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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0일, '위로와 기억의 주간'을 지내며
조회수 | 1,022
작성일 | 14.07.22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침몰사고 100일을 이틀 앞둔 22일 저녁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10명의 이름이 적힌 노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인 24일 저녁 7시 서울지역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광장에서는 추모 문화제가 열린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 한겨레신문

희망은 절망을 기억한다 / "절망에 빠진 이의 이야기는 바람에 날려도 좋단 말인가?" (욥기 6,1)

1. 4월 16일 아침, 그들과 함께 국가 역시 사라졌다. 아니 엄밀히 말해 소멸한 것은 국가에 대한 지금까지의 상식과 전제, 믿음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그날 아침부터 우리가 줄곧 던지는 절망적 물음이다. 구조는 물론 책임조차 방기한 국가, 그것이 우리가 목격한 대한민국이다. 순진한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 납득할 수 없는 물음들만 쌓였고 죽음의 무게는 오롯이 남겨진 이들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절망과 탄식의 심연은 매일매일 깊어졌다.

2. 돌이켜보면, 오늘의 죽음은 우리가 이미 목격한 어제의 죽음들과 다르지 않다. 죽음에 대한 국가의 처사 역시 마찬가지다. 화마로 사라진 용산 철거민들의 목숨도, 일터에서 쫓겨나 골방에서 생을 마감한 노동자들의 죽음도, 애틋하게 보듬던 전답 한가운데서 목숨으로 절규한 밀양 촌로들의 한스러움도, 숱한 무명의 죽음들 모두 오늘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 하나같이 방치된 죽음이고 부지불식 동조한 구조가 만들어낸 타살이다. 이 '사회적 재난' 어디에도 국가는 없었다. 구조도 규명도 없었다. 방기하고 도리어 조장했을 뿐이다. 생명은 의례 숫자로 불렸고 보상액으로 환산되었다. 인간 존엄 따위는 한가한 이야기로 치부됐다. 그렇게 환난을 지나 결국 마지막에 깨닫는 것은 자본에 잠식된 권력, 곧 '국가'의 완벽한 부재이고, 얻은 것은 힘없는 이들의 눈물 젖은 연대다. 모두가 투사로 변모하는 연유다.

3. 이 사회적 재난, '국가'의 부재에 희생되는 것은 생물학적 목숨만이 아니다. 그것은 더 넓고 다양하다. 지난해 정국을 들끓게 했던 국가권력기관들의 선거 부정개입 앞의 대통령과 여당의 처사는 지금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국정 책임자가 견지하는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가 모두에게 대항하는, 극단적 형태의 폭력"(한나 아렌트)에 다름 아니다. 해명을 요구하던 국민의 요구를 이념의 잣대로 억압하고 폭력적인 연행으로 묵살했던 것이나,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에 '순수 유가족'을 운운하며 공포를 조장하는 수법 역시 동일하다. 평화로운 집회에 최루액과 물대포, 무차별적 연행으로 답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책임을 지라는 요구에 돌려준 것은 제왕적 겁박뿐이다. 게다가 자가당착적이다. 쇄신과 해체의 요구가 빗발쳤던 국정원은 국가의 안위를 이유로 존속시킨 반면 해양경찰청에 대해서는 이번 참사의 책임을 물어 하루아침에 해체를 선언했다. 이것이 삼권이 엄연히 분립된 민주국가, 대한민국이다. 이쯤 되면 전시체제에나 들을법한 '국가 개조'와 같은 전체주의적 언어는 별반 놀라울 것도 없다. 모두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버린 인사의 재탕내지는 범죄자의 지명이다. 국가권력과 국민을 전리품쯤으로 여기는 대목이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물론 공정과 진실, 존엄과 평화 같은 무형의 가치들 역시 어느새 빈사 직전에 이르렀다.

4. 삼분의 이가 넘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제정은 무산됐다. 여야 할 것 없이 이번에도 결국 제 잇속 챙기기에 바빴던 셈이다. 유족들이 애타게 호소해 그마저도 가능했던 일이다. 생각해보면, 예기치 않은 재난이 닥쳐올 때마다 이를 수습하고 보듬던 이들은 결국 힘없는 자들 스스로였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국가는 물론 정치 역시 실종됐다. 참사가 열어젖힌 또 하나의 심연이다. 또 다른 죽음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어제와 오늘의 죽음들 사이에 놓인 맥락을 끈질기게 파헤쳐야한다. 그때만이 희생자들이 던진 물음들에 성실히 답할 수 있다. 그래야 '내일'의 죽음을 제대로 대접할 수 있고, 그날 아침 바다 속으로 수장된 꿈들이 헛되지 않다. 그때 오늘의 참사가 그저 불행스런 '안전사고'가 아니라 내일을 전망할 '사건'이 될 수 있다. 애도를 완성하려면 이 죽음들의 이유를 분명히 '밝혀내고' '직시하고' 오롯이 '기억해야'한다. 그래야 내일이 있다.

5. 곡기를 끊은 유족들의 호소가 국회와 광화문에서 벌써 8일째 이어지고 있다. 광화문, 그곳에서 내달 교황과 한국천주교회는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게 된다. 평등하고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동경했던 이들이 포승줄에 굴비처럼 꿰어 줄줄이 형장으로 끌려가던 바로 그 자리에서 말이다. 그들의 죽음 역시 새로운 나라를 희망하고 꿈꾼 죄로 국가라는 폭력 앞에 희생된 구조적, 정치적 죽음이 아니던가. 이로써 교회는 어제의 죽음을 기념하며, 어제와 오늘의 죽음 사이에 놓인 맥락을 또박또박 읽어내야 할 몫을 부여받았다. 어제의 죽음을 기억하며 목전에서 일어난 오늘의 죽음을 외면한다면 그것을 어찌 온전한 기념이라 할 수 있겠는가. 교회가 응당 '오늘의 죽음'에 답해야하는 이유다.

6. 십자가 죽음 이후 부활 아침까지 예수의 행적은 묘연하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이 묘연한 삼일동안 예수는 죽음의 무저갱으로 내려가 죽은 이들을 어깨에 들춰 메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절망의 끝자락까지 내려가 희망으로 돌아온 것이다. 희망이 절망을 기억해야하는 이유며 오늘의 죽음으로 열린 심연을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까닭이다. 진실을 은폐하는 정부, 침묵하는 정치인, 책임을 방기한 관료 등, 그날 아침부터 우리가 목격한 이 모두는 절망의 심연이다. 때문에 이번 참사의 진실 규명은 희생된 이들의 부활이고, 붕괴된 '국가'의 회복이며, 부활의 증인인 교회가 전심으로 완수해야할 사명이기도하다. 그날의 죽음을 이대로 바람 속에 날려버릴 수는 없는 법이다.

7. 이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둔 21일부터 일주일간을 '위로와 기억의 주간'으로 지내며 유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참사로 희생된 이들이 꿈꾸던 '새로운 나라'를 위해 '하나의 기억'으로 마음을 모을 것이다. 사제와 수도자, 교우들께 이 기억의 연대에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린다.

2014년 7월 21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세상의 악이 그리고 교회의 악이 우리의 헌신과 열정을 줄이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악을 우리의 성장을 돕는 도전으로 받아들입시다. 우리의 신앙은 밀이 어떻게 가라지들 가운데서 자랄 수 있는지를 식별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84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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