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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 생활 양성 지침
조회수 | 2,681
작성일 | 07.01.11
▶ 인사말

▶ 서언

본 안내서의 성격과 목적
이 지침들의 특수 목적
새로워야 하는 이유
지역 교회의 형편에 맞게 적용함
개인에 따라 적용함

▶ 1. 현대의 사제 생활에서 독신이 지닌 의미

진정한 그리스도인 생활

I. 교회 생활과 독신

성품성사의 의미
사제직과 복음적 권고
독신 생활의 특수성
독신 생활과 사도직
종말론적인 측면에서 본 독신

II. 현대 생활과 사제 독신 제도

사제 독신 생활의 문제점
독신의 이유들
독신과 사제직과의 관계
사제 독신 생활의 현대적 어려움
독신 생활 교육 훈련의 전제 조건들

▶ 2. 신학교 교육의 목표

신학교 교육의 삼중 구조

I. 인간 성숙을 위한 교육

인간 성숙의 개념
교육과 인간 성숙
정서적인 인간 성숙
성적인 인간 성숙
완전한 성
인간적 자제

II.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 교육

교육의 그리스도인적 차원
그리스도인 생활에 요구되는 성숙
그리스도인의 정서적 성숙
그리스도인의 성적 성숙
그리스도인의 자세

III. 사제적 성숙 교육

사목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양성 교육
사제의 인간적 성숙과 그리스도인적 성숙
사제의 정서적 성숙
사제의 성적 성숙
사제와 자제

▶ 3. 신학교 교육에 관한 지침

교육상의 어려움

I. 교육자가 따라야 할 기준

문제의 복잡성을 의식할 것
정상적 상황과 비정상적 상황
인간적 지도와 영적 지도
성소의 확인
교육자에게 문제가 되는 성교육

II. 성교육에 관한 지침

양성 과정으로서의 성교육
개인적-인격적인 성교육
성교육의 환경적 요소들
대화와 성교육
인격적이고 점진적인 성교육
절제와 성교육
성교육과 사랑

III. 독신 생활 훈련 지침

독신 생활의 진리와 그 진실성
독신 생활의 내적 작용
관계와 고독
독신 생활을 위한 훈련 조건
독신 생활에서 이룰 참된 사랑에 대한 훈련
종교적 열정과 정결의 관계

IV. 사제적 수덕 생활 훈련

수덕 생활의 필요성
사제적 수덕 생활의 특성
신학교 생활과 수덕
근본적인 선택은 신앙을 필요로 한다.

V. 정서적 온전성의 문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미묘한 문제
정결의 신학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향하여
사목 생활이 요구되는 양성 교육
우정에 대한 한마디

VI. 양성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들

청소년 교육의 과제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자위 현상
청소년의 신학교 교육
청소년기 이후 교육의 과제
성소에 항구함
성인기의 특수한 어려움들
사제 생활의 위기의 원인
이런 어려움들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일

▶ 4. 교육의 장(場)으로서의 신학교

신학교 양성 교육의 조건들

I. 신학교의 분위기

형제적 공동체인 신학교
형성하는 공동체인 신학교
신학교 교육에서의 그룹 활동
규율과 규칙의 기능

II. 신학교와 영성 생활

양성 과정에서의 기도 생활
신심 형태의 개정 기준
신학생들의 전례 교육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
신학 연구를 통한 양성 교육

III. 신학교와 교회적 사랑

장상들과 신학생들 사이의 관계
사도적 사랑의 양성
그리스도를 본받음

IV. 세상과 접촉할 필요성과 접촉 수단

사제 양성의 새로운 요구 조건들
상호 인격적인 관계의 목적
신학생과 그 가족들
본당과의 관계
세상과의 접촉
세상에서 사도적 현존을 이루는 교육
사회 홍보 수단

▶ 맺는말

자연과 은총의 종합인 양성 교육

▶ 교황청 가톨릭 교육성 지침 1974.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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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회칙 [사제 독신 생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기회에 현대인이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들어 거룩한 독신 생활의 정당하고도 중대한 이유를 다시 한번 밝히고자 한다."(16항) 교황께서는 또한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이들이 이 점에 있어 올바른 교육을 받도록 관심을 기울이셨으며, "전문가들의 협조를 얻어 이 교육 문제를 광범위하게 또 깊이 연구할 수 있는 특별 기구를 되도록 속히 마련하기를 바라며 그것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내일의 사제를 양성하는 중책을 맡은 이들에게 시대에 맞는 도움을 제공하기"(61항)를 바라셨다.

본 문헌은 교황님의 이 같은 원의에 대한 응답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본 문헌이 늦어진 것은 무엇보다도-회칙의 가르침에 따라-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본문을 여러 번 재편집함으로써 여러 분과에서 검토한 것을 충분히 참작하여야 했다. 또 하나 이 문헌이 늦어진 이유는 본문을 여러 주교회의에 보내어 그들의 제안들을 듣고 이에 따라 새롭게 검토하는 작업을 거쳤기 때문이다.

본 문헌은 독신 생활에 대한 이론적 토론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본 문헌이 좀 늦어졌다고 해서 그 참신함과 시의적절함에 흠집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안내"(오리엔테이션)의 정신은 본문 안에 충분히 강조되어 있다. 독신 생활 교육은 무엇보다도 이 문헌의 저변에 깔려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되고 규정된다. 그리스도께 대한 깊은 사랑이 없다면 사제 독신 생활은 전혀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독신 생활의 의미와 실천은 인간적 요소들로 조건지어지는 것이며, 우리는 이를 절대 간과해서는 안된다. 정말 그것들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심각한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다.

교황청 가톨릭 교육성은 그 권한에 따라 이 문헌을 마련하였으며, 이를 주교들과 사제 양성 교육을 맡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어려운 작업 결실-매우 까다로우면서도 근본이 되는-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직 책임있게 연구되어,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교회의 선익에 실제적으로 활용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로마, 가톨릭 교육성에서 1974년 4월 11일,
장관 가브리엘 마리 가론느 추기경
차관 요제프 슈뢰퍼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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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

본 안내서의 성격과 목적

본 문헌은 사제 독신 생활 교육에 대한 일반적인 안내 이상의 "훈령"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회 여건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항상 유효한 안내이지만, 이를 활용하는 데는 교육자의 노련함이 필요하다. 이것은 회칙 [사제 독신 생활]에서 표현된 원의에 대한 응답이다. 회칙은 사제 독신 생활을 위해 미래의 사제들을 준비시킬 막중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도울 마땅한 지침이 있어야겠다는 원의를 밝히고 있다.1)

이 지침들은 교회의 시대적 상황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사제 지망자들이 성령의 선물로 자유로이 받아들인 거룩한 독신에 대한 양성 교육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본 문헌이 생활과 교육 방식에 있어 우리와는 다른 동방 전례 교회의 상황을 훼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거룩한 독신은 하느님께서 몸소 부르신 사람들에게 거저주시는 "값진 선물"이다. 그렇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으로서는 이 선물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가장 좋은 여건들을 마련할 의무가 있다.2)그러므로 교육자는 학생들에게 독신이라는 선물을 감사하고 이를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게 하며 그 현실과 실천을 인정하도록 할 임무를 지니고 있다.

이 지침들의 특수 목적

성교육은 그것이 결혼 생활을 준비시키는 것이거나 독신 생활을 준비시키는 것이거나 간에 어렵고도 까다로운 것이며, 특히 오늘의 사회-문화적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살고자 준비하고 있는 이들을 완벽하게 양성시키려는 경우는 특수할 수밖에 없다. 1971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최근 문헌은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독신 생활은 특별한 어려움들 때문에 사방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어려움은 수세기에 걸쳐 여러 번 당한 어려움익도 하다." 사실 "하느님의 선물로서의 독신 생활은 지망자들이 이에 합당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결코 지켜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3)

사람들을 축성-봉헌된 독신 생활에 맞게 준비시킨다는 것은 모든 교육자들-가정 공동체, 본당 공동체, 신학교 공동체-에게 떨어진 피할 수 없는 의무이다. 넓게 보면 이들은 지망자들을 사제 생활에 맞게 양성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독신 생활을 위한 양성 교육의 문제는 여기서 주로 교육 원리에 따른 자연적인 면만을 고려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같은 문제는 아무리 지망자들 편에서 잘 받아들이고 교육자들 편에서 잘 보살핀다 하더라도, 단순히 자연적인 차원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항상 명심하여야 한다. 성서(시편 126; 마르 4, 26-29; 10, 27; 루가 1, 37; 요한 15, 5; 1고린 3, 6; 갈라 5, 22-23; 필립 4, 13)가 강조하여 말하듯이, 은총이 이 양성 교육에 근본적이고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더욱이 "교회의 경험이 확인하고, 현대 사회에서도 역시 필요한 수덕 규칙"4)을 성실히 준수하는 일 역시 본질적인 것이다. 젊은 학생들은 그들의 생활에 매우 특수한 수덕 규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신하여야 한다. 이 같은 수덕 실천은 일반 신자들엑보다 젊은 학생들에게 더 막중하게 요구되며, 사제직을 갈망하는 이들엑는 더욱 각별히 요구되는 것이다.5)

그들은 신학교 생활에서부터 그들을 그리스도께 결속시키는 은총을 온 마음으로 갈고 닦을 필요가 있음을 깨닫도록 교육받아야 하며, 이 성화의 신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야 한다. 그들은 교회의 신비에 대한 지속적인 감각을 체득하여야 하며,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의 생활 상태가 흔들리거나 부조리하게 될 것이다.6)

새로워야 하는 이유

논란이 되고 있는 이 문제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요소와 이유 때문에 더욱더 이 문제가 특별한 긴박성과 중요성을 갖게 된 것이다. 다음은 그중에서도 특별히 지적할 만한 것들이다.

-구원의 역사가 전개됨에 따라 사제 독신 생활은 새 삭 방식에 부응하여 영위되어 왔다. 그것은 현재의 영적 요구에 부응하여 인류에게 제공되는 구원의 증거이다.

-인문 과학(교육학, 심리학, 사회학)은 항상 발전 단계에 있다. 인문 과학은, 이론적이거나 실천적인 새 방법론을 항상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7)

-신학생 자신들이 새로운 심리학적 감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적 질서 안에서 살고자 하며, 인습의 굴레를 거부한다. 그들은 선택의 자유를 예찬하며 복음의 이상에 전적으로 투신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사실에 입각하여 교육자들은 항상 참신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또한 오늘의 세속 사회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야만 한다.

순전히 상대적인 진리만을 말하는 대신 영구한 가치를 천명하는 모든 인간 제도들은 시대적인 혁신을 겪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사제적 가치들은 분명 항구하며 없어지지 않는 것이므로 부활하신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하는 교회의 맥락 안에서 고찰되어야 하며, 오늘의 세대에 알맞는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실로 교육자들은 사제직의 영원한 의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야 하며, 이를 우리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역 교회의 형편에 맞게 적용함

독신 생활 교육은 상이한 문화와 역사적 시기에 따라 적응되어야 할 뿐 아니라 지역 교회의 여건에 맞추어 적응되어야 한다. 지역 교회는 서로 매우 다르고, 그들의 심리학적-사회학적 관점 역시 다를 것이므로, 복음에 대해서도 다른 방식으로 증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교 교육도 지역 교회의 삶에 알맞는 교육 방식을 반영하여야 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는 물론 주교회의가 마련한 규범을 항상 따라야 한다. 사제 독신은 사제직 자체와 마찬가질 하느님께서 섬기도록 파견하신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께 봉헌됨을 의미한다.8)

이 지침들은 오늘의 상황에 적응된 것으로서 자신의 사제들을 교육할 지역 교회의 책임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지역 교회가 사제들의 영적 요구와 그 교회적 생활 방식을 재검토하고, 오늘의 세계에서 올바른 교육과 증거를 제공할 지역 신학교의 효율성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려는 것이다. 사실 사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의 빛으로 오늘의 문제들을 연구함으로써 하느님의 계획을 발견해 내야 할 것이다.9)

개인에 따라 적용함

본 문헌은 독신 생활을 훈련하는 데 요긴한 여러 제안들을 많이 담고 있다. 본 문헌은 여러 분야로 나뉘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전체적 작업의 단일 주제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이를 따로따로 분리시켜서는 안된다. 뿐만 아니라 신학생 개인들 사이에 생체-심라학적인 차이나 사회-문화적 차이가 크다 하더라도, 성문제는 그 삶의 상태에 상관 없이 모든 사람에게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이 문제의 보편적 성격은 일반적인 지침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이 지침들은 실제에 적용되어야 하며, 그렇게 할 때에는 교육되는 개인의 요구에 가장 적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제직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사제직을 위해 선택되는 것도 한 개인이다. 그러므로 인간 행위의 정상적인 선에서 나타나는 여러 성격들과 함께 개인의 다양성을 살려야 할 때라든지, 특히 정말로 틀에서 벗어났거나 비정상적 개성의 소유자를 가려내야 할 의무를 지니는 경우에는 그 임무 수행에 있어 최선의 수단이 동원될 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된다.

본 지침들은 정상적인 사람들을 교육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작성된 것이다. 사제직을 지망하는 사람들은 정상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소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욱 특수한 작업이 요구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학생들이라면 분명 사제 생활과는 무관한 사람일 것이다.

▶ 주석

1. 바오로 6세, 회칙 [사제 독신 생활](1967. 6. 24): AAS 59(1967), 628면, 61항.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제 양성 교령, 10항; 사제 직무 교령, 16항; 수도 생활 교령, 12항; 바오로 6세, 사도적 권고 [복음의 증거](1971. 6. 29.): AAS 63(1971. 11. 30.): AAS 63(1971), 917면, 제 2부, I, 4항, 라) 참조.
3. 직무 사제직, 제2부, I, 4항, 라).
4. 사제 직무 교령, 16항.
5. [사제 독신 생활], 70항 참조.
6. [사제 독신 생활], 75항 참조.
7. 사목 헌장, 1항; 그리스도교 교육 선언, 1항; [사제 독신 생활], 61항 참조.
8. 사제 양성 교령, 1항 참조.
9. 사제 직무 교령, 16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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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의 사제 생활에서 독신이 지닌 의미

진정한 그리스도인 생활

결혼과 독신은 진정 두 가지의 그리스도교 생활 양상이다. 이 둘은 그리스도교 소명, 즉 교회의 전체성 안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소명을 따르는 두 가지 방식이다.1)

하늘 나라를 위한 독신 생활(마태 19, 12)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에 주신 선물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배타적으로 사제직에만 속하는 은사(카리스마)는 아니다. 그것은 사제 고유의 소명이 아니다. 그것은 복음적 권고〔福音三德〕의 실천에로 부름을 받은 여러 인간 집단에 의해 교회 안에서 다양하게 실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독신 생활은 다른 복음적 권고들의 전체적인 모습을 완성시키는 일종의 표지가 된다. 그것이 하늘 나라를 위해 선택한 것인 이상, 가난이나 순명이라는 복음적 덕행을 기본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복음 삼덕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보와하고 있으며 따라서 본성상 완전히 복음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I. 교회 생활과 독신

성품성사의 의미

세례성사와 성품성사는 우리 주님의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성품성사는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수위"(首位) 직능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례성사로 부여받는 일반 사제직과는 정도에 있어서 뿐 아니라 본질에 있어서도 다른 사제직, 즉 직무 사제직을 부여한다.2)성품성사는 사제들이 "직무자"가 되게 한다. 즉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대표요, 그리스도께서 몸소 당신 몸(신비체인 교회)을 기르시고 성화하시고 다스리시는 그 권위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3)

사제는 "성령의 도유로써 특별한 영적 인호가 새겨지고 이로써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게 된다."4)그들은 또다른 그리스도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 파견된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성체성사 위에 세워진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이루어지는, 더욱 깊고도 영원한 삶에로 사람들을 인도할 소명을 받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님 안에서 부활하여 항상 그분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들처럼 사는 생활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

사제직과 복음적 권고

복음적 권고는 사제적 봉헌 생활에 일종의 명령이면서도 동시에 은총이다. 사제 지망자는 사제이신 그리스도께 봉헌됨으로써 그와 관련된 복음의 투신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의 사명을 계속하고 복음적 생활로 그분을 증거한다.

직무 사제직은 특별한 사랑을 요구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목적 애덕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사제는 자신의 삶을 다 바쳐 다른 사름들의 구원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직무 사제직은 다른 사람엑 사랑을 바칠 수 있도록 요구한다. 복음적 권고는 분명 이 사목적 애덕으로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그리고 이웃 사랑에 봉헌된 것이 사실이라면, 사제직으로 하느님ㄲ 봉헌된 자에게는 더 너그럽고 완전한 헌신이 요구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제적 완덕이라는 이상에 합당하게 응답하기 위해서는 분명 복음적 덕행의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독신 생활의 특수성

독신 생활은 확실히 사제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적극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갈림 없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봉헌됨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늘 나라에 바쳐진 역설적 사랑을 증명하는 하나의 증표이다.

