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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차 평화의 날 담화 :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
조회수 | 2,025
작성일 | 09.12.19
1. 새해를 시작하며, 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국가 지도자들, 선의의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올해 저는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를 제43차 세계 평화의 날 주제로 선택하였습니다. 피조물에 대한 존중은 커다란 중요성을 지닙니다. “창조는 하느님의 모든 업적의 시작이며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 보호는 이제 인류의 평화 공존에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잔학 행위는 전쟁, 국제 분쟁과 지역 분쟁, 테러 행위, 인권 유린과 같이 참되고 완전한 인간 발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수많은 요인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과 자연 자원을 돌보지 않고, 나아가 철저히 착취함으로써 생기는 위협도 그 못지않게 우려스럽습니다. 따라서 인류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가 지향하는 하느님의 창조적 사랑을 반영하여야 하는, 인류와 환경 사이의 약속”을 새롭게 하고 강화하여야 합니다.

  2. 저는 회칙『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에서, 온전한 인간 발전은 인간과 자연 환경의 관계에서 나오는 의무와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환경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선물로 보아야 합니다. 자연의 사용에는 인류 전체, 특히 가난한 이들과 미래 세대에 대한 공동 책임이 수반됩니다. 저는 또한 자연과 특히 인간을 단지 우연이나 진화의 산물로만 여길 때 우리의 전반적 책임 의식은 약화될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와 반대로 피조물을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선물로 볼 때 인간으로서 우리의 소명과 가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편 저자와 같이 우리는 놀라움에 가득 차 이렇게 외치게 될 것입니다.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7],4-5).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때 우리는 창조주의 사랑, “해와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을 인식하게 됩니다.

  3. 이십년 전에,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 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는 평화”를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주제로 선택하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하느님의 피조물인 우리가 우리 주위의 모든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를 강조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 자연에 대한 마땅한 존중의 결여로 …… 세계 평화가 위협을 당하고 있다는 의식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 더 나아가서 새로운 생태학적 각성이 부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무시해 버릴 일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과 사업으로 발전되도록 마땅히 권장하여야 할 일입니다.” 선임 교황님들은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자주 언급하셨습니다. 그 예로, 1971년에 바오로 6세께서는 레오 13세의 회칙『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반포 80주년에 “인간들이 자연을 무분별하게 착취하여 자연을 파괴하고 그러한 오용의 재앙이 이제는 바로 인간에게 미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신 바 있습니다. 덧붙여 “인간은 자연의 오염과 폐기물, 새로운 질병과 절대적인 파괴력으로 끊임없이 위협을 받을 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체계마저도 이제 인간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감당할 수도 없는 내일의 생활 조건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것은 전 인류 가족에 관계되는 광범한 사회 문제인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 교회는 구체적인 기술적 해결책에 의존하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전문가’로서 창조주와 인간 그리고 창조 질서의 관계에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노력합니다. 1990년에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생태계 위기”와 관련하여 무엇보다도 그 위기의 윤리적 성격을 강조하시면서 “새로운 연대의 절박한 도덕적 요구”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분의 요청은 오늘날 더욱더 절실합니다. 위기 증대의 징후들이 보이고 있는데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것입니다. 기후 변화, 사막화, 광활한 농촌 지역의 황폐화와 생산량 감소, 하천과 지하수 오염, 생물 다양성의 상실, 자연 재해 증가, 적도와 열대 우림 지역의 남벌과 같이 현실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어찌 무관심할 수 있겠습니까? 자연 서식지의 파괴로 주거지와 흔히는 재산까지도 잃고 강제 이주의 위협과 불안으로 내몰린 “환경 난민들”의 현상이 증대하고 있음을 우리가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습니까? 자연 자원 이용을 둘러싼 실질적 잠재적 갈등 앞에서 어찌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생명, 식량, 건강, 발전에 대한 권리와 같은 인간의 권리 행사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입니다.

