차적으로 노사 당사자들에게 있다. 당사자가 해결하려고 하지 않거나 해결하지 못할 상태에 있어서만, “국가는 참으로 공동선이 요구하는 형태와 목적에 따라 노동의 공정 2분배와 배치에 간여할 의무가 생긴다.”21)

가 정

45. 가정 문제와 관련하여, 교황님은 물질 재화의 사적 소유가 가정 생활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유 재산은 “가장이 적절하고도 진정한 자유를 확보하게 하여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가족의 육체적 정신적 종교적 복리에 관한 모든 의무를 이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22) 여기에서 바로 가정의 이민권이 파생되어 나온다. 이와 관련하여, 본인의 선임자는 이민을 허락하는 나라든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든 국가 지도자들은 “국가간의 상호 이해와 신뢰를 저해하거나 파괴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 절대로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23)고 권고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 나라 국민들에게 똑같은 혜택이 널리 돌아가고 풍부한 재화와 예술의 증진 및 발전에 이바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 이후의 변화

46. 당시의 상황은 비오 12세가 회고하던 그 이전의 시대 상황과는 크게 달랐으며,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 각국의 내부 상황만이 아니라 국제 관계도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과학, 기술, 경제

47. 과학·기술·경제 분야를 볼 때, 이 시대의 새로운 발전은 주로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전쟁에 사용되다가 나중에는 평화적 이용이 증가되고 있는 원자력의 발견,화학 기술로 합성 물질을 생산해 내는 무한한 가능성, 제품 생산의 자동화 그리고 산업 기술과 서비스 분야의 광범위한 자동화 도입, 농업의 근대화, 통신 특히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한 민족간의 거리감 극복, 그 속도가 현저히 증가된 온갖 교통 수단, 우주로 가는 길의 개척 등이다.

사회 분야

48. 사회 분야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 시대의 경향이 뚜렷하다. 즉, 사회 보험 제도의 발달, 일부 경제 선진국의 사회 보장 제도 도입, 노동자들과 조합원들의 경제 사회 생활의 주요 문제에 대한 커다란 각성, 대다수 국민들에 대한 기초 교육의 진보적 개선, 편리한 생활의 광범위한 확산, 산업 사회의 유동성 증가와 그로 인한 계층 분화의 쇠퇴, 보통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세계 문제에 대해 이전보다 더 큰 관심을 갖는 경향 등이다. 또한 동시에 사회, 경제적으로 상당한 발전을 이루고 있는 많은 나라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명백한 불균형이 날로 증대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한편으로는 농업과 공업과 공공 서비스의 불균형, 그리고 동일한 국가의 지역간 경제 불균형, 그리고 세계적인 규모로 보아 국가간의 경제 자원의 불균형이 증대되고 있다.

정치 분야

49. 정치 분야에서도 수많은 혁신이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오늘날 많은 나라들에서는 각계 각층의 많은 시민들이 공적 직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오늘날 국가 지도자들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경제 사회 문제에 간여하고 있다. 오늘날 식민 통치 체제를 축출한 아시아 아프리카 민족들은 자국의 법률과 제도에 따라 독립 자치를 하고 있다. 민족들간의 상호 관계가 증대될수록 그로 인한 상호 의존성이 증가하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개별 국가의 목표나 이해를 초월하여,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문제 그리고 민족들의 상호 관계 등을 논의하며 모든 민족들의 이익을 모색하는 집회와 회의들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새 회칙의 발표 이유

50. 이 모든 것을 숙고하는 가운데, 본인은 먼저 위대한 선임자들이 일으킨 횃불을 꺼지지 않게 살려나가고, 우리 시대에 알맞게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문헌들에서 영감과 교훈을 얻도록 하는 것이 본인의 의무라고 여긴다. 따라서 본인은 이 회칙으로써 레오 회칙의 공적을 기리며, 변화된 상황에 비추어, 본인의 선임자들이 전해준 가르침들을 확인하고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동시에 현대의 새롭고도 중요한 문제들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밝히고자 한다.


6. 「새로운 사태」, 12항:Acta Leonis XIII, 11(1891), 107면.
7. 성 토마스 데 아퀴노, De regimine Principum, Ⅰ, 15.
8. 「사십주년」, 12항:AAS 23(1931), 185면 참조.
9. 「사십주년」, 16항:AAS 23(1931), 189면 참조.
10. 「사십주년」:AAS 23(1931), 177-228면.
11. 「사십주년」, 30항:AAS 23(1931), 199면 참조.
12. 「사십주년」, 31항:AAS 23(1931), 200면 참조.
13. 「사십주년」, 34항:AAS 23(1931), 201면 참조.
14. 「사십주년」, 41항 이하:AAS 23(1931), 210면 이하 참조.
15. 「사십주년」, 42항:AAS 23(1931), 211면 참조.
16. AAS 33(1941), 196면 참조.
17. AAS 33(1941), 197면 참조.
18. AAS 33(1941), 196면 참조.
19. AAS 33(1941), 198면 이하 참조.
20. AAS 33(1941), 199면 참조.
21. AAS 33(1941), 201면 참조.
22. AAS 33(1941), 202면 참조.
23. AAS 33(1941), 203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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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회칙「새로운 사태」의 해설과 발전

사기업과 국가 개입

51. 맨 먼저 언급하여야 하는 것은 개인이 혼자서 운영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과 여러모로 연합하여 자신들의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私企業)에 경제 분야의 우선적인 위치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52. 그러나 본인의 선임자들이 그 이유를 설명하였듯이, 경제 문제에 대한 국가 권력의 작용도 필요하다. 국가는 외적 재화의 증대를 올바로 촉진시키고 사회 생활의 진보와 모든 국민의 복지를 실현시켜야 한다.

53. 육성하고 격려하고 조정하고 보충하고 보완하는 국가의 이러한 배려는 보조성의 원리24)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비오 11세는 회칙「사십주년」에서 보조성의 원리를 이렇게 제시한다. “개인의 창의와 노력으로 완수될 수 있는 것을 개인에게서 빼앗아 사회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은 확고 부동한 사회 철학의 근본 원리이다. 따라서 한층 더 작은 하위의 조직체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을 더 큰 상위의 집단으로 옮기는 것은 불의이고 중대한 해악이며, 올바른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모든 사회 활동은 본질적으로 사회 구성체의 성원을 돕는 것이므로 그 성원들을 파괴하거나 흡수해서는 안된다.”25)

54. 최근의 과학 발전과 생산 기술의 발달로 인해, 그 이전보다 훨씬 더, 국가 지도자들의 권력이 여러 경제 분야간의 불균형과 동일 국가 내의 여러 지역이나 전세계의 여러 민족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을 감소시킬 수 있게 되었으며, 흔히 불안한 경제 변동 과정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고, 또 사람들의 대량 실업 사태를 예방하는 효과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기에 공동선을 책임진 국가 지도자들에게는 수많은 경제 문제에 대하여 전에보다 더 광범위하고 더욱더 체계적인 개입을 하라는 요청이 거듭되고 있으며, 그들은 이러한 목적 달성에 적합한 기구와 직무를 설정하고 적절한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55. 공권력의 경제에 대한 배려가 광범위하여 사회의 사사로운 분야에까지 미친다 하더라도, 그 개입은 개인의 행동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증진시켜야 하며 그럼으로써 인간 기본권의 보호를 보장하여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옳다. 거기에는 개인이 자기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정상적으로 유지하여야 할 권리와 의무가 포함된다. 그러므로 모든 경제 체제는 개인에게 영리 활동의 자유를 허용하여야 하고 또 그 자유로운 전개를 촉진시켜야 한다.

56. 경제에서 국민 개인과 국가 지도자들이 공동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결코 질서 있고 번영하는 사회를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역사의 과정 그 자체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즉, 서로 화합하는 노력으로 경제 활동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 양편의 노력은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서 각기 공동선의 요구에 최대한 부응하여야 한다.

57. 실제 경험으로 보아, 개인의 창의력이 부족한 나라에서 독재 권력이 지배하게 되었다. 더욱이 그러한 곳에서는 여러 경제 부문이 피폐해져, 수많은 소비재가 결핍되고, 육신은 물론 특히 정신의 필요와 관련된 재화들이 부족해진다. 바로 그러한 재화와 서비스의 획득을 위하여, 개인의 창의력과 사기업은 놀라운 방법으로 활동하고 또 자극을 받는 것이다.

58. 다른 한편으로, 경제에 대한 국가의 의무 이행 활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거나 잘못 이루어지는 곳에서 그 국가는 왜곡된 구조에서 불치의 혼란으로 빠져들게 되고, 파렴치한 강자들은 자기네 이익을 위하여 부당하게도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게 된다. 오, 슬프도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마치 밀밭의 가라지처럼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뿌리를 박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회 구조의 복합성

분화 경향

59. 우리 시대의 고유한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분명히 사회 관계의 증대다. 즉, 국민들 사이에서 날로 더욱 증가되고 있는 상호 의존성이다. 그러한 상호 의존성으로 인해 국민 생활과 그 행동에는 수많은 형태의 사회적 결사가 도입되었으며, 이는 사적인 규범이나 국가 법률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 시대가 드러내고 있는 여러 가지 요인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과학 기술의 발전, 생산성의 증대, 국민 생활 수준의 향상 등이다.

60. 사회 생활의 이러한 발전은 국가 개입 활동의 징후인 동시에 그 원인이다. 인간 생활의 내밀한 측면에까지 관련되어 중요하면서도 위험이 없지 않은 문제들에 국가는 갈수록 더 활발하게 개입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국민 보건, 청소년 교육과 양성, 직업 훈련의 선택, 심신 장애자들을 위한 원호와 재활의 방안과 그 수단 등에 관련된 국가의 활동이다. 이는 저마다 마음속으로 원하기는 하지만 개인의 역량을 넘어서는 재화를 얻고자 노력할 때에, 사람들이 자원하여 서로 협동하는 단체를 만들어내는, 거의 억제할 수 없는 본성의 경향을 드러내는 표현이요 그 귀결이다. 이러한 경향의 움직임으로 특히 이 최근에 들어 어디서나, 경제, 사회, 문화, 오락, 스포츠, 기술 직업, 정치 등과 관련된, 국가적 세계적 차원의 수많은 모임과 단체와 기구들이 결성되었다.

평 가

61. 참으로 수많은 편의와 유익함이 이러한 사회 관계의 진보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사실 그렇게 하여 주로 경제 사회 생활에서 개인의 수많은 권리들을 제대로 충족시켜 줄 수 있다. 여기에는 생활 필수품, 보건, 더욱 광범위하고도 수준 높은 기본 교육, 더 적절한 기술 교육, 주택, 노동, 합당한 휴식과 여가 선용 등이 포함된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 사상 전파 수단, 즉 신문, 출판, 영화,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등 더욱더 체계화되는 현대 기술의 발전으로, 도처의 지구인들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현장에 있는 것처럼 세계적 사건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62. 나날이 진보하는 다양한 결사 형태의 증가는 동시에 많은 활동 분야에서 시민들의 상호 관계를 지배하고 규정하는 규범과 법률들을 증가시켰다. 그 결과,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 영역은 좁아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흔히 기술 수단을 사용하고 그 방법을 따름으로써, 외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창적으로 사고하며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마땅히 권리와 의무를 수행하며 자신의 정신 역량을 충분히 표현하고 발휘하기가 매우 어려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갈수록 더욱더 증대되는 사회 관계로 인해 인간은 곧바로 자동 장치가 되어 자율성을 상실해 버리는 것인가? 이는 단연코 부정하여야 한다.

자유로운 인간의 창조

63. 그 이유는 사회 생활의 발전이 결코 자연적 본성의 맹목적인 충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본인이 이미 천명한 바와 같이, 인간은 본성으로부터 충동을 받지만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자유를 지닌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 진보의 법칙과 경제 발전의 과정을 인정하고 또 거기에 순응하여야 한다. 또한 인간은 환경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64. 그러므로 사회 관계의 진보는 시민의 편의를 최대한 증진시키고 참으로 언제 어디서나 그 불편을 제거하거나 적어도 극소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그렇게 이루어져야 한다.

적절한 균형

65. 모두가 바라는 이러한 결과가 더 수월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가 지도자들이 모든 사람의 공동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지녀야만 한다. 공동선의 개념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완성을 더욱 충만하게 더욱더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사회 생활의 모든 조건들을 포함하고 있다. 주로 사회 관계의 증대를 이루는 중간 단체나 집단 그리고 무수한 기업들이 자율로 다스려지고 그 자체의 이익과 공동선의 추구를 위하여 성실하게 협력하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러한 집단들은 진정한 공동체의 형태와 본질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 구성원들을 언제나 인격체로서 대우하고 그들이 맡은 역할을 다하도록 격려할 때에 드러나는 것이다.