독신 생활에 대해 앞에서 언급한 셰주교대의원회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제 독신 생활은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부르심과도, 또한 부르심을 받들어 사목적 봉사를 받아들인 사람의 무조건적인 응답과도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같은 시노드 문헌은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만일 독신 생활이 복음 정신, 기도, 깨어 있음, 가난, 기쁨, 탈공명심, 형제애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감춰질 수 없는 표징이 될 것이요, 오늘날에도 인류에게 그리스도를 효과적으로 선포하는 것이 될 것이다."5)

독신 생활은 자연 질서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인적 투신을 내포한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독신 생활은 단지 교회의 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며, 가칭 덧붙여 받게 되는 일종의 "자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온 교회의 면전에서 공적으로 부여받기 때문이다. 독신 생활은 하늘 나라를 위한 하나의 봉헌이며, 공적으로 부여되는 하나의 참되고 실제적인 희생이다. 그것은 혼인성사의 포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신학생들은 이 생활 양식이 외부로붙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 의사의 표현이며, 따라서 주교를 통하여 교회가 받아들이고 승인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6)

독신 생활과 사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모든 제자들에게 당신을 따르는 자가 되기 위해서 매우 엄격한 ㅇ구를 제시하셨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 사도로서 당신을 따르도록 초대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셨다.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랐다(마르 1, 16-20). 예수님 자신이 하늘 나라를 위해 받아들이는 독신을 칭찬하셨다(마태 19, 12). 사도 바오로는 개인적으로 이 복음적 명령을 받들었으며, 독신 생활을, 갈림 없는 마음으로 자신을 주님께 바칠 수 있게 하는 하느님의 선물로 생각하였다.

독신 생활을 통해 교회 직무자의 능력은 강화되고, 증거하는 힘이 증가되며, 그 어떤 외압ㅇ도 저항할 수 있는 자유가 보존된다. 독신자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파스카의 신비에서 선택하신 방식인 "케노시스"에 신비스럽게 동참한다.

독신은-그것이 비록 사제직과 그 직무 수행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사제 생활에 적용됨으로써 가장 알맞는 것이 되었다. 그것은 사제직의 본질을 빛나게 하며 사제직 자체의 알을 고양시키기 때문이다. 독신 생활은 사제직의 고유 특성인 하느님께 봉헌됨, 그리스도께 동화됨, 그리고 교회에 대한 투신을 탁월하게 실현시킨다. 그것은 사제적 품성으로 기대하는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종말론적인 측면에서 본 독신

독신은 사제적 사랑에 초점을 맞추게 하며 이에 추진력을 부여한다. 사제는 독신 생활로 이 사랑을 완성하며, 사제가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어야 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매우 실질적인 방식으로 미래의 사랑의 삶에 미리 참여하게 된다.7)

하늘 나라를 위해 받아들인 독신 생활로 사제는 그리스도를 닮으라는 부르심ㅇ 응답한다. 그는 믿음과 사랑을 통해 이미 현존하는, 다가올 세상을 미리 사는 것이다. 축성-봉헌된 독신 생활은 종말론적 희망의 표지가 되며, 모든 사람이 성령에 의해 예수님과 하나 되어 성부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살게 될 미래의 실재를 보여주는 예언자적 표지가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결합되어 그 사랑을 증거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 생활도, 순교에서 수도 생활, 사제직에서 결혼 생활에 이르기까지 종말적 특성을 진게 된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한다면 독신 생활은 사제직에 종말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처지, 모든 소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다 나름대로 종말적 특성을 지니고 있듯이, 사제 역시 이미 이 종말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8)그러나 사제 독신 생활은 사제직의 종말적 성격과 조화를 이루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이를 강화할 뿐 아니라 사제로 하여금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에 온전히 빠지게 한다.9)

II. 현대 생활과 사제 독신 제도

사제 독신 생활의 문제점

오늘날 사람들은 독신 생활에 머물러 있지 않고서도 좋은 사제로 머무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묻고 있다. 그 답이야 어떠하든(자연적인 관점ㅇ서이건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이건), 사제적 독신을 선택한다는 것은 좋은 어떤 것을 희생하는 것을 내포한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결혼 생활이 어떤 곳에서는 사제 성소에 대한 관심을 더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거나, 일부 사제들에게 있어서는 결혼 생활이 더욱 균형 잡힌 정서 생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 같은 이론은 독신이 그 자체로서 사제의 사명 수행에 더 알맞다는 사실과 그 희생이 구원적 사랑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좋은 어떤 것을 희생하지 않고서 이루어지는 생활, 또는 소명이란 없다. 이것은 소명이 피조물인 인간에 의해 수행되는 것일뿐 아니라, 우리 주님의 부활 신비의 은총을 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신 생활을 사제 직무와 연계시키는 것이 합당한가, 아니면 이 둘을 어떤 면에서 따로 분리시킬 것이가 하는 것은 단순히 규율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신앙상의 이유와 함께 사회학적 탐구 결과에 바탕을 둔 교회 통치 차원의 사목적 결정이다.10) 사제직의 가치들을 어떻게 분석해 보더라도 이 두 요소, 다시 말해 생활한 신앙과 사제의 경험에 관한 연구 결과,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계된 결정 요소이다.

독신의 이유들

교회는 사제들에게 독신 생활을 요구하는 깊은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들은 사제로서 그리스도를 닮음, 공동체의 머리요 지도자이신 그리스도의 대표로서의 역할, 교회의 지속적 건설에 꼭 필요한 봉사 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11) 교회는 결코 "의식상의 깨끗함" 때문에 독신을 고집하거나, 독신을 통해서만 성덕이 가능하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독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제의 독신을 정당화하는 역사적 이유 가운데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더 이상 내세울 수 없는 이유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독신 생활과 사제직을 연결시키는 것을 반대할 근거가 될 수 없다. 이 연결은 교회 안에 하나의 살아 있는 실재이다. 결험은 그것이 이러저러한 논란에 연관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근본 사실과 실재, 즉 동정이시면서 동시에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 자체와 연관되어 있음을 밝혀준다.12)

교회는 독신을 단순히 사제 생활과 사제직의 외적이고 비인격적인 요소로 규정한 적이 없으며, 필수 불가결의 요소로 보아 왔다. 그것은 항상 위로부터 주어지는 선물, 사제 성소에 흘러 넘치는 선물-사제 성소의 근본 요소요 구성 요소가 되는-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신과 사제직과의 관계

독신과 사제직 사이의 관계는 독신의 그리스도론적, 교회론적, 종말론적 측면을 고찰할 때 분명해진다. 이것이 바로 제2차바타칸 공의회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라는 골자 안에서 사제의 축성-봉헌과 그 사명에 대해 언급하면서 독신 생활이 "많은 적합성"(multimodam convenientiam)을 지니고 있다고 표현한 이유이다.13)1971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사목자의 직무와 독신 생활 사이에 긴밀하고도 많은 적합성이 있기 때문에"14) 현행의 독신 제도를 재천명하였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위격을 대표한다. 사제로 서품된으로써 그는 말씀과 성체의 직무를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을 건설하고 고유하고도 성사적인 방식으로 형제적 사랑을 보여주게 된다. 이 두 가지로써 그는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이바지하게 된다.

모든 것을 떠나라고 하신 예수님의 초대로 사도들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더욱 맞갖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다. 그 초대는 또한 사도적 친교 안으로 들어갈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이 친교로 그들은 서로의 인격을 나누는 깊고도 풍부한 관계를 체험할 수 있었다.

사제 독신 생활은 그리스도의 독신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친교이다. 가톨릭 사제들의 새로움은 그리스도의 새로움 그 자체에 깊이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15) 그것은 거룩한 독신에 관해 그리스도론적, 교회론적, 종말론적 의미에서 고찰하는 논증의 발전을 뒷받침해 온 신앙의 전망(비전)이다.16)

실로 우리 구세주의 하나이고도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하는 사제는 그분 안에서 "직접적인 모범과 최상의 이상을" 발견한다. 그 같은 높은 이상은 분명 영웅다운 행동, 즉 가장 어려운 일에 나설 수 있도록 해준다.17) 따라서 사제직을 수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체험하신 것과 같은 조건과 전망을 재창출하려는 원의가 일어나게 되며, 이로써 가능한 한 가장 가깝게 그분을 본받을 수 있게 된다.18)

사제 독신 생활의 현대적 어려움

사제 독신 생활은 현대 사회에서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19) 오늘날 사상들은 뿌리채 뒤바뀌는 과정에 있다. 사회는 성소의 확고부동함을 강조하는 대신 오히려 그 반대이다. 독신의 위기가 조성된 것은 특히 이런 상황 때문이다. 어떤 의견에 따르면 독신 생활은 가난한 사람들과 짓밟힌 사람들에 대한 사제의 사명을 어느 정도 방해한다는 것이다. 사제는 특권이나 면제나 제한 없이 인간 투쟁의 일부가 되기를 바라야 하며, 기본적인 인간 경험(노동, 불안정, 주택, 사랑, 문화, 여흥 등)을 나누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인간적 사랑에 강하게 끌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제 독신 생활이 오늘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말고도, 그것은 특히 자신의 자율성이 제한되거나 권리가 무시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본능적인 보상 심리에서 1회용 애정을-비록 금지되어 있더라도- 추구하기 마련이다.

사제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관계를 맺게 되는 여성들은 그를 쉽게 신용하게 되는데, 이는 사제가 독신이라는 점이 신뢰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실제로 그 같은 보상적 애정은 아주 자연스럽게 추구된다. 때때로 여성들은 사제에게서 남성적인 도움을 구하게 된다. 나아가 오늘날 널리 퍼진 난잡한 분위기에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것은 도발적인 유행과 사회 홍보 매체(신문,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의 광범한 사용때문이며,20) 사제 지망자들 역시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독신 생활 교육 훈련의 전제 조건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독신자는 분명 사도적 사랑의 표현으로서 자제의 생활을 견지하면서도 정서적 인간 성숙의 발전을 이루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21) 자제는 사도적 사랑으로 말미암은 내적 감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복음적 자제라 할 수 없다. 가능한 한 가장 정성스럽고도 고유하게 교회적 애덕에 따라 살고 나누기 위해 독신을 택한 축성-봉헌된 사람에게는 사도적 사랑이 없는 자제란 하나의 모순일 뿐이다.

정서적으로나 영적으로 성숙한 독신 생활인은 자기 삶을 둘러 싸고 있는 외적인 법규 때문에 스스로 포위당한 것처럼 느끼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 같은 독신이 밖으로부터 자신에게 부과된 어떤 필수적 예방책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독신 생활의 정덕은 주님께 지불해야만 하는 어떤 세금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분의 자비에서 받게 되는 하나의 선물이다. 이 생활로 들어가는 사람은 자신이 무거운 짐을 지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자유로워지는 은총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신학교 교육의 목적은 성실하고 완성된 사제가 될 책임감 있는 성숙한 인격을 형성하는 데 있다. 현대의 세상 여건들은 사회적으로 볼 때 매우 부정적이어서,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이것은 사제 지망자들에게 점증하는 인격적 짐이 되고 있다. 자신들의 성소를 온전히 계발할 의무가 기본적으로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 주석

1. [사제 독신 생활], 20항 참조.
2. 교회 헌장, 10항 참조.
3. 사제 직무 교령, 2항.
4. 상동, 2항; 교회 헌장, 28항; [사제 독신 생활], 19항 이하 참조.
5. 직무 사제직, 제2부, Ⅰ, 4항, 가).
6. 상동, 제2부, Ⅰ, 4항, 가).
7. 사제 양성 교령, 10항; 사제 직무 교령, 16항 참조.
8. 사제 직무 교령, 16항; [사제 독신 생활], 17항 참조.
9. 사제 양성 교령, 10항; [사제 독신 생활], 33-34항 참조.
10. 교회 헌장, 29항; [사제 독신 생활], 42항 참조.
11. 사제 직무 교령, 16항,; 직무 사제직 제2부, Ⅰ, 4항 참조.
12. 교회 헌장, 43. 46항 참조.
13. 사제 직무 교령, 16항 참조.
14. 직무 사제직, 제2부, Ⅰ, 4항, 다).
15. [사제 독신 생활], 19항 참조.
16. 상동, 17-34항 참조.
17. [사제 독신 생활], 19. 31항 참조.
18. 상동, 21항 참조.
19. 상동, 1항 참조.
20. 사제 양성 교령, 10항 참조.
21. 상동, 10-11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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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학교 교육의 목표

신학교 교육의 삼중 구조

사제 독신을 위한 더욱 계발된 훈련은 신학교 교육의 모든 목표를 고려하게 될 것이다. 이 전반적인 교육 형태 속에 자리잡는 것이 바로 사제 독신을 위한 훈련의 필수 용소이다. 이 특수하고도 필수적인 요소들이 본 지침서의 대상이다.

신학교 교육은 스승이요 사제요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영혼의 목자가 될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1) 그 같은 교육 목적은 신학생들이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신에 사제가 되도록 교육받는 것을 전제하며 내포한다.2) 그러므로 사제 양성 계획은 삼중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 완전한 인간, 완전한 그리스도인, 완전한 사제를 양성하라는 요궁 부응하는 것이 그 목표이다.

교육 계획은 항상 이 세 가지 양성 차원 사이에 충분하고도 균형잡힌 비중을 두어야 하며, 어느 하나를 다른 것보다 더 강조하거나 서로를 따로 분리시켜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 양성과 인간 양성, 그리고 사제 양성은 어느 하나를 우선시킬 수도, 서로를 따로 떼어놓을 수도 없다.

본질적인 구분은 하나로 조화를 이루면서 인간 양성, 그리스도인 양성, 사제 양성이라는 이 삼중 구조를 분명하게 견지해야 하며, 그 상호 보완과 상호 작용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간 교육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전제 조건이며, 은총은 완전한 인간성의 실현을 이루는 원동력인 것이다.

I. 인간 성숙을 위한 교육

인간 성숙의 개념

사제 독신 생활의 특수한 점은 지원자의 정서적 성숙이라는 기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심리학적이고 윤리적인 성숙이라는 더욱 광범위하고 본질적인 문제의 일부이다. 인간 성숙은, 성숙한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여러 요소들의 조화이며 여러 인간 경향과 가치의 통일이다.

현대 심리학자들이 옳게 관찰해 낸 바와 같이 성숙은 하나의 단순한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다면적인 것이고, 그 하나하나는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숙도를 측정할 기준을 정하는데 있었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래야 성숙은 전형적인 존재 방식으로 규정될 수 있는 보편적인 조건이 되며, 객관적인 측정이 어려울 때라도 그 자체의 고유한 방식으로 드러날 그런 인간 조건이 된다.

성숙은 쉽게 또는 완전히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인 실재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인간을서의 자신의 소명을 실현한 사람을 성숙한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확고하게 지닌 사람, 자신의 덕성으로 인간적 능력을 전체적으로 발전시킨 사람, 자신의 감정을 통하하여 이성에 봉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정서적인 자아 조정을 항상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공동체 생활을 즐기는 사람, 자신의 일(직업)을 차질없이 조용히 수행하는 사람, 양심에 따라 분명하게 행동하는 사람, 자신의 자유를 탐색과 연구와 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 사건들을 처리하고 이를 미래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사람, 자신에게 부여된 인간적 가능성과 능력을 온전히 개화시킨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다.

교육과 인간 성숙

사람을 교육시킨다는 것은 다양한 일차적(신체적, 지적, 윤리적, 사회적, 종교적) 영역에서, 그리고 이차적(예술 교육, 직업 교육, 사회적 소양 교육) 영역에서 "성장"을 촉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교육의 복합적인 작업은 개인의 고유하고도 특별한 개성 안에서 생리-심리-사회적 인격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교육받은 사람'이 되는 것은 심리적, 영적 인격 전체로 "선"을 지향하는 자유롭고 의식적이고 책임 있는 인간의 능력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공의회가 교육의 목적으로 제시하는 인간 성숙이다. 이러한 양질의 교육을 받는 것은 각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다.3) 이것은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진정 인간을 부르시며, 인간이 없는 곳에는 부르심도 없기 때문이다.4)

신학교 교육은 신학생들이 인간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개방적이어야 하며, 그 종교 교육 역시 인간 교육을 대신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인간 교육에 점차적으로 침투하여 이를 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정서적인 인간 성숙

성숙은 자연적인 면과 정서적인 면을 포함하여 모든 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실로 정서는 인격 형성의 근본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 실로 ㅈㅇ서는 인격 형성의 근본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 요소는 인격 완성, 정서적.성적 관계의 형성, 일 또는 직업에서의 책임 완수, 사회적 접촉에서의 우의 증진 등에서 큰 공헌을 하는 과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분명 정서 내지 감정은 인격체에 기본이 되는 것이므로, 정서적 성숙은 인격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심리적인 삶의 일부로 본 정서는 여러 가지로, 즉 만족을 가져오는 내외적 상호 작용의 복합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으로, 사랑하는 능력으로, 부수적인 능력들을 형성하는 가능태로 이해된다.

