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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제들의 신학 교육에 관한 서한
조회수 | 2,665
작성일 | 07.01.17
▶ 교육성성 서한 | 미래 사제들의 신학 교육에 관한 서한| 1976. 2. 22.

▶ 머리말

1. 현상황의 여러 측면들

1) 사목적 직무에 대한 새로운 요구들
2) 신학의 새로운 과제들

2. 신학 교육의 요구 조건들

1) 기본적인 요구들
신학의 본질
신학의 기능

2) 신학의 내용
신학의 역사적 차원
조직적(체계적) 차원

3) 신학 작업의 몇 가지 조건들
신학과 교도권
신학과 그리스도교의 신학적-철학적 유산
신학과 철학의 관계
인문 과학과 자연 과학의 공헌
신학을 지상적 실재에 적응하는 일과 인간 가치들을 통합하는 일

3. 신학 교육을 위한 지침들

1) 일반적 지침
다양성과 일치
종합에 대한 전망
신학 지식의 생명력과 그 전수

2) 여러 신학 과목에 대한 특별 지침
성서
교부학
교의신학
윤리신학
사목신학
기초신학
기타 신학 과목

4. 실천적 규범들

1) 신학 교육을 책임진 사람들의 의무
신학교의 권위들: 주교들과 주교회의와 학장들
교수들
학생들

2) 신학 공부의 체계적 정리

▶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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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1. 심각한 문화적, 신학적 변화는 이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표징 가운데 하나이다. 이 변화의 누룩은 교회 전체 속에서도 작용하지만, 특히 미래의 사제들을 위한 신학 교육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 모든 교육 부문에서, 새로운 연구 분야, 새로운 방법론, 새로운 관심, 강조점의 변화 등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관계자들 모두의 관심과 숙고를 촉구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대두되었다.

2. 그리하여 가톨릭 교육성성은 사제 양성의 책임을 지고 있는 주교와 그 협력자들을 위해 사제 지망자들의 신학 교육에 관한 본 문건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여러 이유로 우리의 문제는 심각하게, 그리고 상당히 길게 다루어졌는데 어떤 것들은 신학 교육 그 자체의 내적 이유이며, 다른 것들, 예를 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상황의 변화, 생활 여건, 사제 직무의 여건, 복음화의 문제들, 교회의 일반적인 요구 등은 외적 이유이다. 오늘날 신학 교육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그 결실 풍부한 쇄신에 거는 기대 역시 크다. 지금 사제 지망자들을 위한 양질의 신학 교육은 우리 신학교에 강한 힘을 불어 넣거나, 성직자들과 그 사목적 직무의 영적 쇄신에 더욱 견고한 기초를 제공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보인다.

3. 문제를 분명하고도 체계 있게 다루기 위해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랐다.

I) 현상황의 몇 가지 측면에 대한 설명;

II) 신학 고유의 기능 그 자체에서 나온 신학 교육의 몇 가지 요구 사항에 대한 지적;

III) 일반적, 개별적 규율에 따라 신학 교육을 위한 몇 가지 지침 내지는 노선의 설정;

IV) 미래의 사제들을 양성할 책임을 맡은 모든 기관들이 지켜야 할 실천적 규범의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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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상황의 여러 측면들

1) 사목적 직무에 대한 새로운 요구들

4. 1) 미래 사제들의 신학적 준비를 더 철저히 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할 첫째 이유는 사제들이 일해야 할 여건들의 변화 때문이다. 성소의 감소로 인해 그 수효가 줄어들면 사제들은 몇 가지 직무에 있어서 부제나 신자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되며, 이 경우 사목적인 면에서 더 큰 책임을 떠맡게 된다.

사제직의 특수성 때문에 사제들은 자기 주교의 직무에 더 깊이 동참해야 할 처지에 있다. 그들은 더 복잡하고 전반적인 사목적 임무를 맡게 되고 동시에 자신들의 교구 안팎에서 더 큰 일들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 같은 사목적 책임의 엄청난 증가는 신학과 건전한 교의에 대한 뛰어난 능력 내지 실력을 요구한다.

5. 2) 나아가 사제들은, 그 내부와 세계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요구들에 부응하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는 교회 안에서 그 직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여건에서는 건전한 신학 교육이 시대의 징표를 올바로 해석하고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되어, 한편에 도사리고 있는 침체의 늪과 다른 한편에 도사리고 있는 의심스런 모험과 경험들을 올바로 헤쳐나가게 한다.

6. 3) 내일의 사제들은 또한 더 성숙한 사람들, 더 비판적인 사람들, 더 많이 배운 사람들, 이념적 다원주의에 파묻혀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 같은 세계에서 우리 종교는 신앙과는 전혀 동떨어진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무수한 해석과 의혹에 노출되게 마련이다. 사제들은 신학교에서 시작되어 이후로 계속되는 건전한 신학 교육 없이는 신앙과 교회 공동체에 효과적으로 봉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평신도들이 더욱 폭넓은 신학 지식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신학 전문 학교, 또는 신학부에서 연구하고 있다. 그러니 성직자들이 더 높은 수준의 신학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요구이다.

7. 4) 내일의 사제들의 신앙 자체가 이전보다는 훨씬 더 큰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는 사실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실제로 일부 사제들이 세상의 불신앙과 불신주의에 만연된 풍조를 극복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제 양성 교육은 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신학적 대비 없이 사제들이 어떻게 자신의 신앙을 지키면서, 형제들을 신앙 안에 강하게 살아가게 할 수 있겠는가?

8. 5)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사제에게 평범하고 실용적인 교육만으로 족한 시대는 분명 지나간 것이다. 물론 모든 사제가 다 신학에 있어서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사목적 직무와 신학적 능력 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있음도 사실이다. 사제들은 꼭 전문적인 신학자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신학적' 직무를 수행해 줄 것을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다. 실로 사제와 주교들은 사목자로서 교회 안에서 공식적인 가르침을 책임진 사람들이다.

2) 신학의 새로운 과제들

9. 우리가 앞에서 그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는 신학 교육은 따라서 새로운 상황과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경험과 다양한 요구들은 신학 연구와 신학 교육의 몇 가지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그 같은 신학의 연구와 교육은 오늘날 완수해야 할 많은 과제들을 고려할 때 더욱 절박하다.

10. 1) 과거에 신학은 그 문화가 쉽게 이를 적응할 수 있는 세계에서 발전해 왔다. 교회의 신앙이 문화와 관습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오늘날 사회는 세속화되고, 흔히는 종교적인 문제에 무관심일 뿐 아니라, 교회의 신앙이나 그 가르침에 더 이상 호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가장 필요한 일은 복음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며, 우리는 그들에게 맞는 언어를 발견해 내야 한다. 그러나 그 같은 과제는 즉흥적이거나 개인적인 시도에 내맡길 수 없는 아주 복잡 미묘하고 중대한 것이다. 건전한 연구 풍토와 선명한 교의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신학의 과제이다.

11. 2) 오늘날 교회 일치적 대화는 신학에 큰 비중을 두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우리 교의의 역사와 자료들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고무시켜 신학과 교회 전체에 새로운 분위기를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신학의 교회 일치적 차원을 재발견하여, 신앙의 진리들을 "갈라진 형제들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과 용어로 더욱 깊고도 확실하게"1) 표현해 내야 할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12. 3) 교회 생활 역시 오늘의 신학에 막중한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그것은, 분석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신앙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활동들에 직면하여 교회가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목 활동의 중요성을 볼 수 있다. 사목 활동은 신학적 반성을 촉진하고 그 가르침을 자극하여 정통성을 잃지 않고서도 더욱 살아 있고 더욱 현대적인 것이 되도록 한다. 이 같은 신학의 기능은 하느님 백성에 대한 봉사에 필요한 것이다.

13. 4) 한걸음 더 나아가 신학에 문제 해결을 요청하고 있는 현대 세계는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사목 헌장은 인류 가족 전체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잘 나타내었다. 최근의 신학은 복음의 빛으로 본 인류의 경제, 사회, 정치 문제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의의 사회적 적응과 그 결과에 대한 크나 큰 깨달음은 행동의 차원뿐 아니라 신학적 반성의 차원에서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성직자 양성에서 이점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14. 5) 오늘의 교회에 봉사할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신학은 인문 과학과 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분명 인문 과학은 신학과 무관하지 않으며, 반대로 신앙의 역사적 정식화(formulation)에 일조하는 만큼 그 발견의 일부는 "겅전"처럼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신학은 인문 과학에서 더 큰 이익을 얻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지만, 그렇다고 그 현재적 결점들 내지 한계점에 묶여 있을 수는 없다. 인문 과학이 오늘의 문화에 깊이 침투해 들어감으로써, 가끔 신학적 언어의 일부가 부적당한 것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오늘날 인문 과학이 누리는 대단한 명성은, 신학의 모습을 손상시키고 그 특성을 잃게 할 만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학이 가끔은 역사학이나 사회학 등으로 취급될 정도이다. 우리는 이 같은 어려움을 인식하는 한편, 다른 학문들과의 관계 안에서 신학의 인식론적 구역 설정이 시급한 형편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15. 6) 현상황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현상은 신학 교육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단일성의 상실이다. 신학 교육은 지금 새로운 문제, 새로운 철학, 새로운 학문적 결실에 개방되어 있다. 그로 인해 종교적인 의문들은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한 해석 아래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그 방향 역시 일종의 다원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그 같은 다원주의에 합법적이고도 필요한 한계를 설정하는 일 역시 현대 신학의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신학 교육의 쇄신이 더욱 강조되는 것이다.

16. 7) 오늘날 신학을 가르치는 데 있어 특수한 신학 과목들이 대단한 발전을 이루고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소화하여 조화시킬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것도 큰 어려움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문제들에 완벽한 답을 제공하는 백과 사전적인 가르침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신학생들에게 그리스도교 신비에 대한 응집력 있는 전체적인 전망을 제시할 수 있도록, 모든 신학 교육을 새롭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 주석

1. 1. 일치 교령, 1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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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학 교육의 요구 조건들

1) 기본적인 요구들

17.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앞에서 지적한 복잡한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 신학을 가르치는 데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어떤 것은 신학의 본질 자체에서 비롯되고, 어떤 것은 그 기능에서 비롯된다.

▶ 신학의 본질

18. 1) 신학의 본질을 염두에 두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만일 신학이 우리 시대의 요구에 따라 쇄신되고 적응되어야 한다면, 전통과의 단절이 있어서도 안되고, 그리스도교 계시에 관한 학문이라는 신학의 본질을 벗어나서도 안된다. 신앙은 지성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자아 이해를 추구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신앙은 신학을 통해 더 높고 더 체계적인 형태로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신학이 관심으로 하는 대상은 인간 이성이 얻어낸 진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계시하시고 신앙으로 알게 된 진리이다.

신앙이라는 맥락은 신학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다. 신학이 신앙이라는 전망을 벗어나 다른 학문과의 혼동된다면 아무런 발전도 이룰 수 없다.

19. 2)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신학은 신앙 자체의 역동성에서 나오는 것에 반응하며 - "동의로써 생각한다"(cum assensu cogitare) - 문화의 요구에 응답하고, 현대인들의 근본적인 질문과 걱정들 가운데에서 신앙을 이 시대의 심리학적, 사회학적 맥락 안에 온전하게 접목시킨다.

20. 신앙으로부터 태어나고,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발전하고, 신앙의 도움을 받는 신학은 그 고유의 대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성적인 반성과 문화가 제공하는 자료들을 활용한다.

