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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 ‘구원, 속량, 의화, 영광 받음, 높이 올림’은 같은 뜻인가?
조회수 | 2,244
작성일 | 09.09.05
‘구원, 속량, 의화, 영광 받음, 높이 올림’처럼 바오로가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어떤 것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는가? 이 질문은 이러한 개념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음을 드러내며 그 상황을 이해하게 한다. 모든 개념을 중요성을 지닌 순서대로 정렬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바오로 서간에는 몇 개의 용어가 겹쳐 나오기도 하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적절하게 구분할 수도 있다.

문제를 덜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 바오로 서간에서 발견되는 여러 관련 용어뿐 아니라 이 질문에 나오는 용어들을 좀 더 간결하고 명료하게 정의해 보자. 먼저 바오로 신학의 기본이 무엇인지 개관해 보자.

바오로 사상의 핵심에는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하는 결정적 도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확신이 있다. 때때로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애매모호하다고 인정하는) ‘그리스도 사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여기에는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개념이 포함된다.

바오로는 체계적으로 분명하게 설명하는 기술을 가진 신학자로서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 사건’의 여러 모습에 대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명확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용어에는 여러 가지 개념이 뒤섞여 있다.

어떤 면에서 바오로는 이 복잡한 실체를 묘사하기 위해 어떤 용어를 빌려 은유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심으로써 완성된 현실은 묘사가 가능함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바로 이 때문에 다양한 용어가 생겨났다.

그리스도 사건이 가져온 결과는 의화와 구원과 속량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개념을 보충하는 용어들은 성화, 높이 올림, 영광 받음, 그리고 화해다. 이 가운데 어떤 용어에 대한 설명은 다른 답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이 용어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내가 판단하기에 이 모든 개념을 포함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 따라서 어느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고 어느 것이 부차적인지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서간에서 사용된 빈도수로 평가한다면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의화다.(질문 66 참조) 앞에서 이미 보았듯이 의화justification는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을 ‘의롭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행위다. 의화는 신앙(믿는 사람과 그리스도의 인격적 관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분명 그리스도 사건의 가장 중요한 결과다.

구원salvation도 바오로에게 중요한 개념이다. 구원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용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구원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구원은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행하는 궁극적 구원자로서 하느님을 소개하는 구약을 배경으로 한다.(이사 45,15; 즈카 8,7) 바오로는 그리스도 사건이 가져온 가장 중요한 결과로서 ‘구원’과 이 어근에서 파생된 용어들을 사용하는데, 흥미롭게도 오직 두 번 예수님을 ‘구세주 또는 구원자’(필리 3,20; 에페 5,23)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바오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사악한 죄의 결과에서 구원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충만한 구원을 이루려면 궁극적으로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날이 올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로마 13,11; 2코린 6,2; 1테살 5,8)

속량 또는 구속redemption도 ‘그리스도 사건’과 관련된 용어인데, 이는 어떤 사람을 과거의 처지에서 ‘되돌려 산다.’는 개념에서 기원한다. 이것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했던 것처럼(이사 43,14; 시편 78,35), 또는 주인이 종에게 하는 것처럼(탈출 21,30) 종살이나 매여 있는 처지에서 어떤 사람이 ‘값을 치르고 풀려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바오로에게 한 행동은 구속이라는 관대한 행동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내놓고 우리를 다시 사셨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이라는 결정적 가격을 지불했고, 그 결과 우리는 자유를 얻었다.

바오로는 예수님을 ‘구속자’라고 부르지 않았고 다만 예수님이 ‘속량’이 되셨다고 말한다.(1코린 1,30; 로마 3,24) 1코린토 1장 30절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면서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라는 말을 나열한다.

성화 또는 거룩함sanctification도 그리스도의 행위가 낳은 결과다. 이 용어는 성령의 활동(로마 15,16)과 밀접하게 관련되며 예수 그리스도한테서 왔다(1코린 1,2). 성화의 뿌리가 되는 개념은 당연히 하느님처럼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오직 하느님만이 거룩하시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행위에 의해, 그리스도 때문에 거룩하게 된다. 바오로에게 성화는 그리스도 사건의 부차적 결과다.

성화는 구원과 의화 다음에 오며(로마 6,19.22) 영원한 생명으로(6,20-23) 이끌어 준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 때까지는 성화되지 않겠지만, 성화는 이미 그리스도한테서 왔기 때문에 모든 신앙인 공동체는 마땅히 ‘성도들’(로마 1,7; 1코린 1,2)이라고 불릴 수 있다.

드높이 올림exaltation과 영광 받음 glorification도 서로 관련된 용어로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죄에 대한 승리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의 주권과 연결된다. 하느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드높이 올리시고”(필리 2,9) 당신 오른편에 앉게 하셨다(로마 8,34). 드높이 올림은 부활과 열광에 싸인 승천과 권능을 띤 하느님의 아들로서 오른편에 앉는 것을 포괄하는 용어다.

드높이 들러 올렸다는 것은 하느님이 예수님을 당신 아들로 책봉하셨다는 것이다.(1,4) 영광을 받았다는 것은 부활 후 천상에 거주하시는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과 연결된다. 구약성경에서 ‘영광’은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과 연결된 눈부신 모습 가운데 하나다.(탈출 24,17; 시편 19,2) 이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한다.

그리스도의 영광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면은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점이다. 신앙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나누는 우리 역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로마 8,29-30) 전형적인 바오로의 방식에 다르면 그것은 이미 일어난 현실이자 와야 할 미래다. 의롭게 된 사람들은 이미 영광스럽게 되었지만(8,30) 우리는 영광스럽게 완전히 변화되기를 기다린다.(1코린 15,43-44; 필리 3,20-21)

지금까지 여러 용어들에 대한 개념을 요약해 보았는데, 우리는 그 용어들이 정확하게 같은 것이 아니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목록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의화와 구원이 성화와 영광보다 먼저 온다. 그러나 그 구분을 지나치게 밀어붙이지는 말아야 한다. 바오로는 이렇게 하는 것을 우려한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셧습니다.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주셨습니다.”(로마 8,29-30)

한마디로 말해 이 모든 용어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운 은총에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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