66. 따라서, 우리 시대의 인간들을 서로 결합시켜 주는 유대 관계가 발전할수록 국가는 좀더 수월하게 올바른 질서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올바른 질서 안에서 이 두 가지가 서로 균형을 이루게 될 것이다. 즉, 시민 개인이나 시민 집단이 상호 협력하는 가운데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권한 그리고 사적인 사업을 적절히 지도하고 육성하는 국가의 활동이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67. 사회 관계가 참으로 이러한 규범과 도덕률에 따라 이루어지는 한, 사회 관계의 증대가 필연적으로 개별 시민들에게 중대한 차별이나 지나친 부담을 줄 까닭은 전혀 없다. 사회 관계의 증대는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타고난 역량을 계발하고 발전시키게 할 뿐 아니라 다행스럽게도 인간 공동체 생활의 적절한 구조로 이끌어나가리라는 희망을 우리는 바라볼 수 있다. 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인 비오 11세가 회칙 「사십주년」26)에서 권고한 바와 같이, 그러한 사회의 유기적 재건은 사회 생활의 권리와 의무를 완전히 충족시키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동의 보수

정의와 형평의 법칙

68. 수많은 노동자들의 모습, 저 비참한 광경을 목격하며, 본인의 마음은 격렬한 슬픔을 가눌 길이 없다. 많은 나라에서 전세계 모든 대륙에서 대다수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인간 이하의 생활 상태로 몰아넣는 너무나 적은 노동의 보수를 받고 있다. 그러한 지역에서는 현대의 산업 기술이 바로 최근에야 도입되었거나 아직은 거의 발전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69. 그 가운데서도 어떤 나라들에서는 대다수가 극도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음에도 극소수의 부요와 과소비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극명하고도 가혹하게 대비되고 있다. 또 어떤 나라들에서는 정의와 형평의 법칙을 침해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단기간의 국가 성장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 또 다른 나라들은 소득의 엄청난 부분을 지나친 국위 신장에 낭비하고 있으며, 막대한 돈을 전쟁 준비에 허비하고 있다.

70. 여기에 더하여,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한 나라들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그 유용성이 의심스러운 일에도 넉넉하고 엄청난 임금을 주는 반면, 부지런하고 성실한 시민 계층이 하는 건실하고 유익한 노동에 대한 임금은 너무나도 적어 생계 유지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가에 대한 그들의 공헌이나 그들이 일하는 기업의 이익과 국민 소득에 비하여 극히 부당한 것이다.

정당한 임금 결정 요인

71. 그러므로 노동의 보수는 자유 경쟁에 전적으로 방임되거나 힘있는 자들의 일방적인 결정에 맡겨져서는 결코 안되며 오로지 정의와 형평의 규범을 완전하게 준수하여야 한다고 권유하는 것이 본인의 의무라고 여긴다. 참으로 이 규범은 노동자가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가족 부양의 책임을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적정 임금의 결정에서는 반드시 다음 사항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로 경제 재화의 생산을 위한 개인의 기여도, 그리고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는 그 기업의 재정 상태, 그 다음으로 국가의 이익 특히 완전 고용과 관련된 요구, 마지막으로 모든 민족들의 공동선, 즉 그 성격과 범위는 다르지만 상호 결사체를 이루고 있는 여러 나라들의 공동선을 고려하여야만 한다.

72. 방금 말한 이 규범들이 언제 어디서나 유효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규범을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하는 일에서, 기존 자원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그 적용 기준을 확실하게 세울 수가 없다. 여러 민족이 지닌 자원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서로 다를 수 있고 또 실제로 다르며, 같은 나라 안에서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제 개발과 사회 진보의 균형

73. 우리 시대에 특히 지난번 대전 이후 국가 경제가 더욱 급속히 발전해 가는 이때에, 본인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회 정의의 중대한 원리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즉, 경제 성장에는 언제나 사회 진보가 수반되어야 하고 동시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하여 국부의 증대로부터 각계 각층의 국민들이 공평한 혜택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사람들이 각성하고 노력하여, 불평등으로 야기되는 국민 계층간의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고 되도록 줄어들게 하여야 한다.

74. 2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인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사려깊게 가르친다. “국부는 국민의 공동 노력이 낳은 산물이므로, 개인이 충만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물질적인 조건을 아무런 중단 없이 온전히 보장하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을 지닐 수는 없다. 이러한 조건이 확고하게 보장된 곳에서 이를 누리고 사는 국민은 참으로 많은 힘을 지닌 부자라고 할 수 있다. 공동의 번영이 이루어지고 물질 재화에 대한 개인의 권리가 행사되는 체제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세우신 규범에 온전히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7) 여기에서 어떤 국민의 경제적 번영을 소유 자산의 총액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의의 규범에 따라 이루어지는 재화의 분배로써 평가하여야 한다는 원칙이 나온다. 바로 모든 국민이 자신을 발전시키고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 경제 전체가 그 본질상 지향하는 목적이다.

소유에 대한 참여

75. 우리는 여기서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대기업이나 중간 규모의 생산 기업들이 산업 설비의 개선 또는 확충을 위한 자금을 자체 이익으로 충당하여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 있는 경제 체제에 유의하여야 한다. 본인은 이러한 경우에 그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성장의 몫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업 자체는 막대한 이익을 챙기면서도 노동자들의 임금이 최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라면 더 더욱 그리하여야 한다.

76. 이 문제와 관련하여, 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 비오 11세가 그 회칙 「사십주년」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 원칙을 상기하여야 한다. “자본과 노동의 협력으로 얻어진 것을 어느 한편에만 귀속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그릇된 것이며, 또한 어느 한편이 다른 편의 노력을 무시하고 모든 이익을 독점한다는 것은 정의에 크게 어긋난다.”28)

77. 이에 대한 정의의 요구는 경험에 비추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충족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차지하고라도, 오늘날에는 좀더 적절하다고 보이는 방법으로 노동자들이 점차 그 기업 자체의 소유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본인의 선임자 시대보다도 더 “모든 노력을 다하여, 적어도 앞으로는 생산된 재화의 공정한 몫만이 자본가의 수중에 축적되게 하고, 충분한 몫이 노동자에게 지급되도록 해야 한다.”29)

공동선의 요구

78. 또한 적정 임금과 이윤의 결정은 개별 국가나 전세계 인류 공동체의 공동선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사실에 유의할 것이다.

79. 이 문제의 한 측면을 보자면, 국가의 공동선을 위하여 다음 사항들을 고려하여야 한다. 즉, 최대 다수 노동자의 고용, 국가 사회는 물론 노동 계층 자체의 특권층 형성 방지, 임금과 물가의 균형 유지, 최대 다수가 활용할 수 있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재화와 서비스의 제공, 그리고 농업, 공업, 서비스 등 경제 분야간 불균형의 완전 제거나 최소화, 경제 성장과 공공 서비스 발전의 균형 특히 공권력의 활동을 통한 균형 도모, 과학 기술의 발전에 적응하는 생산 수단의 개선, 마지막으로 현시대에 유익할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행복도 조망하는 더욱더 인간다운 삶의 번영을 고려하여야 한다.

80. 또 다른 측면에서, 전세계 인류 사회의 공동선은 다음 사항들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부의 증진을 추구하는 국가간 경쟁의 불신 제거, 경제 분야의 상호 융화와 우호적이고도 유익한 협력 증진, 마지막으로 경제적 저개발 국가들의 발전을 위한 효과적인 원조 제공 등이다.

81. 또한 기업의 경영 책임자들에게 소득으로 돌아가거나 자본을 투자한 사람들에게 이자나 배당으로 돌아가는 이윤의 분배를 결정할 때에도 개별 국가나 전세계의 공동선의 요구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24. 「사십주년」, 35항:AAS 23(1931), 203면 참조.
25. 상동.
26. 「사십주년」, 56항:AAS 23(1931), 222면 이하 참조.
27. AAS 33(1941), 200면 참조.
28. 「사십주년」, 24항:AAS 23(1931), 195면.
29. 「사십주년」, 29항:AAS 23(1931), 19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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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체제와 관련된 정의의 요구

인간 존엄성에 부합하는 구조

82. 노동이 요구하는 재화의 분배만이 아니라 인간이 재화를 생산하는 그 조건도 정의의 법칙에 부합되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의 요구에 따라, 노동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책임을 이행하고 노동을 통해 자기 자신을 완성할 수 있어야 한다.

83. 따라서, 경제 체제의 구조와 조직이 노동을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 존엄성을 위태롭게 만들거나 책임 의식을 약화시키거나 행동의 자유를 박탈한다면, 비록 거기서 막대한 재화가 생산되고 정의와 형평의 규범에 따라 그 분배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러한 경제 체제는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비오 12세의 가르침

84. 어떠한 경제 체제가 인간의 존엄성에 더욱더 합치되고, 인간의 책임 의식을 더 더욱 적절히 고무하는 것인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지라도 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인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은 행동 규범을 적절히 제시하였다. “농업, 수공업, 상업, 공업에 관련된 중소 기업체를 보호 육성하여야 한다. 특히 협동 조합을 결성함으로써 그들도 대규모 운영의 이점과 혜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과 관련하여, 노동 계약은 어느 면에서 단체 협약으로 조정되어야 한다.”30)

수공업과 협동 조합

85. 수공업 경영이나 가족 규모의 농업 경영 또는 그러한 경영의 보완을 목적으로 설립된 협동 기업은 기술의 진보와 공동선의 요구에 따라 적절히 보호되고 장려되어야 한다.

86. 농업 경영에 관하여는 다음에 말하기로 하고, 지금은 수공업 경영과 협동 기업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87. 그 무엇보다도 먼저, 이러한 종류의 경영과 기업이 스스로 살아남아 번영하려면 그 생산 구조나 경영 방식에서 새로운 시대 상황에 끊임없이 적응해 가야만 한다. 이 새로운 상황이란 과학 기술의 진보로부터 또는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와 성향에서 나날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적응은 그 누구보다도 수공업자 자신과 협동 조합원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88. 그러한 까닭에, 이 두 집단은 기술의 숙련과 정신적 지성적 소양을 갖추기 위하여 적절한 교육을 받아야 하며, 또한 전문 직업 단체를 조직하여야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는 특별히 그들을 위하여 교육, 조세, 신용, 사회 보장과 보험에 관한 적절한 배려를 하여야 한다.

89. 또한 수공업자나 협동 조합원들을 위한 국가의 그러한 배려는 그들이 바로 진정한 부요의 생산자가 되고 더 나은 인간 진보를 성취하도록 도와주고 이를 촉진하는 것이라야 한다.

90. 따라서, 본인은 사랑하는 아들들인 전세계의 수공업자와 협동 조합원들에게 어버이다운 마음으로 권유한다. 그대들은 사회에서 자신이 맡은 고귀한 임무를 제대로 인식하여야 한다. 그대들의 노동으로 시민 사회에서 책임 의식과 협동 정신이 날로 더욱 고무되고, 뛰어난 창의력을 살려나가는 새로운 노동을 하려는 사람들의 불타는 의욕이 고취되기를 바란다.

노동자들의 기업 참여

91. 더 나아가, 본인의 선임자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은 자신이 속하여 일하고 있는 그 기업의 활동에 대한 참여를 당연히 기대하여야 한다고 본인은 확신한다. 그러한 참여의 방법과 정도를 분명하고 확실한 기준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는 오히려 개별 생산 기업의 상황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그 상황이란 어디서나 똑같을 수 없으며, 흔히 하나의 동일한 기업에서도 상황은 완전히 또 갑자기 변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은 노동자들이 사유 기업이든 국영 기업이든 자신이 일하는 기업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어떻든 기업은 재화 생산을 통하여 진정한 인간 공동체의 특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그 공동체 정신이 개인의 요구와 다양한 임무와 활동에 완전히 젖어들어야만 한다.

92. 이를 위해서는, 고용주들과 경영자들이 그 기업의 노동자들과 서로 맺는 관계가 상호 이해와 존중 그리고 선의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이익 추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고 책임을 완수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봉사를 하려는 목적에서 진지한 협력과 화합으로써 공동 노력을 추구하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기업의 능률적인 운영과 발전에 관한 노동자들의 소망이 받아들여지고 그들의 단합된 노력이 촉구되어야 한다. 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인 비오 12세는 이렇게 분명히 권고하였다. “모두가 추구하는 경제적 사회적 역할은 개인의 노력이 타인의 의사에 완전히 지배당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31) 인간의 존엄성에 참으로 부합하는 기업도 관리 운영의 필수적이고도 효율적인 통일성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하여 그 기업에서 날마다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소망과 경험을 살릴 여지도 없이 묵묵히 명령만을 수행하여야 하는 노예의 위치로 전락시켜, 자기 노동의 안배와 조절에 관한 의견을 지녀야 할 때에 그저 무기력하게 행동하도록 해서는 결코 안된다.