그러므로 신학은 다양한 학문과 종교적 학문의 접합점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글허다고 여타의 학문들과 혼동되거나 그 방법들에 묶여서는 안된다.

a) 특히 신학은 종교사나 교의사, 종교 심리학이나 교회의 사회학 등과 혼동되거나, 그런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신학은 자신의 본질과 그 특수 기능에 충실해야 하며, 종교와 관련된 과목들의 인식론적 맥락 안에 성실히 머물러 있어야 한다.

b) 인문 과학과 자연 과학의 발달로 인한 사회적, 문화적 여건들 속에서 신학은 제학문의 확실한 결론들을 활용하는 한편, 그것들이 사람들 속에서 불러일으킨 사고 방식이나 정신, 그리고 인간이 각 시대마다 스스로 부여하는 해석 등도 숙고한다.

이로써 신학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기원, 본질, 행동, 발전, 조건, 운명에 관계되는 교의와 윤리 문제에 대해 진정한 대화를 발전시킬 수 있고 또 발전시켜야 하며,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에 관한 분명하고도 불변하는 진리의 빛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1)

21. 4) 가톨릭 신학은 교회의 삶에서 나오는 교리와 경험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2) 교회의 교도권은 교회의 삶 안에서 성서와 성전에 들어 있는 신앙의 진리를 올바로 해석하고 보호한다. 그러므로 가톨릭 신학자는 성서 주석이라든지 기타 다른 학문 분야에서 교회와 반대되거나 교회와 무관한 신학들의 방법을 무조건 따르거나 그 결과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그런 신학들에 대한 무비판적 절충주의는 가톨릭 신학의 특성에도 유해하고, 교회일치라는 고귀한 가치에도 무익하다.3)

22. 5) 신학은 개인이나 공동체적 차원에서 인격적 위탁4)과 생활의 원리인 진리를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영적인 차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신학자는 자신의 탐구와 연구에 있어서 순전히 지적일 수만은 없다. 오히려 항상 신앙이 요구하는 바를 따르며, 하느님과의 실존적 일치와 교회 생활에의 능동적 참여를 늘 심화시켜야 한다.

신학은 그 본성상 생명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로써 신학은 학문의 인식론적 골격에 고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 신학의 기능

23. 신학은 그리스도교 계시의 학문으로서 교회의 활동과 직무라는 광범한 영역에서 특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 교회는 신앙과 사랑의 공동체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교 계시'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언 성업을 교회에 맡기셨다.

24. 1) 신학은 계시를 탐구하며 깊이 연구한다. 신학은 신앙의 요구5)와 시대의 징표 -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표지를 발견한다6) - 에 따른 인간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며 그 발전의 한계를 설파한다. 이 신학의 본질적 기능은 그 어떤 경우에도, 특히 이 시대에 무시되거나 간과될 수 없다.

25. 2) 이 기능을 발전시킴으로써 신학은 영성 생활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신학은 계시가 그리스도인 생활에 제공하는 구원의 법들과 영적 성장의 방법들에 대한 감성을 맑고 깊게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특히 자신들의 직무에 대한 이해와, 교회가 잣5 들에게 요구하는 바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바탕을 둔 건전한 신앙심 안에서 미래의 사제들을 교육시키는 데 더욱 맞는 말이다.7)

26. 3) 여기에서 신학은 그리스도교 사도직과, 특히 사목적 직무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신학은 구원 경륜에서 차지하는 그 자리를 보여주며, 교의의 원천들과 그 실제적 가르침으로써 이를 완성시킨다. 영혼을 돌볼 미래의 사목자들에 대한 일류의 신학 교육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8)

27. 4)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골로 1,24)를 건설하기 위하여, 신학은 교회의 교도권에 봉사하는 데 건설적이어야 할 소명을 지니고 있다. 신앙의 내용을 정리하고, 계시가 제공하는 윤리를 정성스럽게 가르치며, 현실 문제에 스스로를 적응하고, 교회의 삶과 사상에 관한 문제들을 과학적으로 다루며, 교의적인 차원이나 실천적인 차원에서 빚어지는 여러 문제들을 지적하고, 명시하고, 해결함으로써 신학은 그 같은 소명을 다하게 된다.9)

특별히 신학은 교회의 새로운 선교 의식의 추진력을 해석하고 격려하며, 이에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비그리스도교나 비그리스도교적 문화와 더불어 대화의 여건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로써 우리는 민족들의 관계가 더 긴밀해지는 데 따라 새로운 형태의 복음화에 이르게 될 것이다.10)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신학은 새로운 교회 일치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동으로 향유하고 있는 신앙의 원천들을 연구하고, 논란의 대상이 된 문제들에 관한 여러 교회들의 생각을 더 깊이 알아보며, 그리스도교 일치의 문제 밀접히 관련된 교회론과 여타의 신학 분야의 교회 일치적 차원을 발전시켜야 한다.11)

28. 5) 신학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에 직면하여, 그 안에서 인간적이고 복음적인 요소들을 가려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아무런 선입관 없이 복음의 메시지를 만날 때 이들을 분명하게 하려고 애쓴다. 신학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오늘의 해결책들이 그리스도교로부터 분별과 건설의 힘을 받게 된다는 점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12) 같은 맥락에서 사회 계층과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유대, 착취와 소외로부터의 해방, 가난과 질병과 문맹의 극복, 민족 분쟁을 해결하는 데 전쟁의 배제, 평화 유지를 위한 더욱 효과적인 방안의 창출 같은 문제들이 제기된다.13)

이런 의미에서 신학은 본래의 고유한 "정치적" 기능을 지니고 있다. 하느님의 가르침과 명에 따라 문제에 빛을 비추어주며 여러 일에서 인간 행위를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2) 신학의 내용

29. 신학은 그 본질과 기능으로 볼 때 계시에 의해 양육되는 통일적인 학문이다. 신학은 실체적인 연구 과정이나 사변적인 과정을 통해서 계시로부터 받은 내용들을 신앙의 빛에( lumen fidei) 드러내놓는다. 따라서 신학은 실증적이고 체계적이다. 실제로 신학의 기초는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바를 확립할 목적으로 계시의 원천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들은 신앙의 내용(auditus fidei)을 과학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소위 실증신학이 태동하였다. 실증신학의 연구 결과들은 조직신학에 의해 더 앞선 학문의 대상이 된다. 조직신학은 알아낸 신앙의 내용(intellectus fidei)의 요구에 따라 계시된 진리의 의미를 궁구하며, 전체를 유기적이고도 통일적으로 정리함으로써 계시 진리들의 상호 관계를 밝히려 한다.14) 역사적인 탐구와 이성적인 반성 - 이 두 신학의 내용은 결코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계속 상호 작용 가운데 있으며 그 기능 역시 상호 보완적이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지배하는 일 없이 서로 평형을 유지해야 한다.

▶ 신학의 역사적 차원

29. 신학의 실증적인 분야를 지배하는 역사적 탐구에 관해서는 다음 세 가지 지침이 마련되어 있다.

30. 1) 신학은 자신의 본성에 맞는 방법들에 의해 발전되어야 한다. 이것은 올바른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둔 합법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그렇다고 신학이 단지 철학이나 역사 비판의 수준에 머물러도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수준에 머물면 실증신학은 아무런 결실도 낳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고유한 사명을 저버릴 위험에 빠진다.

31. 사실 실증 신학은 그 연구 대상과 교회의 신적 기원이 지닌 초자연적 특성을 우선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신앙의 빛 없이, 단지 인간 이성의 도움만으로 이를 발전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교회의 교도권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도 없다. 실증신학은 게시의 신학, 성령의 감도, 그리고 교회 위에 세워져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지키고 권위 있게 해석하는 것은 교회에 속한 일이다.15)

32. 2) 계시와 그 전수, 그리고 이를 보전하고 해석하는 교도권에는 역사적 차원이 있다. 따라서 실증신학은 전통적인 연구 방법(철학, 역사학, 역사 비판)에 앞서 철학적, 또는 철학-신학적 반성에 의지해야 한다. 그 같은 반성은 특히 역사가의 안목에서 본 사건의 본질, 들은 사실과 그 해석 사이의 관계, 이 관계의 본질, 목격 증인들과 믿는 이들의 공동체 사이의 관계 등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나아가 전수된 사건들과 전수 자체의 역사적 성격과 함께, 우리의 구원 역사가 자리잡고 있는 시대의 특성도 고려되어야 한다.16)

33. 3) 실증신학이 철학에 의존할 필요가 생긴 현대 해석학의 발달 때문이다. 현대 해석학은 오늘의 문화가 역사적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발전하였다. 신학자들이 다양한 사상 표현에 있어 사고의 역사적 조건, 현대인들의 사고 방식과 그 표현 방식 사이의 차이, 그리고 성서에서 보는 것과 신앙의 역사적 정식화(定式化)에서 발견되는 것 사이의 차이에 관심을 쏟게 한 것이 바로 현대 해석학이다. 그리하여 신학은 신앙의 내용을 현대인이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를 설명하고 재해석해야 할 임무와 함께, 오늘날에는 완전 접근이 불가능한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린 표현 방식들을 가려내야 할 임무를 떠맡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신앙의 본질과 신앙의 정식화는 서로 별개의 것임을 직시하여야 한다.17) 신앙의 정식화만이 역사, 변화, 적응 등에 좌우될 뿐 그 본질은 확고하고 불변한다. 그러므로 신학자는 기본적으로 실증주의와 역사주의의 위험을 피할 줄 알아야 한다. 실증주의나 역사주의는 사상과 윤리 현상들을 오로지 역사적 요인들만 가지고 설명함으로써18) 항구하고 객관적인 진리를 모두 역사적 우연의 상대성 안에 가두어 버린다. 신학자가 자신의 막중한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도권19)과 성서 해석의 규칙들20)을 따를 뿐 아니라 인간 지식의 객관적 가치들에 대한 올바른 철학적 원리들21)을 따라야 한다.

▶ 조직적(체계적) 차원

34. 현상황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철학에 대한 일종의 냉대이다. 공의회는 신학적 사유의 필요성과 함께 그 본질의 중요성도 강조하였다. [사제 양성 교령]은 "할 수 있는 대로 구원의 신비를 온전히 알기 위하여 신학생들은 성 토마스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사유 방법으로 더욱 깊이 신비를 통찰하는 법을 배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22)

35. 1) 조직 신학적 반성(intellectus fidei)은 실증적 방법의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인 연장이며, 어떤 면에서는 실증적 방법의 완성이요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반성은 모든 신학적 과정, 심지어는 실증신학의 과정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반성은 성서의 모든 사실과 개념의 의미를 규명하는 데 존재하거나 기본 주제들을 정식화하는 성서신학 안에 존재하는 이상, 그 자체로는 계시된 사실들을 신학적으로 제대로 이해시키거나 그것들을 유기적이고도 완전 무결하게 체계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36. 2) 더 깊고 과학적인 반성은 철학의 도움을 받아야 계시된 진리에 어느 정도 깊이 들어갈 수 있고, 여러 사실들을 질서 있게 정리하여 성숙한 결론을 규정해 낼 수 있다.23) 이처럼 사변적인 반성에 의존하는 것은 단지 중세 스콜라 철학-신학만의 특징은 아니다. 그것은 더 많이, 더 잘 이해하려는 신학적, 지성적 욕구를 만족시키고 있다.

