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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통해 본 사도 바오로의 영성
조회수 | 3,119
작성일 | 08.07.21
서 론

어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축일 전일부터 앞으로 일년동안 사도 바오로의 해를 지내게 된다. 여러 가지 행사와 프로그램들이 준비되고 있는 줄 알지만, 정작 바오로 사도의 영성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다른 어떤 것 못지 않게 중요할 것이다. 오늘 대축일 강론을 준비하면서 급한대로 거칠게 성서를 통해서 본 ‘사도 바오로의 영성’에 대하여 생각하고 정리하여 보았다. 전문적으로 연구한 것도 아니고, 평소에 성서만 보고 바오로 사도의 삶과 가르침에 대하여 생각해왔고, 또 그것의 전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기에 다른 사족을 달지 않고, 거의 성경 내용을 인용하며 그 영성을 살펴보았다.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서를 통해 본 사도 바오로의 영성.

서론

본론

1) 회개(회심)의 영성
2) 변치않는 신심의 영성(목표를 향해 끝까지 나아가는 영성)
3) 증거하고 전교하는 영성
4) 십자가의 영성
5) 신자(백성)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는 영성 - 교회의 영성
6) 성령의 영성
7) 끝까지 달려가는 순교의 영성.

결론- 끝까지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영성.

수원교구 전합수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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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개(회심)의 영성

처음에는 그리스도교의 가장큰 반대자, 박해자였지만,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체험한 후 180∘변하여 그리스도의 가장 큰 증거자와 전파자가 되었다. 우리도 이같이 우리의 삶을 근본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회심(회개)를 하여야 하겠다.

사도행전 9장 17절-22절

17 그래서 아나니아는 곧 그 집을 찾아가서 사울에게 손을 얹고 이렇게 말하였다. "사울 형제, 나는 주님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여기 오는 길에 나타나셨던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보내시며 당신의 눈을 뜨게 하고 성령을 가득히 받게 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회복하였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신도들과 함께 지내고 나서
20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21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하여 "저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못 살게 굴던 자로서 신도들을 잡아서 대사제들에게 끌어가려고 여기 온 자가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2 그러나 사울은 더욱 힘있게 전도하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언하므로 다마스쿠스에 있는 유다인들은 모두 당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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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변치않는 신심의 영성

바오로 사도는 한번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한 후,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직무를 수행한 후 그는 결코 이를 포기하거나 놓아버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끝까지 달린 사람이며, 뒤를 돌아보거나 두리번거리고 헷갈림이 거의 없이 오직 주님만을 보고 나아간 분이시다. 주님의 뜻을 강하게 느끼고 은혜를 크게

받을 때는 정말 온 마음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그 뜻을 좇는다고 결심하고 말하고는, 상황이 좀 편해지고 달라졌을 때는 금방 다르게 행동하는 요즘 이 시대의 우리 신자들의 모습을 볼 때 정말

깊이 생각하고 본받아야 할 ‘변치 않는 신심’의 대표적인 모습이 아닌가 한다.

필립비 3장 12절-17절

12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13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14 목표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15 그러므로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문제에 관해서 다른 생각을 품었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것까지도 분명히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16 어쨌든 우리가 이미 이룬 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 같이 앞으로 나아갑시다.
17 형제 여러분, 나를 본받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과 같이 우리를 모범으로 삼고 따르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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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증거하고 전교하는 영성

바오로 사도의 삶 전체는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증거하는 삶이었습니다. 30살 정도에 예수님을 체험하고 64년경에 순교하기까지 바오로는 오직 그리스도는 이방인들에게 전하고, 심지어 베드로와 예루살렘의 유다인들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참된 가르침에 대하여 증언하였고, 이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그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고린 2서 1장 8절-10절

8형제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알리려고 합니다. 그 환난은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견디어 낼 수 없을 이 만큼 심해서 마침내 우리는 살 희망조차 잃게 되었습니다.
9그러나 이렇게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10하느님께서는 과연 그렇게 어려운 죽을 고비에서 우리를 건져 내 주셨고 앞으로도 건져 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께서 앞으로도 건져 내 주시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 2서 11장 23절-29절

23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들입니까? 미친 사람의 말 같겠지만 사실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는 그들보다 낫습니다. 나는 그들보다 수고를 더 많이 했고 감옥에도 더 많이 갇혔고 매는 수도 없이 맞았고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24유다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25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표류한 일도 있습니다.
26자주 여행을 하면서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가짜 교우의 위험 등의 온갖 위험을 다 겪었습니다.
27그리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 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28이런 일들을 제쳐 놓고라도 나는 매일같이 여러 교회들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29어떤 교우가 허약해지면 내 마음이 같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어떤 교우가 죄에 빠지면 내 마음이 애타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진력을 다해다갔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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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십자가의 영성 (자신의 약점 안에 은총을 발견하는 영성, 십자가를 끌어안고 가는 영성)

바오로사도는 그리스도 복음의 신비가 십자가의 신비임을 통찰하고 있었고, 이는 바로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에서부터 드러남을 체험하고 있었다. 내 몸의 가장 약한 부분, 숨기고 싶은 부분을 통하여 하느님은 당신 힘을 드러내 보이고 계시며, 공동체에도 시련과 고통을 통하여 성장시켜 주심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는 ‘십자가의 신비’가 바로 참된 지혜임을 말한다.