개인의 역할

93. 마지막으로, 오늘날 노동자들이 여러 생산 기업에서 더 중요한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여야 한다. 이러한 요구는 인간 본성에도 부합하는 것일 뿐 아니라 경제, 사회, 정치 분야의 역사적 발전에도 합치되는 것이다.

94.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우리의 이 시대에는 정의와 인도에 어긋나는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적지 않다. 모든 경제 분야에 많은 오류들이 침투하여 경제 활동과 그 목적, 조직, 임무 수행을 심각하게 부패시키고 있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진보에 자극을 받아 최근의 생산 체계는 그 이전보다 급속한 발전과 혁신과 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오늘날의 노동자들에게 더욱 뛰어난 재능과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적절하고도 더 훌륭한 교육을 받고 학문, 도덕, 종교에 관한 의무를 더 적절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더 많은 도움과 더 많은 시간이 충분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95. 이리하여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는 기초 교육과 기술 훈련을 위하여 더 많은 기간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96. 만일 그렇게 된다면, 노동자들이 그들의 기업체에서 더욱 중요한 직무를 부여받을 수 있는 상황이 나타날 것이다. 국가를 보자면, 또한 각계 각층의 국민들이 스스로 공동선을 수호해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경제 전반에 대한 노동자들의 참여

97. 모든 사람들이 목격하는 바와 같이, 우리의 이 시대에는 노동자 단체들이 광범위하게 발전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개별 국가에서는 물론 국제적 차원에서도 법률적 지위를 인정받아 왔다. 이 단체들은 이제 더 이상 투쟁만을 위하여 노동자들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 목표를 추구한다. 특히 노동자 단체와 사용자 단체 사이에서 단체 협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자기 기업의 범위를 넘어서 또 국가의 모든 계층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며, 적어도 시의 적절한 일임을 강조하여야 한다.

한층 더 중요한 판정

98. 그 이유는 개별 생산 기업체가 그 규모나 생산성이나 중요성이 자기 나라에서 아무리 앞서 있다 하더라도 그 나라의 경제 사회 전반의 상황에 밀접히 결합되어 있으며 거기에 바로 그 기업의 번영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99. 그러나 전반적인 경제 상황에 더욱더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판정하는 일은 개별 생산 기업체의 임무가 아니라 국가 지도자들에게 속하는 임무이며, 또 한 국가나 여러 국가를 위해 설립되어 다양한 경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공 기구들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 당국이나 공공 기구들에 대하여 사용자들이나 사용자 편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외에도 노동자들이나 그 직무상 노동자의 권리와 요구와 염원을 수호하는 사람들이 발언권을 갖는다는 것은 분명히 시의 적절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찬사와 치하

100. 그러므로 본인의 생각과 자부적 애정이 맨 먼저 그리스도교 교리의 원칙에 따라 여러 대륙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 단체와 다양한 직업 집단으로 향하는 것은 마땅하다. 본인의 이 사랑하는 자녀들이 얼마나 어려운 곤경에 짓눌려 있으며 또 자기 나라 안에서는 물론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그들의 생활과 도덕의 향상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투쟁하여 왔고 아직도 열렬하게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은 잘 알고 있다.

101. 더 나아가, 본인은 이 자녀들의 노력을 마땅한 찬사로 높이 치하하고자 한다. 그 성과가 모두 즉각적으로 또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올바른 행동과 사상의 규범은 물론, 그리스도교 신앙의 풍요로운 영향을 온 사방에 전파하여 인간 노동계 전체에 파급 효과를 미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102. 본인은 또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고취되어, 자연법을 따르고 개인의 종교적 도덕적 자유를 존중하는 다른 노동자 단체나 직업 단체들을 위하여 탁월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본인의 어버이다운 치하를 하고자 한다.

103. 여기서 본인은 또한 여러 나라 말의 약자로 “O.I.L.” 또는 “I.L.O.” 또는 “O.I.T.”라 지칭되는 ‘국제 노동 기구’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과 존경의 정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구는 이미 여러 해 동안 세계 도처에서 정의와 인도의 규범에 부합하는 경제 사회 질서를 수립하기 위하여 현명하고도 효과적인 귀중한 노력을 해왔으며, 그러한 질서 안에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가 인정되고 보호된다.


사유 재산

변화된 상황

104. 최근년에 들어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거대 생산 기업체에서 자본주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경영자의 역할과 분리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특히 국가 경제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 기업의 경영자들이 공동선의 요구에 배치되지 않도록 성실하게 감독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하는 국가 지도자들에게 커다란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경험으로 보아, 이러한 어려움들은 대기업에 필요한 자본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국민 개인이든 공공 기관이든 마찬가지이다.

105. 또한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하여 최근의 보험 제도나 다양한 사회 보장 체제에 가입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그러한 안심이란 전에는 아무리 적은 것일지라도 재화의 소유로써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진보된 노동관

106. 우리 시대에서는 사람들이 재화의 소유보다는 오히려 전문 기술을 추구하고 있으며, 자본에서 나오는 소득이나 자본과 관련된 권리에서 나오는 소득보다도 노동에서 나오는 소득 또는 노동과 관련된 권리에서 나오는 소득을 더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107. 이것은 분명히 노동의 본질적 특성에 부합하는 것이다. 노동이란 바로 인격의 직접적인 표출이므로 그 본질상 수단의 위치에 있는 외적 재화의 부요보다 우선하여야 한다. 이러한 견해는 분명히 인간 진보의 증거다.

소유권의 확인

108. 이러한 경제 상황은 분명히 대중들 사이에서 본인의 선임자들이 확고하게 가르치고 옹호하였던 경제 사회적 원리, 즉 인간은 생산재까지를 포함하는 재화의 사적 소유권을 자연으로부터 받았다는 원리가 설득력을 잃었거나 그 중요성이 줄어들지 않았느냐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109. 그러한 의문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다. 생산재에까지 적용되는 사적 소유권은 모든 시대에 걸쳐 유효하며, 이는 바로 사물의 본질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 본질에서 우리는 개인이 시민 사회보다 우선하고 또 시민 사회는 마땅히 인간을 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러나 경제 생활에서 개인들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만일 그 권리 행사에 필요한 사물을 자유로이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동시에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러한 권리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와 경험이 증명하는 대로, 생산재를 포함한 재산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 체제하에서는 주요 문제에 관한 인간의 자유 행사가 침해당하거나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다. 따라서, 자유의 행사와 소유의 권리가 서로 똑같이 보호를 해주고 서로 똑같이 자극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110. 이것은 인간 사회 안에서 정의와 자유를 조화시키고자 노력하면서도 최근까지 생산재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던 사회 정치적 집단이나 단체가 오늘날에 와서는 사회의 변천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어 그들의 견해를 크게 수정하고 참으로 그 권리를 지지하는 태도를 취하게 된 까닭을 밝혀준다.

개인과 사회를 위한 사유 재산

111. 그러므로 이 문제에 관하여 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인 비오 12세가 한 말씀을 기꺼이 본인의 권고로 삼고자 한다. “교회는 사유 재산권을 옹호하면서 사회 윤리의 최고 목적을 바라보고 있다. 교회는 물론 현재의 상황에서 마치 하느님 의지의 명령을 인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현세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며, 더욱이나 빈민들과 무산자들의 권리를 무시한 채 결코 부자와 유산자를 보호하려는 것도 아니다…참으로 사유 재산 제도가 지혜로우신 하느님의 계획과 자연법의 요구에 부합하는 그러한 제도가 되게 하자는 것이 교회의 뜻이다.”32) 따라서 사유 재산은 마땅히 인간 자유의 권리를 보장하여야 하며, 동시에 올바른 사회 질서의 확립에 필요한 공헌을 하여야 한다.

임금과 재산

112. 최근에는 많은 나라의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고 있으므로, 본인이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생산성의 증가에 따라 노동의 보수도 공동선의 범위 내에서 똑같이 증가되어야 한다고 정의와 형평은 요구한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좀더 수월하게 저축을 하여 자기 재산을 마련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에서 소유권의 본질적인 특성을 거부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말하는 소유권이란 노동의 결실에서 지속적으로 그 가치와 효력을 이끌어내는 권리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효과적으로 보호해 주고 모든 분야의 활동에서 자유로운 직무 이행을 보장해 주는 권리이다. 마지막으로, 그 권리는 가정 생활의 결속과 안정을 강화시켜 줌으로써 국가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한다.

효과적인 분배

113. 인간은 생산재에까지 적용되는 사유 재산권을 천부의 권리로서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전시민 계층이 이 권리를 널리 행사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14. 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인 교황 비오 12세가 분명하게 가르친 바와 같이, 한편으로 인간의 존엄성은 “자연의 올바른 규범에 따라 살아가도록 필연적으로 외적 재화의 사용 권리를 요구하며, 그 권리에는 가능한 한 모든 사람이 풍부한 사유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중대한 의무가 따른다.”33) 다른 한편으로, 노동의 고귀한 본질은 여러 요구에 더하여 “각계 각층의 모든 국민에게 비록 적더라도 재산의 소유를 허용하는 사회 질서의 보호와 완성”34)을 요구한다.

115. 재화의 사적 소유가 폭넓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본인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많은 나라의 경제가 날로 더욱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전에보다도 더 강조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이미 유효한 것으로 증명된 여러 방안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수월하게 사적 소유의 문을 열 수 있고 또 그 문을 넓힐 수 있는 경제 사회 정책을 어렵지 않게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유 재산이란 부동산, 주택, 전답, 가내 수공업 또는 가족 농장에 필요한 기자재나 농기구, 중대 기업에 투자한 주식 등이다. 이러한 일들은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사회적으로 진보한 일부 국가들에서 만족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공공 재산

116. 분명코 본인의 이러한 설명은 국가나 공공 기관이 합법적으로 생산재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금지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특히 “국가가 온전하려면, 커다란 지배력을 가진 그런 재화를 개인에게 맡길 수는 없기”35) 때문이다.

보조성의 원리

117. 국가나 공공 기관의 공유 재산 확대는 우리 시대의 특성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공권력에 더 많은 책임을 지우는 공동선의 요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서는 본인이 이미 언급하였던 보조성의 원리를 완전히 준수하여야 한다. 즉, 국가나 공공 기관은 공동선의 명백하고도 진정한 요구가 그것을 요구할 때에 그 소유 영역을 확대할 수는 있지만, 사적 소유를 과도하게 줄이거나 심지어는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위험은 제거하여야 한다.

경 계

118.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침묵으로 간과해서는 안된다. 국가와 공공 기관이 계획하는 경제 기획은 탁월한 역량과 확고한 정직성, 국가에 헌신하는 투철한 책임감을 지닌 사람들에게만 맡겨져야 하며, 나아가 그들의 활동이 주의깊고도 끊임없는 감독을 마땅히 받게 하여, 바로 그 국가의 운영에서 소수의 손에 경제 지배를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국가의 최고선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재산의 사회적 기능

119. 본인의 선임자들은 사유 재산권에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끊임없이 가르쳐왔다. 사실 창조주 하느님의 계획에서 모든 재화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이 품위 있는 생활을 하도록 배정되었다. 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인 레오 13세는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이렇게 분명히 가르쳤다. “이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렇다. 외적이고 물질적인 재화이든 정신적인 재능이든 하느님께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자기의 인격 완성에 그것을 활용하는 동시에, 하느님 섭리의 봉사자로서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것을 활용하도록 그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재능이 있는 사람은 그 재능을 숨기지 말아야 하고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은 자선을 베푸는 데에 너무 인색하지 말아야 하고 기술을 가진 사람은 이웃 사람의 편의와 이익을 위하여 그것을 나누어야 한다.’”36)

언제나 광범위한 개인적인 자선 분야

120. 비록 현대에는 국가와 공공 기관이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신장시키고 더욱더 확대해 가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적 소유의 사회적 기능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그 사회적 책임은 소유의 권리 그 자체에서 가치를 얻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가의 여러 가지 정책적인 배려가 미치지 않고 전혀 고려할 수도 없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절박한 빈곤, 그러한 수많은 비극적 참상들이 언제나 존재하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에 개인의 인도적인 행위와 그리스도교적 사랑을 펼쳐나갈 분야가 언제나 널리 열려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신적인 선익을 증진하고 고취하기 위해서는 개인이나 민간 단체가 추진하는 활동이 국가 권력으로 하는 일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진정한 보화

121. 여기서는 이제 거룩한 복음의 권위가 분명히 사유 재산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여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주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어 그 재물을 천상 보화로 바꾸라고 부자들에게 강력히 명령하셨다. “너희는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가지도 못한다.”37) 그리고 하느님이신 스승께서는 가난한 사람에게 베푼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당신을 위해 해준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38)

30. 라디오 담화(1944.9.1.):AAS 36(1944), 254면 참조.
31. 훈화(1956.10.8.):AAS 48(1956), 799-800면 참조.
32. 라디오 담화(1944.9.1.):AAS 36(1944), 253면 참조.
33. 라디오 담화(1942.12.24.):AAS 35(1943), 17면 참조.
34. AAS 35(1943), 20면 참조.
35. 「사십주년」, 46항:AAS 23(1931), 214면.
36. 「새로운 사태」, 16항:Acta Leonis XIII, 11(1891), 114면.
37. 마태 6,19-20.
38. 마태 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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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새로운 사회 문제

122. 역사의 진보에 따라, 생산 기업체의 노동자와 경영자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경제 활동과 한 나라 안에서도 각기 다른 여러 지역을 서로 결속시켜 주어야 할 경제 체제가 정의와 형평의 규범에 따라 재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더욱더 분명해지고 있다. 또한 전인류 공동체 안에서도 여건이 다른 많은 나라들이 경제, 사회 분야에서 똑같이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다.