37. 3) 자연히 조직신학적 반성은 "사유를 위한 사유"를 지양하고 계시의 원천들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어왔으며, 그 같은 사유의 항구한 내적 요인인 하느님의 말씀을 조직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 신학 연구 단계에서 철학은 주인이 아닌, 도구의 역할을 수행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우리는 순전히 지성적인 활동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빛 안으로 인도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는 철학적 원칙에 비추어볼 때 아주 논리적이다. 사실, 게시의 질서와 그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신앙에 대한 끊임없는 참조(reference)이다.

38. 4) 모든 신학적 사유의 대상인 계시는 단지 지성에 공급된 진리들의 집합만이 아닌,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는 통교의 수단이다.24) 그러므로 진정한 신학적 반성은 모두 연구 대상에 대한 열정과 인격적 투신과 함께, 계시된 진리에 대한 영적 매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철학적 반성은, 그것이 올바로 이루어진 것인 이상, 신학의 영적 차원을 억누르기는커녕 이를 전제로 하고 필요로 한다.

39. 5) 이성은 계시에 끊임없이 적응하여야 한다. 이성은 신앙의 의미와, 신앙이 학문 및 인간 문화와 나누는 대화에 대한 근본 문제들에 응답한다. 이성적 반성은 "실용의 신학"이 대신할 수 없는 말씀의 신학을 가능하게 한다. 실용의 신학이란 형이상학적 투신을 배제함으로써, 신학을 순전히 인간의 학문으로 전락시켜 결국 현상 제일주의(phenomenologism)와 실용주의로 돌아가게 한다.

40. 6) 오늘날 신학에 대한 철학의 공헌을 과소 평가하려는 경향과 함께 체계적인 사고에 대한 혐오감이 매우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교의신학과 윤리신학에 있어서 그 견실함과 응집력을 보장하기 위해서 사유의 가치가 꼭 강조되어야 한다. 사실 제대로 이해된 사유는 신학 연구를 메마른 것, 삶과 별개의 것으로 만드신 대신 정말 활기차고 인격적인 진지함을 삶에 부여한다.

41. 7) 오늘날 체계시학 내지 조직시학을 건설하고 발전시키는 일이 무엇보다도 바람직하다. 조직신학은 역사적 연구의 결과로서, 그리고 교회가 제안한 바의 결실로서의 신앙의 진리들, 신앙의 빛 안에서 이루어진 이성적 반성, 그 근본 요소들의 집약적 종합에서 얻어진 결과들에 대한 해석, 현대적 삶과 사고가 요구하는 개인적-집단적 필요에 대한 적응과 응답 등을 자신의 전망 안에 받아들인다.

42. 그렇다면 가톨릭 신학이 하나의 학문으로서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것은 분명 그것이 끊임없이 신앙에 묻기 때문이다. 신학 과정의 학문적 본성은, 그것이 실증신학이건, 아니면 조직신학이건 간에 신앙 감각(sensus fidei)의 지속적인 현존을 배제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를 요구한다. 이 신앙 감각은 신학을 그 내부로부터, 즉 성서 주석, 교부학, 교회법, 역사학, 조직신학, 사목신학 등의 분야에서 인도하고 지도한다. 교도권의 동의 아래 신학을 인도하고, 신학에 그 고유의 동질성과 함께 그 완전한 의미와 확실성을 부여하는 것은 신앙이다.

3) 신학 작업의 몇 가지 조건들

43. 신학과 신학 교육의 현상황은 한편으로는 발전하는 성서적 주제들에 대한 진지한 적응과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 사회학, 심리학의 현대적 흐름에 대한 새로운 관심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학문들로부터 연구, 분석, 실험의 결과만이 아니라 사상의 범주와 기준들까지도 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연 과학과 인문 과학, 그리고 현대의 문제들에 대한 이 같은 개방으로 말미암아,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교도권이라든지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학과 철학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바람에 신앙의 영역을 벗어나 견호한 기초도 없는 신학을 창조할 위험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건전한 신학 작업을 위한 조건들을 아주 분명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교도권, 옛부터 계승되어 온 신학적-철학적 유산, 철학, 과학, 그리고 오늘날 그처럼 관심을 쏟고 있는 이 세상 문제들과 가치들에 관계된 것이다. 이것은 변치 않는 원리들과 변하는 역사적 조건들에 관하여, 다시 한 번 그리스도교 계시의 학문으로서 신학이 차지하고 있는 인식론적 위치를 분명히 규정하는 일이다.

▶ 신학과 교도권

44. 1) 신학이 이해하고자 하고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하는 신앙은 교회의 신앙이요, '교회의 몸'이 고백하는 신앙(sensus fidelium)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맡긴 통상적이거나 비상적인 교도권에 의해 지켜지고, 권위 있게 해석된 신앙이다. 계시와 교도권은 본질적이고도 분리될 수 없는 단일체를 이룬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르면, "성전과 성경과 교회의 교도권은 하느님의 가장 현명하신 계획에 의하여, 어느 하나가 없으면 다른 것이 성립될 수 없고,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또한 각각 고유한 방식으로 상호간에 연관되어 있고 결합되어 있음은 명백한 일이다."25) 그러므로 가톨릭 신학에서 신앙의 교회적 성격은 끊임없이 교도권을 준거로 삼음으로써 구체화되어야 한다.

45. 2) 교도권은 권위이며 동시에 봉사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보다 높은 것이 아니라, 받은 것만을 가르치고, 하느님의 명에 따라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며 성실히 진술하고, 또한 하느님의 계시로 믿어야 한다고 제시된 모든 것을 신앙의 이 단일 위탁물에서 알아내는 것이다."26)

그러므로 교도권을 교회와 별개의 것으로, 교회를 억압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를 위하여 은사적인 기능 내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교도권은 교회 밖에 있는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영감, 교회에 아주 자연스런 어떤 것, 제한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되는 도움, 가톨릭 신학의 불가결의 조건(conditio sine qua non)인 것이다.

46. 3) 교도권은 실로 다음과 같이 생각되어야 한다.

가) 신자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신앙의 규칙을 증거하고 해석하고 보증하는 존재;

나) 다양한 의견과 경험에서 나온 확실한 공동 가치들을 종합하는 적극적인 제안자;

다) 연구 결과, 신학적 반성, 개인과 단체의 영적 체험, 여러 세대에 걸쳐 전통에 의해 이어져 내려온 계시의 진위를 판단하는 힘; 교도권은 이를 보살피고, 권위 있게 해석하며, 신자들에게 이를 제안한다.

47. 교회는 신학자들에게 교도권에 충성할 것을 명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교도권은 합법적인 연구를 예단하는 대신, 신학 연구가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의 진정한 건설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보증할 것이다. 사실 가르칠 의무(munus docendi)는 사도직을 승계하고 있는 교황과의 일치 안에서 주교들에게 속하는 것이다.27) 신학과 함께 모든 종류의 교리 교육과 설교에 있어서 주교의 교도권은 개인의 생각으로 대치될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은 단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객관적 진리들을 탐구하고, 밝히고, 발전시키는 제한된 기능밖에는 할 수 없으며, 교회가 이를 보호하고 선언하는 것이다.

신학자들은 연구하고 비판적으로 반성할 임무가 있다. 그들은 교도권으로부터 그 가르칠 의무(munus docendi: missio canonica docendi)에 동참하도록 초대된다. 그렇지만 교도권은 신학적 사유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계를 판단할 권위를 견지하여야 한다. 특히 신학교의 신학 교수들은 하느님의 적절하고도 좋은 일꾼들, 즉 미래의 신앙의 교사들28)을 준비시키는 사람들이므로 통상적이거나 비상적인 교도권에 대한 크나큰 충성이 요구된다.

▶ 신학과 그리스도교의 신학적-철학적 유산

48. 1) 교회의 교도권과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교 사상의 항상 유효한29) 유산,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언급한 성 토마스의 유산은30) 신학에 있어서 철학의 활용을 위해서뿐 아니라 신학의 내적 역동성의 평가를 위해서도 항상 유념해야 한다. 물론 교의적인 유산 역시 특히 중요한 시기에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생활의 연속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실제로 개인적인 교부들이나 '교회 박사들'의 권위 이상으로 교부들과 교회 박사들의 작품은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의 일부이다. 그들은 이성과 신앙의 종합에 매우 긍정적이고도 역사와 함께 지속되는 가치들을 창출하는 데 공헌하였다.

49. 2) 신학이 진보할 수 있고, 또 진보해야 하며 신학 교육이 안내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그 같은 전통의 부추김과 성 토마스의 가르침의 빛 안에서 확인된다. 신학은 전통의 역동성과 가까이 접함으로써 지나친 개인주의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며, 교회가 개별적으로 지니고 있는 사상의 객관성을 보증받게 된다.

▶ 신학과 철학의 관계

50. 1) 철학과 신학 사이에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하는 복잡한 문제에 관해 우리는 두 가지 전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 신학은 근본적으로 어떤 철학적 체제와도 독립적이다. 신학은 신앙의 실재를 다룬다. 신학이 다루는 여타의 실재들은 단지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신학이 자신의 연구와 반성을 완수하기 위해 여러 철학 이론들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신학의 자유이다. 신학은 상식의 가치, 상식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 상식이 신학의 이성적 발전에 도움이 되는 한 -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신학은 자신을 상식의 하나인 양 생각해서는 안된다.

나) 신학은 철학이 자신에게뿐 아니라 신앙에 대해서 제시하는 비판적 도전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신학은 오늘의 여러 철학들로부터 당하는 오해와 경계심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그런 대결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그들의 제안들과 의견들에 접근해서도 안된다.

51. 2)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문제에 대한 교회의 분명한 태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교회의 태도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가) 교회는 모든 신구 철학에 개방되어 있지만 그리스도교 신앙과 조화될 수 없는 것은 그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 교회가 어떤 철학을 활용한다면 그 근본 주장이 계시와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 철학의 자연적 진리들과 신앙의 초자연적 진리들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있을 수 없다.

52. 3) 분명 교회는 그 주장이 계시와 반대되는 철학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어떤 경우에 교회는 상이한 지역, 상이한 문화와 사고 방식, 다양한 표현 방식에서 나오는 건전한 철학적 다원주의31)를 받아들일 수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동일한 진리에 이를 수 있으며,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시와 관련된 근본적인 진리를 마치 역사적 상대주의라든지, 물질주의적 내재주의 아니면 이상주의적 내재주의 같은 시대 조류에 편승한 철학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그런 것으로 전락시키는 철학적 다원주의를 교회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

그 같은 오류들을 볼 때 우리는, 성 토마스가 과거의 사상가들의 철학적 사상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오늘날 이러한 철학들과 철학적인 사상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오늘날 이러한 철학들과 철학적인 종합을 이루기가 왜 그리고 어려운지를 잘 알게 된다.

53. 4) 이런 이유로 공의회가 사제 양성 교령(16항)에서 사변신학을 언급하면서 성 토마스를 강조한 것은 시의 적절한 것이었다. 그의 철학은 자연적 진리의 제1원리들을 설명하면서 이를 계시와 분명하게 조화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설명과 조화는 어떤 정적인 것이 아니고 독특한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전통적 사상의 유효한 결론들과 현대 사상의 발견들을 계속해서 새롭게 종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32)

▶ 인문 과학과 자연 과학의 공헌

54. 1) 신학은 철학 다음으로 자연 과학, 역사, 인간학 등의 도움을 크게 인정한다. 사실 인간-하느님 관계는 구원 경륜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계시와 신학은 인간을 위해 있다. 그러므로 모든 학문은 각기 이 관계를 규명하는 데 있어 더 나은 인간 이해를 위해 신학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신학은 또한 인간에 관해 계시된 진리의 의미를 더욱 명확히 규정하도록 다른 학문들로부터 자극을 받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신학과 과학의 만남은 신학을 더욱 풍요롭게 하며, 과학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우리 시대에 문화적으로 외톨이가 되지 않도록 신학을 보호한다.

