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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신부, 나오라고 해”
조회수 | 1,682
작성일 | 14.10.24
사제 수난의 시대다. 프란치스코 교종 때문이다. “고통받는 형제들 앞에서 중립은 없다”는 말 때문이다. 결국 복음 때문이다. 얼마 전 세월호 특별법 관련 천주교선언 서명운동을 하던 어느 본당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서명 데스크 앞으로 할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성당에서 왜 정치적인 서명을 받느냐고 항의했다. 서명을 받던 이들에겐 당혹스런 일이었다. 할머니에게 이 서명은 주교님들이 결정한 일이라고 설명했지만 소용 없었다. 주교회의와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등 공식기구에서 추진하는 일도 할머니에게는 당치 않은 일이었던 모양이다. ‘교황이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다’는 게 할머니의 지론이다. 이윽고 성당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모셔다 드리려고 손을 내미는 찰나에 할머니 입에서 한 마디 튀어 나왔다. “신부, 나오라고 해!”

평신도가, 그것도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이렇게 당차게 발언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다. 시골성당에서는 어림없는 일이고, 신도시 아파트촌에 자리잡은 성당이니까 이런 말도 나오는 것 같다. 어찌보면 아들내미 같은 본당 사제에게 찬찬히 제 생각을 전해도 될 일일 텐데, 할머니는 성당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신 분처럼 거칠게 행동했다. 본당의 젊은 사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곤욕을 치렀을까, 황당하다. 어쩌면 신부님 면전이라면 이런 말은 대놓고 하지 않았겠지,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할머니 교우는 물론 어버이연합의 가톨릭판인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회원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더 문제다. 일반 신자들 가운데 말은 안 해도 이 할머니처럼 생각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성직자 권위주의’를 타박했지만, 요즘은 성당에서 ‘복음’ 자체가 실종된 것처럼 보인다. 따지고 보면, 교회가 신자들에게 ‘복음’의 사회적 의미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탓이 크다. 한국교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성장’하는 데만 몰두해 있었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때마다 성당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즐거운 비명을 지른 사람들이 교구장과 사제들이다. 이참에 부동산도 사고 병원도 사고, 요양원에 납골당까지 돈 되는 사업은 교회에서도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른바 한국교회가 성장하면서 돈맛을 보면서, 사회교리는 예전처럼 늘 뒷전이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사회교리의 명제는 교회 성장에 늘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신자들에게 애써 사회교리를 가르치지 않았다. 사회교리가 없는 개신교는 번영신학으로 상종가를 치다가 지금 급격하게 거꾸러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얼마 전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종은 한국교회보다 ‘대한민국의 모든 그리스도교’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비신자들에게 오히려 인기다. 개신교는 교종 때문에 천주교로 개신교 신자들이 빠져나갈까봐 전전긍긍하고, 한국 천주교 지도자들은 애써 불편한 심정을 감추려 한다. “신부, 나오라고 해”라는 할머니의 발언은 ‘잘 나가는 교회’의 실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우리 돈으로 교회가 이만큼 좋아졌는데, 이제 와서 세월호니 뭐니 딴 소리 하고 있다”는 게 ‘잘 나가는’ 부유한 천주교 신자들의 불만이다. 토머스 머튼은 이런 교회를 두고 ‘무늬만 교회’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현대세계에서 그리스도교적 이상과 태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그리스도교적 외양은 거의 속빈 강정과 같은 것이며, 과거에 ‘그리스도교 사회’라고 불리던 사회조차 오늘날에는 무늬만 그리스도교이고 사실은 완전히 유물론적인 이교도의 영향아래 놓여 있다. 비그리스도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까지 비폭력과 사랑에 관한 복음의 윤리를 ‘감상적’이라고 비하하곤 한다.”