산업 분야간의 균형 발전

침체된 농업

123. 먼저 농업에 관한 문제를 살펴보자. 우선 전세계적으로 농촌 인구가 현저하게 줄었다고는 볼 수 없으나, 수많은 농민들이 태어난 고향을 버리고 인구 밀집 지역이나 도시로 찾아들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한 현상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영향을 미치고, 품위 있는 시민 생활에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

124. 경제가 발전하고 성장할수록 농민의 숫자는 감소하고 공업과 서비스 부문에 종사하는 막대한 노동자수가 증가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농업에서 다른 생산 분야로 인구가 이동하는 것은 흔히 경제 발전 그 자체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흔히는 다른 수많은 충동에 사로잡혀 이농을 한다고 본다. 그중에서 특히, 편안한 삶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궁핍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 현시대의 경향인 새로운 활동과 경험의 추구, 벼락 부자가 되려는 욕망, 흔히 인구 밀집 지역이나 도시가 가져다 주는 편의를 누리며 사는 자유로운 생활에 대한 갈망 등을 들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농 현상을 일으키는 의심할 수 없는 원인의 하나는, 노동의 생산성이나 농민들의 생활 상태 또는 문화 수준으로 보아, 어디서나 농업이 거의 피폐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근본 문제

125. 그러므로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중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먼저 농업과 공업과 서비스 부문 사이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 또한 농촌 생활의 문화가 공업이나 서비스 부문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도시인의 생활 수준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또 땅을 일구는 사람들이 전혀 열등감을 가지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참으로 농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노동으로 자신의 인격을 계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여야만 한다.

126.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본인은 어떠한 시대 상황에서도 유효한 몇 가지 규범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고 본다. 이 규범들은 분명코 다양한 시대와 장소의 여건이 허락하거나 제안하고 또 확실하게 요구하는 그러한 정도와 방법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기본적인 공공 시설

127. 먼저, 모든 사람들은 특히 국가 지도자들은 농촌 지역에 적절한 주요 편의 시설이 증대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예를 들자면, 도로 건설, 운송 시설, 유통 설비, 상수도, 주택, 의료 시설, 초등 교육과 직업 기술 훈련을 위한 학교, 종교 관련 시설과 휴양 시설, 그리고 현대의 농촌 주택에 필요한 가구와 시설 등이다. 농민들이 품위 있는 농촌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이러한 시설들을 갖추지 못하는 곳에서는 경제 발전과 사회 진보가 거의 불가능하거나 매우 느릴 수밖에 없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농토의 포기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이농 숫자 또한 예측할 길이 없다.

경제의 균형 발전

128. 더 나아가서, 국가 경제는 다양한 경제 분야 사이에서 서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점진적으로 발전하여야 한다. 그 무엇보다도 먼저 농업과 관련하여, 경제 전반이 허용하고 요구하는 한, 생산 기술, 다양한 농지 개발, 농업 설비 등에서 현대적 혁신이 이루어지도록 특별한 배려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혁신은 가능한 한 공업이나 서비스 부문의 기술 진보와 똑같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29. 이렇게 하여 농업은 대량의 공업 생산품을 소비할 뿐만 아니라 양질의 서비스를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농업은 이제 공업과 서비스 부문은 물론 사회 전반에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더욱 적합한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농업은 경제 전체의 올바른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화폐의 구매력 안정에 이바지할 것이다.

130. 이러한 계획을 받아들이게 되면, 다른 유익함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이점이 따른다. 먼저 농업의 점진적 혁신으로 인한 유휴 노동력의 이동을 더욱 쉽게 알 수 있고, 농민들이 다른 형태의 노동에 필요한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으며, 새로운 사회 집단에 자신을 통합시키는 데 필요한 정신적, 문화적 발전을 위하여 경제적 원조와 협력을 받게 될 것이다.

적절한 경제 정책

131. 다양한 경제 분야의 균형 발전이 이루어지려면, 국가 지도자들은 반드시 농업과 관련하여, 세금이나 조세, 금융, 사회 보험, 가격 보호, 가공 산업의 육성, 농업 설비의 개선 등에 대한 신중한 정책적 배려를 할 필요가 있다.

세 금

132. 세금과 관련하여, 정의와 형평에 따른 조세 제도는 그 주요 원칙으로서 국민의 납세 능력에 맞는 과세를 요구한다.

133. 그러나 농민들에 대한 세금 부과에서 국가 통치자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고 공동선이 요구한다. 농업의 소득은 매우 느리게 형성되고, 커다란 모험을 감수해야 하며, 소득 증대에 필요한 자본의 획득 또한 매우 어렵다.

자본과 적절한 이자

134. 이에 따라, 자본주들은 농업이 아닌 다른 부문에 더 기꺼이 투자하고자 한다. 또 똑같은 이유에서 농민들은 높은 이자를 지불할 수 없으며, 자본의 운용과 증대를 꾀하는 시장 이율의 이자마저도 갚을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선의 증진을 위하여 공공 당국은 농민들을 위한 특수 재정 정책을 수립하고, 농민들에게 적절한 이율로 자본을 공급하는 금융 기관을 설립하여야 한다.

사회 보험과 사회 보장

135. 농업에는 주로 두 가지 형태의 보험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하나는 농산물에 대한 보험이며,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농민과 그 가족들에 대한 보험이다. 일반적으로 농민 개인의 소득은 공업이나 서비스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소득보다 한층 더 빈약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농민들에게 다른 시민 계층보다 더 못한 사회 보장이나 보험 제도를 부여한다는 것은 사회 정의와 형평의 규범에 완전히 어긋나는 일이다. 사회 보험이나 보장 제도는 흔히, 어떤 경제 분야에서 노동을 하든 어떤 분야에서 소득을 얻든 간에, 서로 별 차이가 없도록 수립되어야 한다.

136. 사회 보장과 보험 제도는 전국민의 소득을 정의와 형평의 규범에 따라 재분배하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으며, 따라서 다양한 국민 계층의 격차를 완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가격 보호

137. 농산물은 특수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경제 전문가들이 수립한 방안들을 동원하여 그 가격을 보호하여야 한다. 특히 관계 당사자들이 가격 보호를 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러할 경우 스스로 적절한 규범을 마련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국가 지도자들은 조정의 임무를 결코 회피할 수 없다.

138. 그리고 농산물의 가격은 투자 비용보다는 농민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139. 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인 교황 비오 11세는 회칙 「사십주년」에서 인간 공동체의 복지에 관하여 “여러 계층의 임금간의 합리적인 관계가 고려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며, 이렇게 덧붙여 말하였다. “이것과 밀접하게 관련하여 농업과 공업 등 여러 경제 부문의 생산물 가격간의 합리적인 관계도 고려되어야 한다.”39)

140. 농산물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므로, 그 가격 또한 모든 사람이 구입할 수 있도록 책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하여 국민의 한 계층이 바로 모든 농민들이 품위 있는 생활의 영위에 필요한 구매력을 지니지 못해 경제적 사회적 열등 상태로 빠져들게 하는 것은 명백한 불의다. 그것은 바로 국가의 공동선을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다.

농가 소득 증대

141. 더 나아가, 농촌 지역에 농산물의 보존, 가공, 수송과 관련된 공업은 물론 공공 서비스를 증진시키는 것이 적절하다. 그 밖에도 다른 경제 분야나 다른 직업 활동에 관련된 기업을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안들을 통하여, 농촌 가정은 그들이 생활하고 노동하는 환경 속에서 부가 소득 증대를 위한 적절한 기회를 갖는다.

농업 경영 구조의 조정

142. 마지막으로, 그 누구도 바람직한 농업 구조에 관한 보편적인 규범을 세울 수는 없다. 한 나라 안에서도 지방마다 농촌 사정이 다르고, 전세계를 보자면 지역마다 그 차이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본성에 따라서든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따라서든, 참으로 인간과 가정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람은 분명히 인간 공동체의 모습이 드러나고 그 구성원의 상호 관계와 경영 구조가 정의의 규범과 그리스도교 교리에 부합하는 가족 농장이나 농업 경영을 바람직한 형태로 제안하고 있다.

143. 그러나 가족 경영의 농업이 건실해지고 안정되려면, 반드시 품위 있고 안락한 가정 생활에 적절한 수입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농민들이 농업 전반에 관한 훌륭한 교육을 받고 현대적인 농업 기술을 배우며 그 기술 활용에서 전문인의 도움을 받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농민들은 또한 협동 조합을 조직하고, 전문 분야별 농업 단체를 결성하여야 하고, 국가의 행정 기구뿐만 아니라 정치 운동 등의 공공 생활에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농민들의 상황 개선

144. 그렇지만 농촌에서 이루어지는 경제 발전과 문화 증진과 사회 진보의 주체와 주역은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 바로 농민들 자신이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농민들은 자신의 노동으로 유지해 가는 농업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를 알고 또 깨달아야 한다. 마치 세상의 드넓은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농업은 흔히 동식물의 생명에 관련되어 있다. 무한한 의미를 지닌 듯한 동식물의 생명은 어김없이 확고한 법칙을 따르며 창조주시요 섭리자이신 하느님께로 이끌어주는 풍요로운 초대를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농업 노동은 인류를 먹여 살리는 여러 가지 식량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공업에 사용되는 수많은 원료를 날이 갈수록 더욱 풍부하게 마련해 준다.

145. 더 나아가 기계 공학, 화학, 생물학 등과 관련된 수많은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는 농업 노동은 그 자체로 존엄성을 부여받은 일이다. 과학 기술의 진보는 농업에서도 커다란 가치를 지니는 것이므로, 그 시대 상황의 요구에 적합한 과학 기술을 끊임없이 적용하여야만 한다. 그뿐만 아니라, 농민들은 계절의 추이를 한층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거기에 자신을 쉽게 적응시키며, 미래의 일을 더욱 침착하게 기다리고, 자기 의무의 중요성과 중대성을 존중하며, 경각심을 지니고 언제나 새로운 발전에 대처하기 때문에, 농업 노동은 그 자체로 고귀한 것이다.

연대와 협력

146. 농업 분야에서도 다른 생산 분야와 마찬가지로 농민들의 조합 결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특히 가족 경영의 농업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농민들은 상호 신뢰로써 연대 책임감을 느끼고 협동 조합과 전문 분야별 단체의 결성을 위하여 공동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모든 단체들은 농민들에게 진보한 과학 기술의 편의를 제공하고 농산물의 가격을 보호하는 일에 매우 필요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단체들을 통하여 농민들은 대부분 단체를 결성하고 있는 다른 분야의 노동자들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끝으로, 농민들은 그러한 단체 결성을 통하여 국가 운영에서 그들의 처지에 적합한 중요성과 영향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이 시대에서, 혼자서만 외치는 목소리는 이른바 바람에 날리는 소리로 여겨지고 만다.

공동선의 요구에 대한 자각

147. 그러나 농민들도 다른 분야의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조직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부각시키고자 할 때 도덕 규범이나 국가 법률을 무시해서는 결코 안된다. 오히려 농민들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다른 계층의 권리나 이익과 조화시켜야 하며 이를 국가의 공동선에 부합시키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농촌의 운명을 개선하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농민들은, 이제 공동선을 자각하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국가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노력을 도와주고 보완해 주도록 당연히 요구할 수 있다.