55. 2) 그렇지만 신학과 자연 과학은 서로 확연히 구별되어야 하고 서로 상대방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모든 학문이 신학의 선험적(a priori) 단언에 속할 수 없듯이, 신학 역시 과학적 가설이나 그 결과에 기초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신학적 연구는 과학적 탐구의 영역을 넘는 것, 즉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 문제가 어느 과학에 관련된 주제를 다루게 되었을 때는 (예를 들어 인간과 세상의 기원에 관한 문제라든지, 윤리적 내지 사목적 질서에 관한 문제라면) 신학은 과학이 그 주제에 대해 확실성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56. 3) 신학은 다른 학문들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고서 그것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신학은 인간과 세상에 대해 더 완전히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과학자들로 하여금 그 삶과 생각을 신적 진리의 빛으로 향하도록 항상 일깨워주는 가치 체계상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지혜의 공로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르면 "인간이 발견하는 온갖 새로운 것들을 더욱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현대는 과거의 그 어느 시대보다도 이런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33)

57. 4) 학문들의 신학에 대한 기여는 일반적으로(그러나 필연적으로는 아님) 철학을 통해 이루어진다. 철학은 다른 과제들과 함께 과학이 제기하는 복잡한 문제들뿐 아니라, 인간 이성과 그것이 지닌 계시와의 연관성에 관하여 지속적인 가치를 지닌 여러 대안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평가하고 걸러내야 할 과제를 맡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신학은 과학의 참된 공헌을 더 잘 평가할 수 있다.

58. 5) 방법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신학은 그 연역적-귀납적 방법에 충실하면서도, 인문고학과 자연과학에 널리 퍼진 과학 정신을 무시할 수 없다. 신학은 그 고유의 작업에 있어서도 가능한 한 학문의 공통적 요소인 실증적 연구, 자료 선택, 그리고 사실 확인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34) 그러나 그 같은 방법을 평가하고 사용하기 위해서 신학은 자신의 인식론적 위치를 망각해서는 안되며, 과정의 수준에서도 다른 학문과의 혼동을 피해야 한다.

▶ 신학을 지상적 실재에 적응하는 일과 인간 가치들을 통합하는 일

59. 1) 신학의 임무 가운데 하나가 사제 양성 교령(16항)에 언급되어 있다. 즉 신학자들이 우리 시대의 변천하는 조건에 영원한 진리를 적응함에 있어 신학적 방법을 도입하는 일이다. 그래야 학생들은 "계시의 빛으로 인생 문제의 해결을 찾고, 영원한 계시 진리를 변천하는 인간 조건에 적응시키며, 알맞은 방법으로 그것을 현대인들에게 전해주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다." 나아가 공의회는 사목 헌장에서 자주, 신학자들이 현대 문화와 과학의 문제들에 좀더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며, 그 사고 방식을 새롭게 하여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조화"(62항)에 기여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60. 2) 그것은 마치 신학자들이 신학적-사목적 인식론에 새로운 장을 쓰는 것과 같다. 물론 그들은 - 방법론적으로 - 지나간 생각이나 문제들 대신 오늘의 사실들과 질문으로 새장을 써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복잡한 문화적, 사회적 실재라든지 신학과 교회에 대한 태도 변화는 이 같은 과업 수행을 어렵게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복음화를 위한 투신이며, 신학자들은 이를 외면할 수 없다.

61. 3) 이러한 신학적 노력은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과제를 안겨준다.

가) 지상적인 것들 안에서 발견되는 가치와 인간적 가치들의 발전을 그리스도교 교리와 윤리에 통합시키는 일;35)

나) 지상적 실재와 인간적 가치들을 - 그 동질성을 변질시키지 않고서 - 하느님 나라와의 관계 안에서 밝히는 일;

다) 그러한 가치들을 - 그 자연적 차원에서 - 증진시키고 발휘시키는 일, 만일 그 가치들이 초자연적 실재와 가치를 향하게 되면 더욱 좋은 것으로 변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36)

라) 지상적 가치 내지 실재를 세속적 내지 세상적 가치 전도(가치의 과대 평가)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그 동질성을 보전시키는 일, 그 같은 가치의 평가는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교 휴머니즘, 또는 완벽한 휴머니즘"37)에 속하며, "은총은 자연을 앞서며 자연을 완성시킨다"38)는 원칙에 따른다.

62. 4) 이러한 분야에서의 신학 작업은, 신학이 하느님, 또는 신적인 것들에 대한 학문임을 포기하고 순전히 인간학, 또는 인간 중심의 학문이 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학은 이로써 형이상학적 차원, 정신 세계적 차원, 윤리적 차원에서 인간-하느님의 관계를 변질시키는 일 없이 더욱 현대화되어, 인간의 문제에 더욱 알맞는 학문이 되게 한다. 인간-하느님 관계는 신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항상 하느님과의 확고한 관계 설정 안에서만 해답이 주어진다.

▶ 주석

1. 바오로 6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마지막 회기 때 한 강론 Hodie concilium(1965. 12. 7.): AAS 58(1966), 55 면 이하; 국제 토미즘 학회에서 한 훈화, L'homme existe-t-il?(1970.9.17.) : AAS 63(1971), 102-103면 참조.

2. 바오로 6세, 1970년 전세계 주교들에게 보낸 사도적 권고 Quinque Iiam anni(공의회 이후 5년): AAS 63(1971), 102-103면.

3. 일치 교령, 11항 참조.

4.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신앙의 복종'(로마 16,26; 1,5; 2고린 10,5-6 참조)을 드러내야 한다. 이로써 인간은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지성과 의지의 완전한 순종'을 드러내고 하느님께서 주신 계시에 자의로 찬동함으로써 자기를 온전히 하느님께 자유로 의탁하는 것이다>(계시 헌장, 5항).

5. 계시 헌장, 8항 참조.

6. 사목 헌장, 4항 참조.

7. 신학의 이러한 측면은 입문 과정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야 한다. "이 같은 입문 과정에서 구원의 신비를 적절히 제시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교회 학문의 의의와 구조와 그 사목적 목표를 이해하는 동시에, 전생애의 기초와 활력을 신앙에 두도록 돕고, 인격적 헌시과 기쁜 마음으로 성소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화시켜 주어야 하겠다"(사제 양성 교령, 14항)

8. 사제 양성 교령, 18항; 사제 직무 교령, 19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82-85항 참조.

9. 사목 헌장, 46항 이하 참조.

10. 비그리스도교 선언; 선교 교룡, 11.22항 참조.

11. 일치 교령, 11항; 그리스도교 일치사무국, 교회 일치 운동에 관한 지침(Ecumenical Directory), 제2부:" 고등 교육 분야에서 다룰 교회 일치 문제들: AAS 62(1970), 705면 참조.

12. 사목 헌장, 46항 이하.

13. 상동, 63항 이하; 요한 23세, 회칙 [어머니와 교사]; [지상의 평화]; 바오로 6세, 회칙 [민족들의 발전]; 사도적 서한, [팔십 주년].

14.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가톨릭 신아에 과한 헌장, 제4장: DS 3016 참조.

15. 계시헌장, 10항 참조.

16. 교황청 성서위원회, 복음서의 역사적 진리에 관한 훈령, Sancta Mater(1964.4.21.): AAS 56(1964), 712면 이하 참조.

17. 요한 23게, 공의회 개막 연설 Gaudet Mater Ecclesia(1962.10.11.): AAS 54(1962), 792면.

18. 바오로 6세, 사도적 권고 Petrum et Paulum(1967.2.22.)" AAS 59(1967), 198면 참조.

19. 계시 헌장, 10항 참조.

20. 상동, 12항 참조.

21. 가톨릭 교육성성, 신학교의 철학 교육(1972.1.20.), 제Ⅱ부, 3나): "실증과학(주석학과 역사학 등)의 방법들 자체가 함축적으로는 전체들을 활용하고 있다. 이것들은 하느님의 계시 앞에서 절대적인 비판 기능을 배제한 철학적 선택의 결과들이다. 이런 방식은 오늘날 루돌프 볼트만의 주석 방법에 있어서 특히 필수적이다."

22. 사제 양성 교령, 16항.

23. 레오 13세, 회칙 Aeterni Patris(1879.8.4.): DS 3137 참조.

24. 계시 헌장, 2-6항 참조.

25. 계시 헌장, 10항.

26. 상동, 10항.

27. 교회 헌장, 25항; 바오로 6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학에 관한 국제 대회에서 한 훈화 Libentissimo sane(1966.9.1.): AAS 58(1966), 890면 이하.

28. 사제 직무 교령, 4항 참조.

29. 사제 양성 교령, 15항 참조.

30. 상동, 16항; 그리스도교 교육 선언, 10항 참조.

31. 가톨릭 교육성성, 신학교의 철학 교육(1972.1.20.), 제Ⅲ부, 2항 참조.

32. 바오로 6세, 성 토마스 서거 700주년에 즈음한 서한 lumen ecclesiae(1974.11.20.), 17항: AAS 66(1974), 690-691; 바오로 6세, 제6차 국제 토미즘 학회에서 한 연설, Nous sommes(1965.9.10.): AAS 57(1965), 790면 이하 참조.

33. 사목 헌장, 15항.

34. 인문 과학의 활용에 관해서는 바오로 6세, 사도적 서한 [팔십주년], 38-41항을 참조하라. 각주 3번에서 소개한 사도적 권고 Quinque iam anni도 참조.

35. 바오로 6세, 회칙 Ecclesiam 녀므: AAS 56(1964), 627-628면 참조.

36. 사목 헌장, 35. 36. 41-43항 참조.

37. 바오로 6세, 회칙 [민족들의 발전], 16. 20. 42항.

38. 성 토마스, [신학대전], 1.q.1.a.8 ad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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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학 교육을 위한 지침들

1) 일반적 지침

63. 오늘날 신학교에서의 신학 내지 신학 교육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 있다. 그 가운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단일성 내지 통일성이 상대적으로 결여되어 있으면서 경향, 주장, 관심의 다양성이 흘러넘친다는 사실이다. 즉 일부 연구 분야나 연구 자체, 주체와 신학 개념, 철학이나 다른 학문과 맺고 있는 신학의 관계 등이 너무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으며,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종합을 이루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신학적 대화의 사려 깊은 상대를 발견하고, 나름대로 적응하려는 경향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좋아할 수 있는 이야기거리를 발견하려는 올바른 관심이, 그 한계를 벗어나면 전통과의 단절이나 신학의 왜곡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는 교육에 대한 방법론적 요구 조건들이 생기게 되며, 이 요구 조건들은 신학의 본성과 기능에 내포되어 있다.

▶ 다양성과 일치

64. 1) 오늘날 그처럼 일반적인 다양성은 신앙의 신학적 표현에 있어서도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교회의 처음 몇 세기 동안 풍미하던 동.서방의 신학적 조류에서 우리는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같은 경향은 다양한 신학 학파에서 더욱 자라고 드러났으며, 각 학파는 서로 다른 조직적 원리와 근본적 관심사로 분화되었다. 이 "학파들"은 각각 그리스도교 신비에 대한 고유한 접근 방식을 제시하고, 계시를 해석하는 하나의 시도가 되었다. 그 어떤 학파도 다른 학파와 같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모든 학파를 인정하는 교회의 수준에서 이해하려고 애썼던 계시된 진리의 차원에서 볼 때는 하나라고 볼 수 있다.