  5. 명백히, 생태계 위기를 다른 관련 문제들과 분리하여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발전의 개념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간관, 인간 상호 간의 관계와 인간과 나머지 피조물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발전 모델을 장기적으로 깊이 재검토하고, 아울러 경제의 의미와 경제 목표를 고찰하여 그 역기능과 오용을 바로잡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지구의 생태 건강이 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느 때부터인가 세계 곳곳에서 그 증상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인류의 문화적 도덕적 위기가 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깊은 문화적 쇄신이 필요합니다. 인류는 모든 이를 위한 더욱 밝은 미래를 건설하는 데 튼튼한 초석이 될 수 있는 그러한 가치들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위기는, 그것이 경제적 위기든 식량 위기든, 환경적 또는 사회적 위기든, 궁극적으로는 도덕적 위기이며, 그 모든 위기는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위기들은 인간이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합니다. 특히 현재의 위기들은 이전의 성공한 경험들에는 의지하고 실패한 경험들은 단호히 버리는 새로운 참여 방식과 형태를 통한 연대와 절제의 생활 방식을 요구합니다. 그럴 때에만 현재의 위기는 식별과 새로운 계획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6. 우리가 보편적 의미에서 말하는 ‘자연’은 ‘사랑과 진리의 계획’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세계는 “어떤 필연성이나 맹목적 운명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피조물들을 당신의 존재와 지혜와 선에 참여시키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생겨났습니다.” 창세기의 첫 장들은 세상에 대한 지혜로운 계획을 알려 줍니다. 세상은 하느님의 생각에서 생겨났으며, “땅을 가득 채우고” 하느님 자신의 ‘관리자’로서 그 땅을 “다스리도록”(창세 1,28 참조), 창조주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를 그 정점에 둡니다. 창조주와 인간 그리고 창조된 세계의 조화는, 성경에서 묘사하듯이, 아담과 하와의 죄로 파괴되었습니다. 이들 남녀는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했고, 자신들이 그분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땅을 “다스리고” “일구고 돌보는” 일이 변질되어, 인간과 나머지 피조물 사이에 갈등이 생겨났습니다(창세 3,17-19 참조). 인간은 이기심의 지배를 받게 되고, 하느님께서 내리신 명령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여 피조물을 완전히 지배하려는 욕구로 피조물을 착취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내리신 본래 명령의 참 의미는, 창세기에서 명백히 보여주듯이, 단순한 권위의 부여가 아니라 책임의 요구입니다. 선인들의 지혜는, 자연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쓰레기 더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의 계시로 우리는 자연이 창조주의 선물이며, 창조주께서는 인간이 “땅을 일구고 돌보는”(창세 2,15 참조) 데에 필요한 원칙들을 자연에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자연에 내재적 질서를 부여하셨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 속하며,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피조물을 맡기시며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협력자로 행동하는 대신에 하느님을 대신한다고 자처한다면, “인간의 지배보다 더욱 폭력적인” 자연의 반란을 불러오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책임 있게 피조물을 관리하고 돌보며, 가꿀 의무가 있습니다.

  7.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지구상의 여러 나라와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책임 있게 관리할 의무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다.”고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창조 재화는 인류 전체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환경 착취 속도는 현 세대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미래의 모든 세대에게 자연 자원을 공급하는 일을 심각히 위협하고 있습니다. 환경 파괴는 흔히 장기적인 정책들의 결여나 근시안적인 경제 이익 추구에서 기인하고, 결국 이는 피조물에 비극적이고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처하려면, “모든 경제 결정은 도덕적 결과를 가진다.”는 사실을 고려하고 따라서 환경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경제 활동이 요구됩니다. 자연 자원을 이용할 때 우리는 그에 대한 보호와 발생할 수 있는 전체 비용의 필수적인 부분으로서 그에 수반되는 환경적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국제 공동체와 각국 정부들은 환경 남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올바른 신호를 보낼 책임이 있습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자연 자원과 기후를 보호하려면 명확하게 정의된 법칙에 따라, 또한 법률적 경제적 관점에 따라 행동하여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세계의 빈곤 지역들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미래 세대들에게 마땅히 보여 주어야 할 연대를 고려하여야 합니다.

  8. 세대 간의 더 큰 연대 의식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공동의 환경 자원을 우리가 써버리고 그 대가를 미래 세대에게 전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전 세대의 계승자로서 동 세대 동료들의 협력으로 성과를 거두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갚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은 뒤에 인류 가족을 계속 융성케 할 후대 사람들에게 무관심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적 연대는 우리에게 이익일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책임이며, 개별 국가만이 아니라 국제 공동체와도 관계되는 책임입니다.” 자연 자원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즉각적인 이익이 인간이든 아니든 살아 있는 현재와 미래의 모든 피조물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사유 재산의 보호가 재화의 보편적 용도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또한 인간의 활동이 현재와 미래 사람들을 위해 땅의 비옥함을 해치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 공평한 세대간 연대 의식에 덧붙여, 특히 개발도상국과 선진 산업국들의 관계에서 세대간 연대 의식을 새롭게 하기 위한 도덕적 요구도 절실합니다. “국제 공동체는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착취를 규제하는 제도적 수단을 찾고 그러한 과정에 가난한 나라들도 참여하게 하여 미래를 함께 계획해 나갈 절실한 의무가 있습니다.” 생태 위기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연대가 절박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현재의 생태 위기의 원인들 가운데 선진 산업국들의 역사적 책임도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개발 국가들과 특히 개발도상국들도 피조물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점진적으로 효율적인 환경 법과 정책들을 채택할 의무가 그들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원조와 지식 공유와 친환경적 기술 이전에서 사리사욕을 덜 부린다면 이는 좀 더 쉽게 달성될 것입니다.