148. 그러므로 본인은 세계 도처에서 협동 조합이나 다른 단체의 결성과 그 발전을 통하여 농민들이 국민 생활 전반에서 경제적 번영만이 아니라 정당한 품위를 갖춘 생활을 누리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본인의 자녀들을 마땅한 찬사로 치하하고자 한다.

소명과 사명

149. 인간의 존엄성과 그 계발과 완성에 유익한 모든 것이 농업 노동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이므로, 사람들은 당연히 그 일을 하느님께 받은 사명이요 숭고한 소명으로 여겨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모든 시대를 인간 구원으로 이끌어가시는 섭리의 하느님께 이 노동을 봉헌하여야 마땅하다. 끝으로, 농민은 인류 문명의 진보를 위하여 어느 정도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교육의 임무를 받아들여야 한다.


저개발 지역에 대한 원조

150. 흔히 같은 한 나라에서도 국민들은 서로 사회적 진보와 부요를 달리 누리고 있다. 그 이유는 주로 경제적으로 보아 성장도가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고 일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곳에서는 국가 지도자들이 이러한 불평등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적어도 감소시키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정의와 형평은 요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 지역에, 시대와 장소의 여건에 적합하고 국민의 생활 수준에 최대한 부합하는, 공공 시설을 확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려면, 마땅히 주도면밀한 경제 사회 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즉, 노동의 공급, 인구 유동,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는 임금, 국민에게 부과하는 세금, 상환 이자율, 특히 다른 분야의 기술 발전을 촉진시키는 공업에 대한 투자 등을 적절히 조정하여야 한다. 이 모든 정책은 분명히 유익한 고용 증대와 구매력의 촉진은 물론 지역 자원의 동원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공공 복지

151. 그러나 국가 지도자들은 적어도 국민의 공공 복지에 유익하다고 보이는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조치는 바로 국가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여 농업과 공업과 서비스 부문이 가능한 한 동일한 기간에 동일한 정도로 발전하도록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저개발 지역에 사는 국민들이 경제, 사회, 문화 문제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스스로 자기 발전의 주역임을 깨닫도록 이끌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발전을 위하여 주요한 역할을 하는 국민들이 바로 자신의 존엄성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개인 기업의 공헌

152. 그러므로 개인 기업이나 자기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자기 나라 경제의 균형 발전을 위하여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은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개인 기업을 장려하고 보조하여, 가능한 한 경제 발전의 과업을 국민 개인들이 성취해 나가도록 맡겨야 한다.


국제적 불균형

153. 여기서 또한 여러 나라에 존재하는 경작 농지와 인구 사이의 불균형을 지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어떤 나라에서는 국민이 적고 경작지는 많은데, 다른 나라들은 그와 반대로 국민이 많고 경작 농지는 적다.

잉여와 결핍

154. 어떤 나라에서는 그 토지가 풍부한 자원을 지니고는 있지만 농민들이 미개하고 낙후된 경작법을 사용하여 전국민의 기본 식량에 충분한 소출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농업에 현대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너무 많은 식량을 생산하여 잉여 농산물이 국가 전체의 경제에 해를 끼치기도 한다.

155. 그러나 인류의 연대 의식과 그리스도교적 형제애는 민족간에 다양하고도 적극적인 협력이 이루어지기를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재화와 자본 그리고 인간 자체의 자유로운 교류가 이루어지고 여러 국가간의 불균형이 축소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나중에 좀더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

식량 농업 기구

156. 본인은 여기서 모든 민족들의 식량 공급과 농업 발전을 추구하는 ‘식량 농업 기구’(FAO)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구는 특별히 민족들의 상호 합의에 따라 저개발 국가들의 농업 현대화를 촉진하고 식량 부족에 허덕이는 민족들에게 원조를 제공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다.


국가간 경제 격차에 대한 정의의 요구

부유한 나라들의 의무

157. 우리의 이 시대에서 가장 중대한 문제는 경제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의 상호 관계에 관련되는 문제다. 어떤 나라는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또 어떤 나라는 극도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어디에 살든 마치 한 집안을 이루고 있다고 느낄 만큼 밀접한 상호 관계로 결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재화가 충분하고도 풍부한 나라들은 국민들이 빈곤과 기아로 뒤덮인 국내 문제에 시달리며 인간 고유의 당연한 기본권조차 누릴 수 없는 다른 나라의 곤경을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 더욱이 오늘날에는 국가간의 상호 의존성이 더욱더 커져가므로, 경제 사회적 격차가 지나칠 경우 국가간의 유익한 평화를 오래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158.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을 자녀처럼 사랑하는 본인은 다른 기회에 한 말을 이 자리에서 명백히 강조하는 것이 본인의 의무라고 여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식량 부족으로 극도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40) (그러므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모든 사람들에게서 특히 부자들에게서 이러한 책임 의식을 일깨워야 할 필요가 있다.”41)

그리스도의 신비체

159. 수월하게 추론할 수 있고 또 교회가 언제나 엄중하게 권고해 온 바와 같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할 책임이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들인 가톨릭 신자들을 크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42)

160. 그러므로 본인은 생산 체제가 발달한 나라들이 재화가 부족한 나라들의 생활 개선이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도록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긴급 구호

161. 어떤 나라는 식량, 특히 곡물이 넘쳐흐르는 반면에 어떤 나라는 국민 대다수가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분명하므로, 정의와 인도는 부유한 국가들이 가난한 국가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사람들의 생활 필수품을 완전히 탕진하거나 낭비하는 것은 정의는 물론 인도의 의무를 거스르는 짓이다.

162. 국가의 필요 이상으로 많은 재화, 특히 잉여 농산물의 생산은 모든 국민 계층에 손실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본인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재화가 풍부한 나라가 특히 긴급 구호를 필요로 하는 나라의 빈곤과 기아를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이는 재화의 과잉에서 나오는 불이익을 최소화하고 국민 각자가 공평하게 그 부담을 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한다.

과학, 기술, 재정의 협력

163. 그러나 이러한 방법만으로 많은 나라에서 빈곤과 기아의 고질적인 원인들이 즉시 제거되지는 못한다. 그 원인은 경제를 비롯 여러 분야의 낙후된 체제 안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그 국민들이 훌륭한 기술 훈련과 직업 교육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자본을 소유하게 하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

164. 최근년에 와서 적절한 경제 설비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가난한 국가들이 더욱 수월하게 경제, 사회적 진보를 이룰 수 있도록 원조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의무감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은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165. 본인은 그 바람직한 방안들을 이행하는 국제 기구들과 각국 단체들을 바라보고 있으며, 개인 기업과 민간 단체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위하여 생산에 더욱 적합한 기술을 이전하는 등 날마다 관대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라본다. 또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선진국의 큰 대학들에서 현대 수준에 알맞은 기술과 학문을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국제 은행들이나 개별 국가들 또는 민간 개인들이 가난한 나라들에 차관을 제공하여 재력이 부족한 그러한 나라들이 여러 가지 적절한 생산 증대 계획에 착수하도록 해주고 있다. 본인은 이 자리를 빌려 그러한 관대한 활동에 기꺼이 마땅한 찬사를 보내고자 한다. 앞으로 부유한 국가들이 개발 도상국들의 과학, 기술, 경제의 발전을 위한 원조 활동에 더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39.「사십주년」:AAS 23(1931), 202면 참조.
40. 담화(1960.5.3.):AAS 52(1960), 465면 참조.
41. 상동 참조.
42. 1 요한 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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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 100%
몇 가지 추가 권고

166. 이 문제와 관련하여 본인은 이 자리에서 몇 가지 권고를 하는 것이 본인의 의무라고 주장한다.

과거 오류의 회피

167. 무엇보다도 먼저, 아직도 경제 발전을 거의 이루지 못한 나라들은 재화가 풍부한 나라들에서 시작된 발전 과정의 요체를 숙고하는 것이 현명한 일로 보인다.

균형의 필요성

168.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과 공동의 필요성이 더 많은 재화의 생산만이 아니라 더 적절한 방법의 생산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필연성과 정의는 생산된 재화가 모든 국민들 사이에 공정하게 분배되기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경제 발전과 사회 진보가 똑같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한 진보는 또한 농업, 공업, 서비스 분야에서도 똑같이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한다.

각국의 특성 존중

169. 경제 개발 도상국들은 흔히 그 지역 고유의 자연이나 전통 문화와 풍속 또는 그 독특한 국민성에서 나오는 명백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누가 보아도 분명하다.

170. 그러므로 부유한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도와줄 때에는 그러한 특징들에 관심을 갖고 이를 존중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이들 나라에 대한 원조 활동이 자국의 생활 양식에 대한 모방을 강요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배려하여야 한다.

사심 없는 원조

171. 더욱이 경제 선진국들은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원조를 통하여 그 나라의 정치 상황을 자국에 유리하도록 바꾸려 하거나 그들을 지배하려는 시도는 결단코 피해야 할 필요가 있다.

172. 만일 그러한 시도가 자행된다면, 그 이름을 어떻게 위장하든, 그것은 많은 나라들이 최근에야 벗어난 이전의 구시대적 통치를 드러내는 또 다른 형태의 식민주의 지배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러한 행동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제 관계에 해를 끼치고, 모든 민족들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다.

173. 그러므로 기술과 무역의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국가들은, 어디서나 지배욕을 버리고, 경제 발전을 못한 나라들이 언젠가는 스스로 경제 사회 발전을 이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며 또 이것은 정의가 요구하는 일이다.

174. 이렇게 된다면 모든 국가들을 결속시키는 세계 공동체 형성이 분명히 크게 진전할 것이며, 그 공동체의 개별 국가들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의식하면서 모든 민족들의 번영에 똑같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가치 서열의 존중

175.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과학 기술의 발전과 경제나 국민 생활의 번영이 이루어지면 그곳의 인간 문명과 문화의 진보에 많은 공헌을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최고선이 아니라 오로지 최고선을 추구하는 적절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여야 한다.

176. 그러한 까닭에, 경제가 발전한 나라들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올바른 가치 체계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은 예리한 고통을 느끼며 바라본다. 바로 그런 사람들은 정신적인 가치를 아예 무시하거나 온전히 망각해 버렸으며 선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과학 기술과 경제의 진보를 열렬하게 추구하는 동안, 그들은 대부분 자기 인생의 최고선으로 여길 만큼 외적 재화를 중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유한 나라들이 발전하지 못한 나라들을 도와주는 원조 활동 그 자체에 위험한 함정이 없을 수 없다. 이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 가운데는 오랜 전통적 관습에서 나온 의식, 거기에 도덕률이 의존하는 주요한 선에 대한 의식이 아직도 대부분 그대로 살아 있어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77. 따라서 이러한 민족들의 순박한 의식을 어느 모로든 손상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부도덕한 짓을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여야 한다. 그러한 의식에는 진정한 인간성이 깃들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를 마땅히 존중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완성시키고 발전시켜 가야 한다.

교회의 공헌

178. 교회는 신권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다가가는 보편 교회다. 이 보편성은 교회가 이미 세계 도처에 존재하고 모든 민족들을 포용하고자 노력하는 그 사실 자체로 확인된다.

179.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께 결합시킨 민족들은, 지난 시대는 물론 현대에 이루어진 사건들이 명백하게 입증하는 것과 같이, 경제나 사회 문제와 관련하여 유익한 결과를 얻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현세 질서를 적극적으로 완성해 나갈 것을 약속하고 서약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또한 인간 존엄성이 결코 침해당하지 않도록 온갖 장애물을 제거하고 도의와 덕행을 도와주고 북돋아주는 모든 것을 증진시키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결코 이방인이 아니다

180. 더 나아가, 교회가 어떤 국민의 혈맥 속에 활력을 불어넣을 때, 교회는 결코 그 국민에게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어떤 제도일 수 없으며, 교회 자신도 결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그 까닭은 교회가 현존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인간 각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부활한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부활한 사람들은 결코 외부의 힘에 억압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느끼며 오히려 스스로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고 깨달아 하느님께로 자유로이 나아간다. 따라서 그들은 도덕적으로 옳고 선하다고 보는 것은 무엇이든지 인정하고 실천한다.