65. 2) 그렇지만 오늘날의 신학적 다원주의는 과거의 그것과 다르다. 과거에는 근본적이라 할만큼 그 범위가 넓고 깊었다. 양적인 점에서 볼 때 이것은 각 학파가 쌓아올린 거대한 양의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신학은 이런 가르침을 숙고하고 조직 과정의 복합적 명료성으로 이를 활용한다. 종합 정리하는 관점에서 보거나 신학의 정신에 비추어볼 때 오늘날의 다원주의는 수용하는 방법의 상이성, 뒤따르는 철학의 다양성, 사용하는 용어의 차이, 그 기본적 관점의 차이에 기인한다. 이러한 특징들과 여타의 특징들은,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다원주의가 이전의 다원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66. 3) 과거에 교회는 신학의 다원주의를 방치했을 뿐 아니라 이를 조장했다. 그것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제시된 주제들과 문제들에 대해 새롭고 더 나은 설명을 제공하려는 시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는 변하지 않았다. 교회는 여전히 복음 선포적이고, 사목적이고, 선교적인 이유 때문에 다원주의를 격려하고 옹호한다. 그러한 다원주의는 이미 분명하게 잘 규명된 신앙의 교의를 더 풍요하게 하며, 신앙의 진리를 항상 참조하기 때문이다.1)

그러나 교회는, 굳이 신앙과 거리가 먼 철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신학자들 사이의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그런 임의적이고 혼란스런 다원주의를 개탄한다. 그 같은 상황은 언어와 개념의 혼란뿐 아니라 과거의 신학적 전통과의 단절을 가져올 뿐이다. 그것은 미래 사제의 양성에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신학 교육에서 용납되어서는 안된다.2)

67. 5) 학생들의 신학 교육에 있어 다원주의에 관련되어서 어느 수준에서도 따라야 할 원칙은 다음과 같다.

가) 신앙의 단일성은 보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누구나 지켜야 할 신앙의 문제는 무엇이고, 신앙이 여러 주장에서 선택할 자유를 허용하는 수준은 무엇인지 명확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나) 신학적 주장 내지 의견의 영역에서는 교회의 일반 교리와 신자들의 신앙심(sensus fidelium)이 존중되어야 한다. 신학에는 분명하고 일반적이며, 양보할 수 없고 모든 가톨릭 교의 교육의 기초가 되는 핵심 명제들이 있다.

이것들은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단지 그 역사적, 신학적 맥락 안에서 더 분명하게 하고, 더 깊이 연구하며, 더 잘 설명해야 할뿐이다.

다) 다양한 신학 체계에서 가치의 차등성을 유념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것들이 제한된 관심과 계시 진리의 어느 특수 측면에만 한정된 것인지, 아니면 그리스도교 신비 전체를 포용하여 체계화하고 통합하는 것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그 체계가 유효하다고 판단되려면, 실재의 본질적인 측면이 어느 하나도 무시되어서는 안되고, 유기적이고 전체적인 종합 안에서 새로운 관점들을 소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토마스적 종합은 그 가치를 온전히 보유한다.

이러한 원칙과 기준을 따른다면 신학 교사는 현대 다원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종합에 대한 전망

69. 1) 오늘의 신학은 새로운 체계와 정식을 모색하는 면에서 임시적이고 발전적인 특색을 띠고 있다. 새로운 종합을 모색하는 것은 항상, 건축물의 일부만 완성된 거대한 건설 현장을 보는 것 같다. 거기에는 건축에 쓰일 자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신학 교육은 많은 경우에 그 일체성과 짜임새를 상실하고, 그 대신 불완전한 단편적인 면을 보여줌으로써 신학 지식이 "원자로 분해되었다"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질서와 완성도가 결여되면 신앙의 중심 진리가 쉽게 시야에서 벗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런 분위기에서 다양한 "신학들"이 유행한다 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런 신학들은 대부분 일방적이고 부분적이며 가끔은 근거 없는 것이기도 하다.

70. 2) 이런 어려움들은 신학자들이 다루어야 할 전혀 새로운 문제들과 그 방대한 학문적 관심, 그리고 주장의 일반적 분위기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신학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 기초 과정에서조차도 - 이에 무관심할 수 없다. 일체성과 종합이라는 이상은, 그것이 아무리 어렵다 할지라도, 교수와 학생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그들 연구의 능률과, 활력과 실제적인 효용성에 달려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종합을 내포한다.

가) 여러 교리의 종합

나) 여러 신학 연구, 예를 들어 조직 신학, 주석학 등의 다양한 수준의 종합.

다) 사목 활동 등에 관련된 여러 학문들과 종교 체험들의 종합.

71. 3)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수단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가) 신학 공부 초기에 "우선 철학과신학을 더욱 적절히 조화시켜, 학생들에게 그리스도의 신비를 점차로 명백히 이해시키는 단일 목적에 철학과신학이 함께 이바지할 수 있게 되어야 하겠다. 그리스도의 신비야말로 인류 역사 전체에 흐르고 있어, 교회에 끊임없는 영향을 미치며 특히 사제 직무를 통하여 작용하기 때문이다."3) 특별 입문 과정에서 "구원의 신비를 적절히 제시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교회 학문의 의의와 질서와 그 사목적 목표를 통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4)

나) 세부적이고 상호 연결된 학습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래야 신학 과정 전체의 통일성과 짜임새가 보장될 것이며, 공부해야 할 내용이 완벽하게 다루어지고 각 과목 역시 단단한 기초 위에 유기적인 연관을 갖게 될 것이다.5)

다) 교수들의 개인적인 헌신 역시 필수적이다. 그들은 일체성과 종합이라는 이상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이미 지니고 있거나 부분적으로 참조할 수 있는 개체적인 부분들과 자료들을 하나의 유기적인 단일체로 통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

라) 이로써 교수의 강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해진다. 강의는 충분해야 하고 잘 준비되어야 한다. 그룹으로 또는 "세미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학습에서는 학생들이 "종합"을 더 잘 이해하고 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학습 그룹과 세미나가 강의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것들의 완전하고도 종합적인 전망을 학생들에게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6)

마) 완전한 교육과 바람직한 신학적 종합을 위해서는 기본 과목들과 꼭 배워야 할 신앙의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주제들에 대한 확정된 목록이 작성될 필요가 있다. 기초 과정에서의 자유 선택의 원칙은 보조적이고 특수한 학습 자료에 국한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7)

바) 더욱 완전한 종합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노력은 학습 계획과 교수진의 효율적인 일치로 이루어진다. 과목 사이의 유기적인 연관과 협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특히 계획을 수립하고 여러 과업들을 분담하는 데 있어서 그 같은 연결과 협조가 어느 정도 제도화되어야 한다.8)

사) 학교의 책임자(교장 또는 학장)의 역할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 능통할 뿐 아니라, 정말 유능해야 한다.9)

그는 교사들 안에 완전성과 종합에 대한 관심이 항상 살아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는 교사들과 함께 자신도 단편적인 가르침에 매이거나, 오늘의 몇 가지 문제만을 극대화하거나, 불완전한 현대 신학(예를 들어 발전신학, 해방신학 등)에 한정되는 일이 없도록 힘써야 한다.

▶ 신학 지식의 생명력과 그 전수

72. 1) 아마도 오늘날처럼 신학이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전해야 할 자신의 의무를 자각하고 있는 때도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자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교황 요한 23세는 공의회에서 이렇게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이 확실하고도 불변하는 교리는 성실히 따라야 할 뿐 아니라, 깊이 연구되고 널리 전해져야 한다."10) 학생들 역시 나름대로 신학 교육이 살아 있고 영적으로 효과 있으며, 사목적이고 사회적인 것이 되게 해야 한다.

73. 2) 신학은 그 본성상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을 기도와 관상에로 이끌어, 하느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이루게 한다. 신앙 생활에서 태어나는 영성은 신학의 내적 차원이다. 영성은 신학에 초자연적인 맛과 멋을 제공한다. 더 깊은 영성 생활과 더 알맞는 사목적 준비를 위해서는 더 깊은 학문적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수덕 생활과 사목 생활에서의 새로운 적응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

74.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르면, 기도와 관상에 관련된 신학의 생명은, 구세사 안에서 드러나고 작용하는 하느님의 말씀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구세사, 즉 구원의 역사는 그 생명과 종합의 핵심을 그리스도의 신비에서 발견한다.11) 신앙의 진리들은 언제나 살아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깊은 단일성을 보며, 이를 교부들과 전례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만난다. 그러므로 성서와 교회의 교부들, 그리고 전례에 더욱 친숙해지는 것은 신학 교육의 넘치는 활력을 발견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를 위해서 신학 교육에 일체성과 유기적 연관성을 부여하는 일에 관해 앞에서 지적한 모든 노력과 수단은 이 또 다른 결실을 맺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75. 4) 영성은 사목적 적응의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실제로 생활과의 더욱 큰 접촉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전망에서 교수들은 사목 현장, 영혼을 직접 돌보고 있는 사제들, 신자들, 특히 신앙을 가진 전문인들과 효과적인 접촉을 계속하여야 한다.12) 이렇게 함으로서 교사들은, 일상 생활과 학문적 발전이 신앙을 건설하려는데서 빚어지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더 잘 의식하게 된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현대의 특성을 바로 이해하고 현대인과의 대화를 준비할 수 있도록"13) 교육시켜야 한다.

76. 5) 신학이 이 시대의 사람들과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그들에게 제시할 진리와 관련하여 먼저 그들의 입장과 이해 수준을 분석하여야 한다.14) 따라서 진리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forma mentis)에 따라 정식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신앙은, 현대 세계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 정치, 문화적 문제에 관해서도 사람들에게 참된 의미와 보람을 줄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도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초월성이 상실되거나, 신학이 일개 신학자가 만들어낸 철학, 또는 종교 사회학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신학은 신학의 고전적 전통을 포기하거나 신학의 참된 대상인 하느님을 소홀히 할 수 없다.

77. 6)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임무를 수행하자면 신학자들은 현대 해석학에서도 제기되어 있는 언어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신학이 현대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현대인과 대화하려면, 현대 세계의 언어에 민감해야 한다.15) 바오로 6세는 이 점을 시의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교리 전체의 완전성을 -유행을 따르는 일 없이-새 언어 형태(the forms of new language)로 재확인하기 위해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 이것은 계시와 교회의 그르침 없는 교도권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 때문이며, 신자들의 신앙심(sensus fidelium)과 사랑 안에서의 건설을 존중하기 때문이다."16)

2) 여러 신학 과목에 대한 특별 지침

78. 지금까지는 신학 교육에 대한 일반적인 본질과 특별한 중요성에 대해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하였다. 이제부터는 오늘날 학문적 관심의 중심이 되어 있고, 특별한 문제와 어려움에 대처하도록 요청 받고 있는 신학 과목들에 대하여 몇 가지 특별한 방법론적 지침을 제시하고자 한다.

현재까지 계시의 원천과 생활에 더 가까이 접촉하기 위하여, 신학의 특수한 본성을 보전하고 그 특별한 방법론적 과정을 존중하며, 철학적 반성과 자연 과학 및 인문 과학을 올바로 사용하고 더 큰 내적 일치를 모색하며, 신학 지식의 활력과 실제적인 효용성을 확인하는 데 많은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 모든 것은 주석학, 교의신학, 윤리신학, 교부학, 사목신학, 기초신학, 등 앞으로 다룰 신학 과목에서 실제로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결부될 때 더 강력하고 더 구체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 모든 과목들은-그것들이 신앙의 원천이나 그리스도교 신비의 핵심, 또는 실생활과의 직접적인 접촉 때문에-오늘날 특히 공의회의 지침과 일반적인 현상황에 따라 문제가 되고 있다.