훌륭한 인간은 이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감성을 지배하게 할 줄 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 발달된 인격체를 목표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자신의 정서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능력을 배양하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정서적 요소와 깊이 관련된 것이 바로 적응 문제이다. 적응이란 자신의 문제에 침착하게 직면하는 것이며, 문제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처한 어려움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적응 능력의 부재는 부정적인 정서들-미움, 의존심, 사회적 무력감, 풀지 못한 문제들로부터 오는 압박감-의 지배 아래 놓이게 한다.

성적인 인간 성숙

정서를 이야기할 때 "성적 차원"은 특히 중요하다. 정서와 성, 그리고 전 인격체 안에 그 상호 의존 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이 두 가지가 가양각색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사람을 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성적 본능이 두 가지 미숙한 정서적 경향, 즉 나르시시즘(자기애)과 동성애를 극복해야 하며 이성애에 도달하여야 한다. 이것이 성적 발전의 첫번째 단계이다. 그러나 둘째 단계, 즉 "사랑" 역시 필요하다. 이것은 이기주의가 아닌 '자신을 내어줌'이다.

이런 발전 단계를 거쳐 얻어지는 것은 올바로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적 행동이며, 이로써 사람은 자아 인식과, 자아 평가, 그리고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얻게 된다.

성은 인격체 성숙의 결정적 요소라고 보아야 한다. 성적 성숙은 심리학적으로 어른이 되는 데 하나의 사활적인 단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양성 과정에 있는 인격체를 전체적으로 보고 성을 그 바른 자리에 위치시켜야 한다.

지금 강조하고 있는 특성들과 함께 살펴본 성숙한 성 또는 성적 성숙은 아무런 갈등 없이, 희생이나 얼움 없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숙한 인간은 항상 투쟁해야 한다. 매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가능성을 이렇게 또는 저렇게 살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완전한 성

"잘 조정된 성"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판단한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성을 인간적 가치의 하나로 보아야지 개인의 발전에 부정적인 것, 또는 방해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성의 내적 가치를 보아야 하며, 가치 체계에서 성이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성은 "표현의 요소"요 "빼놓을 수 없는 요인"으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성을 인간적 가치의 일부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봉헌"의 가능성, 즉 순수한 사랑-이타적인 사랑의 능력으로 보아야 성적 성숙은 가능하다. 그런 능력을 충분히 획득하여야만 개인은 자유로운 접촉과 정서적인 자제와 자유 의지의 행사에 있어 유능한 인간이 된다. 이 같은 성의 봉헌적인 면 때문에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을 준다는 것은 (자신을) 받는다는 것과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다. 성은 관계의 차원 함께 주고받는 능력, 즉 자신을 완전히 소유하기(누리기) 위해 제공되는 사랑을 받아들일 자세를 우리의 삶에 부여한다.

인간적 자제

자신의 가능성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 개인은 자제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가 조절해야 할 것은 자신 안에 일어나는 지속적인 별화들, 즉 자신의 욕망, 충동, 생각, 습성 등이며, 이런 변화는 모든 사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자제는 진정한 자율, 즉 정신적 활동과 외적 행동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기쁨과 행복과 안녕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역동적인 점은 갈등과 긴장으로 나타난다. 인간은 반대되는 힘들을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융합시켜야만 완전한 성숙에 도달하게 된다. 사람의 이상과 욕망 사이에는 긴장이 있기 마련이며, 안정과 적응과 성공을 원한다면 바로 이곳에서 자제를 발휘해야 한다.

자제는 사회적, 개인적 행동에서 나타나는 정적인 성질도 아니고 단조로운 부동 자세도 아니다. 인간 정신에는 자아 발전을 향한 추진력이 있다. 그것은 의식적인 행위와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단순 임의적인 발달 또는 생물학적 성장을 벗어나려는 내적 경향이다.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 자유로운 존재이므로 성장이나 발달뿐 아니라 진보도 이루어낸다. 진보를 낳는 이 내적 충동이 바로 인간이 지닌 항상 새로운 가능성의 실현이다. 인격 완성의 과정은 어떤 욕망은 살리고 다른 욕망들은 죽이는 반복과정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개인의 욕망과 가능성을 조정함으로써 이루어 진다. 인간의 역동성 안에는 가장 적극적인 의미의 수덕 실천이 내포되어 있다.

II.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 교육

교육의 그리스도인적 차원

그리스도인 교육-그것은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이 갖는 권리이다-은 사람들을 인간적인 성숙만이 아니라 주로 그리스도인적인 의미의 성숙도 이루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신앙 안에서 단계적 성장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특히 교회 전례를 통해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흠숭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완전하게 됨으로써, 그리고 그분의 신비체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더라도 그분의 영, 곧 성령 안에서 합당하게 변모되었다고 느낄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다른 사람 그리고 만물 안에서 창조-구원 사업을 계속 완성시켜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교적 성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함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학교 교육은 신학생들의 그리스도인적 인격의 성숙을 이루어내는 것이어야 한다.5) 신학교 교육은 먼저 단일성, 즉 공통적인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그런 다음에라야 다양성, 즉 다른 점을 고려할 것이다.6) 이 같은 노선에서 볼 때 신학교 교육은 다른 그리스도인 정규 교육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사실 두 가지 교육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단 하나의 기본 형태가 있을 뿐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교육이며, 나중 단계에서 평신도 성소와 사제 성소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생활에 요구되는 성숙

인간적 성숙은 사제 생활에 요구되는 것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그리스도인 생활에도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결함이 있는 사제의 이야기는 무언가 부족한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일성 또는 통일성이 없으며, 성숙과 균형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분명 그 초월적 차원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야 하지만, 한편 인간적 진보에 대한 능력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이 점은 특히 인류 발전에 관한 것이라면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현대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심리학적이고 정서적인 성숙은 완전한 발전을 위해 쏟는 무수한 개인적.사회적 노력의 목표이다. 그것은 풍부한 초자연적 발전의 전제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사도 바오로가 에페소 신자들에게 갖추도록 일깨운 성숙, "완전한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충만함의 완숙한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는"(에페 4, 13) 성숙을 말한다.

충만한 인격체로 발전하라는 초대는 교회의 가르침에 항상 나타나 있지만 특히 인문 과학의 진보에 따라 더욱 절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7)

그리스도인의 정서적 성숙

정서적 성숙은 그리스도인 교육에서 지대한 도움을 받고 있다. 실로 정서의 조절에 관하여서는 자연적인 요소들에만 비중을 둘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하여, 성령의 다양한 선물의 영향 아래, 주님의 말씀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삶 자체에 동참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정서적 반응에도 비중을 두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 산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형제애와 사랑의 일치, 생명과 사랑과 진리의 친교"8)이다. 그는 교회의 확장된 사회적 생활에 동참함으로써 하느님과의 만남과 형제들과의 만남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에 아주 넓게 열려 있는 길을 발견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과의 일치와 이웃과의 일치 안에 생활함으로써 자신의 더욱 낮은 본성과의 싸움에서 생기는 온갖 혼란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평화와 안정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그리스도인 생활은 본성의 자연적인 반작용을 없애버리지도 않고, 어렸을 때 몸에 밴 정서적 경향을 파괴하지도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언급해 둘 것이 있다. 그리스도인 교육은 복잡한 내면과 가능성, 약점과 능력 부족 등과 함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모든 수준의 인격 성숙 과정에서 근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그 같은 긍정적인 자아 수용 대신, 소위 역행 내지 퇴보 현상이 나타날 때에는 흔히 보상 심리적인 비정상 행위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성적 성숙

그리스도교 교육학은 하느님의 계식에 따라 성에 대해 고유한 전망과 평가를 가직 있다. 그리스도교는 성을 하느님의 창조의 일부로 본다. 성은 육체만을 그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고 인간 존재 전체를 포함하는 실재이며, 사람이 신체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성숙하게 되고 하느님을 닮는 발전을 이루는 데에 결절적인 역할을 하는 실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성을 인격적 만남 안에서 현실화되는 실재로 본다. 분명 이 인격 대 인격의 만남으로하여 인간의 성관계는 동물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리스도인 교육에서 사랑은 자신을 이웃의 필요에 개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사랑은 이웃을 위해서, 이웃에게 자신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은 공동체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교육은 이 진정한 사랑이 모든 사람의 소명이며, 결혼 생활에 에서도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결혼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성의 완성은 인격체의 정서적 함양을 위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결혼 생활 자체가 정서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람은 자신의 성을 승화시켜, 성적 관계가 아닌 다른 정서적 관계에서 그 완성을 이룰 수 있다.

성의 사용을 다스리는 것이 정덕이다. 이것은 자연적인 덕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이 덕은 초자연적 차원을 획득하게 된다. 그리스도교 정덕은 초자연 질서의 일부인 한에서 성덕으로 인도된다. 정덕은 하느님이 주시는 덕들의 작용으로 새롭고도 더 높은 의미를 지니게 되며, 그 본성 자체를 변화시키기도 한다.9) 정덕은 하느님의 선물이 되는데, 이는 자유 의지로 하여금 성욕을 억제하게 할 뿐 아니라 성적 욕구를 그리스도인 인격 전체 안에 통합시키게 하는 힘을 지닌 선물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세

감정을 다스리는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는 영적 생활에 절대적인 것이다(1고린 1, 23).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신비롭게 일치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욕망에 따라 살면서 동시에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로마 8, 13; 1고린 6, 9; 에페 5, 5).

세례로써 이루어지는 부활의 신비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리스도인 실존의 기본적 역동성을 가장 진실하게 그리고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이 신비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격에 기본 요소가 된다. 즉 하느님과 이웃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 자체로써 부활의 신비가 확인되는 것이다.

구원 계획에서 파스카 신비는 수덕론에 신학적, 심리학적 기초를 제공하는데, 수덕만이 인간 안에 존재하는 원초적 조화를 재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활 신비로써 우리에게 계시된 생활 양식은 순수한 자아 "봉헌"과 함께 이루어지는 일종의 자아 "포기"와 불가분의 일치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신학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것과 같다.

노력과 함께 강해지는-결코 약해지지 않는- 이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실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덕적 삶을 실현하며, 의식하지 않고서도 자주 사물들을 포기한다. 이것은 더 높은 이상에 강하게 끄리고 있음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III. 사제적 성숙 교육

사목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양성 교육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르면, 사제적 인격의 기본 모습은 스승이요 사제요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영혼들의 목자로 나타난다.10) 사제는 목자로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지원하고 인도한 은사를 지닌다. 그는 가톨릭 교회를 건설하여야 한다.

신학교 교육의 근본 목적은 참된 영혼의 목자를 양성하는 데 있다.11)사목적 양성 교육은 양성 교육의 일부이거나 양성 교육과 분리된 측면이 아니다. 그것은 사제 양성 바로 그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사제 지망자들의 인격 함양을 위해 해야 할 모든 것에 침투하여 영감을 불어넣는 것이어야 한다.

신학교 교육의 모든 것은 사제-복자를 양성한다는 목표를 향해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12) 이것은 신학교의 구조와 기능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고안되고 효과적으로 작동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교육자들은 자신의 전문적 활동과 그 목적에 앞서 신학생들의 사목적 양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제의 인간적 성숙과 그리스도인적 성숙

사제 성소는 인간적 성숙과 그리스도인적 성숙을 요구한다. 그것은 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 신앙에 바탕을 둔 응답이 되게 하며, 신학생으로 하여금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부르심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부르심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사제의 특수한 성숙은 일반 그리스도인과 그를 구별짓게 하는 것, 즉 구원의 교회 공동체, 그리고 그 구원적 사명의 원리요 원천인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몸과 맺는 고유한 관계 안에서 찾아야 한다. 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서 뽑힌 하느님의 사람"이다. 그의 영성은 시계의 추처럼 두 극, 즉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왕복한다. 이 두 낱말 사이의 관계는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닌 둘의 일치, 즉 하느님도 인간도 다 택하는 관계이다. 인류와 가까이 일치하기 위해서 사제는 먼저 하느님과 깊이 일치하지 않으면 안된다.

양성 기간 동안 신학생은 청소년기의 미숙에서 성인의 성숙으로, 일반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성숙한 그릿드로인 생활로 나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용맹 정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생활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는 사제적 성숙에 이라러야 하며,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치고 성화하고 다스리는 사명에 깊이 동참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사제적 성숙은 인간적 성숙과 그리스도인적 성숙을 내포하고 이를 강화할 뿐 아니라, 이를 훨씬 능가하여 그 정서적, 성적, 활동적 생활뿐 아니라 그 존재 자체에 모든 인간적 요소와 그리스도인적 요소가 스며들게 한다.

사제의 정서적 성숙

사제적 독신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 정서 생활의 정상적인 발전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사제 독신 생활은 정서 생활을 전제로 한다. 독신자는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의 사랑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초대된다. 인간적 사랑과 신적 사랑 안에서 성장함으로써 사제는 생활 전체를 통해 정서적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하늘 나라를 위해" 선택한 독신 생활은 사제의 고유한 생활이요 사랑에 빠진 생활이다. 그것은 자신의 영성 생활과 독신 생활을 하나로 융합시킨 사람에게만 가능한 생활이다. 그것은 배제적으로 그리고 영구하고 완전하게 유일학도 최상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선택하는 문제이다. 이 선택은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대한 단일하고도 무조건적인 사랑의 논리에 따라 그분의 운명에 더 깊이 참여하기 위한 것이다.13)

이 독신 덕분에 사제는 더욱 전적으로 하느님의 사람이 되고, 더욱더 완전히 그리스도께 사로잡혀 그분만을 위해 살게 된다. 동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은 하느님을 충만하게 소유하도록 초대하며, 그분을 반영하고 그분을 온전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도록 초대한다.

사제가 다른 사람에게 쏟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사목적이어야 하며, 외적으로는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사랑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주는 영적 도움을 사람들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사제는 진실하고 깊은 우정을 이룰 수 있다. 이 우정이 사제적 형제애 안에서 꽃필 때 사제의 정서적 발달에 매우 유익한 것이 된다.14)

사제의 성적 성숙

더욱 높은 선을 위해 선택한 독신은, 그것이 오로지 자연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충만한 성숙과 전인적 인격체를 이룰 수 있다. 이것은 수많은 성인(聖人)들과 신자들의 삶ㅇ서 볼 수 있듯이, 하늘 나라를 위해 독신을 선택하는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인적인 진보를 추구하면서 독신 생활 안에서 하느님과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바쳤다.15)

하느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면서 지망자가 선택한 사제 독신 생활의 배제적 성격은 사제의 의무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헌신하는 특수한 삶을 결정짓는다.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데 자신을 바치겠다는 결심에 따라 동정을 택한 사람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서 계속 성장할 의무를 지게 된다. 만일 그 사랑에서 진보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소명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가 되면 자연히 훌륭한 성품이 생기게 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숭고한 것은 이타적인 정신, 무거운 책임을 받아들임, 사랑의 능력, 어떠한 희생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 일상 생활의 짐과 어려움을 견디어냄, 미래에 대한 슬기로운 대처 등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아버지가 되는 경우에도 똑같다. 더욱이 영적으로 아버지〔神父〕가 되면 자연 질서에 국한되지 않으므로 더욱 책임감 있고 후덕한 성품을 지닉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독신은 아무에게나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독신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특별한 성소를 요구한다. 일생에 걸쳐 위험과 모험은 계속될 것이다. 인간의 보편적이고 사목적인 아버지 노릇과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 때문에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마련이고 그런 일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사제와 자제

지속적인 자제는 끊임없는 노력을 의미한다. 정서적 성숙에 이르기 위해서도,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자제는 성인의 성숙에 이른 다음 다시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그것은 인간적, 그리스도인적, 사제적 정덕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도 불가결한 요소이다. 이 정덕은 새로운, 예기치 못한 정서적 충동까지도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16)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자제의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볼 때, 사제 독신 생활은 주님께 대한 일생에 걸친 봉헌이 된다. 거룩한 독신으로 축성-봉헌된다는 것은 서품 때 단 한번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거듭거듭 새로워져야 할 어떤 것이다. 사제는 인간적인 이끌림과 감정, 격정과 사랑 앞에서 항상 주의하여 독신을 실천하여야 한다.