최근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는 교황 방한 이후 한국교회의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설문지를 돌리고 있다. 좋은 일이다. 그동안 복음을 우롱해 온 한국교회가 이제 프란치스코 교종 때문에라도 ‘이 세상의 슬픔’에 대해 진지하게 묵상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늘 ‘십자가’를 강조하지만, 복음 때문에 고통 받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교회다. 한국사회의 실질적 고통과 불의에 응답하지 않으면서 미사경문이나 보편지향기도에서만 정의와 평화를 입에 올리던 입술을 부끄럽게 여기는 기회가 되기를 갈망한다. 입에 올리던 정의와 평화를 몸으로 실천하는 사제들을 교회 안에서 ‘왕따’로 만들어 왔던 교구장 주교들이 충분히 반성하고, 자식 같은 사제들을 따뜻한 눈빛으로 끌어안아 주기를 기대한다.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 교회라면, 아무리 교우들이 늘어나고 재산이 많아져도 다 소용없는 일이라는 게 프란치스코 교종의 생각이다. 교회의 존재 이유가 ‘교회의 성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십자가 첨탑이 늘어나는 만큼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그만큼 세상의 슬픔과 고통은 줄어들어야 한다. 예수, 그분은 우리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기 위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시다. 그분을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한, 우리 교회도 가난하고 슬픈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싫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들을 ‘기쁘게’ 전송해 주어야 한다. 다소 교회 수입이 적어지더라도 망설이지 말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福音)을 흉음(凶音)으로 여기는 자들을 교회에서 떠나 보내라.

최근에 어느 본당에서 사목위원을 하고 있는 분을 만났다. 그분 말씀이 “본당 신부를 싫어하는 신자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교무금 액수를 줄이는 것이고, 아니면 다른 본당으로 미사를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불편한 말을 하는 사제들에게 실질적으로 표가 나게 물 먹이는 방법이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에서는 아예 공지글을 통해 정의구현사제단 활동을 하는 사제들의 명단을 일부 공개하며, 이 본당에 나가는 신자들은 교무금 납부를 거부하라고 ‘선동’하고 있다. 역시 ‘돈’으로 흥한 자들이니 ‘돈’으로 교구장에게 압력을 가하려는 모양이다. 이들은 처음부터 ‘복음’을 배신하고, 사실상 ‘돈’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이다. 이들이 교회에 나와주지 않는다면 이보다 기뻐할만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신자들이 ‘행할 교리’인 가톨릭사회교리가 가르치는 명확한 기준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부, 나오라고 해”라고 외마디를 지른 할머니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그 할머니에게 물을 수 없다. 그분은 오래 전부터 ‘교회에서는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교회 안에서 들어 왔다. 교회에서는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 하고, 우리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봉헌하고, 기도와 참회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배워 왔다. 사제직에 대한 존중심을 빼고는 모두 예전 것을 답습하는 할머니에게 연민을 느낀다.

수없이 많은 사제들과 신학자들과 평신도들이 지난 몇 년 동안 줄기차게 이야기해 왔던 것이 하나 있다. 예비자 교리에 ‘사회교리’를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천주교에 입문할 때 한 마디도 배우지 못한 사회교리를 나중에 배워서 실천하라는 것은 부당하다. 교황청에서 정한 공식교리서의 제3편에 분명히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사회교리가 명시되어 있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예비자교리서에 이 부분을 십계명 열 가지를 외우는 것으로 대체해 버렸다. 삶이 없는 신앙이란 얼마나 무모하고 한심한 신념 체계인가. 신자들이 너무도 쉽게 자신의 정치논리를 신앙에 적용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의 신앙적 확신을 정치에 적용할 줄 알아야 그리스도인이다. <조선일보>의 시각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얼마나 무지한가? 교회전통은 언제나 복음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으라고 권하고 있다. 교회가 교회 전통을 배신한다면 누가 교도권을 따를 것인가? 이미 사회교리조차 ‘불온문서’처럼 여기는 신자들 앞에서 우리 교회가 분명한 답변을 내어 놓아야 할 차례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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