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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공평하신 하느님
조회수 | 161
작성일 | 17.09.23
[군종] 공평하신 하느님

오늘 복음말씀이 전하는 포도밭은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하기 위한 포도밭입니다. 그렇다면 그 포도밭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며, 포도밭의 일꾼들은 모두 하느님 나라에로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포도밭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아홉 시에, 열두 시에,오후 세시에, 그리고 오후 다섯 시에 일꾼들을 부르십니다. 일꾼들은 자신의 능력에 맞갖게 선발되어집니다. 곧 유능하고 똑똑한 이들은 먼저 선발된 반면, 일이 서툴고 어눌한 이들은 자신들을 원하는 주인이 없어서 마지막까지 남아있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모르긴 몰라도 오후 다섯 시에 불려진 이들은 다른 일꾼들에 비해 썩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타고난 체력도 약했을 것이고,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 여러 모로 눈치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인간관계도 서툴렀을 것입니다.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육체적, 혹은 정신적인 장애를 안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흔히 우리들 안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들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곧 세상 안에서 쓸모없음으로 규정된 소외되고 버림받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동등하게 일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던 모든 세대의 라자로(루카 16장 참조)들입니다.

그렇기에 밭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그들을 포도밭으로 부르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에게 삶은 처음부터 불공평했고, 그 불공평함을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충분히 소외된 채 살아야 했으니, 하느님 나라에서만큼은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합니다. 이를 반영하듯, 주인은 늦게 온 이들부터 먼저 챙겨줍니다. 그렇게 그들 모두에게 동일한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자본주의의 논리 안에서 이 같은 주인의 조치는 부당해 보입니다. 많이 일한사람은 더 많이 가져야하고, 일하지 못한 사람은 그에 걸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논리 안에서 언급되는 ‘공평함’은 사실 여러모로 허술합니다. 자본주의의 이면을 들여다 볼 때, 사실상 공평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들 세상의 논리로 태초에 모든 일꾼들을 창조하셨고, 그들 각자의 능력과 달란트까지도 친히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셈법을 부당하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공평함’이라는 말은 오직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느님께만 유보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만이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공평함에 대한 내가 가진 기준과 잣대가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공평함과 다르다면, 나의 관점은 공평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관점과 나의관점이 다르다면, 나의 관점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 군종교구 최혁 베드로 신부 - 2017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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