  9. 확실히 국제 공동체가 당면한 근본 문제 가운데 하나는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는 지속 가능한 공동 전략을 개발하는 일입니다. 이는 기술적으로 발전한 사회들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여 좀 더 검소한 생활 방식을 실천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동시에 환경에 영향을 덜 주는 에너지 형태의 연구와 활용을 촉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나라들이 에너지 자원을 이용하려면 에너지 자원의 세계적인 재분배 역시 필요합니다.” 생태 위기는 진리 안의 사랑에 합당한 가치로 촉발된 피조물에 대한 존중과 온전한 인간 발전을 위한 세계적인 개발 모델을 지향하는 공동 실천 계획을 마련하는 역사적인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인간 중심, 공동선의 증진과 나눔, 책임, 생활 양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 내일 일어날 일을 바라보고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가늠하는 덕인 지혜를 바탕으로 한 발전 모델의 채택을 권유하고자 합니다.

  10. 환경과 지구 자원의 지속 가능한 포괄적 관리는 인간 지식이 과학 기술 연구와 그 실천적 응용에 지혜를 모을 것을 요청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199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요청하신 “새로운 연대”와 제가 ‘2009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호소한 “세계적 연대”는 더 나은 국제 공조를 통한 지구 자원의 관리로 피조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을 모으는 본질적인 자세입니다. 특히 환경의 황폐화에 맞서 싸우는 일과 온전한 인간 발전을 증진하는 일 사이의 관련성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오늘날, 이 두 가지 연대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전체적 발전 노력은 인류 전체의 공동 발전 노력에 결부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 대한 만족스럽고 균형 잡힌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하는 과학적 발전과 혁신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태양 에너지의 엄청난 잠재력을 활용하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한 연구를 촉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물 부족 문제와 지구의 물 순환 체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는 기후 변화로 자신의 안정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지상의 생명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소농들과 그들의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적절한 농촌 개발 전략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삼림 관리, 쓰레기 처리, 기후 변화 대처와 빈곤 극복의 관계를 강화하는 적절한 정책 이행도 모색해야 합니다. 특히 중장기적으로 중대한 혜택을 가져다 줄 국제적 노력과 더불어 담대한 국가 정책이 요구됩니다. 사실 피조물을 존중하고 모든 이의 기본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농업과 산업의 생산 형태를 촉진하려면 순전히 소비중심적인 심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환경의 황폐화라는 무서운 전망이 가시화되었기 때문에 생태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적인 동기는 사랑과 정의와 공동선의 가치로 고취되는 참다운 세계적 연대의 추구이어야 합니다. 제가 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이 문제와 관련하여 “기술은 결코 단순한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자신과 발전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드러내고, 인간이 점차 물질적 한계를 넘어서도록 촉구하는 내적 긴장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술은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맡기신 땅을 경작하고 보존하라고 하신 하느님의 명령(창세 2,15 참조)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기술은 인간과 환경 간의 계약, 곧 하느님의 피조물 사랑을 반영하는 계약을 강화하는 데에 활용되어야 합니다.”

