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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6. 바오로는 동성애 행위를 비난하지 않았는가?
조회수 | 3,906
작성일 | 10.08.18
86. 바오로는 동성애 행위를 비난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은 내가 다룬 질문 가운데 사목적으로 가장 민감한 사항과 관련된다. 바오로가 이 문제에 대해 말하는 몇 구절은 특히 자세히 살펴볼 만하다. 동성애와 관련된 바오로의 윤리 문제를 좀 더 온건한 방향에서 접근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나는 바오로가 동성애 행위를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반대했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바오로는 특히 윤리적 이유 때문에 동성애를 유다인들이 혐오하는 이방인 세계의 특징으로 생각했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한테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여겼다. 일단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바오로의 관점에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첫째, 나는 일반적 관찰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몇몇 성경 본문이 동성애에 대해 언급할 뿐이다. 레위기에 동성애를 금지하는 규정이 두 개 들어 있는데, '성결법'이라는 더 넓은 문맥 안에서 남성끼리의 동성애 행위를 금지한다.(18,22; 20,13)

이 금지 규정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계약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여겼던 행위들, 예를 들어 음식규정·거짓말·농담·근친상간·머리카락을 자르는 것 등을 열거하는 대목 가운데 들어 있다. 중요한 것은 복음서에서는 동성애 문제에 대해 말하는 예수님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처럼 동성애에 대한 언급이 없는 상태에서는 예수님이 동성애 행위를 받아들였다거나 반대했다고 결론지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레위기의 가르침에 순종했으리라고 가정할 수는 있다. 성경의 세계에서 동성애는 오늘날처럼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큼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었다.

둘째, 바오로를 포함한 성경의 세계 사람들은 우리가 구분하는 동성애 행위와 동성애 성향의 차이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동성애 성향을 단죄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셋째, 동성애처럼 예민한 질문에 답변하려면 그리스말 신약성경 본문에 나오는 어려운 어휘 문제에 대한 토론을 제외시킬 수 없다. 전문 용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정의내리는 일은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작업이다. 때때로 바오로가 사용한 그리스말은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이 세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면서 바오로에게 돌아가 보자.

바오로는 개별적인 세 개의 본문, 곧 1코린토 6장 9절과 1티모테오 1장 10절과(만일 바오로의 친서라면) 로마 1장 26-27절에서만 이 문제를 다룬다. 첫 본문은 동성애 행위를 묘사하는 두 단어를 열거하는데,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거룩하게 되어 피할 수 있게 된 의롭지 못한 행위로 판단하는 행위 목록에서 발견된다.

“불의한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도 우상 숭배자도 간음하는 자도 남창(말라코이)도 비역하는 자(아르세노코이타이)도, 도둑도 탐욕을 부리는 자도 주정꾼도 중상꾼도 강도도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도 이런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1코린 6,9-11)

말라코이와 아르세노코이타이라는 두 개의 그리스말은 현대어로 번역하기가 힘들다. 첫 번째 단어를 직역하면 ‘부드러운 것들’이라는 뜻인데 여성이나 소녀처럼 보이거나 행동하고 목소리가 여성스런 남성을 가리킨다. 이 말은 여성의 기질을 가진 남성한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적인 것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여성적인 모든 것을 언급할 때도 자주 사용된다. 이런 맥락에서 동성과의 성관계에 몸을 내놓는 남자들은 지칭하기도 한다. 따라서 ‘남창’은 적절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아르세노코이타이의 번역은 또 다른 문제다. ‘소돔 사람들’이라는 번역은 적절한 선택이 아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죄 이야기(19장)와 맞지 않는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의 주제는 원래 동성애가 아니라 전반적 타락과 하느님의 심판이다.(소돔과 고로마의 이미지를 이용할 때 예수님이 강조하는 것은 이곳에 내린 하느님의 심판이지 죄의 본질이 아니다. 마태 11,23-24)

이 말은 글자 그대로는 ‘남자끼리 자는 사람’인데 다른 단어 두 개를 합친 것으로 동성애 관계를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그 말은 경제적 착취와 관련된 문맥에서 자주 나타난다. 남성의 동성 매춘을 포함하여 경제적 목적으로 맺는 성적 관계를 언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단어가 직접 동성애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인용한 1코린토 6장 9절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성경 구절은 의롭지 못한 다섯 가지 성적 행위를 비롯한 ‘나쁜 행위’ 다섯 가지를 열거한다. 이 모든 것은 분명 금지해야 할 행동이다. 이러한 행위에 관련된 코린토 신자들이 있었는데(6,11) 지금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거룩하게 되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고 바오로는 말한다.

그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그들이 신앙을 통해 긍정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확실히 성적인 죄와 다른 일반적 죄에 대해 화가 나서 눈살을 찌푸리지만 동성애 하나만을 따로 분리시켜 비난하지는 않았다.

