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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입과 귀 정제천 신부
조회수 | 1,324
작성일 | 14.08.19
판검사 꿈꾸던 법학도 출신 /  법학도 길 버리고 사제의 길 걷는 사연 / 아버지 5·18때 보안사 끌려가 / 기도대로 이뤄져 사제의 길 선택

정제천(57)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4박5일 동안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통역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은 예수회 소속인데다 교황의 고향인 아르헨티나의 모국어인 스페인어에 능통하다는 점 때문에 교황이 한국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늘 함께했다.

그는 교황이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을 챙기는 데 숨은 공로자다. 지난 16일 광화문 시복식 때는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위해 한달 넘게 단식중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영오씨가 한국 경호원들에게 가리자 김씨 쪽으로 교황을 안내한 이도 그였다. 그는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 미사 전에 세월호 유가족과 단원고 학생을 만날 때도, 17일 오전 세월호 유가족 이호진씨의 세례 때도 통역을 했다. 교황은 18일 서울공항에서 로마로 떠나면서도 그와 가장 깊은 포옹을 나눴다.

정 신부는 원래 판검사를 꿈꾸던 법학도였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그가 사제의 길을 걷기로 한 데는 이 땅의 고난과 무관치 않았다. 고교와 대학 동창이었던 한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이렇다.

그가 대학 재학중 고향인 광주에서 신군부의 학살인 `5.18‘이 일어났다. 당시 보안사 등에 끌려가면 고문으로 목숨 보전을 기약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때, 그의 부친이 이유 없이 보안사에 끌려가자, 그는 “아버지를 풀려나게 해주시면 제 몸을 하느님께 봉헌하겠다”고 기도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풀려났다. 아무 상해도 받지 않고 풀려난 것이다. 그 때만해도 우연이겠지 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친한 고향 친구도 보안사에 끌려 갔다. 그 때도 같은 기도를 했다. 그 친구도 풀려났다.
그 이후 자신이 다니던 서울 동대문성당의 김승훈 신부가 미사 강론 중 `광주에서 신군부의 학살 만행’을 최초로 공개했다. 곧바로 보안사에 연행돼 갔다. 그러자 그는 눈물을 흘리며 같은 기도를 올렸다. 다행히 김 신부가 풀려나왔다. 그러자 정 신부는 세번의 기도대로 된 것을 우연으로 볼 수 없다며 사제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고 한다.

정 신부의 한 고교와 대학 동창은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 실패해 어렵게 생활했던 그는 자신도 어렵게 대학을 다니면서도 서울 대방동의 이바돔이란 야학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기도 했다”며 “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자기 할일만 하던 친구였다”고 기억했다.

정 신부는 1980년대 초반 한국외방선교회에 들어가 사제의 길을 걷다가 1990년 2월 소속을 바꾸어 예수회에 입회했다. 이어 스페인 코미야스 교황청대에서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유학해 석·박사 학위를 받고, 그사이 1996년 7월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사제가 되어서도 가난한 이들을 잊지 않았다. 한때는 지난 6월 선종한 빈민의 대부인 정일우 신부와 함께 서울 공덕동 빈민가에 기거하며 빈민들과 어울려 살았다. 또 지난해 대한문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해 사제들이 225일간 미사를 봉헌할 때도 종종 함께했다.

교황은 예정에 없이 그가 사는 집, 즉 예수회 사제관도 방문했다. 그때 제주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펼치다가 막 올라온 김성환·이영찬 신부와 박동현 수사를 소개하자, 교황은 “최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신부는 지난 6월 초 예수회 차기 한국관구장으로 임명돼 9월부터 예수회 한국관구를 이끌어간다.

한겨레신문 2014년 8월 19일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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