고린 1서 1,22-25

22 유다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이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23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는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입니다.
24 그러나 유다인이나 그리이스인이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그가 곧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25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

고린 2서 11,30 ; 12,5-10

30 내가 구태여 자랑을 해야 한다면 내 약점을 자랑하겠습니다.
5 나는 이런 사람을 자랑하려고 하며 나 자신에 관해서는 나의 약점밖에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6 내가 다른 것도 자랑할 마음이 있어서 자랑한다하더라도 사실대로만 말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 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에게서 보고 듣고 한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게 될까봐 나는 자랑을 그만 하겠습니다.
7 내가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 해서 잔뜩 교만해질까봐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병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나를 줄곧 괴롭혀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8 나는 그 고통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시기를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번번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나에게 머무르도록 하려고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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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자(백성)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는 영성.

신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단 내 신자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동족 유대인을 사랑하고 그들의 구원을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사랑(로마서 10장 1절- 2절)

1형제 여러분, 나는 내 동족이 구원받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원하며 하느님께 간구합니다. 2나는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열성만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여러 교회에 대한 사랑(로마서 10장 27절- 30절)

27 그리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28 이런 일들을 제쳐놓고라도 나는 매일같이 여러 교회들에 대한 걱정에 짓눌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29 어떤 교우가 허약해지면 내 마음이 같이 아프지 않겠습니까? 어떤 교우가 죄에 빠지면 내 마음이 애타지 않겠습니까?
30 내가 구태여 자랑을 해야 한다면 내 약점을 자랑하겠습니다.

그 외 (고린2서 9.12-18.)

12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서 거두어갈 권리를 가졌다면 우리에게는 더 큰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참고 지냈습니다.
13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제단을 맡아보는 사람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14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정해 주셨습니다.
15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써본 일이 없습니다. 또 내 권리를 주장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내가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한다는 이 긍지만은 아무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17 만일 내가 내 자유로 이 일을 택해서 하고 있다면 응당 보수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 자유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 일을 내 직무로 맡겨주신 것입니다.
18 그러니 나에게 무슨 보수가 있겠습니까? 보수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응당 받을 수 있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낮아지며 같아지는 영성

고린 2서 9장 19절-23절

19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는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0 내가 유다인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유다인처럼 되었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나 자신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얻으려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21 나는 그리스도의 법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실상은 하느님의 율법을 떠난 사람이 아니지만 율법이 없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율법이 없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22 그리고 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
23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다 같이 복음의 축복을 나누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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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령의 사도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 생전에는 만났다는 기록이 없다. 다른 12사도처럼 그리고 그 외의 중요한 사도들처럼 예수님께서 생전에 만나서 교육을 시키거나 제자로 양성한 대상이 아님을 확실하다. 즉 바오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체험하고 그 가르침을 받은 것은 거의 전적으로 ‘성령의 힘과 작용’에 의하여서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다마스쿠스의 하나니아처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보충해주고 전달해준 사람들의 역할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바오로는 절대적으로 성령의 가르침에 의존하고 영향을 받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바오로는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도 성령의 역할과 작용, 그리고 그 가르침에 대하여 정통하고 있고, 오늘날 교회에도 필수적인 가르침을 전달하고 있다.

성령의 역할과 은사에 대하여 : 고린 1서 12장 1-11절.
이상한 언어의 활용에 대하여 : 고린 1서 14장.
성령의 열매에 대하여 : 갈라디아 5장 22-26절.
성령께서 하시는 기도와 이루시는 일에 대하여 : 로마서 8장 26-28절.

신비체험에 대하여 강조하지 않음

고린 2서 12장에는 천국에 들여올려진 듯한 체험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바오로 사도가 천국에 들여 올려 진 체험을 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가 주님으로부터 신비스러운 영적 체험을 한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하겠다.