  11. 환경의 황폐화 문제가 사회와 환경, 나아가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지속될 수 없는 우리의 생활 양식과 현재의 생산과 소비 양식을 반성하도록 촉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진선미의 추구가, 그리고 공동 발전을 위한 다른 사람들과의 친교가 소비와 저축과 투자를 결정하게 되는” 새로운 생활 양식에서 나오는 진정한 시각의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평화 교육은 개인과 가정과 공동체와 국가의 담대한 결정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환경을 보호하고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이 책임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보조성의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이 개별 이익을 앞세우지 말고 제 자리에서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 생태학”을 존중하는 생태적 책임을 확산시키기 위해 적극 헌신하는 현대 시민 사회의 여러 단체와 비정부 기구는 의식 고취와 교육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역시 이와 관련하여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모델을 제시할 책임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환경에 대한 관심은 세상을 바라보는 폭넓은 세계관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국가 이기주의를 넘어서 언제나 모든 민족들의 요구에 열려 있는 전망을 향해 나아가는 책임 있는 공동 노력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지구의 어느 곳에서 벌어지는 황폐화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개인과 사회 단체와 국가의 관계는 인간과 환경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진리의 존중과 “진리 안의 사랑”의 특징을 지녀야 합니다. 이러한 넓은 맥락에서 우리는 국제 공동체가 점진적인 군비 축소와 핵무기 없는 세상을 보장하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촉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핵무기의 존재만으로도 지구의 생명과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지속적인 온전한 발전이 위협을 받습니다.

  12. 교회는 피조물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창조주 하느님께서 모두에게 주신 선물인 땅과 물과 공기를 보호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를 자멸에서 구해내기 위하여 공공 생활에서 그 책임을 행사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황폐화는 인류의 공존을 이루는 문화적 양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결국 “‘인간 생태학’이 이 사회 안에서 존중받을 때, 환경 생태학도 혜택을 받습니다.” 젊은이들이 가정과 사회 전체 안에서 자신을 존중하도록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환경을 보호하라고 요청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연이라는 책은 하나이고 나눌 수 없는 것으로 환경뿐만 아니라 개인과 가정, 사회 윤리도 포괄합니다.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개인은 물론 타인과의 관계를 모두 고려하는 인간에 대한 의무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저는 생태적 책임 의식을 더욱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기꺼이 격려합니다. 이 책임은 「진리 안의 사랑」에서 언급한 것처럼 참다운 “인간 생태학”을 수호하여 모든 단계와 상황에서 인간 생명의 불가침성, 인간의 존엄, 인간이 이웃 사랑과 자연 존중을 배우는 가정의 고유한 사명을 강력하게 재확인할 것입니다. 사회의 인간 유산을 수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의 유산은 자연 도덕률에서 나오고 그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인간 존중과 피조물 존중의 근거가 됩니다.

  13.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가까이 할 때 평화와 고요, 그리고 새로운 활력의 충전을 경험하게 된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상호성이 존재합니다. 피조물을 돌보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피조물을 통하여 우리를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면 자연을 절대화하거나 인간보다 더 중시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교회의 교도권이 생태중심주의와 생물중심주의로 촉발된 환경 개념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는 그러한 개념이 인간과 다른 생명체 간의 정체성과 가치의 차이를 없애버리기 때문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의 “존엄”에 대한 이른바 평등주의적 관점을 명분으로 한 그러한 개념은 인간의 정체성과 탁월한 소명을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또한 그러한 개념은 인간 구원의 원천을 순전히 자연주의적 차원에서 이해된 자연에서만 찾는, 새로운 우상숭배에 물든 새로운 범신론에 빠지게 됩니다. 한편으로 교회는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피조물을 책임지는 청지기와 관리자의 역할을 맡기시며 당신의 작품에 새겨 넣으신 “원칙”을 존중하면서 이 문제에 균형을 갖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물론 그러한 역할을 남용해서는 안 되지만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능력과 기술을 절대화하는 반대 입장도 자연뿐 아니라 인간 존엄 자체도 심각하게 공격하는 것이 됩니다.

  14.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 모든 사람이 하느님과 인간과 피조물 전체의 불가분의 관계를 깨달으면 선의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화는 더욱 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계시의 빛과 교회의 전통에 충실하여 저마다 여기에 공헌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부의 창조 사업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 만물을”(콜로 1,20) 하느님과 화해시키신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의 빛으로 우주와 그 놀라운 장관을 바라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에게 거룩한 영을 보내시어 역사의 과정을 이끄시고 구세주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시는 날을 앞당기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날 정의와 평화가 영원히 머무는 “새 하늘과 새 땅”(2베드 3,13)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하여 자연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의무입니다. 환경 보호는 우리가 새롭고 조화로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절박한 과제입니다. 또한 환경 보호는 모든 이를 위한 더 나은 미래의 전망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 주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지도자들과 인류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분명히 알이야 합니다. 피조물의 보호와 평화 건설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모든 신자들이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며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려,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라는 절박한 호소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바티칸에서
2009년 12월 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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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김대중 전 대통령 레퀴엠(추모곡)    09.08.2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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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코너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 관련된 공지사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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