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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사도행전을 쓴 사람은 누구인가?
조회수 | 2,774
작성일 | 08.08.15
루카가 사도행전을 쓴 것은 아닌가? 그는 바오로가 사랑하는 의사요 동반자로 선교 여행에 함께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가 바오로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했단 말인가?

이 질문은 사도해전의 일부가 왜 1인칭 복수, 곧 ‘우리’(16,10-17; 20,5-15; 21,1-18; 27,1-28,16)로 기록되었는지를 알게 한다. 사도행전 저자는 어쩌면 바오로나 그의 동료한테서 정보를 직접 얻었을지도 모른다. 루카 또는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따금’ 바오로의 동반자였을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오로의 이야기 가운데 여러 세부 사항이 바오로 서간이나 고대 지리 지식에 따라 사실로 증명된다. 어떤 학자들은 이 대목들이 바오로의 선교 활동을 목격한 증인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제안한다. 바오로가 사랑하는 의사 루카(콜로 4,14)가 그 내용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이 이론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한다. 이 대목들은 오직 사도행전의 뒷부분만 포함한다는 것에 주목하자. 그렇다면 왜 바오로의 선교 활동 초기는 ‘우리’라는 말을 사용해 기록하지 않았을까?

만일 루카와 사도행전의 저자가 바오로의 동반자가 아니었다면, ‘우리’로 시작되는 대목은 활기차고 현장감 있는 이야기 구성을 위해 고대에 사용한 문학 기법이었으리라고 설명할 수 있다. 루카라는 이름은 사도행전 제목이나 본문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바오로가 동료(협력자)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필레몬 24절과 바오로의 친저성이 의심되는 다른 두 서간에서 루카의 이름이 나올 뿐이다.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은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4,11)라는 바오로의 말을 기록한다.

오직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만 루카의 정체에 대해 더 이상의 정보를 덧붙이지 않은 인사에서 “사랑하는 의사 루카”(4,14)라는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구절은 루카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루카는 바오로의 동반자라고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으며 그가 사도행전의 저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루카는 그 당시 흔한 이름이었고, 두 권의 신약성경 저자를 사랑받는 의사와 동일하게 여길 구체적 자료는 없다.

오래된 이론들은 그 저자가 참으로 의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루카와 사도행전의 특수 의학 용어들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는 그런 단어들이 오해임을 보여준다.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은 다른 신약성경에 비해 의학적이지 않다.

사도행전의 저자를 바오로가 사랑하는 의사 루카와 동일하게 생각하기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바오로 서간과 비교할 때 드러나는 사도행전과의 견해 차이 때문이다. 관점의 차이 때문에 두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한다. 몇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첫째, 사도행전은 회심 전에 바오로가 예루살렘에 거주했고(8,1-3)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떠나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바오로가 다마스쿠스(1,17-18)에 거주했다고 말한다.

둘째, 사도행전은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구호 헌금을 보내 예루살렘 교회와 함께 기근 구제를 도왔다고 말하는데(11,29-30),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바오로의 여행 순서와 그 이유에 대해 다른 관점을(1,17-2,1)제공한다.

셋째,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대해 사도행전과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 달리 전하는 이야기인데 다음 질문에서 설명할 것이다.(사도 15장; 갈라 2장) 사도행전은 베드로와 야고보가 바오로의 이방인 선교를 인정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는 신앙 공동체의 지도층 인사들에게 바오로가 정면으로 맞서야 했음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사도행전이 서간을 쓰는 바오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바오로에게 서간은 자신이 복음화한 공동체와 접촉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바오로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두 자료 사이에 서로 일치하지 않는 다른 예들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그 불일치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데서 생긴다. 사도행전이 바오로의 삶과 선교 활동에 대해 묘사하는 내용이 정확한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만일 루카가 이야기하는 사건들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라면, 왜 그의 관점에 그토록 차이가 있을까? 사도행전의 저자는 자신의 독특한 신학적 관심사에 따라 바오로의 이야기를 전하지만, 이것이 전적으로 이야기에 흐르는 긴장감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사도행전이 바오로의 선교 활동을 직접 목격한 사람의 증언으로 전해 준다는 경해를 지지하려고 할 때, 다른 두 가지 의견이 걸림돌이 된다. 사도행전에 보고된 바오로의 설교는 야고보나 베드로나 스테파노의 설교와 비슷하다.

학자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설교가 되풀이되는 루카의 신학 주제를 수집한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예주님과 초대교회 이야기를 재구성하기 위해 일차 자료에 의존했으며 목격 증인 이야기와는 거리를 두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루카 1,2; 사도 1,1)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오로한테는 교회에 알려진 동반자 루카가 있었는데, 그는 사도행전의 저자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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