2 내가 잘 아는 그리스도교인 하나가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까지 붙들려 올라간 일이 있었습니다. -몸째 올라갔는지 몸을 떠나서 올라갔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3 나는 이 사람을 잘 압니다. -몸째 올라갔는지 몸을 떠나서 올라갔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4 그는 낙원으로 붙들려 올라가서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러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신비스런 체험을 하고 주님의 현존을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사도 9, 1-19; 22,4-21; 26,9-18) 그러나 루가 사가가 전하는 이러한 신비스런 내용과는 달리 바오로 사도 자신은 매우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회심내용을 전하고 있다. (갈라1,15-20) 고린 2서에 나오는 신비체험은 바오로 서간 전체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신비체험이지만 이 역시 바오로는 체험당사자를 3인칭으로 써서 최소한의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그 내용도 자신이 체험한 천국 이야기를 장황하게 떠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바탕으로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는 주님의 살아있는 음성(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인 것을 볼 수 있다. 요즘 성령기도회나 그 외 신흥영성 등의 영향으로 ‘말씀’자체보다 신비스런체험 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러한 현상에 쏠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누구보다 더 많은 체험을 한 바오로 사도가 항상 신비체험보다는 살아있는 말씀과 십자가의 신학에 충실하였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 “사도 바오로와 성령”에 대한 것은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가르침 “타르수스의 바오로(Paul of Tarsus)"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홈 주인인 오요안 세레자 요한 신부가 편집)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일찍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열두 사도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밖에 중요했던 초대 교회의 인물을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그들 또한 그들의 생애를 주님과 복음 그리고 교회를 위해 보냈습니다. 그들은 사도행전에서 루카가 표현했던 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사도 15,26) 형제요 자매들이었습니다.
 
이들 중 첫 번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부르심으로 진정 사도가 되었던 타르수스의 바오로입니다. 그는 단지 교회의 근원이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 역사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별과 같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바오로를 수많은 천사와 대천사들보다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찬사를 보냈습니다(Panegirico 7,3 참조). 단테도 신곡에서 사도행전의 루카 복음사가의 말(9,15 참조)에 영감을 얻어 바오로를 간단하게 "선택된 그릇"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도구임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열세 번째 사도", 또는 "주님 다음으로 첫 번째"라고 불렀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정보와 생각들의 근원이 되는 분은, 예수님 다음으로 사도 바오로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루카가 우리에게 전달해준 것들뿐만 아니라, 바오로 자신의 손에서 직접 우리에게 전해진 것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그의 인격과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바오로 서간’이라고 불리는 것들입니다.

루카에 의하면, 바오로 사도의 이름이 본래는 '사울'이었고(사도 7,58; 8,1 참조), 히브리말로 구약의 사울 임금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난 타르수스는 아나톨리아(Anatolia)와 시리아(Syria)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에 '디아스포라의 유대인'이었습니다. 일찍이 그는 위대한 랍비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모세율법의 근본을 공부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유학했습니다(사도 22,3).
 
그는 또한 천막을 만들고 파는 일을 배웠으며(사도 18,3 참조), 이는 나중에 교회에 부담을 주는 일 없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장만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사도 20,34; 1코린 4,12; 2코린 12,13 참조).

한편 그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스스로 일컫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알게 된 것은 그에게 결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삶의 중심을 율법이 아닌,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우리 죄를 용서받게 한, 예수 그리스도에 두는 새로운 믿음 -소위 새로운 길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열성적인 유대인이었던 그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심지어는 그들이 괘심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예루살렘 밖으로 추방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느꼈습니다.

그가 말했듯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신 것"(필리 3.12)은 서기 30년 초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이었습니다. 루카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이 어떻게 그에게 다가와서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는지를 충분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자신은 그의 서간에서 그것이 단순히 환시일 뿐 아니라(1코린 9,1 참조) 계시이고(2코린 4,6참조), 그 무엇보다도 부활하신 그분과 만나도록 예정하여 부르시고 계시하셨음을 분명히 말합니다(갈라 1,15-16 참조)

사실상 바오로는 자신의 회심이 스스로의 생각이나 고민의 결과가 아니라, 예견할 수 없었던 하느님의 뜻이었고 은총이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마 1,1; 1코린 1,1)로,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도가 되었음"(2코린 1,1; 에페 1,1; 콜로 1,1)을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후부터 그에게 가치 있었던 모든 것들이 역설적으로 해로운 것이 되고 무가치한 것이 되었습니다(필리 3,7-10 참조).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의 모든 힘과 열정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위한 일에 전적으로 쏟았습니다. 그는 전혀 주저함 없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고자”(1코린 9,2) 했던 사도 그 자체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한가운데 두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할 때 우리 존재가치는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그분의 말씀에 하나 됨으로써 확고해질 것입니다. 나아가 그분의 자비 안에서 다른 모든 가치들도 온갖 더러운 것들로부터 벗어나 정화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에게서 얻은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그의 사도직 특성인 보편적 포용입니다. 즉 그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예외 없이 모두에게 구원을 주신 하느님을 알려야 하는 이방인과 이교도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 나아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위해 예정되어 있는 은총을 알리기 위한, 이 기쁜 소식(복음)을 전파하는데 헌신하였습니다. 그는 첫 순간부터 이러한 일들이 단순히 유대인이나 일정 그룹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를 가지며, 누구나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 모두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선교여정에 있어 출발점이 되었던 곳은 시리아에 있었던 안티오키아 교회였습니다. 그곳은 복음이 그리스인들에게 처음 전해진 곳이었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 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된(사도 11,20.26)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바오로 사도는 처음 키프로스로 갔고, 그리고 아시아의 다른 지역(피시디아, 이코니온, 갈라티아)으로, 나중에는 유럽의 마케도니아와 그리스까지 가서 선교활동을 수행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곳으로는 에페소, 필리피, 테살로니카, 코린토 그리고 베레아, 아테네, 밀레투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의 사도직에 있어 어려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용기 있게 맞섰습니다. 그는 이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수고 … 옥살이… 매질… 죽을 고비…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했습니다.
 