자연스런 인간적 사랑처럼 독신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사랑 역시 기꺼이 자신을 포기하는 매일의 삶을 요구한다. 이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권태나 인간적 나약성에서 오는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사제는 자신의 독신이 요구하는 개인적 희생이 전 교회에 봉사하는 것임을 생각하고 자제를 항상 활용해야 한다. 사제의 희생은 그 이름에 걸맞는 모든 사랑에 나타나야 하는 영적 차원을 강조하게 되며, 그리스도인 가정들에 은총을 가져다 준다.17)

▶ 주석

1. 사제 양성 교령, 4항; 교회 헌장 28항 참조.
2. 바오로 6세, 회칙 Summi Dei Verbum(1963. 11. 4.): AAS 55(1963), 984면 이하는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사제인 인간을 양성할 필요성"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회칙은 "그리스도인의 양성과 미래의 사제의 양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3. 그리스도교 교육 선언, 1항 참조.
4. 사제 양성 교령, 11항 참조.
5. 사제 양성 교령, 3. 8. 11항; 가톨릭 교육성성,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48-58항 참조.
6. 교회 헌장, 제2. 3. 4장 참조.
7. 그리스도교 교육 선언, 1-2항; 사제 양성 교령, 10-11항; 평신도 교령, 29항; 수도 생활 교령, 12항; 바오로 6세, 회칙 [민족들의 발전](1967. 3. 26.): AAS 59(1967), 265면, 16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51항 참조.
8. 교회 헌장, 9항.
9. 성 토마스, 신학대전, Ⅰ-Ⅱ, q.63 a.4 참조.
10. 교회 헌장, 28항; 사제 직무 교령, 4-9항 참조.
11. 사제 양성 교령, 4항 참조.
12. 상동, 8-20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4-9항 참조.
13. [사제 독신 생활], 24항 이하 참조.
14. 사제 직무 교령, 8. 14항; [사제 독신 생활], 79-81항 참조.
15. 직무 사제직, 제2부, Ⅰ, 4항, 나) 참조.
16. 사제 직무 교령, 16항; [사제 독신 생활], 73. 77항 참조.
17. [사제 독신 생활], 57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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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학교 교육에 관한 지침

교육상의 어려움

정결한 생활을 위한 훈련은 젊은이들의 감정과 느낌에 직접 접하는 것이므로 그들에게 심리학적인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그들은 정덕에 있어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일종의 야성적인 상태일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별로 이상할 것이 없으며, 어떤 경우에는 아주 놀라운 반응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앞으로 일어날 탈선을 미리 앞지르려 들면 쉽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가벼운 발전적 탈선의 중요성을 너무 과장하면 강박 관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그런 가벼운 탈선을 예방하지 못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무수한 심리학적 요인 때문에 어려움의 주체가 되는 본능을 훈련시키는 일이다. 어려움은 또한 같은 성을 가진 개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면들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준비하기 위한 성교육이 어려운 것이라면 사제 독신 생활을 위한 성교육의 어려움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사제 독신 생활은 초자연적 신비요 하느님의 은총의 결실이 아니가!

사실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하고도 결정적인 해결책은 없으며, 항상 미결의 문제로 남아 있다. 최종적인 해결책이 불가능한 이유는, 모든 해결책이 인간 생활의 심리적.신체적 발달과 사회의 급속한 환경적.사회적 변화, 그리고 자주 변하는 예상치 못한 여건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일 수 있는 것이 초자연적인 도우심인데, 이는 인간의 손에서 벗어난 것으로서 하느님의 자빙 맡겨져 있으나, 하느님께서는 청하기도 전에 자비로이 이를 베푸신다.

I. 교육자가 따라야 할 기준

문제의 복잡성을 의식할 것

교육자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미래의 성인과 미래의 사제들이 살아갈 심리적, 윤리적, 종교적 삶이 학생들의 순결 교육이라는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방식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는 점을 의식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교육자는 학생들의 초기 양성 기간에 성적, 정서적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최고의 솜씨를 발휘해야 한다.

교육자는 독신과 순결의 신체학적, 심리학적, 교육학적, 윤리적, 수덕적인 복잡다단한 면들을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 사제 독신 생활의 목표는 평가받고 사랑받고 보호받고 철저히 시험받고 확실히 '내 것'처럼 된 정덕을 갖추는데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불어닥치는 세상 풍조에 대항할 뿐 아니라 사도직에 영감을 불어넣는 정덕을 갖추는 일이다.

그러므로 신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정결 훈련은 말조심이나 솔직하지 못함을 버리고, 조리 정연한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서 이루어지는 분명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긍정적인 것, 다시 말해 죄스러워 회피할 어떤 것이 아니라, 성을 바르고 기쁜 사랑의 방식으로 보는 성숙한 태도를 갖추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완전하고, 유기적이고, 인격적인 훈련-개인의 구체적이면서도 서로 다른 인성 발달에 맞춘-이어야 한다.1)

사제 지망자들은 여건만 제대로 갖추어지면 독신 생활에 따르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질서 있게 이루어진 다양한 인간 관계에 힘입어 자연스런 형평을 이루게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은 기도와 극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열렬한 사랑, 영성 생활을 위한 여타의 보조 수단을 통해 영성 생활에 있어서 계속 성장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주교와 사제들과 따뜻하고 형쩍인 만남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사목족 구조가 조정되어야 한다. 그들은 또한 교회 공동체 전체에 스며있는 협동 정신을 통해 신뢰감을 체험해야 된다.2)

정상적 상황과 비정상적 상황

일반적으로 성에 대한 접근 방식은 단순성과 정상성 그리고 현실성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개인의 일반적인 특성을 염두에 두어야지 동떨어진 비상한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된다. 위압적인 방식은 다른 교육 방식과 마찬가지로 나쁜 습성과 성적 잘못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킨다.

교육자가 성문제에 있어 젊은이들을 다루는 방법은 그들의 가장 고상한 감정에 호소해야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며,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강한 성품과 함께 완전한 인격과 자제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젊은이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그들의 자긍심에 호소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부 성적인 미숙은 잘못된 인격 발달의 표시요 유아기적 잔재라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높은 이상과 참된 인간 품위를 지닌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 같은 행동은 어울리지 않는 것임을 배워야 한다.

교육자는 학생의 초기 양성 시기에 성적인 잘못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그는 긍정적인 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개입하여야 하며, 단순히 문제를 우연히 발생할 사건으로 치부해 버려서는 안된다. 교육자는 학생들로 하여금 더 높고 더 넓은 시야를 갖도록 하며, 여건에 따라 자연스럽게 취하는 수단들을 사용하도록 일깨워주어야 한다.

오늘날 성적 신경증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신경증은 자연적인 소인(素因)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는 하지만, 현재 생활 조건들에서 오는 자극 때문에 정신 질환을 앓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환경은 실로 자신의 환상에서 행동할 수 있는 풍부한 기회를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특히 사춘기 동안 발생한다. 그렇지만 올바른 지도를 통해 이 위기를 훌륭히 극복하고, 젊은이의 전인적 발달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인간적 지도와 영적 지도

젊은 사람은 그의 생애 초기에 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그는 지도가, 확실한 판단과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젊은이가 흔히는 불안정하고 도움을 거부한다는 데 있다.

상담자는 아주 조심스러워야 하며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말로 필요한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제안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으로 알고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친구처럼 곁에서 어려운 순간에 편안하게 해주고, 불확실해 하거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할 때 조언을 제공하며, 도덕적인 위험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정도에 머루를 것이며, 말하는 것이나 함께 있는 것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도록 해서는 안된다.

젊은이는 성을 알려고 한다. 그것은 성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보기 때문이다. 그 문제에 대해 말을 삼가는 것은 단지 더 큰 호기심만 유발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해야 할 일은 성문제를 신중하게 다루고, 자신과 다른 사람 안에 있는 인격과 그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존중하도록 이끄는 일일 것이다.

잘못된 행동과 모든 성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교육자들은 그들을 당황학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겁을 먹으면 걱정에 싸이기 마련이므로, 위압감 역시 금물이다. 거짓 행동이나 비정상적인 행동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심각하게 여기는 그 어떤 것도 시시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부끄러움 때문에 자신의 껍질 속에 들어가 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극화하는 것도 안된다. 실망만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소의 확인

독신 생활을 위한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경향들을 평가하고, 독신 생활과 연관되어 일어날 수 있는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사제직에 필요한 자질이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경우에는, 선의와 용기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다른 성소를 선택하도록 선택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3)

성소를 판별하는 데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무엇보다도 심리학적 결함이, 어떤 때는 병리학적 결함이 사제 서품 이후에 나타나는 경우도 가끔 발생한다. 그와 같은 결함을 조깅 발견하는 것은 많은 비극적 경험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사제적 생활에 맞는 지망자를 고르는 일은 하나의 어려운 모험이다. 학생들을 사제직에 맞게 훈련시키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은 모두 이 임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상응한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4) 성소자의 선별은 현대적, 심리학적 진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초자연적 요소와 개인의 인간적 경향들이 복합되어 있음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교육자들 스스로도 자기 일에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성소 구별의 일반적 기준에 따라 정상적인 개인들의 성소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의심스럽거나, 어느 학생이 그 성소를 결정하는 데 특별한 처방을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생이 신학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심리학적 검사를 받게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특수한 정신요법적인 검사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신학 공부를 중단하고 다른 직업에서 일정 기간을 보내도록 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육자에게 문제가 되는 성교육

성교육의 목적은 성문제에 대해 학생이 지닌 다른 지시과 같은 정도의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이를 교육 과정 전체에 하나로 통합하는데 있다. 그렇지만 성에 대한 무지나 잘못된 개념 앞에서, 성이 인간의 정서에서 따로 떨어진 별개의 것이라거나 아니면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한 요소라는 지나친 주장은 피해야 한다.

성교육은 인격 발달의 노선을 따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성교육은 교육받는 이들의 나이, 성별, 환경에 맞추어 "적극적이며 현명한" 교육 방법에 의해 실시되어야 한다.5)

교육의 여러 분야 가운데서 성교육은 오늘날 모든 문제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방법상의 불확실성이나 어려움의 문제일 뿐 아니라, 교육자의 인격과 함께 그가 다루는 주제에 대한 그 자신의 과거의 정서들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교육자는 자신의 성적 본성이 이루는 내적 작용들을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 그런 작용들은 흔히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를 단순히 비이성적 충동의 문제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교육 분야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인 이 과업을 맡은 사람은 사려깊은 준비를 갖추지 않고서는 아무런 긍정적 결실들을 맺을 수 없다. 그는 청소년의 발달에 대한 지식과 가정 환경에 대한 인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학생들의 대인 관계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는 또한 성문제에 알맞는 말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가치에 대한 올바른 기준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성교육을 담당한 사람은 그 자신 성적으로 성숙하고 균형잡힌 사람이어야 한다. 성교육에서는 주제에 대한 지식이나 그 방법론에 대한 지식에 앞서 교육자의 인격이 더 실제적인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한 것을 행하고, 생활 방식으로 삼아 실제로 사는 것이 왕도인 셈이다. 지식도, 올바른 충고도, 학생들을 위한 염려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자 자신의 인격적 처신이다.

II. 성교육에 관한 지침

양성 과정으로서의 성교육

가르치는 사람은 성교육이 윤리 교육과 윤리적 훈련의 전과정에서 따로 떼어 이루어질 수 없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성교육은 적극적으로 개인을 지향해야 하며, 보호적이고 야성 과정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학생과 스승 사이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교육자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성을 무시하는 것은 그것을 따로 떼어 다루는 것 만큼이나 잘못된 것이다. 인간의 성은 인정해야 될 실체이며, 인격 전체의 요구와 연관시켜 이해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성교육의 유일한 방법론은 전인적 교육 프로그램 전체에 통합되는 길밖에 없다. 그것은 전인적인 인격체의 지속적인 발달 과정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성교육은 신학생의 전반적인 양성 과정에 통합되어야 한다. 정결한 생활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인격 전체의 발전과 병행을 이루는 것이다. 순결은 그것에 집중한다고 해서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정의와 사랑 등,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데 절대 필요한 요소들을 포함하는 더 넓은 인생관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순결은 완전한 인간 존재의 한 부분이라고 보아야 하낟.

개인적-인격적인 성교육

교육자는 사제 지망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기본적인 선택을 이룬 "최초의 인간"이 되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정결이 좋은 것, 자신들에게 좋은 것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지도하고 도와야 한다. 그들이 이 선택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정결 생활이 제2의 천성이 되고 그 삶에 규범적인 특성이 될 만큼 매일 실천할 수 있게 뒷받침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강화시키는 데 있어 신학생 앞에 놓아줄 것은 악보다는 선, 악습보다는 덕이다. 혼란의 시기에 신학생을 도울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인 힘과 가치들이다. 윤리적,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성이 육체와 정신과 마음을 위해 남성적인 성품을 담는 저장소라고 가르쳐주어야 옳다.

성교육은 그 윤리적인 기본 목적-그것은 인격과 밀접히 연과되어 있다-을 달성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각 개인이 자신의 문제를 풀도록 돕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말이다. 그 같은 개인적-인격적 교육 형태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육자가 학생 각자의 요구와 잠재력을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각 개인의 능력과 요구에 따라 필요한 자연적.초자연적 보조 수단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성교육의 환경적 요소들

스승과 학생 사이의 관계나 개인적인 지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양성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환경 전체가 슬기롭게 조성되어야 한다. 이것은 가능한 한 해로운 영향들을 배제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환경에서 오는 영향에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게 훈련시킨다는 뜻이다.6)

환경은 높은 윤리적 분위기와 건강한 우정으로 넘치는, 생기 있고 활동적이면서도 엄정한 것이어야 한다. 환경은 신학생들의 정서적 힘과 관심을 위험한 것에서 벗어나 선한 것에로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

좋은 환경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학생들의 공동체 정신이다. 학생들 사이의 상호 존중에 바탕을 둔 고양된 공동체 정신이 형성되지 않고서는, 나아가 그들 안에 덕에 대한 깊은 관심과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정결을 실천할 이상적 환경이 창출될 수 없다.

그렇지만 신학교 생활은 한시적이다. 그러므로 신학생들은 성실학도 완전하게 신학교 밖에서 생활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들은 "인간이 자신을 상실하고 하느님과의 일치나 자신의 정신적 일치를 위태롭게 만드는 세상 한가운데서 살게 될 것이다."7)

대화와 성교육

젊은이는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를 필요로 한다. 슬기롭고 우정어린 지도자의 도움이 없다면 여러 가지 정상적인 걱정마저도 복잡하게 얽히어 절망이나 실패의 늪에 빠지게 할 것이다. 그렇지만 스승-친구는 학생을 잘 알지 못하면 지도적인 조언을 해줄 수 없다. 다시 말해 학생은 허심탄회하게 스승-친구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상호 신뢰의 관곈ㄴ 교육자가 학생들의 입장에 서서 선의로써, 그리고 은총의 작용을 구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이루어질 수 있다.

모든 신학교 교육자는 영적 지도에 꼭 필요한 자유를 존중하여야 하며, 신학생들로 하여금 영적인 지도를 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확신시켜 주고 격혀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신학생들은 그 같은 영적 지도를 솔직하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교육자는 그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교육자가 상호 신뢰의 분위기를 마련하게 되면, 순결 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분별 있고 진보적이며, 개성적인 지도를 수행할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스승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와 사랑이 두터워질 것이다.

인격적이고 점진적인 성교육

성교육은 지적인 가르침뿐 아니라 윤리적인 훈련을 내포한다. 성교육 자체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것은 성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할 뿐 아니라, 꼭 피해야 할 해로운 체험이나 개인적인 실패에 빠져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방비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8)

교육자의 임무는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양심을 형성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는 자유롭고도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학생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들이 정서적인 생활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교육은 단계적이어야 한다. 지도받는 사람의 나이와, 요구되는 긍정적 간섭의 정도, 그리고 개인의 생활의 특성과 상태에 따라 교육 방식을 헤아려보아야 한다. 이 같은 교육의 일차적이며 자연적인 자리는 가정이다. 그러므로 일차적 역할은 부모에게 속해 있다. 교육자의 역할은 단지 가정에서의 부족함을 보충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9)

절제와 성교육

인간 감정의 본질적인 속성은-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든-절제이어야 한다. 그것은 울의 꾸밈없는 본능이 튀어나올 그 어떤 경우에도 즉시 보이는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의식적인 절제로써 행동할 때는 자기 인격의 영적 품위를 떨어뜨리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환경과 생각과 행동을 피하려 애쓴다. 그것은 사랑이 개인의 성 생활에 존재하며, 정덕이 촉진하는 성격적 균형을 성이 깨뜨릴 수 없음이 분명하다는 의미이다.

절제와 높은 윤리 생활은 동행한다. 성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절제는 양심의 소리이며, 자연스럽지 못한 행동을 피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절제 감각은 인격을 보호하는, 특별한 교육ㅈㄱ 가치를 지닌 것이다. 절제 감각을 발달시키지 않고서 정덕의 훈련을 쌓게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절제 훈련을 너무 지나치게 시키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젊은이의 걱정을 증가시킬 수 있다. 절제 훈련의 목적은 용인될 수 없는 바보스런 과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데 있다. 그런 지나침은 유혹의 영향을 증가시키고, 평온하고 정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나게 할 뿐이다.

