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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9. 종말에 대한 바오로의 묘사는 정확한 계시인가?
조회수 | 2,122
작성일 | 09.12.10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에 대해 바오로는 정확하게 묘사하는가? 이 질문은 하느님의 다스림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종말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묘사하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의 한 대목을 떠올리는 것 같다. 그 대목은 인용할 가치가 있다.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1테살 4,16-17)

우리는 대부분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처럼 바오로도 주님이 재림하여 영원히 지속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리라고 기대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이를 예고했고, 예수님이 심판을 위해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조만간에 그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했다.(마태 16,27-28;24,30; 마르 14,62)

이런 기대를 ‘도래’를 뜻하는 ‘파루시아’라고 부른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처럼 빨리 그리스도의 재림이 일어나지 않자 사람들은 근심에 빠졌다. 여러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현대 학자들이 ‘파루시아의 지연’이라고 부르는 문제 때문에 혼란을 겪었다.

바오로가 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흥미롭다. 바오로는 이러한 종말론적 기대의 영향을 받았으며 묵시문학 사상(질문 18 참조)은 바오로가 주장하는 윤리적 가르침의 틀을 형성했다.(제 6부 참조) 한편 바오로는 공동체들이 이런 기대와 관련된 세부 사항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을 걱정하면서 이 문제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런 문맥 안에 놓아야 한다. 바오로는 참으로 그 시대 사람으로서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묘사할 때 구약성경 예언서에 나오는 묵시문학적 상상력과 표현법을 이용한다.(요엘 2,1-2; 스바 1,15-16; 즈카 9,14; 이사 27,13) 명령의 외침과 나팔소리와 대천사의 소리 같은 요속라 이에 포함된다.

오늘날에도 그런 영상과 사건이 진행되는 순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근본주의자들의 대중 서적 시리즈는 ‘뒤에 남겨진 left behind’이라는 말로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한다.(2002년 7월 1일 The Times 표지 기사 참조) 그러나 바오로는 하느님의 다스림이 궁극적으로 실현될 때 일어날 사건의 청사진을 보여주지 않고 종말에 하느님이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궁극적으로 승리하실 것이라는 전형적인 묵시문학적 관점을 제공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하는 영상은 하늘이 위에 있고 ‘셔올’(지하 세계)이 아래에 있는 삼층 구조의 우주를 생각한 바오로 시대 사고와 일치한다. 물론 이 사건들이 어떻게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바오로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신비 체험을 인정하면서도(2코린 12, 1-7) 적절한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마지막 날’에 대한 가르침은 바오로 시대의 전통적 이해와 맞아떨어지는 것이고 그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바오로의 의도는 주님의 날이 참으로 올 것이기에 희망을 가지라고 공동체를 격려하는 것이다.(1테살 4,18.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주님의 날은 ‘마치 밤도둑처럼’(5,2)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교파가 종말에 일어날 일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높이 올림’에 대해 언급하겠다. 가끔 세상 끝 날에 대해 쓴 책들이 붙티나게 팔리고 거기에 빠져버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있기 때문에 들어 올림에 대한 현대 개념을 설명해야 한다.

들어 올림 또는 들려 올라감이라는 말은 1테살로니카 4장 17절의 라틴어 번역(rapere: 붙잡다·잡아채다)에서 나왔는데, 이는 근본주의자 집단에서 사용하는 일상어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상의 심판관으로서 다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실 때 겪게 되는 마지막 일이라고 여기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이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를 만들어 냈다. 구원된 몇몇 사람, 곧 선택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로 들어 올리고 남은 사람들의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학자들은 면밀하게 짜인 이 줄거리가 바오로가 말하는 본문의 의미를 벗어난 것이라며 거부한다. 그것은 실제로 악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라는 불확실한 묵시문학적 관점에서 나온 창작 시나리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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