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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 신부와 이정훈 목사의 구속에 대한 한국예수회 입장
조회수 | 1,936
작성일 | 12.03.27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이사야, 53,4~5)

김정욱 신부는 3월 9일 종교인사와 시민, 활동가 30여명과 함께 해군기지 사업장을 둘러 싼 철판울타리를 절단하여, ‘생명의 문’을 개통하고 기지 사업장에 들어갔다. 이는 제주도의회와 도지사의 공사 중지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일 계속되는 구럼비 바위 발파 강행을 저지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곳에 들어간 종교인사와 시민, 활동가들은 곧 경찰과 시공사직원들에게 붙합혀 제주도의 몇 개 경찰서로 연행되었는데, 일부 연행자들은 7시간 정도 억류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그분들 중에서 김정욱 신부와 이정훈 목사는 3월 11일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재물손괴 혐의로 구속되고 14일 제주교도소로 이감되어 기소되었다.

두 분의 구속 사유가 된 재물손괴는 그 행위의 상황과 동기를 고려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그것은 공사를 통해 야기되는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정당행위인 것이다. 설사 그 행위의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없는 성직자들을 구속 수사하는 일은 과도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강정리의 주민과 평화활동가, 환경지킴이, 시민, 종교의 제 단체들은 5년 동안 줄기차게 해군기지 건설의 부당성을 평화적으로 호소해왔다. 해군기지 건설사업은 민주주의의 절차와 주민자치정신에 반하여 이루어져왔다.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무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강정리 주민공동체를 파괴하고 상고시대의 문화재를 포함하여 절대보전지역으로 선포된 생태환경을 돌이킬 수 없이 파손하는 행위이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을 유발하는 평화 파괴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작년 말에는 대한민국 국회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공사는 중차대한 내용적, 절차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결정을 내렸다. 최근 우근민 제주도지사와 제주도의회는 이 공사를 여러 차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사업으로 평가하고 중단을 요청하였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부라면 시민들과 자치단체의 이러한 중단요청을 수용하여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는 성의를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마땅하다.

우리의 양심이 강정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이것이 안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국민들의 막연한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화약고가 될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평화는 군비확장을 통해 구할 수 없고, 전쟁은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반문명적 파괴행위이다. 이것이 인류가 긴 역사를 통해 배운 진리이다. 군비확장과 전쟁을 통해 이익을 얻는 세력은 다름 아닌 군산복한 산업자본가와 불안 심리를 이용하여 권력을 좆는 정치인들이 아니겠는가. 평화는 인격과 공동선을 기초로 다져인 시민의 연대와 민주적 정부의 균형잡힌 외교정책으로 얻어진다. 교황 요한 23세는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전쟁 무기의 균형으로 평화가 이룩되는 것이 아니고, 상호 신뢰에 의해서 참된 평화가 확립된다.”(113항)고 명백히 하였다.

2005년 대한민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 4.3항쟁의 역사를 ‘강요된 망각’에서 끌어내 유가족과 제주도민 그리고 전 국민 앞에서 무고한 3만 희생자의 죽음에 국가권력의 남용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역사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약속하였다. 이러한 약속으로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완성하는 21세기의 문명국으로 번영하려면 국가주의의 욕구를 거슬러 ‘평화의 섬’선포가 담고 있는 정신을 동북아에서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는 종교인으로서 민주주의와 역사적 진보를 믿는 양심 있는 시민들과 함께 이 역사적 비전을 실천하도록 깨어 기도하고 함께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세계사 안에서 진실과 정의에 기초하지 않은 국익추구의 말로가 어떤 비극으로 끝났는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한다. 불의와 위선, 교만으로 무장한 악의 세력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업신여기고, 모욕하고, 때리고 마침내 죽여, 캄캄한 암흑의 무덤에 가뒀어요 그 분은 세상의 빛으로 부활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어둠과 질곡의 역사 속에서도 진리와 정의를 증언하고 죽임을 당하는 수많은 작은 희생들이야말로 인류를 구원으로 이끄는 하느님의 손길이요 이끄심이라 고백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정욱 신부와 이정훈 목사의 구속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양심 그리고 신앙에 따른 행위가 국가이데올로기와 남용된 공권력에 의해 탄압받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김정욱 신부의 구속은 ‘정의를 구현하는 신앙’을 위해 봉사하도록 불림 받은 예수회원들의 양심과 신앙을 구속하고 박해하는 행위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고 그 분의 뒤를 따르기로 새롭게 결심하는 이 사순시기에 2천년 전 발생한 나자렛 예수의 수난과 죽음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음을 바라본다. ‘죄인이면서 예수의 벗으로 부름 받은’(예수회 32차 총회:2,11) 우리 예수회원은 오늘 우리 세계에서 수난 받고 죽으시는 작은 예수들의 벗이 되어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는 예언자로 거듭날 것을 다짐한다.

인간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늘을 공경할 수 없다. 작은 마을 강정의 ‘풀 한포기 돌맹이 하나’라도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인간을 공경할 수 없다. 우리는 가장 보잘 것 없는 피조물까지도 섬길 줄 알 때 진정 이웃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을 때,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완성됨을 고백한다.

“이들이 잠자코 있으며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카 19,40)

2012년 3월 26일
주님탄생예고 대축일에
천주교 예수회 한국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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