절제 교육은 간접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동시에 긍정적이어야 한다. 젊은이들은 영웅 숭배의 기질이 있으므로 특히 매력적인 덕의 모델을 그들에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들의 미적 감각도 발달되어야 하는데, 자연과 예술 그리고 윤리 생활에서 아름다움을 제대로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거깅 덧붙여 그들이 신앙과 열망으로 얻을 수 있는 영적 가치 체계를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성교육과 사랑

성적 성숙은 정서적 성숙과 함께 이루어진다. 순결 교육은 크게 보아 마음을 교육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사랑은 처음부터 완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장과 정화의 긴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완성된다.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사랑은 감각적아고, 자기 중심적이며, 자기 멋대로 이루어진다. 어른에게 있어서 사랑은 정신적이고, 이기심을 벗어나 이타적이며, 자기 희생적이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의 모습을 닮은 것이어야 한다. 신학생은 중단되는 일 없이 이 발전 경로를 따라-달리지 않고- 걸어가도록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학생들 자신의 엄청나게 잠재된 감정이 발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이 연결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이상-진리와 아름다움, 정의와 선, 순수함과 너그러움, 자기 희생과 영웅적인 행동-이 그들을 강하게 이끌어야 하며, 그들이 진실하고 고양된 우정을 이루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우정에 존재하는 그 어떤 모호한 요소에 대해서도 의식하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친구들에게 쏟는 사랑을 누구에게나 보여주어야 할 의무도 깨닫고 있어야 한다. 젊은이의 알맹이 없는 감정들은 차분하게 가라앉아야 하며 정화되고 조정되어야 한다. 그들은 감정을 이성과 희망 안에 정박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사랑을 올바르게 보여줄 수 있고 참된 목표, 즉 자연적 및 초자연적 사랑에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다.10)

III. 독신 생활 훈련 지침

독신 생활의 진리와 그 진실성

참된 가치요 은총이며 은사인 독신 생활은 제대로 평가되고 선택되어 순수하게 영위될 때 그 참 빛을 비추게 된다. 그러므로 요즈음 독신 생활에 대한 온갖 선입관과 반대에 직면하여 이를 침착하고 엄숙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교육자의 첫째 임무 가운데 하나이다. 신학교 교육에서 사제 지망자는 결혼 생활에 있어서 성의 역할을 잘 알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 독신 생활로 축성-봉헌된 사람은 부부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신학교 양성 교육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봉헌된 독신 생활에서 성이 지닌 의미와 역할을 발견할 수 있도록 신학생들을 도와주어야 한다.11)

그것은 사랑과 성을 억누르는 문제가 아니라 고양시키는 문제이다. 다른 교육 분야보다 이 분야에서 더욱 단순한 가르침이 필요하다. 실제적인 훈련은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자애로움"과 애덕으로 온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을 양성시킬 것이다.12)

사제 독신 생활은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상태, 또는 금욕 생활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 가지 자연적 성향, 즉 생식 기능, 부부애, 자연적인 부성(父性)을 "하늘 나라의 사랑을 위하여"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종교적 가치에 대한 참되고 올바른 증거가 되기 위해서 사제 독신 생활은 성의 부정, 또는 성으로부터의 도피일 수 없으며 성의 승화여야 한다.

독신 생활의 내적 작용

독신 생활을 선택하는 동기는 각 지망자에게 매우 개별적인 것이지만, 하느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이 동기들은 성장 과정의 주제가 된다. 그러므로 맨 처음의 동기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신학생 편에서는 독신 생활에 대한 올바른 심리학적 태도가 자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상적으로 균형잡힌 생활은 결혼 생활에서나 독신 생활에서 한 순간에 즉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13)

결혼과 가정 생활에 대한 이끌림은 그들의 포기를 어려운 것이 되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감정이 독신 성소에 꼭 위배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어려움이 일생 동안 계속된다 하더라도 동정애의 부르심에 대한 순수성을 미리 판단할 수 없다. 이 부르심은 온전하고 자유로운 의지의 동의로써 하느님을 위해 살도록 마련된 것이다. 독신 생활은 하느님께로부터의 부르심으로서, 결혼 생활에 대한 강한 경향을 끊임없이 희생하는 것을 내포한다.

관계와 고독

자유로운 독신 생활은 형제적 공동체 안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맥락 안에서 고찰할 때 의미가 있다. 형제적 공동체 안에서는 사람들을 "소유하지" 않고서도 그들에게 "도달할" 수 있다. 즉. 소유가 아닌 존재의 차원에서 관계가 이루어진다. 바람직한 상호 인격 관계를 창조하고 유지할 수 있을 때 참된 독신 생활이 표지가 드러난다. 친구들이 없는 자리에서도 그들의 존재를 체험하고, 자신을 친구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그들의 요구가 한정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참된 독신 생활의 표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독신 생활은 또한 "고독"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14)

인간 조건의 본질적 요소를 이루는 신비스러운 고독이 존재한다. 사람은 항상 고독 가운데에서 자신의 동질성과 가능성을 발견한다. 생애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도 고독 가운데서 이다. 사제 독신 생활의 고독은 그 같은 가치들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로 사람들은 인도해야 할 사제는 그 자신 안에 하느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발산할 때에만 이 사명을 완수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활과의 조화 속에서 사제는 항상, 자신의 이익을 뒷전에 미루어두고 자신의 내적 경향들을 만족시키는 대신, 사제직으로 축성-봉헌된 자로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독신 생활을 위한 훈련 조건

이미 수립된 원칙, 즉 성교육이 인격 형성의 일부여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신학생들이 모든 자연적, 초자연적 가치들 안에서 성장해야 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이다.15)

신학생들은 모든 덕들이 덕행 생활의 뿌리인 사랑을 통하여 어떻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배워야 한다. 그들은 완전한 사랑, 즉 "완덕의 끈"(골로3,14)을 유지하는 데 항구하게, 그리고 전적으로 자신을 바쳐야 함을 확신하고 있어야 한다.

그들의 확신이 점차 깊어짐에 따라 신학생들은 완전한 사랑 안에서 살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을 갖도록 인도되어야 한다. 그것은 어무런 핑계나 양보 없이, 자신들이 단순한 인간적 관점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못하지 않다는 완전한 자각 안에서 사랑의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이다.

사제 지망자 각자는 자신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자신의 신체적, 심리적, 윤리적, 종교적, 정서적 상태를 알아야만, 성숙하고 책임 있고 사려 깊은 결실을 가지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16)신학생은 완전하고도 지속적으로 자신을 영원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 봉헌해야 하며 온전한 자유 의지를 가지고 그분의 교회에 봉사하여야 한다.17)신학생 각자는 하느님의 계명과 교회의 가르침을 지키기를 원하며 또 지킬 수 있어야 한다.18)

독신 생활에서 이룰 참된 사랑에 대한 훈련

성관계에 대한 관심 부족에서가 아니라 독신 생활에 대한 성숙한 수용에서 신학생들은 독신 생활의 중요성을 깨닫고, 완전한 인격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다른 모든 성품들 안에 이를 자비잡게 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심정과 애정과 감정의 훈련을 내포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점진적이고도 조정된 성적, 정서적 힘의 발달을 의미한다. 외적인 독신 생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사제적인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만일 사제 지망자가 이기적이고, 애정에 있어서 폐쇄적이며, 자신과 자신의 안녕에만 신경을 쓴다면 그것은 교회적 소명에 완전히 반대되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지나치게 감정적인 성격, 지나치게 동정적인 기질, 감정적인 애착 역시 독신 생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독신 생활은 특별한 사랑에 대한 소명이다. 독신 생활은 우정의 분위기에서,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우정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19)사제는 하느님 안에서만 발견되는 그런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랑의 가장 높은 원천은 하느님 안에 있는 사랑이다. 사제는 그리스도를 닮는 가운데 사랑의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그 사랑은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뻗어나가며, 책임감을 가지고 실천되는데 이것이 바로 성숙한 인격을 가리키는 표이다.

종교적 열정과 정결의 관계

자신이 택한 생활에 대한 학생들의 성실성은 매일의 쇄신을 요구한다. 단단한 동기 위에 서서 진정한 정결 생활을 누리지 못한다면, 인간적인 기쁨이나 하느님이 주시는 기쁨을 모르는 채 아무도 없는 고도에 갇혀 살게 될 것이다.

종교적 열정과 정결 사이의 깊은 관계라는 관점에서 볼 때, 독신 생활은 거룩하고 그리스도교적인 특수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신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신심 함양이 개선되고 심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이다.20)신학생들은 참된 영성 생활의 원천에 가까이 접해야 한다. 그래야만 거룩한 정결을 지킬 수 있는 확고한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21)

독신은 일생을 통한 봉헌이며 이로써 사제는 삶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희생을 이루고, 교회의 같은 넓은 차원에서 풍부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사제는 자신의 존재 저 깊은 곳으로부터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예수 그리스도와 더욱 닮음으로써 자신의 첫 번째 자아 봉헌에 대한 진실성과 개방성을 항상 헤아려보아야 한다. 그것은 성령의 도우심에 신뢰하여 항구하게 포기하는 생활이며, 모든 하느님 백성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사제직"을 상징하며 증거하는 생활이다.

IV. 사제적 수덕 생활 훈련

수덕 생활의 필요성

사제 양성, 특히 독신 사제직에는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것보다 더 높은 수덕 생활이 요구되며, 사제직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도 특별히 요구된다. 그것은 한 인간을 사제로 만드는 모든 특별한 덕들을 충분히, 그리고 열심히 닦는 것을 의미한다.22)그것은 엄격한 것이자만 사람을 질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남성다운"23) 수덕 생활로써, 사제로 하여금 자신의 사제적 투신에 성실히 머물 수 있게 하고,24) 사제 직무의 완수 내지 성공을 보장해 준다.25)

그리스도교 성덕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부정의 수덕이 필요한데, 이것은 해방의 수덕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기 부정은 왕다운 힘의 행사이며, 사랑의 왕국을 다스리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26) 사랑과 자기 부정은 서로 보완적이다. 왜냐하면 자기 부정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며 사랑의 여지를 마련하고, 사랑은 자기 부정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사제 지망자는 "성소의 은총"을 받아들인 사람이다. 이로써 그는 정결한 삶이라는 값진 선물을 받게 된다.27) 그가 이 선물을 더 깊이 깨달을수록, 자유롭게 너그럽게 그리고 지극한 감사의 정으로 이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여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28) 수덕 생활은 이 선물에 대한 결정적인 응답이다. 신학생들은 자신의 전생애를 바쳐 이 성소의 은총에 응답해야 한다.

사제적 수덕 생활의 특성

모든 그리스도인 생활과 인간 생활의 일부인 자아 희생은 사제 생활에 더 절실한 것이다. 사실 온전히 성서적 의미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사제적 활동은 그리스도가 "사제요 제물"이시라는 사실과 인류에 대한 사랑ㅇ로 십자가의 제단 위에서 자신을 희생하셨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으면 전혀 의미가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미사 때 제단 위에서 피흘림 없는 방식으로 이 죽음의 희생 제사를 새롭게 거행하신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적 사명의 정점을 이룬다. 그러므로 그분의 사제직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위격 자체를 받아들여 그분의 일을 계속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생활과 사명 역시 예수님의 그것과 다를 수 없다. 사제의 거룩함과 그 영성은, 대사제이시며 흠없는 제물이신 그리스도와의 일치 안에서, 그도 역시 사제요 제물이라는 사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실은 수덕의 강력한 실천이 필요함을 입증하며, 사제 직무에 장애가 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도록 촉구한다. 이것은 십자가의 왕도를 따르라는 적극적인 초대이며, "언제나 예수 의 죽으심을 몸에 지니고 다님으로써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드러나도록 하라"(2고린4,10)는 초대이다. 그것은 사제로 축성-봉헌되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모든 받아들이라는 적극적인 초대이다.29)

이것이 바로 사제의 주요 직능과, 자신이 거행하는 바를 실천해야 할 의무 사이에 있는 연관성의 의미인데, 공의회는 이를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30)

이처럼 사제적 수덕 생활을 강조한다 해서, 결혼 생활 역시 희생적인 생활이요 세상이 열망하는 죽음과 희생을 내포하는 생활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신학교 생활과 수덕

오늘의 일반적인 분위기는 희생을 거부하는 것이어서, 신학생들이 수덕에 정진하지 않고서는 어떤 성숙도, 인간적이거나 그리스도인적이거나 사제적인 성숙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철저히 확신하고 있어야 한다고 감히 주장하기가 어렵다. 신학생들은 수덕이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여 인격 성장을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될 조건임을 알아야 한다.

영적인 성숙에 도달한 사람은 한번 시작한 수덕적 투신에 항구하여야 한다. 이것은 또한 가장 높은 차원의 자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성숙과 자유는 양성 기간 동안 길고도 지속적인 자제와 자아 공여(供與)의 실천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신학생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균형잡히고 용감하고 성숙한 어른이 된다. 그때에 그의 타고난 능력에 노력으로 얻은 덕행이 결합되고, 모든 능력이 놀라운 조화를 이룰 것이며, 그를 당신과 인류 구원의 봉사자로 선택하신 그리스도와의 일치와 그의 신앙이 그의 모든 능력을 비추어줄 것이다."31)

근본적인 선택은 신앙을 필요로 한다.

교회의 교도권이 복음적 권고를 따르는 사람들의 예언자적 기능을 강조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예언자는 미래의 사실을 미리 말하는 사람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실재와 그분이 가까이 와 계심을 증거하는 사람이다.32)

볼 수 없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것을 보고, 오관을 초월하는 지식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제적, 수도자적 독신 생활은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적 계산을 초월하는 것이며, 결과라든지 되돌아오는 보상을 따지지 않는다. 그것은 신앙으로써만 이해할 수 있는 희생이다.

깊은 영성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해 전진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된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 드러나는 온갖 한계들을 발견하고 이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자아를 다스릴 규율을 찾아야 한다. 이 같은 한계성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것은 천사와 대결했던 야곱의 씨름과 비슷한 것이다(창세32, 24-32). 그들 역시 야곱처럼 좌절된 희망과 꿈에 따르는 실망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V. 정서적 온전성의 문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미묘한 문제

신학생들은 정서적 온전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다른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다. 신학생들 역시 일반적인 성, 특히 여성에 관계 균형잡힌 신중한 태도가 필요함을 느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균형, 자제, 또는 흔히 말하는 성숙을 습득하는 문제이며,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온전히 정상적인 행동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서적 조화와 통일을 이룰 수 있다.

그 같은 성숙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사귐, 대화, 공동 작업, 여흥, 관심을 함께 나눔-으로 이룩된다. 인간은 서로 주고 받는 삶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자기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이것은 풍요로운 영적 체험의 바탕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성, 즉 남,여가 개입되었을 때에는 성숙한 인간 관계를 이루는 일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런 관계에 끼어들지도 모를 무분별한 감정을 깨닫는 능력과 책임이 필요하며, 자신의 욕구와 감정들을 조정하려는 의지도 필요하다. 그리고 자연과 은총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현명한 "영의 식별"도 필요하다.

신학생들의 여성 관계에 있어서 지난 몇 년 동안 두드러진 변화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심성과 엄격함에서 나오는 태도가 지배적이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신학생들이 지나치게 고립되는 지경에 빠질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경솔한 낙관주의가 때를 만난 듯하다. 그것은 분별없는 과신에서 비롯되는데,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접촉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쉽게 정서적 성숙을 이루려는" 목적에서 여성들과 자주 만나는 자리를 스스럼 없이 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결의 신학

신학생들은 정결의 신학에 대한 가르침을 신중하게 받아야 한다. 그들은 어재서 이 덕의 실천이 중요한 그리스도교 교의 가운데 하나인지를 알아야 하며, 축성-봉헌된 정결이 맺는 사도적 결실에 대해서는 배워야 한다. 선과 악에 대한 체험은 모두 우리의 존재 깊숙이-우리의 인격과, 성한 사람과 병든 사람에 대한 우리 사도직의 효력에도-영향을 미친다.

우리 종교는 정덕에 큰 비중을 둔다. 교회는 정덕을 고수하고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 열의, 자제, 상상과 욕구에 대한 내적 조절, 감정에 대한 외적 규율-을 제시한다.

순결 교육은, 순결을 위협하는 유혹의 정체와 그 원인, 다양한 유혹의 형태, 영적 치유법, 그리고 이에 대항하여 싸울 때 사용하는 방법들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면 불완전한 것이 될 것이다.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향하여

다른 모든 인간 관계에서처럼, 신학생과 여성의 관계에서도 진리와 성실성이라는 올바른 과정을 따라야 한다. 순수한 행동은 가짜와 인위적인 것들을 자동적으로 배제한다. 진실한 과정은 일방에게만 유리한 관계, 상대방을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이용하는"관계를 모두 배제한다.