▶ 성서

79. 1) 신학 교육에서 고려해야 할 첫 번째 사실은 성서가 모든 신학의 출발점이요, 영속적인 기초이며 생명을 주는 원리는 점이다.17)

그러므로 성서학 교수들은 그 가르침에 있어 계속 발전하여야 하며, 그들이 담당하고 있는 과목이 요구하는 만큼 높은 실력과 학문적 완벽을 기해야 한다. 자신들의 과업에 성실하기 위해서 그들은 성서 본문의 차원에서, 본문이 담고 있는 사실들의 차원에서, 그리고 본문이 알리고 해석하는 전승의 차원에서 일해야 할 것이다. 이 과목의 교수들은 본문적, 문학적, 역사적 분석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교수들은 또한 학생들이 구원의 신비의 단일성과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을 항상 그 영혼 깊이에서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성서는 교회에 의해 전승되어왔고, 교회 안에서 태어났으며, 따라서 교회 전승 안에서 읽고 이해해야 한다.18)

80. 2) 성서가 차지하는 중추 역할은 자신과 신학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의 본질을 규정하는 일이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여러 신학 과목들은 (이에 대한 증거 자료로서) 그 개개의 봉사에 대해 일방적으로 고려될 것이 아니라, 신학 전체가 거룩한 본문들, 다시 말해서 그 안에 포함된 교의적, 윤리적 진리를 더 바르게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서 교육은 기초적인 내용들을 모두 다룬 다음, 그리스도교 신비의 통일된 전망을 제시하는 "성서신학"에서 그 절정에 도달해야 한다.

81. 3) 성서를 정말 제대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성서신학은 그 자체의 주제가 있어야 하며, 이 주제는 특수한 방법론과 어떤 자율성, 즉 성서 교육의 특성과 순수성에 대한 철저한 투신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같은 상대적 자율성은 조직신학에 대한 독립이나 대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불행하게도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실증신학과 조직신학 사이에는 -각각 고유의 방법론을 견지하면서-효과적이고 지속적인 협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학에는 따로 떨어진 두 분야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변적인 부분이 이미 실증적인 부분에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실증적인 것은 "당위성으로 보아"(in fieri) 사변적이고, 사변적인 것은 실증적인 것의 완성이다.

82. 4)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에 관련된 교사들 사이에 효율적인 협력과 연대가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주석학, 기초신학, 교의신학, 윤리신학 등이 서로 임무를 분담하면서도 교과 내용에 더 완전한 조화와 조직을 갖추어야 한다.

성서학 교수에게는 다른 신학 과목의 문제들에 대해 이해하는 개방적 자세가 요구된다. 그는 신앙의 유추(analogia fidei)19)라는 원칙 안에서 표현되는 신앙의 내적 일치와 완전성이 요구하는 바를 명심하여야 한다.

성서학에 부여된 중요성은 정당한 것이지만 - 다른 분야의 신학자들에 대한 성서 학자들의 책임도, 성서 학자들에 대한 다른 신학자들의 책임도 증가하였다. - 그렇다고 다른 신학에 대해 독립적인 자세나 우월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다. 성서 학자들은 무엇보다도 하느님 말씀의 종으로서, 특히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에는 아주 신중히 다루어야 할 그 많은 복잡한 주석상의 문제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래 사제들의 교리 교육과 설교에 끼칠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20)

83. 5) 무엇보다도 성서 교수는 자신의 가르침이 교의신학, 윤리신학, 기초신학, 그ㅜ리고 미래 사제들의 사목 활동과 영성 생활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다음 사항을 명심할 것이다.

가) 조직신학에 있어서 ; 성서 주석은 진정한 "성서신학" 쪽으로 나가야 한다.

나) 기초신학에 있어서; 성서학은 과학적 "적응"(aggiornamento)이 필요하다. 신앙에 봉사할 과학적 지식들을 활용하는 여러 건설적 사고 방식과 연대해야 한다.

다) 사목 활동에 있어서; 가능한 한 학생들이 제대로 해석된 성서 본문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성서의 비젼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더 심각한 문제들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21)

라) 영성 생활에 있어서; 학생들이 성서를 존중하고 사랑하도록22) 고무해야 하며, 성서로부터 전례라든지 사제적 신심과 수덕 생활을 위한 생명력을 기르도록 하여야 한다.

84. 6) 성서적 주제들로 시작되는 가르침에 올바른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성서 교수는 그 주제들을 하나의 신학적-교회적 종합 안에 정리하여야 한다. 이것은 교회가 계시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모든 것을 종합한 가톨릭 신앙 고백(Profession of the Catholic Faith)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기본 신앙 개조들과 연관을 맺게 된다.

▶ 교부학

85. 1) 두 과목 사이에 객관적인 차이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성서에 대해 말한 것을 그대로 교부학에 적응할 수 없음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교부학에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사항은 교부학이나 성서학에 똑같이 필요하다.

가) 역사적 연구 방법의 특성을 살려야 한다.

나) 신학 교육의 일치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 일치가 부분적이고도 단계적인 종합으로 이룩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86. 2) 교부학 교육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는 그 역사적 실재에서 교부들 시대의 신학과 그리스도인 생활의 윤곽을 그려내는 데 있다. 그 밖의 과제를 맡길 경우 그 역사적 실재를 단편적인 것이 되게 하거나 전혀 쓸모 없는 것이 되게 할 위험이 있다.

87. 3) 나아가 교부학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신학의 영속성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것은 기본적인 자료들과 그 상대적 본성에 대한 반응이며, 그 특수한 측면들과 고유한 적응에서 나온 결과이다. 그러므로써 교부학은 신학을 도와, 보편적인 의미에서 교부들의 일치된 의견에 따라 해석되고 보존되어 온 신앙 안에 머물러 있게 한다.

88. 4)그러므로 교부학 교육과 교회사 교육 사이의 유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여러 시대에 걸쳐 이루어지는 교회의 문제들, 사건들, 경험들, 교의적, 영성적, 사목적, 사회적 발전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23)

▶ 교의신학

89.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의신학에 대해 제시한 방법론은 다음 다서 단계로 되어 있다. 성서, 교부들의 전승, 역사, 사변, 그리고 현대의 문제에 적응하여 이루어지는 전례생활과 교회 생활이 그것이다.24) 이 방법론은 계시된 진리에 기초를 둔 가르침, 구원의 역사와 결합된 가르침, 신앙의 완전한 전망 안에 자리잡은 온전한 가르침, 전례 및 교회 생활과의 접촉을 통한 생생한 가르침, 사목적 요구에 개방되어 있는 가르침, 우리 시대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이는 가르침을 보장한다.

90. 2) 이 같은 방법론의 가능성을 실제화하고 그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조건은 신앙의 영속성이라는 원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미래의 세대들이 신앙을 더 깊이 이해하고 세상의 요구에 더 잘 적응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 신앙의 영속성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

가) 계시를 항상 참조해야 한다. 계시는 신앙의 소진되지 않는 객관적 원리이며, 교의와 기타 그리스도인 생활의 다양한 표현들, 특히 신학을 낳기 때문이다.

나) 신앙의 지속적 요구 사항들을 고정시키고 정의하기 위한 교도권의 개입.

다) 신학의 필요성과 그 상대적 본성, 신학은 신앙의 깊이를 발견하고, 또 이를 깊게 한다.

라) 신앙의 현대적 이해도 필수적이다. 새로운 문화적 상황과 신학의 특수한 과제에 비추어보면서 총체적인 신앙을 받아 이를 고백해야 한다.

91. 3) 이 같은 방법론을 제대로 적용시키려면 교의신학과 성서학 사이에 좋은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은 이미 언급하였다.

성서와 직접 접촉한다면 주제가 더욱 풍요로워지고, 가르침이 더욱 생기차고 창의적이겠지만, 한편 교수와 학 생 모두에게 더 많은 일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92. 4) 앞에서 말한 내용으로부터 교의신학 교사에 대한 특수 임무가 주어진다. 특히 성서적, 역사적-교부학적 관점에 따라 가르치는 실증적 부분을 맡은 교사에게 그러하다.

가) 성서적 관점에서 볼 때; 성서가 한 주제를 지원하는 증거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자체가 모든 신학 교육의 출발점이 되고 영감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교의신학 교사는 명심하여야 한다.

나) 역사적-교부학적 관점에서 볼 때; 교의신학은 그리스도교 전통의 위대한 스승들을 살펴보고 연구함으로써 기대하던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하며, 신학의 역사적 부분을 활용만 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반성과 체계적인 조직을 안내인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93. 5) 신학의 실증적인 분야와 사변적인 분야 사이에 교사들의 효과적인 협력과, 학과 사이의 긴밀한 유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다음 두 가지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가) 우선하는 역사적 방법의 실증적 부분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신학 교육에서 차지하는 사변적 발전의 비중을 감소시킬 수 없다.

나) 역사적 방법의 순수성은 가르치는 주제들의 본성을 고려하여 - 어떤 경우에는 실증적으로(예를 들면 참회), 다른 경우에는 사변적으로(예를 들면 은총과 자유 또는 그리스도께 대한 내적 깨달음) -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허용한다.

94. 6) 교의 교육에 있어서 그 방법론의 본질적인 온전성뿐 아니라 학과목의 재료적인 온전성도 보전되어야 한다. 즉 신앙의 진리를 모두 온전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거기에는 분명 선택의 자유가 허용된다. 이를 위해서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이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실제로 "가톨릭 교의의 여러 진리들은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기초와의 관계에 있어 서로 다르므로, 그 진리들 사이에 말하자면 위계 질서가 있다."25) 그렇지만 신학교의 다른 모든 과목들에서처럼 교의신학에서도 분명 모든 가설과 설익은 전문화는 배제되어야 한다.

▶ 윤리신학

95. 1)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기대한 윤리신학의 쇄신26)은, 교회가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는 세계에서 오늘의 인간을 더 잘 이해하고 그 요구에 응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부이다. 그것은 복음이라는 누룩을 "오늘의 지상에 나타나는 사상과 표현, 문화와 관습, 그리고 온갖 인간적 성향 안에"27) 집어넣는 문제인 것이다.

윤리신학 교육은 교회의 이러한 임무 수행에 가장 효과적으로 이바지한다. 그러므로 윤리신학은 그 같은 필요성에 따라 쇄신되어야 하고 더 완벽해져야 한다.

96. 2) 윤리신학이 과거에 보여주던 일방적인 태도와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식론적 위치(epistemological status)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 같은 결함은 대부분 율법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계시의 원천으로부터 분리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신학은, 항상 성서 및 (신앙을 통해 받고, 교회의 교도권에 의해 해석된) 성전과의 긴밀한 접촉과, (이성으로 알게 된) 자연법에 조회함으로써 그 자신의 존재 방식을 설정해야 한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비로소 윤리신학의 새로운 모습, 새로운 평가가 가능하며, 그 영성적, 사목적, "정치적" 적용이 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되어야 진정한 신학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치 확립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하며, 그래야 신학이 소위 말하는 "정행"(正行: orthopraxis)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응할 수 있다.

