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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성탄 메세지 : 생명을 살리는 시대적 사명에 동참합시다!
조회수 | 1,272
작성일 | 05.12.15
1.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의 어둠을 가르고 구원의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랑으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사랑이 모든 이에게 풍성하게 내리시길 기도드립니다. 해마다 오늘이면 교회와 세상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성가를 부르며 구세주의 오심을 기뻐합니다. 일찍이 이사야 예언자가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이사 9,1)라고 외쳤듯이, 이 세상에 구원의 빛으로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은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 중에 있는 이들 안에 드러난 구원과 해방의 신비였습니다. 베들레헴의 작은 말구유에서 나온 생명의 빛은 눈먼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지혜였고 세상을 밝히는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세상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요한 1,10 참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처음으로 맞이한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이루실 구원과 해방의 약속을 기다리며 믿음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던 마리아와 요셉이었습니다. 또한 동터오는 새벽을 기다리며 밤새 양떼를 지키던 가난하고 양순한 목동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모든 사람, 특별히 보잘 것 없는 우리 자신들에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선물입니다.

2. 세상 구석구석에서 예수님의 오심을 기리는 기쁨의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이 기쁨에 동참할 수 없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또한 ‘돈 많이 버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이웃을 경쟁자로 여기며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실입니다. 건강, 미모, 교육, 결혼, 취직 등이 나의 상품성을 높이는 수단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40-50대 가장의 높은 자살율과 세계 최고의 이혼증가율이라는 슬픈 모습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내적가치의 샘이 메말라 버리고, 소중하고 거룩한 의미와 가치들은 그 힘을 잃은 채 우리 모두는 이기적 계산과 살벌한 생존경쟁의 한자리에 내팽개쳐진 외로운 현대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상품성이라는 현대의 최고 가치는 미래의 생명양산에도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유전공학 기술이 생명을 살리려는 본연의 목표에서 조금만 벗어날 때, 생명은 시장논리에 따라 상품의 의미를 부여받게 됩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아이를 얻기 위해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정자나 난자의 거래가 이루어집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은 미래에 유전자 지도에 인위적인 조작을 함으로써 경쟁력이 강한 고효율의 ‘맞춤형 아이들'도 대량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에서만 보던 복제인간의 출현이나 선택된 유전자에 의해 생산된 새로운 생명체의 출현이 먼 미래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인류에게 어떤 재앙을 가져다줄지 모르는 이런 사태를 심각하게 성찰하고, 경제지상주의가 낳은 생명경시가 우리를 지배하는 우상이자 맘몬임을 직시할 안목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3. 과학기술의 발전이 안겨준 혜택은 실로 놀라운 것입니다. 컴컴한 실험실에서 연구에 매진한 여러 과학자들의 희생과 노고로 인해 우리는 편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치료 불가능했던 병들을 치료하는 현실은 과학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교회는 이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한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생명과학의 발전에 무분별한 제동을 걸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배아줄기세포연구'에 대한 최근의 교회반응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가 생명과학의 발달이나 질병치유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난치병환자에게 필요한 장기를 생산하는 줄기세포의 발견이나 이를 통한 질병의 치유는 대단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교회는 피부나 탯줄에서 얻을 수 있는 ‘성체줄기세포'의 연구를 적극 지원합니다. 대전교구도 ‘가톨릭대학 대전성모병원'을 통해 이미 ‘성체줄기세포 연구센터'를 개설하여 함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의 생명체로 발아될 배아의 연구에 반대합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한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의미를 온전히 지닌 배아를 연구의 도구로 사용하는 행위와 낙태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경제논리를 충족시키는 수단이 될 수 없으며 효용의 논리에 따라 마음대로 살리고 죽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형제자매님들이 경제논리를 넘어, 생명을 살리고 소중함을 지키려는 윤리의식을 회복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많은 관심과 도움을 주시길 청합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가 벌이는 사형과 낙태반대 운동에도 힘을 모아주시길 바랍니다.

4. 어두움이 깊을 때 빛은 참으로 그 가치를 발합니다. 생명과 내적가치가 경시되고 경제적 효용성과 외적능력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참으로 생명을 살리고 지키기 위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한 14,6) 예수님께로 나아갑시다. 성서를 읽고 그분의 삶을 따르며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입시다. 그분은 말씀을 통해 오늘도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십니다. 마침 오랜 산고 끝에 새롭게 성서가 번역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과 크나큰 은총, 그리고 많은 분들의 노고가 맺은 결실입니다. 이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초대에 성모님같이 “예” 하고 응답합시다. 예로니모 성인의 말씀처럼,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낮고 겸손한 아기의 모습으로 누추하게 오시는 예수님을 깨어 맞이하는 방법은 생명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이 시대가 요구하는 빛과 소금으로서 신앙인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입니다. 경제논리에 치여 버린 우리 자신과 힘없는 이웃을 보듬고, 우리 모두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이며 사랑받는 자녀임을 되새깁시다. 우리는 생명이라는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사랑받을 충분한 이유를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셔서 하셨던, 온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시대적 사명에 동참하는 뜻 깊은 성탄을 맞으시길 빕니다.
  
이웃과 함께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는 기쁜 성탄,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성탄, 온 인류, 우리 사회와 민족 모두를 위해 기도하는 희망의 성탄이 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2005년 예수성탄대축일을 맞으면서  / 대전교구장 유 흥 식 라자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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