그러므로 이 같은 관계들은 모두 미래의 사제들에게 분명히 제외된다. 그렇지만 건강한 인간 행동의 원칙에 따라, 즉 예의와 존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덕을 갖추고서 여성들을 만나는 삶의 과정에서 오는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인간 접촉도 존재한다. 이러한 원칙들은 누구나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수준의 여성 관계는 신학생들에게 발전의 기회, 자기를 깨닫는 기회, 자신의 성격을 가다듬는 기회, 자신의 강함과 약함을 시험하는 기회, 그리고 힘과 용기가 필요함을 아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할 것이다. 그들은 감정의 혼란 없이 그 같은 관계를 끝내거나 유보시킬 수 있는 자세를 충분히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사려 깊은 극기의 정신과 지속적인 자제에서 나오는 건강한 영성 생활을 전제로 한다.

자제는 그토록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생들은 슬기롭게, 그리고 정직하게 자신의 감정에 맞설 수 있도록 격려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이런 사랑을 영성 지도 신부와 장상들에게 신뢰하는 마음으로 밝히 드러내 보이고 그들과 함께 주님 안에서 그 진실성 여부를 분별하는 데에 익숙할 것이다. 그 반면에 이성과의 개별적인 관계, 특히 배타적이고 지속적인 접촉은 피해야 할 것이며, 모름지기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사랑, 참으로 깨끗한 사랑을 하느님게 청하며 실천하도록 힘써야 하겠다."33)

영적 지도의 중요성은 자연히 영적 지도자가 필요한 모든 성품을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분명 그는 모두에게 두루 통하는 약방의 감초식 방법으로는 이 문제들을 풀 수 없다. 영적 지도자는 문제들을 경우경우에 따라 다루지 안하으면 안 된다. 그는 각 지망자들의 개인차와 성격차, 그리고 감정의 차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는 신학생들이 자신의 성소를 흔들어놓거나 파괴할 수 있는 여러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신학생 하나하나를 개인적으로 도와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목 생활이 요구되는 양성 교육

신학생들과 여성 사이의 관계 문제는 단순히 신학생들의 오늘의 개인적 생활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 미래의 사목 활동에 관련되는 문제이다. 그것은 분명 그 미래의 사목적 투신을 위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여자들과의 바르고 건전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준비도 시켜주어야 한다. 신분과 연령의 차이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여성들의 특수 성격과 심리를 잘 파악할 줄 알아야만 사목 임무 수행에 있어서 그들에게 효과적 영성 지도를 베풀 수 있고, 그리스도의 봉사자답게 점잖고 지혜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34)

이로써 건강하고 좋은 여성 관계는 즉흥적으로 대처할 문제가 아님이 분명해진다. 그것은 장기적이고도 세심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신학교는 신학생들이 여성과 바르게 접촉할 준비를 갖추게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들이 여성 앞에서 정서적으로 의연하게 반응할 수 있고, 영적 분야에서 여성의 위치를 인정하는 데 개방적이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한 준비를 통하여 신학생들은 모든 사목적 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야 할 그 인간성과 마음씨 그리고 재치를 심화시켜 줄 것이다.

우정에 대한 한마디

현대에 있어서 신학생(또는 사제)과 여성 사이의 우정의 가능성에 대해 한마디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우정은 세심한 주의가 요청되는 관계이며, 보통 이상의 균형을 요구하는 관계이다.

정상적인 인간 관계들은 일정한 조건 아래서 신학생의 자연적, 영적 성숙에 기여한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사제 성소를 위태롭게 하고 양립할 수 없게 하는 특수한 우정에 대해서는 방비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우정은 마음의 자유를 방해하고 사랑의 보편성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신학생이 준비하고 있는 사명의 본성에 비추어볼 때, 그 정신이 보편적 사랑으로 온 인류에게 개방되어 있도록 요구된다.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모든 사람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특히 가난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 동료들에 대하여 진정하고 인간답고 형제다우며 인간적이면서도 희생적인 사랑"35) 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이것은 장상들과 영적 지도자들이 어떻게 젊은이들이 그들의 보살핌에 신뢰할 수 있게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관계를 이루는 초기에는 흔히 그 관계가 지금 어떤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기가 매우 어렵다. 그 관계가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도 "정신적 또는 영적"인 관계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의도가 겉으로 보아 아무리 올바르다 해도 정서적인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맹목적인 것이 되는지, 그런 우정 관계가 안고 있는 실제적인 위험을 얼마나 과소평가하게 만드는지를 명심해야 한다. 실로 사랑은 감정이 개입되면 본성적으로 동시에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것이 된다. 그것은 쉽게 욕망으로 선회할 수 있으며, 활짝 피어나야 할 인격적 성숙을 보장하는 대시 이를 방해하게 한다. 신학생이 이런 성격의 우정 관계에서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한 결과는 가정적이고도 불분명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위험과 어려움들은 중대하고도 실질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현실적이어야 하며, 인간 본성이 그다지도 쉽게 우리를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관계들은 사실 그렇지 않은데도 필수적인 것이기나 한 것처럼 믿기 쉽고, 타락한 인간 본성의 경향인 것을 마치 초자연적인 동기로 미화시키기 쉽다는 것이다.36)

VI. 양성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들

청소년 교육의 과제

교육자는 다양한 양상의 성장 과정을 통과하는 학생들의 개성에 친숙하여야 한다. 청소년들과 관련해서 이 점을 생각해 볼 때, 인생의 이 시기가 심리학적 성숙 과정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 시기는 성적 욕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성적인 문제에 대해 대단한 호기심을 가지고 상상하는 시기이다.

청소년은 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가치 질서에서 그 위치가 어디인지에 대해 건강한 개념을 갖도록 교육적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는 순결을 해치는 유혹에 직명하거나 성문제에 관련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교육받을 필요가 있다. 그는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지식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침착함으로 자신의 본능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서 교육을 통해 집단적 상황 속에서 청소년의 정서적 능력이 발달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성욕을 객관화시키고,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이거슨 참으로 힘든 과제이다. 청소년이 자신 안에 움츠러든다든지,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해서 놀랄 이유는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상황에서 그가 자신에게 에로틱한 관심을 집중시키거나, 성적인 완성을 이루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자위 현상

자위 행위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성의 불균형에 있다. 다른 원인들이 그런 현상을 발생시키고 지속시킨다 하더라도, 흔히는 일시적이고 이차적인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는 그 문제를 직접 다루는 것보다 그 원인들을 다루는 데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래야만 소년의 본능을 올바로 발달하도록 촉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본능의 제어에 대한 내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위에서 언급한 원인들을 차단하는 성장이다.

공포나 위협,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협박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청소년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개방하는 대신 자신 안으로 움츠러들게 함으로써, 강박 관념을 조장할 수 있으며, 균형잡힌 성적 태도의 가능성을 손상시킬 수 있다. 성공은 언제나 문제의 참된 원인들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특히 양성 교육에 있어서 더욱 절실한 사항이다.

자위 행위는 교육자가 지향하는 삶을 망쳐놓는다. 그는 여기에서 비롯된 폐쇄적 태도를 모른 체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자위 행위의 사실을 너무 극화시켜서도, 괴로워하는 개인에 대한 사랑과 신의를 거두어서도 안 된다. 젊은이는 교육자의 초자연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사랑에 깊이 접촉함으로써 사랑의 친교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자리를 깨달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자기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문제 하나하나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이것은 버리고 저것은 취하는 식의 진부한 해결 방식은 좋지 않다. 오히려 참된 내적 성장의 기회를 잘 활용하여 고통 받고 있는 젊은이가 스스로 자기 고유의 치료책을 발견하도록 돕고 격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이 문제 하나만을 해결하게 될 뿐 아니고 그가 점진적으로 당면하게 될 다른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술을 배우게 될 것이다.

청소년의 신학교 교육

신학교 교육 목표는 완전한 인간적, 그리스도인적, 사제적 양성을 신학생들에게 실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교육이 얼마나 그리스도인적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얼마나 사제 양성적이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일은 청소년기의 신학교 교육의 가정 어려운 측면이다. 청소년들에게는 오직 단계적으로만 특수한 사제 양성 교육이 도입되어야 하며, 여기에는 대단한 지혜가 요구된다.

사제 지망자는 대부분이 그 성소의 동기가 처음에는 매우 애매하다. 그들은 인류와 교회와 그리스도께 봉사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분명하지 못하다. 흔히 그들의 태도는 순전히 인간애적인 감정에서 나온 것이어서 하느님이나 그리스도 또는 교회와 별로 상관이 없을 때가 많다. 실지로 많은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그 인생관은 아직도 매우 일반적이고, 인류애와 종교가 아직 그렇게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 입장이다.

이것이 바로 사제직에 매력을 느끼는 청소년들이 많은 이유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태도가 종교적인 동기로 풀부해지지 않을 때, 그들의 인간애적인 관심이 분명히 드러나자마자 그들은 자신의 성소를 포기하고 신학교를 떠난다. 그러므로 이 젊은 사람들이 제때에 하느님께 봉헌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처음부터 이미 완전한 사제적인 생활방식을 취하도록 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청소년기 이후 교육의 과제

젊은이에게 있어서 사랑은 매우 다양한 성적 표현으로 자체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 같은 사랑은 심리적-성적 요소들과 심리적-정서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외적인 현상이나 무분별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참된 여성 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 여성들이 그들을 끌지만 그들은 그 이유를 모르며, 그 때문에 그들은 고통당한다. 그들은 흔히 정결과 사랑이 실제에 있어서는 같은 덕이고, 이 두 덕이야말로 적극적이고 결실 풍부하며 자신을 잊고 사랑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대신, 가짜 사랑에 둘러싸인다.

교육자는 청년기가 생활 방식을 결정적이고도 확고하게 선택하는 시기라는 사실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청년들은 자신들에게 열려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제대로 복, 그 가능성들이 그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청년기는 결혼과 축성-봉헌된 독신 생활의 참된 신학을 이해하도록 지도받아야 할 때이다.37) 청년기는 또한 선입견과 "완전한 금욕은 불가능다든가 또는 인간의 완성에 유해하다든기 하는 잘못된 학설"38)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야 하는 때이다.

성소에 항구함

오늘날 실질적인 문제는 젊은 사람들이 사제 성소에 별로 흥미가 없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성소에 항구하지 못하고, 성소가 요구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항구함이 부족하게 되는 객관적인 원인은 젊은이들이 살고 있는 오늘의 문화와 환경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중요한 주관적 원인도 틀림없이 존재하는데, 교육자들은 여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사제직에 있어 하느님께 봉헌된 생활에 대한 부당한 평가 절하이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어제의 젊은이들보다 결코 마음이 좁지 않다. 다만 투신의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필요할 뿐이다. 젊은이들은 영웅적인 삶에 도전할 높은 이상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아무런 희생이나 투신 없이 일상적인 삶의 차원으로 사제 성소를 격하시키는 것은 매우 고약한 잘못이다. 사제 지망자들을 모집하는 데 있어서 고된 일에 대한 기대, 헌선의 필요성, 그리고 희생의 기쁨 같은 젊은이의 정신에 어울리는 품성들을 바탕으로 삼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의 너그러운 반응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마음속 깊이 "(독신) 생활은 교회법의 명령일 뿐 아니라, 겸손되이 청해야 할 하느님의 고귀한 선물이며, 성령의 은총으로 감도되고 힘을 얻어, 자유롭고 너그럽게 응답하기를 서둘러야 할 선물"39)임을 느끼게 되어야 한다.

성인기의 특수한 어려움들

사제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성장을 특징 짓는 인간 조건의 위르와 어려움, 즉 정서적인 위기, 성, 권위와의 관계, 세상과 교회 안에서의 자신의 참된 자리를 발견함, 영적인 위기 등에 예속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러므로 사제 지망자들은 희생의 정신과 용기, 그리고 지조를 가지고 그와 같은 문제에 직면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인생의 중간을 살아가는 시기는 매우 중요한 단계이다. 성소와 직업, 삶의 방향 같은 기본적인 문제들은 이십대와 삼십대 사이에 이미 해결되어 있을 것이다. 후퇴할 기회는 거의 없다.

이 나이에 열정, 희망, 성덕의 꿈, 교회를 위한 위업과 같은 정망 및 그 특권과 함께 젊음은 사라지고, 그 대신에 더 슬기롭고, 더 조용하고, 더 균형잡힌 삶이 자리잡는다. 하지만 성처받기는 더욱 쉽다. 어떤 사람은 이 나이에 이미 명성과 책임 있는 지위와 성공을 거두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어쩌면 인간적 관점이나 사도적 관점에서 볼 때 실패하였을지도 모른다. 이 시기는 일부 사제들에게 정신적 불안, "공허"의 위기감으로 고통을 가하며 이제는 이룰 수 없는 이상을 바라보면서 불만과 좌절에 가득 차게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인간적인 반려자에 대한 필요성이 매우 강하게 느껴질 수 있다.

사제 생활의 위기의 원인

가정 생활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제는 외로운 존재일 것이다. 소년으로서 성장하던 가정은 사라지고, 이제 사제로서는 자신의 가정이 없는 셈이다. 젊은 시절 자신을 받쳐주던 사도적 열성은 쇠퇴하고, 이제 사제는 젊은 세대로부터 소외되어 있음을 느낀다. 사십대의 나이에 이르면 내,외적 외로움이 사제를 기다리는 게 보통이다. 이때 그는 자신이 포가한 것에 대해 분명한 상실감을 느끼거나, 독신 생활이 짐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여기에 덧붙여 언제나 매일반인 것처럼 보이는 직무상의 단조로움과 함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감과 교회의 교계 제도에 대한 불신감이 뒤따르게 된다. 전혀 변회되지도 않고 변화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을 때 흔히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는 서글픔을 안고 자신 안에 안주하며, 성미가 급해지고 성질이 나빠진다. 이 시점에서 위험스러운 것은 그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면서 스스로 단정했던 삶의 즐거운 일들을 재발견하거나 과대평가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정규적인 일과 기도에 대한 맛을 잃고, 자신의 영적 진보에 대해 회의를 가지며, 자신이 노력이 모든 쓸데없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영신적 위기를 겪게 된다.

이런 어려움들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일

이 같은 상황에 빠진 자신을 발견한 사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에 대해 너그러워야 한며, 욕망의 공격에 힘없이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충동들은 인간 본성의 일부인데, 사제 성소는 이러한 본성을 제거하지 않는다. 이러나 충동에 직면하여 견뎌내지 못하거나,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성소를 훼손하거나 성소에 싫증이 나게 된다.

그렇다고 세월이 가져다 주는 것들을 인내롭게 그리고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살아 있는 믿음과 함께 하느님과의 겸허하고도 확력적인 일치가 필요한 것이다. 사제는 자주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되새겨야 한다. "나는 내가 믿어온 분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으며, 또 그분이 내가 맡은 것을 그날까지 지켜주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2디모1,12). 이 겸허하고도 살아 있는 하느님과의 일치는 자신에 대한 인식에서 이루어지며 그분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게 한다. 그리고 기도는 사제의 영성 생활에 지속적인 새로움을 제공하면서, 세월이 가도 그를 젊은이로 메물게 할 것이다. 하느님과의 일치와 신앙의 안목은 이 같은 어려움들을 그 진정한 전망 안에 자리잡게 할 것이다. 비록 여러움들이 상존하더라도 그 무게는 가벼워질 것이고, 공허와 고독에 대한 체험은 하느님께 대한 고귀한 봉헌으로 바뀔 것이다.

만일 위기가 너무 심각하여 사제가 얼마 동안 평신도처럼 머물러 살며 생각하기 위해 교회적 임무들을 벗어나고자 관면을 청한다면 공동체적 환경에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랑과 애덕이 넘치는 공동체적 환경 속에서 그는 일정한 영적, 사목적 활동을 통해 신앙의 전망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 주석

1.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48항 참조.
2. 수도 생활 교령, 12항; 직무 사제직, 제2부, Ⅰ, 4항, 라) 참조.
3. 사제 양성 교령, 6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39-41항 참조.
4. [사제 독신 생활], 64항; 사제 양성 교령, 6항 참조.
5. 그리스도교 교육 선언, 1항 참조.
6. 비오 12세, 회칙 Sacra virginitas(1954. 3. 25.): AAS 46(1954), 183-186면 참조.
7. [복음의 증거], 33항.
8. 그리스도교 교육 선언, 1항; 비오 12세, 가르멜 수도회에서 한 훈화 Magis quam(1951. 9. 30); 회칙 Sacra virginitas 참조.
9. 그리스도교 교육 선언, 3. 8항; 사목 헌장, 49항 참조.
10. 사제 양성 교령, 10항; 비오 12세, 사도적 권고 Menti nostrae (1950.9.23.) : AAS 42(1950), 687면 참조.
11. 사제 양성 교령, 10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48항.
12. [사제 독신 생활], 63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48항 참조.
13. [사제 독신 생활], 74항 참조.
14. [사제 독신 생활], 58-59항; 사제 직무 교령, 3항 참조.
15. 사제 양성 교령, 11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48.51.54항 참조.
16. [사제 독신 생활], 67항 참조.
17. 상동, 69.72항 참조.
18. 상동, 70항 참조.
19. 상동, 19-34항 참조.
20. 사제 직무 교령, 18항 참조.
21. 사제 독신 생활, 75항 참조.
22. 상동, 70항 참조.
23. 상동, 78항 참조.
24. 상동, 86항 참조.
25. 상동, 96항 참조.
26. 교회 헌장, 36항 참조.
27. 사제 양성 교령, 10항 참조.
28. 상동, 10항 참조.
29. [사제 독신 생활], 70.78항; 사제 직무 교령, 16항 참조.
30. 사제 직무 교령, 13,14항; [사제 독신 생활], 78항 참조.
31. [사제 독신 생활], 70항.
32. 교회 헌장, 44항 참조.
33.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48항.
34. 상동, 95항.
35.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48항.
36. [사제 독신 생활], 77항 참조.
37. 사제 양성 교령, 10항 참조.
38. 수도 생활 교령, 12항.
39. 사제 양성 교령, 10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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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육의 장(場)으로서의 신학교

신학교 양성 교육의 조건들

정덕은 사제 인격의 영적 구조 안에 있는 외따로 떨어진 구성요소가 아니다. 정덕은 신앙과 열렬한 애덕 위에 굳건히 서 있는 균형잡힌 삶의 정점을 이룬다.