여행하는 동안에 자주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그 밖의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2코린 11,23-28). 또한 로마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는(15. 24, 28) 서쪽 끝 스페인까지, 심지어는 지구 끝이라고 알려져 있는 곳일지라도 어디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떠나고자 하는 그의 계획이 나타납니다. 이런 분을 우리가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성품의 사도를 우리에게 주신 주님께 어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난관에 부딪쳤을 때, 그 어느 것으로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면 그렇게 어려운, 때로는 절망적인 상황에 맞서 이겨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바오로에게 있어 이 가치와 이유는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 살아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5,14-15).

사실 바오로 사도는 - 우리가 당신의 시신을 보관하고 경배하고 있는 여기 - 로마의 네로황제 치하에서 있었던 피의 순교, 그 최고의 증인이 되셨습니다. 로마의 주교이자 저의 사도적 선임자인 교황 클레멘스 1세는, 초세기의 마지막 해에 바오로 사도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질투와 여러 가지 불협화음 때문에 바오로는 한 사람이 인내의 상을 어떻게 얻어내는 지를 어쩔 수 없이 보여주었습니다. … 전 세계에 의로움을 전하고 서쪽 끝 그 한계점에 도달한 후 그는 정치적 지도자 앞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이 세상을 떠나 거룩한 하느님의 나라에 도착했고, 하느님의 구원의 가장 위대한 모델이 되었습니다(코린토 서간, 5).

주님! 사도께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1코린 11,1) 라고 간곡히 권고하신 바를 우리가 성실히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Copyright 2006 - Libreria Editrice Vaticana

번역 : 수원교구 복음화국 복음화연구봉사자회 외국어 번역 팀· 편집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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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끝까지 달려가 순교하는 영성.

바오로 사도는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전교하고 교회가 이루어지면 그곳에 정주하고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직 한 목표 즉 ‘그리스도’라는 목표를 향하여 달려나는 사람이었고, 이는 그가 삶을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디모 2서 4, 6-8.

6 나는 이미 피를 부어서 희생제물이 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왔습니다.
7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고린 1서 9장 24절-27절

24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
25 경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애쓰지만 우리는 불멸의 월계관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을 하되 목표 없이 달리지 않고 권투를 하되 허공을 치지 않습니다.
27 나는 내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 언제나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내가 남들에게는 이기자고 외쳐놓고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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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론 : 끝까지 나아가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영성.

바오로 사도의 목표는 적당하게 주님말씀을 실천하고 적당히 열심한 또는 적당히 훌륭한 신자나 존경받는 사도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러한 소리는 그에게 나아갈 길을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쓰레기( 필립3,9)와 같은 것일 뿐이었다.

바오로 사도가 진정으로 추구한 것은 온전히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삶이었다. 겉모양으로만 일치하는 것이 아니고, 내적으로 온전히 일치하여, 아예 자신 안에 그리스도가 함께 하며, 그리스도가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고린 2서 13,5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계십니까? 만일 깨닫지 못하신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낙제한 것입니다.”

고린 1서 10,31; 11,1

31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으십시오.

갈라 2,19-20

19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필립비 3,7-9

7 그러나 나에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해물로 여겼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해물로 생각됩니다.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삶과 그 정신(영성)을 돌아보면, 이와같은 대단한 삶을 과연 한 인간이 살 수 있을까 하고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원동력은 무엇일까, 무엇이 한 인간을 이와 같이 복음의 위대한 사도가 되게 한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의 가장 깊은 곳을 찾아 살펴볼 때, 그 힘의 원동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과 그분에 대한 사랑과 열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고 한 진리를 바오로는 바로 살아계신 하느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디모 2서 4장. 7절-8절

7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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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채 [비회원]
참으로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삭제 |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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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를 통해 본 사도 바오로의 영성  [9]   08.07.21 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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