다음 성경 구절도 비슷한 문맥으로 ‘건전한 가르침에 어긋나는’죄를 열거한다. 이 성경 구절은 바오로가 직접 썼든, 아니면 후대 사람들이 기록했든 바오로의 전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의 뜻은 율법이 의인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법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 불경한 자와 죄를 짓는 자, 하느님을 무시하는 자와 거룩한 것을 속되게 하는 자, 아버지를 죽인 자와 어머니를 죽인 자, 사람을 죽인 자, 불륜을 저지르는 자, 비역하는 자, 인신매매를 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 거짓 증언을 하는 자, 그리고 그 밖에 무엇이든 건전한 가르침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자 때문에 있다는 것입니다.”(1티모 1,9-10)

죄목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목록에 ‘아르세노코이타이’(비역하는 자)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문맥상 이 단어가 동성애 관계를 언급한다고 판단할 만한 단서는 없지만 이 죄는 앞에서 인용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구절과 같은 죄, 곧 돈을 벌기 위해 동성끼리 갖는 성관계를 가리킬 것이다.

마지막 구절은 가장 엄중하다. 바오로는 로마인들에게 남자끼리의 성관계뿐 아니라 여자끼리의 성관계에 대해 말한다. 성경에서 여성끼리의 동성애를 언급하는 유일한 구절이 바로 이것이다. 악이 얼마나 널리 세상에 퍼져 있는지를 거듭 말하는 바오로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의 결과를 묘사한다.

“이런 까닭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수치스러운 정욕에 넘기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여자들은 자연스러운 육체관계를 자연을 거스르는 관계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여자와 맺는 자연스러운 육체관계를 그만두고 저희끼리 색욕을 불태웠습니다. 남자들이 남자들과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다가, 그 탈선에 합당한 대가를 직접 받았습니다.”(로마 1,26-27)

이 대목은 앞에서 인용한 두 구절과 다르다. 죄의 목록이 아니라 인류의 전반적 타락과 사람들에게 신앙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부분적으로 설명하면서 죄의 목록(1,29-31)을 열거한다.

바오로가 말하는 ‘자연스러운’것과 ‘자연을 거스르는’것은 하느님이 의도했던 우주의 창조 질서를 염두에 둔 것이다. 곧 바오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동성애적 행위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사람들이 세상에 가져온 극적이고 사악한 변화였다. 이처럼 사악한 변화가 부적절한 성행위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왜 바오로가 동성애 관계를 언급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자. 그것은 이방인이 하느님의 의로움을 왜 필요로 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마음의 욕망으로 더럽혀지도록 내버려 두시어, 그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몸을 수치스럽게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버리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영원히 찬미 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1,24-25)

바오로의 관심은 원칙적으로 동성애 행위가 아니라 우상 숭배다. 이방인들은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의 방향을 거꾸로 잡았다. 그들은 더 이상 하느님을 창조주로 섬기지 않고 그들 자신과 그들의 욕망을 하느님 자리에 대신 채워넣었다.

동성애 행위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된 사회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증후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합당한 대가’(1,27)는 몸에 생기는 어떤 질병이 아니라(그 말은 여기에서는 사용되지 않음) 우상을 숭배하는 상태다. 바오로는 로마 공동체의 유다인들에게 신랄한 공격을 퍼붓는데, 이는 로마 2장에 나오는 유다인들의 생활 태도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동성애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동성애 행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털어내고 싶은 사람들은 지나치게 문제를 단순하게 보았거나 본문의 증거를 잘못 해석한 것이다. 바오로는 단죄할 목적으로 동성애 행위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동성애 행위를 바라보는 유다인의 전통적 태도를 전제로 한다.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동성애는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것처럼 강렬한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바오로는 동시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동성애 행위를 엄밀하게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했다. 성적 성향이 아니라 그 행위가 문제였다. 바오로에게 그런 행위는 사람들이 죄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그들 위에 진노의 심판이 내리라는 것을 뜻했다. 동성애 관련 행위는 바오로 시대의 세속 사회가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몇 가지 예 가운데 하나다.

이 질문에는 사목적인 면도 들어 있다. 동성애는 우리 시대에 변덕스럽게 움직이는 논쟁거리다. 성경이 동성애를 단죄한다고 말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성경을 남용한다. 보통 사람들처럼 동성애자들도 인간의 존엄성에 맞갖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동성애 공격’에도 바오로를 끌어들일 수 없다. 우리가 방금 살펴본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문맥에서 바오로는 이 점을 경고한다. “아,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으니, 남을 심판하는 바로 그것으로 자신을 단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1)

우리는 바오로의 메시지 가운데 하나가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11,32)라는 것을 자주 잊어버린다. 그리스와 유다 세계가 모두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음을 선포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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