그러므로 이 덕을 이루는 데 있어 신학교의 생활이나 분위기에서 그 어떤 것도 무관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실로 신학교의 분위기 전체는 양성 과업의 원칙적이고 근본적인 요소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정덕을 이루는 데 이바지하는 신학교 생활의 기본적인 양상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모든 신학교는 "학생들 안에 그 성소의 기쁨을 북돋아줄 수 있는"1)곳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듣게 된 이상,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독신 생활은 놀라운 은총으로 드러나야 한다.

이 기쁨의 정신을 갖기 위해 신학생들은 교회적이고 사도적인 애덕 실천의 참 맛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같은 것이고, 윗사람과 동료들에 대한 우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친교이며, 복음적 정신이고 기꺼이 협력하려는 마음이다. 이 교육적 측면은 가르쳐지는 것이라기보다, 신학교에서 실현되는 그대로가 생활의 본보기로 주어지는 것이다.

신학생 양성 교육을 촉진할 신학교 분위기를 창출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들을 아래에 제시한다. 이 제안들은 상호 인격적인 관계의 슬기로운 활용과 짜임새 있는 영적 생활, 열렬한 교회적 사랑과 알맞은 외부 세계와의 접촉, 그리고 사회 홍보 수단의 적절한 활용에 바탕을 둔 것이다.

I. 신학교의 분위기

형제적 공동체인 신학교

인간 관계가 이루어지는 신학교의 분위기는 사목적 양성 교육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신학생은 신학교에서 그 풍부한 보화를 받기 전에 먼저 무엇인가를 주어야 한다. 그는 상호 봉사의 정신을 구현하게 되는 신학교의 환경 조성에 기여해야 한다. 상호 봉사로 그는 동료들의 발전에 기여하는 생활 여건을 창조하는 데 자신의 몫을 다하게 된다.

이 신학교 분위기를 특징짓는 몇 가지 점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신학교 공동체에서 신학생들 모두가 자신의 성소를 자유롭게 생각해 보고자 하며, 자신이 신학교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성소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2) 신학생들의 성소에 대해서, 그리고 젊은이들의 마음이 변할 수 있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교육자들은 신학생 모두를 존중해야 하며, 우열을 가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신학생이 신학교에 살면서 마음을 바꾼다고 해서 배반자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그 어떤 암시도 있어서는 안 된다. 신학생들은 자신의 성소를 깊이 연구하고 완전한 자유로 이를 선택할 인격적인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음을 자주 상기해야 한다.

성공적인 신학교 공동체는 가족같은 분위기의 신뢰와, 형제같은 우정으로 특징지어지는 상호 인격적인 관계의 성립 여부에 달려 있다.3) 신뢰란 권위에 의해서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며, 불러일으켜지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우정은 촉진되거나 파괴될 수 있다. 신학교가 그 자체로서 우정의 학교가 될 때 우정은 촉진될 수 있다. 그런 분위기에서 형제 정신은 순전히 인간적인 수준에서도 촉진되며, 신학교 역시 긍정적으로 이를 믿게 된다. 악표양과 음침함처럼 우정을 파괴하는 것은 없다. 참된 독신 생활 교육은 형제애의 정신에 뿌리박고 있어야 한다.4)

형제적 사랑과 조화로 가득 찬 생활은 근면 성실하며, 인간적이고도 초자연적인 따뜻함이 넘치는 생활이다. 그것은 편안함과 평정, 그리고 깊은 만족감을 가져다 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는 신학생들은 굳이 공동체 밖에서 정서적 만족을 얻으려고 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들에게는 자유로이 선택한 독신 생활에 내포된 포기를 후회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것이다.

형성하는 공동체인 신학교

위에서 밝힌 것처럼 성숙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그리고 하느님의 실재에 대한 개방과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를 이루는 수단은 진리의 분위기이다. 다시 말해 개방 정신, 충성, 애정, 존경, 그리고 상호 소통의 분위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성소의 발견은 외적인 조건들 때문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치는 성숙한 선택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신학교의 분위기는 사제 지망자들의 성숙한 발전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따뜻한 인간적 관계로서, 개인의 책임과 자발성을 촉진할 수 있는 분위기인데, 이런 분위기는 신학생들을 단계적으로 하느님의 자녀에게 어울리는 확신에 찬 이성적 순종에로 이끌어준다.

교수진과 학생들 사이의 긴밀한 협력 없이 신학교 생활이 얼마나 그 기능을 완수할지 상상하기 어렵다. 그 같은 협력이 있어야만 학생 개개인의 인격과 능력과 자질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연대성과 사귐은 신학교 전체의 프로그램과 방법론에 적용되어야 한다. "장상들과 교수들은 학장의 지도 밑에서 정신과 행동 면의 긴밀한 일치를 유지하며 학생들과 더불어 '그들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요한 17,11)하신 주님의 기도를 실천에 옮길 수 있고, 학생들 안에 그 성소의 기쁨을 북돋아줄 수 있는 그런 가정을 형성해야 하겠다."5)

신학교 교육에서의 그룹 활동

인격 형성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성격과 능력 모두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신학교의 일치를 항상 보전하면서 다른 한편 신학생들을 소그룹으로 나누어 교육시키는 것이 바람직히다.6) 이런 제도는 각자를 다른 사람과 더욱 결속시켜 주고,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공동선을 지향하도록 구성원들 사이에 일종의 분업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더욱이 사제들이 자주 집단적으로 살고 행동하게 된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이에 알맞는 자세는 신학교에서 갖추어야 하고, 신학교 생활 자체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룹 제도는 특히 그룹들이 교구의 실제적인 요구와 관련시켜 조직되고, 나아가 신학생들이 미래의 활동 분야에 맞추어 조직된다면,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그들은 역동적이고 개성적인 목적을 적극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주위에 사도적이거나 단순히 인간적인 관심으로 이루어진 다른 그룹들 역시 우정과 협력이 유대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것은 신학생 양성 교육의 풍요성과 활력에 보탬이 된다.

규율과 규칙의 기능

자유, 개인의 존중, 개인의 창에 가치를 두는 분위기는 그것이 마치 모든 종류의 규율로부터 해방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신학교 입학을 자유 의지로 선택한 신학생은 규율에 대해서도 자유 의지로 받아들이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 "생활 규율은 신학생, 또는 사제의 생활 전체를 이루는 영적 구조의 일부이다. 그것이 '내면화'되면, 영성 생활의 필수적 요소로 변화된다."7) 그렇다고 규율이 오로지 내적인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인격적이고 공동체적'8)이며, 외적인 것이다.9)

신학교의 '생활 규칙'에 따라 마련된 규율들은 그 절대적 중요성을 간직하고 있지만, 한편 신학교 교육의 핵심은 신학생과 교육자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적인 관계의 영향에 있다. 이것은 학생들을 혼자 버려두지 않으며, 교육자들이 학생들과 함께하고 가장 가까워야 한다는 의무로부터 면제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분도 빠뜨리지 않고 정해진 철저한 규유르 또한 철저한 감시는 교육자 자신이 우정과 깊은 대화 그리고 학생들의 생활 방식에 대한 주의 깊은 배려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강화시키기 위해서 그들과 함께하는 일을 대신하는 대응품이 될 수 없다.10)

일반적인 양성 원칙들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는 개성적 접근 방식이 요구된다. 모든 사람에게 두루 통하는 그런 단 하나의 양성 원리는 없다. 때때로 장사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어느 학생에게 모험이 수반되는 행위를 허용할 수 있다. 그는 학생이 스스로 무엇이 좋고 무엇이 좋지 않은지 알게 될 것을 확신하고서, 그에게 엄격한 규율을 부과하는 대신 그런 모험을 허락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책임 있는 장상은 너무나 지나치게 자신을 중대한 위험에 처하게 하는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서 결정적으로 간여해야 할 것이다.

II. 신학교와 영성 생활

양성 과정에서의 기도 생활

독신 생활의 선택은 큰 도량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영혼들을 동시에 품어안는 하나의 위대한 사랑에 헌신하는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도 분명히 알고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독신 생활이 겸손한 자세로 청해야 할 하느님의 큰 선물임을 완전히 깨달은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11) 독신 생활의 선택은 또한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선물이기도 하다. 이 같은 도량은 신학생의 마음을 점덤 기도와 흠숭, 그리고 이 선물을 받으시는 분이시오 한결같은 기쁨과 젊은 마음의 원천이 되시는 분께 대한 관상에 개방시켜 줄 것이다.12)

신학교는 신학생들이 기도와 전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과 그리스도에 대한 탐구의 여러 가지 방식을 동원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늘 자유롭게 만나고 대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신앙과 신학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반성의 중심이시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중심으로 삼는 생활은 봉헌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본질적 요소이다. 신학생과 사제는 고도의 신심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위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다. 그들은 계시의 하느님과의 깊은 친교에서 나오는 아름다움과 행복에 대한 선택받은 증인들이며, 또 항상 그렇게 머물러 있어야 한다.

부르심을 받아 독신으로 사는 이가 기도를 포기한다면 독시 ㄴ생활에 있어서 그는 멸망의 벼랑에 내몰리게 된다. 그 삶의 기초 전체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며, 이 관계는 기도 -교회 자체의 기도요 매일의 열심한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사제의 개인적 기도이기도 하다-로써 그 생명을 유지한다. 사제가 기도하지 않으면서 영적 지도를 올바르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생활 안에서 하느님과 이루는 풍부하고 영적인 관계가 없으면 그 어떤 사제도 다른 사람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없다.

신심 형태의 개정 기준

신심의 형태들을 바꾸기에 앞서 그 이유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형태는 필요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현대의 심리학적이고 사목적인 요구들은 신심 형태에 있어서도 적용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만남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 넘치는 우정에 마음을 열게 되는 신심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자발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13) 구원의 신비에 바탕을 둔 개인 신심은 그 사람의 일생 생활에 "예외적"(extra)인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생활의 한결같은 영감으로 보아야 한다.

자연스런 기도는 그 나름의 자리를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에 기도하는 것이 결코 규칙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것보다 더 결실 풍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착각이요 근본적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하는 기도는 기도의 맛을 잃게 한다는 주장 역시 잘못된 것이다. 자연스런 기도를 촉진하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기도의 내면화를 촉진하라.

종교 교육은 복음 생활의 표현인 신심 실천의 가치를 드러내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우리는 복음 생활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와의 친교에 참여하게 된다.14)

신학생들의 전례 교육

신학생들은 단순히 전례 안에서 거룩한 직능을 보좌하는 교육만 받을 것이 아니라, 성사적, 전례적 생활에 참여하고 이를 생활화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ㅇ게 전례는 단순히 지루한 행사처럼 여겨질 것이다. 젊은이들이 기쁘게, 그리고 의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신심 행사와 전례 거행을 준비하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15) 신학생들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사는 공동체적 삶은 전례에 대한 감각을 지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제의 직무는 일차적으로 인간의 일이 아니라 성자 그리스도의 일이다. 그리므로 사제는 대사제요 영원히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영에 따라 자신의 직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사제 사이에는 얼마나 깊은 내적 친교가 있어야만 하겠는가! 신학교 교육은 이 완덕을 이루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신학생들은 그리스도의 삶을 내면화하고 그분의 영 안에서 사제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16)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현존 가운데 신학생은 개인으로든 아니면 그룹으로든 구원의 말씀에 대해 묵상하는 것을 사랑해야 한다.17)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매일의 삶에 적용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그 전승, 제도, 인물, 교리)를 복음의 빛으로 보며, 교회를 판단하고 회심시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임을 의식하는 습관을 들이고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 나아가 그의 개인적 활동과 사도적 활동에 영감을 주어야 한다.

더욱이 그리스도와의 친교는 그분의 사상과의 친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그분의 사랑의 생활과의 친교로서, 부활의 신비는 그 중심 사건이며 가장 힘차고 진정한 친교의 표현이다(로마1,2-11). 세례받은 그리스도인과 (물론!) 사제는 이 신비를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구경꾼일 수 없다. 우리 죄 때문에 죽으시고 성부의 영광을 위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닮음으로써 그 신비에 참여하여야 하며,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필립3,8-11; 2고린4,10; 3,18).

그렇지만 이 세례적 참여와 ?적 참여는 성령의 역사하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파스카 신비는 그 주역이신 성령에 의해서만 비로소 우리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직무 사제직에 불린 사제의 생활 내부로부터 이 같은 영성이 흘러나와야 한다.

신학 연구를 통한 양성 교육

현대의 신학생들은 소위 "신앙의 살아 있는 종합"이라는 특별한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 이것은 스스로 발견되어야 하는, 개인의 일상 생활에 빛을 던져주는 신앙이다. 이것은 단순히 수많은 기정 사실화된 진리를 고수하는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선택의 실천적 행사이며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신뢰의 원천이다. 사제에게 있어서 심각한 정서적 위기를 대개 신앙이 약해지거나 흐려짐으로 해서 생겨난다.

신학 연구는 신학생들의 신앙 정신을 심화시켜야 한다. 신학생들의 영적 선익을 위해서 뿐 아니라, 그들의 사제적 공부 전체에 대한 단일하고도 육적인 비전을 제시하기위해서 "그리스도 신비 입문"과 "구세사"를 가르쳐야 한다.18)

신학교는 신학생들에게 모든 신학에 대한 조직적이고 유기적인 교육을 시켜야 하며, 여기에 덧붙여 성서적, 교부학적, 역사학적, 사회학적 연구를 위한 입문 과정을 실시해야 하고, 스스로 현대 사상을 평가할 수 있는 개인적이고 비판적인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신학생들 안에 깊은 신앙을 일구어내는 데 이바지해야 하며, 가톨릭 교회 안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언제나 영양을 공급받아야 한다.19)

신학교의 일반적인 정신적 분위기에 관한 이 지침들은 본 문헌의 주 관심사인 정결 교육에 대한 외적인 지침으로 간주될 수 없다. 만일 신학교가 이러한 분위기를 마련하지 못하여 미래의 사제들이 그 분위기의 영향을 받지 못한다면, 정결은 그 양분을 공급받지 못함으로써 살아남을 희망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III. 신학교와 교회적 사랑

장상들과 신학생들 사이의 관계

신학생은 사도적 사랑의 분위기 속에 잠길 필요가 있다. 신학교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독신 생활 안에서 사제로 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일, 즉 주님 안에서 교회적 사랑을 실천하고 이를 증거하는 일이 필수적임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성령의 선물이며, 교육과 회심 그리고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성화의 수단이다.20)

신학교 장상드은 신학생들에게 단지 명령과 지도, 경고와 처벌을 내리는 사람으로 보여서는 안 되며, 신학생들 사이에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의 개인적 생활 안에서 이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권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사랑 안에서 일치의 원천이 되어야 할 의무도 크다.21) 신학생들이 장상들과 같은 하느님의 사랑을 갖추게 되는 것은 분명 자상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애덕을 통해서이다.

신학생이 자신의 사제-교육자(교수신부)의 인격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맛보게 되면 그가 미구에 주교를 중심으로 모인 사제들 안에서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과, 자기 양들에게 그것을 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22)

그가 신학교와 교구에서 체험한 애덕은 사제로 하여금 평신도 생활에 대한 미련 없이 확고하고 독신 생활을 하도록 도와줄 것이다.23)

사도적 사랑의 양성

사제 지망자들의 영적 교육은 사목적인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그 미래의 직무에 비추어 계획되어야 한다. 사제들은 교회공동체의 공식적인 건설자이다(2고린10,8; 13,10). 그러나 사람들은 "사제들이 주의 모범을 따라 모든 사람을 섬세한 친절로 대할"24) 것을 기대한다.

