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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죄보다 칭찬을 - 자랑할 수 없는 고통 / [복음과 묵상]
조회수 | 1,354
작성일 | 10.03.23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
[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정죄보다 칭찬을


우리는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에 참 익숙합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비판과 비난과 정죄, 손가락질로 가득 찬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백 가지를 잘해도 한 가지 못하면 비난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한데 사람을 칭찬하는 일은 기쁨을 주지만,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행위는 자신의 파멸을 초래합니다. 또 식초보다는 꿀이 벌레를 잡기 쉽듯 우리의 목표가 성취되기 위해서는 비난의 입보다는 칭찬 가득한 기쁨을 주는 혀가 더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신이 자신을 정죄하게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너를 판단하는 것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라고 말합니다. 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판단이 이렇게 어긋나는 반면, 그렇게 정죄하거나 편견을 가진 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판단은 정확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스스로 하는 판단은 항상 한계가 있고 상대적이지만 하느님의 판단은 절대적인 표준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느님은 이 판단을 그의 외모나 지위로 하지 않고 오직 진리대로 하신다는 말씀도 나옵니다.

우리는 술수가 난무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진리의 말씀에 따라 기도하며 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마지막 판단하는 자는 하느님이시며 그가 공의대로 진리대로 우리를 판단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우리 심령에 좋은 약이 돼 우리 영혼을 회복시킵니다. 정죄가 남과 나를 동시에 파멸시키는 반면 나와 남을 동시에 회복시키고 유쾌케 하는 칭찬에 우리는 힘을 더 쏟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칭찬합시다. 비방의 말보다 칭찬을 하면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기쁨을 주는 말을 통해 나와 이웃의 삶이 풍성해지며 회복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재성님)



자랑할 수 없는 고통


골프 재미에 푹 빠진 목사가 있었다. 구름 한점 없이 화창하고 맑은 일요일이었다. 목사는 갈등하다 결국 교회에 몸이 아파 못 간다는 전화를 하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이를 본 천사가 하느님에게 말했다. “저 목사, 혼 좀 내줘야 하지 않을까요.” 하느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사는 1번 홀에서 힘차게 스윙했다. 볼은 무려 350야드를 날아가 그린 위에 떨어진 뒤 홀컵으로 들어갔다. 홀인원이 된 것이다.

목사는 흥분했다. 천사도 충격을 받았다. “하느님! 이것은 뭔가 잘못된 것 같네요. 벌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느님은 미소를 지으며 천사에게 말했다.
“목사가 이 일을 누구에게 자랑하겠니? 자랑을 하면 주일에 골프 친 것이 들통날테고,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할 수 없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겠느냐.”

오늘 당신의 자랑은 무엇인가? 오직 예수 그분만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

(김은호님)



[3월 24일] 지극히 거룩한 생명의 말씀 '복음' <요한 8,31-42>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그들이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따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지금, 하느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이야기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오늘의 묵상]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진리는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일입니다. 자유는 무엇이나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린이의 생각입니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사랑이 곧 자유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동문서답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내세워 종노릇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핀트’가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인내를 갖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입니다. 그분의 자유로움입니다.

누구라도 ‘나만 잘났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도 때로는 아이가 옳을 수 있습니다. 큰 그릇의 사람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지만, 옹졸한 사람은 허세를 부립니다. 복음의 유다인들 역시 만용을 부리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유로워지고 싶어 합니다. 삶의 두려움과 불안에서 해방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노력’은 게을리합니다. 사랑하며 사는 일은 소홀히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사랑하면 자유스러워진다’는 사실을 체험해야 합니다. 용서하면 미움이 사그라지고, 절제하면 욕망이 가라앉습니다. 선행을 베풀면 삶의 허무마저 기쁨으로 바뀝니다. 진정 진리는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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