획일성이 아닌 일치

181. 본인의 선임자인 비오 12세는 이렇게 분명히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느님 지혜의 충실한 수호자이다. 따라서 교회는 어느 민족이 신성한 유산으로서 당연히 경건하고 집요하게 보존해 온 그 나라의 고유한 특성이나 특징을 결코 억압하거나 무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교회는 참으로 모든 사람을 힘차게 움직이는 저 천상의 사랑에 부합하는 심오한 일치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 일치란 모든 일에서 그 내적인 힘을 약화시키는 외적인 획일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민족의 근본에 뿌리박고 있는 감추어진 특성으로부터 나오는 재능과 역량을 현명하게 발전시키고 절도 있게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관심과 규범들을, 언젠가는 죽어야 할 모든 인간의 공동 기원과 공동 운명이 요구하는 의무를 거스르지 않는 한, 교회는 인정하고 또 어머니의 정으로 보살핀다.”43)

가톨릭 시민의 역할

182. 저개발 국가의 가톨릭 신자들이 자기 나라의 경제 사회 발전을 위한 노력을 결코 다른 국민들에게만 양보하지 않고 자기 역량을 다해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은 마음에 커다란 기쁨을 안고 바라보고 있다.

183.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부유한 나라의 가톨릭 신자들도 자기 국가가 가난한 나라의 경제, 사회 발전에 더욱더 유리한 원조를 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은 잘 알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유럽과 아메리카의 큰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형태로 해마다 더 많은 원조가 주어진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로 보인다. 또한 저개발 국가에 가서 수행할 기술과 직업 활동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든 직무와 책임에 관한 교육을 받도록 하는 커다란 배려도 가치 있는 일이다.

184. 그러므로 전세계 도처에서 민족들의 진정한 발전을 열렬히 촉진하고 시민 문화에 구원의 힘을 불어넣어 줌으로써 거룩한 교회의 영원한 힘과 그 효력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는 본인의 모든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갈채를 보내며 기꺼이 감사의 정을 표명하고자 한다.


인구 증가와 경제 발전

185. 최근에 와서, 경제 구조와 생계 유지 수단(식량)이 어떻게 인구 증가와 균형을 이루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자주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가난한 나라들에 관련된 문제일 뿐 아니라 전세계의 문제이다.

인구와 식량의 불균형

186. 전세계적으로 보아, 어떤 사람들은 통계 수치에 따라 몇 십년 내에 인류는 막대한 숫자에 달하게 되고 경제 발전은 더욱더 완만하게 진행되리라고 예측한다. 따라서 인간 출산에 어떤 제한을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인구 숫자와 생활 필수품 사이에 극심한 불균형이 일어날 것이라고 그들은 결론짓는다.

187. 저개발 국가들을 보자면, 현대의 보건 및 의료 기술이 폭넓게 확산되어 유아 사망률이 줄어들고 평균 수명이 더 길어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출생률 또한 그런 곳에서 높고, 이는 적어도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될 것이다. 출생자수가 같은 기간 동안의 사망자수를 초과하는데도, 그러한 국가의 생산성은 인구 숫자에 부합할 만큼 증가하지 않는다. 그렇게 가난한 나라에서는 생활 수준이 전혀 나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악화되기까지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극도의 위기에 부딪치지 않으려면 인간의 임신과 출산을 피하거나 어떻게든 금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의 초점

188. 이제 사실 그대로 말하자면, 전세계에서 출생자 숫자와 동원 물자 사이의 상호 관계는 적어도 현재나 가까운 장래에 심각한 곤경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 관한 논란들은 모두 모호하고도 의심스러운 것들뿐이어서 확실한 결론을 내릴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189.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선과 지혜로써 자연에 거의 무진장한 생산 능력을 주셨고, 인간에게는 적절한 도구를 사용하여 자연 자원을 자기 생활의 필요와 요구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는 창의력을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하느님께서 세우신 도덕 질서를 거슬러 바로 인간 생명의 출산을 가로막지 않는 방안을 찾아 분명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인간은 온갖 과학 기술을 활용하여 자연의 힘에 대한 심오한 지식을 갖추고 자연의 지배를 날로 더욱 확대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과학 기술 분야의 진보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미래에 대한 거의 무한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190. 일부 지역과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이러한 종류의 문제와 더불어, 해마다 증가하는 국민들에게 의식주를 해결해 줄 수 없는 경제 사회 체제에서 흔히 어려운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으며, 국민들 또한 마땅한 상호 연대 의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은 잘 알고 있다.

191.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 자체와 그 생활을 모든 면에서 물질적으로만 생각하는 유물론자들이 제안하는, 인간 존엄성에 배치되는 수단과 방법에 따라 그러한 문제들을 제시하고 해결할 수는 결코 없다는 것을 본인은 분명하게 단언한다.

유일한 해결책

192. 이 문제는 오로지 경제 및 사회의 진보가 국민 개인과 인간 사회 전체의 진정한 선익에 봉사하고 이를 증진시킬 때에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이러한 문제에서는 흔히 인간의 존엄성, 참으로 그 무엇도 이보다 더 귀중할 수 없는 인간 생명에 관련되는 모든 것을 맨먼저 고려하여야 한다. 더 나아가, 이 문제에서는 모든 복리와 더불어 정보, 자본 그리고 인간 자체가 민족간에 질서 있게 교류할 수 있는 국제 협력을 모색하여야 한다.

생명 법칙의 존중

193. 이와 관련하여, 인간 생명은 가정에 의하여 전달되고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인은 엄숙히 선언한다. 가정은 불가해소의 단일한 혼인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사의 품위로 들어높여진 혼인에 기초하고 있다. 인간 생명은 인격적으로 의식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므로, 이는 하느님의 확고한 신성불가침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이 법칙은 누구나 인정하여야 하고 또 준수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 일에서 그 누구든 동식물의 번식에나 허용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서는 결코 안된다.

194. 모든 사람은 인간 생명을 신성한 것으로 존중하여야 한다. 인간 생명은 그 발단에서부터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행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이 계획으로부터 떠난 사람들은 바로 하느님의 위엄을 손상시키고 자신과 인류에게 치욕을 남길 뿐만 아니라 자기 국가의 내부 활력을 피폐케 하는 것이다.

책임감에 대한 교육

195. 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새로운 세대가 인간 문화와 종교에 대한 건실한 교육- 그것은 부모의 권리요 의무다 - 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생활에서 특히 자기가 이룰 가정과 자녀 출산과 교육에서 자신의 의무를 깊이 자각하게 하는 것이다. 자녀들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갖게 되어야 하고, 생명 전달과 자녀 교육에서 하느님과 협력하여야 할 고귀하고도 중대한 의무를 받은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희생과 노력을 기꺼이 감수하는 굳건한 정신과 자세를 갖추게 하여야 한다. 이토록 극히 중대한 문제에서 분명코 교회로부터 받는 가르침과 초자연적 도움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다. 이와 관련하여 교회는 자신의 임무를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 생명의 선익을 위한 창조

196. 「창세기」를 읽어보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친히 처음으로 인간 본성을 부여하신 사람들에게 상호 보완적인 두 가지 명령을 부여하셨다. 즉,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라”44)고 하신 다음에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45)고 명하셨다.

197. 이 두번째 명령은 자연을 파괴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라 인간 생명의 선익을 위하여 자연을 맡기신다는 말씀이다.

198. 본인은 커다란 슬픔을 안고 현시대의 상반되는 두 가지 모순을 지적하고자 한다. 한편에서는 극도의 빈곤과 기아로 인해 인간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울 만큼 암울한 재화의 궁핍을 목격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최근의 과학 기술 진보와 경제 발전이 인류를 공포의 죽음과 파멸로 몰아가는 수단으로 변하고 말았다.

199. 섭리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인류에게 충분한 재화를 마련해 주셔서, 그 재화의 도움으로 자녀 출산과 관련된 책임을 품위 있게 이행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사악한 정신에 물들어,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수단, 즉 인간 이성이나 그 사회적 본성에 반대되고 바로 하느님의 계획에 어긋나는 수단들을 이용한다면, 그러한 책임의 이행은 매우 어려워지거나 전혀 불가능해질 수 있다.


국제 협력

중요 문제의 세계적 차원

200. 과학 기술의 진보로 전세계 모든 지역에서 국가간의 관계가 최근에는 더욱더 긴밀해졌으므로, 민족들의 상호 의존성이 갈수록 증대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201. 따라서 오늘날 과학, 기술,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요 문제들은, 흔히 한 개별 국가의 역량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필연적으로 많은 나라들에 때로는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202. 비록 문화와 문명, 인구수와 근면성, 경제 발전에서 앞서 있고 풍부한 자원과 광대한 영토를 지닌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개별 국가는 다른 나라들과 따로 떨어져 스스로의 힘만으로 자신의 주요 문제들을 적절히 해결할 수는 없다. 각국은 상호 보완하고 서로 발전하여야 하므로, 다른 나라의 이익을 동시에 배려하는 그만큼 자기 나라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간의 상호 이해와 공동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상호 불신

203. 이러한 필요성이 개개인들에게나 모든 민족들에게나 날로 더욱 분명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특히 국가의 막중한 책임을 지닌 사람들은 국민들이 염원하는 이 두 가지 일을 거의 성취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과학 기술이나 경제 수단에서 국민 역량이 부족하여서가 아니라 오로지 서로를 불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국가는 서로를 두려워하고 있다. 한 나라는 다른 나라가 공격을 계획하고 있거나 그러한 계획을 실행할 기회를 잡을까 보아 두려워하고 있다. 따라서 각국은 늘 해오던 대로 자기네 도시와 국토를 지키기 위한 모든 방어 준비를 한다. 즉, 다른 나라가 공격 행위를 단념하도록 군비를 강화하는 것이다.

204. 결과적으로 모든 민족들은 수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인간 공동체의 이익보다는 오히려 그 파괴를 위하여 쏟아 붓고 있다. 그리고 개인은 물론 국민 전체가 극심한 불안에 휩싸여, 더욱더 중요한 사업의 수행이 지체되고 있다.

도덕 질서의 불인정

205. 이러한 사태의 원인은 사람들이 특히 국가 지도자들이 인생에 대하여 서로 다른 사상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본다. 외부의 사물과 인간 그 자체를 초월하고, 당연히 필요하고도 모든 사람들에게 관련되며, 마침내 모두에게 동등한, 진리와 정의의 법칙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감히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일하고도 동일한 정의의 법칙을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코 그 무슨 일에든 완전하고도 전적인 동의를 할 수가 없다.

206. 비록 정의라는 낱말과 여기에 관련된 정의의 요구라는 말이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기는 하지만, 이러한 말들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흔히는 오히려 정반대의 뜻을 지니기도 한다. 그러한 까닭에 국가 지도자들이 정의나 정의의 요구를 부르짖을 때, 저마다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서로 일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거기서 흔히는 심각한 갈등의 원인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중대한 악의 씨앗인 폭력에 호소하지 않고서는 결코 자기 권리와 자기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도덕 질서의 토대이신 하느님

207. 국가 통치자들 사이에서 상호 신뢰가 이루어지고 그들 마음에 더욱 깊숙이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진리와 정의의 법칙을 인정하고 또 모두가 다 이를 준수하여야만 한다.

208. 도덕과 덕행의 원리는 오로지 하느님 안에 있으므로, 하느님을 떠나서는 필연적으로 도덕 질서가 붕괴되고 말 것이다. 인간은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성과 자유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이루어진 인간은 종교에 뿌리박은 도덕률을 절대적으로 요구한다. 도덕률은 개인 생활과 시민 사회는 물론 개별 국가와 전세계에 관련되는 문제들의 해결을 위하여 그 어떠한 외적 세력이나 이익보다 더욱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다.

209. 오늘날, 눈부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보아, 인간은 하느님을 떠나서도 오로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최상의 인류 문명을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참으로 인간들은 흔히 과학 기술의 진보 그 자체로 인해 모든 민족들에게 어려움을 끼치는 난관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한 난관들은 인간과 모든 자연의 창조주요 통치자이신 하느님의 정당한 권위를 인정할 때에 비로소 극복될 수 있다.

정신적 도덕적 가치

210. 과학의 발전이 거의 무한한 지평을 열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수학적 과학이 사물의 본질과 그 변화를 완전히 통찰하거나 적절한 어휘로 표현할 수 없고 거의 짐작으로만 추론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졌다. 기술과 기계로 드러내는 거대한 힘이 사람들의 이익만이 아니라 파괴를 위해서도 똑같이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눈으로 목격하고 놀란 사람들은, 당연히 정신적 도덕적 생활에 관련되는 문제들이 다른 모든 것보다도 우선하며,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파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인류 문화의 발전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11. 그 동안 부유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갈수록 더 외부 재화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 지상에서 영원토록 살아가는 행복한 생활에 대한 거짓 환상을 버리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자신이 인간의 모든 권리를 완전하게 누려야 한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더욱더 분명하게 의식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의 존엄에 더욱더 부합하고 완전히 평등한 상호 관계의 증진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거기에서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이 한계를 지녔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하였으며, 정신적인 가치를 전에보다 더 열렬히 추구하게 되었다. 분명코 이 모든 것은 개개인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들이 광범위하고도 극히 유익한 상호 협력에 언젠가는 동의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던져주는 것으로 보인다.

