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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 바오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란 무엇인가?
조회수 | 1,645
작성일 | 09.09.05
‘새로운 관점 new perspective’이라는 말은 샌더스E.P. Sanders의 선구자적 책「바오로와 팔레스티나 유다이즘」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이 말을 만들어 사용한 사람은 던Dunn이다. 사실 샌더스를 계기로 지금까지의 유다교에 대한 견해, 곧 ‘복음’ 지향적 그리스도교와 비교하여 유다이즘을 엄격하게 율법적인 종교로 보는 견해가 수정되었다.

또한 이 책은 ‘복음’과 ‘율법’에서 더 나아가 세부적으로 ‘행위와 의로움’, ‘은총과 의화’, 율법의 종살이와 복음에서 비롯된 자유를 대조하게 했다. 율법과 복음 사이의 날카로운 대조는 마르틴 루터시대부터 사람들의 사고를 크게 지배해 왔고, 바오로 신학을 대표하는 상표처럼 여겨졌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간단히 말해 ‘새로운 관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사실 유다교는 율법을 지키는 것에 얽매인 종교가 아니다. 선임 학자들의 연구 위에 이론을 구축한 샌더스에 따르면 유다교는 ‘약속 또는 계약에 따른 율법주의’ 종교였다. 이는 율법(토라)을 지켜서가 아니라 계약을 통해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에 속한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어떤 것에 대한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계약에 제대로 묶여 있으려면 율법의 계약 조건을 충실하게 지켜야 했다. 하느님의 법에 대한 순종은 깔끔하게 정돈된 율법주의가 아니라 계약을 통해 부여된 자신의 정체성에서 우러나온 삶이다.

이런 관점에 기초하여 바오로가 구원을 대가로 받기 위해 윤리적으로 항상 올바르게 처신하고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음을 이해해야 한다. 율법에 대한 바오로의 가르침은 계약 안에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누리는 실제적이고 살아 있는 체험으로 이끈다. 그것은 계약의 구성원으로서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다.

샌더스는 바오로가 율법에 대해 전적으로 일관성 있게 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바오로는 체계적 사상가가 아니었다. 바오로는 다양한 답변을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서간을 썼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새로운 관점’은 오랫동안 답변을 필요로 했던 문제, 곧 그리스도인들이 유다이즘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율법 문제에 대해 대조적 태도를 가진 듯이 보이는 바오로를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에 대해 명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학문적 작업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어떤 바오로 학자도 이 작업이 내포한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 1세기 유다교가 매우 복잡하고 단일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학계의 발견처럼 바오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유다 율법에 대한 초기 관점에 약점이 있었음을 알게 했다. 이 논쟁으로 생긴 긍정적 결과는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대화 가능성이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학자들 중에는 ‘더 새로운 관점’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새로운 관점’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변화 때문에 올바른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된다 하더라도 율법에 충실하라는 바오로의 요구를 소홀히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학문적 대화는 바오로의 율법 개념에 대해 확실한 답변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일으킬 뿐 아니라 좌절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진행 중인 이 주제에 대한 토론은 바오로의 표현대로 바오로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든 사람에게 아주 유용하다고 말하고 싶다. 성경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각 세대가 성경의 주제와 씨름함으로써 다음 세대와 다른 면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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