진실한 애덕과 사랑으로 활력이 넘치고 사도적 열정으로 불타는 신학교 공동체 생활ㅇㄴ 사도직 활동에서 성직자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형제적 협력의 준비요 서막이다.25) 그러므로 신학생들은 자신들이 자기 교구에 속해 있으며, 교구의 문제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의 미래의 일에 뿌리를 둔 교구 정신을 갖추어야 한다.26)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 침묵을 사랑하는 것, 영적인 일에 정진하는 것 등은 인간의 변화와 "시대의 징표"에 대한 사도적 관심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필요 조건이다. 그것들은 미래 사제의 사랑 가득한 배려와 진실한 이타적 열정으로부터 나온다.27)

신학생은 자신의 독신과 사도적 관심 사이의 연결에 대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자발적인 독신 생활은 사랑의 증거, 즉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사랑의 응답"이다. 그분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인간적 형태의 사랑은 은총을 통해 새롭고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28) 사제가 완전한 애덕을 생활하는 것은 "하느님의 선물인 자기 생명을 업신여겨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로부터 태어난 새 생명에 대한 더 큰 사랑 때문이다."29) 사제에게 있어서 인간적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 희생되며, 따라서 교회와 온 인류에 대한 사랑을 위해 희생된다. 사제는 이 사랑을 위하여 다른 애착과 합법적인 애정을 포기한다.30)

그리스도를 본받음

지극히 높으신 목자의 모범에서 우리는 사제의 구세 사명이 얼마나 초자연적인 것인가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그 목자직의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원천과 함께 목자가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사제의 삶과, 성부께서 이 세상에 보내주신 그리스도께 대한 사제의 전적인 봉헌이다.31)

세례받은 사람을 목자로 세우는 신품성사는 그를 형제애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가 된 이들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선택받은 사람"이 되게 한다.(필립3,12; 갈라1,10; 5,13). 그것은 하느님이 사랑의 요구를 온전히 받드는 삶이요, 은총의 행위에 내맡기는 삶이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에 보람을 주시는 그분을 위해서 사는 삶이다(2고린5,14-15). 영혼의 목자들은 그 본성상 배제적인 사랑 안에서 계속 양성되어야 한다. 그들은 한번 자신을 사제로 서품한 주교에게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 하느님의 구원적 사랑에 영구히, 그리고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사제적 기도에서 "그들을 위해서"라는 말과 "나 자신을 바친다"라는 말은 분리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제 양성 교육에 있어서 하느님게 봉헌됨을 형제들에게 봉사함과 분리시킬 수 없다. 오히려 전자는 온전한 후자에, 그리고 후자는 전자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IV. 세상과 접촉할 필요성과 접촉 수단

사제 양성의 새로운 요구 조건들

신학교는 내적 생활에 더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지나친 현세적 영향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고자 애써 왔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필요하고 유효한 것인데, 이러한 배려와 함께 신학생과 세상 사이에 어느 정도의 접촉이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었다. 그것은 한 가정의 가장이 실제로 살아가는 그 같은 상황과의 접촉을 말한다. 신학교 교육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하고 모든 것을 행하였다고 하자. 그때 우리는 세상으로부터의 은둔을 고집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은세(隱世)는 오늘날 순전히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미묘하고 가끔은 비판적이며 불신앙에 가득찬 현대 세계로부터 별걸할 수는 없다. 젊은 신학생들은 이 세상에서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세상 실재들을 모른 체할 수도 없고, 그런 생활이 허용될 수도 없다. 신앙을 제시하려면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맞게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제 양성은 정확한 안목과 정직과 용기로써 수행되어야 하는데, 과거에는 이런 자세가 요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32)

이것은 신학생들이 자신의 서품 때에 결정적으로 내리게 될 최종 선택을 둘러싸고 빚어질 모험에 직면하여 오류와 모호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신학에 바탕을 둔 양성 교육의 도움을 받야야 한다는 뜻이다. 사제직을 받들겠다는 그 기본적 결심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무지에서 나오지 않고, 삶의 실재를 올바로 평가하는 데서 나와야 한다. 그것은 세상에서 자신이 지닌 참된 의미와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분명한 비전에서 나오는 해위여야 한다.

상호 인격적인 관계의 목적

신학생이 신학교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살면 자기 세대의 문제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판에 박힌 인간 관계나 비인격적인 현태의 인간 관계에 만족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 경우 바깥 세상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신의 성소에 대해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릴 기회가 사라질 수 있으며, 자신의 사도직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될 이 세상에서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33) 그는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시련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함으로써, 사제로서 다른 사람으 ㅣ문제에 무감각한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신학생 안에 특권 계급 의식을 나을 위험이 생기게 된다.

인간 관계는 사도직에 있어서 도구일 뿐만 아니라 그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이 세상에서 새로 창조된 존재로 살라는 초대를 받고 있다. 사랑과 우정, 형제적이고도 친밀한 애정과 가족같은 일치 안에서 살아야 할 사명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창조된 존재의 참된 의미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사제이다.

현대인과의 접촉을 끊지 않도록 신학생들을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교회의 교도권은 사제 양성 교육에서 우정, 충성,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 너그럽고도 성싫게 다른 ㅅ람에게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능력과 같은 덕들을 강조하여 왔다.34)

신학생과 그 가족들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은 사제 지망자를 교육시키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인간적 사랑의 의미, 가치, 어려움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가정이다. 가족은 그에게 사랑하는 인간 관계의 중요성과 가치를 가르쳐주며, 여성 심리학의 특수한 면을 올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켜 준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방학 동안만이 아니라 일반 학기 동안에도 신학생의 양성 교육에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신학생의 휴식, 놀이, 아르바이트, 사목 활동 과정에서 무수한 사회적 접촉을 이루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그가 신학교에서 받은 조언들이 얼마나 쓸모 있고 적절한가를 시험해 볼 수 있게 한다. 신학생 양성 교육의 이 측면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가족들과 본당 사제들의 책임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영성 생활을 일깨울 수 있다.

가정 역시 성소가 태어나고 자라는 "못자리"여야 한다. 그것은 "첫번째 신학교"여야 하며, 다음에는 신학교와 함께 첫째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35) 그렇지만 오늘날 많은 가정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심각한 문제점에 비추어볼 때, 신학교가 걸설하고자 하는 것을 가정이 파괴하지 않도록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만일 가정들이 미래 사제의 양성과 보호에 있어 보완적이고 부양적(扶養的)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면, 그만큼 많은 사목적 가정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소 개발 사업의 주요 대산 가운데 하나는 분명, 거룩한 성소의 개발을 위해 부모들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줌으로써 가정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

교회 성소에 관련하여 부모들이 할 일은 여러 가지이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기 자녀들에게 주신 성소를 준비하고 길러내며 뒷받침하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학생 가족으로서 깊은 윤리적, 종교적 가치와 확고한 수계 생활, 모범적인 그리스도교 윤리 행동과 교회에 대한 관심, 사도직 활동과 올바른 자녀 교육, 그리고 제대로 된 성소관을 갖추어야 한다.

본당과의 관계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신앙 체험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루게 되며, 그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도록 초대받은 것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이다. 그 공동체 안에서 사제와 평신도들의 다양한 역할이 옳게 수행되고, 주님께서 이 모든 활동의 중심이 되신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은 자기 성소의 교회적인 차원을 이해하도록 서로 돕는다.

그러므로 본당은 사제 성소가 태어나고 보존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필수적인 공동체이다. 본당은 신자 학생들이 공동체의 사도직 활동에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36)

이 목표는 본당이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는 참된 공동체 생활을 이루고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애쓸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본당 사제들이 거룩한 생활과 목자적 열정의 모범으로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신자들이 성소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 성소와 사제들의 성화를 위해 기도하며, 평신도들이 공동체의 사목적 임무 수행에 협력한다면 그 목표는 달성될 것이다.

세상과의 접촉

오늘의 신학교는 현대 생활에 개방된 공동체여야 한다. 신학교는 모든 종류의 접촉, 즉 신학생들의 가정과의 접촉, 젊은이들의 세상과의 접촉, 지역적, 보편적 차원의 교회 생활과의 접촉, 인류의 문제와의 접촉 등을 유지해야 한다.37)

그렇지만 그것이 "폐쇄되지" 않고 "개방되어야" 한다고 해서, 아무런 계획도 없는 무분별한 개방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신학생들이 다른 사람과 참으로 인간적이며 사제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사람ㄷㄹ의 모든 문제에 개방된 저신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한 것이다.38)

사제는 세상 안에 존재하고, 세상을 이해하며, 세상을 받아들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또한 세상으로부터 그를 구별시키는 사명을 수행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결코 "그들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참 사제는 연대적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과의 연대 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의 일은 그가 인간 공동체와의 접촉 속에서 살면서도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살도록 한다. 그는 인간들 가운데 살지만, 시선을 하느님께 두고 산다.39)

신학생은 사제의 영혼을 가지고 세속적 환경 속에서 살도록 양성되어야 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진정한 증인이 되고, 자신의 내적, 영적 힘을 발휘하여 대화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신학교는 신학생이 주변으로부터 오는 온갖 압력에 직면하여 영신적인 차원에서 두 발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세상에서 사도적 현존을 이루는 교육

신학생들은 외부 세계와의 접촉에서 사도적 전망을 갖추도록 교육되어야 한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학생들이 사도직에 대한 입문 과정을 밟도록 바라고 있다. 그것은 물론 본당 사업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못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과 만나는 가운데 사목적 태돌ㄹ 갖게 하고, 신학생들의 매일의 임무에 새로움을 줄 수 있는 사랑의 사도직에 대한 맛을 알게 하며, 현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사도직을 수행하는 방법을 새롭게 발결하도록 해준다.40)

신학생들을 사도직에 파견하는 것은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그것은 성직자들을 돕는 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신학생들로 하여금 선교 정신과 사도적 애덕을 갖추고 하며, 나아가 더욱 현대화된 기술을 배우고 그로부터 나오는 결과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게 한다.41) 그러므로 그들의 독신 생활은 그 사도적 사명과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

미래 사제의 사목적 양성이라는 높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실력을 갖춘 교수진이 필요하다. 그들은 숙련된 사람들이어야 하고, 참으로 활력을 주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들은 신학생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하고, 자기 일에 대해 필요한 사목적 평가와 사목적 감독을 책임있게 수행해야 한다. 신학교가 참 교육자로서의 실력과 능력을 갖춘 사제들의 지도 아래 있지 않다면, 신학교 규칙이라든지 신학교가 세상에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대새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42)

사회 홍보 수단

홍보 수단은 오늘날 인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제 양성에서도 그러하다. 홍보 수단은 완전한 사랑으로 인간을 형성하는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성(性)이 흔히 홍보 수단에 지나치게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홍보 수단을 사용하여 홍보 수단의 영향 아래 있게 될 사제의 개인 생활과 결부된 문제이다. 홍보 수단들은 사제의 사목 활동에 영향을 주는데, 그것은 이 수단들이 사제가 맡은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그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에게 사회적 의식을 형성시켜 주기 때문이다. 사제는 신자들에게 홍보 매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그 유해한 영향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야 한다.43)

그러므로 사제 지망자들에게 사회 홍보 수단(신문, 라디오, 텔레비젼, 영화 등)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는 입문 교육을 받게 하고, 현재 정신에 맞게 말이나 글을 통해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것은, 단순히 그리고 오직 그 인격 형성뿐 아니라 그들의 사도직 준비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것은 분명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특히 출판물과 라디오 그리고 텔레비전의 광범한 사용과 영향이라는 실제 상황에 처했을 때는 더욱 엄청난 문제가 된다. 신학교 공동체의 내적, 외적 환경이 홍보 수단에 크게 달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홍보 수단은 사제 지망자들을 양성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장애가 되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홍보 수단이 제시하는 교육적 문제는 홍보 수단의 사용에 대한 규율을 정하는 문제에 국한될 수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교육의 문제이며, 우리가 처해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한 반성의 문제이다. 그것은 신학교 요원들이 이 교육 분야에 대해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전문인이 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위험한 수단들이 끼칠지도 모를 손상을 최소화시키는 문제일 뿐 아니라, 이 어려운 세상에서 책임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미래의 사제들을 양성하는 문제이다.

▶ 주석

1. 사제 양성 교령, 5항.
2.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13항 참조.
3.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13,14,46,48항 참조.
4. 수도 생활 교령, 12항 참조.
5. 사제 양성 교령, 5항.
6. 상동, 7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23항 참조.
7. [사제 독신 생활], 66항.
8. 상동, 66항.
9. 상동, 78항 참조.
10. [사제 독신 생활],68항; 사제 양성 교령, 11항 참조.
11. 사제 양성 교령, 10항 참조.
12.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54항 참조.
13. 사제 양성 교령, 4.16항 ; 사제 직무 교령, 13항 참조.
14. 사제 양성 교령, 8항 ; 사제 직무 교령, 18항 참조.
15.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14항 참조.
16.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44-45항 참조.
17. 사제 양성 교령, 8항 참조.
18. 사제 양성 교령, 14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62항 참조.
19. 사제 양성 교령, 16-17항 ;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76-80항 참조.
20. 사제 직무 교령, 11항 ; 수도 생활 교령, 12항 참조.
21. 사제 직무 교령, 11항 ; 수도 생활 교령, 24항 참조.
22. 사제 양성 교령, 8항 참조.
23. 수도 생활 교령, 12항 ; [사제 독신 생활], 79-80항 참조.
24. 사제 직무 교령, 6항.
25.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46항 참조.
26. 상동, 47항 참조.
27. 상동,
28. [사제 독신 생활], 24항 참조.
29. 상동, 13항 참조.
30. 상동, 13.20.26.30항 참조.
31. 사제 직무 교령, 14항 참조.
32.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69항 참조.
33. 사제 양성 교령, 3.19항 참조.
34. 사제 양성 교령, 11항 ;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51.69항 참조.
35. 비오 11세, 회칙 Ad Catholici Sacerdotii(1935.12.20.) : AAS 28(1936), 5면 이하 ; 사제 양성 교령, 2항 참조.
36. 사제 양성 교령, 2항 ;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11항 ; 사제 직무 교령, 11항 ; 선교 교령, 19항 참조.
37.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12항 참조.
38. 상동, 12.20.47.51.58.69.95항 참조.
39. 사제 직무 교령, 17항 참조.
40. 사제 양성 교령, 12.19항 참조.
41. 상동, 19-21항 참조.
42.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30-31항 참조.
43. 매스 미디어 교령; 교황청 사회홍보위원회, 사목 훈령[일치와 발전](1971.5.23) ; AAS63(1971), 593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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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말

자연과 은총의 종합인 양성 교육

본 문헌에서 제시된 지침과 제안들이 신학교 교수진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마지않는다. 이 지침과 제안들은 신학교와 사제 양성 교육에 스며드는 자연과 은총의 요소들을 연구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신학교 교육자들은 자신의 막중한 부르심과 책임을 의식하고, 언제나 자신의 일에서 자연과 은총이 제공하는 자원들을 온전히 활용하도록 힘써야 한다.

사제 독신 생활에 대한 효과적인 교육은 개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며, 그가 완덕에 이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과 다른 삶에게 알려지고 이해되어야 하며,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발견하고, 그 개인적 사고 방식 - 인격적 배경과 개인적, 사회적 영향들의 융합에 의해 형성된 사고 방식 - 에 맞추어 훈련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

영성 생활에 도움을 주는 자연적 여건들은 성숙이라는 개념으로 종합될 수 있다. 자신의 성숙에 이르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성숙에 이르도록 돕는다는 것은 바로 인가 - (나아가!) 사제라는 영적 건물을 짓기 위해 하느님의 은총과 협력함을 의미한다.

영성 생활이 근본적으로 은총에 달려 있으며, 인간의 정신적 매카니즘을 초월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매카니즘이 은총의 작용에 영향을 준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로 성령의 부르심에 대한 표지와 두고로서 더 잘 봉사하기 위해 신학생의 인격이 더욱 풍부히 인간적인 것이 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은총의 작용이 더 결실 풍부하도록, 신학생 개인의 인간성을 향상시키고 그를 가능한 한 완덕으로 인도하는 것이 신학교 교육의 과제이다. 신학교의 교육 과정은, 그것이 정규 과정이든 아니든 간에, 개인적 조건들에 대한 관심 정도에 따라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신학생 하나하나에 대해 정성을 기울여야만 그들을 하느님 은총의 유용한 도구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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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제 양성 기본 지침  [9] 24843
8   자유의 전갈 (Livertatis Nuntius)  [12] 2198
7   성체신비 공경 규정에 관한 훈령  [2] 2577
6   신학교 영성 교육 중 매우 절박한 문제들에 관한 회람  [3] 2402
5   신학교의 전례 교육에 관한 훈령  [3] 2886
4   미래 사제들의 신학 교육에 관한 서한  [5] 2666
  독신 생활 양성 지침  [7] 2681
2   세계 정의에 관하여(De Justia Mundo)  [4] 2410
1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훈령  [3] 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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