43. 비오 12세, 회칙 Summi Pontificatus:AAS 31(1939), 428-429면 참조.
44. 창세 1,28.
45. 상동.
  | 02.12
448 100%
제4부 사회 질서의 재건

불완전하고 그릇된 사상

212. 과학 기술의 진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시민들의 상호 관계를 크게 증대시키고 있으므로, 한 나라 안에서든 모든 나라 사이에서든 그 상호 관계는 더욱더 인간적인 균형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213. 이와 관련하여 많은 사상이 나타나고 또 저술의 중심을 이루었다. 그 가운데 어떤 사상은 햇빛에 구름이 걷히듯 사라져버렸고, 어떤 것은 오늘날 완전히 변질되었으며, 또 다른 사상은 이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그 까닭은 이러한 대중화된 공상들이 전체적이고 온전한 인간을 포용하지도 않고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고려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나 그들은 질병과 고통 같은 인간 본성의 나약함을 간과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약성은 아무리 발달한 경제 사회 체제라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또한 어디에 살든 사람들은 불굴의 심오한 종교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 어떠한 힘도 이 종교심을 말살할 수 없고 그 어떠한 술책도 이를 압살할 수는 없다.

214. 우리의 이 시대에서 가장 그릇된 견해는 인간 본성에 심어진 종교심을 한갓 상상이나 환상으로 여기고, 이는 인류의 문화 진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대 착오로서 인간 정신으로부터 철저히 제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내밀한 종교 성향은 바로 인간 자신이 하느님께 창조되어 결정적으로 하느님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님, 님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 님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찹찹하지 않삽나이다.”46)

정의와 진리와 사랑의 진정한 원천

215. 그러므로, 기술과 경제의 진보가 어떠하든, 사람들이 바로 하느님께 창조되어 그분의 자녀가 된 자신의 존엄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세상에는 결코 정의도 평화도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말하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만물의 제일 원인이요 최종 원인이시다.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비인간적인 괴물이 된다. 따라서 인간의 상호 관계는 절대적으로 모든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과 맺는 인간 양심의 올바른 관계를 요구한다.

216. 사실 여러 나라에서, 심지어는 오랜 그리스도교 문화를 지닌 나라에서조차, 본인의 사랑하는 형제들과 자녀들이 오랫동안 박해받고 있다는 사실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또 인식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서 박해받는 사람들의 지대한 존엄성을 드러내고 박해하는 자들의 잔혹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비록 박해받는 자들의 상처를 치유시켜 주지는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거듭 반성하도록 이끌었다.

주께서 집을 아니 지어주시면…

217. 그러나 이 지상 생활에서, 그 필수적인 토대를 벗어나, 즉 지존하신 하느님을 무시한 채, 확고하고도 유익한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염원보다 더 어리석은 현대의 특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위대함이 솟아나오고 또 거기서 영양을 취하는 원천을 말라붙게 하고서, 즉 하느님을 향한 영혼의 열망을 가로막고 가능하다면 말살시켜 버리면서, 인간의 위대성을 고양하고자 하는 바람 또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을 부셔버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을 비탄에 잠기게 한 이 시대의 사건들은 성서의 다음 말씀이 참으로 옳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주께서 집을 아니 지어주시면, 그 짓는 자들 수고가 헛되리로다.”47)


사회 생활에 대한 교회의 전통 교리

218. 가톨릭 교회가 인간 생활과 사회에 관하여 가르치고 선언한 교리는 의심없이 영원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근본 원리

219. 이 교리의 핵심은 개별 인간이 필연적으로 모든 사회 제도의 토대이며 그 원인이요 목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인간이란 그 본성상 사회적 존재이며 또 자연을 다스리고 초월하는 질서로 들어높여진 인간이다.

220. 인간의 신성한 존엄성을 긍정하고 수호하는 근본 원리에서부터 출발하여, 거룩한 교회는 특별히 지난 세기에 박학한 사제들과 평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인간 상호 관계를 규정하는 사회 문제에 관한 가르침을 명확하게 밝혔다. 보편 규범으로서 제시된 이 가르침은 사물의 본질과 인간 생활의 다양한 상황 그리고 이 시대의 특성에 부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규범은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다.

연구, 적용, 교육

221. 그러나 전에보다도 더 오늘날에는 반드시 이러한 가르침들을 알려야 하고 또 이해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 허락하고 요구하는 체제와 방법으로 이를 적용하여야 한다. 이는 어려운 일이지만 고귀한 과업이다. 전세계에 있는 본인의 형제들과 자녀들만이 아니라 선의의 모든 사람들이 이 가르침을 이행하도록 권유하는 바이다.

222. 그 무엇보다도 먼저, 본인은 가톨릭 교회에서 선포하는 사회 교리가 인간 생활에 관한 교리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223. 그러므로 본인은 이러한 사회 교리 분야가 갈수록 더욱더 많이 연구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각급 가톨릭 학교에서 특히 거룩한 신학교에서 이를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기를 권고한다. 본인은 물론 일부 신학교에서 이미 그러한 교육이 훌륭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더 나아가, 본인은 이 사회 교리 분야가 각 본당이나 단체에서 평신도 사도직을 권장하고 가르치는 종교 교육 계획에 추가되기를 바란다. 또한 현대의 모든 대중 매체들, 즉 일간 신문이나 정기 간행물, 전문가들이나 대중들을 위한 교리 연구 서적,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등을 통하여 사회 교리가 널리 전파되어야 할 것이다.

224. 가톨릭 교회의 이러한 사회 교리가 대중들에게 더 더욱 널리 전파되도록, 본인의 자녀들인 평신도들이 많은 노력과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신도들은 스스로 이러한 가르침을 익히고 여기에 자신의 행동을 일치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가르침을 깨닫도록 줄기찬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25. 사회 교리가 현재의 사회 문제에 관한 어려움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길보다 더 훌륭하게 이 교리의 진실성과 효용성을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을 평신도들은 분명하게 확신하여야 한다. 이 길이야말로 오늘날 사회 교리를 몰라서 여기에 반대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 가르침으로 돌아서게 할 수 있으며, 아마 그러한 사람들도 언젠가는 이 가르침의 빛으로부터 무엇인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사회 교리의 실천

226. 모든 사회적 가르침은 선언할 뿐만 아니라 바로 현실에서 실천하여야 한다. 즉, 사회 문제에 관한 교회의 교리를 그리하여야 한다. 무릇 그 가르침의 빛은 진리요, 그 목적은 정의요, 그 원동력은 사랑이다.

227. 그러므로 본인의 자녀들이 사회 문제에 관한 가르침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이다.

이론과 실천

228. 그리스도인의 교육은 모든 계층의 의무와 결부시켜야만 완수되었다고 할 수 있으므로, 그러한 교육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경제, 사회 문제에 관련되는 자신의 행동을 교회의 가르침에 일치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229. 어떠한 가르침이든 이를 실천한다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면, 사회 문제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것은 더 더욱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사람에게는 자기 것에 대한 무절제한 사랑이 깊숙이 뿌리박고 있으며, 현대의 인간 사회에는 모든 것을 물질에 귀속시키는 물질주의가 만연되어 있고, 때로는 현재의 상황에서 정의의 요구를 식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30. 따라서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경제 사회 분야에서 그리스도교식으로 행동하도록 가르치는 그러한 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이와 관련된 의무를 적절히 이행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할 것이다.

231. 교육자의 활동에 교육을 받는 사람 자신의 행동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전해준 가르침을 체험으로 받아들이는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러한 종류의 교육이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다.

232. 흔히들 격언으로 운위하듯이, 자유를 올바로 써보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자유를 올바로 누리는 법을 배울 수가 없는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경제 사회 분야에서 가톨릭 교리에 따라 행동해 보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그 분야에서 가톨릭 교리에 따라 행동하는 법을 알 수가 없다.

사회 교육에 관한 평신도의 역할

233.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 교육에서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에, 특히 현세 질서의 그리스도화를 그 목적으로 삼고 있는 단체들에게 커다란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 참으로 이러한 단체의 회원들은 그 분야의 일상 경험에서 먼저 그들 자신을 교육할 수 있고, 그 다음에는 젊은이들이 그러한 의무를 이행하도록 더 훌륭하게 교육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정신은 결코 쾌락주의가 아니다

234. 여기서 본인은 귀천을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 은총으로 절제를 지키고 어려움을 견뎌내는 의지는 그리스도교적 지혜로 전해진 인생의 의미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235. 그러나 오늘날 불행하게도 적지 않은 사람들의 정신이 무절제한 쾌락의 추구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모든 인생에서 쾌락을 갈망하고 쾌락의 갈증을 충족시키는 것 말고는 더 이상 추구하여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본다. 그러한 쾌락 추구가 영혼과 육신에 중대한 해악을 미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이러한 문제를 인간 본성의 힘만으로 판단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는 천한 욕망을 억제하고 모든 일에서 절제와 중용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현명하고 지혜로운 일이라는 결론을 당연히 내릴 것이다. 참으로 하느님의 법에 따라 이 문제를 헤아리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가톨릭 교회 그리고 우리에게 전해진 수덕 전통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욕정을 철저히 억제하고 생활의 불편을 개인의 인내로 이겨내도록 요구한다는 사실을 결코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덕행은 육체에 대한 정신의 지배를 확고하고도 절도 있게 강화시켜 줄 뿐만 아니라 죄의 벌을 속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어머니 이외에는 그 누구도 죄가 없을 수는 없다.


구체적 제안

236. 사회 문제에 관한 교리의 가르침은 대개 다음의 세 단계를 통하여 실천으로 옮겨질 것이다. 먼저, 실제 상황을 두루 관찰하여야 하고, 그 다음에 사회적 가르침에 비추어 그 상황을 면밀하게 평가하여야 하며, 마지막으로 그 시대와 장소의 특성에 전통 규범을 적용하기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여야 한다. 이 세 단계는 흔히 관찰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세 마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237. 그러므로 젊은이들이 이러한 행동 단계를 마음속으로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되도록 현재 상황에서 실천하게 하여, 그들이 배운 가르침을 행동으로 펼치지는 않고 다만 머리 속에 맴도는 것으로만 여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고 본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

238. 그러나 이 가르침들을 실천에 옮길 때에는 올바른 정신을 지닌 가톨릭 신자들마저도 이따금 서로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상호 존중과 존경의 마음을 지니고 또 이를 드러내면서 상호 합의로 추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필요한 일을 제때에 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또한 끝없는 논쟁으로 모두 탈진을 하게 되는 일은 애써 피하여야 하며, 최선의 방안을 모색한다는 구실을 내세우는 동안에 참으로 실천할 수 있고 실천하여야 할 일을 결코 소홀히 하여서는 안된다.

239. 그러나 가톨릭 신자들은 경제, 사회 문제와 관련된 직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가끔 인생관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럴 경우에,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인생관에 확고히 머물도록 특별히 유의하여야 하며, 신앙과 도덕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문제에서는 절충이나 타협을 하지 말아야 한다. 신자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똑같이 너그럽게 헤아려야 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이익에 비추어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신뢰로써 힘을 합쳐, 본질 그 자체가 선하거나 선으로 이끌 수 있는 일의 실천에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거룩한 권위를 지닌 계층이 어떤 명령이나 결정을 내리게 되면, 가톨릭 신자들은 분명코 그러한 결정에 즉각 순종하여야 한다. 신앙과 도덕에 관한 원리를 수호하고 또 자신의 권위로 그 원리의 실천에 관한 견해를 천명하는 것은 교회의 권리요 의무이기 때문이다.


평신도의 활동과 책임

240. 그러나 본인이 교육에 관하여 앞서 이야기한 가르침은 반드시 실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실천은 누구보다도 먼저 평신도 계층에 있는 본인의 자녀들에게 속하는 일이다. 평신도들의 활동은 흔히 이 지상의 현세사나 이를 위해 조직된 제도에 종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41. 이 영예로운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는, 평신도들이 자기 직업의 전문가가 되어 성취 목표에 적합한 법칙에 따라 자신의 역량을 기울여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활동을 사회 문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과 규범에 부합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평신도들은 교회의 지혜를 진심으로 신뢰하여야 하고, 교회의 가르침에 자녀답게 순종하여야 한다. 그들은 생활의 행위 안에서, 교회가 가르쳐왔고 바로 본인이 확인하는 사회 문제에 관한 원리와 규범을 스스로 성실하게 준수하지 않는다면, 그들 자신의 책무를 소홀히 하고 흔히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게 되며, 또 이 교리가 그 자체로서는 탁월한 가르침이지만 실제로 생활의 행위를 지도할 힘은 없는 것처럼, 사회 교리에 대한 신뢰가 약화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숙고하여야만 한다.


