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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율법에 대한 바오로의 태도는 어떠한가?
조회수 | 1,825
작성일 | 09.09.05
바오로는 율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오로는 가끔 율법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가? 율법에 대한 태도는 대우 복잡한 바오로의 신학 주제 가운데 하나다. 나는 앞에서 바오로가 체계적 사상가는 아니라고 말했다. 바오로는 자신의 사상을 하나로 모아 요약·정리하지 않았기에 바오로의 율법 개념이 때때로 혼란스럽고 모순되어 보이더라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바오로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 바오로의 율법 개념을 재평가하고 있다.(새로운 관점에 대해서는 질문69 참조)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배경이 되는 구약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유다교를 특징짓는 율법은 하느님의 거룩한 가르침으로 인간의 행위 가운데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을 계시했다. 바오로는 서간 곳곳에 율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짧게 적어 놓았다. 율법에 대해 때로는 길게 말하면서 생각을 요약하기도 한다. 특히 갈라티아 3장과 5장, 로마 2-4장과 7장에 나오는 내용을 중심으로 바오로의 율법 개념을 종합해 보자.

첫째, 바오로는 율법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취한다. 율법은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뜻을 알아 실천하도록(로마 2,17-18) 돕기 위해 하느님이 내리신 선물이었다. 율법은 버거운 짐이 아니라 판단의 척도, 곧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과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판단하는 방식이었으며 한때 감시자 역할을 했다.

율법의 목적은 마치 개인교사가 아이들의 행위를 지도하듯 사람의 행위를 감독하는 것이었고, 율법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의식하게 하는 도구였다.(3,20; 7,7) 바오로는 율법이 문자 그대로를 의미한다거나 외적 준수를 요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더 중요한 것은 율법의 내적 차원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몸에 할례를 받지 않았으면서도 율법을 준수하는 이들이, 법전을 가지고 있고 할례를 받았으면서도 율법을 어기는 그대를 심판할 것입니다. 겉모양을 갖추었다고 유다인이 아니고, 살갗에 겉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할례가 아닙니다.”(2,27-28)

율법은 기계적으로 되풀이해서 듣거나 학습하는 것은 물론 실천으로 옮겨야 얻을 수 있다.(2,13) 바오로는 자신을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사람(필리 3,5-6)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율법을 ‘거룩한 것’(로마 7,12)으로 생각한다.

둘째, 바오로는 율법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율법의 한계를 인정한다. 율법은 규정을 지키는 데 급급한 사고방식을 갖게 할 수 있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는 율법이 죄와 동등하다고 말하는 것을 피아면서(7,7) 율법이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보았다. 바로 이 때문에 구원을 위한 수단이 필요했다.

한때 율법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도록 돕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율법은 죄를 감소시키기보다 죄가 더욱 늘어나게 했다. 유다인이 의롭게 사는 데 이득이 되기보다 지켜야 할 의무라는 짐을 지우는 것으로 끝났다. 율법은 죄가 늘어나게 했지만 역설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총이 넘쳐흐르게 하는 역할도 했다.(5,20)

결국 율법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인간의 죄라는 문제를 일시적으로 바로잡았을 뿐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 따라 새롭게 살아가는 생활 방식이었다. 바오로는 이것이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는다. 예수님의 도래는 율법을 더 이상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았지만 바오로는 율법이 예수님에 의해 폐지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예수님은 율법을 지지했다. 예수님만이 홀로 가장 충만하게 율법을 살아낼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인간도 할 수 없는 일, 곧 율법을 완성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스도처럼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율법을 완성한다.(로마 13,8-10; 갈라 5,13-14)

그렇다면 율법에 대한 바오로의 태도는 일관성이 없는 것인가? 만일 유다인의 처지에서만 생각한다면 그렇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바오로가 율법을 유다인은 물론 이방인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어떤 학자들이 제안하는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불일치는 바오로가 율법에 대해 일관성 없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줄어들게 할 수 있다. 이제 그리스도가 왔고 이방인은 유다인과 나란히 그리스도를 포옹하게 되었으므로 율법은 더 이상 이전에 했던 역할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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