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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의 교회
조회수 | 5,144
작성일 | 05.12.21
성모님의 교회는 그분과 함께 ‘산골 고을’(루가 1,39)에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교회는 남녀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비록 그들이 능력 없어 보여도
교회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교회는 사람들 안에 이미 숨 쉬고 있는 생명이
태어날 것을 기다립니다.

성모님의 교회는 기뻐 노래합니다.
자기 운명을 슬퍼하지도 않고
세상의 불행을 보고 개탄하지도 않습니다.
성모님의 교회는 아름아운 것을 보고 경탄합니다.
땅에도, 사람들의 마음에도,
아름다움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거기 성모님의 교회는 하느님의 일을 봅니다.

성모님의 교회는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느님은 낳고 기르는 어머니라는 사실도 압니다.
성모님의 교회는, 혹시 아들이 돌아 올까봐,
문 밖에 서성거리는 발소리를 듣고 하느님을 알아봅니다.
성모님의 교회는 돌아온 아들을 멀리서 알아보고 달려가 목을 끌어안고,
아들의 손에 가락지를 끼워 주고,
잃었던 아들을 되찾았다고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를 봅니다.

성모님의 교회가 가족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기면,
무화과나무 위에 올라앉은 자캐오도 있고,
마태오와 세리들도 있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 사마리아 여인, 이방인들, 나병환자
그리고 사형이 집행된 악인도 보입니다.
성모님의 교회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아직 타고 있는 심지의 불을 끄지 않습니다.

성모님의 교회는 삶에서 상처받고 길에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면,
‘가서 보고 불쌍히 여겨’(루가 10, 33) 그를 위로하고 상처를 치료합니다.
교회는 항상 열려 있는 안전한 항구이며,
죄인들의 피난처이고,
자비로운 어머니입니다.

성모님의 교회는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해결책을 알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가 가는 길은 미리 닦아진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회의(懷疑)하고 고뇌하며,
어두운 밤과 고독을 겪습니다.
그런 대가를 치르기에 사람들은 교회를 신뢰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대화에 참여하지만
모든 문제를 다 알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는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이해하면서 답을 찾습니다.

성모님의 교회는 나자렛에 삽니다.
말없이 단순하게 삽니다.
교회는 대궐 안에 살지 않습니다.
그 집은 다른 사람들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는 집에서 나와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합니다.
교회는 그들과 함께 울고 그들과 함께 기뻐합니다.
교회는 그들을 가르치려들지 않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입니다.
교회는 그들과 왕래하고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옵니다.
동네에 결혼식이 있으면 교회는 초대받습니다.
거기서 교회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가 그들의 집안에 잠시 앉아 있으면 좋아합니다.
그들은 행복을 호흡합니다.

성모님의 교회는 십자가 밑에 서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짓밟힐 때,
교회는 자기의 요새 안으로,
혹은 성당 안으로,
혹은 약삭빠른 침묵 안으로 피신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행동과 말로써 스스로를 나타냅니다.
겸손하지만 용감하게
교회는 가장 작은 사람들 편에 섭니다.

성모님의 교회는 성령강림의 바람을 흘러들게 합니다.
그 바람은 교회를 밖으로 나가게 하면서
혀를 녹여 줍니다.
그래서 교회는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신비의 언어로 말하지 않습니다.
교리에 어긋났다고 비난하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권위 있게 말하지도 않습니다.
교회는 말합니다.
약속은 지켜졌고, 싸움에서는 이겼으며,
우상은 영원히 무찔러졌다고.
그러나 교회가 속삭일 수밖에 없는 비밀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큰 비밀입니다.
승리하기 위해
하느님은 무기를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역사의 흐름이라는 시간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고통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매일 저녁기도의 끝에
성모찬가(Magnificat)를 노래합니다.
교회는 자기의 기쁨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살지 못할 세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세상이 주는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 십자가 위에
달려 있는 ‘자비’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하느님의 열린 가슴이었습니다.

그 십자가 아래에서
성모님의 백성이 태어났습니다.
“예수께서 어머니와 곁에 서 있는 사랑하시던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보십시오,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제자에게는 ‘보시오, 그대의 어머님이시오.’
그 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6-27).

형제여, 자매여, 이 백성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을 우리 집안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성모님과 함께
사랑하기에  
또 사랑 받기에
겸손하고 마음이 부서지는 행복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소화 데레사가 말하였듯이
‘사랑으로 빛나는 마음’이 되어
교회는 이 세상에 살아있을 것입니다.

성모상을 모시고 행렬하고, 거대한 성모상을 세우는 것이 성모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성모님을 따르는 교회는 성모님 방식으로 복음을 삽니다. François Marc의 '마리아의 교회’를 번역하였습니다.

부산교구 서공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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