중대한 위험

물질과 영혼

242. 이미 본인이 이야기한 것과 같이, 이 현대의 인간들은 자연 법칙을 더 깊이 더욱 널리 탐구하여 왔다. 그들은 자연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도구를 발명하였으며, 거대하고도 참으로 놀라운 업적을 이룩하였고 또 끊임없이 이룩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 세계를 지배하고 또 이를 다른 형태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동안, 인간은 자기 자신을 소홀히 하여 영육의 힘을 소진시킬 수도 있는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 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인 교황 비오 11세는 비통한 마음으로 경계하며, 회칙 「사십주년」에서 바로 이러한 문제를 개탄하셨다. “원죄 후에라도 인간 영육의 이익을 위하여 실천하도록 하느님의 섭리로 정해진 육체 노동이 너무나도 자주 타락의 도구로 변화되었다. 생명이 없는 물질은 공장에서 값 있는 상품이 되어 나오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은 그 곳에서 한갓 쓰레기로 변하고 만다.”48)

243. 본인의 존경하올 선임자인 교황 비오 12세도 우리의 이 시대가 다른 시대와 구별되는 것은 바로 과학 기술이 엄청나게 진보한 그만큼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크게 퇴보한 사실이라고 올바르게 주장하셨다. 현대의 “완벽하지만 지극히 혐오스러운 걸작은 인간을 자연계의 질서에서는 마치 거인으로 만들어놓은 반면에 영원한 초자연 질서에서는 난쟁이로 만들어놓은 것이다.”49)

244. 우상 숭배자들에 대한 저 시편 작가의 증언이 우리 시대에서 광범위하게 입증되고 있다. 즉, 인간들은 자기 행동에서 흔히 자기 자신을 무시하고, 자신의 작품에 경탄하여 이를 마치 신처럼 섬기고 있다. “그들의 우상들은 금이며 은, 사람의 손으로 지어낸 것이니다.”50)

가치 서열

245. 모든 사람들을 보살피는 목자의 열정으로 본인은 본인의 자녀들에게 강력히 권고한다. 자기 직무를 수행하고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동안, 자신 안에서 의무감이 희박해지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되며, 결코 주요 선익의 서열을 망각하여서는 안된다.

246. 과학 기술의 발달과 거기서 유래하는 번영 그 자체는 선으로 간주되어야 하고 이는 또한 인류 문화 진보의 표징으로 보아야 한다고 교회는 언제나 가르쳐왔으며 또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교회는 이러한 종류의 선은 그 본질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고, 즉 인간이 자연 질서와 초자연 질서 안에서 스스로 더 나은 인간이 되는 최선의 목적을 더욱 수월하게 추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수단의 위치에 두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247. 그러므로 본인은 언제나 본인의 자녀들이 하느님이신 스승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귀기울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51)

248. 이러한 경고와 관련하여, 축일들에 가져야 할 휴식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 적절하게 보인다.

주일의 성화

249. 하느님께 창조된 인간, 하느님께서 그 영혼을 당신 모습으로 낳으신 인간이 부여받은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가톨릭 교회는 언제나 십계명 가운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내라”52)고 하는 제3계명을 모든 사람들이 충실하게 지키라고 가르친다. 일곱째 날에는 영원하신 하느님께 마땅하고 당연한 예배를 드리도록 그날을 바치라고 인간에게 명령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권리요 권한이다. 인간은 그날 일상의 일을 미루고 천상의 선익 추구에 정신을 써야 하며, 하느님과 인간의 필연적인 불가침의 관계를 인식하기 위하여 자신의 내밀한 양심 성찰에 그날을 바쳐야 한다.

250. 그리고 인간에게는 노동을 멈추고 휴식을 하여야 할 권리와 필요가 있다. 인간은 매일의 힘든 노동으로부터 육신을 쉬게 하고 품위 있는 오락으로 체력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자기 가정의 일치를 보살피기 위하여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가족들이 화목하고 평화로운 공동 생활을 하기 위하여 요구하는 것이 바로 가정의 일치다.

251. 그러므로 신앙과 더불어 도덕적인 가르침과 건강의 보호가 정기적인 휴식을 요구한다. 가톨릭 교회는 이미 여러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이러한 휴식을 하도록 하는 동시에 그 주일에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하며 구원의 열매를 인간들의 영혼에 나누어주는 성찬의 희생 제사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252. 본인은 마음의 커다란 고통을 안고, 비록 이 거룩한 법을 고의로 멸시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빈번하게 이 법을 무시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이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현실에서 본인이 지극히 사랑하는 노동자들은 영혼의 구원은 물론 육신의 건강에도 필연적으로 해를 입게 된다.

253. 영혼과 육신의 선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들이 곧 국가 지도자들과 경영자들과 노동자들이 영원하신 하느님과 가톨릭 교회의 이 가르침을 지키고 또 이와 관련하여 하느님과 인간 사회에 대해 자신이 지닌 책임을 깊이 숙고하도록, 본인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권고하는 바이다.


새로운 투신

그리스도인의 활동

254. 그러나 본인이 간략하게 다룬 이 문제로 인해, 본인의 자녀들 특히 평신도 자녀들은 그 누구도 한갓 지나가는 이승의 삶을 위한 일에서 그리스도인 고유의 활동을 좀 줄이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본인은 오히려 그러한 활동을 날로 더욱 열정적으로 수행하고 또 추진하여야 한다고 확인하는 바이다.

255. 실제로,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저 장엄 기도를 바치실 때,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간구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에서 지켜주시는 일입니다.”53)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자기 영혼의 완성과 현세 생활의 속사 이 두 가지는 상호 배치되어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마치 그리스도교적 완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사멸할 인생사로부터 물러서야만 한다든가, 어느 모로든 이 속사에 참여하면 인간으로서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고유의 존엄성을 손상시킬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일상의 노동을 통한 자기 완성

256. 그러나 인간이 날마다 노동의 실천으로 자기 자신을 계발하고 완성시켜 나가는 것은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에 완전히 부합한다. 노동은 이 사멸할 인생사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운명으로 놓여 있다. 그러한 까닭에, 오늘날 인도의 규범 곧 복음의 가르침에 진보하는 현대 문화를 합치시켜야 할 교회의 역할은 지난한 일이다. 그러나 참으로 교회의 이러한 역할을 바로 우리들의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 이 시대는 교회가 더 높은 목적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자기 손상을 입지 않고서도 그 성취를 온전히 보존하도록 열렬히 간청하고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하여, 본인이 이미 말한 대로, 교회는 특별히 평신도들의 협력을 요청한다. 이러한 연유에서, 평신도들은 인간사의 수행에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마음을 일치시켜 바로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성 바오로 사도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신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54) 또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55)

현세사의 큰 효력

257. 현세사와 관련된 인간의 활동과 제도가 영혼의 완성과 인간의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을 주면 줄수록, 그것들은 분명코 그 본질 자체가 직접 지향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더욱더 큰 효력을 지닌다고 보아야 한다. 하느님이신 스승의 저 유명한 말씀은 모든 시대에 걸쳐 유효하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56) “주님 안에서 빛”57)이 되어 “빛의 자녀답게”58) 살아가는 사람은, 인간의 다양한 활동 분야에서,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나 자기 나라나 자기 민족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 사로잡혀 있어 더욱 복잡한 어려움을 지닌 분야에서, 정의의 가르침에 따라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더욱 완전하게 깨달을 수 있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고통과 기쁨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그의 활동은 어떠한 자리에서나 확고하고 민첩하고 완전히 인도적이며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배려한다. 그 까닭은 이렇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59)

46. 고백록 1,1.
47. 시편 126(127),1.
48. 「사십주년」:AAS 23(1931), 221면 이하.
49. 라디오 담화, 1953년 예수 성탄 전야:AAS 46(1954), 10면 참조.
50. 시편 113 후편(115), 4.
51. 마태 16,26.
52. 출애 20,8.
53. 요한 17,15.
54. 1고린 10,31.
55. 골로 3,17.
56. 마태 6,33.
57. 에페 5,8.
58. 상동 참조.
59. 1고린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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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 100%
그리스도 신비체의 살아있는 지체

(결 론)

258.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 본인은 이 회칙을 끝마치기 전에 극히 중대하고도 진실된 저 가톨릭 교리의 핵심을 여러분의 마음에 상기시켜 주고자 아니 할 수 없다. 그 가르침에서 우리는 우리가 바로 교회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살아 있는 지체라고 배운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에 딸린 지체는 많지만 그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하다.”60)

259. 그러므로 본인은 성직자이든 평신도이든 전세계의 모든 자녀들에게 강력히 권고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61)고 하신 저 말씀에 따라 마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그분의 신적 생명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그 고귀함과 존엄성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스스로 완전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 마음과 정신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구세주께 결합되어 외적 사물에 자신의 활동을 적용시킨다면, 그들의 노동은 어찌 보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노동을 지속시키는 것으로 보이며, 바로 거기서 구원에 유익한 힘과 가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62) 즉, 이러한 인간 노동은 드높이 고양되고 고귀하게 되어, 노동하는 인간을 영혼의 완성으로 이끌어주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열매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이를 온 세상에 전하는 데에 공헌할 수 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우리가 살아가며 일하는 사회의 혈관 속으로 가득 퍼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의 시대

260. 비록 우리의 이 세기가 중대한 오류들로 인해 신음하고 극심한 혼란에 흔들리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이 시대에 교회의 수많은 역군들이 사도직 활동 분야에 널리 퍼져 있어 우리들의 마음에 크나큰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261. 존경하는 형제들과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위대한 저 레오 회칙으로부터 시작하여 본인은 지금까지 여러분과 함께 우리 시대의 사회 상황과 관련된 다양하고도 중대한 문제들을 살펴보았다. 그러한 고찰에서 본인이 이끌어낸 가르침과 규범들을 이제 여러분이 깊이 묵상하고 또 실천하도록 힘써 노력하라고 간곡히 권유하는 바이다. 여러분 모두가 다 굳건한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면, 바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 나라는 참으로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요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63)다. 그 나라로부터 언젠가는 우리가 바로 하느님께 창조된 목적이요 우리들이 열절한 기도로 간구하는 저 천상 행복으로 옮겨갈 것이다.

만민의 어머니요 스승

262. 만민의 어머니요 스승인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가르침은 그 빛나는 빛으로 불이 붙고 또 불타오르고 있다. 천상의 지혜를 지닌 교회의 경고하는 목소리는 모든 시대에 가닿고 있다. 그 힘은 인간의 늘어가는 요구와 이 사멸할 인생사의 염려와 관심에 대하여 언제나 효과적이고도 유익한 치유책을 제공해 준다. 바로 이러한 목소리와 함께 시편 작가의 저 오랜 목소리가 놀라운 합창을 이루어, 끊임없이 우리들의 영혼을 북돋아주고 굳건하게 해준다.

“주 하느님 말씀을 내 듣고 싶사오니
정녕 평화를 말씀하시나이다,
당신의 백성과 성도들에게,
그 마음 당신께 돌아오는 이들에게.
당신을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정녕 가까우니
당신의 영광이 우리 땅에 계시게 되리라.
자비와 충성이 마주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함께 입맞추리라.
땅에서 충성이 움터 나오면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주께서 행복을 내려주시면
우리 땅은 열매를 맺어주리라.
정의가 당신 앞을 걸어나가면
구원은 그 걸음을 따라가리라.”64)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소서

263. 존경하는 형제들이여, 전세계 교회에 대한 본인의 관심을 오랫동안 기울여온 이 회칙을 끝마치며, 본인이 바치는 기도는 이렇다. 즉, “우리에게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성화와 속량이 되신”65) 분, 하느님이신 인간 개조자께서 만물 안에서 만물 위에서 온 세기를 통하여 다스리시고 영광스럽게 승리하시기를 본인은 기도한다. 또한 사회 질서를 올바로 세워 마침내 모든 민족들이 오래도록 번영과 행복과 평화를 누리게 되기를 기도한다.

264. 이러한 소원의 증표로서, 어버이다운 호의의 보증으로서,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사목에 맡겨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히 본인의 이러한 호소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응답할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 안에서 기꺼이 사도적 축복을 보낸다.

로마 성 베드로좌에서, 교황 재위 제3년, 1961년 5월 15일 교황 요한 23세

60. 1고린 12,12.
61. 요한 15,5
62. 상동.
63. 그리스도왕 대축일 감사송.
64. 시편 84(85),9 이하.
65. 1고린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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