97. 3) 이러한 목적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윤리신학과 교의 신학 사이의 관계를 생생하게 의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윤리적 문제들이, 모든 신학에 유효한 기본적, 인식론적, 방법론적 규율을 따르는 가운데, 바르고 적절한 신학 과목으로 취급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성 토마스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는 다른 위대한 스승들과 마찬가지로 윤리신학을 교의신학과 분리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윤리신학을, 하느님께서 당신 모상대로 창조하시고 은총으로 구속하신 인간이 그 신적 소명에 따라 교회 안에서 역사적으로 실현되는 구원 경륜의 맥락 안에서 자신을 완전히 실현하는 과정의 일부로 보고 이를 조직신학의 통일된 체계 안에 넣었다.

98. 4) 윤리신학과 교의신학 사이의 연계로써 신학이라는 특수 과정을 도덕 생활 안에 적용되어야 한다. 이는 실증적인 면과 사변적인 두 측면을 제대로 발전시키고, 계시를 폭넓게 활용하며, 교회의 정신과 마음에 일치하여 모든 논의를 발전시켜야 가능하다.

윤리신학 교육에 있어서도, 교의신학에서 요구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용을 완전히 다룰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99. 5) 윤리신학은 다른 신학 과목들보다 더 자연 과학과 인문 과학, 그리고 인간 경험의 연구 결과들을 유념해야 한다. 물론 인문 과학이나 인간 경험이 윤리성을 발견하거나 절대적으로 창안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28) 그렇지만 그 결과들은 현실과 인간 행동에 빛을 던져주고, 이성과 신앙의 확실한 원리들 사이에 존재하는 교의의 탐구, 개선, 그리고 그 깊은 이해를 촉진하며, 삶의 구체적인 사실에 이를 적용하도록 고무한다.

윤리신학과 인문 과학 내지 자연 과학 사이의 중재는 깊은 철학적 반성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의 문제를, 그 본성, 그 운명, 하느님께 향한 그 발전 전체에 비추어 생각하는 그리스도교 전통은 그 중재를 고무하여 왔다.

100. 6)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성장 과정과 구원의 공동체 내부로부터 생겨나는 신적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촉구하라 역동적인 측면을 윤리신학에 도입하는 일 또한 필수적이다. 그래야 윤리신학은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을 완전히 실현하고, 그리스도교 수덕신비신학에서 말하는 영적 성장의 법들을 발전시키라는 요구에 응하여 내적-영적 차원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윤리신학은 성서신학 및 교의신학과 바로 만나야 하고, 미래 사제들이 영혼들을 지도하고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가운데 수행해야 할 사목적 과제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101. 7) 특히 사제 직무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에 대한 윤리신학 교육은 사목신학과의 긴밀한 유대와 접촉이 요구된다. 사목신학은 생활 체험에서 나오는 문제들을 연구하도록 고무시키며,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신학적으로도 근거 있고 발전된 행동 계획을 제공할 것이다. "복음과 인간 경험의 빛을 받아"29)- 바로 이것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말하는 쇄신의 길이다.

▶ 사목신학

102. 1) 모든 신학 과목의 일부로서30), 그리고 사목 활동의 순수한 요구를 해석하고 촉진하며, 신앙의 요구에 따라 계시의 빛을 받아 이를 완수케 하는 학문으로서,31) 사목신학 교육에 대한 관심도 있어야 하겠다.

103. 2) 사목신학은 실재, 즉 사목의 문제들과 여러 시대, 특히 이 시대에 제시된 해결책들을 만나게 한다. 그러나 사목신학은 나머지 신학에 연계되어 있고, 특히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여타의 신학에 의존하고 있다.

가) 사목신학은 다른 신학 과목(특히 윤리신학) 앞에 순전히 경험적으로나 자연적으로는 풀 길 없는 문제, 즉 신앙의 빛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제기함으로써 다른 신학 과목에 호소하며 자극한다.

나) 사목신학은 실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의견이 가능하다면 선택 가능성의 폭을 존중하면서, 신학적 해답의 실천적 적용을 연구한다.

104. 3) 이런 기준에 따라 사목신학 교육은 올바른 지식을 제공해 줄 수 있으며, 이편에 있느 소심과 좌절, 그리고 저편에 있는 현명치 못하고 경솔한 행동들 -건전한 신학이 그 결함들을 보여줄 것이다-을 피해 바른 사목 활동을 준비시킬 수 있다.

105. 4) 다른 신학의 한 측면이라는 저에서, 그리고 사목 활동에 관한 것들을 발전시킨 것이라는 면에서 사목신학에 조화와 일체감과 공식성을 부여하는 것은 기초 과정의 신학 교수 모두에게 달려 있다. 과정의 구조 안에 이 과목에 대한 올바른 자리가 주어져야 한다. 신학원 과정 끝에 1년의 사목 과정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되어야 한다.32) 그러나 지역적 특성이 요구할 경우에는 그 같은 교육이 초기 과정에서 배제되어서는 안되며, 여건에 맞추어 그 교육 형태가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106. 5) 어떠한 경우에도 사목신학 교육이 교육 과정에서 빠지거나, 반대로 다른 신학 교육이 사목 교육으로 대치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심할 일이다.

▶ 기초신학

107. 1) 기초신학은 모든 신학의 이성적 진행 과정의 기초이다. 그 연구 대상은 그리스도교 계시, 교회에서 이루어진 그 전수, 그리고 이성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모든 논란의 핵심 주제들이다.

108. 2) 기초신학은 교의신학의 입문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신앙의 요구와 신앙-문화-종교 관계의 맥락 안에서 신앙 행위(신앙 개조)의 준비와 반성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공부하게 된다. 기초신학은 또한 모든 신학의 영속적인 차원이다. 신학은 학생들이 제기하는 질문과 그들이 살고 있고 언젠가는 자신들이 직무를 수행할 이 세상이 제기하는 당면한 문제에 응답하여야 한다.

109. 3) 기초신학의 기본과제는 신학자가 교회와 함께 신앙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교 진리를 하느님의 일로 만드는 이성적 반성이다. 하느님은 자신을 계시하셨고, 그리스도 안에 현존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일을 이 세상에서 계속하시기 위해 마련하신 제도로서의 교회에 당신을 현존시키신다.

그것은 이성을 가지고 추상적인 언어로 신앙과 만나는 신학일 뿐 아니라, 대화의 신학이다. 역사적 종교들(힌두교, 불교, 이슬람교)과, 현대 무신론(특히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과, 기술과 산업, 그리고 경제저거 가치에 지배되는 종교적 무관심, 그리고 오늘날 새로운 의문과 어려움에 직면해 있거나, 신학과 교리에 대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신자들의 요구를 만나는 경계선에서 대화를 나누는 신학이 바로 기초신학이다. 기초신학은 이 다양한 집단으로부터 나오는 요구와 체험들에 응답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그 메시지, 그리고 그분의 교회가 그러한 상황에서 가지게 되는 의미를 규정하려 하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로서 신앙의 동의를 일깨우며 이를 확고히 한다.

110. 4) 이 같은 기초신학의 일반 노선은 그리스도교가 역사, 언어, 다른 종교적 체험, 신비주의, 철하고, 과학, 인간 조건 등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연구와 설명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그 특수 임무는 신자나 비신자에게 모두 유효한 이성적 논의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가 어떻게 교회 안에 현존하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 실존을 고양함으로써 어떻게 이를 비추고 완성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실존을 완성시키며 구원하신다.

111. 5) 기초신학은 인간학으로 전락되지 않고서도, 그리스도의전 신비와 신학의 입문으로서 그 의미를 온전하게 지닐 것이다.

이 입문 기능은 교수가 학생들에게 거룩한 학문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갖게 하기 위하여 신학적 인식론의 기본 요소들을 분명하게 할 임무를 수행하는 데 의의가 있다.33)

112. 6) 기초신학은 그리스도교 전통의 위대한 스승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씨름하면서도 그 둘 사이에 더 높은 조화를 이루어 성숙한 인격을 발전시키도록 교사와 학생 모두를 도와준다. 기초신학은 신학자와 영혼의 목자로 하여금 문화의 자료들과, 특히 과학의 정보들 앞에서도 일종의 열등감을 극복시켜 준다. 그들은 기초신학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열등감을 극복시켜 준다. 그들은 기초신학에서 사용하는 방법론적 준거에 따라 과학과 문화의 자료들을 이성적 진리의 표현으로 이용하지만 그 노예가 되지는 않는다. 이 기초신학은 또한 모든 이에게 신앙의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신앙 없이는 그리스도인 생활도 좋은 신학도 불가능하다.

113. 7) 이러한 이유로 기초신학은 신학 교육과 사목 교육에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야 하며, 따라서 그 교육 역시 그 중요성에 걸맞게 신학 교육의 한자리를 차지하여야 한다.

▶ 기타 신학 과목

114. 미래의 사제들을 위한 신학 교육이 완벽을 기하려면 자연히 다른 중요한 과목들, 예를 들어 전례, 교회법, 교회사, 그리고 부수 과목들 -영성신학,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 교회일치 운동, 선교신학, 성미술, 성음악 등- 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목들은 주요 원리에 따라 독립된 과목으로 다루거나, (교리 교육이나 설교학처럼) 사목신학의 영역에 속할 수도 있다.

115. 이 점에 있어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 - 전례 헌장, 사제 양성 교령, 선교 교령, 일치 교령, 동방교회 교령, 매스 미디어 교령- 과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그리고 여러 특수 문헌 안에 부분적으로 여러 지침들이 제시되어 있다.34)

이러한 과목들은 모두 그 고유한 문제와 특수 목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신앙의 정신에 입각하여, 무엇보다도 현재의 과제가 무엇인지 생생히 깨닫고, 신학 연구에 건설적으로 참여할 필요를 깨닫고자 한다면, 공의회 문헌에서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 주석

1. 선교 교령, 10. 16. 22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64항 참조. 사목 헌장, 44항: "지난 여러 세기의 경험, 학문의 진보, 여러 문화의 형태 속에 숨어 있는 보화 등은 인간 자신의 본성을 더욱 풍부히 밝혀주고 진리를 찾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며 교회에도 유익한 것이다. 교회는 그 역사의 시초부터 여러 민족들의 언어와 개념으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표현하려고 노력했으며 또한 철학자들의 예지로 그것을 설명하려고 애써왔다. 이것은 결국 가능한 한, 복음을 만인에게 이해시키고 지성인들의 요구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계시된 말씀을 이같이 환경에 적응시켜 설교한다는 것은 언제나 복음 선포의 원칙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2. 신학적 다원주의의 바른 한계 설정에 대해서는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의 "신앙의 단일성과 신학의 다원주의"라는 문헌을 참조하라.: La Civilta Cattolica, 124, 1973, vol..Ⅱ, 367-369.

3. 사제 양성 교령, 14항.

4. 상동, 14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62항 참조.

5.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77항 이하, 80. 81. 90항; 60-61항 참조.

6. 상동, 91 가) 항

7. 상동, 78-80. 82-84항.

8. 상동, 90항.

9.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90항.

10. 개막 연설, Gaudete Mater Ecclesia(1962. 10. 11.): AAS 54(1962), 792면.

11. 계시 헌장, 24항; 전례 헌장, 16항; 사제 양성 교령, 14. 16항; 선교 교령, 16항 참조.

12.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36. 37항.

13. 상동, 71항.

14. 바오로 6세, 국제신학위원회에서 한 훈화 Nous sommes heureux(1972. 10.11.): AAS 64(1972), 683면.

15. 사목 헌장, 44. 62항 참조.

16. 추기경단에게 한 훈화 Siamo assai grati(1973.6.22.): AAS 65(1973), 384면.

17. 계시 헌장, 24항.

18. 교황청 성서위원회, 복음서의 역사적 진리에 관한 훈령 Sancta Mater(1964.4.21.): AAS 56(1964), 713면 이하 참조.

19. 계시 헌장, 12항.

20. 교황청 성서위원회, 훈령 Sancta Mater, 4항: AAS56(1964), 640. 641aus.

21.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78항 참조.

22. 전례헌장, 24항 참조.

23. 사제 양성 교령, 16항 참조; 가톨릭 교육성서, 서한 Synodi Episcopalis(1968.5.22.)에는 이렇게 강조되어 있다: 사제들의 올바른 신학 교육을 위해서는 "일관된 교육 구조와 함께 신학이 무엇이고 그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개념 파악이 요구된다. 즉 견실한 역사적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24. 사제 양성 교령, 16항.

25. 일치 교령, 11항.

26. 사제 양성 교령, 16항.

27. 바오로 6세, 회칙 Ecclesiam suam: AAS 56(1964), 640-641면.

28. 신앙교리성성, 선언문 Persona humana(1975.12.29.), 9항: 로세 르바토레 로마노, 1976년 1월 16일자 1면 참조.

29. 사목 헌장, 46항.

30.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94항 참조.

31. 상동, 79항 참조.

32.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84 나)항; 교회 학문의 연구에 관한 교황령 Deus scientiarum Dominus에 대한 규범들, 33항 참조.

33.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79항 참조.

34. 이미 나온 문헌들: 그리스도교 일치사무국, 지침서, 또한 특히 75항; 인류복음화성성, 사제 양성 교육의 선교적 차원에 관한 서한(1970. 성신 강림 대축일); 비신자사무국, 무신론 연구에 관한 지침(1970. 7. 10.); 가톨릭 교육성성, 신학교의 철학 교육(1972. 1. 20.); 신학생들을 위한 교회법학 교육(1975.3.1.); 동 성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Seminarium이라는 잡지에 철학-신학 과목 편성에 대한 여러 규정에 대한 공의회적인 쇄신을 촉진하는 내용으로 일련의 논문들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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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실천적 규범들

116. 이상의 논의를 마감하기 위해서 신학교의 권위들과 교수들, 그리고 학생들의 임무를 명시하는 규범들을 정식화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1) 신학 교육을 책임진 사람들의 의무

▶ 신학교의 권위들 : 주교들과 주교회의와 학장들

117. 1) 신학교에 대해 권위를 행사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사제 지망자들이 다른 자격과 함께 신학적으로도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할 책임이 있다. 그래야만 그들은 신앙을 가르치고 신자들의 영성 생활을 지도할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18. 2) 미래 사제를 준비시키기 위해서는 유능하고 자격을 갖춘 교사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주교들과 신학교의 학장들은 더 깊은 수학 능력을 가진 신학생들에게 교회에서 인정하는 학위 취득에 필요한 시간을 허락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주교와 학장은 그들이 연구에 필요한 수단들(도서관, 장서, 정기 간행물 등)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그들에게 쇄신에 필요한 기간도 허용할 것이다.1)

119. 3) 미래 사제의 양성 교육은 교구의 가장 중요한 직무 수행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가장 절실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가르치는 일은 우리 주님이요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일에 교수들을 가장 가깝게 일치시키는 것이다. 주께서는 당신 사도들이 복음의 증인이 되고 하느님 신비의 전파자가 되도록 준비시키셨다.

120. 4) 이상의 규범들은 책임을 맡은 사람들 편에서 성실히 감독하지 않으면 효과 없는 것이 될 것이다.

▶ 교수들

121. 1) 신학교 과정에서 교수들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실로 신앙과 전승과 교회 생활의 영속성을 드러내는 것은 그들이다. 그들이 바로 현재의 다원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근본 진리들과 함께 비판적인 판단에 대한 지속적인 동의를 확인시켜 주며, 상황에 대한 균형 있는 평가를 보장하여 준다.

교수는 확고한 기초 교육을 위해 불가결한 일치적 요소이다. 따라서 교수의 기능을 재평가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교회는 그 사명 수행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으며, 이들을 높이 평가하고 그 노고를 인정하는 바이다.

122. 2) 신학 교수는 하느님 말씀의 종으로서 그리스도와 교회에 매여 있다. 그 가르치는 일은 주님이시요 구세주이신 말씀 안에서 신앙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교회와 교회의 교도권에 대한 충성에서 이루어져야 한다.2)

그렇지만 그 같은 다원주의가 체제의 다원주의로 변질되어, 항상 순수하게 유지되어야 할 신앙의 일치를 훼손시켜서는 안된다. 신학적 다원주의가 신앙의 다원주의와 혼동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124. 4) 교수는 그 가르침에 있어서 가장 최근의 신학 연구의 결과들도 소개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정의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새로운 생각과 이론을, 그것이 단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확실한 것으로 치부하고, 오래된 생각을 최근의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는 선입관적인 생각을 배격해야 한다.3)

125. 5) 오늘의 신학은 여러 신학 과목 사이에 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회의 학문에서처럼 신학에서도 교수들이 팀을 이루어 신앙의 더 깊은 지식을 발견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 신학교 교사들도 가르치거나 연구하는 데 상호 협력과 교환이 이루어지도록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4)

126. 6) 더욱 효과적인 교육과 특히 더욱 체계적인 신학적 준비를 꾀하기 위해, 가가 과목마다 완벽하고 교의적으로도 건전한 최신판 교과서를 마련하는 일은 강의나 개인적 연구의 기초로서 아주 권장할 만한 일이다.5)

127. 7) 신학교의 신학 교육은 그 주요 목표가 사목 활동을 위한 사제 양성에 있으므로, 교수들은 이를 명심하여야 하며, 사목 생활의 요구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학생들의 미래 활동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본당 사제들 이하 여러 사람들과 계속 접촉을 가져야 한다.6)

▶ 학생들

128. 1) 학생들도 자신들의 신학 교육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느껴야 한다. 실제로 오늘날 그들은 교의뿐 아니라 다른 교육 분양에서도 더 능동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교육의 가장 위대한 전통과 어울리는 일이며, 이 점은 오늘날 제대로 평가되고 있다.7)

129. 2) 학생들에게 신학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문학8)과 철학적 준비가 선행되거나, 아니면 철학 과정과 신학 과정이 통합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 철학 교육은 철학사로 대치되어서는 안되며, 인격적 절대자를 긍정함으로써 정점에 이르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조직적 반성까지도 포함하여야 한다. 철하고 과정은 규정에 따라 적어도 2년은 지속되어야 한다.9)

130. 3) 신학부 학생들은 충분한 라틴어와10) 성서 언어 실력,11) 그리고 현대의 연구 업적들(번역들과 해설들)을 이용하여 신학적 반성의 원천들(특히 신약성서, 교도권의 문헌들, 교회 교부들과 위대한 스콜라 학자들의 작품들)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131. 4) 신학 과정의 학생들은 강의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수고를 마다해서는 안된다. 실로 강의는 단순히 지식을 나누는 기회가 아닌, 신앙의 전승을 주고받는 장인 것이다. 그리스도교 전승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스승과의 만남은 불가결한 요소이다. 스승은 자신의 삶을 비추어주고 이를 변화시켜 준 신앙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가르침은 믿고 기도하는 신학자의 강의가 되는데, 이는 신비의 이해와 이를 삶에 깊이 결합시킨 신앙이 그 신학자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학은 세고의 학문처럼 그렇게 가르치거나 연구할 수 없다. 세속 학문 앞에서 우리는 중립으로 남아 있을 수 있으나 신학 앞에서는 그럴 수 없다. 강의, 저서, 세미나 등을 통한 교수와 학생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개인적인 지도는 매우 중요하다.12)

2) 신학 공부의 체계적 정리

132. 1) 모든 신학교에서 사제직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기본 양성 교육은 마지막 신학 과정 4년에 이루어지거나 철학과 신학이 통합적으로 교육되는 경우에는 이에 상응한 기간에 이루어져야 한다.13) 물론 수도회 사제 교육도 마찬가지이다.14)

133. 2) 신학교의 신학 과정은 신앙과 그리스도인 생활의 기본 주제들을 포함하여 그리스도교 신비의 체계적인 전망을 갖게 하는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그러한 교육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나중에 이루어지는 전문 교육이 견실하지도 못하고 결실도 못 맺을 뿐 아니라, 사제 성소가 무산될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만일 이어지는 이 주제 또는 저 주제를 빠뜨리거나, 허술히 여기거나, 피상적으로 다루면 견실한 기초 교육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데 될 것이다. 꼭 그리고 철저히 다루어야 할 주제는 계시와 성전 및 성경을 통한 그 전수, 한 분이며 세 위이신 하느님, 창조주이신 하느님, 천주 성자의 강생과 인류 구원(파스카 신비), 교회와 성사, 그리스도교 인간학(하느님의 은총과 생명), 종말론, 그리스도교 윤리(근본 윤리와 특별 윤리), 성서 전체(율법서, 예언서, 공관 복음서, 요한 복음, 바오로 서간 등)이다.

이 같은 그리스도교 신비의 전망에 비추어 똑같은 중요성을 지닌 것으로는 기초신학, 신학적 인식론, 전례, 교회사, 교회법, 사목신학,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 일치운동, 선교신학이다.

134. 3) 신학이 인문 과학과 혼동되어, 심리학, 사회학, 인간학, 현대신학으로 전락되어서는 안되지만, 신학교 과정에서도 인문 과학의 발달로 오늘의 인간에게 제기되는 문제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실로 신학은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그쳐서는 안되며, 그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상대자인 인간에 대해서, 그 말씀을 듣게 되는 인간 조건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학이 그리스도교 신비를 말할 때는 그 자체의 의미뿐 아니라 그 신비가 우리에 대해 갖는 의미까지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135. 4) 여러 신학 과목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본 문헌 제3부에서 제시한 지침들은(일부는 여기에서 임의로 되풀이되고 강조되었다) 항상 마음에 새겨두어야 한다. 따라서 사제 성품을 지망하는 학생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학생들까지도 건실하고 완전한 교육을 받게 해주어야 한다.

▶ 주석

1.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32. 38항 참조.

2.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87항 참조.

3.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88항 참조.

4. 상동, 90항 참조.

5. 상동, 88항 참조.

6. 상동, 94항 참조.

7. 사제 양성 교령, 17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35. 91항 참조.

8. 사제 양성 교령, 13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65항 이하; 59.60항 참조.

9.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60.61.70.75항; 가톨릭 교육성성, 신학교의 철학 교육, 제III부, 1.2 참조.

10. 사제 양성 교령, 13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66항.

11. 사제 양성 교령, 13항: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80항.

12.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35. 38. 91항.

13. 상동, 61항 참조.

14. 상동, 2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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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제 양성 기본 지침  [9] 24843
8   자유의 전갈 (Livertatis Nuntius)  [12] 2198
7   성체신비 공경 규정에 관한 훈령  [2] 2577
6   신학교 영성 교육 중 매우 절박한 문제들에 관한 회람  [3] 2402
5   신학교의 전례 교육에 관한 훈령  [3] 2886
  미래 사제들의 신학 교육에 관한 서한  [5] 2665
3   독신 생활 양성 지침  [7] 2681
2   세계 정의에 관하여(De Justia Mundo)  [4] 2410
1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훈령  [3] 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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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문헌

교황청 문헌

주교회의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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